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의 은혜 1

지난 상반기동안 올해 표어인 예배에 대한 말씀을 시작으로 소경 바디메오가 예수님을 만난 사건, 사순절 기간에는 복음의 능력과 성령의 임재와 역사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고, 기도에 대한 말씀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주제들을 연속해서 살펴본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듯이(롬10:17),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이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합니다. 가능하면 주일 설교를 녹음으로 반복해서 들으시고, 바쁘신 분들은 침대머리에 주보를 모아놓고“생명샘”에 요약된 말씀을 꼭 읽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기억력은 오래가지 못해서 반복하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립니다. 그러면 신앙이 뒷걸음질 치거나 제자리걸음을 하기 쉽습니다. 신앙은 꽃나무와 같아서 뿌리가 튼튼하게 내리고 줄기가 나와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도록 가꿔야합니다. 자신의 신앙을 꽃나무처럼 가꿔가는 것도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임을 기억합시다.

오늘부터 한 달 동안 찬양에 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찬양 속에는 기도와 말씀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고, 찬양으로 주신 말씀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예배할 때 꼭 필요한 것이 찬양입니다. 하나님은 찬양받기에 합당하시고 우리의 찬양을 기다리십니다. 스바냐 3장 17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 가운데 임재하셔서 춤을 추시듯이 기뻐하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십자가 죽음을 앞두신 예수님께서도 제자들과 함께 찬양하시며 겟세마네 동산에 가셨습니다(마26:30). 이처럼 우리는 찬양 가운데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십자가에 세로목과 가로목이 있듯이 찬양도 하나님께 드리는 수직적 찬양과 성도들 간에 함께 즐거이 부르는 수평적 찬양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구약성경 시편은 기도문임과 동시에 찬양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95편이 대표적입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나가서 즐거이 외치며 노래하길 청원합니다. 호흡이 있는 자들을 모두 찬양의 자리로 초대합니다. 실제로 하나님을 경험한 성경의 인물들은 기쁨과 감사로 그 은혜와 능력을 찬양했습니다. 이처럼 찬양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감사와 기쁨의 노래입니다.

동시에 찬양은 성도들 간에 구원의 은혜와 기쁨을 나누는 수단입니다. 사도바울은 우리의 마음을 주께 노래할 뿐만 아니라 성도들끼리“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기를 부탁합니다(엡5:19). 초대교회이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함께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했고, 서로를 향해서 찬송으로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힘을 얻었습니다. 자신들의 신앙을 찬송으로 고백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주님의 교회는 찬양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찬양에 대한 말씀을 나누면서, 참빛 교회 식구들의 마음에 기쁨과 감사가 넘치길 원합니다. 기도와 마찬가지로 찬송도 습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찬송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고 찬송의 은혜와 능력을 힘입는 귀한 시간이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할렐루야!-河-

겟세마네 기도 3

십자가의 길을 가기 전, 예수님께서 드리신 기도는 우리의 심금을 울릴 만큼 솔직하면서 또한 온전한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습관대로 감람산에 오르셨습니다. 피곤에 지친 제자들은 예수님의 속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잠을 잤지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앞에 놓으시고 하나님 앞에서 고뇌와 확신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습관대로 감람산에 가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들도 기도의 자리로 나가는 것이 습관이 되길 원했습니다.“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는 예수님의 기도처럼 우리들도 솔직하게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길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십자가의 길을 기꺼이 가시겠다는 순종이자 결단의 기도였습니다.

2013년 기도에 대한 말씀을 마무리하는 오늘은 예수님의 기도하시는 모습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습관을 좇아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돌을 던질 정도의 거리에 가셔서 따로 기도하십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단둘이 만나는 시간입니다.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대화하듯이 기도할 수 있지만, 때때로 하나님과 단둘이 교제하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단독으로 설 때 우리는 솔직해 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물론 세상일에서 조금 떨어져서 기도할 때 임하는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단둘이 만나서 교제하고 간절히 기도할 수 있는 자신만의 기도처를 갖는 것도 신앙생활에 커다란 도움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할 때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예수님의 기도를 도왔다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천사의 수종을 받으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힘을 도왔다는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어느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힘을 모두 소진하시면서 기도하셨기에 천사가 내려와서 예수님께 힘을 더해 준 것입니다. 기도에는 간절함이 서려있어야 합니다. 대충하는 기도 또는 입술의 기도만으로 부족합니다. 천사가 내려와서 도울 정도의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께서 어찌 응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다는 헬라어 표현은 고뇌와 진실함이 섞인 기도를 가리킵니다. 힘써서 기도하심은 십자가를 앞둔 예수님의 고뇌(agony)를 잘 표현합니다. 온 인류의 죄를 한 몸에 지시고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많이 힘드셨을 것입니다. 애써서 기도하심은 간절히 그리고 진실 되게 기도하시는 모습입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기도하셨고 간절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셨을 것입니다. 땀방울이 핏방울이 될 정도의 기도라는 말씀이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가장 잘 표현해 줍니다.

우리의 기도생활을 돌아봅니다. 우리는 지난 한달 동안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살펴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고 결심했습니다. 진정한 기도가 무엇인지 즉 기도의 정수를 배웠습니다. 하나님과 깊은 사귐, 솔직한 기도, 하지만 마지막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가 힘이 있음을 배웠습니다. 기도의 방법과 내용이 중요하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서 기도의 자세도 중요함을 배웁니다. 땀방울이 핏방울이 될 정도로 간절한 기도야말로 금향로에 드려지는 성도의 기도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들도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님처럼 기도하길 원합니다.-河-

겟세마네 기도 2

감람원이라고 불리는 겟세마네에서 드린 예수님의 기도 속에는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의 인간적 고뇌가 잘 나타납니다. 죽음 앞에서 두렵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홀로 가야합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셨을 것입니다. 게다가 모든 인류의 죄짐을 지고 가는 십자가의 길이었으니 마음이 얼마나 무거우셨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거기에 멈추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실 때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실 메시야라고 하신 말씀을 이루셔야 합니다. 살아계실 때 자신이 십자가에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지고 가셔야 할 사명입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십니다.:“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은 기도의 서두에서 잔을 치워주시길 간구하셨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기도를 마무리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겠다는 결단의 기도를 드리십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기꺼이 십자가를 지시겠다는 결심입니다.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드리신 기도입니다. 요한일서 5장 14절에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드리는 기도가 응답된다고 했습니다.:“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이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드리는 기도는 강력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대로 드리는 기도가 무엇일까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무엇보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는 것입니다(딤전2:4). 우리들도 자신만의 욕심으로 드리는 기도를 넘어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나오길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뜻은 자신의 백성이 항상 감사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살전 5:16-18). 그동안 말씀드린 대로 기도는 삶의 연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이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기도하길 원하십니다. 셋째로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주님의 백성들이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살전4:3). 하나님은 거룩한 성도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가장 잘 나타난 곳은 성경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근거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대로 기도하기 위해서 성경을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다가 마음 깊이 다가오는 말씀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지적하는 말씀이 될 수 있고, 약속의 말씀일 수도 있고, 결심과 행동을 촉구하는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 깊이 다가오면 그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가르쳐주는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품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솔직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모든 것을 토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드릴 때 비로소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우리의 원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길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때 기도의 응답을 넘어서 참 좋으신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河-

겟세마네 기도 1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에 오르셨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실제로 기도의 사람(man of prayer)이셨습니다.

특히 누가복음은 중요한 순간마다 기도의 자리에 나가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전해줍니다.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후에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3장).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 음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열두 명의 제자를 모두 부르시기 전날 밤에도 새벽까지 기도하셨습니다. 앞으로 예수님을 대신해서 복음을 전할 인물들이었기에 날이 새도록 기도하신 것입니다(6장). 그렇게 하셨는데도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한 것을 보면 영적인 싸움이 얼마나 치열한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루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즉 제자 삼인방을 데리고 산에 오르셔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때 엘리야와 모세가 예수님 옆에서고 예수님의 얼굴과 옷에서 빛과 광채가 나면서 하나님의 모습으로 변화되셨습니다(9장). 기도하실 때 신비한 하늘의 능력이 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기 직전에 제자들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예수님의 기도를 천사까지 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기도의 힘으로 십자가의 고난을 너끈히 이기셨을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도 마지막은 십자가 위에서 드린 기도입니다. 자신을 모욕하고 못을 박고 십자가에 매다는 로마 군병을 위해서 기도하십니다.:“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마지막 운명하실 때도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큰 소리로 드리셨습니다.:“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께 맡기나이다”(눅 23:46).

이처럼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을 기도하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3년의 사역을 시작하실 때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세우는 중요한 순간에 철야로 기도하셨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실 때도 기도하셨고, 잡히시기 전에는 물론 십자가위에서도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하시는 것이 습관이 되실 정도입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기도하셨으니 우리들도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예수님뿐 아니라 성경에는 기도의 인물들이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은 거의 다 기도의 자리로 나왔습니다. 그 가운데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다니엘이 대표적입니다. 다니엘은 서슬 퍼런 바벨론 왕궁에서 살았습니다. 그의 세친구 외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거의 없던 곳입니다. 그때도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바벨론 왕이 아닌 다른 신들에게 예배하면 사자 굴에 넣을 것이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 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단6:10). 하나님의 백성은 기도로 살아가고,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지혜와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인생의 고비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다니엘처럼 습관을 좇아서 기도의 자리로 나가야 합니다. 기도하는 주님의 백성은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꿋꿋하게 견딥니다. 그 신앙과 삶이 하나님께 닿아있기 때문입니다. -河-

성도의 기도

세상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말씀과 기도입니다. 말씀은 생명의 양식이니 매일같이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새벽예배와 수요예배에서 성경을 차례로 읽어나갑니다. 말씀과 함께 꼭 있어야 할 것이 기도입니다. 말씀이 생명의 양식이라면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하나님과 깊이 사귀는 은혜의 시간이 바로 기도입니다.

이처럼 말씀과 기도가 신앙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덕목이기에 올해도 어김없이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눕니다. 앞으로 한 달여 예수님께서 드리신 겟세마네의 기도를 살펴보겠습니다. 각자의 기도생활을 돌아보고 온전하고 간절한 기도의 자리로 나가기로 결단하는 귀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마지막 때에 세상에 임할 일곱 가지 재앙 가운데 마지막 재앙의 서두입니다.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곱 개의 인을 차례로 떼십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 인을 떼었을 때는 앞의 여섯 가지 재앙과 달리 반시간 정도 침묵이 흘렀습니다(계8:1). 요한 계시록의 특징상 침묵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뒤에 나오는 말씀을 통해서 보면, 1절의 침묵은 마지막 때에 고난과 핍박 가운데 있던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리던 기도의 시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침묵이 끝난 다음에 일곱 천사가 일곱 개의 나팔을 받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천사가 제단 곁으로 금향로를 들고 나옵니다. 향로에는 다름 아닌 성도들의 기도가 들어 있습니다. 금향로에서 나온 향들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께로 올라갑니다. 매우 엄숙한 순간입니다. 이처럼 본문에서는 성도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지는 향(香)으로 눈에 보이듯이 묘사합니다.

핍박 가운데 있던 성도들은 하나님의 구원이 속히 임할 것을 기도했을 것입니다. 악한 영이 지배하는 세상이 얼른 지나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되신 새 나라가 임하길 간구했을 것입니다. 천사가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세상에 쏟으니 천둥과 번개와 지진이 일어납니다. 세상에는 심판이 임하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영원한 구원이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이처럼 성도의 기도는 금향로에 담겨서 하나님께 올라갑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향처럼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성도의 기도가 얼마나 귀한 지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드려질 정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금향로에 담긴 성도의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기도를 너무 쉽게 드렸습니다. 기도를 소홀히 여겼습니다.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향으로 드려지는 성도의 기도가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알고 있었다면, 우리의 기도생활은 물론 기도의 내용도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앞으로 4주 동안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리신 예수님의 기도를 살펴보면서, 온전하고 아름다운 기도에 대해서 배우기 원합니다.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면서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드려지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정결해지기 원합니다. 금향로에 담길 정도로 가치 있는 귀한 기도가 되기 원합니다. 무엇보다 감사와 기쁨으로 하나님 마음에 합한 기도를 드리기 원합니다. 금향로에 담겨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아름답고 귀한 성도의 기도가 참빛교회 식구들의 입술과 마음에서 울려 퍼지길 소망합니다.-河-

그리스도인의 능력

지난 4주 동안 성령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보혜사가 되시고,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대변해 주시는 보증이 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진리가운데로 인도해 주시고,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임을 입증하는 표지들(marks)이 여럿 있습니다. 복음의 능력에 대한 연속설교에서 나누었던 기쁨, 평안, 소망이 대표적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통해서 얻은 구원이야말로 가장 커다란 표지입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 없이 자기 마음대로 살았던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임하는 것은 권세와 능력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권세는 온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같은 의미입니다. 마지막 때에 예수님께서 심판주로 오셔서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권세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우리들도 하나님의 권세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엄청난 사건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여기서 권능에 해당하는 헬라어 뒤나미스는 말 그대로 능력 또는 힘이라는 뜻입니다. 성령이 능력으로 임함을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에게 성령을 통해서 능력이 임한 것도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표지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하늘의 능력을 힘입고 살아야 합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능력입니다. 세상의 지식이나 명예 또는 권력이 주는 힘과 능력은 언젠가는 사라지지만,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능력은 영원합니다. 우리 안에서 자체적으로 생기는 능력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말했듯이 우리들은 질그릇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게 됩니다.:“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4:7). 질그릇처럼 천하고 쉽게 부서지는 우리들이지만 그 안에 담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강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주어진 권세와 능력을 무시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성령 충만은 하나님과의 소통이 끊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속에 깊이 잠겨있는 상태인데 우리는 늘 성령 충만하지 못합니다. 성령 충만을 날마다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면 자연스레 하늘의 권세와 능력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제한 없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무한한 잠재력이 있습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죽음과 모든 악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능력의 근원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살이가 힘겹고 거칠어도 하나님 자녀에게 주시는 하늘의 능력으로 세상이 감당치 못할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원합니다. 다음 한 주간 각자의 삶의 처소에서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사시길 기도하겠습니다. -河-

성령충만한 교회

강원도 예수원에 계셨던 토레이 신부님께서 아침마다 “주여, 성령 충만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듯이 우리들도 매 순간마다 성령의 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단순히 감정의 표출이나 초자연적인 기적을 기대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성령 충만은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실제적으로 느끼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신앙과 삶이 온전히 성령으로 충만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깊이 느끼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과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령 충만을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자신을 내어드려야 합니다. 거룩한 성령께서 임재하시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정한 마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부끄러운 죄와 교만을 날마다 씻어내야 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성령 충만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때에 선물로 주시는 성령의 은사도 받게 되고 무엇보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멋진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성도들 개인에게만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철저하게 공동체 속에서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된 하나님 나라가 가정과 교회 그리고 세상 속에 세워지길 원하십니다. 성령 충만도 예외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인 에베소서 5장 19-20절에는 공동체적으로 임하는 성령 충만을 잘 설명해 줍니다. 교회 안에 임하는 성령 충만의 표시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찬송입니다. 19절에는 찬송과 관련된 표현이 여섯 번 등장합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시는 구약성경의 시편을 연상하시면 됩니다. 찬송과 신령한 노래는 서로의 신앙을 고백하고 간증하는 찬양들입니다. 성령 충만한 교회는 성도들 간에 거룩한 노래, 하늘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서로 찬양으로 화답하는 성령의 교제가 있습니다. 성도들 간에 찬송으로 화답함은 물론 모든 성도들이 한 마음이 되어서 주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하늘나라의 모습입니다. 이처럼 성령 충만한 교회는 찬양이 넘칩니다.

성령 충만의 표시 두 번째는 감사입니다. 모든 일에 감사가 넘칩니다. 불평을 하거나 원망을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 비난하거나 트집을 잡는 것도 성령 충만한 성도들의 모습이 아닙니다. 성령 충만하면 서로 격려합니다. 모든 것이 좋아 보이고, 모든 것에 감사가 넘칩니다. 이처럼 찬양과 감사는 성령 충만의 대표적인 외적표시입니다. 교회적으로는 물론 개인적으로도 성령 충만하면 찬양이 나옵니다. 불평과 원망이 그치고 범사에 감사가 시작됩니다. 우리를 위해서 탄식하며 기도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실 것을 믿는 믿음이 있기에 감사와 찬송이 나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교회의 세 번째 표시는 피차 복종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사람이 좋아서 서로에게 잘해주거나 약한 사람이 강한 사람의 말을 듣는 세상적인 복종이 아닙니다. 성령 충만에서 비롯된 복종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해서 기꺼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마음으로 서로 복종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성도들에게 복종할 마음이 생깁니다. 여기서 복종은 자신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역사는 개인을 넘어서 공동체 안에서 실현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성령 충만한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께서 성령 충만을 매일의 삶 속에서 경험하시고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河-

성령의 충만

신구약 성경을 통해서 성령 하나님의 사역이 광범위하게 소개됩니다. 창세기 1장속의 성령은 하나님의 창조에 참여했습니다. 사사시대의 유명한 사사였던 삼손은 하나님의 신이 충만했을 때 강력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모세에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을 정복했던 여호수아도 하나님의 신에 감동해서 승리의 나팔을 불었습니다. 다윗도 예외가 아닙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에게도 하나님의 신이 임했습니다. 이처럼 구약성경 속의 성령 하나님은 거대한 창조사역은 물론 하나님께서 부르신 인물들 속에서 활동하셨습니다.

구약 성경에 나타난 성령의 사역이 비교적 정적인데 비해서 신약성경의 성령은 활동적입니다. 마리아가 성령 충만했을 때 복중의 아기가 뛰어놀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비둘기처럼 성령이 내려왔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교회를 탄생시킬 정도로 강력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었다면 초대교회가 굳게 서지 못했고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상으로 전파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들에게“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명령합니다. 성령께서 우안에 계시다는 증거가 성령의 열매로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성령의 은사도 성령의 사역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깊이 그리고 구체적으로 체험하기 위해서 성령 충만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성령이 우리에게 부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릇에 물을 붓는 것이 연상됩니다. 물을 지속적으로 부으면 그릇에서 넘쳐납니다. 하지만 작은 양의 물을 부으면 그릇 밑바닥에만 깔려 있을 뿐입니다. 때로는 그릇이 깨져서 물이 밖으로 새나갈 수도 있습니다. 성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소멸을 조심하라는 말씀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의 활동이 아주 미미한 것을 뜻합니다. 성령의 불이 꺼져가는 상태입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을 믿지만 은사는 말할 것도 없고 성령의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매우 안타까운 신앙입니다.

반면에 성령 충만하면 성령의 임재와 역사가 강력하게 나타납니다. 은혜가 넘칩니다. 감사가 나옵니다. 기쁨이 샘솟습니다.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믿음에 확신이 있습니다. 조용하게 성령의 역사가 임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임합니다. 성령 충만을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로 성령은 거룩한 영이어서 정결한 신앙과 삶 속에 임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회개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를 쫓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고집이 세고 자아가 강하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셋째로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을 마음에 모시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이 당연하듯이, 성령 충만도 간절히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충만을 사모합시다. 성령에 취할 만큼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 집중합시다. 보혜사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기대합시다. 우리가 성령 충만할 때 세상 속에서 능력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빛과 소금으로 예수님처럼 살게 될 것입니다. -河-

성령의 역사

성령 하나님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계시기에 우리의 사정을 속속들이 잘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해서 탄식하면서 기도해 주십니다.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자라가도록 도와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증거해 주십니다.

성경에 의하면 성령 하나님(하나님의 영)은 창조시부터 줄곧 존재하셨습니다. 구약성경의 요엘서에서는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신을 부어주시겠다는 약속하였습니다(요엘 2:29). 에스겔서 37장에서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하나님의 영이 불어넣어졌을 때 살아났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구약시대에는 성부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일하셨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시면서 성자 하나님의 사역이 강조되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오순절에 임하면서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모두 한 분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간혹, 예수님을 믿는 것과 성령세례를 구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었어도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식입니다. 이것은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이 안수함으로 성령이 임한 한 두가지 사례를 두고 일반화시킨 것입니다. 성경 전체를 두루 살폈을 때,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마음속에 주님으로 영접하였을 때 성령이 우리 안에 부어집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아니고는 예수님을 주라고 하실 수 없다고 했습니다(고전 12:3). 따라서 성령세례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됨과 동시에 부어지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제자를 삼을 것을 명령하시고, 복음이 무엇인지 가르치신 후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성령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들 마음속에 부어집니다. 따라서 그동안 하나님 없이 살았던 자신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복음을 따라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이미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때 신앙생활이 단조롭고 때로는 낙심되고 힘이 없습니다. 마음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마음껏 활동하시도록 자신을 내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여전히 육체와 세상을 쫓고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기에 성령 하나님께서 일할 틈이 없습니다. 성령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 없고, 사모하는 마음이 적어서 성령의 역사가 무뎌진 것입니다.

성령의 체험이 필요합니다. 마음에 계신 성령 하나님을 느끼는 것입니다. 방언과 예언등과 같은 성령의 은사들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웨슬레처럼 마음이 뜨거워지는 감정적인 변화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기에 삶 속에서 자연스레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성경에서 약속한 성령의 은사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심을 드러내는 체험들입니다.

물론 눈에 보이거나 마음으로 느끼는 체험이 없어도 성령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 연약하기에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의 존재와 일하심을 어떤 경로를 통해서라고 체험하면 신앙생활에 활력이 생깁니다. 성령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고 동행하심으로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들과 능력을 체험하기 원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심의 증거로 사랑, 희락, 화평, 자비, 양선, 오래참음, 충성, 온유와 절제의 성령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으시길 바랍니다.-河-

성령의 임재

기독교를 계시의 종교라고 합니다. 세상의 많은 종교들이 어떤 도(道)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 특별한 노력을 요청하는 것과 달리,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시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구원과 영생이 임한다고 가르쳐줍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주도권을 갖고 구원을 이루시기에 복음(福音, 기쁜 소식)입니다. 하나님의 선물 또는 은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시대 이래 자신을 사람들에게 나타내셨습니다. 세상 만물 속에도 하나님의 솜씨가 나타납니다.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계약을 맺으시고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아담과 이브로 인해서 망가진 관계를 회복하시고 온전한 구원을 이루시는데 온 힘을 기울이셨습니다. 하지만 한번 반역한 인간은 하나님께로 쉽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자신을 나타내신 것입니다.“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요14;6)고 선포하셨습니다. 많은 기사와 이적을 통해서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병든 자, 가난한 자, 죄인들을 찾아가셔서 고쳐주시고 그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온 세상의 죄를 홀로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함 받았습니다.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죽음과 악을 이기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이루신 구원사역의 완성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은 지상사역을 모두 마치신 후에 다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이 성령의 강림입니다. 성령이 오실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기를 부탁하셨고, 성령이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기도에 힘쓰던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이 임했습니다. 오순절 축제를 위해서 예루살렘에 올라왔던 많은 사람들이 성령 강림을 체험했습니다. 베드로가 설교하니 3천명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성도들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처럼 성령은 공동체 위에 임했습니다. 성령 강림에 이은 복음 전파로 교회 공동체가 세워졌고,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말씀과 기도, 교제를 시작했습니다.

성경에서 성령을 몇 가지로 요약해서 알려줍니다. 첫째로 성령은 보혜사입니다. 보혜사는 위로자, 상담자라는 뜻입니다. 성령께서 성도들의 길을 인도하고 위로해 주십니다. 둘째로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때 신앙과 삶이 비뚤어지지 않고 진리 가운데서 행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합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됩니다. 대신에 성령은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변호해 줍니다. 마지막으로 성령은 능력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하늘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성령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회개의 세례를 받을 때 우리 안에 임합니다. 우리 안에서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탄식하면서 기도하십니다. 우리를 선하고 거룩한 길로 인도하시는 매우 친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임재와 역사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펼쳐주시는 새로운 삶을 삽니다. 새로운 존재로 거듭 태어나는 것도 성령의 은혜입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