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오시는 예수님 (7): 삭개오

힘들고 지쳐서 하나님께 나올 수 없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나인성 과부가 좋은 예입니다.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여인을 향해서 불쌍한 마음이 동하시니 관에 손을 대시는 등 율법을 파괴하시면서 죽은 아들을 살려 주셨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예수님의 도움을 기다리는 것도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사모하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고 믿는 여정입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걷는 구도자의 길입니다. 예수님을 닮기 위한 순례길입니다.

 

힘이 없을 때는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손잡고 함께 걸어가십니다. 예수님을 찾아갈 힘이 있을 때는 우리 스스로 예수님께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향해서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맞아주시고 특별한 은혜와 사랑을 부어주십니다. 이처럼 신앙은 예수님과 우리가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되고, 거기서부터 발전하고 성숙합니다.

 

오늘 본문의 삭개오는 여리고 세무서의 최고 관리였습니다. 당시 세리는 로마를 위해서 세금을 걷는 사람이었기에 자기 백성으로부터 신망을 얻지 못했습니다. 또한 대부분 세리들은 로마가 책정한 세금보다 많이 걷어서 여분을 자기가 착복했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삶을 누릴 수 있었지만,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세리들도 있었습니다. 삭개오도 그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게다가 삭개오라는 이름에는 그의 직업과 달리 “의롭다”는 뜻이 들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들은 삭개오는 예수님을 꼭 보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을 멀리서나마 바라보면 답답함과 삶의 무의미함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키가 작아서 군중 틈에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려는 열정이 삭개오로 하여금 옆에 있는 뽕나무에 올라가게 했습니다. 사람들의 눈길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보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뽕나무 위의 삭개오를 보시고 그를 찾아가십니다. 그리고 삭개오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으시면서 그를 하나님 백성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삭개오 역시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착취한 것을 보상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새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여리고 세무서장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먼저 뽕나무에 올라갔고,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원하는 자를 외면하지 않고 찾아오셔서 그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을 찾는 구도자가 누리는 은혜입니다. 할렐루야! -河-

찾아오시는 예수님 (5): 나인성 과부

우리가 믿는 기독교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주제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십자가가 맨 앞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가 십자가를 통해서 드러났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엎드려 자신을 돌아보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면서 은혜를 체험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지고 주어진 인생길을 걸어갑니다.

 

사랑도 기독교의 대표적인 주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무척 사랑하셔서 그 아들을 아끼지 않고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무 조건이 없어서, 누구든지 하나님께 나오는 사람에게 한량없이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우리도 세상에 나가서 이웃을 사랑합니다. 생명과 구원도 중요한 덕목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던 옛 자아를 버리고 예수님 안에서 거듭 태어난 것입니다. 생명의 길을 걸어갑니다.

 

또 한 가지 기독교에 있는 특별한 개념이 “성육신”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모두 비우시고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만왕의 왕께서 종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육신의 몸을 입고 스스로 찾아오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성육신 신앙이 필요합니다. 우리도 누군가 찾아 나서야 합니다. 어려운 이웃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약한 자들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들과 같은 처지에 들어가서 같은 마음으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생명의 길을 함께 걷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성육신 신앙이 있을 때, 세상 속에서 구원의 은혜와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3년 동안 사역하시면서 많은 사람을 찾아가셨습니다. 특별히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 소외되고 연약한 사람들을 찾아가셨습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고, 도움이 되셨고 그들에게 진정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 깊은 곳에 불쌍히 여기시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인성에 사는 과부가 하나뿐인 아들을 잃었습니다. 나인성 과부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아들의 장례를 위해서 성문을 빠져나오는 광경을 보신 예수님 안에 측은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눅7:13). 그리고 장례 행렬에 다가 가셔서 아들을 살려 주셨습니다. 과부가 아들을 살려달라고 예수님께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과부를 불쌍히 여기셔서 먼저 다가 가셔서 살려주신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 사랑의 특징입니다. 나인성 과부를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께서 우리도 불쌍히 여기시고 찾아오실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河-

찾아오시는 예수님 (4): 대강절에

대강절(Advent)첫 번째 주일입니다. 마음속에 촛불 하나 밝히고 성탄절에 오실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올해 대강절 기간 동안 참빛 식구들께 두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는 개인적으로 영적 일기를 쓰면서 한 달을 보내는 것입니다. 아침마다 큐티하고 그것을 경건의 일기로 기록하시거나, 편한 시간에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일기를 쓰실 것을 추천합니다. 영적 일기(spiritual journal)는 신앙과 삶에 깊이를 더해줍니다. 겉으로 표출하는 신앙을 넘어서 우리의 깊은 내면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으로 채워줍니다.

 
둘째는 올해 세 번째 <작은 사랑 나눔>으로 지역 신문사에서 주관하는 노숙자들에게 슬리핑 백과 점퍼를 나눠주는 운동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12월 둘째 주에 예전처럼 가정별 또는 개인별로 헌금한 것을 이름 없이 돕도록 하겠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서 한 번 식사비를 절약하는 마음으로 (20불 한도) 참빛 식구들 모두 참여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신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실지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날은 안식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찾아가십니다. 그리고 그를 가운데 세우시고,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과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음을 알려주신 후에 그의 손을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질병을 죄의 결과로 생각했습니다. 특히 육체에 장애가 있거나 온전하지 않았을 때 몹시 업신여겼습니다. 질병이 주는 고통보다 사람들의 시선과 비판이 더 뼈아픈 시대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병자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온전케 되기를 원했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면서 고쳐주셨습니다. 때로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손이 마른 사람처럼 예수님께서 직접 찾아가셔서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안식일에 그것도 회당에서 병을 고치시는 것을 본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 법을 어기셨다고 그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이들의 마음속에는 질병으로 고생하는 이웃들을 향한 사랑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향해서 분노하십니다. 그리고 마음이 굳어진 것을 탄식하시고 안타까워하십니다.

 
대강절을 맞아서, 우리의 부족을 채우시고 회복시켜 주실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고 복음을 향해서 마음을 활짝 열기 원합니다. 행여나 우리 안에 굳은 마음이 있다면, 부드러운 마음을 준비하고 주님을 기다리기 원합니다. 어려운 이웃에게 선을 행하고 생명의 복음을 전하기 원합니다.-河-

찾아오시는 예수님: 게네사렛 호숫가

추수감사절이 지나면 한 해가 다 지나간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도 그럴 것이 12월은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갑니다. 동시에 마음이 바빠집니다. 물론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늘 아쉬움은 남게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을 보면서 한 해를 알차게 마무리하려는 결심이 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남은 한 달 주님 앞에서 최고의 달로 만들기 원합니다.

 

우리는 “찾아오시는 예수님”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한 달 남은 올해 우리를 찾아오신다면, 어떤 일이 생길지 생각해 봅니다. 요즘 세상이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미움, 거짓, 폭력이 난무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힘없고 외로운 이웃들을 방문해서 힘과 위로를 주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모르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들에게도 우리가 믿는 예수님께서 실제로 계심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우리 교회로 초대했을 때, 흐뭇하게 미소지으시며 우리와 함께하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라보시고 잠잠히 기뻐하시는 참빛 식구들과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주에는 가나 혼인 잔치에 찾아가셔서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는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져서 난감해할 때,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는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잔치가 더욱 풍성해진 것입니다. 비록 신분은 낮았지만, 예수님의 기적을 몸으로 경험한 하인들의 믿음이 특별했습니다. 요한복음의 일곱 가지 표적 가운데 첫 번째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된 것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열어가실 새로운 세상을 예감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베드로를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시는 말씀입니다. 갈릴리 바닷가의 베테랑 어부 베드로는 밤새도록 그물을 내렸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아침이 되면서 고기 잡기를 포기하고 해변에서 그물을 씻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많은 무리와 함께 찾아오셨습니다. 하필 고기를 잡지 못해서 마음이 편치 않았을 베드로의 배에 오르셔서 말씀을 전하시더니, 그물을 씻고 있는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그물을 던졌고, 두 배가 물속에 잠길 만큼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육지로 나온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향해서 이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시기 위해서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는 만선보다 귀한 인생의 사명을 찾았습니다. 할렐루야! -河-

찾아오시는 예수님: 가나 혼인잔치에서

오늘은 추수 감사주일입니다. 앞에 “추수”가 들어 있는 것은 추수감사절이 농경 사회의 전통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추수감사절의 기원을 찾는다면 가을에 지키는 장막절일 것입니다. 일년 동안 이모작이상이 가능한 팔레스타인에서 마지막 포도와 올리브 추수를 끝내고 감사절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구약의 감사절은 옛날 출애굽한 조상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텐트 생활한 것을 기억하면서 일주일 동안 장막에서 지내는 것으로 대신 했습니다. 과거의 어려움을 되새기는 특별한 감사절이었습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1620년 11월 21일102명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를 타고 보스턴 근교 플리머스에 도착한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겨울의 혹독한 추위와 어려움을 이기고 첫해 수확한 것을 갖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자신들을 도운 원주민들을 초대해서 잔치를 벌인 것에서 추수감사절이 유래했습니다.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해준 1800년대 말, 한국은 전형적인 농경사회였습니다. 여름에는 보리를 수확해서 “맥추감사”를 지켰고, 가을에는 벼를 비롯한 채소를 수확하면서 “추수감사”를 지켰습니다. 선교사들의 영향과 추수가 끝난 후에 지킨 감사절이었기에 11월 셋째 주에 지켰습니다. 이처럼 농경사회의 영향으로 영어 “감사절(Thanksgiving Day)”앞에 “추수”가 붙어서 추수감사절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는다면, 영어 표현 그대로 일년에 한번 지키는 “감사절”로 부르는 것도 좋겠습니다.

 

감사절은 한 해 동안 크고 작은 열매를 맺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이민 교회 풍습 그대로 여선 교회가 정성껏 준비한 칠면조 고기와 더불어 감사절 만찬을 갖습니다. 감사가 넘치는 잔칫날입니다.

 

오늘 우리가 나눌 말씀 역시 혼인 잔치가 배경입니다. 갈릴리 가나라는 동네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어머니 마리아, 예수님과 제자들도 초대를 받아서 참석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혼인 잔치는 날씨가 선선해 지는 밤에 며칠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어머니 마리아의 요청으로 예수님께서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는 표적을 행하십니다. 요한 복음의 일곱 가지 표적 가운데 첫번째입니다. 자칫 멀쑥할 수 있었던 잔치 자리가 예수님으로 인해서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찾아가시고 계신 곳에 은혜가 임하고 기쁨의 축제가 계속됩니다. 하인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하니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는 특별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찾아오신 예수님을 맞이한 사람이 누리는 은혜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갖는 감사절 만찬에 우리 주님께서 함께 하시고,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는 은혜가 임하길 바랍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