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보는 교회 (6)

<돌보는 교회>라는 올해 표어에 맞춰서 말씀을 나누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첫 번째 두 주는 자신을 돌보는 삶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롬12:1-2).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보는 것은 다시 변화를 받아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삶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예배가 되는 것이 자신을 돌보는 마지막 목적입니다.

 

세 주에 걸쳐서 공동체를 돌보는 것에 대해서 배웠습니다(롬12:3-16). 믿음의 분량과 은사대로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를 세워갑니다. 이를 위해서 거짓 없는 사랑, 악이 아니라 선에 속하고, 형제를 사랑하며 서로 먼저 존경하고, 성도의 쓸 것을 공급하며 나그네를 환대하고,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며, 즐거워하는 자와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와 함께 울어야 합니다. 서로 마음을 같이해서 낮은 곳에 처하며 지혜롭게 교회를 돌보라는 교훈도 있었습니다. 우리 힘으로 교회를 돌보는 것에 한계가 있으니 기도하면서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오늘은 마지막 시간으로 세상을 돌보는 것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롬12:17-21). 우리의 삶은 궁극적으로 세상을 향해야 합니다. 세상 속에서 선교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을 돌보는 방법에 대해서 바울이 구체적으로 알려줍니다.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않는 것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박해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 것입니다. 신앙에 대한 도전이기에 견디기 어렵고 때로는 수모를 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들을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라는 권면입니다. 박해하는 것은 누가 보아도 악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박해하는 자들을 저주하면 똑같이 악으로 갚는 것이니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선을 도모해야 합니다. 선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입니다. 가능하면 모든 사람과 화목하는 것이 선입니다.

 

우리가 나서서 원수를 갚을 것도 아닙니다. 대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자가 되셔서 악에 속한 사람들, 박해하고 원수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을 심판하시고, 하나님 백성의 설움을 갚아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대적하는 자들이 주릴 때 먹이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면서 축복할 뿐입니다. 이것이 원수의 머리 위에 숯불을 쌓아놓는 격이 될 것입니다. 머리에 숯불을 쌓아두는 것은 구약의 전통입니다(잠25:21-22). 비록 원수라도 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라는 것입니다. 원수를 축복하고 섬길 때 그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고 회개의 자리로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속에서 빛으로 살고, 세상을 돌보는 참빛 식구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河-

돌보는 교회 (5)

돌보는 교회라는 올해 표어를 따라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자신을 돌보고, 교회를 돌보며, 이웃을 돌보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핏값을 주고 사신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이지 분별하면서 자신을 돌봐야 합니다.

 

가정과 교회를 포함한 공동체를 돌보는 것도 필수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믿음의 분량대로 공동체를 섬깁니다. 우리 각자가 예수님의 몸을 이루는 지체라는 마음으로 각자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합니다. 서로 거짓없이 사랑하고, 악이 아니라 선에 속해야 합니다. 형제를 사랑하고 서로 우애하며 존경하기를 먼저 해야 합니다. 사랑받기를 기다리거나 돌봄을 기대하지 말고 먼저 사랑하고 돌보는 것입니다. 우리 서로 이렇게 돌봄을 실천하면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하나님 나라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힘으로 공동체를 돌보면 쉽게 지칩니다. 그리스도인의 돌봄은 신앙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합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커다란 어려움이 닥쳐도 견뎌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끊임없는 기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공동체 섬김에 대한 실제적인 교훈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고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입니다. 로마 교회는 비교적 풍부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어려운 성도들이 있었을 텐데 그들을 도우라는 권면입니다. 대도시 로마를 찾는 나그네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들도 대접하라는 부탁입니다. 이것은 바울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씀입니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그를 대접하는 손길이 있었기에 전도 여행이 가능했습니다.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는 말씀은 교회 안팎에 모두 해당합니다. 로마 교회 안의 갈등은 서로 시기하고 미워하는 관계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면 불평하고 미워하며 심한 경우 서로를 박해했을 것입니다. 교회 밖에서의 핍박과 박해는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처럼 박해하는 자를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라고 부탁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미덕입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와 함께 우는 것은 한마음을 품고 서로를 긍휼히 여기라는 부탁입니다. 말 그대로 공동체임을 마음과 몸으로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앞에서는 물론 빌립보 교회에도 부탁했던 대로 마음을 같이 하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을 같이하고 서로를 겸손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은 그리스도 교회에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공동체가 이렇게 세워집니다. 우리가 서로 돌볼 때 이룰 수 있는 꿈의 공동체입니다.-河-

참빛 식구들의 일주일

자기를 돌보는 삶에 대해서 살펴볼 때, 로마서 12장 1절을 함께 나눴습니다. 우리의 몸(구체적인 삶의 현장)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것이 자기 돌봄의 목적이라고 했습니다. 매주 모이는 주일예배와 더불어 가정과 세상 속에서 보내는 6일간의 삶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 교회는 흩어지는 교회를 지향합니다. 우리 교회에 모임이 많지 않은 가장 큰 이유입니다. 주일에 모여서 함께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서로 격려하며 친교한 후에 세상으로 흩어집니다. 그리고 각자의 삶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때때로 신앙이 좋은 것과 교회 활동을 많이 하는 것을 혼동했습니다. 주일이나 주중에 교회에 와서 살고, 자기 삶을 희생하면서 교회 활동하는 것을 신앙이 좋다고 했고 그런 교회를 두고 성령 충만하다고 했습니다. 이런 식의 교회 활동에 익숙해서 우리처럼 예배 후에 세상으로 흩어지는 교회의 모습이 어색할 수 있습니다. 뭔가 활동을 해야 할 것 같고 신앙의 열심이 식은 것 같은 느낌이 들수 있습니다. 그동안 그렇게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교회 활동을 줄이고 가정과 세상에서의 삶을 중요시한다고 해서 신앙이 미지근해지거나 우리 교회 방식에 길들어서 여유시간을 헛된 곳에 쓰면 안 됩니다. 저 역시 우리 교인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6일을 힘닿는 대로 돕겠습니다. 올 한해 다음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한 주간을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주일은 참빛식구들이 함께 모여서 드리는 공동체 예배입니다. 조용한 기도부터 마지막 축도와 식사 기도까지 모든 순서에 주님의 임재를 구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일주일 동안 세상에서 살아갈 힘과 지혜, 주의 은혜를 충분히 경험하기 원합니다. 친교를 통해서 서로 격려하고, 기도할 제목을 찾아내고, 교회의 하나 됨을 확인하기 원합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카톡으로 보내드리는 메시지를 갖고 각자의 자리에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합니다. 매일의 말씀을 참빛식구들 각자에게 맞게 적용하시길 바랍니다. 수요일에는 저녁 예배에 오실 수 있습니다.

 

목요일에는 목요 서신을 통해서 세상에서의 삶을 점검하고, 자신은 물론 이웃과 세상에 관심을 갖는 시간입니다. 첨부한 주일 설교를 들으시고, 수요예배 교재까지 읽으시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주보의 생명샘을 읽으시면서 지난 주일 말씀을 다시 묵상하시는 것도 도움이 되십니다.

 

토요일 아침에는 새벽 기도회가 있습니다. 가까이 계시는 성도님들의 참여를 권합니다. 무엇보다 토요일은 한 주간의 삶을 마무리하고 주일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아무쪼록 참빛 식구들께서 일주일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시고 세상에서 복음의 빛을 비추는 복된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河-

돌보는 교회 (4)

돌봄은 관계와 밀접히 연결됩니다. 가정이나 교회를 비롯한 공동체 속에서의 돌봄은 처음부터 끝까지 관계 속에서 이뤄집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자신을 돌보는 것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뤄집니다. 자신을 한 발짝 멀리 뛰어 놓고 바라보면 우리 자신도 돌봄의 대상인 타인처럼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관계가 좋으면 그곳이 하늘나라입니다. 잠언에서도 마른 떡 한 조각을 갖고 화목한 것이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다투는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미움과 갈등, 다툼으로 관계가 틀어지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평화가 깨지고 기쁨이 사라지니 관계가 깨진 곳은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없습니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인 돌봄은 우리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유지시키는 일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돌봄은 서로 지체 의식을 갖고 은사를 따라서 행하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 곧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명과 은사를 따라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생각을 우리 모두 공유할 때, 교회를 소중히 여기게 되고 온 힘을 기울여서 공동체를 세워갈 것입니다.

 

오늘 본문(롬12:9-13)은 공동체를 세우는 구체적인 원리와 태도를 알려줍니다.  그 한가운데 “사랑”이 위치합니다. 교회를 섬기고 성도들을 돌보는데 사랑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 본문의 교훈은 교회뿐 아니라 가정과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교제까지 확대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선, 거짓 없는 사랑으로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해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거짓없이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공동체와 형제자매를 살리는 선함을 사랑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둘째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형제 사랑은 말 그대로 서로 사이 좋게 지내는 것입니다. 미움과 갈등을 삼가야 합니다. 존경해야 합니다.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먼저 사랑해주고, 관계를 개선하며, 존경해 주길 기다릴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나서야 합니다. 돌봄은 받는 것보다 베풀 때 기쁨이 있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부지런히 주를 섬겨야 합니다. 행여나 이웃을 섬기다가 주님을 섬기는 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고 환난 중에 참고 기도하는 신앙의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은 성도의 쓸 것을 공급하고 나그네를 대접하는 구체적인 돌봄입니다. 이렇게 주를 섬기며 이웃을 돌볼 때, 우리가 속한 교회와 공동체가 천국으로 변할 것입니다.-河-

돌보는 교회 (3)

자신을 돌보는 것은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리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가 되는 것이 우리 자신을 돌보는 최종 목적입니다.

 

돌봄의 범위는 자신을 넘어서 공동체로 향해야 하는데 오늘 본문이 돌봄의 범위를 공동체까지 넓혀줍니다. 바울이 편지를 보내는 로마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제국의 수도였기에 교회도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찾아와서 예수님을 믿었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과 헬라 출신 교인들 간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때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에 비유합니다. 이것은 에베소서를 비롯한 바울서신에서 끊임없이 강조하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교회가 단지 건물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모임도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예수님께서 핏 값을 치르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행20:28).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들입니다. 팔과 다리와 같은 지체없이 온전한 몸을 이룰 수 없습니다. 각 지체가 몸에 분리되어도 안 됩니다. 지체가 몸을 구성하고 몸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도 지체인 성도들로 인해서 세워집니다.

 

12장 3절은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로 시작합니다. 바울의 편지는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은혜에 기초합니다. 바울이 로마 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지만, 이 말씀이 곧 하나님 말씀이 될 수 있는 근거입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 “각 사람”에게 권면합니다. 일일이 모든 성도에게 권면하는 것이니 바울의 권면에서 면제될 사람이 없습니다.

 

제국의 수도 로마에 세워진 교회였으니 자부심이 대단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은 서로 옳다고 팽팽하게 맞서는 경우도 많았을 것입니다. 공동체가 안고 있는 분열의 씨앗입니다. 바울은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것을 마음에 품지 말라고 합니다. “겸손”을 뜻합니다. 빌립보서 교회에 권면했듯이 자신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분량은 우리에게 믿음의 크고 적음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을 갖고 지혜롭게 처신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데 필요한 것이 은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각 성도에게 은혜를 나눠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은사는 예언, 섬김, 가르침, 위로, 구제, 다스림, 긍휼입니다. 성도들은 받은 은사를 갖고 각자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섬길 뿐입니다. 은사대로 섬긴다고 해서 한 가지 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 돌아보면서 사랑과 선행으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두루 섬겨야 합니다. 우리 안에 교회를 돌보는 기쁨이 충만하기 바랍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