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하나님 (6)

성령의 열매 (2)

 

예수님을 닮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을 가늠하는 지표가 바로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맺도록 도와주시는 결실이기에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는 인간적인 성품과 구별됩니다. 베드로가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을 언급했는데(벧후2:4),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하나님의 성품에 가장 근접할 것 같습니다.

 

오늘 함께 살펴볼 성령의 열매 세 가지는 오래 참음, 자비, 양선입니다. 먼저, 오래 참음은 말 그대로 오래 참는 인내를 가리킵니다. 일상적인 인내도 포함할 수 있지만, 본문의 오래 참음은 환난과 핍박으로 어려웠던 초대 교회 당시의 상황을 반영할 것입니다. 어떤 상황과 어려움에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키는 것이 오래 참음입니다. 바울은 환난이 닥치면 인내할 것을 부탁했습니다. 인내가 연단(단단한 신앙 인격)을, 연단은 소망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롬5:3-4).

 

오래 참음이 성령의 열매인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오래 참으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성품을 두고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시103:8)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어리석은 제자들과 3년을 함께 하시면서 참고 참으셨습니다. 무엇보다 십자가의 모든 고통과 조롱도 참으셨으니 오래 참음은 하나님의 성품임이 틀림없습니다.

 

둘째는 자비입니다. 새번역은 “친절(kindness)”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향한 친절한 마음 또는 관대함을 뜻합니다. 트렌치라는 분은 자비를 “은혜를 표현하는 아름다운 말, 상냥함, 다른 이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 편안하게 해주는 배려”라고 풀어서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비로 대하십니다.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06:1)는 말씀이 대표적입니다.

 

성경에서 자비를 베풀어야 할 대상은 고통 당하는 사람들(나훔1:7), 가난하고 따돌림 당하는 사람들(시68:10),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주의  백성들(시34:8)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차별없이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셋째는 양선입니다. 양선은 자비와 사촌지간으로 “선함(goodness)”이라는 뜻입니다. 친절한 마음이 밖으로 표현된 것이 양선, 즉 어질고 착한 행동입니다. 양선의 반대말을 생각하면, 성령의 열매 양선이 어떤 의미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흘기는 눈, 악한 행실, 인색함, 욕심 많음”등은 선한 행동이 아닙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고 빛의 자녀가 되었다면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엡5:9)의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했는데 착함이 바로 양선입니다.

 

신앙생활은 물론 사람과 상황을 잘 참고 견디며, 자비를 선한 행실로 옮겨서 우리는 삶에 성령의 열매가 풍성히 임하길 간절히 바랍니다.-河-

성령 하나님 (5)

성령의 열매 (1)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의 인도자가 되십니다. 성령을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님으로 보았을 때, 약하고 비천한 자들과 함께하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더욱 깊이 다가옵니다.

 

앞으로 두 주간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길가, 돌밭, 가시덤불, 좋은 땅에 씨가 떨어졌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열매를 통해서 거짓과 참 선지자를 구별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뿌리까지 마르도록 저주하셨습니다. 이 정도로 열매가 중요한데,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열매 맺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돕고 친절하게 인도하십니다.

 

오늘 본문(갈 5:2-23)에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가 나옵니다. 성령의 열매는 그리스도인의 성품의 변화와 성숙을 가리킵니다.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옛사람이 변해서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갖고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반드시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다면 겉은 화려했지만 속은 더러웠던 예루살렘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입니다. 열매가 없다면 복음의 씨가 길가, 돌밭, 또는 가시덤불에 뿌려졌다는 뜻입니다. 마지막 좋은 밭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려는 마음가짐 즉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가리킵니다. 좋은 밭을 준비하고 그 밭에 씨가 떨어졌을 때 100배, 60배, 30배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입니다.

 

성령의 열매 첫 번째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 그 자체이시니 하나님을 믿는다면 사랑의 열매가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처럼 이웃을 대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두 번째는 희락(기쁨)입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금세 사라집니다. 밖에서 오는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우리 안에서 샘물처럼 솟아납니다. 성령의 기쁨이 있을 때,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화평입니다. 기쁨과 화평은 하나님 나라의 상징입니다(롬14:17).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하나님과 화목했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니 내 안에 평화가 임하고, 세상에 나가서 화평케 하는 하나님의 아들로 살 수 있습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가운데 처음 세 가지만 있어도 행복하고 품격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주시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이 팬데믹 상황에 있는 우리 자신과 교회 그리고 세상에 임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河-

성령 하나님 (4)

– 인도자

 

성령을 “보혜사(파라-클레토스)”라고 소개하는 성경 본문은 우리가 그동안 살펴본 요한복음 14장과 16장 뿐입니다. 보혜사는 곁에서 함께 하시고 우리를 부르시며 위로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성령 하나님을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우리말 보혜사(保惠師)는 성령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처럼 쓰입니다. 한자어의 뜻은 우리를 곁에서 보호해 주시고 우리 마음에 은혜를 베푸시는 성령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보혜사 성령께서 그와 같은 일을 하십니다. 성령 하나님을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으로 생각하면서 성령 하나님을 친밀하게 느끼시길 부탁드렸습니다.

 

보혜사에 해당하는 영어 번역은 다양합니다. “위로자(comforter)”라고 번역하면 우리와 함께 하시고 곁에 계시면서 위로해 주시는 성령 하나님을 강조합니다. “변호인(advocate)”이라고 번역한 성경도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변호해 주시고 보증하십니다(롬8:16). 항상 우리 편이 되십니다. 우리를 위해 탄식하면서 기도하십니다(롬8:26).

 

“돕는이(Helper)”라는 번역도 있습니다.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성령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입니까? 이번 기회에 성령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와 친밀함이 더 해지길 바랍니다.

 

보혜사 성령을 “상담자(counsellor)”라고 번역한 영어 성경도 있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민과 질문에 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떠나신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 제자들에게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상담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자신이 떠나면 보혜사 성령이 오시니 제자들에게 훨씬 유익이 된다고 알려 주십니다.

 

그동안 배웠듯이 육신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으십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셨지만, 다른 제자는 산 아래 있어야 했습니다. 몸이 하나이시니 갈릴리 사역에 집중하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제자들은 물론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동시에 상담해 주시고, 도와주시고,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무엇보다 보혜사 성령 하나님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제자들은 물론 예수님을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진리로 인도해 주십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들은 것을 깨우쳐서 생각나게 하시고, 심지어 장래 일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 장래 일이라고 하면, 하나님을 믿는 주의 백성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알려주신다는 뜻입니다. 가야할 길을 제시하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한 주간도 각자의 자리에서 보혜사 성령 하나님의 인도함을 따라 살기 원합니다 -河-

성령 하나님 (3)

진리의 영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보혜사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보혜사는 우리 곁에서 우리를 부르시고, 위로하시고, 인도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2천 년 전에 팔레스타인 땅에 오셨던 예수님 대신 우리 안에 계시는 분으로 이해하시길 첫 번째 시간에 제안했습니다. 성령을 지나치게 영적인 존재 또는 이성과 반대되는 감정적인 형태로 오해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한마음으로 기도하던 120명의 제자에게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표현인 강력한 바람과 불로 그곳에서 기도하던 제자들 각 사람 위에 임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해진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베드로가 설교하니 3천 명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 말씀대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증인으로 살았습니다. 성령의 능력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7절에 의하면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성령을 바람에 비유했듯이 세상은 성령을 볼 수도 없고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주의 제자들은 성령을 느끼고 성령과 더불어 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제자들과 함께 하신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14:6)이라고 하셨듯이 성령 하나님도 제자들에게 진리의 영으로 오실 것입니다.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께서 길이 되심을 보여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성령을 보혜사로 부르시고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성령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내신다는 것은 처음 시간에 배웠듯이 예수님과 같은 분임을 뜻합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생각나게 도우실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상대화되고 절대 진리가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기준이 모호해져서 각자의 생각에 따라서 행동합니다. 다원화된 세상이 조화를 이루며 화합을 하면 좋지만, 수많은 진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듯해서 혼란스럽습니다. 구약성경 사사기 말씀대로 모든 사람이 각자의 생각대로 행동합니다(사21:25).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리를 쫓는 사람들입니다. 삼위 하나님의 사역과 관계 속에서 진리를 찾고, 그것이 드러난 성경 말씀을 기준 삼아서 신앙의 길을 갑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진리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갈 바를 몰라서 헤매고 있을 때, 성령께서 우리의 길이 되시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보여주시고 깨우쳐 주실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기 원합니다.-河-

성령 하나님 (2)

오순절 성령

 

오늘은 성령 강림 주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말씀하시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120명의 제자는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한마음이 되어 기도하면서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그로부터 10일 후 오순절(유월절에서 50일째 되는 절기)에 약속하신 성령이 임했습니다. 오순절은 보리 농사를 짓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유대인의 3대 명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후대의 유대인들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과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로 지켰습니다. 각지에 흩어져있던 유대인들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방문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은 강렬했습니다. 하늘에서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제자들이 있는 집을 가득 채웠습니다.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눈에 보이더니 모여있던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임했습니다. 예수님께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는 세례 요한의 말이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성취되었습니다.

 

바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루하흐”와 헬라어 “푸뉴마”는 모두 성령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숨결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마른 뼈로 가득했던 에스겔 골짜기에 바람이 불어오니 뼈들이 살아서 하나님의 군대가 되었습니다(겔37). 예수님께서도 성령으로 난 자를 바람에 비유하셨습니다(요3:8). 하늘로부터 내린 급하고 강한 바람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임을 확실히 알려줍니다.

 

불은 성경에서 심판의 상징이고 동시에 하나님의 임재 상징입니다. 유대인들이 오순절이 되면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모세를 기념했습니다. 그때 모세가 올라가 있던 산 전체가 불에 타는 것 같았습니다(출20:18). 이스라엘이 광야 길을 걸을 때 하나님께서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있던 제자들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성령에 사로잡혔습니다. 다른 민족의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예루살렘에 온 많은 민족에게 각자의 언어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한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창세기 바벨탑에서 각각의 언어로 분열되었다면,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이 각자의 언어로 같은 복음을 들었습니다. 베드로가 설교하니 3천 명이 예수님을 믿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오순절 성경 강림은 새로운 역사의 시작입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면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물론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이 확신을 갖고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각 사람에게 임했듯이, 우리 각 개인이 하나님 앞에서 성령 충만해야 함도 깨닫습니다. 우리 위에 임하실 성령을 간절히 사모합니다. 한 주간 성령 하나님을 사모하고 우리 마음에 삶에 성령의 임재를 구합시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