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의 우상

좋은 아침입니다

 

요즘은 성경 통독과 새벽기도회에서

에스겔서를 읽고 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선지자 에스겔이

하나님의 영에 이끌려 예루살렘을 오가면서

하나님을 떠난 예루살렘의 가증스러움을 고발하고,

하나님께서 바벨론 포로들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쓰실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오늘 새벽에 읽은 에스겔서 8장에는

“질투의 우상 (the ido/imagel of Jealousy)”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루살렘 북쪽 문에 세워진

가나안이나 이방 신들의 형상으로 추측합니다.

 

그것을 두고 “질투의 우상/형상”이라고 부른 것은

그 우상이 하나님의 질투를 유발했기 때문입니다.

 

2.

17세기 영국의 사상가 베이컨은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네 가지 우상을 제시했습니다: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

 

종족의 우상은 인간이나 특정 집단의 입장에서 주관적으로 사물을 판단하는 것,

동굴의 우상은 동굴 속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빛으로 나와서 갖게 되는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은 편견,

시장의 우상은 시장에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용어에 의존해서 세상을 판단하고 거래하는 편견,

극장의 우상은 소신없이 극장의 배우처럼 행동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자신만이 갖고 있는 편견이나,

처한 환경에 갇혀서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을 우상이라고 본 것입니다.

자신은 옳다고 믿고 따르지만 결국 우상에 갇힌 셈입니다.

 

3.

에스겔서 8장에 보면

하나님을 만난 백성들이 이방 신을 섬기고,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섬깁니다.

예루살렘 성벽에 각종 곤충과 짐승의 그림을 붙여놓고 그곳에 절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생명과 진리의 길인데

하나님을 무시하고, 다른 신을 따라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떠나서

다른 신과 자신들의 생각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우상에 갇힌 것입니다.

 

우리도 때로는 편견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자신만이 최고라고 생각하거나

자신의 입장이 진리라고 믿고 있지만

동굴 속의 사고일 수 있습니다.

자신만이 옳다는 종족의 우상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들은 것을 그대로 믿고,

때로는 자신을 숨긴 채

극장의 배우처럼 행동할 수도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 우리의 생각을 정립하기 원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 서는 것입니다.

편견을 버리고, 치장한 옷을 벗고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서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상들을 섬김으로

하나님의 질투를 유발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해서 등을 돌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안에 우상들을 몰아내고

진실하신 하나님 앞에 순전한 마음으로 서기 원합니다.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시고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시117:2)

For great is his steadfast love toward us,

and the faithfulness of the LORD endures forever.

Praise the LORD! (Psalms 117:2)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눈길 가는 곳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발길 가는 곳을 찾아가고

하나님의 마음을 닮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9.14이-메일 목회 서신)

마음에 숨은 사람

좋은 아침입니다

 

주일설교에서 살펴본 베드로전서 말씀이

이번 주로 마무리됩니다.

 

넉 달 가까이 베드로전서를 읽었습니다.

그래도 모두 살펴보지 못한 채 넘어간 본문도 많습니다.

대개 주일 예배에서 다루기보다

성경공부나 특강 등에서 다루어야 할 본문들이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6절도 살짝 건너뛰었습니다.

그런데 3장 4절이 마음에 남습니다: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but let your adorning be the hidden person of the heart with the imperishable beauty of a gentle and quiet spirit, which in God’s sight is very precious.(1Pet 3:4)

 

베드로전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향한

순수하고 바른 믿음을 강조합니다.

어떤 시련이 닥쳐도 잠깐 지나갈 것으로 알고

시련을 순금보다 귀한 믿음으로 승화시키길 요청합니다.

 

밖에서 일어나는 핍박이나 고난

안에서 일어나는 염려와 갈등도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믿음을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내면이 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인데

3장 4절에서는 “마음에 숨은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내면 깊은 곳에 숨겨진 또 다른 자아/존재를 가리킬 것입니다.

육신과 마음을 뛰어넘는 영적인 영역(심령 spirit)을 가리킬 것입니다.

 

마음에 숨은 사람, 심령이

온유(gentle)하고 고요(quiet)해야 합니다.

 

좀처럼 흔들리지 않습니다.

안팎에서 파도가 닥쳐오지만

깊이 숨겨진 심령에서 온유와 고요가 활동합니다.

 

절대로 썩지 않는 영원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값진 신앙 인격입니다.

 

2.

신앙은

“마음에 숨겨진 사람”을 순간마다

온유하고 고요하게 관리하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세상을 살면서

자칫 겉모습에 신경을 쓰고

남에게 보이는 것들로 치장하느라 에너지를 사용하곤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동안 공부한 베드로전서에서는

“마음에 숨겨진 사람”을 소개하면서

썩지 아니할 온유와 고요함을 누리길 요청합니다.

 

저는 이것을 위해서

하루 적어도 5분의 묵상(five minute meditation)을 제안합니다.

주님 안에서 고요한 시간, 묵상의 시간을 가지면서

성령 하나님의 만져주심, 위로, 능력, 회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진수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차분하고, 침착하고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온유와 고요함을 누리는 하루가 되기 원합니다.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but let your adorning be the hidden person of the heart with the imperishable beauty of a gentle and quiet spirit, which in God’s sight is very precious.(1Pet 3:4)

 

하나님 아버지,

아무리 삶이 요동쳐도

주님께서 주시는 고요함, 부드러움, 소망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9.7이-메일 목회 서신)

한 가운데

좋은 아침입니다

 

성경 통독과 수요예배,

그리고 새벽기도회에서 읽고 있는

예레미야서와 예레미야 애가는 서로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서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했다면,

애가는 멸망한 예루살렘을 보고 슬퍼하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애가(Lament)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와 애가서 한가운데

소망의 말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서 30-33장을

“위로와 소망의 말씀”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 조건 없이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십니다.

깨지는 돌 판이 아니라

마음속에 하나님의 법을 새겨 주십니다.

새 언약의 선포입니다.

 

다섯 장으로 구성된

예레미야 애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애가서 한 가운데인

3:19-25절에 소망의 말씀이 등장합니다.

 

상황은 깜깜합니다.

쑥과 담즙(쓸개)과 같은 고난이 닥쳤습니다.

마음이 낙심됩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노래합니다.

 

깜깜한 어둠 속을 걸으면서도

아침마다 새롭고 성실하신 주님을 기억합니다.

선하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분명히 돌보시고 함께 하실 것을 기대합니다.

눈에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실 때까지니라 (애가 3:49-50)

My eyes will flow without ceasing, without respite,

until the LORD from heaven looks down and sees. (Lam 3:49-50)

 

2.

예레미야서와 애가서의 ‘한가운데’ 위치한

소망의 말씀이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우리의 신앙이 한 가운데를 향해야 합니다.

주변을 맴도는 신앙은 어둠 속에서 헤매며

신앙의 진수에 접근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와 애가서 한가운데

소망의 말씀을 두신 것을 보면서

우리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한가운데”로 향해야 함을 배웁니다.

 

신앙의 한 가운데서

모든 참빛 식구들을 만나고,

그곳에서 선하신 하나님을 다 함께 찬양하고 싶습니다.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애 3:25)

The LORD is good to those who wait for him, to the soul who seeks him.(Lam 3:25)

 

하나님 아버지,

고난의 끝을 바라볼 수 있게 하시고

언제나 선하신 주님을 의지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8.31이-메일 목회 서신)

쏟아지는 물처럼

좋은 아침입니다

 

새벽 기도회에서는

예레미야서를 끝내고 오늘부터 예레미야 애가에 들어섰습니다.

 

예레미야 애가는

바벨론에 의해서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보고

예레미야 선지자가 부른 조가(lament)입니다.

 

하나님의 성읍 예루살렘과

하나님께서 계시던 예루살렘 성전이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던 예루살렘이 몹쓸 도시로 변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낮에는 예루살렘을 돌아보고

밤에는 낮에 본 참상에 눈물로 주님 앞에 엎드려서

예루살렘을 향한 애가를 써 내려갔을 것입니다.

 

사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애타게 외쳤고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말했지만

예루살렘 왕들과 지도자들은 예레미야의 말을 외면했습니다.

 

그의 예언대로 예루살렘이 무너진 것입니다.

예레미야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고,

자신의 예언이 맞았으니 더욱 당당할 수 있습니다.

바벨론에 가서 편하게 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땅의 백성들, 힘없는 백성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참상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면서 애가를 지은 것입니다.

 

2.

예레미야는 하나님 앞에서 통곡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함께 애가를 부르면서

주님의 긍휼하심을 구하자고 초대합니다.

 

깜깜한 어둠입니다.

쓰고 쓴 담즙을 씹는 것과 같은 세상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버림받고,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으니 더욱 절망적입니다.

 

그 순간 예레미야는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촉구합니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쏟듯 할지어다 (애가 2:19)

Pour out your heart like water before the presence of the Lord!(Lam 2:19)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쏟아내라는 말씀입니다.

잘못한 것들도 쏟아내고

어려운 상황도 그대로 쏟아내고

자신 안에 들어있는 찌꺼기들,

자기 힘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미련 또는 교만,

여전히 남아 있는 특권의식과 자존심도 물처럼 쏟아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자는 예레미야의 초청입니다.

 

우리도 순간순간

하나님 앞에 나와서 우리의 마음을 물처럼 쏟아내야 합니다.

선별할 필요없이 물처럼 쏟아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새로운 은혜로 가득 채우고

새 날을 사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물처럼 쏟아 붓고

아침마다 새롭고 성실하신 주님을 의지하며 살기 원합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도소이다 (애가 3:22-23)

The steadfast love of the LORD never ceases;

his mercies never come to an end;

they are new every morning;

great is your faithfulness. (Lamentation 3;22-23)

 

하나님 아버지,

주님을 향해서 마음을 활짝 열게 하시고

아침마다 새로우신 주의 성실을 따라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8.24이-메일 목회 서신)

                   

샬롬

좋은 아침입니다

 

요즘 미국 언론은

지난 토요일에 있었던

버지니아 샤롯츠빌 사건의 후폭풍을 연일 보도하고 있습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 연합군을 지휘했던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 철거를 두고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그들에 반대하는 시위자들의 충돌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인 우월주의자들을 감싸는 듯한 애매한 발언을 하면서

미국 사회 곳곳에 이끼처럼 끼어있던 인종 간의 갈등이 표면화되는 느낌입니다.

 

어디서 힘을 얻었는지

뒤에서 쉬쉬하며 활동하던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점점 큰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2.

5년 동안 살았던 인디애나 블루밍턴에서

북쪽으로 20마일 떨어진 마틴스빌이라는 곳에

KKK지역본부가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있었던 2000년 통계를 살펴보니

약11,000명 주민 가운데 흑인은 11명일 정도로

유색인종이 발을 붙이기 힘든 도시였습니다.

 

어쩌다가 그 도시를 지나갈 기회가 생기면

왠지 기분이 언짢고 얼른 빠져나오기 위해서

서둘러 엑셀러레이터를 밟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교민 가운데 한 분은 그 도시의 약국에 근무하셨고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드러내놓고 활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

인종이나 피부 색깔 등에 대한 차별과

이것을 빙자한 폭력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자신의 형상을 따라 모든 사람을 지으셨기에

누구나 존중받고 공평하게 대우받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평화가 깨지고

무고한 시민들을 위협하는 일이기에

경계하고 적극적으로 막아야 합니다.

 

어떤 분이 다음과 같이 미국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갈라진 모든 것을 충만한 은혜로 통합시켜 주십시오

찢겨진 모든 것을 충만한 사랑으로 아물게 해주십시오

부활, 새로운 생명을 주십시오.

Unite in full grace all that is divided.

Mend in full love all that is torn.

Resurrect us, we pray.

 

우리의 삶도 만만치 않지만

잠시 멈춰서 우리가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이 땅에 그리스도의 평화가 임하길 기도하기 원합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5:9)

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shall be called sons of God.(Matthew 5:9)

 

하나님 아버지,

분열된 세상이 화합하게 하시고

찢겨진 마음들이 하나로 회복되게 하옵소서.

주의 평화, 샬롬을 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8.17이-메일 목회 서신)

세심함

좋은 아침입니다

 

뉴스를 검색하다가

아이슬란드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시계 제작소에 대한 짧은 영상을 보았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직접 손으로 시계를 만듭니다.

1970년부터 시계 수리공으로 일한 아버지는

꿈에 그리던 JS Watch라는 브랜드와

자신의 이름을 딴 Gilbert라는 가게를 갖고 있습니다.

 

그가 만든 시계는 정확성과 독특한 디자인은 물론

1,000m 물속에서도 방수가 된답니다.

톰 크루즈를 비롯한 인기인들도 주된 고객입니다.

물론 값은 수 천 불에 이르는 고급 시계입니다.

 

2.

5분 남짓한 영상이었는데

제가 눈 여겨 본 것은

아버지와 아들이 시계를 만드는 모습입니다.

 

틀 위에 시계 원판을 올려놓고

오른쪽 안경에 덧씌운 돋보기와

핀셋을 사용해서 꼼꼼하게 시계를 조립합니다.

말 그대로 장인의 모습입니다.

 

단순히 시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분신을 조립해 가는 듯합니다.

그 모습이 아름답고 엄숙했습니다.

 

2.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도

장인과 같은 모습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한 자 한 자 꼼꼼히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 마음속으로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릎 꿇고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숭고합니다.

기도의 언어도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

 

주일에 모여서 예배할 때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조용한 기도시간부터

마지막 축도와 찬양대의 후주까지

하나님의 임재를 끝까지 사모하고 실제로 경험하면서 예배합니다.

 

3.

일터에서도 같은 마음으로 일합니다.

가정을 세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품 하나하나를 정성껏 조립하는 시계공의 모습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에게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천사도 흠모할 정도입니다.

그렇게 신앙과 삶을 세워가면

누구보다 우리 자신에게 기쁨과 자부심이 넘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주님 앞에서 그리고 이웃 앞에서

우리의 삶을 정교하고 아름답게 세워가기 원합니다.

 

주의 말씀이 심히 정미()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 (시 119:140)

Your promise is well tried, and your servant loves it. (Psalms 119:40)

 

하나님 아버지,

참빛식구들의 삶이 곧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8.10이-메일 목회 서신)

                   

성경읽기

좋은 아침입니다

 

8월 1일 자 워싱턴 포스트에는

펜스 부통령과 법무장관을 비롯한 백악관의 주요 인물들이

매주 모여서 성경공부를 한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초대를 받았지만

참석 여부는 확실치 않고,

성경공부 모임과 인도자 목사님을 적극 지지하고 있답니다.

 

자신들은 정치적 영향력이 없는

비공식적이고 순수한 의도를 가진 성경공부 모임이라고 주장하지만

워싱턴 포스트에서는

과연 그 모임에 정치적 의도나 영향력은 없는지 질문했습니다.

 

기사 밑에는

백악관의 성경 공부를 비꼬는 댓글들이 길게 달렸습니다.

 

2.

트럼프 내각의 주요 인사들 가운데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많습니다.

언젠가 트럼프의 어깨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사진도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

 

백악관에서 매주 모이는 성경공부가 제대로 진행된다면

트럼프가 이끄는 미국에서 성경이 말하는 대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같은 약자를 위하는 정치가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런 변화를 체감할 수 없습니다.

오바마 케어를 비롯해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점점 더 구석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그 높으신 분들이 매주 모여서

무슨 성경을 공부하고 무엇을 기도할지 궁금합니다.

신앙이 좋고 순수한 분들이라고 기사에서 소개했지만

과연 “신앙이 좋고 순수한”것이 무엇인지도 다시 생각해 봅니다.

 

3.

성경은 누가 어떻게 읽는가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

하나님 말씀도 분명한 의도가 있을 텐데

읽는 사람이 각기 다르게 성경을 이해하고

심지어 성경을 이용합니다.

 

성경을 올바로 읽기 위해서

성경이 과연 어떤 책인지

어떻게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받을 수 있는지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하는 지를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매우 혼란스럽고,

아전인수격 성경 읽기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4.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올바로 읽고 잘 다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내 마음대로 읽지 않고

하나님의 의도, 하나님의 음성과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기 원합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여러분과 성경에 관해서 얘기하고 함께 알아가고 싶습니다.

제가 잘 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왕 백악관에서 성경공부 모임을 하고 있다니

성경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백성들을 사랑하는 정치인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시119:18)

Open my eyes, that I may behold

wondrous things out of your law.(Psalms 119:18)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께서 주의 말씀을 읽으면서

그 안에 숨겨진 보화를 발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8.4이-메일 목회 서신)

느긋함

좋은 아침입니다.

 

야구나 골프든지

미국에서 활약하는 한국선수들을 보면 자랑스럽고

특별히 관심을 갖고 응원하게 됩니다.

 

엊그제 화요일에는

LA 다저스의 류현진 선수가 오랜만에 경기에 나와서

서너 개의 실투로 점수를 주었지만

부상에서 회복되는 과정을 고려하면 그런대로 잘 던졌습니다.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경기였는데

“바톨로 콜론”이라는 선수가 상대편 투수였습니다.

 

올해 44세인 바톨로 콜론은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노장입니다.

일본인 타자 이치로와 동갑이지만 생일이 앞섭니다.

여러 해 전에 은퇴한 박찬호 선수와 동갑이랍니다.

1997년에 데뷔해서 아직도 투수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20여 년 동안 10개의 팀을 옮겨 다녔으니

“저니맨”이라고 불릴 만합니다.

그래도 싸이영 상도 받고,

지난해에는 메이저리그 최고령 홈런타자가 되면서 올스타에도 뽑혔습니다.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바톨로 콜론은

운동선수답지 않은 체격을 가진

말 그대로 매우 느긋한 선수입니다.

류현진 선수도 만만치 않게 느긋한 성격이지만

콜론에 비하면 조급증에 시달리는 젊은 투수일 뿐이었습니다.

 

유연한 몸동작으로

공을 쉽게 던지는데

요즘 잘 나가는 다저스 타자들이 잘도 속아 넘어갔습니다.

 

저는 그에게서 여유를 느꼈습니다.

야구 자체를 즐기는 모습도 발견했습니다.

말 그대로 노장이었습니다.

 

2.

주일 말씀에서 배우듯이

우리는 세상에서 흩어진 나그네로 살아갑니다.

“저니맨”입니다.

 

물론, 나그네로 사는 것이 좋을 때도 많습니다.

 

불안한 만큼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신 하나님을 더욱더 의지합니다.

 

세상에 너무 연연하지 않고 여유를 갖고 자신의 삶을 즐기고

마음껏 여러 가지를 시도해 봅니다.

세상에 뿌리를 내리려는 사람들과 경쟁하지 않고

하나님 마음에 합하고,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공동체를 세우고,

설령 세상에서 억울한 일을 당해도 여유 있게 웃어넘기면서

선한 길을 걸어갑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살아가는

저니맨, 하나님 백성이 갖는 여유입니다.

 

메이저 리그의 노장 투수가 갖는 여유와 비교할 수 없는

진정한 느긋함입니다.

 

성경통독에서 전도서를 지나고 있기에

더욱 하나님 백성의 느긋함에 대해서 묵상하게 되고

그것을 추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을 평범하고 단순하게 만드셨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복잡하게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전도서7:29, 새번역)

See, this alone I found, that God made man upright,

but they have sought out many schemes. (Ecclesiastes 7:29)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께서

믿음 안에서 여유를 갖고 하루를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7.27이-메일 목회 서신)

사는 동안에

좋은 아침입니다.

 

성경 통독이 전도서에 와 있습니다.

앞으로 예언서를 지나면 신약성경에 도착하게 됩니다.

 

통독할 때 마다 느끼는데

전체 성경 가운데 구약의 분량이 꽤 많습니다.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그들을 통해서 이루시려는

구원의 역사가 그만큼 길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도서는

인생의 시계추를 맨 끝에 갖다 놓고

인생 전체를 조망하는 말씀입니다.

 

너의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전12:1)

– 전도서 말씀의 주제입니다.

 

저는 여기서 “청년의 때”를

누구에게나 가장 젊은 “지금 이 순간”을 가리키는 말씀으로 읽습니다.

그러니 <지금 여기>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마음에 품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2.

전도서 3장 12절은 짧지만

마음에 깊은 울림과 실제적인 도전이 있었습니다.

 

이제 나는 깨닫는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새번역)

I perceived that there is nothing better for them than

to be joyful and to do good as long as they live;(Ecclesiastes 3:12)

 

주일에 살펴보는 베드로전서 말씀도

“우리가 누구인가”로 시작해서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변입니다.

 

하나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구별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랑이 되고,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전도서는 그 가운데 한 가지 비결로

“기쁨”과 “선행”을 제시합니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길과 진리와 생명을 얻은

신앙의 기쁨을 생각했습니다.

 

그 기쁨이 우리 안에 넘쳐서

세상으로 흘러가는 것이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선행일 것입니다.

역시 신앙과 삶의 통합이자 연결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기뻐하고

주님 주신 은혜 속에서 기쁘게 살기 원합니다.

세상 속에서 좋은 일을 하면서 하루를 살기 원합니다.

 

이제 나는 깨닫는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새번역)

I perceived that there is nothing better for them than

to be joyful and to do good as long as they live;(Ecclesiastes 3:12)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 하루

기쁘고 선하게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7.20이-메일 목회 서신)

레갑 족속

좋은 아침입니다.

 

새벽기도회에서 예레미야서를 읽는 중에

“레갑 족속(the Rechabites)이라는 특별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예레미야 당시에 레갑 사람들은

바벨론 군대를 피해서 예루살렘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성전의 한 방으로 초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포도주가 가득 든 항아리를 가져다가

포도주를 마시라고 권하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고

다음과 같이 자신의 조상 요나답의 말을 전합니다(렘35:6-7).

 

– 너희는 물론 자손들도 포도주를 먹어서는 안 된다 (거룩한 삶의 표시)

– 집도 짓지 말고 곡식의 씨도 뿌리지 말고 포도나무도 심지 말고 유목민으로 장막에서 살아라.

– 그러면 나그네로 사는 땅에서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해 주실 것이다.

 

레갑 족속은 그들의 조상 요나답이 가르쳐준 전통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레갑 족속의 구별된 삶은

아브라함과 모세의 전통을 저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이스라엘과 비교됩니다.

 

2.

레갑 사람들에 대한 성경의 기록이 많지 않습니다.

 

레갑사람들은 양을 치면서 이곳저곳을 다니는 유목민이었습니다.

이집트 왕자 모세가 광야에서 40년을 보내고

그곳에서 겐 족속의 제사장 이드로의 딸을 아내로 맞게 되는데,

레겝 사람들이 겐 족속(the Kenites)에서 왔다고 봅니다 (역대상 2;55).

 

레갑 사람들이 최고의 조상으로 여기는 요나답에 대한 말씀이

열왕기하 10:15-17에 나옵니다.

 

엘리야가 세운 예후가 잔악했던 아합왕의 가문을 치러갈 때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요나답)”에게 함께 가서 의로운 일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때 여호나답이 기꺼이 예후를 도왔습니다.

 

레갑 사람들은

이스라엘 정통 가문이 아니었지만

의로운 일에는 힘을 합쳤습니다.

 

무엇보다 3백여년 동안

조상 요나답이 전한 말을 그대로 지키며 살았습니다.

정착민으로 살기를 포기하고

구름처럼 떠다니는 장막 생활을 했습니다.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않으면서 거룩함을 실천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들의 길을 걸어간 것입니다.

 

3.

레갑의 아들 요나답은 왜 후손들에게 나그네 삶을 살라고 했을까요?

 

자신들의 본업인 유목민의 삶을 지속하라는 뜻일 겁니다.

조상 대대로 같은 일을 하는 것은 언제나 큰 귀감이 됩니다.

 

장막에서 지내는 유목 생활은 그만큼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착하지 않으니 세상에 마음을 둘 수 없고

하나님께만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하기에

나그네 삶을 살라고 부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레갑 사람들을 축복하십니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렘35:19)

 

자신의 길을 지속적으로 걷기가 쉽지 않습니다.

요즘처럼 급변하는 시대에는 더욱 어렵습니다.

 

다른 것들은 시대에 따라서 변하고 적응해 나가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한결같기 원합니다.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와 같은 상록수 신앙을 갖기 원합니다.

 

예레미야가 레갑 사람의 가문에게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너희 선조 요나답의 명령을 순종하여 그의 모든 규율을 지키며

그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을 행하였도다 (렘 35:18)

you have obeyed the command of Jonadab your father

and kept all his precepts and done all that he commanded you (Jer 35:18)

 

하나님 아버지,

나그네 인생길을 걸으면서

레갑 사람들의 신앙을 본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7.13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