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5): 창세기 5장 21-24절
믿음은 (5): 창세기 5장 21-24절
지난 다섯 주에 걸쳐서 우리의 믿음을 다시 돌아봤습니다. “든든히 서게 하소서”라는 올해 표어에 맞춰서 나눈 말씀이었습니다. 믿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믿음을 어떻게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을지를 놓고 공부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매주 고백하는 사도신경을 따라서 삼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확실하기를 바랍니다. 창조주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 지금도 우리 가운데 계시는 성령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우리 신앙의 뿌리요 터전입니다. 공동체와 하나님 나라에 관한 믿음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첫 번째 시간에는 믿음은 은혜이고 선물임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은 것으로 생각한다면, 믿음이 좋으면 교만해질 수 있고 행여나 믿음이 부족하면 자책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 같아도 결국 돌아보면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음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둘째 시간에는 믿음은 신비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알고 믿을 수 없습니다. 신비로움이라는 여백(room)을 남기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갖는 겸손한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여백에서 일하실 가능성이 큽니다. 믿음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신비로움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또한, 믿음은 힘이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을 통해서 힘과 용기를 얻습니다. 말 그대로 능력과 힘, 장애물을 뛰어넘는 위력, 일을 끝까지 해내는 끈기와 성취력을 경험합니다. 이처럼 믿음이 실제로 우리 삶에 효력이 있음을 배웠습니다.
세 번째 시간에는 믿음은 다림줄이라고 했습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파편처럼 흩어진 신앙과 삶을 하나님께서 내리신 다림줄 아래로 모으기로 결심했습니다.
네 번째 시간에는 믿음을 흘려보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엇이든지 독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는다는 말씀도 기억합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유도 세상에 복이 되길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고인 물이 아니라 365일 흐르는 생수와 같은 믿음을 갖기로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믿음은 하나님과 함께 걷는 동행입니다. 창세기의 에녹은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에녹과 함께 하셨고, 에녹도 하나님 편에 서서 걸었습니다. 하나님과 에녹의 마음과 생각이 같았습니다. 좋은 일만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힘들고 외롭고 절망 가운데 있었을 때도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때도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에녹의 목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녹을 데려가십니다. 죽음의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 하늘로 올라가는 복을 누린 것입니다. 에녹은 그 정도로 하나님과 친밀했습니다. 우리도 에녹처럼 하나님과 더불어 믿음의 길을 걷기 원합니다.
믿음 위에 굳게 서서 신앙과 인생의 여정을 힘차게 걸어갑시다.-河-
믿음은 (4): 갈라디아서 3장 6-9절
지금부터 4천년 전, 아브라함은 갈데아 우르라고 불리는 바빌론 땅에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가족을 이끌고 북쪽의 하란이라는 곳으로 이주합니다. 가족의 안전과 먹거리를 생각해서 살던 곳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당시는 아브람)을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12:1-2). 아브라함이 갈데라우르에 있을 때 하나님 말씀을 들었다는 말씀도 있습니다(행7:2).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길을 떠납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땅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떠나는 길입니다. 훗날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는 절대 순종과 더불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게 만든 사건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축복을 약속하셨고, 아브라함 자신이 복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12:3)고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재차 확인하셨습니다. 나이가 많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아들이 태어날 것을 예고하시면서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한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창18:18)고 질문하듯이 강조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순종해서 아들 이삭을 바친 후에도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라”(창22:18).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을 기억하면서 말씀을 풀어갑니다. 아브라함은 말 그대로 믿음의 조상이었습니다. 그의 행위도 믿음에 걸맞게 훌륭했지만, 고향을 떠난 것과 이삭을 바친 것은 하나님을 신뢰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과 연결됩니다.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자손”이 단수로 쓰였기에 2천 년 후에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했습니다:“이 약속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3:16).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세상의 복이 되었듯이,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도 믿음 안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고 똑같이 복이 됩니다. 아브라함이 유대인을 넘어서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통해서 복을 받고, 우리는 복을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河-
믿음은 (3): 에베소서 4장 13-15절
믿음에 관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으로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내가 믿는 것 같지만, 믿음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한 믿음은 복음의 신비로 들어가는 열쇠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믿음이 구체화되고 복음의 신비 속으로 들어갑니다. 믿음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그 순간 신비에 싸여 있던 복음을 체험하게 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힘과 능력을, 믿음을 통해서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믿음이 옳고 그름, 선과 악을 분별하는 능력임을 공부하겠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남유다 출신이지만 북이스라엘에 올라가서 하나님 말씀을 전했습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2세가 통치하고 있었는데 경제적으로 부흥했지만, 빈부격차가 컸습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힘없는 백성들을 학대하고 착취했습니다. 정의가 무너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모스 선지자에게 다림줄(plumbline)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다림줄은 끝에 무거운 추를 매단 줄을 가리킵니다. 다림줄 자체가 납이나 주석을 뜻하는 히브리어 <아나크>인 것과 연결됩니다. 벽을 쌓을 때, 위에서 아래로 내려서 벽의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합니다.
아모스는 다림줄을 드리우고 성벽을 쌓고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다림줄을 손에 들고 서 계시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한 가운데 다림줄을 드리워 놓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보나 마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과 삶은 하나님의 다림줄에 미치지 못하고 삐뚤삐뚤 일 것입니다. 돌이키지 않으면,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예고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모스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불과 20여 년 후에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게 멸망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하나님의 다림줄을 내린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요즘 시대에 다림줄을 내린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아모스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말씀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드리우는 다림줄에 우리의 신앙과 삶을 맞추기 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장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되어서 온전한 사람을 이루기를 부탁합니다. 사람의 속임수, 간사한 유혹, 온갖 그릇된 풍습에 쉽게 넘어가는 어린 신앙을 극복하고 예수님을 닮은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옳고 그름을 헤아리는 분별력이 요청됩니다. 믿음이 분별력입니다. 믿음이라는 다림줄을 갖고 우리 자신은 물론 세상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지금도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과 삶의 길을 걷기 원합니다.-河-
믿음은 (2): 요한일서 5장 1-5절
구약 시대 하박국 선지자는 정의가 무너지고 패역한 세상에 살았습니다. 폭력이 난무합니다. 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을 믿는 백성의 타락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안타까워서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세상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선지자는 언제까지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기다려야 하는지 한탄하며 기도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당시의 제국인 바빌론 군대를 동원해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표범보다 빠른 말들, 이리보다 사나운 군대가 먹이를 가로채는 독수리처럼 이스라엘을 덮칠 것입니다. 섬찟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어떻게 세상 제국에게 공격을 당하고 심판을 받을 수 있냐고 하나님께 반문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이 하나님을 모르는 훨씬 패역한 세상 제국에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논리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망대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립니다. 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 말씀을 멀리서도 읽을 수 있게 기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바빌론을 동원해서 하나님 백성을 심판하시지만,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 백성을 깨우치기 위해서 잠시 세상 나라를 동원하실 뿐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돌아오면 다시 회복되고 살 것입니다. 하지만, 근본부터 포학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바빌론은 영원히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하고 찬송합니다. 하나님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회개하고 마지막으로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게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3:17-18). 진정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망대에 올라갔을 때,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합2:4)는 하나님 말씀을 듣습니다. 하나님 백성이 망가졌고 세상도 망가졌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생명을 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의인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하박국 말씀을 인용했고, 훗날 마틴 루터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를 만들었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삽니다. 믿음은 의롭게 사는 힘입니다. 세상을 이길 힘이요, 세상 속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길입니다. 믿음으로 승리하기 원합니다. 믿음으로 의로운 길을 걷기 원합니다. 믿음이 힘과 능력입니다.-河-
믿음은…(1)/ 시편 46편 1-11절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가 <든든히 서게 하소서>입니다. 제가 참빛교회에서 목회한 지 19년 만에 90일 안식일을 갖게 되었기에 제가 없는 동안에도 교회가 든든히 서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에 앞서서 올해는 우리 모두 신앙의 기초를 든든히 다지고 싶었습니다. 나무에 비유하면, 터를 넓게 잡고 뿌리를 깊이 내리기 원해서 “든든히 서게 하소서”라는 표어를 정했습니다.
든든히 서기 위해서 앞으로 4주 동안 믿음에 관해서 공부할 예정입니다. 믿음에 관한 이론적인 설명보다는 믿음이 우리 삶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실제적인 면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나타나는 변화, 예수님을 믿기에 드러나는 특징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까지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주일 마틴 루터가 작사하고 작곡한 찬송가 <내 주는 강한 성이요>에 대한 말씀을 나누면서, 루터가 시편 46편을 묵상하다가 찬송가를 만들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시편 46편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큰 힘이 되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근원부터 과정 그리고 마지막 종착점을 설명합니다.
시편 46편을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1-3절은 하나님의 창조가 무너진 상태입니다. 선하고 아름다운 창조가 창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땅이 변하고 산이 흔들립니다. 산이 바닷물에 빠졌습니다. 자연스레 바닷물이 솟아서 다시 산이 흔들리는 혼동이 발생했습니다. 세상이 근본적으로 망가진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때도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피난처 삼고, 하나님 주시는 힘으로 견딥니다. 특별히 어려울 때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믿음을 잃지 않은 것입니다.
두 번째 4-7절은 회복의 과정입니다. 한 시내가 흘러서 하나님의 성을 회복합니다. 성소에 기쁨이 넘칩니다. 하나님께서 성 중에 계시니 성이 흔들릴 수 없습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라는 루터의 찬송이 생각납니다. 새벽부터 하나님께서 도우십니다. 뭇 나라들이 소리치면서 활동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세상이 잠잠합니다. 이처럼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피난처가 되십니다.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만군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세 번째 8-11절은 마지막 심판을 암시합니다. 하나님께서 본격적으로 앞장 서십니다. 계속되던 전쟁이 그칩니다. 활을 꺾고 창을 끊어 내시고 수레를 불사르십니다. 전쟁 무기를 전부 없애십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앞에 서서 직접 말씀하십니다:“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로다.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10절). 마지막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최후 승리를 바라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