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다움

좋은 아침입니다.

 

1.

9월 초 미국의 퓨 리서치에서

흥미로운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2020년 현재

미국의 기독교 인구는 전체의 64%인데

앞으로 점점 줄어서

50년 후에는 절반 이하로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2007년 통계만 해도

미국의 기독교 인구는 70% 이상이었습니다.

10년 만에 10%가 줄었습니다.

동시에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무종교 비율이

15%에서 30%로 늘었습니다.

 

기독교 인구가 높은 비율을 차지한 것도

50대 이상에 기독교인이 많아서 그렇지

30대 이하의 젊은 층으로 내려가면 기독교 인구가 급격히 떨어집니다.

 

흥미로운 것은

젊은 층 기독교인들 대부분이

크리스천 가정 출신이라는 사실입니다.

아침에 나누는 말씀 묵상에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전수된 것이 떠오릅니다.

 

2.

올해 한국의 각 교단이 집계한 통계에서

교인 숫자가 수십만까지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으니

미국의 추세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기독교인의 숫자가 감소할까요?

 

기독교뿐만 아니라

종교에 대한 무관심이 요즘 세대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종교가 아닌 물질로 대표되는 세속주의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 자체가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데 당장 도움이 되지 않으니

문명의 이기나 새로운 기술을 쫓아갑니다.

가치보다 실용이 우선입니다.

 

시대 상황 외에도

기독교를 대표하는 교회가 매력을 잃었습니다.

교회는 배타적인 집단,

사랑을 외치는 그리스도인은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로 여겨집니다.

 

3.

그렇다고 여기서 멈춰 있을 수는 없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주신 사랑의 예수님,

지금도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시절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고 처음 불렸듯이

지금 이 시대에 “다시 그리스도인”으로 불리는

그리스도인다움을 회복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 독특함을 다시 생각하고

그것을 밀도 있게 간직하고 믿는 것입니다.

3% 정도의 소금기(염도)가 바닷물을 짜게 하듯이

반듯하고 품격 있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면서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가치 있고, 행복하며, 생명의 길임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많이 묵상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장착하고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걷는 <예수 닮기>를 실천해야겠습니다.

 

그리스도인 다운 참빛 식구들의 모습을 눈에 그립니다.

참빛 식구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세상에 빛으로 임하시길 기대합니다.

 

우리 함께 “그리스도인다움”의 덕목을 회복합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2:5)

 

 

하나님,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9. 29이-메일 목회 서신)

두려워하지 말라 (4)

여호수아 (2)

 

모세를 이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감이었습니다. 그는 두려웠고 적지 않게 당황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광야 40년과 전혀 다른 리더쉽이 요청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찾아오셔서 “강하고 담대하라”고 세 번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를 떠나거나 버리지 않으시고, 항상 함께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광야 40년 동안 모세와 함께하신 하나님을 옆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지금부터는 모세의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5절). 여호수아에게 큰 힘과 용기를 주는 말씀이고 약속입니다.

 

여호수아가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시는데, 전쟁에 나가는 장수에게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 성전과 가정에서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는 학생에게 주시는 말씀 같습니다:“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1:8). 여기서 “율법책”은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7절) 입니다. 우리 성경으로 하면 토라로 불리는 모세 오경입니다. 말씀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해야 합니다.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록된 말씀을 지키고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모세를 이어서 이스라엘을 인도할 여호수아에게 요청되는 최고의 덕목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이 곧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러니 여호수아가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백성을 인도하고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가까이하고 익혀야 하는지 자세히 알려주십니다. 우선, 율법책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해야 합니다. 눈과 입으로 읽는 것입니다. 둘째로, 말씀을 묵상(meditation)해야 합니다. 묵상은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눈이 아니라 가슴으로 읽는 것입니다. 눈과 입으로 보고 읽은 말씀을 마음과 삶에 채우는 과정입니다. 보고 읽는 것을 통해서 말씀이 머리에 머문다면, 묵상을 통해서 말씀이 마음으로 내려옵니다.

 

마지막으로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머리와 마음 그리고 손과 발로 말씀이 자라고 연결되는 과정이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방식입니다. 말씀으로 삶의 중심을 세웠을 때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는  지혜를 갖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말씀은 우리 안에 자리잡은 불안과 두려움을 다스리고, 강하고 담대하게 세상을 마주할 힘과 용기를 줄 것입니다. -河-

다양한 시각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 엘리자베스 여왕의 장례 행렬이 지날 때
길가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너도나도 셀폰을 꺼내서
사진찍는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아빠의 어깨에 올라가서,
양손으로 셀폰을 받치면서 사진찍는 모습이
마지막 가는 엘리자베스 여왕을 향해서
경배를 표하는 모습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성경을 누구나 갖고 읽을 수 있습니다.
요즘은 셀폰에 성경 앱을 다운로드 받아서
손쉽게 성경을 읽습니다.

 

예배 시간에는 성경책 대신에
양손에 셀폰을 들고 찬송하고 성경을 읽는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성경이 대중의 손에 들어온 것은
15세기 종교개혁 이후입니다.
그전까지 성경은
가톨릭 사제들만 소장했고 읽고 설교했습니다.

 

인쇄술이 발달하고
마틴 루터와 종교 개혁자들이 성경을
독일어를 비롯한 자국어로 번역하면서
개신교인들이 성경을 직접 읽게 된 것입니다.

 

2.
성경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다가옵니다.

 

같은 말씀도
읽는 독자들과 처한 상황에 따라서
각기 다른 의미로 찾아옵니다.

 

어릴 적에 읽을 때와
어른이 되어서 읽을 때 그 의미가 다릅니다.
힘들 때 읽을 때와 편안할 때 읽는 성경이 다릅니다.

 

이처럼 성경은
우리 안에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세상 속에서
그리고 우리 삶의 여러 맥락 속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3.
수많은 사람의 셀폰에 담긴
엘리자베스 여왕의 마지막 가는 모습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전체적인 장례 행렬을 담았는지,
70년 이상 여왕이 갖고 있던 통치의 상징 홀(scepter)
또는 왕관만 찍었을 지,
각자가 위치한 자리와 관심사에 따라서 다를 것입니다.

 

우리는 다양함이 우선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유니폼을 입고 하나 됨을 과시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주요 신문이 전하는 몇 가지 사진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시대도 지났습니다.

 

성경을 보는 시각도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신앙도 다양합니다.
팬데믹 이후의 교회는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참빛교회도 다양한 지체들이 모여 있습니다.
가능하면 다양한 참빛 식구들의 재능과 은사,
삶과 성품을 드러내고 그것이 발휘되길 돕고 싶습니다.

 

다양함이 모여서
모자이크처럼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조화를 이루는
멋진 하나님의 공동체를 세워갑시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17:26)

 

하나님,
삼위 하나님의 다양함과 하나 됨이
우리 안에도 그대로 임하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9. 22이-메일 목회 서신)

두려워하지 말라 (3)

여호수아 (1)

 

하나님의 약속만 믿고 가나안 땅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그의 믿음을 실천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자손과 땅을 약속하시고, 모든 것을 책임 지시겠다는 일방적인 계약을 맺으십니다. 불안과 두려움을 갖고 사는 아브라함의 나그네 삶을 공감하고 돌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가나안 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 전에 400년 동안 이집트에서 종살이하게 될 것을 예고하셨는데 하나님 말씀이 그대로 이뤄졌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으로 시작되는 창세기 족장의 역사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갖게 된 근거, 요셉을 통해서 이집트에 내려가게 된 경위를 설명해 주는 과거로의 역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400년동안 종으로 살았습니다. 마지막에는 바로의 학정으로 신음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괴로움과 탄식을 보시고 모세를 부르셔서 이집트에서 구원하셨습니다. 바로에게 내린 마지막 열 번째 재앙으로 죽음의 사자가 이집트 모든 집에 밀어닥쳐서 장자는 물론 동물의 맏배까지 죽였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은 죽음의 사자가 건너뛰었습니다(pass-over). 유월절의 시작입니다.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40년 광야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집트에서 가나안까지 직선거리로 10여 일이면 도착할 수 있었는데 40년을 광야에서 지낸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꾸 이집트 생활을 그리워했습니다. 불평했습니다.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먹이고 입히시는 보호자요 구원자 되심을 훈련하셨습니다.

 

모세의 사명은 백성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나와서 광야 40년을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의 새로운 역사는 그의 후계자 여호수아를 통해서 이뤄질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열두 지파의 대표로 가나안 땅이 내다보이는 가데스바네아에서 약속의 땅을 탐지하고 돌아온 인물입니다. 열 명의 대표단이 땅을 정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증언했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약속의 땅을 가질 수 있다고 확언했습니다. 결국 그 시대 사람들 가운데 갈렙과 함께 약속의 땅을 밟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을 이끌 여호수아에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이 세 번 나옵니다(6,7,9절). 모세라는 강력한 지도자를 계승해야 합니다. 광야 생활과 차원이 다른 가나안 정복입니다. 모든 것을 앞두고 불안하고 두려웠을 여호수아에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에 힘이 있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앞둔 주의 백성들에게 이보다 더 강력한 말씀이 없습니다.-河-

 

인생길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9월 8일,
영국 국왕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96세로
서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영국 국왕은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를 비롯한
영연방 16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자리입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아버지 조지 6세에 이어서
1952년에 국왕이 되었기에 올해로 70주년을 맞았습니다.
영국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자리를 지킨 국왕입니다.

 

왕위 계승자로 정해진 후에도
2차 세계 대전에 자원입대했었습니다.
보급부대의 운전을 담당했는데, 다른 군인들과 똑같이 생활하였답니다.

 

전쟁이 끝나고 윈스턴 처칠 수상 시절에 정식으로
국왕의 자리에 오른 엘리자베스 여왕은
전후 영국의 회복과 재기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인물의 평가에는 호불호가 있지만,
1999년에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등
영연방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인정한 상징적 인물입니다.

 

2.
13세에 만나서 첫눈에 반했던
필립 공과 스물세 살에 결혼했습니다.
네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자녀들의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아서
영국 황실에 오점을 남겼다는 대중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유치원 선생을 하던 다이애나와 결혼한 찰스 황태자가
다이애나 왕비와 이혼하고, 다이애나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죽으면서
영국 황실의 명예가 흔들렸습니다.

 

영국의 국왕 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엘리자베스 여왕은
흔들림없이 국왕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작년에 평생 동지였던 남편 필립 공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몸과 마음이 약해졌답니다.
올 초에는 코로나에 감염되기도 했습니다.

 

서거하기 하루 전까지
영국 총리의 예방을 받으면서
임무에 충실할 만큼 성실한 인물이었습니다.

 

3.
영연방의 군주는
어느덧 73세가 된 찰스 황태자가 물려받았습니다.
멀지 않아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나 사이에서 태어난
윌리엄 왕자(40세)가 영국 왕이 되겠지요.
그렇게 한 세대가 지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됩니다.

 

저의 소년 시절, 청년시절,
장년 그리고 60대에 접어든 지금도
영국 여왕은 언제나 엘리자베스였습니다.
신기할 정도여서 정말 그분이 맞는지 검색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도 모든 인간이 가는 길을 가셨습니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전도서 기자의 말이 생각납니다.
세상만사가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거기서 거기요,
모든 사람은 각자의 종말을 맞이합니다.

 

한 번뿐인 인생입니다.
되감기를 하거나, 지워버리고 다시 시작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 오늘 하루 곰곰이 생각하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을 뜻깊고 세밀하게
신앙 가운데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야겠습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에 다 때가 있나니 (전도서 3:1)

 

하나님,
순간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참빛 식구들의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9. 15 이-메일 목회 서신)

두려워하지 말라 (2)

아브라함

 

두려움은 안팎에서 밀려옵니다. 무엇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한 염려와 근심 그리고 불안의 끝에 두려움이 있습니다. 적당한 두려움은 미래를 대비하게 하고, 현재를 성실하게 살도록 돕습니다. 건강한 두려움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두려움은 몸과 마음을 괴롭힙니다. 그러니 기독교인이라면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두려움을 지혜롭게 관리하고 다스려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창세기 15장은 아브라함에 대한 말씀에서 매우 중요한 본문입니다. 갈데아 우르에 살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하란을 거쳐서 하나님께서 지시한 땅인 가나안에 도착했습니다. 가뭄을 피해서 이집트로 피난 간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이면서 자기만 살아남을 궁리를 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간섭으로 도리어 많은 재산을 갖고 처음 도착했던 가나안 땅으로 돌아옵니다.

 

조카 롯과 갈등이 생겼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에게 모든 것을 양보하고 자기는 가나안에 남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그가 있는 곳을 사방으로 걸어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장차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땅을 주실 것을 암시하신 것입니다. 개인 군대 318명을 둘 정도로 번창한 아브라함이 포로로 잡혀간 조카 롯을 구해냈습니다. 오는 길에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통하는 멜기세덱을 만나서 축복을 받고 십일조를 바치면서 감사했습니다.

 

이처럼 가나안 땅에서의 나그네 삶이 쉽지 않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나름의 성실함으로 살아남았고 부(富)까지 축적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삶에도 두려움이 늘 깃들어 있었습니다.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아브라함 부부의 불임으로 성취될 수 없다는 불안함도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후손과 땅에 대해서 약속하시고 언약을 맺으시는 장면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집에 있는 다메섹 출신의 종 엘리에젤이 자기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몸에서 태어날 아들을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게 여기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할 것도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의 삶이 그랬듯이 후손들의 여정도 쉽지 않겠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히 성취될 것입니다. 그 증표로 아브라함이 준비한 제물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깊은 잠에 빠진 아브라함 대신, 하나님께서 혼자서 행하신 특별한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찾아오시고, 말씀하시고, 언약을 맺으시면서 그의 두려움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미래에 관한 두려움을 소망으로 바꿔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