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하나님 (1)

보혜사 성령

 

팬데믹 기간 동안에는 <십자가 십자가>로 시작해서 지난주 까지 <부활 그 이후> 이제 오늘부터는 오순절 성령 강림과 성령강림 주간을 맞으면서 <성령님 우리 성령님>이라는 주제로 주일 말씀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주제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예수님께서 친히 이루신 사역이고, 성령은 3년 공생애를 마친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역사 속에서 일하십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2천년 전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죽음의 길로 달려가던 모든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제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성령 하나님에 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성자 예수님은 실체 즉 육신을 입고 2천년 전 팔레스타인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활동 반경은 갈릴리와 예루살렘 100마일 정도에 그쳤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의 한계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셨으니 그것만 보아도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면, 하나님 부재(不在,absence)의 무법천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 노아 홍수 이전의 타락한 인류,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빛으로 특별히 선택하신 이스라엘의 배신까지 인간은 언제나 청개구리처럼 행동했습니다. 하나님 없는 인간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속사역을 완성하고 거친 세상에 남겨진 하나님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거룩한 영(靈, spirit)으로 임하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표현 그대로 영이시니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성령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루하흐>는 바람 또는 숨결이라는 뜻입니다. 바람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존재와 위력을 느낄 수 있듯이 우리가 성령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때로는 온화한 봄바람처럼 임하시고, 때로는 폭풍처럼 몰아치십니다. 성령이 주시는 생명의 바람이 불어오면 죽은 자가 살아나고, 마른 뼈들이 살아나서 군사가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 하나님을 느끼고 성령과 동행하는 신앙을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성령에 대해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연속 설교를 통해서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 올바로 배우고 성령 하나님을 깊이 느끼기 원합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 안에 계시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의와 희락과 화평의 하나님 나라가 되도록 일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찬양합니다.-河

부활 그 이후 (5)

부활이 없으면

 

사순절 한가운데를 지나면서 예배로 모이지 못하는 동안 <십자가 십자가>라는 주제로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묵상했습니다. 쉽지 않은 일상이지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어진 길을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십자가 은혜를 생각하면서, 우리 앞에 주어진 어려움도 능히 이기고 그 깊고 큰 은혜에 잠기길 원했습니다. 하나님과 이웃과 화목을 이룬 십자가, 하나님께 버림받기까지 자신을 희생하시면서 새로운 생명을 주신 예수님의 십자가, 세상의 형틀을 승리의 상징으로 만드신 십자가의 능력을 차례로 배웠습니다.

 

부활 주일을 보내고 교회력에 따라 부활 절기를 지내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제자들을 만나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도 예루살렘을 떠나서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를 예수님께서 찾아가셨습니다. 함께 걸으며 성경 말씀을 풀어 주실 때 제자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떡을 들어 축사하시고 제자들에게 떼어 주시니 제자들의 눈이 밝아져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은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셨을 때, 현장에 없던 도마는 자신의 눈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의심이 많기보다 집요한 신앙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도마를 찾아오셔서 손의 못 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보여주셨습니다. 도마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도마는 눈으로 확인하고 믿었지만, 부활의 주님을 보지 못하면서 믿는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축복하신 예수님 말씀도 기억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보았지만, 여전히 죄책감에 쌓여서 갈릴리 어부로 돌아온 베드로와 몇몇 제자를 예수님께서 찾아가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세 번의 질문을 통해서 베드로를 회복시켜 주시고 그에게 양을 맡기셨습니다. 이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찾아오셨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확신과 장차 가야 할 인생 목표를 발견했습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는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을 그대로 지켰습니다. 막연한 기다림을 한마음과 간절한 기도로 극복했습니다.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신앙 안에서 끝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 끝에 희망이 있습니다. 십자가 너머에 부활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살아생전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출세와 성공이 보장된 기득권을 버리고 예수님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는데 그는 이 모든 것이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부활 신앙의 힘입니다. 우리도 부활의 길을 걷고 부활을 살기 원합니다. -河-

부활 그 이후 (4)

기다리는 사람들

 

우리는 지금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이 얼른 개발되기를, 바이러스 전파를 통제할 수 있는 테스트와 추적 시스템이 구축되기를, 학교나 직장은 물론 교회가 문을 열고 함께 모여 예배할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

 

기다림에는 끝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이뤄지는 기다림은 견딜 만 합니다. 그런데 희망이 보이지 않는 막연한 기다림이 계속 되면 몸과 마음이 지칩니다. 때로는 하나님을 향해서 탄식과 원망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다림(인내)을 믿음의 정도를 가늠하는 척도라고 하는가 봅니다.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기대와 달리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십자가형을 받으시면서 기다림의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메시아로서 큰 능력을 행하시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실 줄 알았는데,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것을 보고 실망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았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이 다시 모여서 패잔병처럼 처져 있을 때, 예수님의 부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셔서 손의 못 자국과 옆구리 창 자국을 보여주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갈릴리로 내려가셔서 베드로를 만나시고 “사랑”으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장차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할 사도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40일 동안 부활하신 자신의 몸을 오백여 형제들에게 한꺼번에 보이시고, 제자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알려주셨습니다.

 

하늘에 올라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부터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될 것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갔던 두 제자, 갈릴리에 가서 다시 고기를 잡던 베드로였기에 성령이 임할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 것을 신신당부하신 것입니다.

 

예전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무슨 뜻인지 모르던 제자들인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고 예수님 말씀이 진리라는 확신도 생겼습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늘 모였던 다락방에서 성령을 기다리며 기도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제자들의 변화된 모습입니다.

 

그곳에 모인 제자들이 120명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떠나시고 10일이 지났을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막연한 기다림 인줄 알았는데 기다림에 끝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말씀을 꼭 붙들고 기다린 덕분입니다. 우리의 기다림에도 반드시 끝이 있음을 믿고 믿음으로 이 시간을 지내기 원합니다.-河-

부활 그 이후 (3)

<부활절 그 이후>라는 주제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을 차례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낙심한 채 고향으로 내려가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마음에 뜨거움을 경험하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에 손을 넣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버티던 도마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제는 믿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믿는 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사람을 변화시켰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신비로운 몸을 입으신 것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살지만, 하늘의 소망을 품고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힘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베드로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예수님을 처음 만난 이래 3년 동안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으뜸이었습니다. 배에 가득 고기를 잡았지만, 사람낚는 어부가 될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을 듣고 모든 것을 남겨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예수님처럼 바다 위를 걷기도 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을 받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16:16)이라고 정답을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면서 그에게 천국의 열쇠를 맡기셨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서 예수님께서 절대로 고난받고 죽으실 수 없다고 항변하다가 “사단”이라는 야단도 맞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세 번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니 펄쩍 뛰면서 예수님과 함께 죽을 것이라고 선언했지만, 바로 그 밤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닭이 울자 예수님 말씀을 떠올리면서 가슴을 치고 울면서 회개했습니다. 이처럼 베드로의 신앙 여정은 파란만장했습니다.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자기 의도대로 신앙의 길이 전개되지 않았지만, 베드로는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니 죄책감이 크게 밀려왔습니다. 결국 몇몇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로 내려가서 다시 어부가 됩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있는 베드로를 어김없이 찾아오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시면서 베드로를 회복해 주시고 다시 주님의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베드로 역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회복되고 예수님께서 위탁하신 대로 예수님의 양을 치는 진정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부활의 주님은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고, 다시 시작하게 하시며, 가야 할 길을 알려주십니다. 할렐루야! -河-

부활 그 이후 (2)

의심 많은 도마

 

조심해야 할 신앙의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믿고 복을 받으려는 기복 주의입니다. 물론 신앙의 길을 가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복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은 놀부 심보입니다.

 

둘째는 모든 것을 영적으로 해석하고 자신이 하나님과 직접 연결된 듯이 믿는 신비주의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한 방식으로 말씀하실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성경과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는 상식적인 방식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셋째는 지나친 개인주의입니다. 각자의 고백과 결단으로 하나님을 믿지만, 우리 모두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길 원하십니다. 신앙이나 축복을 자기 혼자 독점하려고 하거나, 기독교인 아닌 경우를 배타적으로 밀어내는 것도 조심할 신앙 유형입니다.

 

넷째는 겉과 속이 다른 형식주의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싫어하신 것이 겉과 속이 다른 위선이었습니다. 신앙은 겉치레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내면적이고 실제적인 삶입니다.

 

마지막으로 맹목적인 신앙도 조심해야 합니다. 분별력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입니다. 무엇을 믿고 왜 믿는지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믿습니다. 신앙이 좋아 보여도 뿌리가 없고, 여러 가지 것들이 혼합된 추한 신앙일 가능성이 큽니다. 깊이 고민하고, 질문하며, 때로는 확고한 신앙에 이르기 위해서 회의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쉽게 믿지 않았습니다. 다른 제자들의 말만 듣고 부활을 믿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봐야 믿겠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을 처음 찾아오시고 팔 일이 지났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제자들이 있는 곳에 오셨습니다. 도마도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있었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를 찾아가신 예수님께서 도마도 찾아가십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20:27). 부활을 확인한 도마가 예수님을 향해서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의심 많은 도마는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되었습니다. 도마가 부활을 의심했다고 예수님께서 그를 무시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찾아가셨습니다. 예수님과 신앙에 관해서 진실로 의심하고 회의하는 사람에게 임하는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더 귀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도마 이후에 우리를 포함한 모든 사람을 향한 예수님의 축복 선언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쉼 없이 믿음의 길을 가기 원합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