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베스의 기도 (1)

새로운 천년이 시작된 2000년에 미국의 복음주의 목회자 브루스 윌킨스(Bruce Wilkinson)의 책 <야베스의 기도 The prayer of Jabez)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미국에서 뉴욕 타임스 베스트 셀러에 올랐고,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교인들이 야베스의 기도를 갖고 기도했었습니다: ”복에 복을 더하소서” “나의 지경을 넓혀 주소서”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소서” “환난을 벗어서 근심이 없게 하소서.”

 

그런데 야베스의 기도를 주문 외우듯이 반복해서 기도하고, 그렇게 하면 기도가 이뤄진다고 생각하는 기복주의 신앙이 발생한 것입니다. 소위, 형통의 복음 전파에 야베스의 기도가 사용된 것입니다.

 

신앙에는 욥기나 시편의 탄식시처럼 고난도 포함되어 있는데 형통만 강조하니 문제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강조하는 성경의 기도가 아니라, 기복 종교의 주술 행위에 가깝기에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습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듯이 야베스의 기도를 지나치고 그릇되게 적용하고 사용한 것입니다.

 

우리는 매년 기도에 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대개 부활절 전후로 봄에 나눴는데, 올해는 다른 주제의 설교를 준비하다가 가을까지 밀렸습니다. 기도는 우리 삶의 힘입니다. 기독교인은 무릎꿇고 기도하면서 살아갑니다.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마음에 모십니다.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그런 점에서 기도와 말씀은 서로 짝입니다.

 

앞으로 3주 동안 야베스의 기도를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브루스 윌킨슨의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에서 강조하는 주문을 외우는 기도가 아니라, 역대상 4장 9-10절의 야베스의 기도에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과 삶이 새롭게 되고, 요즘처럼 어려운 시대에 힘과 지혜를 얻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야베스(“아픔” “고통”)는 매우 어렵게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낳고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라는 뜻에서 야베스[야베츠]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여기서 “수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오체브”인데 이 단어를 변형해서 “야베츠”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탄생은 어려웠지만, 그는 형제들보다 존귀했습니다. 사실 역대상 본문에 야베스의 형제들이 누구인지를 알려주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어렵게 낳은 야베스를 특별하게 대우했을 것입니다. 그의 탄생 자체가 다른 형제와 달랐으니 야베스의 삶 자체가 존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작은 힘들었지만, 야베스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배우겠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역대상은 족보로 시작합니다. 아담부터 수많은 이름이 등장하는데, 야베스의 경우 특별히 그의 사연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무기를 사용해서 땅을 정복한 다른 족속들과 달리 기도로 그의 지경을 넓혔기 때문입니다.-河-

그리스도인의 삶 (8)

지난 넉 달 동안 로마서를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복음>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주제를 공부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서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신 구원 계획이 예수님을 통해서 완성되었음을 배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충분히 마련하신 사건이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의 집에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맞아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우리의 행위나 공로가 아닌 예수님의 은혜에 기반한 구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의롭게 된 우리에게 요청되는 삶이 따로 있습니다.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신앙과 삶이 따로 있으면 안 됩니다. 의롭게 되었으니 거룩한 길을 가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연결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강한 자가 연약한 자를 받아주어야 합니다. 서로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사랑으로 용납해야 합니다. 자기가 아니라 이웃에게 기쁨이 되는 것이 곧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대부분의 로마서의 교훈이 교회 공동체와 관련된 것에 우리 모두 주목했습니다. 로마서를 따른다고 하면서 신앙이 개인주의화된 것을 조심해야 함을 배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구별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로마 교회의 상황에서 그들을 박해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을 저주하지 말고 축복해야 합니다. 원수의 머리에 숯불을 쌓아두면서, 우리를 괴롭히고 대적하는 원수가 회개할 수 있기를 기대해야 합니다. 원수를 갚는 것을 포함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우리도 걸어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 15장 7-13절은 “그러므로”로 시작하는 로마서 전체의 결론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 없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모든 사람을 받아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같은 죄인도 받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서로 받아주면서 한마음으로 의로운 길을 갈 때, 하나님께서 한없이 기뻐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하나님의 뜻임을 배웠습니다.

 

바울은 시편, 모세오경(토라), 예언서의 말씀을 인용해서 예수님께서 오심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은 유대인은 물론 모든 열방을 위한 사역임을 선포합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든 것을 통합하는 우주적인 사건입니다.

 

마지막 13절은 믿음 안에서 완성되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송영이자 기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기쁨과 평안은 하나님 나라의 속성입니다(롬14:17).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능력 안에서 하나님 나소망을 사는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하십니다. -河-

그리스도의 삶 (7)

로마서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교리에 관한 말씀을 넘어서 의롭게 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대부분의 말씀이 교회 공동체와 연결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개인의 결단이지만,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 하나님 백성이라는 공동체에 편입되기 때문입니다.

 

로마 교회와 마찬가지로 각 지역에 세워진 교회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있는 통로입니다.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지기까지 교회가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교훈하면서 교회를 강조한 것입니다.

 

로마서에는 없지만, 교회와 더불어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나타내야 하는 기관이 가정입니다. 가정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부부가 되면서 세워진 태초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셨으니, 가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다양하고 부족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완벽할 수 없습니다. 로마 교회에는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유대교에서 개종한 그리스도인들과 율법에서 자유할 수 있다는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사소한 것(아디아포라)을 두고 서로 판단하고 정죄하지 말것을 부탁합니다. 생각과 의견이 달라도 모두 하나님 백성들입니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 앞에 각자 서게 되고 그때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서로 받아주고 환대하면서 한마음으로 교회 공동체를 세워가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랑과 덕”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나와 다른 형제를 환대하고 받아주는 것입니다. 형제에게 걸림돌이 되면 안 됩니다. 형제를 무너뜨려도 안 됩니다. 이처럼 공동체의 사랑은 내가 아니라 상대방을 향합니다. 이웃을 기쁘게 합니다.

 

이것은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습니다. 그때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 자기의 몸까지 내주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으면서 ‘나’는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갑니다. 예수님을 마음 한 가운데 모시지 않으면 진정한 형제 사랑을 실천할 수 없습니다.

 

생각의 차이로 교회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의견의 차이로 분쟁하고 교회가 갈라지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치명적입니다. 믿음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품어야 합니다. 자신 생각이나 행동이 옳다고 생각해도 그것으로 인해서 누군가 시험에 든다면 삼가야 합니다. 자기를 희생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됩니다. 사랑과 덕으로 세워가는 공동체 그곳이 곧 하나님 나라입니다.-河-

그리스도인의 삶 (6)

로마서 14-15장은 앞에서 제시한(12-13장)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한 구체적인 적용입니다. 앞에서는 그리스도인 개인이 드리는 예배부터 시작해서 공동체와 세상에서의 삶에 대한 모범답안을 알려주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추구할 목표였습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다릅니다. 로마 교회에는 믿음이 약한 자들과 강한 자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믿음이 약한 자들은 예수님을 믿었어도 여전히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유대교 출신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믿음이 강한 자들은 기독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에게 서로 비판하지 말라고 권면했습니다. 모두가 같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도 모든 사람을 받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강한 자는 물론 약한 자를 위해서도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판단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니 서로 비판하지 말고 받아 주어야 합니다. 사랑 가운데서 이뤄지는 성도 간의 환대입니다.

 

로마 교회에 있었던 두 그룹의 갈등에 대한 교훈이 오늘 본문에서도 계속됩니다. 서로 받아 주는 것을 넘어서, 서로에게 걸림돌이 되면 안 됩니다:“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형제가 걸려 넘어지면 안 됩니다. 절대로 일부러 걸려 넘어지게 만들면 안 됩니다. 서로 판단하고 정죄하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특히 음식을 놓고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을 나눌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확신을 갖고 먹으면 됩니다. 믿음으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먹고 마시는 것이 큰 문제는 아닙니다. 단지, 그것으로 인해서 형제가 시험에 들고, 근심하게 되면 안 됩니다. 그러니 먹고 마심의 기준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의 형제에게 있습니다. 형제를 위한 사랑이 앞서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여기서 의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떳떳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음식을 먹는 것도 ‘의’에 관련된 것입니다. 평강은 이웃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에 이어서 이웃과의 수평적 관계도 중요합니다. 서로 받아주고 배려하고 존경하는 것입니다. 그때 희락(기쁨)이 임합니다. 그곳이 곧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러니 서로를 섬기고 덕을 세워야 합니다. 덕을 세우는 것은 개인의 신앙은 물론 공동체를 세우는 것입니다. 흔들거나 넘어뜨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서로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도 덕을 세우지 못합니다. 사랑과 섬김이 덕을 세웁니다. 각자 믿음으로 행하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것이 우리의 몫입니다. -河-

그리스도인의 삶 (5)

로마서 12장부터 시작한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한 말씀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로 12-13장은 예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12:1-2).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 고백입니다.

 

그 다음은 신앙 공동체를 세우는 것에 대해서 알려주었습니다(12-3-13). 믿음의 분량대로 받은 은사를 갖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웁니다.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형제를 사랑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교훈합니다(12:14-21). 핍박하는 사람들을 저주하지 않고 축복합니다. 원수의 머리에 숯불을 쌓아놓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이웃 사랑의 완성입니다. 세상의 권력자와 정부에 대한 교훈도 있었습니다(13:1-7). 선과 악을 심판하고 세상의 평화와 질서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통치자들에게 협조하고 시민으로 세금을 납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십계명을 비롯한 모든 율법의 완성이라고 했습니다(13:8-10). 서로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사랑의 빚을 무한대로 늘려가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결국에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을 준비가 됩니다(13:11-14).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한 모든 답안을 알려주었다면, 우리가 앞으로 공부할 14-15장에서는 로마 교회는 물론 로마 제국 안에 세워진 초대 교회들의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사도 바울의 권면입니다.

 

당시 교회에는 구약의 율법을 알고 지키는 유대인들과 유대교와 상관없이 예수님의 복음을 믿고 개종한 이방인들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제국의 수도라는 성격상 교회에서 이방인들이 다수를 차지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여전히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먹거리와 안식일을 비롯한 절기를 지켰습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이들을 믿음이 약한 자라고 했습니다. 반면, 이방인들은 믿음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고 보았고, 바울은 이들을 믿음이 강한 자라고 불렀습니다.

 

생각과 생활 방식을 두고, 옳고 그름을 가리면서 각자 자기들이 맞다고 주장했습니다. 바울은 서로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말 것을 권면합니다. 판단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끼리 판단하고 분쟁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예수님 안에 있다면, 서로 존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