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속의 교회들 (3) : 데살로니가 교회

사도행전에 나오는 교회들을 차례로 살펴보고 있는 세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는 항구도시로서 마게도니아 지방의 수도였습니다. 로마의 시인 키케로가 데살로니가를 두고‘우리 영토의 심장부“라고 말했을 정도로 경제는 물론 정치적으로 요충지였습니다.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에 도착한 것은 빌립보에 교회를 세운 다음이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에서 어렵게 교회를 세웠고 심지어 감옥에 갇히는 핍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비해서 데살로니가에서의 전도는 쉽게 이루어졌습니다. 우선 데살로니가에는 유대인의 회당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곳에 가서 3주 동안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많은 숫자의 헬라인들과 귀부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빌립보에서 간신히 자주장사 루디아의 마음이 열리면서 복음이 전파된 것에 비하면 데살로니가의 복음 전파는 폭발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상류층 부인들과 헬라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면서 도시 전체가 복음으로 들썩인 것 같습니다. 그곳에 살던 유대인들이 바울일행을 핍박합니다. 그들은 불량배들까지 동원해서 바울 일행을 공격합니다. 빌립보에서 바울 일행이 자주장사 루디아의 집에 머물러있었듯이, 데살로니가에서는 야손이라는 사람의 집에 있었는데, 유대인들은 야손의 집으로 쳐들어왔습니다. 바울을 발견할 수 없자 이들은 야손과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읍장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야손과 그의 형제들이 바울 일행 대신에 체포됩니다. 로마에는 황제가 있는데 다른 임금인 예수를 전해서 세상을 소란케 만들었다는 죄목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바울에게 거처를 제공했다가 체포된 야손과 그의 형제들은 보석금을 내고 석방됩니다.

빌립보 교회에 비해서 쉽게 복음이 전해졌지만, 데살로니가 교회 역시 핍박을 받으면서 성장했습니다. 데살로니가 1장에는 바울이 세운 교회, 야손이라는 첫 번째 교인이 체포되고 보석금을 내고 나오면서 세워진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 근방에서 소문난 교회로 성장해 갔다고 전해줍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 사랑, 소망으로 철저하게 무장했습니다. 이처럼 그들의 신앙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깊이 뿌리박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성령의 능력과 성령이 주시는 믿음의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처음에 교회를 세울 때 3주 동안 회당에서 하나님 말씀을 강론하고 뜻을 풀어주면서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사도바울이 전해준 말씀위에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으면서 교회가 크게 성장한 것입니다. 말씀위에 세워졌고, 성령의 능력과 확신 가운데 성장한 데살로니가 교회는 환난을 잘 이겼습니다. 그리고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는 교회, 각 처에 소문난 교회로 자라갔습니다. 할렐루야!

데살로니가 교회 역시 우리 참빛 교회가 모델로 삼아야 할 교회임에 틀림없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교회도 하나님 말씀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참빛 교회 식구들은 말씀에 기초한 신앙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둘째로, 말씀의 은혜위에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에 힘이 있고 확신이 생깁니다. 셋째로, 격조 있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이루는 신앙의 세 가지 덕(德)이 우리 교회 안에 충만해야 합니다. 그때에 우리 교회 역시 하나님께 칭찬받고 각처에 하나님께서 쓰시는 교회로 소문이 날 것입니다. -河-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좋은 아침입니다.

1.

매일 같이 배달되는

한국 신문에 흥미로운 칼럼이 실렸습니다.

서유럽이 급격하게

탈기독교사회(post-Christian society)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지난 번 총격사건이 있었던 노르웨이의 경우

주일에 예배에 참석하는 인구가 3%가 불과하고,

영국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10%의 영국 국민들만이 주일날 교회에 간답니다.

어디에서 인용한 통계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납득이 가는 증거라고 생각됩니다.

2.

이렇게 기독교가 냉대받는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여러 가지 대안들이 있겠지만

저는 오늘 두 가지를 제시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시편 116편에서 설교했듯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느끼는 체험적인 신앙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은 계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확실한 간증이 필요합니다.

찬송가 204장의 고백입니다.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 하리로다.

둘째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닮은 삶으로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말로 하는 전도는 이제 설득력이 없습니다.

대신에 우리들이 예수님의 마음을 갖고

예수님처럼 살아간다면,

사람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매번 강조하는 마태복음 5 16절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웃들의 눈에 띨 만큼

선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조금 손해보고, 자신을 희생하고 양보하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 말을 들을 정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작은 예수로,

생동감 넘치는 살아있는 신앙인으로 살아갈 때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2천년 전 로마 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던 (upside down)

초대교회의 부흥이

우리 시대에도 일어날 것입니다.

저절로 전도의 문이 열리겠지요!!!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 동안

우리 참빛 교회 식구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작은 예수로서

착하고, 기쁨이 넘치고, 행복하게 살아서

저들이 있는 곳이 하늘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8.18 메일 목회서신)

사도행전속의 교회들 (2) : 빌립보 교회

오늘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교회들 가운데 두 번째로 빌립보 교회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빌립보 교회는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로 파송 받은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에 세운 교회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있는 유럽에 가려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소아시아에서의 전도문을 막으시고 바울에게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그리스와 로마와 더불어 유럽에 속했던 마게도니아 사람이“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행16:9)고 말하는 것을 들은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마게도니아 지역으로 보내셨음을 믿고 유럽으로 향합니다.

바울이 유럽으로 건너가서 첫 번째로 세운 교회가 바로 빌립보 교회입니다. 빌립보는 마게도니아 지방의 대표적인 도시였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보내셨기에 커다란 기대를 안고 빌립보에 도착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빌립보에서의 복음 전파는 쉽지 않았습니다. 수일을 거했지만 복음에 진보가 없었습니다. 여러 날 동안 복음전파의 기회를 잡지 못한 바울은 안식일에 유대인들의 기도처가 있는 성문 밖으로 나갑니다.

성문 밖 강가에 여인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염색 산업이 발달한 두아디라 출신의 루디아였습니다. 루디아는 타지에서 가족과 함께 빌립보에 이주한 여인이었고, 옷감을 파는 상인이었습니다. 루디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유대인들이 믿는 하나님은 믿었지만,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알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루디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그때 루디아가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루디아가 복음을 받아들인 것을 두고“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14절)고 기록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루디아를 예비해 놓으셨고,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그녀가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도록 도우셨다는 것입니다. 루디아와 그녀의 가족은 모두 세례를 받고 빌립보 교회의 첫 번째 교인이 됩니다. 루디아는 자신의 집을 바울에게 제공합니다. 빌립보 교회는 이처럼 옷감장사 루디아의 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루디아의 가정에서 시작된 빌립보 교회에 어려움이 닥칩니다. 바울이 점쟁이 여종을 고쳐주었는데 그녀의 주인이 바울을 고소한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서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 갇힙니다. 복음을 전하는 바울이 갇힌 것은 복음 자체가 감옥에 갇힌 것처럼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바울을 건져내십니다. 그것을 목격한 빌립보 감옥의 간수와 그의 온 가정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성경이 전하는 두 번째 빌립보 교인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이 전파되고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도록 일꾼들을 예비해 놓으셨습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성도님들로 인해서 세워지고 자라갑니다. 신실하게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마음에 영접한 성도들입니다. 바울의 거처와 모임장소로 가정을 제공할 만큼 희생할 줄 아는 성도들입니다. 나중에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썼는데 그것이 빌립보서입니다. 거기에 보면 빌립보 교회가 아름답게 세워져갔음을 봅니다. 옷감 장사 루디아와 빌립보 간수로부터 시작된 복음이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우리 참빛 교회 안에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교회가 세워지는데 쓰임 받는 성도님들로 가득 차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 선한 일을 행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의 일꾼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실 줄 믿습니다.-河-

“주께 붙어 있으라”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6월 첫날,

샌프란에 교회건물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우연치 않게(?) 시작된 교회 구입이

엊그제 대출승인이 나면서 마무리되어 갑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참 묘합니다.

두 달여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우리 교회 건물을 달라고 기도하시던

팔순이 넘으신 전도사님과 권사님들께 정말 귀한 선물입니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흐뭇합니다.

현재는

우리 교회로서 조금 버거운

대출금 상환이지만

거기까지도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그냥 감사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교회!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겸손하게 하나님을 따라가면 될 것 같습니다.

그 동안 기도해 주신

참빛 교회 식구들과

목요서신을 함께 나누는 동역자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2.

지난 주일 설교는

새로운 연속 설교의 첫 번째로

사도행전에 나오는 안디옥 교회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인종, 지위, 출신을 초월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아름다운 교회,

말씀과 기도에 힘쓰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쫓았던 교회,

구제와 선교에 힘썼던 교회!

우리 참빛 교회도 안디옥 교회를 본받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지난 설교 가운데

예루살렘에서 파견된 바나바가

안디옥 교인들에게 했던 권면을 기억하시는지요?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11:23)

Remain faithful to the Lord with steadfast purpose.

주께 붙어 있는 믿음은 언제나 중요합니다.

이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을 떠나지 않고

주님을 꼭 붙잡고 사는 신앙입니다.

아이가 엄마 품에 붙어 있듯이

우리들도 하나님 품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꼭 안아주십니다.

또한 주께 붙어 있는 것에 대한

헬라어 본문의 뜻은 영어 번역에 더 가깝습니다.

프로스메노라는 헬라어의 의미는

거하다(stay with), 머물다(remain), 지속적으로 믿음생활을 하다(continue in faith)

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 붙어 있는 것은

매사에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주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때가 가장 평화롭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을 쉽게 공급받습니다.

하나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주님께 꼭 붙어서 생활하시길 바랍니다.

주님 안에 거하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멋지게 살아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 안에 거하며

주님께 붙어 있는

참빛 교회 식구들을 꼭 안아주시고

하늘의 힘을 공급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8.11 메일 목회서신)

사도행전 속의 교회들 (1) : 안디옥 교회

지난 3주에 걸쳐서 구약성경 시편 116편을 살펴보았습니다. 죽음의 위기까지 몰렸던 이름도 없는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함으로 구원받고 그 은혜를 백성들 앞에서 간증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백성들 앞에서 평생에 기도할 것과, 세상에 살 때에 하나님 앞에서 행할 것, 그리고 하나님께 자신의 서원을 갚을 것을 다짐합니다. 이처럼 지난 세 시간에 걸쳐서 살펴본 시편 116편은 구원의 하나님을 만난 한 개인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앞으로 5주에 걸쳐서 사도행전 속에 나타난 교회들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개인의 신앙만큼이나 신앙공동체인 교회의 신앙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약속하신 성령이 임함으로 교회들이 세워지는 과정을 기록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을 체험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능력 있는 사도들로 변화됩니다. 이들이 전하는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유다와 사마리아로 퍼져나갔고, 이방인의 사도 바울을 통해서 로마와 땅 끝까지 전파됩니다. 이 모든 복음전파의 사역에 성령의 역사가 있었기에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특별히 사도행전은 사도바울이 세 번의 전도여행을 통해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과정을 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당시 로마의 주요도시들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고 그곳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앞으로 우리들은 바울이 세운 4개의 교회들(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 에베소)과 바울을 파견하면서 본부 역할을 담당했던 안디옥 교회에 대해서 살펴볼 것입니다. 당시에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는 핍박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교회들은 곳곳에 세워졌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초대교회들이 세워지는 과정을 통해서 오늘날 교회의 모습과 무엇보다 새롭게 출발하는 우리 참빛 교회의 모습을 돌아보고, 말씀을 통해서 새로운 힘과 지혜를 얻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은 사도행전에서 예루살렘 교회 다음으로 세워진 안디옥 교회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안디옥은 오늘날 터키의 동남쪽에 위치한 도시로 로마제국의 3대 도시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스데반 집사가 순교하는 등 박해가 심해졌습니다. 그때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피해서 예루살렘을 떠납니다. 그리고 이들은 가는 곳마다 복음 전했는데 이들이 안디옥에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또한 안디옥 교회는 여러 인종들이 함께 어울려 세운 교회였습니다. 여기는 예루살렘에서 피신 온 유대인들은 물론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과 헬라인들이 한 마음으로 교회를 아름답게 세웠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라는 선하고 성령충만한 사도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말씀에 굳게 선 교회였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실라를 선교사로 파송하고,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등 구제와 선교에 앞장섰습니다. 무엇보다 안디옥 교회에서 비로소 제자들이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고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닮으려는 진짜 신앙인들로 안디옥 교회가 세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밖 외국에 세워진 이민교회, 각기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모인 다양성, 구제와 선교에 앞장서면서 예수님을 닮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안디옥 교회야 말로 우리 참빛 교회가 표본으로 삼아야 할 교회임에 틀림없습니다. -河-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좋은 아침입니다.

1.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을 보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아침에는 만나로

저녁에는 메추라기를 보내셔서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규칙이 있었습니다.

안식일을 제외한 6일 동안은

1일분의 만나와 메추라기만을 가져가야 합니다.

욕심껏 더 거두면

그 다음날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서

먹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16:20).

대신에 안식일 날은 일하지 않았기에

이틀 분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만나와 메추라기는

말 그대로 일용할 양식(daily bread)”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적어도

두 가지 하나님의 뜻이 숨겨져 있었을 것입니다.

첫째로,

욕심은 금물이라는 것입니다.

욕심껏 더 거두었지만 결국 썩고 말았습니다.

둘째는

자신의 백성을 먹이시는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하루 하루 사는 것이지요.

다음 날 만나와 메추라기가 내리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굶어 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광야 40년 동안 어김없이

아침 저녁으로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책임져 주심을

매일 매일 체험한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에도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가 나옵니다.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구할 수 있습니다.

꼭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때로 우리의 기도 (특히, 간구-petition)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으로 드려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뿐만 아니라

내일과 모레 그리고 평생 동안

먹거리를 확보해 놓으려는 욕심일 수도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벗어나는 기도입니다.

저는 지난 번 설교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마다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하나님 제 욕심이었군요

아직 하나님의 때가 아니군요

그러면서

제 기도생활과 신앙을 점검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Give us today our daily bread”)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신 하나님께서

매일같이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꼭 붙잡고

오늘 하루를 살아갑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

아버지께서 공급해 주시는

하늘 만나와 메추라기에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8.4 메일 목회서신)

서원을 갚으리로다

시편 116편에 대해서 살펴보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시편 기자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입니다. 그는 꼼짝달싹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세상을 향해서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라”고 말할 정도의 극심한 회의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어려운 순간에 하나님 앞에 무릎 꿇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살려주세요”라는 외마디의 처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를 구해 주셨습니다. 은혜로우시고, 의로우시고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시편기자의 기도에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인생 최대의 위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놀라운 경험을 한 시편기자는 성전에 모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기에“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라고 결심합니다. 사는 날 동안 기도의 인생을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해 주는 체인입니다. 우리들도 시편기자와 마찬가지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시편기자는 “내가 생존세계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고 결심합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다는 결심입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지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주어진 인생길을 걷겠다는 다짐입니다. 이러한 결단은 시편기자의 확실한 체험에서 나온 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인생에 희망의 빛이 전혀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셨습니다. 세상살이가 서럽고 힘이 들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눈에서 눈물을 씻겨주셨습니다. 실수를 했든지 아니면 걸림돌에 걸렸든지 넘어질 때 하나님께서 그의 손을 붙잡아 주셨습니다. 이토록 큰 은혜를 구체적으로 체험했기에 세상사는 동안 하나님 앞에서 행할 것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들도 시편기자처럼 고백하기 원합니다.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서 행할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제 세 번째로 시편기자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같은 말씀이 오늘 본문에 두 번 반복해서 나옵니다 (14절과 18절). 시편기자는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할 것을 생각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베풀어주신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구원의 잔을 드는 것이지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린 약속(서원)을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모두 행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서원을 갚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셨듯이 자신도 하나님 앞에서 기도한 것을 모두 실천하겠다는 다짐입니다. 우리들은 기도할 때 여러 가지 다짐을 합니다. 그런데 기도가 끝나면 그 모든 것을 잊고 자기 마음대로 살 때가 많습니다. 오늘 시편기자는 하나님 앞에서 드린 약속을 지키겠다고 결심합니다. 여기서 서원을 갚는 것은 신실한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편기자는 감사의 삶을 살기로 결심합니다. 구원의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하나님 백성의 행복한 삶입니다. 평생에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행하고,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삶을 사시는 참빛 교회 식구들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河-

걸어가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어떤 분이 자신의 블로그에 걷기 운동의 효과를

34가지로 정리해 놓았습니다.

그 중에 몇 가지만 소개합니다.

“면역 기능이 좋아진다. 좋은 콜레스테롤이 증가하고 나쁜 콜레스테롤이 감소한다. 비만이 개선된다. 각 장기의 혈액순환이 좋아진다. 자신감이 생긴다.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 단기 기억력이 향상된다.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다. 무기력해지지 않는다.

미국의 맑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힘차게 한 보 한 보 내딛는 걷기 운동이야말로

돈 한푼 들지 않는 보약인 셈입니다.

저도 일주일에

3번 이상 매번 3마일 정도를 걸으려고 노력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아내와 서로 채근하면서 걷기를 실천하려 애를 씁니다.

운동을 하면 확실히 심신이 활기차짐을 느낍니다.

우리 모두 걸읍시다.

걷기운동의 효과를 누려봅시다.

2.

구약성경에서 걷다는 동사는 할라크입니다.

이 말은 구약성경에 무척 많이 나옵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신앙의 길을 가는 것을

모두 할라크라는 동사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것도

할라크라는 동사를 사용합니다.

인생길을 걸어갈 때도

할라크라는 동사를 사용합니다.

지난 주일 설교에서 함께 나눈

시편 116 9절 말씀

내가 생존세계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

(I will walk before the Lord in the land of the living)

시편기자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여호와 앞에서 걷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3.

우리들은 오늘 하루도 걸어야 합니다.

운동 삼아 걸어야 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우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걷는 길에

하나님께서 동행하심을 믿고

팔을 앞뒤로 흔들면서

보폭을 넓게 하고 힘차게 걸어봅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

참빛 교회 식구들의 발걸음에

하늘의 힘을 더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7.28 메일 목회서신)

홀인원 인생

2007년 휴대전화 외판원이었던 폴포츠라는 사람이 영국의 한 TV 장기자랑 프로그램에서 노래를 부른 것이 계기되어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됩니다. 그로부터 2년 후, 같은 프로그램에 수잔보일이라는 마흔일곱 살 먹은 아주머니가 나와서 또 한번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그녀는 가수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열 두 살 때부터 노래연습을 했답니다. 그녀는 누가 보아도 중년이 넘어 보이는 모습으로 무대에 오릅니다. 그리고 “나는 꿈을 꿉니다 (I dream a dream)”는 제목의 노래를 불러서 청중들을 깜짝 놀래킵니다.

지난 6월 위의 두 사람을 무색하게 만드는 인물이 한국에 등장했습니다. 영국 TV와 비슷한 아마추어 장기자랑 프로그램에 최성봉이라는 스물 두 살의 청년이 나온 것입니다. 특기가 별로 없을 것 같은 평범한 청년이 무대에 섰습니다. 유명 탤런트 출신의 심사위원이 신청서류에 가족사항이 없는 것을 두고 질문합니다. 청년은 부모의 이혼으로 세 살 때 고아원에 맡겨졌고 다섯 살 때는 구타가 싫어서 고아원에서 도망쳐 나왔다고 대답합니다. 그로부터 10여 년 동안 껌을 팔면서 거리의 아이로 살았답니다.그러다가 시장에서 떡볶이를 파는 한 아주머니의 조언을 따라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검정고시로 합격 합니다.  나이트 클럽에서 가곡을 불렀던 성악가의 도움으로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성악가의 꿈을 키워오다가 TV 프로그램에 나온 것입니다 (한국일보 본국지 7월 23일 기사참조).

힘겨운 인생길을 걸어온 그 청년이 처음으로 무대에 서서 “나의 환상 속으로 (넬라 판타지)”를 노래합니다. 그의 목소리가 무대에 울려 퍼지면서 심사위원들은 물론 청중들도 깜짝 놀랍니다. 영국에서 폴포츠와 수잔보일이 노래할 때 청중들의 놀라는 모습과 똑같습니다. 심사위원들의 눈에 눈물이 고입니다. 청년은 약간의 감정 변화가 있을 뿐 끝까지 담담함을 읽지 않습니다. 그 동안 하도 눈물을 많이 흘려서 눈물샘이 마른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 만큼 꽃다운 청년의 인생길이 험악했다는 표시였겠지요. 유트브로 최성봉이라는 청년이 노래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었습니다.

위에 소개한 세 사람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특별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동시에 자신의 장기인 노래를 누구보다 열심히 연습했고 청중들에게 예상치 못한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평생에 꿈꾸던 무대에 섰고 그들의 인생은 단숨에 역전을 경험하게 됩니다. 최성봉 청년의 이야기는 소셜 네트워크인 유트브의 힘을 타고 전세계로 퍼져서 미국의 CNN에서 그를 취재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골프로 치면 거리에서 껌을 팔던 한 청년이 단번에 인생의 홀인원을 기록한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아침에 눈을 뜨니 유명해졌다는 시인 바이런의 말처럼 기적 같은 인생의 홀인원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아니 우리들은 모두 인생의 홀인원을 꿈꾸면서 살아가는 지도 모릅니다. 지금보다 비교할 수 없는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연히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휴대전화를 파는 외판원으로 또한 마흔일곱의 펑퍼짐한 몸매를 하고도 가수의 꿈을 놓지 않았던 폴포츠와 수잔보일, 나이트클럽에서 껌과 박카스를 팔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아름답게 갈고 닦은 최성봉 – 이들은 음지에서 눈물로 연습했을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가꾸었을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자신들에게 찾아온 한 번의 기회에서 그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 이들만큼 노래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삶과 노래가 하나가 되어서 우리 모두에게 뜨거운 감동을 준 것입니다.

인생의 홀인원이 우연의 산물이 아님을 이들을 통해서 배웁니다. 솔직히 한번에 우연히 찾아온 홀인원이라면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자신의 목표를 향해서 끊임없이 연습하고 꿈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 곧 인생의 홀인원입니다. 물론 우리네 같은 범인들은 홀인원을 꿈꿀 여유도 없습니다. 하지만 매일 같이 주어진 삶을 하나님의 소명으로 알고 최선을 다해서 살아갈 때 우리네 인생도 홀인원만큼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TV에 나올 만큼 대단한 일이 아니어도 매일 매일의 삶이 노래가 되고 그것이 자신과 이웃의 마음 속에 판타지가 되어 울려 퍼진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값진 인생의 홀인원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2011년 7월 29일 SF 한국일보 종교칼럼)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

시편 116편에 대해서 살펴보는 두 번째 시간입니다. 본문을 기록한 시편기자는 죽음의 순간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났습니다. 그의 상황은 매우 심각했습니다. 사망의 줄이 그를 꽁꽁 둘러맸습니다. 죽음의 고통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마저 버림받았습니다. 그가 당한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말 그대로 “이제 끝”이라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때 시편기자에게 남아 있던 것은 오직 한 가지였다고 했습니다. 바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 역시 한 가지뿐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이지요. 그는 순수하게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마음은 한없이 낮아졌습니다. 우리가 종종 부르는 찬송가의 가사처럼 하나님 아버지께 손들고 온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항복한 것입니다. 그의 기도는 외마디 기도였습니다: “아- 주님, 살려주세요!”

은혜로우시고, 의로우시며, 우리를 모두 이해하시는 하나님께서 시편기자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건져주셨습니다. 그때 시편기자는 하나님을 향해서 사랑고백을 합니다.:“내가 저를 사랑하도다.” 그리고 평생에 기도하겠다고 다짐하지요. 시편기자의 고백은 구약시대 예루살렘 성전에서 그곳에 모인 예배자들에게 공개적으로 했던 간증입니다. 그의 간증을 듣고 똑같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왔을 것입니다. 그가 새로운 생명으로 회복된 것을 보고 성전에 예배하러 온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지금 시편기자는 성령충만합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몰랐기에 자신을 향해서 독백처럼 명령합니다.:“내 영혼아 네 평안함에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7절). 그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모든 세력에서 벗어났으니 이제 과거의 고통을 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함을 누리자는 결심입니다.“후대하셨다”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아주 큰 은혜를 베풀어주셨다는 간증입니다.

8-9절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을 다시금 회고합니다. 하나님께서 죽음에서 살려주셨습니다. 눈에서 눈물이 사라지게 하셨고, 넘어지려는 순간 잡아주셨습니다.“아- 주님, 살려주세요”라는 외마디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셨습니다. 시편기자는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평생 동안 하나님을 위해서 살겠노라고 서원기도를 드립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2절 말씀에서는 평생 동안 기도하겠다고 결심했는데 9절에서는 그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결심합니다. 

우리들도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여러 가지 길을 모색하면서 어려움에서 빠져나오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건져주십니다. 하늘의 평안으로 그를 감싸주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임한 구원의 은혜입니다. 참빛 교회 식구들 모두 이 은혜에 들어가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들 역시 시편기자처럼 고백하기 원합니다:“내가 살아있는 동안 주님 따라 살겠습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