에베소서 (9) : 예수님 닮기 2

요즘 한국에서 한창 인기를 끌고 있다는 <암살>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작은 아들이 영화 티켓을 사주어서 미국 영화관에서 보게된 두 번째 영화였습니다. 첫번째 영화는 시사회에 초대되어서 보았던 이순신 장군을 그린 영화였습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미국에서 본 영화 두 편이 모두 민족 그리고 일종의 전쟁을 소재로 다룬 것이었습니다. <암살>이라는 제목이 섬뜩해서 영화가 어떻게 펼쳐질지 자못 궁금했는데 일제 강점기 1930년대 독립 지사들의 활약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특히 눈에 띤 것은 여성 독립투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영화 속 등장 인물들이 민족의 해방이라는 커다란 사명 앞에서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장면이 인상깊었습니다. 나라를 잃었던 당시에는 많은 분들이 조국의 해방을 위해서 나라 안팎에서 싸웠습니다. 영화 속에는 다루지 않았지만 해외 동포들도 독립운동에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참여했습니다.  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 일해서 번 품삯을 독립 자금으로 보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는 장인환/전명운 열사가 일본 외교부 고문이었던 스티븐슨을 암살하는 등 해외 독립운동의 중심지였습니다.

  영화속의 한 인물이 자신은 해방이 오지 않을 줄 알고 친일파로 살았다고 말 하듯이 저항하지 않고 일제 통치에 순응하면서 잘 살 수 있었는데, 왜 이들은 독립운동에 목숨을 걸었을까요? 무엇보다 독립운동 속에서 의미와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민족의 해방이라는 큰 전제부터 각자의 상황 속에서 경험한 가족 또는 개인의 명분까지 독립운동은 이들에게 생명을 걸 만큼 존귀한 사명이었습니다.

  우리는 에베소서를 공부해 가면서 부르심이라는 말씀을 자꾸만 맞딱뜨리고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가 마음의 눈이 밝아지고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아서 부르심의 목적을 깨닫기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부르신 목적을 발견하고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라는 권고요 바람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떠올리면서 기업의 풍성함을 기대하고, 삶 속에 임할 엄청난 능력을 확신하면서 부르심의 길을 걷도록 기도해 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각자의 자리로 보내십니다.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애국 지사들은 민족의 해방을 위해서 자신들을 부르셨고 그곳으로 보내셨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우리 같은 범인들이야 거창한 부르심을 생각할 수 없지만 (물론 우리 젊은이들을 크고 귀한 일로 부르셨기를 기대합니다)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부르심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에베소서 41-3절에서는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우리의 성품으로 설명합니다. 지난 주부터 살펴보는 말씀 주제에 맞춰 생각하면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덕목들은 예수님께서 친히 보여주신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요즘 시대야 말로 예수님을 닮은 그리스도인들을 절실하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시대의 부름에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에 합당한 삶을 살기 원합니다.-

에베소서 (8) : 예수님 닮기 1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종종 생각해 봅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믿고 그 분 말씀을 따라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특히 요즘 처럼 과학 문명이 발달하고 영적인 것 보다 물질주의가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에베소서에서 배운 대로 우리들이 누구인지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성도요,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위해서 창세전에 택하신 자들이고,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은 자임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느끼고 더 나아가 성도에 걸맞은 삶을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할까요? 늘 말씀드리듯이 신앙생활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첫째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성경을 두고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고 합니다.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고, 그 안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성경을 읽을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시는 특별한 말씀이라고 믿고 성경을 대하면 분명히 그 속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둘째로 우리들 각자 주관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을 만납니다. 이러한 만남은 일생 가운데 몇번 강렬하게 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심을 인정할 수 밖에 없고,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체험하는 순간입니다.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체험하는 데 기도가 가장 좋습니다. 기도가 응답되는 것부터,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깊이 느끼는 것까지 기도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최고의 기회입니다. 이처럼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납니다. 신앙의 신비요 특권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위해서 에베소 교회에 지혜와 계시의 영이 임하고 마음의 눈이 밝아지길 기도했습니다. 믿음을 통해서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길 기도했습니다. 그때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의 특징은 변화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음에 계시니 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각, 행동, 말씨, 무엇보다 인생을 보는 관점이 자기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변화됩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살기에 저절로 예수의 사람으로 자라갑니다.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면서 속사람이 강건해 집니다.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서 근사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속사람의 강건함이 삶의 열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삶의 순간마다 하나님 사랑의 길이, 넓이, 깊이와 높이를 경험하면서 사랑 가운데 터가 굳어집니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흔들림없는 신앙을 갖게 됩니다. 믿음을 통해서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의 온전한 모습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사랑 속에서 가능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무조건 받아주시고 용서하시고 최고의 사랑으로 충만하게 하시는 손길입니다. 따라서 우리들도 사랑 가운데서 진리를 말하고,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기도해주고 격려하면서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목적입니다. –

에베소서 (7) : 바울의 기도 3

8월의 첫번째 주일입니다. 올해도 어느 덧 다섯 달 남았습니다. 매년 8월이 되면 다음 해 교회 달력을 주문하게 되는데 그때 마다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실감합니다. 내년에도 여러분들이 가장 많은 표를 주신 달력을 주문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남은 다섯 달 동안 우리 교회가 함께 기도하면서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입니다.첫째는 올 겨울에 추진하고 있는 소년소녀 가장 초청입니다. 그동안 임원회와 기획위원회에서 논의한 대로 우리가 매달 돕는 초록우산에서 추천한 두 명의 소년 소녀 가장을 초청할 예정입니다. 특별헌금을 해 주신 마음과 손길이 있어서 가능한 일입니다. 지난 임원회에서 실무팀을 세웠습니다(정은숙 권사님,하성애 집사님, 홍현주 집사님). 그 동안 수고해 주신 정은숙 권사님과 실무팀들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본국의 초록우산과 연락하면서 일을 진행하시게 됩니다. 좋은 생각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실무팀에 얘기해 주시고, 궁금한 것을 여쭤 보시고, 온 교회가  기도로 참여하기 원합니다.

둘째는, 주일예배를 우리 교회에 적합하게 바꿔보는 것을 생각중입니다. 어르신들과 젊은이들이 고루 참여하시는 예배입니다. 예배 순서와 내용을 차근차근 점검하고 성령의 임재와 역사가 있는 예배가 되도록 변화를 시도하려고 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주일예배와 관련을 가지시는 박원영 집사님, 류호석 집사님, 이경민 지휘자님께 첫번째 생각들을 제안해 주시길 부탁드렸습니다. 지금 예배도 좋아서 아주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세밀한 부분까지 은혜로운 예배가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주시고,성도님들께서도 조언해 주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내년도 목회 계획입니다. 그동안 제가 우리 교회 사역에 많은 부분을 담당했습니다. 이제 가능하면 모든 성도님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참여하실 수 있도록 교회 사역을 짜임새 있게 재정비하기 원합니다. 교육은 물론 구제와 선교까지 우리 교회 사역에 시스템을 잘 갖춰졌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조직이나 시스템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역사는 바로 우리들 각자 성도님들을 통해서 임합니다. 그래도 교회의 형식을 잘 갖춰 놓으면 그 안에서 복음이 역사하는 데 힘을 받을 것입니다. 안내 데스크에 있는 <제안함>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의견을 주시면 가능한 대로 교회 사역에 반영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늘 그랬듯이 교회는 기도로 세워집니다. 개인이나 교회나 늘 어려움을 경   험합니다. 그때마다 기도를 통해서 어려움을 헤쳐나갈 하늘의 지혜와 힘을 공급받습니다. 지난 3주 동   안 배웠던 에베소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가 우리 교회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으   로 마음의 눈이 밝아지고, 부르심의 소망, 기업의 풍성함, 엄청난 능력을 경험하길 서로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속사람이 강건하고, 그 위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치길 기도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오늘 우   리가 살펴본 바울의 기도처럼 우리 교회와 모든 성도님들께서 사랑 가운데 뿌리가 깊어지고 터가 굳어   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가운데 힘을 합쳐서 하난미 마음에 합한 교회를 세우고, 근사한 그리스도   인으로 세상에서 삽시다.-

하나님 언제까지 입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1.
우리들 인생길이 늘 좋을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가 걷는 길이
언제나 장미빛 융단이 깔린 탄탄대로일 수 없습니다.
신앙의 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향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 왜 저입니까?(why me?)
하나님, 언제까지 입니까? (how long?)
하나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What can I do?)

구약성경의 시편은
개인과 민족의 어려움,
하나님에 대한 일종의 실망감을
탄식이라는 문학 유형으로 기록했습니다.

여호와여 언제까지니이까 스스로 영원히 숨기시리이까
주의 노가 언제까지 불붙듯 하시겠나이까? (시편 89:46)
How long, O LORD? Will You hide Yourself forever? Will Your wrath burn like fire? (Ps 89:46)

2.
하나님 앞에서
풀리지 않는 의문이 생기거나,
하나님께서 숨어계시는 듯
유난히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실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필립 얀시는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Disappointment with God)>라는 책에서
구약 성경의 욥기를 갖고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 알려줍니다.

책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제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계시는 분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들 생각에 일이 잘못되는 것 같아도
영원하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끝까지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붙들고 있는 합리주의와 이해력을 뛰어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그 순간에도 현재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소처럼 묵묵히 자신의 인생 밭을 기경하는 것입니다.

얀시는 이것을 ‘충성’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내가 충성이라고 부르는 깊은 차원의 믿음은 모순과 갈등의 시간에 꽃 피운다. 마치 돌 사이에 피는 풀 한 포기처럼 말이다. 인간은 불투명하면서 자란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인간에게 해답이 아니라 문제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261)

셋째는, 좋으신 하나님 즉 하나님의 선하심을 끝까지 의지해야 합니다.

“이 역사가 모두 끝날 때까지 우리는 어떻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믿음은 미래에 이루어질 사실을 미리 믿는 일을 의미한다”(253)

하나님이 섭섭하게 느껴질 때도
좋으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우리의 감각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습니다.

탄식할 수 있습니다.

뒤로 숨기고 안그런척 하는 것보다 도리어 솔직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좋으신 하나님을 떠올리고
그 분을 응시합니다.
한참 동안 말입니다.
마음에 평안이 임할 때까지…

3.
신앙이나 인생이 매일반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참빛 식구들만은
아주 아주 특별하게 대우해 주시길 바라지만,
그것 역시 저의 욕심인 것을 금세 발견합니다.

우리들도
겪을 것을 다 겪고 넘어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허허벌판 한 가운데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그때 임하는 감사와 기쁨,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평안이 바로 예수 믿는 행복입니다.

필립 얀시가
다음과 같이 그의 책을 마무리하듯이 말입니다.

“거기에 누군가 계시다는 사실을 난 깨달았다. 누군가 이 세상에서 펼쳐지고 있는 내 인생을 모두 보고 계셨다. 또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 바로 거기에 살아 계셨다. 그것은 소망을 갖게 하는 놀라운 감정이었기 때문에 내 인생을 거기에 걸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323-24)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사43:1)
Do not fear, for I have redeemed you; I have called you by name; you are Mine! (Isa 43:1)

하나님
행여나 우리 안에 하나님을 향해서 섭섭한 마음이 들때도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시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받아주실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어진 인생길을 꿋꿋하게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8.13 이-메일 목회서신)

무엇을 어떻게 왜

좋은 아침입니다.

1.
저는 오늘부터 내일까지
빌 하이벨스 목사님이 주관하시는
리더쉽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아는 자매가 예약을 해 주어서
참 오랜만에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정보를 얻고, 느끼고,
또 우리 교회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 지 생각중입니다.

원래 세미나는 시카고 윌로우 클릭 교회에서 진행하고
북미와 캐나다 800(?)여 곳에서 영상으로 강연을 듣는 식인데
샌프란에만 200여명 이상 모인 것 같습니다.

프로그램과 초청연사들이 수준급이지만
교회가 주관하는 프로그램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한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뜁니다.
희망이 생깁니다.

2.
첫번째 강의는
빌 하이벨스 목사님이 시작하셨습니다.

리더쉽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세가지 의문사들(what, how, why)을 커다란 세 개의 원으로 설명하시고
한 가운데 “why(왜)”를 두셨습니다.

우리는 무엇을(what) 할까,
어떻게(how) 할까에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하고
무슨 결과가 나왔는가에 따라서 성공과 실패를 가늠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 또는 어떻게 하느냐보다
“왜”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왜(hot why)”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할 때 올바른 리더쉽이 발휘될 수 있답니다.

“왜”는
에베소서 바울의 기도에 있었듯이
“부르심의 목적”과 관련이 깊은
가장 우선적인 질문임에 틀림없습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저 자신에게 “왜”라는 질문을 하면서
목회의 부르심을 점검해 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왜 지금 이 자리에 계시고
왜 이 일을 하시고
왜 어떤 일을 하려고 준비하고 계획하시는지요?

3.
하이벨스 목사님은 리더가 저지르기 쉬운 실수를
“블라인드 스팟(blind spot)”으로 설명하셨습니다.

남들은 모두 아는데
자기만 모르는 영역,
자기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놓치기 쉽지만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순간들입니다.

저는 스윗 스팟(sweet spot)이라는 용어를 종종 쓰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과 타이밍을 강조했는데
블라인드 스팟의 중요성을 새로 배웠습니다.

무심코 넘어가지만
실수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세심하게 관찰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블라인드 스팟을 감지해 내는 세심함이 필요하군요.

여러분 삶의 블라인드 스팟은 어디인지요?

왜 라는 질문은
우리들을 핵심가치 속으로 인도합니다.
블라인드 스팟을 잡으면서
삶 속의 위험을 배제할 수 있습니다.

4.
미국에서 세미나나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재정이 꽤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책이나 만남
또는 경험을 통해서 스스로 배우는 편인데
오랜만에 세미나에 참석해서 많이 배워갑니다.
(저 혼자여서 외롭고, 영어로 진행되는 강연을 놓치는 경우도 있지만)

“배우고 자라가는 교회”라는
작년 우리 교회 표어도 생각나는군요.
우리 모두 배우면서 자라갑시다.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께 이를 때 까지!!!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엡 4:15)
Speaking the truth in love, we are to zgrow up in every way into him who is athe head, into Christ,(Eph 4:15)

하나님 아버지,
하루 하루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왜 이곳으로 우리를 부르셨는지
“hot why”를 찾고
날마다 부르심을 쫓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8.6 이-메일 목회서신)

부르심의 소망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은 여성 성경 공부 마지막 시간에
소명(부르심,calling)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소명은 삶의 근거이자 목적입니다.

바울도 에베소 교회가
“부르심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도로, 주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셨을 때는 부르심에 목적이 있고
그것을 깨닫기 위해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고, 마음을 밝혀 주시길 기도한 것입니다.

2.
오스 기니는 소명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습니다.

“소명이란,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 결정적으로 부르셨기에, 그분의 소환과 은혜에 응답하여 우리의 모든 존재, 우리의 모든 행위, 우리의 모든 소유가 헌신적으로 역동적으로 그분을 섬기는데 투자된다는 진리이다” (오스 기니 <소명>, 21)

또한 일차적 소명과 이차적 소명을 구분하면서
일차적 소명은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신 소명이고
이차적 소명은 각자의 직업, 가정 등 세상 속으로 부르신 소명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소명을 따라 산 사람들은
불꽃같은 열정을 갖고 산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소명은 삶에서 가장 깊은 성장과 최고의 영웅적 자질을 향한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비결이다”(소명, 137)

파스칼이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
그 기쁨을 양피지에 적어서 가슴 속에 간직했던 일화를 소개하면서
소명을 따라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2.
“소명” “부르심의 목적”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 벅차 오르는 일입니다.

현재 우리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일 속에 있듯이
그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내일 있을 청년부 금요모임에서
특강을 부탁해서
오늘 공부했던 <소명>에 대해서 한번 더 나누기로 했습니다.

현재에 머물지 않고
장차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시고
어떻게 부르심의 삶을 살지 꿈을 꾸고 서로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누구든지 오셔도 됩니다.^^

3.
어느 덧 7월도 지나고
8월을 맞습니다.

매번 맞이하는 날(day)이고
달(month)이어서
매일, 매달, 매년이라는 말을 씁니다.

부르심의 목적을 발견하고
소명을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일 매일의 삶이 사건이고, 은혜이고,
주님의 일에 동참하는 능력입니다.

오늘 하루도
각자의 자리에서 부르심을 쫓아 사시길 바랍니다.
그 속에서 주님의 손길과 인도하심을 확신하고
흔들리지 않는 소망으로 이어지기 원합니다.

내가 발걸음을 당당하게 내딛도록 주께서 힘을 주시고, 발을 잘못 디디는 일이 없게 하셨습니다 (시18:36, 새번역).
You gave a wide place for my steps under me, and my feet did not slip (Psalms 18:36)

하나님 아버지,
참빛교회 식구들 모두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부르심을 따라 살게 하시고
그 속에서 기븜과 소망을 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7.30 이-메일 목회서신)

에베소서 (6) : 바울의 기도 2

에베소서는 성도들에게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 자세히 알려줍니다. 동시에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에 주시는 말씀입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을 향해서 드린 기도 역시 성도들 개인은 물론 에베소 교회를 위해서 드린 것입니다. 바울은 첫번째로 에베소 교회와 성도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고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길 기도했습니다. 그때 부르심의 소망과, 기업의 풍성함과 하나님 능력의 엄청남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처럼 에베소 교회와 성도들이 근사하게 자라가길 기도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바울의 두번째 기도 속에도 에베소 교회를 향한 바울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앞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 기도한 바울이 이번에는 하늘과 땅에 이름을 준 각 족속의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늘과 땅을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에베소 교회를 위해서 기도한 것입니다.


바울의 기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는 속사람이 강건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여기서 속사람은 하늘의 신령한 복을 누리는 영혼, 또는 말 그대로 우리들의 속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만나는 자리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자리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들어와서 우리를 만나주시는데 그것이 곧 속사람입니다. 속사람이 강건해야 합니다.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임재해 계시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임재가 곧 영광입니다. 영광의 풍성함으로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임하시고 우리들 안에서 일하실 때 속사람이 강건해집니다.


둘째는 에베소 교회에 임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알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넓고, 길고, 높고 깊은지 에베소 교회가 깨닫고 경험하기를 기도해줍니다. 하나님의 사랑 속에 들어가면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문제들도, 세상에서 경험하는 어려움도, 미래에 대한 염려와 근심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면 충만한 은혜와 감사로 바뀝니다. 속사람이 강건해 지는 것 역시 그리스도의 사랑 속에 신앙의 뿌리가 깊이 내리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와 모든 성도님들께서 지난 두 시간에 걸쳐서 배운 바울의 기도를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지혜와 계시의 영이 임함으로 마음의 눈이 밝아지고, 속사람이 강건해 지고, 그리스도의 사랑의 몸소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 기업의 풍성함, 한량없는 능력과 충만한 사랑을 경험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의 신앙이 견고해 지고 왠만한 폭풍우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뿌리를 깊이 내릴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견고한 신앙이 요청됩니다. 확실한 신앙이 아니면 견디기 힘든 시대에 살기 때문입니다.속사람을 강건하게 하고,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풍성함을 경험한다면 자연스레 근사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충만한 주님의 백성이요 성도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날마다 주님께 나갈 뿐만 아니라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는 참빛 식구들 되시길 바랍니다.-

에베소서 (5) : 바울의 기도 1

<신앙 터잡기>에서 배웠듯이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핏값을 주고 사신 주님의 몸된 교회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유지하게 하시고, 친히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그리스도의 주되심이 교회를 통해서 드러날 때 비로소 진정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일하실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주인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경험하는 것도 기도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저녁 10시는 모든 참빛 식구들께서 하던 일을 멈추고, 교회를 마음에 품고 잠깐이라도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오래 동안 지속된 전통이어서 대수롭지 않게 형식적으로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교회>라는 표어로 한 해를 사는 2015년의 하반기를 보내면서 다시 한번 저녁 10시 교회를 위한 기도에 온 교회가 집중해서 참여하기 원합니다.


교회가 세워지는 것은 꽤 어렵습니다. 대신에 교회에 금이 가고 허물어지는 것은 순간의 일입니다. 우리 교회가 꿋꿋하게 근사하게 세워지길 다함께 기도하기 원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통해서 주의 부흥을 경험하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만나기 원합니다. 성도의 기도는 힘이 있습니다. 한 마음으로 드리는 교회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기도로 세워지는 우리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에베소서 말씀은 에베소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입니다. 에베소서는 바울이 감옥에서 기록한 옥중서신입니다.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에베소 교회를 눈에 그리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에게 특별했습니다. 3년 동안 장기 체류했었고, 복음 안에서 아름답게 성장한 모범적인 교회였습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위해서 기도할 때마다 감사가 나왔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예베소 교회와 성도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마음의 눈을 밝혀주시길 기도합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줄 아는 능력입니다.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복을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세상에 살지만 세상을 뛰어넘는 신앙의 세계를 추구하고 바라보는 안목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이 임했을 때 가능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살아갈 때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역사하는 일들입니다.

마음의 눈이 밝혀 지고 지혜와 계시의 영이 임했을 때 세가지 커다란 혜택을 경험합니다. 부르심의 소, 기업의 영광, 베풀어주시는 능력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가 어려움 가운데서도 소망을 잃지 않, 하나님께서 양자삼으신 아들에게 주시는 기업의 영광, 무엇보다 세상을 살아가는 능력을 경험하길 기도했습니다. 바울의 기도가 교회를 향한 우리의 기도가 되기 원합니다. 할렐루야! –

하나님의 능력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에는

에베소서 1장에 나오는 에베소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를 공부했습니다.

이번 주일에는 3장에 나오는

바울의 두번째 기도를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바울의 첫번째 기도 가운데 눈에 띠는 구절은

1장 19절이었습니다: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시는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and what is the immeasurable greatness of his power toward us who believe,

according to the working of his great might.

이 한 구절에 능력에 대한 단어가 넷이나 나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알려주기 위해서

네 가지 각기 다른 단어를 갖고 기록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엄청난 능력이 에베소 교회와 성도들에게 임하기를

매우 구체적으로 또한 간절히 기도한 것입니다.

첫번째 “능력의 지극히 크심”에는 <뉘나미스>라는 헬라어가 쓰이면서

로켓트처럼 높이 쏘아올릴 정도의 능력,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에베소 교회가 알기를(인정하고 체험하길) 기도했습니다.

둘째로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according to the working of his great might)”에는

하나님 능력을 표현하는 세 가지 유사한 표현이 들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엄청난 능력이 구체적으로

에베소 교회에 임하길 기도한 것입니다.

“그의 힘<이스퀴스>”은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로 하여금

신앙의 길을 또한 주어진 인생길을 끝까지 완주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힘이 우리 안에 임했습니다

“위력<크라토스>”은 하나님께만 있는 힘입니다.

그 힘이 임하면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겠지요.

홍해를 갈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하신 능력이 떠오릅니다.

“역사하심<에네르게이야>”는 실제로 일하는 힘입니다.

에너지를 연상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을 죽음에서 일으킨 그 힘(역사하심)입니다.

활동력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19절에서 쓰인 네 가지 표현들은

우리들에게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능력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에게 임하는 능력입니다.

이 엄청난 능력이 우리 안에 임해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가 이 사실을 깨닫고

이 능력을 따라 살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2.

요즘 주변에 힘든 일들이 많이 생깁니다.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도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필요한 경우를 봅니다.

일을 이루시고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실제로 요청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 있음을 믿고

하나님 능력의 활동하심을 기대하면서 살아갑시다.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산다는

고백이 우리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바라봅시다.

능력의 주님을 말입니다 ^^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리에게 베푸시는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1:19)

and what is the immeasurable greatness of his power toward us who believe,

according to the working of his great might. (Eph 1:19)


우리 안에서 능력으로 일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의 능력 가운데 거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7.23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