겟세마네 기도 3

십자가의 길을 가기 전, 예수님께서 드리신 기도는 우리의 심금을 울릴 만큼 솔직하면서 또한 온전한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습관대로 감람산에 오르셨습니다. 피곤에 지친 제자들은 예수님의 속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잠을 잤지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앞에 놓으시고 하나님 앞에서 고뇌와 확신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습관대로 감람산에 가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들도 기도의 자리로 나가는 것이 습관이 되길 원했습니다.“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는 예수님의 기도처럼 우리들도 솔직하게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길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십자가의 길을 기꺼이 가시겠다는 순종이자 결단의 기도였습니다.

2013년 기도에 대한 말씀을 마무리하는 오늘은 예수님의 기도하시는 모습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습관을 좇아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돌을 던질 정도의 거리에 가셔서 따로 기도하십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단둘이 만나는 시간입니다.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대화하듯이 기도할 수 있지만, 때때로 하나님과 단둘이 교제하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단독으로 설 때 우리는 솔직해 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물론 세상일에서 조금 떨어져서 기도할 때 임하는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단둘이 만나서 교제하고 간절히 기도할 수 있는 자신만의 기도처를 갖는 것도 신앙생활에 커다란 도움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할 때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예수님의 기도를 도왔다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천사의 수종을 받으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힘을 도왔다는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어느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힘을 모두 소진하시면서 기도하셨기에 천사가 내려와서 예수님께 힘을 더해 준 것입니다. 기도에는 간절함이 서려있어야 합니다. 대충하는 기도 또는 입술의 기도만으로 부족합니다. 천사가 내려와서 도울 정도의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께서 어찌 응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다는 헬라어 표현은 고뇌와 진실함이 섞인 기도를 가리킵니다. 힘써서 기도하심은 십자가를 앞둔 예수님의 고뇌(agony)를 잘 표현합니다. 온 인류의 죄를 한 몸에 지시고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많이 힘드셨을 것입니다. 애써서 기도하심은 간절히 그리고 진실 되게 기도하시는 모습입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기도하셨고 간절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셨을 것입니다. 땀방울이 핏방울이 될 정도의 기도라는 말씀이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가장 잘 표현해 줍니다.

우리의 기도생활을 돌아봅니다. 우리는 지난 한달 동안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살펴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고 결심했습니다. 진정한 기도가 무엇인지 즉 기도의 정수를 배웠습니다. 하나님과 깊은 사귐, 솔직한 기도, 하지만 마지막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가 힘이 있음을 배웠습니다. 기도의 방법과 내용이 중요하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서 기도의 자세도 중요함을 배웁니다. 땀방울이 핏방울이 될 정도로 간절한 기도야말로 금향로에 드려지는 성도의 기도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들도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님처럼 기도하길 원합니다.-河-

“예수의 생명”

좋은 아침입니다.

1.
부활절을 지내고
강단을 장식했던 백합을
교회 앞 화단에 옮겨 심었습니다.

하얀 백합꽃이 졌지만
여전히 푸른 줄기를 가진 백합을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서요.

열심히 물을 주면서
백합줄기가 초록색을 유지하길 기대했지만
점점 누렇게 변하는 겁니다.
기운이 빠졌습니다.

그때 권사님들께서 말씀하시기를
백합은 뿌리식물이라서
또 다시 싹이 난다는 것입니다.

시골에서 자랐지만
의외로 농사일에 밝지 않은 저로서는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약 일주일전부터
백합 옆에 파란 새싹이 돋기 시작했습니다.
아기 손처럼 예쁜 새싹입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백합에도
한 세대가 가면
다음 세대가 온다는 것,
줄기는 노랗게 변해갔지만
뿌리에 생명이 깃들어 있어서
새 싹이 돋아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2.
살아있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힘이 있습니다.
생명력입니다.

시든 것 같지만
그 다음 세대를 준비합니다.
죽은 것 같지만
다시 새싹이 돋아납니다.
역시 생명력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10절에서
예수님의 죽음과 더불어 생명도 품고 있다고 간증합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Always carrying in the body the death of Jesus, so that the life of Jesus may also be manifested in our bodies. (2Co 4:10 ESV)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부활로 이어지는 영원한 생명의 길이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살았다고 고백합니다.
예수의 생명을 그의 몸 안에 품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예수의 생명이 우리 안에도 있음을 믿습니다.

생명을 품고 있기에
날마다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예수의 생명을 품고 사는
주님의 자녀로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살아갑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안에 예수의 생명을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생명 되신 예수님이 우리를 통해서
세상에 드러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7.11 이-메일 목회서신)

겟세마네 기도 2

감람원이라고 불리는 겟세마네에서 드린 예수님의 기도 속에는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의 인간적 고뇌가 잘 나타납니다. 죽음 앞에서 두렵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홀로 가야합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셨을 것입니다. 게다가 모든 인류의 죄짐을 지고 가는 십자가의 길이었으니 마음이 얼마나 무거우셨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거기에 멈추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실 때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실 메시야라고 하신 말씀을 이루셔야 합니다. 살아계실 때 자신이 십자가에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지고 가셔야 할 사명입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십니다.:“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은 기도의 서두에서 잔을 치워주시길 간구하셨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기도를 마무리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겠다는 결단의 기도를 드리십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기꺼이 십자가를 지시겠다는 결심입니다.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드리신 기도입니다. 요한일서 5장 14절에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드리는 기도가 응답된다고 했습니다.:“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이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드리는 기도는 강력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대로 드리는 기도가 무엇일까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무엇보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는 것입니다(딤전2:4). 우리들도 자신만의 욕심으로 드리는 기도를 넘어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나오길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뜻은 자신의 백성이 항상 감사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살전 5:16-18). 그동안 말씀드린 대로 기도는 삶의 연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이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기도하길 원하십니다. 셋째로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주님의 백성들이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살전4:3). 하나님은 거룩한 성도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가장 잘 나타난 곳은 성경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근거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대로 기도하기 위해서 성경을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다가 마음 깊이 다가오는 말씀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지적하는 말씀이 될 수 있고, 약속의 말씀일 수도 있고, 결심과 행동을 촉구하는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 깊이 다가오면 그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가르쳐주는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품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솔직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모든 것을 토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드릴 때 비로소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우리의 원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길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때 기도의 응답을 넘어서 참 좋으신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河-

겟세마네 기도 1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에 오르셨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실제로 기도의 사람(man of prayer)이셨습니다.

특히 누가복음은 중요한 순간마다 기도의 자리에 나가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전해줍니다.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후에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3장).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 음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열두 명의 제자를 모두 부르시기 전날 밤에도 새벽까지 기도하셨습니다. 앞으로 예수님을 대신해서 복음을 전할 인물들이었기에 날이 새도록 기도하신 것입니다(6장). 그렇게 하셨는데도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한 것을 보면 영적인 싸움이 얼마나 치열한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루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즉 제자 삼인방을 데리고 산에 오르셔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때 엘리야와 모세가 예수님 옆에서고 예수님의 얼굴과 옷에서 빛과 광채가 나면서 하나님의 모습으로 변화되셨습니다(9장). 기도하실 때 신비한 하늘의 능력이 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기 직전에 제자들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예수님의 기도를 천사까지 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기도의 힘으로 십자가의 고난을 너끈히 이기셨을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도 마지막은 십자가 위에서 드린 기도입니다. 자신을 모욕하고 못을 박고 십자가에 매다는 로마 군병을 위해서 기도하십니다.:“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마지막 운명하실 때도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큰 소리로 드리셨습니다.:“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께 맡기나이다”(눅 23:46).

이처럼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을 기도하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3년의 사역을 시작하실 때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세우는 중요한 순간에 철야로 기도하셨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실 때도 기도하셨고, 잡히시기 전에는 물론 십자가위에서도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하시는 것이 습관이 되실 정도입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기도하셨으니 우리들도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예수님뿐 아니라 성경에는 기도의 인물들이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은 거의 다 기도의 자리로 나왔습니다. 그 가운데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다니엘이 대표적입니다. 다니엘은 서슬 퍼런 바벨론 왕궁에서 살았습니다. 그의 세친구 외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거의 없던 곳입니다. 그때도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바벨론 왕이 아닌 다른 신들에게 예배하면 사자 굴에 넣을 것이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 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단6:10). 하나님의 백성은 기도로 살아가고,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지혜와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인생의 고비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다니엘처럼 습관을 좇아서 기도의 자리로 나가야 합니다. 기도하는 주님의 백성은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꿋꿋하게 견딥니다. 그 신앙과 삶이 하나님께 닿아있기 때문입니다. -河-

공평하신 하나님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산호세에서 열린
목회자 회의를 다녀오는데 길이 많이 막혔습니다.
저의 운전 경력이 꽤 되지만
운전을 잘 하지 못해서 좀처럼 차선을 바꾸지 않습니다.

길이 너무 막혀서
차선변경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제가 차선을 바꿀 때마다
옮겨 탄 차선이 더 막히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제 차선에 서 있어 보았습니다.
상대적으로 옆에 차선이 잘 빠지는 것 같습니다.

옆에 있는 트럭을 기준으로 삼고
차선변경과 차선 준수 가운데
어떤 경우가 빠른지 실험해 보았습니다.

한 20분 갔는데
트럭과 차선을 이리 저리 바꿨던
저와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비슷했습니다.

10여분 늦을 각오를 하고
그냥 제 차선을 지키면서 내려갔습니다.
일단 마음이 편했습니다.

2.
새벽기도회에서
에베소서 1장에 나오는 바울의
삼위일체 찬양을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 찬양을 하면서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막힌 도로 때문에
30여분 실랑이를 한 후에
제 마음에 떠오른 찬양은
뇌성마비로 평생을 살고 있는
송명희 시인의 “공평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같게 하셨네
나 남이 없는 것 같게 하셨네.

하나님 앞에서 불평하다가도
주신 은혜를 세어보면(count)
받은 은혜가 참 많습니다.

내가 없는 것을 바라봐서
그렇지 내가 가진 것을 생각해보면
이미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3.
어느 덧 올 해도 반년이 지나갑니다.
가는 세월 앞에서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마지막 날 돌아보면
인생길이 거의 오십보백보일 것입니다.

인생 70이 훌쩍 넘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의 삶이 비슷해진다는
어르신들의 말씀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공평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감사하고 찬양하기 원합니다.

송명희 시인처럼
주신 것을 갖고 찬양하고 감사하기 원합니다.

우리 모두
감사함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는
오늘 하루가 되길 기도하겠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Rejoice always, pray without ceasing,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for this is the will of God in Christ Jesus for you. (1Th 5:16-18 ESV)

하나님 아버지,
내게 주신 것,
내가 갖고 있는 것을 통해서
공평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6.27 이-메일 목회서신)

엎드림

대부분의 포유동물들은 엎드려서 네 발로 걷는데 우리 인간들은 두 발로 서서 직립보행을 합니다. 다른 동물들처럼 엎드려서 네 발로 기어 다녔다면 인간의 모습은 물론 우리가 사는 세상도 전혀 다르게 펼쳐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두 발로 걷다 보니 두뇌도 발달하고 자유로운 두 손을 사용해서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두 발로 서서 걷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신 셈입니다.

서서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인간은 무릎 꿇고 엎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무릎을 꿇고 엎드립니다. 성경에서는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할 때도 엎드리다는 표현을 씁니다. 지은 죄를 뉘우칠 때도 엎드립니다.여기서 통회자복(痛悔自服)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스스로 엎드려서 가슴을 치며 자신의 죄를 회개한다는 뜻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의 인도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아간이라는 사람이 전쟁에 나갔다가 전리품을 몰래 숨깁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시고 전쟁에서 패(敗)하게 하십니다. 그때 여호수아는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더불어 하루 종일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통회자복합니다. 엘리야 선지자 역시 바알 선지자들과의 갈멜산 대결에서 이긴 후에 가뭄을 그치고 비를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 드리면서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엎드립니다. 간절함의 표시입니다. 하나님께서 손바닥만한 구름을 보내주셔서 비를 예비하시더니 곧이어 큰 비를 내려주십니다. 엎드림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입니다.

신약성경에도 엎드림의 동작이 많이 나옵니다. 그 중에 하나는 베드로의 경우입니다. 예수님께서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헛수고를 한 베드로를 찾아가셔서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잔뼈가 굵은 베드로였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깊은 곳으로 배를 몰고 가서 그물을 던집니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육지로 나온 베드로가 예수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체험하고 두려움 속에 엎드린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십니다. 베드로의 엎드림은 그가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 받은 시작점이었습니다.

엎드림은 성경의 인물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도 엎드려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습니다. 엎드려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인생길에 폭풍우가 불어오면 땅바닥에 엎드리는 것이 상책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두 발로 걷도록 만드셨다지만 인생의 모진 바람을 일어서서 온 몸으로 맞는 것은 어리석다못해 매우 교만한 행동입니다. 엎드려 있으면 폭풍우가 머리위로 지나갑니다. 땅에 얼굴을 묻고 엎드려있으면 자신이 흙으로 빚어진 연약한 존재임을 금새 깨닫습니다. 일어서 있을 때는 자신의 그릇된 모습이 전혀 생각나지 않지만, 무릎 꿇고 엎드리면 저절로 통회자복이 나옵니다. 이처럼 엎드림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고 더욱 더 하나님께로 인도합니다.

저는 인생길이나 목회의 여정에서 어려움이 찾아오면 주님 앞에 엎드립니다. 폭풍우가 다 지나가길 엎드려 기다립니다.엎드려서 제 자신을 샅샅이 살펴보는 내적성찰의 시간을 갖습니다. 쉽지 않은 시간들이지만 엎드려있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어느 순간엔가 폭풍우를 동반한 먹구름이 지나가고 파란 하늘에 맑은 햇살이 비춰옵니다. 그때 일어나서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기쁨의 찬양을 드립니다.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그렇게 엎드려서 어려움을 견뎌왔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손을 붙잡아 일으켜주셨습니다.

아마도 일어서 있었다면 넘어졌을 것입니다. 폭풍우를 온 몸으로 맞을 힘도 능력도 없기 때문입니다. 엎드려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엎드려있었기에 다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엎드린 사람만이 경험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길입니다. 인생길에 불어 닥치는 모진 바람을 두 발로 서서 온 몸으로 맞기보다 무릎 꿇고 엎드려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엎드린 우리를 지켜주시고 손잡고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2013년 6월 27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성도의 기도

세상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말씀과 기도입니다. 말씀은 생명의 양식이니 매일같이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새벽예배와 수요예배에서 성경을 차례로 읽어나갑니다. 말씀과 함께 꼭 있어야 할 것이 기도입니다. 말씀이 생명의 양식이라면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하나님과 깊이 사귀는 은혜의 시간이 바로 기도입니다.

이처럼 말씀과 기도가 신앙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덕목이기에 올해도 어김없이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눕니다. 앞으로 한 달여 예수님께서 드리신 겟세마네의 기도를 살펴보겠습니다. 각자의 기도생활을 돌아보고 온전하고 간절한 기도의 자리로 나가기로 결단하는 귀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마지막 때에 세상에 임할 일곱 가지 재앙 가운데 마지막 재앙의 서두입니다.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곱 개의 인을 차례로 떼십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 인을 떼었을 때는 앞의 여섯 가지 재앙과 달리 반시간 정도 침묵이 흘렀습니다(계8:1). 요한 계시록의 특징상 침묵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뒤에 나오는 말씀을 통해서 보면, 1절의 침묵은 마지막 때에 고난과 핍박 가운데 있던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리던 기도의 시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침묵이 끝난 다음에 일곱 천사가 일곱 개의 나팔을 받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천사가 제단 곁으로 금향로를 들고 나옵니다. 향로에는 다름 아닌 성도들의 기도가 들어 있습니다. 금향로에서 나온 향들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께로 올라갑니다. 매우 엄숙한 순간입니다. 이처럼 본문에서는 성도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지는 향(香)으로 눈에 보이듯이 묘사합니다.

핍박 가운데 있던 성도들은 하나님의 구원이 속히 임할 것을 기도했을 것입니다. 악한 영이 지배하는 세상이 얼른 지나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되신 새 나라가 임하길 간구했을 것입니다. 천사가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세상에 쏟으니 천둥과 번개와 지진이 일어납니다. 세상에는 심판이 임하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영원한 구원이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이처럼 성도의 기도는 금향로에 담겨서 하나님께 올라갑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향처럼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성도의 기도가 얼마나 귀한 지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드려질 정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금향로에 담긴 성도의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기도를 너무 쉽게 드렸습니다. 기도를 소홀히 여겼습니다.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향으로 드려지는 성도의 기도가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알고 있었다면, 우리의 기도생활은 물론 기도의 내용도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앞으로 4주 동안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리신 예수님의 기도를 살펴보면서, 온전하고 아름다운 기도에 대해서 배우기 원합니다.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면서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드려지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정결해지기 원합니다. 금향로에 담길 정도로 가치 있는 귀한 기도가 되기 원합니다. 무엇보다 감사와 기쁨으로 하나님 마음에 합한 기도를 드리기 원합니다. 금향로에 담겨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아름답고 귀한 성도의 기도가 참빛교회 식구들의 입술과 마음에서 울려 퍼지길 소망합니다.-河-

자신감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에는
인생길이 힘겨운 분들의
기도제목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쉽지 않은 이민생활이고
한치 앞을 보지 못하는 우리네 삶입니다.

게다가
우리들은 참 변덕스럽습니다.
어떤 때는 사기충천해서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금방 의기소침해져서
손을 늘어뜨리곤 합니다.

말 그대로 질그릇처럼
연약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때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은
떨쳐 일어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신감을 가지고
담대하게 세상과 맞서야 합니다.

2.
오늘 새벽에
미가서를 읽으면서
노트해 놓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두세 번 천천히 반복해서 읽으시고,
말씀을 곱씹어 보시기 바랍니다.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라.
But as for me, I will look to the LORD; I will wait for the God of my salvation; my God will hear me. (Mic 7:7 ESV)

나의 대적이여,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에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Rejoice not over me, O my enemy; when I fall, I shall rise; when I sit in darkness, the LORD will be a light to me. (Mic 7:8 ESV)

우리의 구원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오늘 하루를 살아갑시다.

행여나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을,
어두움 가운데 있어도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빛이 되실 것을 믿고
자신 있게 하루를 살아갑시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책임지실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갑니다.
도와주옵소서! 힘을 주옵소서!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6.20 이-메일 목회서신)

그리스도인의 능력

지난 4주 동안 성령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보혜사가 되시고,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대변해 주시는 보증이 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진리가운데로 인도해 주시고,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임을 입증하는 표지들(marks)이 여럿 있습니다. 복음의 능력에 대한 연속설교에서 나누었던 기쁨, 평안, 소망이 대표적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통해서 얻은 구원이야말로 가장 커다란 표지입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 없이 자기 마음대로 살았던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임하는 것은 권세와 능력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권세는 온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같은 의미입니다. 마지막 때에 예수님께서 심판주로 오셔서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권세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우리들도 하나님의 권세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엄청난 사건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여기서 권능에 해당하는 헬라어 뒤나미스는 말 그대로 능력 또는 힘이라는 뜻입니다. 성령이 능력으로 임함을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에게 성령을 통해서 능력이 임한 것도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표지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하늘의 능력을 힘입고 살아야 합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능력입니다. 세상의 지식이나 명예 또는 권력이 주는 힘과 능력은 언젠가는 사라지지만,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능력은 영원합니다. 우리 안에서 자체적으로 생기는 능력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말했듯이 우리들은 질그릇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게 됩니다.:“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4:7). 질그릇처럼 천하고 쉽게 부서지는 우리들이지만 그 안에 담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강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주어진 권세와 능력을 무시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성령 충만은 하나님과의 소통이 끊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속에 깊이 잠겨있는 상태인데 우리는 늘 성령 충만하지 못합니다. 성령 충만을 날마다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면 자연스레 하늘의 권세와 능력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제한 없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무한한 잠재력이 있습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죽음과 모든 악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능력의 근원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살이가 힘겹고 거칠어도 하나님 자녀에게 주시는 하늘의 능력으로 세상이 감당치 못할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원합니다. 다음 한 주간 각자의 삶의 처소에서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사시길 기도하겠습니다. -河-

새 날의 기도

좋은 아침입니다.

1.
새 날을 맞았습니다.
오늘 맞은 새날은
이 세상 누구도 먼저 가보지 않은
말 그대로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새날입니다.

새 날을 맞을 때마다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일어나면서 드리는 첫번째 기도는
“아버지! 오늘도 성령 충만케 하옵소서.”
성령충만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모하고 추구해야 할 첫 번째 덕목입니다.

그 다음에는
“아버지! 오늘 하루도 건강과 안전을 지켜 주옵소서.”
나이가 들수록 건강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합니다.
요즘같이 뒤숭숭한 시대에 안전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mission)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셋째는
“아버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빛으로 살게 하옵소서.”
가는 곳에서, 하는 일을 통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참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전하고
어두움을 밝히는 작은 빛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특권이자 축복입니다.

넷째는
“아버지! 오늘도 허락하신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게 하옵소서.”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 9:23)고 말씀하시면서
우리를 제자의 길로 초청하셨습니다.
각자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를 즐겁게 지고 예수님을 따르기 원합니다.
그 길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기 원합니다.

다섯째는
“아버지! 오늘 하루를 마쳤을 때 주님 앞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하옵소서.”
시편기자는 낮에 베풀어주신 사랑을 기억하면서
잠자리에서 생명의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아침에 주님의 인자(사랑과 은혜)를 구하고
밤에는 하루 동안 경험한 주의 성실을 찬양했습니다.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함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시 42:8)
By day the LORD commands his steadfast love, and at night his song is with me,
a prayer to the God of my life. (Psa 42:8 ESV)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시 92:1)
[It is good] to declare your steadfast love in the morning, and your faithfulness by night, (Psa 92:2 ESV)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 원합니다.
그 안에 행복이 있고, 감사가 있고,
세상을 향한 복음의 선포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신실하게 임하는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찬양하기 원합니다.
오늘(present) 우리의 삶이
곧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present)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세상 가운데서
예수의 사람으로 꿋꿋하게 살아가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여호와 닛시!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우리의 발걸음을 지켜주시고
아침마다 드리는 기도를 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6.13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