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여 뜻대로

연속 설교 막간에 살펴보는 찬송가 해설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번 찬양대가 찬송가 549장 <내 주여 뜻 대로>을 찬양했는데, 3절의 마지막 가사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살든지 죽든지 뜻 대로 하소서.” 지금까지 수없이 많이 불렀던 찬송인데, 그날은 특별히 다가왔습니다. 가사가 강력했기에 다음 찬송가 해설로 일찍이 정해 놓았습니다.

 

<내 주여 뜻 대로>는 18세기 독일 루터교 목사였던 벤저민 슈몰크(1672-1737)가 가사를 썼습니다. 슈몰크는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현재는 폴란드에 속하는 살리자(Silesia)에서 태어났습니다. 슈몰크가 아버지를 대신해서 설교한 적이 있는데, 목사로서 재능을 발견한 아버지가 슈몰크를 라이프치히 대학에 보내서 신학을 전공하게 했습니다. 슈몰크의 나이 21세였습니다.

 

슈몰크는 아버지가 섬기던 교회에서 부목사로 일하다가 아버지를 이어서 평생 같은 교회에서 목사로 섬겼습니다. 당시 신성로마제국에 속하는 살리자는 가톨릭이 주류였습니다.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30년 전쟁이 끝난 후여서 종교 간의 갈등이 여전했습니다. 개신교에 속하는 루터 교회는 하나 밖에 없었기에 36개의 마을을 관할했습니다. 종탑도 올리지 못하고 심방과 같은 목회활동을 위해서는 가톨릭의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슈몰크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힘을 다해서 목회했습니다. 하루는 심방을 하고 집에 왔는데 화재가 나서 집이 불에 탔습니다. 들어가보니 두 아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죽어 있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슬픔이 찾아왔을 것입니다. 슈몰크는 그때의 심정을 <내 주여 뜻대로> 찬송에 담았습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 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날 주관 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 대로 하소서.”

 

슈몰크 목사는 예수님의 마지막 겟세마네 기도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고 그 어려운 참사를 받아드렸습니다. 사는 것과 죽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을 믿고 찬송했습니다. 슈몰크 목사는 목회하는 가운데 뇌졸증으로 두 번이나 쓰러졌고, 녹내장으로 시력도 잃었지만 편하지 않은 다리를 이끌고 6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목회했습니다.

 

549장의 작곡가 홀부르크는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 서곡에서 곡을 갖고 왔습니다. 마법의 화살을 쏘는 사냥꾼이 자기 뜻대로 화살을 조절할 수 없었듯이 화재로 두 아들을 잃은 슈몰크 목사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 것을 연결한 것 같습니다. 우리 삶에도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원합니다.-河-

두려워하지 말라 (11)

평안

 

한 해를 돌아보면서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추수 감사 주일입니다. 팬데믹 이후에 처음으로 함께 모여서 감사예배를 드리고 추수감사절 만찬을 갖습니다. 그동안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을 마음껏 예배하고, 성도의 교제를 나누기 원합니다.

 

팬데믹을 지내면서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염려와 불안이 생겼습니다. 연초에 시작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계속되고, 물가는 치솟고, 경기 침체가 온다는 소식까지 들립니다. 그러니 팬데믹 이후의 삶이 녹록치 않아 보입니다.

 

성경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이 365번 나온다는 말이 있듯이, 두려움은 우리 안에 늘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매일같이 “두려워하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을 기억하면서 두려움을 마주하고 다스려야 합니다. 세상이 불확실할수록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소망을 잃지 않고, 믿음에 굳게 서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신앙의 기본인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가서, 성경에 나오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공부했습니다. 그동안 나눈 말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15;1).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여호수아에게 주신 말씀도 기억합니다:“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1:9). 스바냐 선지자는 끝까지 신앙을 지켰던 예루살렘의 남은 자들을 다음과 같이 격려했습니다:“두려워하지 말라.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습3:16). 이사야 선지자는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끝까지 견딜 것을 당부했습니다:“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바빌론과 페르시아 제국에서 살아남은 다니엘에게 주신 하나님 말씀도 기억합니다. 다니엘이 기도하던 첫 날에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셨고 천사를 보내서 세상을 구원하실 테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단10:12).

 

참새 한 마리의 목숨까지 간섭하시고 머리카락까지 세시는 하나님을 믿으니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예수님 말씀(마10:31), 폭풍 속에서 쩔쩔매고 있는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도 기억합니다:“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막6:50).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지난 석달 가까이 살았습니다.

 

오늘 나눈 말씀도 강력합니다:“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딤후 1:7),“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우리 앞에 어떤 일이 닥치든지, 두려워하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을 기억하고 예수님의 평안을 누리기 원합니다.-河-

두려워하지 말라 (10)

폭풍 속에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주제로 연속해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이번 연속 설교를 통해서 우리 안에 깊게 드리운 불안과 두려움을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다스리고 몰아내길 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은 신약성경보다 구약성경에 더 많이 등장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질곡의 역사를 걸어갔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그릇 행해서 자초한 실패의 역사였습니다. 게다가 제국에 둘러 쌓인 이스라엘의 삶은 언제나 불안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이스라엘을 찾아오셔서 깨우치시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힘을 주셨습니다. 구약 성경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지난 주부터 신약 성경에 나오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어려움이 닥쳐도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하찮은 참새 한 마리의 생명까지 주관하시고 머리카락까지 세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세상이 아무리 험해도 두려워할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갈릴리 호수 건너편 벳세다로 서둘러 보내시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한 군중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달려들었기 때문입니다(요6:15). 예수님께서 손수 군중들을 해산시키시고 자신은 산에 가셔서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날이 저물고 밤이 찾아왔는데 갑자기 바다에 폭풍이 일었습니다. 바람이 워낙 강해서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 한 가운데서 쩔쩔매며 노를 젖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신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유령이라고 생각해서 폭풍 속에서도 소리를 칩니다. 제자들 곁을 지나가시던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50절). 예수님께서는 폭풍속에 있는 제자들을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찾아오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배에 오르시니 폭풍이 잠잠해 졌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것을 눈으로 보고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폭풍이 찾아오자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시는데도 알아보지 못하고 두려워했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아직 마음이 둔해서 그렇습니다. 배가 도착한 게네사렛 땅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병자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고침을 받는 장면과 대조를 이룹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다위를 걸으심으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죽음의 세력이 지배하는 바다와 폭풍을 예수님께서 잠잠케 하심으로 예수님 자신이 창조주 하나님과 같은 분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河-

 

두려워하지 말라 (9)

섭리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10장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이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부탁하시는 말씀입니다. 장차 제자들은 세상의 미움을 받고 심지어 세상 임금들 앞에 끌려갈 것입니다. 그래도 성령께서 함께하실 것이니 어떤 상황 속에서도 신앙을 지킬 것을 부탁하십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10:1-23절).

 

앞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고난의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두고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이라고 했으니 예수님과 한 가족이나 다름없는 제자들에게 험한 말을 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때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의 주인 되신 하나님만 두려워할 뿐입니다.

 

첫째로, 감춘 것이 모두 드러나고, 숨은 것이 모두 알려질 것입니다.  결국에는 무엇이 진리이고 누가 옳은 지 확실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의 미움과 비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담대하게 예수님의 말씀을 세상에 선포해야 합니다. 어두운 데서 들은 것을 밝은 데서 말하고, 귓속말로 들은 것을 큰 소리로 외쳐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것을 세상에 알리라는 말씀입니다.

 

둘째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몸은 결국 죽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몸과 삶은 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죽음 이후를 주관하십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고, 몸과 영혼을 모두 지옥에 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 세상의 삶을 뛰어넘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실 것이기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까지 아십니다. 참새는 작고 헐값에 팔리는 새입니다. 앗사리온은 우리 식으로 페니에 해당합니다. 영원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참새 두 마리의 거래 가격까지 아십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아주 작고 하찮은 곳까지 임한다는 뜻입니다. 심지어 머리카락까지 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가장 작은 것까지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우리는 참새보다 귀합니다. 그렇다면 참새까지 돌보시고 머리카락까지 세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다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시인할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인정하고 함께하실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담대하게 하나님 백성으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크신 하나님께서 작고 작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참새 한 마리와 머리카락까지 세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을 믿기에 큰 것은 물론 작은 것까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할 뿐입니다.-河-

종교개혁 주일에

지금부터 505년 전인 1517년 10월 31일.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95개조의 반박문을 공포한 날입니다. 가톨릭교회에서 모든 성자를 기념하고 추모하는 만성절(All Saint’s Day) 전날입니다.

 

비텐베르크 대학 교수였던 마틴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에서 가톨릭교회가 면죄부를 팔고 교황에게 신적 권위를 부여하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무엇보다 교회와 성직자들의 타락이 성경에서 말하는 올바른 신앙과 교회의 모습이 아니라고 조목조목 비판했습니다.

 

마틴 루터가 발표한 95개조의 반박문 가운데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5.교황은 그 직권 혹은 교회법의 위세로 부과된 형벌 이외의 어떤 벌이든지 용서할 힘이나 뜻(意志)을 가지지 못한다. 27.연보궤 안에 던진 돈이 딸랑 소리를 내자마자 영혼은 연옥에서 벗어 나온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학설을 설교하는 것이다. 43.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필요한 사람에게 꾸어 주는 것이 면죄증을 하는 것보다도 선한 일이라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95.이같이 하여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위안에 의해서보다 오히려 많은 고난을 통하여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데 더욱 깊은 신뢰를 가지게 하라(행 14:22).

 

루터 외에도 가톨릭교회를 비판한 선구자들이 있었습니다. 존 위클리프는 사제들의 전유물이었던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성경을 번역한 것이 이단이라면서, 죽은 지 31년 만에 무덤이 파헤쳐지는 치욕을 당했습니다. 위클리프에 영향을 받은 얀 후스는 면죄부의 부당함과 교황의 권위에 반대하다가 불에 타서 죽었습니다. 땅에 떨어져서 죽은 한 알의 밀알과 같은 교회사 속의 인물들입니다.

 

거기에 구텐베르크에 의해서 발명된 인쇄술의 발달로 루터가 제기한 95개조의 반박문이 인쇄물로 제작되어 세상으로 퍼져 나갔고, 훗날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도 일반 백성들에게 손쉽게 보급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시대의 흐름 외에도 루터의 종교 개혁을 지지하는 비텐베르크 교수와 학생들, 멜랑톤과 같은 동지들, 루터를 보호하던 당시의 프레더릭 선제후 등의 후원자들이 있었습니다.

 

원래 루터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법률가의 길을 걷다가 우연한 기회에 수도사가 되기로 결단하고 사제의 길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루터에게는 온전한 신앙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자기 안에 있는 죄의 문제와 씨름했습니다. 기도와 성경 읽기, 참회와 선행 등을 통해서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길 기대했지만, 루터에게 평안함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루터는 자신에게 의롭게 될 가능성이 없고 낯선 의가 손님처럼 찾아왔을 때 그 은혜로 의롭게 됨을 깨닫게 됩니다. 여기서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이라는 종교 개혁의 캐치프레이즈가 나왔습니다. 개인의 고민이 세상을 바꾸는 씨앗이 되었고, 교회의 잘못을 세상에 알린 용기 있는 행동이 교회는 물론 세계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물론, 루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