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주 말씀

나그네의 영광/ 시편 39편 6-13절 (안근조 교수, 호서대 구약학)

슬기로운 참빛교회 생활

팬데믹 동안에 우리는 교회에 모이지 못하고 각자 가정에서 예배했습니다. 영상예배가 없었다면, 교회는 물론 우리 각자가 신앙을 유지할 수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영상으로 예배를 전송할 수 있어서 감사할 뿐입니다.

 

초기에는 팬데믹의 공포가 상당해서, 시장에도 마음대로 갈 수 없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를 압도했습니다. 교회에 함께 모이지 못하니 목사로서 참빛 식구들의 신앙과 삶이 염려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우리 교인들에게 <슬기로운 참빛교회 생활> 10가지를 작은 표로 만들어서 카톡방에 띄웠습니다. 그것만 지키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물론 우리 삶을 흔들림 없이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소개했던 10가지는 예배로 모이지 못하는 상황에 필요한 한두 가지 빼고 지금도 유효합니다. “든든히 서게 하소서”라는 올해 우리 교회 표어에도 적합한 가이드라인입니다.

 

첫째, 팬데믹 동안 유튜브 예배에 참석하시길 부탁드렸습니다. 지금은 현장 예배와 유튜브 전송을 겸하고 있습니다. 예배에 오시지 못하는 경우, 유튜브 주일예배에 동시간에 접속해서 참여하시거나, 사정이 있으시면 추후에 꼭 챙겨서 예배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정기적인 예배 참석과 참여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매우 중요한 통로입니다.

 

둘째, 아침마다 카톡으로 배달되는 말씀 묵상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매일 챙겨서 읽지 못하셔도 몰아서 읽으시길 바랍니다. 제가 보내는 500자 내외 묵상 글보다 성경 본문을 먼저 읽으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셋째, 현장과 zoom에서 진행되는 수요예배는 물론 성경 공부에 참석하시면, 우리 신앙과 삶이 하나님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릴 것입니다. 수요예배에서는 성경을 한 주에 한 장씩 공부하고 있습니다. 보슬비에 옷이 젖는 은혜를 경험하실 것입니다.

 

넷째, 목요일은 복습하는 날입니다. “목요일에 설교를 챙겨서 다시 듣습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얼마나 감사하고 기쁘던지요! 반복에 힘이 있습니다. 지난 주일 설교와 수요 성경 공부 녹음만 목요일에 다시 들으셔도 신앙이 견고하게 유지될 것입니다.

 

다섯째, 매일 저녁 10시는 우리 교회가 함께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거의 20여 년 계속된 전통입니다. 전도사님과 어머니 권사님들께서 매일 10시에 기도로 뿌리신 씨앗을 우리가 거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전통은 이어받아서 잘 살려야 합니다. 토요 아침 기도회에 참여하시는 것도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충만하게 경험하기 원합니다. -河-

2204 새해 (5)

더 넘치도록

 

올 한 해 우리는 신앙의 기초를 다지기로 했습니다. 든든히 서기 위해서 터를 넓게 잡아야 하고 뿌리를 깊게 내려야합니다. 신앙 생활의 가장 기본이요 최고인 말씀과 기도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우선 순위를 세워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장 처음에 놓아야 합니다. 신앙과 삶이 함께 가야 합니다. 신앙이 삶을 통해서 표현되고, 삶 속에서 열매를 맺는 신실(신실)함 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신뢰가 필요합니다. 충실한 기초공사를 통해서 각자의 신앙, 가정, 교회를 멋지게 세우기 원합니다. 웬만한 폭풍우에 끄떡하지 않는 신앙을 갖추기 원합니다. 흔들리더라도 중심을 잃지 않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신앙의 복원력을 갖추기 원합니다.

 

굳게 그리고 든든히 서는 신앙을 위해서 에베소서 3장에 등장하는 사도 바울의 기도를 한 달여 공부했습니다. 바울의 기도가 갖고 있는 형식(구조)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바울은 무릎 꿇고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기도를 준비했습니다. 기도를 끝낸 바울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의 기도에는 준비와 끝이 있었습니다. 급하게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만 하나님께 전하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도였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는 하나님 영광의 풍성함과 성령의 능력이 마음에 임하길 원하는 기도였습니다. 에베소서 1장에서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속으로 들어가길 기도했던 것과 짝을 이루면서,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는 하나됨이었습니다.

 

바울은 성령의 능력으로 속마음이 강건하길, 믿음으로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길,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터가 굳어지고 뿌리를 내리고, 지식을 뛰어넘는 예수님 사랑의 너비, 길이, 높이, 깊이를 깨닫고 경험하기를 기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에베소 교회에 흘러 넘치길 기도했습니다.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능력으로 임하길 기도한 것입니다. 올 한 해 우리도 바울의 기도를 기억합시다. 바울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고, 기도한 것이 우리 신앙과 삶에 그대로 임한다면, 틀림없이 굳게 설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를 마친 바울의 마음에 뜨거움이 임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지만, 에베소 교인들과 기도로 교제하고 연합할 수 있음이 감동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능력”을 강조합니다. 기도의 힘입니다. 기도 가운데 구한 것은 물론 생각했던 모든 것에 더욱 넘치도록 주님의 은혜가 임하길 기원합니다.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이 에베소 교회에 흘러 넘치고 그 영광이 영원 무궁하길 찬송한 것입니다. 기도의 힘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멋진 모습입니다. -河-

2024 새해 (4)

그리스도의 사랑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위해서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무릎꿇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마음과 자세가 중요함을 배웠습니다.

 

바울의 기도 첫 번째 부분은(첫 번째 <히나>) 대략 세 가지 제목의 기도였습니다. 제일 먼저 성령의 능력으로 속사람이 강건해지길 기도했습니다. 절대 마인드 컨트롤이나 정신 수양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그 능력으로 속사람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으로 우리 안을 채우는 것입니다. 하나님 영광의 풍성함 가운데 이루어지는 신앙의 신비입니다.

 

강건한 속사람을 위해서 믿음으로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야 합니다. 신앙의 첫 단추입니다. 믿음은 결단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향한 확신입니다. 사랑 가운데서 깊이 뿌리를 내리고 터가 굳어져야 합니다.

 

믿음과 사랑이 함께 갑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믿음으로 하나님 사랑속으로 들어갑니다. 사랑이 없는 믿음은 빈껍데기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말씀도 함께 나눴습니다(요일4:12).

 

바울의 기도 두 번째 부분(둘째 <히나>)은 사랑에 집중합니다. 사랑장이라고 불리는 고린도전서 13장에서 강조하듯이 바울에게는 사랑이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경험했을 때 온전한 믿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더해진 믿음을 통해서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요일4:8).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모든 성도가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기를 기도합니다. 사랑은 공동체 속에서 이뤄가는 관계입니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계시(revelation)입니다. 공동체 속에서의 사랑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믿음의 길을 가는데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공동체가 필수적임을 다시 배웁니다. 사랑으로 함께 걷는 신앙의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네 가지 차원으로 소개합니다: 너비, 길이, 높이, 깊이. 예수님의 사랑은 품지 못할 것이 없을 정도로 넓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구약 아니 창조부터 시작될 정도로 깁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이 세상에 끝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높아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깊습니다. 풍성하고 완벽한 사랑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모든 성도가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으로 강하게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헬라어 본문은 사랑의 네 가지 차원이 18절에 먼저 나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충분히 이해하고 경험하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아는 것만큼 확신하고 아는 것만큼 서로 사랑합니다. 예수님 사랑의 풍성함을 충분히 느끼고 누리기를 원합니다. -河-

2024 새해 (3)

든든히 서게 하소서: 터가 굳어져서

 

에베소서 3장에 등장하는 바울의 기도를 통해서 올해 우리 교회 표어 <든든히 서게 하소서>에 관한 말씀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유행하면서 <뉴노멀>이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거리를 두는 것을 경험하지 않았기에 생긴 용어입니다.

 

팬데믹이 지나면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무엇보다 신앙의 가치나 중요성이 떨어졌습니다. 팬데믹을 이기는데 신앙이 큰 힘을 발휘하지 않았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아니, 그 전부터 진행되던 세속화가 강화되니 신앙이 차지할 자리가 작아졌습니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우리들 신앙의 열정이 식은 것도 사실입니다. 삶에서 신앙이 차지하는 위치가 조금씩 밀렸습니다. 팬데믹 이후에 찾아온 물가 상승과 AI등 과학의 발달이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빼앗아 갔습니다. 경쟁이 치열해지니,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챙기는 것이 뒷전으로 밀렸습니다. 신앙이 중요하고 그 길이 생명인 줄 알지만, 당장 급한 일에 신경을 쓰면서 생긴 결과들입니다. 이처럼 우리 생각과 삶에 신앙이 차지하던 비중이 작아졌습니다.

 

이제 일어나서 허리띠를 동여매고 다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을 다시 최고의 자리에 놓고, 우리의 삶을 하나님을 믿는 신앙 속에서 바라보고 그 힘으로 살고, 최종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회복하고 강건하길 원했습니다. 우리 교회 표어 그대로 든든하게 서기를 원했습니다. 팬데믹을 넘어서는 새로운 삶의 양식(new life style)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기도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속사람이 강건해지길 기도했습니다. 성령을 통해서 그 능력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속사람이 강해야 합니다. 흔들리지만, 절대로 무너지지 않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신앙과 삶의 복원력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속사람을 강하게 하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오늘은(17절) 바울의 첫 번째 “히나”에 속하는 기도 두 가지를 배웁니다. 믿음을 통해서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길 기도합니다. 예배 시간마다 한목소리로 고백하는 신앙고백의 내용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생명이 임했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예수님을 마음에 모실 수 있습니다.

 

사랑 가운데 뿌리가 깊어지고 터가 굳어져야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믿음에 사랑이 더해져야 합니다. 사랑이 빠지면 믿음도 위선적일 가능성이 큽니다. 사랑이 우리 신앙과 삶을 깊어지게 합니다. 사랑이 터가 굳어지는 넓이를 확보해 줍니다. 믿음과 사랑으로 든든히 서기 원합니다.-河-

2024년 새해 (2)

든든히 서게 하소서: 속사람

 

겉치레라는 말이 있습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은 겉치레를 “겉만 보기 좋게 꾸미어 드러냄”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겉치레가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외모를 꾸미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남에게 자랑할 것이 있다는 것도 겉모습일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겉도 중요합니다. 외모나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전혀 꾸미지 않는 것도 문제일 수 있습니다. 단정해 보여야 합니다. 이왕이면 밖으로 드러나는 삶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겉만 보기 좋게 꾸며서 드러내는 겉치레는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겉보다 내면을 강조합니다. 오늘 본문의 속사람(inner being)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외모가 출중했습니다. 처음 왕으로 선택되었을 때는 짐짝 뒤에 숨을 정도로 겸손했지만, 전쟁에서 승승장구하면서 교만한 인물로 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고 베들레헴 목동이었던 다윗을 왕으로 선택하십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내려갔을 때, 다윗의 형들이 먼저 선지자 앞에 나섰습니다. 다윗은 들에서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다윗 형들의 외모가 어린 다윗에 비하면 출중해서 사무엘 선지자도 잠시 헷갈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막내 다윗을 왕으로 선택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하나님께서 보시는 사람의 중심이 속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두 가지 마음이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는 마음과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으려는 또 다른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는 마음을 속사람이라고 했습니다(“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롬7:22).

 

고린도후서 4장 16절에서는 겉사람(엑크소)과 속사람(에소)를 비교합니다. 겉사람은 점점 쇠약해지고 쓸모없게 쇠퇴해 갑니다. 속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새롭게 됩니다. 보이는 겉사람은 잠깐입니다. 속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원합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알고, 눈에 보이지 않는 속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바울은 속사람이 강한 에베소 교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강력한 속사람을 갖기 위해서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우리가 믿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일하셔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입니다. 속사람을 강하게 만드시는 힘입니다. 이처럼 성령이 주시는 능력으로 속사람이 강건해 집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깨닫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풍성한 삶인지 경험합니다. 속사람이 강해졌을 때, 누리는 은혜입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