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조사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수요일에 마무리한
구약 성경 사무엘하 마지막 말씀(24장)은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사무엘하에서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마음을 일으켜서 인구조사를 했다고 말하고
같은 사건을 기록한 역대상 21장에서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이 다윗에게 시켰다고 했습니다.
사탄이 시킨 것으로 읽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서 예수님을 팔았듯이,
다윗 역시 사탄에 무너진 것입니다.

 

다윗은 인구조사를 통해서
자기 세력을 과시하고 싶었습니다.
숫자로 계산해 보고 싶었습니다.

 

인구 조사를 하는데 9개월 20일이 걸렸으니
다윗 왕국이 엄청나게 강해졌습니다.
당장 전쟁에 동원할 수 있는 용맹한 자가80만이었고,
그 가운데 50만은 다윗이 속한 유다 지파 병력이었습니다.

 

베들레헴 목동 다윗이
수많은 병력과 백성을 다스리는 이스라엘 왕이 되었으니
스스로 얼마나 자랑스럽고 뿌듯했을까요!

 

2.
그러나 기쁨도 잠시,
인구 조사를 끝낸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잘못을 크게 뉘우칩니다: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종의 죄를 용서해 주소서 (삼하24:10)

 

다윗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자신의 공로로 바꾸고 말았습니다.
숫자로 정리해서 온 세상에 자기 이름을 높이고 싶었습니다.
다윗은 곧바로 회개합니다. 큰 죄라고 고백합니다.

 

이 일로 인해서 이스라엘에 사흘 전염병이 임하고 무려 칠만 명이 죽었습니다.
다윗은 자기 잘못으로 백성들에게 화가 임한 것을 두고
차라리 자기와 자기 가족이 벌을 받았어야 한다고 한탄합니다.

 

안타까운 사건이 사무엘하 맨 뒤에 위치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다윗이 아라우나라는 사람의 타작마당을 제 값(은 50세겔)에 사서
그곳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니 역병이 그칩니다.
다윗이 돈을 주고 산 타작마당이 훗날 솔로몬이 지은 성전터가 됩니다.
이곳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바친 모리아 산에 속한 지역이었습니다.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다윗의 인구조사는 나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3.
다윗뿐이 아닙니다.
우리도 숫자의 유혹에 걸려 넘어갈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주의 백성으로
다윗이 범한 인구 조사의 실수와 잘못을 늘 마음 한쪽에 두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역시 숫자를 갖고 자랑하고, 숫자에 얽매이고
때로는 숫자로 인해서 기가 죽을 수 있습니다.

 

숫자로 표현되는 디지털 세상이고
모든 것을 데이터가 말해주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니
숫자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습니다.

 

대신, 숫자에서
자랑, 교만, 얽매임, 열등의식, 집착 등과 같은 불순한 요소를 제거하고
숫자는 숫자로 대할 수 있는 대범함이 필요하겠습니다.

 

우리는 숫자를 넘어서 더 중요한 가치인
믿음, 은혜, 소망, 사랑, 생명을 붙잡고 사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시편 37편 24절)

 

하나님,
오늘도 숫자가 판치는 세상을 살아가는 참빛 식구들을
주님의 손으로 꼭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3.17 이-메일 목회 서신)

사도행전 (4)

이고니온에서

 

지중해 섬 구브로에 이어서 소아시아 내륙지방 비시디아 안디옥에 도착한 바나바와 바울은 유대인 회당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곳에 사는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라서 복음을 받아드렸습니다. 그것을 본 유대교 지도자들이 현지 귀부인들과 유력자들을 동원해서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했습니다. 그래도 바울과 바나바는 물론 복음을 받아들인 모든 사람에게 성령과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리고 100여 마일 떨어진 이고니온을 향해서 떠납니다. 이고니온은 갈라디아 지방 남부 무역과 상업의 요충지였습니다. 현재 터키에서 일곱 번째로 큰 도시인 코니아(Konya)가 위치한 곳입니다. 바울은 자기 고향이 있는 길리기아 지방 다소에 가까운 도시를 정해서 선교 여행 일정을 잡은 것 같습니다.

 

이고니온에 도착한 바울과 바나바는 그곳에 있는 유대인 회당을 방문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의 말씀을 들은 유대인과 헬라인들 상당수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허다한 무리”라고 했으니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어서 정말 많은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에 바울과 바나바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자신들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임을 실감했을 것입니다.

 

이번에도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뜻합니다. 믿음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을 믿을 때 가능하니 믿음과 순종은 서로 짝입니다. 가장 잘 믿고 순종해야 할 유대인들이 거부하는 것을 보니 안타깝습니다. 이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해서 바울과 바나바에게 나쁜 감정을 품게 합니다. 빛이 있는 곳에는 어둠의 세력이 존재합니다. 복음을 훼방하는 악한 세력이 어디나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영적 전쟁입니다.

 

바울과 바나바 역시 이런 어려움을 예상했을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견딜 수 있을 만큼 끝까지 견디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믿음은 인내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바울과 바나바의 손에서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을 사도들도 행한 것입니다. 말씀과 표적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바울과 바나바가 전하는 복음이 강력해졌습니다.

 

나중에는 도시가 둘로 갈라지더니 유대인들이 동원한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모욕하고 돌로 쳐서 죽이려 합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몸을 피하지만, 이고니온에 임한 복음의 능력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할렐루야! -河-

2022 사순절

좋은 아침입니다.

 

1.

2022년 사순절을 맞고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 세 번째 맞는 사순절입니다.

 

사순절은 기독교의 오랜 전통으로

초기에는 부활절에 세례받을 교인들이

금식하고 세례 문답을 준비하는 기간이었다가

주후 4세기경에 기독교의 연례 절기가 되었습니다.

 

사순절은 재의 수요일로 시작해서

부활절 전 주간까지 40일을 가리킵니다.

40이라는 숫자는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40일을 금식하신 것부터, 모세의 시내산 금식까지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거룩한 기간입니다.

 

교회사 속의 사순절 전통에서

금식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금식을 통해서 우리 안에 기본적으로 내재된 본능을 제어하고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깊은 기도의 시간을 갖습니다.

 

단지 금식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금식하면서 절약한 양식이나 물질을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사용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알려주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도 묵상했을 것입니다:

 

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 주린 자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빛이 새벽같이 비칠 것이며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공의가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뒤에 호위하리니

9 네가 부를 때에는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사58:6-9)

 

2.

2022년 사순절을 맞이하는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사순절을 의미 있게 보내길 바랍니다.

한두 가지라도 구체적인 실천 사항을 정하면 좋겠습니다:

말씀읽기, 기도하기, 삶 속에서 경건의 연습하기,

이웃 돕기,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 등등

 

새해 결심과 마찬가지로

사순절 결심도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고 죄책감에 쌓이거나

그것을 두고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너무 바빠서 그냥 넘어가도

하나님은 우리의 사정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과도한 의무감에 휩싸일 필요는 절대 없습니다.

 

기준(목표)을 정하고, 운동선수들이 꾸준히 연습하듯이

각자의 사순절 결심을 훈련하고

가능한 대로 지켜나가면 됩니다.

 

사순절이 끝나고 부활절을 맞을 때,

누가 알아주지 않고, 아무에게 보이지 않았어도

스스로 뿌듯한 마음이 든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3.

40일은 일 년 365일의 10분의 1에 가깝습니다.

교회력을 따라 살면서,

일 년 가운데 40일을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살 수 있다는 것이

기쁨이고 감사입니다.

 

이미 사순절이 일주일 정도 지나갔지만,

지키고 싶고, 지킬 수 있는 사순절 결심을 생각하고

하나님과 단둘이 또는 부부와 가족 안에서 지켜나가는

기쁨과 보람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부활절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참빛 식구들을 응원합니다.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사58:9)

 

하나님,
사순절을 보내는 참빛 식구들과 함께 하시고
깊은 은혜를 더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3.10 이-메일 목회 서신)

 

사도행전 (3)

비시디아 안디옥

 

안디옥 교회가 하나님 말씀대로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에 꼭 필요한 인물인데 하나님께서 파송하라고 말씀하시니 두말없이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성숙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인간적인 정보다 하나님 말씀을 우선했습니다. 그만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었다는 증거입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전도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안디옥에서 배를 타고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에 도착했습니다. 바나바의 조카인 마가 요한도 함께 했습니다. 구브로의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 복음을 전하니 마술사 엘루마의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총독이 깜짝 놀라면서 주의 말씀을 받습니다.

 

바울 일행이 구브로를 떠나서 소아시아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렀습니다. 내륙 선교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때 무슨 이유인지 마가 요한이 예루살렘으로 떠나고 바울과 바나바만 비시디아 지방 안디옥에 도착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한 시리아의 안디옥과 이름이 같습니다. 알렉산더 대왕 이후 세워진 헬라 제국에서 안티오커스라는 황제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이름을 따서 세워진 도시들일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소아시아 지역에 속한 갈라디아 지방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훗날 바울은 갈라디아 지방에 세워진 교회들에 편지를 보내는데 그것이 갈라디아서입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은 해발 3600피트에 위치했고 로마 제국의 군사 요충지였습니다. 이곳에도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유대인의 회당을 찾았습니다. 회당의 지도자가 관례대로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고 있었는데, 새로 동참한 바울과 바나바에 말씀을 전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이심을 모세의 출애굽, 광야 40년, 가나안 정착과 사사 시대, 사울과 다윗 시대까지 이스라엘 역사를 두루 살피면서 자세히 알려주었습니다. <케리그마>라고 불리는 복음의 진수를 회당에 모인 유대인들과 이방인 유대교 신자들에게 전하니 그들이 예수를 믿는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일주일 후에는 온 시민이 말씀을 들으러 올 정도였습니다.

 

그러자 회당을 지키고 있던 유대인들이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이들은 유대인이라는 특권 의식에 사로잡혀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회당의 귀부인들과 유지들을 동원해서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하고 쫓아냅니다. 그래도 제자들은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것에 기뻐할 뿐입니다. 복음 자체에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河-

 

어떤 인생

좋은 아침입니다.

 

1.
우크라이나에서 들려오는 안타까운 소식으로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하기가 망설여집니다.
전쟁터로 변한 우크라이나에
하루 속회 좋은 아침이 찾아오길 간절히 기도할 뿐입니다.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이번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입니다.

 

올해 70세인 푸틴은
2000년에 러시아 제2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래
헌법까지 바꾸면서 22년 동안 총리와 대통령 자리를 오가며 장기 집권하고 있습니다.
2018년에 다시 법을 바꾸어서 임기를 2036년까지 연장했으니
평생 대통령직을 수행할 가능성이 큽니다.

 

전쟁에서 장애인이 된 아버지와 기독교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푸틴의 어린 시절은 유복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자기에게 장애를 일으킨 독일 병사들을 미워하지 않고
모든 것이 전쟁의 비극이라고 이야기했을 때,
푸틴은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체구가 크지 않았던 푸틴은 유도를 배워서 자신을 방어하고,
대학을 졸업하면서 KGB 요원에 자원했고
정치에 입문해서 2000년 옐친에 이어서 러시아 최고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과거 소련으로 불리던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것에 불만을 느꼈답니다.

 

2.
초기에는 서방 세계와 비교적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러시아 경제 회복에 힘을 쏟았기에
러시아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전쟁광, 독재자, 미친 사람(mad-man)으로 변합니다.
구소련에서 독립한 체첸, 우크라이나 등을 침공하고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반도를 점령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과 갈등을 빚습니다.

 

2018년 네 번째 대통령 임기를 시작하면서
“강한 러시아”를 외친 그의 속셈을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3.
푸틴은 정기적으로 러시아 정교회 성당에 출석한답니다.
북한의 김정일에게 정교회 성화상을 선물하면서
북한에 러시아 정교회 성당이 세워지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벌이는 전쟁이나, 개인적인 탈선, 부정부패를 생각할 때
푸틴에게 기독교인이라는 명칭을 달아 줄 수 없습니다.

 

어머니로부터 전해지는 예수님의 사랑이 그에게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얼른 전쟁을 그치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분들께 고개 숙여 사과하고
더 이상 세상의 평화를 깨는 일을 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4.
우리는 지난 두 주간, 시리아의 안디옥 교회를 공부하면서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선한 마음을 가진 바나바와 그리스도인이라는 별칭에 걸맞은
지도자들과 성도들로 인해서 교회가 굳게 서는 것을 보았습니다.

 

헤롯의 젖동생(친한 친구) 마나엔은 헤롯 왕궁에서 자랐지만,
예수님을 믿고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반면, 헤롯은 세례 요한을 죽이는 탐욕스러운 지도자가 되었으니
같은 성장 배경을 갖고 있어도 그 끝이 전혀 다른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의 생명을 마음과 삶 한가운데 가졌는지 여부가
인생의 진로와 결과를 결정한 것입니다.

 

5.
다시금 지도자의 품격과 자질을 생각합니다.

 

조국 대한민국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번처럼 후보들의 비호감도가 높은 선거도 없었다지만
경제는 물론 정치와 외교 등 매우 중요한 시기에
대한민국을 옳게 세울 대통령이 선출되길 기도할 뿐입니다.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시편 147:3)

 

하나님,
전쟁과 탐욕,
지도자들의 부정부패로 인해서 망가진
이 땅을 고쳐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3.3 이-메일 목회 서신)

사도행전 (2)

안디옥 교회 (2): 새로운 교인

 

사도행전 말씀을 나누면서 우리 교회에도 초대 교회를 세우는 데 큰 힘이 되었던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기대합니다. 초대 교회는 함께 모여서 떡을 떼며 친교했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러니 믿는 자의 숫자가 날마다 늘어났습니다. 예배와 전도, 친교와 가르침과 배움, 거기에 기도까지 부족함이 없었던 충만한 공동체였습니다. 그 모든 사역에 성령께서 함께하시니 세상이 깜짝 놀랄 수밖에 없는 기독교 공동체가 세워졌습니다.

 

예루살렘에 핍박과 박해가 찾아오면서 그리스도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핍박과 박해는 복음이 온 세상으로 전해지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소아시아의 수도이며 로마 제국의 3대 도시인 안디옥에도 기독교인들이 도착했습니다. 대부분은 안디옥에 사는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는데, 아프리카 구레네와 지중해의 섬 구브로에서 온 몇 사람이 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안디옥에 헬라인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유대인 입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안디옥에 파송한 바나바와 바울이 1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치니 교회가 튼튼하게 세워졌고,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는 호칭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흥미롭고 멋진 안디옥 교회를 세운 지도자들을 소개합니다.

 

안디옥 교회에는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선지자는 앞 일을 미리 예언하는 사람이기보다 교인들의 삶에 관해서 권면하고 지도하는 사람들, 교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선생들을 가리킬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를 이끈 대표적인 교사입니다.

 

바나바와 사울 외에 세 명의 특별한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니게르라고 하는 시므온입니다. 니게르는 라틴어로 “검다”는 뜻이니 시므온은 아프리카 출신으로 검은색 피부를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구레네 사람 루기오 역시 아프리카 구레네 출신이기에 검은 피부의 지도자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은 세례요한을 죽인 헤롯 안티파스의 이복동생입니다. 헤롯 가문의 후손이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이처럼 안디옥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다민족 교회였습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할 수 없는 일을 구브로와 구레네 출신 몇 사람이 시도했고, 바나바와 사울이 도우니 기존의 생각을 뛰어넘는 새로운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입니다. -河-

 

폴 파머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월요일(21일)
21세기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는 의사이자 인류학자였던 폴 파머(Paul Farmer) 교수가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보도가 미국은 물론 한국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폴 파머는
아이티에서 시작해서 페루와 아프리카까지
지구상의 가난한 사람들의 폐결핵, HIV/AIDS,
바이러스 치료를 위해서 평생을 바치신 분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공평한 의료 혜택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Partners in Health라는 비영리단체를 설립해서
하버드 병원의 의료수준을 아이티와 아프리카 같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똑같이 제공하려는 꿈을 갖고 실제로 실천하신 아주 큰 나무, 거목이십니다.

 

2.
폴 파머는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를 따라서 플로리다에서 자랐습니다.
여섯 형제 가운데 둘째였지만, 가난한 가정 형편 때문에
버스에서 온 가족이 생활해야 했습니다.

 

1982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아이티로 가서 현지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폴 파머의 가슴에 아이티의 가난한 사람들이 사무치게 파고들었습니다.

 

예수님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불공평한 세상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해방신학을 접하게 됩니다.
현지 신부님을 통해서 행동이 있는 신앙의 중요함을 배운 것입니다.

 

하버드 의대에 진학했는데,
수업이 끝나는 금요일에 아이티로 날아가서 주일 저녁에 돌아오곤 했습니다.

 

3.
폴 파머는 하버드 대학에서 그의 평생 동지를 만납니다.
다트머스 총장과 세계은행 총재를 역임했던 한국인 2세 김용 교수입니다.
이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비영리 단체가 Partners in Health입니다.
현재는 저개발국의 의료와 보건을 지원하는 매우 큰 단체로 성장했습니다.

 

폴 파머는 에볼라 바이러스의 퇴치와 최근의 코로나바이러스까지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 빌게이트 재단과 협업하는 등
국제 보건의 아버지답게 전염병과도 싸웠습니다.

 

인류학을 전공한 사회학자인 그는
국제 보건과 가난한 국가의 의료 개선에 평생을 바침과 동시에
세계의 불평등 해소를 위해서 애쓴 위대한 스승이었습니다.

 

4.
세상에는 예수님 말씀대로
빛과 소금의 삶을 사시는 훌륭한 분들이 계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작은 예수로 살아가시는 분입니다.

 

이런 분들로 인해서
어두운 세상에 빛이 비치고
하나님의 사랑이 눈에 보일 정도로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전파됩니다.

 

평생을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을 지원했던
폴 파머의 정신과 삶은 그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이곳 저곳에서 크고 작은 빛으로 온 세상을 밝힐 것입니다.

 

5.
폴 파머의 삶과 사역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의 활짝 웃는 모습, 모든 사람을 살리지 못해서 근심하는 얼굴,
공평한 세상을 만들려고 애쓰는 그의 삶을 보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는
지난 화요일 큐티 본문이 생각났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한 신앙의 선배가 계셨고
폴 파머만큼 유명하지도, 큰 업적을 펼치지 못해도
지금도 어디선가 참된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분들이 계실 테니
희망이 생겼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닮는 주의 제자로 살기 원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하나님,
있는 자리에서 예수님의 작은 빛으로 사시는
참빛 식구들과 함께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2. 24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