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13)

브니엘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자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던 벧엘과 하나님과 씨름했던 얍복강은 야곱의 신앙은 물론 인생을 받쳐주는 두 기둥입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서 외삼촌 집으로 가는 길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지팡이 하나 들고 외삼촌 집으로 가던 때입니다. 450여 마일 외삼촌 집으로 가는 것도 막막한 여정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땅에서 하늘로 사닥다리가 이어졌고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하시고 그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지고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올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이 일어나서 돌기둥을 갖다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곳 이름을 벧엘(하나님의 집)이라고 부릅니다. 야곱은 20년 외삼촌 집에서 지내는 동안 벧엘의 약속을 마음에 간직했고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견뎠습니다.

 

두 번째 얍복강 사건도 형 에서와 연결되지만, 상황은 반대입니다. 벧엘은 형을 피해서 고향을 떠날 때였고, 얍복강은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형과 대면해야 합니다. 외삼촌과 작별했기에 다시 하란으로 돌아갈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입니다. 벧엘과 똑같이 칠흑 같은 밤이었습니다.

 

얍복강의 야곱은 벧엘의 야곱보다 훨씬 힘든 상황입니다. 그때는 야곱 혼자였는데, 지금은 가족이 있습니다. 그때는 빈손이었는데 지금은 재산도 많아졌습니다. 그때는 형 에서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축복을 가로챈 야곱을 죽이겠다고 위협했지만, 지금은 형 에서가 400명을 데리고 야곱을 만나러 오는 긴박한 상황입니다.

 

하나님께서 밤중에 홀로 있는 야곱을 찾아오셔서 밤새도록 씨름하셨습니다. 여기에 쓰인 히브리어 동사 <아바크>는 먼지(dust)라는 뜻과 함께 하나님과 야곱이 흙범벅이 되면서 뒹구는 모습을 알려준다고 지난주에 말씀드렸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과의 싸움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끈질기고 집요했습니다. 에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싸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십니다. 그래도 야곱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을 구합니다. 이제는 아버지의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 주시면서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28절)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으니, 사람인 에서를 이기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야곱이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고 보았는데 생명을 보전하였다고 기뻐하면서 그곳 이름을 “브니엘(하나님의 얼굴)”이라고 지었습니다. 야곱이 브니엘을 지날 때 해가 돋았고 야곱은 다리를 절었습니다. 그로부터 야곱은 평생 다리를 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싸워서 이긴 상처를 몸에 지니고 사는 복된 인생이 된 것입니다.

 

야곱이 힘들때 마다 찾아오신 벧엘과 얍복강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河-

 

하나님 편에 서라

좋은 아침입니다.

 

1.

토요일 새벽기도회 마치고

강단에서 기도하는데 문득

“하나님의 희로애락”이라는 문구가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은 언제 기뻐하시고, 화를 내시고

슬퍼하시고 즐거워하실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성경은

하나님의 희로애락을 기록한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하나님께 돌아올 때 기뻐하십니다.

정의와 공의가 사라진 세상을 향해서 분노하십니다.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쫓을 때 슬퍼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희로애락을 이해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2.

제가 기도하면서 든 생각은

하나님의 희로애락과

우리의 희로애락이 과연 일치하는 지였습니다.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합니다.

기쁘고 힘들고 슬프고 즐거울 때 기도하고

기쁘고 즐거운 일이 많아지길 기도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도와 하나님의 마음이 일치하는 지 궁금했습니다.

 

희로애락이 인생이라면

우리가 원하는 인생과 하나님이 바라는 인생이

엇박자가 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하나님께 마음과 생각을 맞추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바른 기도요 바른 신앙일 것입니다.

 

3.

짐 월리스의

<하나님 편에 서라>는 책이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세상 속에서 추구해야 할 공동선에 관한 책입니다.

영어 제목도  “On His Side”이니 우리 제목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희로애락에 동참하는 기도,

하나님을 기쁘고 즐겁게 하는 신앙,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에서 경험하고 이루는 시도,

이 모든 것의 기본은 하나님 편에 서는 것입니다.

 

월리스의 한국어 번역 책 표지에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인지 아닌지 나는 관심이 없다.

나의 가장 큰 관심은

내가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다.”

 

4.

지난 주일 예배를 시작하면서 말씀드렸듯이

우리 중심의 예배, 우리 중심의 신앙,

내가 잘되고 평안하고 복을 받으려는 자세를 내려놓고

하나님을 한 가운데 모시고 하나님의 희로애락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우리의 시선도 머물고,

하나님의 손길과 발길이 가는 곳에

우리도 가서 도우면서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기 원합니다.

 

그러면 이다음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다음과 같은 칭찬을 들을 것입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25:35-36)

 

하나님 편에 서기 원합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기 원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 6:5)

 

 

하나님

오늘도 주의 손과 발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8. 3 이-메일 목회 서신)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12)

얍복강

 

야곱에 관한 말씀은 야곱이 겪은 세 가지 커다란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야곱과 에서의 경쟁, 야곱과 외삼촌의 경쟁, 야곱 아들들의 경쟁.

 

야곱과 에서의 갈등은 가나안에서 시작했습니다. 외삼촌과의 갈등은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서 갔던 하란이 무대입니다. 야곱은 20년 피난살이를 마치고 고향 가나안으로 돌아와서 정착했습니다. 훗날 야곱과 그의 가족은 요셉이 있는 이집트로 피난 갑니다. 야곱 자신이 말하듯이 그의 삶이 험난한 것이 사실입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서 외삼촌이 사는 하란으로 피난 갈 때, 길에서 혼자 노숙하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오셔서, 야곱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지고,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하시며,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이 외삼촌 집에서 지내는 동안 벧엘의 하나님을 잊지 않았고,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을 야곱 자기 하나님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도 세 가지 약속을 모두 지키셨습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듯이, 야곱은 도망치듯이 외삼촌 집을 빠져나왔는데 하나님께서는 외삼촌과의 화해를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외삼촌이 야곱을 잡으려고 쫓아 왔는데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어서 야곱과 외삼촌의 아름다운 이별로 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야곱의 삶에 깊이 관여한 결과입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이 가나안 땅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입니다. 20년 동안 꿈에 그리던 고향에 돌아오는 길입니다. 그런데 야곱의 마음이 한없이 무겁습니다. 형 에서를 대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외삼촌보다는 자기 목숨을 노리고 있던 형 에서가 훨씬 어려운 상대입니다.

 

야곱은 다시 하란으로 돌아갈 수 없기에 형 에서를 대면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야곱이 사람을 보내서 동정을 살핍니다. 형이 400명의 사병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러 온답니다. 야곱은 에서의 분노가 풀리지 않았음을 직감했습니다. 선물을 갖고 형의 마음을 누그러뜨릴 계획을 세웁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형 에서와 대면할 계획을 세우고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형 에서는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닙니다.

 

야곱이 가족들을 모두 강 건너로 보내고 자신은 얍복강 가에 혼자 남았습니다. 처음 하란에 갈 때 벧엘에서 돌 베개를 베고 자던 때보다 훨씬 외롭고 힘든 밤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야곱이 밤새도록 하나님과 씨름합니다. 야곱은 필사적으로 하나님과 싸웠고 야곱답게 결국 이깁니다. 이름도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뜻의 이스라엘로 바뀝니다.

 

대신 야곱은 둔부의 힘줄이 끊어지는 상처를 입었고 평생 다리를 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손길을 몸에 간직한 야곱은 기쁨이 넘쳤습니다. 벧엘의 밤에 이어서 얍복강의 밤은 야곱의 인생을 밝히고 인도하는 빛으로 변했습니다. -河-

 

늘 바쁜 일로 쫓기는 삶

좋은 아침입니다.

 

1.

현대인의 특징은 바쁨입니다.

비즈니스(business)라는 말을 패러디해서

영어 비지니스(busyness)라는 말이 생길 정도입니다.

 

바쁘게 살다 보면,

“내가 왜 이렇게 바쁘지?”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몸과 마음이 바쁜데 뭔가 멍- 해지는 순간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에는 시간 관리에 관한 정보가 넘칩니다.

한국에도 소개된 Atomic Habits(아주 작은 습관의 힘)이라는 책은

아마존에서 10만이 넘는 리뷰를 받을 만큼 인기입니다.

 

그런데

시간 관리에 관한 책이나 강연을 들으면, 대개 아는 내용입니다.

몰라서 못 한 것이 아니라 알면서 실천하지 않은 것이지요.

책을 사서 읽다가 중간쯤 덮게 되는 이유입니다.

 

2.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시간(역사) 속에서 일하십니다.

창세기 1장에 6일이라는 시간 단위가 나오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고 했습니다.

 

영원이라는 시간, 순간이라는 시간

세상의 시간, 개인의 시간

지나가는 시간 크로노스, 포착해서 즐기는 카이로스 등등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 안에서 산다는 것은

주어진 시간을 하나님과 더불어 산다는 뜻입니다.

시간을 구별하는 것도  거룩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시간을 경험할 수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 나라이고 영원일 것입니다.

이다음 하나님 나라에서 경험할 것을

지금 누리는 최고로 행복한 순간입니다.

 

3.

이것도 알고 있지만,

막상 현실에 적용하고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늘 바쁜 일로 쫓기며 살기 때문입니다.

 

시간에 쫓기다 보면

정녕 누려야 할 영원한 시간을 소홀히 합니다.

주일 예배에 와서도 다른 생각을 하거나,

간신히 기도하고 말씀 읽는 시간을 만들었지만,

여유가 없고 조바심이 나서 서둘러 마무리합니다.

 

기도하고 성경만 읽으려고 하면

해야 할 일들이 눈앞에 스쳐서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영적 전쟁이라는 말이 맞습니다.

 

4.

시간을 떼어놓아야 합니다.

하루에 10분, 30분, 한 시간 이런 식으로 떼어놓기보다는

아침 7:00- 7:30, 저녁 10:00-11:00와 같은 식으로 시계 속의 시간을 떼어 놓고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시간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말씀 읽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루를 시작하거나, 끝날 때

꼭 기도하고 말씀 읽는 습관을 만드는 것도 좋습니다.

 

간혹,

“목사님, 저는 기도하고 말씀 읽는 시간이 습관이 되었는데,

그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죄책감이 듭니다”는 말을 듣습니다.

저는 이런 말을 할 수 있고, 듣는 것 만도 감사하고 기쁩니다.

기도하고 말씀 읽는 것이 습관이 된 분의 고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 이런 고백 또는 고민을 많이 듣고 싶습니다.

 

위에 소개한 <아주 작은 습관>에서 강조하듯이

작은 것이 습관이 되면 신앙의 내공이 저절로 키워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의 달인(達人, master)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하고 말씀 읽는 시간,

하나님 안에서 사는 행복을 절대 놓치지 맙시다.

 

우리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송축하리로다

할렐루야 (시편115:18)

 

하나님

우리의 시간에 주인이 되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7. 27 이-메일 목회 서신)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11)

야곱이 고향을 떠나서 외삼촌이 있는 하란으로 오는 길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돌베개를 베고 자고 있는데, 하늘 문이 열리고 사닥다리가 하늘과 땅으로 이어진 꿈을 꾼 것입니다. 벧엘의 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후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지고, 야곱이 어디로 가든지 함께 하시고, 결국에는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창28:13-15)

 

야곱이 외삼촌 집에서 20여 년을 지내는 동안 벧엘에서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에 품고 버티며 살아남았을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열한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을 주셨습니다. 라헬과 레아 그리고 그들의 종을 통해서 얻은 자식들이니 야곱의 후손이 동서남북으로 퍼져 나갈 것이라는 하나님 약속이 성취될 기반이 마련된 것입니다.

 

야곱이 외삼촌 집에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하셔서 그가 가는 곳마다 하는 일마다 복이 임했습니다. 외삼촌도 인정할 정도로 야곱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남은 한 가지 하나님의 약속은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 외삼촌을 찾아가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지만, 외삼촌은 허락하지 않아서 6년을 더 외삼촌 집에 있었습니다.

 

야곱의 양 떼가 늘어나면서, 외삼촌의 아들들이 야곱을 시기합니다. 아버지 재산을 가로채서 부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그 이야기를 듣고 힘들어할 때 벧엘에서 만났던 하나님이 야곱을 찾아오셔서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두 사건이 절묘하게 맞았습니다.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작정합니다.

 

야곱이 우선 레아와 라헬, 두 부인을 불러서 사정을 이야기합니다. 20년 동안 외삼촌은 열 번이나 품삯을 속이면서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외삼촌 집에 있으면 분쟁은 심해지고, 빈손으로 쫓겨날 가능성이 큽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알립니다. 알고 보니 레아와 라헬도 아버지에게 쌓인 것이 많습니다. 아버지가 자기들의 지참금을 챙겨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야곱 가족이 가나안을 향해서 길을 떠납니다.

 

야곱이 떠난 것을 뒤늦게 발견한 외삼촌이 형제들과 함께 야곱을 따라잡습니다. 야곱이 자기 가족의 신 드라빔을 훔쳐 갔다는 것입니다. 라헬이 훔쳤는데, 라헬이 아버지를 속이면서 위기를 넘깁니다. 마침내 야곱과 외삼촌 라반이 돌을 쌓고 서로 화해하고 언약을 맺습니다. 깔끔한 작별입니다.

 

창세기 본문은 하나님께서 벧엘의 약속을 모두 지키셨음을 강조합니다. 야곱에게 자녀들은 물론 많은 재산이 생겼습니다. 야곱이 하란에 있는 동안 늘 함께 하셨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야곱에게 하란에서의 20년이 힘겨운 나날이었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깊이 그리고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복된 시간이었습니다. -河-

야곱의 하나님

좋은 아침입니다.

 

1.

주일 예배에서는

창세기 야곱에 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성경의 인물 중에서

야곱만큼 복합적이고 세상적인 인물이 있을까 싶습니다.

 

장자가 되어서 아버지의 복을 차지하겠다는 집요함은

수단과 방법을 무시하고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는

브레이크 없는 전차처럼 보입니다.

 

아무리 어렵게 얻은 부인이라도

라헬만 편애(favoritism)하는 것은

사랑의 숭고함이 아니라 한 여성을 향한 한 인간의 집착으로 느껴집니다.

 

야곱의 두 부인, 라헬과 레아의 시기와 갈등

아기 낳기 경쟁이 야곱 자신의 편애에서 시작했는데

자기는 쏙- 빠지고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는 약삭빠름은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2.

야곱에게는 의외의 면도 있습니다.

 

외삼촌에게 번번이 속지만,

결국에는 얼룩진 양과 염소로 큰 부자가 됩니다.

야곱의 총명함, 지략은

야곱이 외삼촌 머리 위에서 날고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약삭빠르면

생각이나 행동이 가볍고, 충동적이고 의지가 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외삼촌 집에서 20년을 종/노예로 살면서도

자신의 길을 가는 꿋꿋함과 특유의 성실함도 갖췄습니다.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에 품고

20년을 버틴 믿음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야곱에 관한 말씀 후반부로 갈수록

야곱은 조금씩 성숙해 갑니다.

그의 신앙과 생각이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어 갑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조상으로 야곱을 택한 이유일 것입니다.

 

3.

훗날 야곱의 이름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뜻의 이스라엘로 바뀌지요.

그런데도 성경은 곳곳에서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한 발짝 떨어져서 읽으면

앞에서 말한 야곱의 복합적인 성품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렇지만

야곱의 말씀속으로 들어가서

야곱과 우리 자신을 겹쳐서 읽으면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용어에서 친근함을 느낍니다.

 

얄미워서 멀리하고 싶지만, 가까이할 수밖에 없는

‘야곱’이라는 한 인간을 마냥 비난할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영락없는 야곱의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 대신 우리 이름을 슬며시 넣어서 읽어도 상관없게 됩니다.

 

그래서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참 좋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146:5)

 

 

하나님

우리에게도 야곱의 하나님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3. 7. 20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