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은혜 (7)

십자가의 삶: 속죄

 

십자가의 은혜를 속죄(atonement), 승리, 화목으로 나눠서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져야 할 죄와 죽음을 예수님께서 친히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승리의 상징입니다. 죽음은 물론 모든 악한 세력에 대한 최후 승리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 우리들 간의 관계를 이어 주셨습니다. 화해 또는 화목의 은혜였습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십자가의 삶을 십자가의 은혜와 연결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경험했으니, 우리도 십자가를 살아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화목의 삶을 살아야 함을 배웠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가 화해하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화목을 마음껏 누리고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화목은 이웃과의 화목으로 연결됩니다. 십자가의 세로목과 가로목을 갖고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은 이웃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연결하는 화목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또한, 이웃과의 화목을 도모해야 합니다. 용서와 화해가 꼭 필요합니다. 세상 속에서 평화를 만드는 “화평케 하는 자(peace-maker)”가 되어야 합니다. 화목의 십자가를 세상 속에서 실천하면서 십자가를 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십자가의 삶은 “속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그의 생명을 내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예수님께서 담당해야 할 잔을 옮겨달라고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기억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최종적으로 자기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길 기도하셨습니다. 자신을 내려놓으셨습니다.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목숨까지 희생하셨습니다. 자기 부인입니다. 자기 희생입니다.

 

예수님의 희생으로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이 가장 큰 사랑이라고 하셨듯이(요15:13),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담당하셨습니다. 덕분에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이 임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생명과 맞바꿈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이제 우리도 누군가의 어려움이나 무거운 짐을 담당해야 합니다. 대신 지고 가야 합니다. 희생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우리 안에 예수님의 얼(십자가의 정신)을 심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는 고백이 가능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의 신앙과 삶이 예수님을 닮아서 이웃을 위해서 희생하고 이웃의 짐을 담당하게 될 것입니다. 아름답고 멋진 사명입니다.-河-

십자가의 은혜 (6)

십자가의 삶: 화목

 

십자가에 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모든 길은 십자가로 통합니다. 그동안 배운 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십자가는 신약 시대에 와서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닙니다. 구약 성경에도 십자가는 저주받은 사람들이 달리는 나무였습니다(신21:23).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약의 율법이 완성되었습니다. 제물을 갖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던 구약의 전통은 예수님께서 직접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폐지되었습니다. 매년 드리던 속죄 제사도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서 한 번에 영원한 효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십자가는 구약 율법의 완성입니다.

 

초대교회는 십자가를 자랑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추구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최고로 여겼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을 통해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모든 악한 세력이 십자가를 통해서 물러났습니다. 그런 점에서 초대교회에 십자가는 승리였습니다. 핍박과 박해를 견디고 이기는 근거가 십자가에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통한 속죄의 완성, 승리와 더불어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였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물었습니다. 죄로 인해서 멀어진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화목은 이웃과의 화목과 화해로 이어집니다. 이처럼 십자가의 은혜는 화목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오늘과 다음 주는 십자가의 삶에 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십자가는 구약의 율법이나 과거의 초대 교회의 전통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십자가의 은혜에 머물 것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의 삶 되어야 합니다. 지난 주에 잠깐 나눴던 화평케 하는 자로 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십자가는 세로목과 가로목으로 구성됩니다. 세로목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가리킨다면, 가로목은 이웃과의 관계를 뜻합니다. 세로목이 있어야 십자가가 온전해집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온전해졌을 때, 비로소 건강한 이웃과의 관계가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가로목과 세로목 사이에 못 박히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물론 이웃과의 관계를 완성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화평케 하는 자로 살아가는 근거는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서 평화를 추구하며 살아갈 힘도 얻습니다. 예수님께서 2천 년 전에 십자가 위에서 화평을 이루셨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몸으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화평을 이루셨듯이, 우리도 마음과 생각을 넘어서 몸으로 화평케 하는 자로 세상에 나갑니다. 그때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릴 것입니다.-河-

십자가의 은혜 (5)

화목

 

예수님의 십자가에 관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허물과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우리는 구약의 모든 율법의 굴레에서,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본성적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속죄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모든 악한 세력에 대한 승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세력을 이기셨습니다. 핍박과 박해가 극심했던 초대 교회에 승리의 십자가는 신앙을 견디는 힘이었습니다. 어떤 핍박이 찾아와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나아갈 때 막을 것이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십자가의 의미는 화목(reconciliation)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이 무너졌습니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께서 우리와 하나님을 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상에 진정한 화해가 무엇인지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시기와 질투, 갈등과 폭력으로 나누어진 세상을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평화가 하나님의 뜻임을 그 몸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지난 주말에 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교회가 모든 비용을 지원하고 순전한 신앙과 쉼을 즐길 수 있는 수련회를 꼭 갖고 싶었습니다. 그 꿈을 이루었습니다. 수련회를 준비한 모든 손길과 참빛 식구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수련회 주제는 “하나됨–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하나”였습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되고, 성도 간에 하나를 이루며, 하나님 만드신 자연과 하나되는 시간을 기대했습니다. 주일학교 아이들이 만든 작품을 보면서, 아이들의 순수한 눈으로 하나님의 창조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현미경으로 자연을 관찰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정말 귀엽고 아름다웠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 만드신 자연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조별로 나뉘어 서로의 신앙과 삶을 나누는 모습도 아름다웠습니다. 무려 50년이 넘는 세대가 함께 어울린 자리였습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존중하며, 진솔하게 하나님 말씀과 삶을 나누는 가운데 우리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교회는 공동체입니다. 서로를 위하고 격려하고 때로는 도전하며 배우고 자라갑니다. 저는 “참빛 식구”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우리 교회가 가족과 같은 교회가 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5장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됨에 대해서도 배웠습니다. 포도나무인 예수님께 붙어있고(애착), 하나님을 사랑하고(애정),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의존)이 하나님과 하나 되는 삶의 핵심임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이번 수련회를 통해서 예수님의 화목의 십자가를 경험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되기를 원합니다. 더 나아가 평화로운 세상이 펼쳐지기를 기도합니다.-河-

십자가의 은혜 (4)

승리

 

지난주에는 십자가의 의미 가운데 “속죄(atonement)”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치러야 할 값을 구약에서 제물로 바쳐진 어린양처럼 예수님께서 대신 치르신 것입니다. 대속(redemption) 또는 속전(ransom)이라고 부릅니다.

 

죄를 지은 우리가 전적으로 의로우신 하나님께 나갈 수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마리아에게서 나셨지만, 성령으로 잉태하심으로 죄 없이 그러나 완벽한 사람으로 태어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시켜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최고의 사랑을 보여주신 모범이라고 여기는 교리도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관한 교리들이 완벽하지 않습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대신 죽으셨다는 속죄의 교리는 법정의 용어가 강조된 느낌이 큽니다. 우리가 치를 값을 대신 치르셨다는 것은 지금도 법정에서 통용되는 보석금 제도를 떠올립니다. 예수님 십자가의 죽음이 개인적인 신앙에 머무는 경향도 있습니다.

 

1930년 스웨덴의 신학자 구스타프 아울렌(Gustaf Aulen,1933-1952)은 그의 책 <승리자 그리스도 Christus Victor, 1930)에서 초대 교회에서 주장했던 고전적 속죄론을 다시 정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는 목적을 넘어서, 이 세상의 모든 악한 세력을 물리친 승리의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초월하는 모든 악한 세력에 대한 승리였기에 우주적 승리라고 보았습니다.

 

아울렌이 정리한 승리자 그리스도는 초대 교회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핍박과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반대와 저항도 거셌습니다.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을 넘어서 이방 세계로 나가면 다양한 종교와 신들이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는 승리의 상징이었습니다. 모든 악한 세력을 물리치는 능력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보낸 편지에서 예수님을 믿기 전의 상태를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2:2)고 했습니다.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주셨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죄와 허물에서 구원받았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습니다. 공중 권세 잡은 자에게서 해방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죄 가운데 있던 우리를 살리시고, 우리를 무너뜨리는 법조문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핍박하고 박해하는 모든 세력을 십자가의 능력으로 이기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승리입니다.-河-

 

십자가의 은혜 (3)

속죄(Atonement)

 

예수님의 십자가는 구약 율법의 완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알려주신 율법에 따라 양이나 염소 또는 소 등으로 속죄의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제물에게 죄를 전가(transfer)하고, 생명을 뜻하는 피를 제사장이 제단에 뿌림으로 죄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어린양 예수라는 표현이 있듯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구약의 희생 제물과 연결됩니다. 율법에 의하면 죄를 지을 때마다 속죄의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단번에(once and for all) 속죄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는 구약에서 요청하는 속죄 제사를 완성한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그 육체로 허물어 버리셨습니다(엡2:14).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해서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하나님과 우리를 이어주는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사해진 것을 속죄(atonement)라고 합니다. 속죄를 설명하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종교 개혁자 루터와 캘빈은 예수님께서 우리가 받을 형벌을 대신 받으셨다는 형벌 대속(penal substitution)을 주장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죄로부터 면제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가 받을 형벌을 대신 받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었다는 교리입니다.

 

오리겐을 비롯한 초대 교부들이 주장한 속전설(ransom theory)도 있습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사탄의 지배하에 있습니다. 거기서 빠져나오려면, 누군가 대가를 지불하고 구해 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값을 지불하시고 악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교리입니다.

 

만족설(satisfactory theory)도 있습니다. 11세기 영국 캔터베리의 주교 안셀름이 제안했습니다. 죄를 지은 인간이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죄를 지은 채로 하나님께 나가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해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인이었던 인간이 의롭게 되었고,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이 밖에도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이 무조건적인 사랑의 모범이 되었다는 교리,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는 죽음의 세력에 대한 승리의 선포라는 교리까지 속죄의 교리는 다양합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