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좋은 아침입니다.

 

1.

11월은 감사의 달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도움의 손길을 건네 준 이웃에 감사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낱낱이 세면서

우리 삶에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구체적으로 기억하기 원합니다.

 

동시에

함께 울고 함께 웃어준 이웃들,

무엇보다 가족들, 교회 식구들, 동료와 친지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섭섭하고 아쉬운 것들은

쉽게 기억하는데

받은 은혜와 사랑은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는 찬송가 가사처럼

의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이웃에게 받은 사랑을

찾아서 세어 보기 원합니다.

 

2.

우리의 감사가

가까운 이웃을 넘어서 더 멀리 퍼져 나가면 좋겠습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혜택을 주는 사람들,

목숨을 걸고 세상을 지키는 분들,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분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희생하는 분들 등등

– 감사의 지경이 넓어지기 원합니다.

 

올해도 캘리포니아에 큰 산불이 났을 때

산불을 제압하기 위해서 목숨 걸고 싸운 소방관들이 계십니다.

 

이번에 소노마 카운티에서 난

킨케이드 산불 (Kincade Fire, Kincade st에서 시작해서 붙여진 이름)은

7만여 에이커를 태웠고, 강풍과 더불어 열흘 넘게 계속 되었습니다.

그 현장에 수많은 소방관이 투입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독도에 환자를 실으러 갔던 소방 헬기가 추락해서

탑승한 사람들이 모두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악천후를 무릎 쓰고 환자를 살리려던 소방관들의 희생정신을 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종종 소방관들은

의레 불을 끄고 사고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로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도 사랑하는 아내, 자식, 형제자매,

자나 깨나 걱정하시는 부모님이 있습니다.

그들도 세상에서 가장 귀한 남편이고 아버지이고 아들입니다.

 

독도 헬기 사고의 부기장 아버지는

소아 마비 장애인으로 목발을 짚고 생활하시는 분입니다.

공군에서 11년을 근무하고 다시 소방관이 된 아들이 늘 자랑스러웠는데

몇 년 전 병으로 잃은 둘째에 이어 이번에 첫째 아들까지 잃었습니다.

아들이 살아 있기만을 기도하면서 강원도에서 대구로 내려온

아버지의 기사를 읽으면서 가슴이 메었습니다.

 

세상을 안전하게 지키는 많은 분 가운데서

지금 이 순간에도 산불을 끄고

위급한 목숨을 구하는 소방관들께 감사하고 싶었습니다.

 

3.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의미부터

모든 상황과 모든 분께 감사하라는 의미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기 원합니다.

평소에 무심코 지나갔던 이웃들, 사람들, 상황을 포착해서

진심으로 감사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시편 95:2)

Let us come into his presence with thanksgiving;

let us make a joyful noise to him with songs of praise! (Psalms 95:2)

 

하나님 아버지

감사가 넘치는 11월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11.7 이-메일 목회 서신)

 

 

 

 

10월의 마지막 날에

좋은 아침입니다.

 

1.

10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할로윈 데이네요.

언제부터인지 할로윈 데이가

꽤 유행해서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할로윈 코스튬을 입고 인사합니다.

 

시장에 가니

할로윈 데이 호박이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대목을 기대하면서 한 해 농사를 지은 분들에게

손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요즘은 뜸한 것 같은데 교회에서는

할로윈 데이 대신에 할렐루야 나이트를 했습니다.

그렇게까지 세상과 대항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면 자칫 아이들에게

세상에 적대적인(against culture)사고방식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물론 할로윈 데이를 문화적인 행사로만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길 것도 아닙니다.

기독교인으로 중심은 잡고 가야 합니다.

세상을 대적하지 않지만, 세상과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결코 쉬운 일도, 단순하게 해답을 찾을 일이 아니기에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 고민하고

작은 일이라도 실천하면서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으로 사시길 부탁드립니다.

 

2.

마틴 루터가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당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면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개신교의 생일인 셈입니다.

 

면죄부를 파는 등 당시 가톨릭의 그릇된 관행에 대한

마틴 루터의 저항이었습니다.

루터뿐 아니라 스위스의 쯔빙글리, 제네바의 칼빈까지

종교개혁 정신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된 것입니다.

 

고인 물은 썩습니다.

세상은 변하는데 제자리에 있으면 순식간에 뒤처집니다.

교회가 재물과 권력을 탐하면

길에 버린 소금처럼 맛을 잃고 사람들의 발에 밟힐 것입니다.

 

어쩌면 요즘 교회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에 감격하지 않고

세상에 길들여진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개혁은 현재 진행형이어야 합니다.

 

3.

뜬금없을 수 있는데

10월의 마지막 날이 되면

한국에서 대목을 보는 가요가 있습니다.

 

<잊혀진 계절>이라는 제목의 노래입니다.

10월의 마지막 밤에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기고 연인과 헤어졌습니다.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행여나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10월의 마지막 밤을 맞는다는 가사입니다.

 

10월의 마지막 날이 되면

우리의 신앙은 물론 교회가 새로워져야 한다는 꿈을 꿉니다.

매년 같은 꿈을 꾸면서 그날을 맞는데

때로는 이뤄질 수 없는 꿈인 것 같아서 슬픕니다.

 

그래도 희망을 버릴 수 없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4.

10월의 마지막 날을

멋진 날로 만들어 봅시다.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그리스도인으로,

변화와 개혁이 필요한 곳을 과감히 손보고

그분을 진심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기 원합니다.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살전 1:1)

Paul, Silvanus, and Timothy, to the church of the Thessalonians in God the Father and the Lord Jesus Christ:

Grace to you and peace. (1Thessalonians 1:1)

 

하나님 아버지

깔끔하게 10월을 마무리하고

11월 새달을 맞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10.31 이-메일 목회 서신)

브엘세바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주 이-메일 서신에서는

조금 앞서가서 야곱과 요셉의 만남에 초점을 맞췄다면,

오늘은 뒤로 돌아가서 야곱이 브엘세바에 잠시 머무는 말씀을 살펴봅니다.

 

브엘세바는 “일곱 개의 우물” 또는 “맹세의 우물”이라는 뜻입니다.

“셰바”에 숫자 7과 맹세라는 뜻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브엘세바는 아브라함과 이삭이 터를 잡고

야곱도 이곳에서 자랐을 테니 고향과 다름없는 곳입니다.

고향과 다름이 없다는 것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가나안 땅에서 나그네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고향도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던 아브라함이

원주민의 왕인 아비멜렉과 평화조약을 맺은 곳이 브엘세바입니다.

수양버들과 같은 에셀나무(옮겨 심고 가꿔야 하는 나무라고 식물에 대한 설교에서 배웠음)

아래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삭 역시 아비멜렉과 그의 부하들에게 쫓겨 다녔습니다.

우물만 파면 그들이 와서 차지했습니다.

이삭 역시  아버지 아브라함이 있던 브엘세바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이어서 아비멜렉과 평화조약을 맺고 브엘세바에 머물렀습니다.

 

2.

브엘세바는 야곱이 살던 헤브론에서 남쪽입니다.

이집트로 내려가던 야곱이

브엘세바에 들려서 밤을 지냅니다.

 

아들 요셉이 총리가 되어서

가족 초청 이민으로 이집트로 가는 중이지만,

야곱의 마음은 무척 착잡했을 것입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이집트에 내려가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일 정도로 혼이 났다는 얘기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야곱 자신이

가족을 모두 데리고 그 이집트로 내려가는 중입니다.

 

조국을 떠나서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기에

야곱의 마음이 십분 이해됩니다.

 

3.

야곱도 할아버지 아브라함, 아버지 이삭처럼

브엘세바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희생 제사를 드립니다.

간절히 기도했겠지요. 주님의 뜻도 물었을 것입니다.

 

어느덧 130세가 되었으니 젊었을 때 야곱이 아닙니다.

벧엘에서 돌 베개를 하룻밤을 보냈던 것이나,

얍복 강가의 씨름도 이제 불가능합니다.

힘이 다 빠졌습니다. 민첩함도 상실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하나님만 의지할 뿐입니다.

 

그 밤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창 46:3-4)

 

이집트로 향하는 야곱에게 꼭 맞는 말씀입니다.

무엇보다,

내가 너와 함께 애굽(이집트)으로 내려가겠고 (창46:4)

I myself to down with you to Egypt (Gen 46:4)

는 말씀이 야곱에게 커다란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야곱만 내려가고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서 기다리시는 것도 아니고

야곱에게 내려가지 말라고 말리시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직접 야곱과 함께 이집트로 내려 가시겠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 일행을 이끄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집트로 내려가는 야곱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을 것입니다.

 

4.

우리의 삶이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가는 길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인지 헷갈리고 불안합니다.

 

그때, 야곱이 들었던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도 듣기 원합니다:

내가 너와 함께 애굽(이집트)으로 내려가겠고 (창46:4)

I myself to down with you to Egypt (Gen 46:4)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함께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믿고

주어진 인생길을 담대하게 걸어갑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참빛 식구들과 함께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10.24 이-메일 목회 서신)

 

 

수요예배에서는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수요예배에서는

창세기를 1년 가까이 읽고 있습니다.

어제 46장까지 읽었으니 앞으로 한 달이면 창세기를 마칩니다.

 

창세기 요셉에 대한 말씀은

 

1) 창세기 전체에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극심한 가뭄에도 요셉을 미리 이집트로 보내셔서

아브라함 후손의 생존을 보호하셨음을 알려줍니다.

 

2) 이어지는 출애굽기와 연결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 가서 살게 된 경위를 알려줍니다.

그런 점에서 요셉에 관한 말씀은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잇는 다리입니다.

 

3) 요셉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제국 이집트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가능성을 제시하고

요셉과 함께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확신시켜 줍니다.

 

2.

그동안 주일예배에서 살펴보았던

탕자의 비유는 집을 나갔던 아들을 아버지가 맞아주는 말씀이었는데,

요셉에 관한 말씀은 가뭄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는 아버지와 가족을

요셉(아들)이 맞아주었습니다.

 

하지만,

탕자의 비유와 요셉의 말씀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것은

용서와 화해,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재산을 팔아서 모두 없앤 둘째 아들을 용서했고

요셉은

자신을 이집트에 팔아먹은 형들을 용서했습니다.

 

아버지는

빈털터리가 되어서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안아주고, 입을 맞추며 울었습니다.

요셉은

먹을 것이 없어서 양식을 구하러 온 형들을 안고 입을 맞추며 한참을 울었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자신의 초청으로 이집트에 온 아버지 야곱을 만났을 때

요셉은 아버지와 목을 어긋 맞추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허랑방탕 모든 재산을 없앤 실패자 둘째 아들이나

이집트에 팔려와서 소위 성공한 요셉이나

아버지 품에 안겨서 울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버지 품이 그렇게 좋습니다.

잘못해서 돌아온 탕자나

최고의 인생을 사는 요셉이나 똑같이 아버지 품이 필요했습니다.

아버지 품에 안겨서 한없이 울 수 있다면 행복한 아들입니다.

 

3.

우리도 살면서

아버지 품에 안겨서 한없이 울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긴장을 풀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흐느껴 울고 싶을 때입니다.

 

우리 예배가 그러길 바랍니다.

참빛 식구들의 골방 기도 시간도 아버지 품이길 원합니다.

아니, 설거지하든지 쉼을 갖든지 일을 하든지

아버지 품에 안겨있는 “그 순간”을 경험하길 원합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마음으로 느끼는 귀한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맛보아 아는 신비롭고 감격스러운 순간입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시편 34:8-9)

Oh, taste and see that the LORD is good!

Blessed is the man who takes refuge in him!

Oh, fear the LORD, you his saints,

for those who fear him have no lack! (Psalms 34:8-9, ESV)

 

하나님 아버지

주를 찾는 참빛 식구들을

꼭 만나 주시고 안아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10.17 이-메일 목회 서신)

 

 

 

 

 

 

프레드 로저스

좋은 아침입니다.

 

1.

우리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동네에 살고 있습니다.

비싼 생활비가 문제인데

정말 좋은 동네라면 그 정도의 비용을 지불해야겠지요.

 

이 말은 우리 동네의 청명한 날씨와

사시사철 변함없는 기온,

온 세계의 정보가 모이는 기회의 땅임을 가리킬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좋은 동네는

사람이 좋아야 합니다.

 

이웃이 좋으면 힘겨운 날도 아름다운 날로 변합니다.

이웃과 교제하면서 힘을 얻고, 도전받고,

그들과 더불어 사는 것 자체가 축복입니다.

 

우리 동네가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우리 교회도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고 따르는

좋은 이웃들로 가득한 공동체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2.

“우리 동네, 아름다운 날에 (A beautiful day in our neighborhood)”라는

영화가 다음 달 미국에서 개봉합니다.

 

1968년부터 2001년까지

“로저스 아저씨의 마을/Mr. Rogers neighborhood”이라는

유치원 아이들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프레드 로저스(Fred Rogers)에 관한 영화입니다.

톰 행크스가 로저스 역을 맡았습니다.

 

프레드 로저스는

느릿한 말투, 깔끔한 머리 스타일, 빨간 스웨터를 입은

친절하고 자상한 이웃집 아저씨였습니다.

 

음악을 전공했기에 프로그램에서 자작곡 노래를 즐겨 불렀고

운동화 끈을 매는 방법부터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나

시대의 이슈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서 소개했습니다.

 

워낙 오랫동안 공영방송(PBS)에서 활동했기에

대부분의 성인이 로저스와 함께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가 만약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저와 아이들이 각각 로저스 쇼를 보며 자란 특별한 세대가 되었을 것입니다.

 

3.

그는 장로교 목사였는데

신학교를 졸업하고 교회가 아닌 방송국에 진출해서

어린이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족 가운데 음악가가 없는데도

텔레비전을 보고 유명한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되고.

다른 사람은 텔레비전의 추악한 장면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끼치는 TV의 영향력을 실감했고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사명(calling)을 갖게 되었습니다.

 

목사였지만,

텔레비전 진행자로 더 귀한 목회를 하신 분입니다.

흠이 없을 정도로 귀감이 되셨습니다.

깨끗한 인상 그대로 한결같은 인생과 신앙의 여정을 걸어가셨습니다.

 

3.

프레드 로저스(1968-2001)가 텔레비전에 선한 영향력을 끼쳤 듯이

우리 아이들 세대에 맞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리스도인으로/어른으로 아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분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그가 예수님은 아니고 예수님이 될 수 없지만,

자신의 영역에서

예수님처럼 살았다는 찬사를 들은 프레드 로저스!

 

우리 참빛 식구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예수님처럼 사시는 하루가 되길 기도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흠이 없고 순결해져서,

구부러지고 뒤틀린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별과 같이 빛날 것입니다 (빌 2:15, 새번역)

that you may be blameless and innocent, children of God without blemish in the midst of a crooked and twisted generation, among whom you shine as lights in the world (Phil 2:15, ESV)

 

하나님 아버지

세상 속에서

참빛 식구들이 별처럼 빛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10.10 이-메일 목회 서신)

 

 

어지러운 세상중에

좋은 아침입니다.

 

1.

세상이 어지럽습니다.

옳고 그름에 앞서 이쪽저쪽이 서로 싸우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마음도 둘로 갈라집니다.

양극화의 문제가 심각합니다.

상대방의 생각을 알지 못하니 대화하는 것도 조심스럽습니다.

 

바울이 개척한 고린도 교회가 심하게 분열했습니다.

고린도에 복음의 씨를 뿌린 바울,

고린도 교회에 물을 주며 자라게 한 아볼로,

심지어 한 번도 얼굴을 못본 게바(베드로)파까지 생겼습니다.

교회 안에 세(숫자)를 불려서

힘을 행사하려는 속셈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뉠 수 있냐고 안타까워하면서

같은 마음과 같은 뜻을 갖고 하나가 되길  부탁했습니다.

 

고린도에 세워진 몇 명 안 되는 교회도 의견이 갈리고

파당이 생긴 것을 보면, 화합보다는

분열이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본성인 것 같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으며 하나님의 자리(힘)를 탐했듯이

모든 인간의 깊은 곳에 권력욕이 자리 잡고 있어서

각자의 주장을 포기하지 못하나 봅니다.

 

2.

이처럼 어지럽게 갈라진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우리가 사는 세상이 다양하고 세분되어서

어쩌면 초대교회처럼 일률적인 해답을 제시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렇다고 갈팡질팡해서도 안 됩니다.

 

저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제시하고 싶습니다.

 

첫째, 성경 전반에 흐르는

하나님의 마음(뜻)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주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사랑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과 나누는 것입니다.

 

사랑 외에

“진리(truth거짓을 부정)” “공의(righteousness어그러지지 않고 바름)”

“정의(justice 약한 자가 대우받음)”가 성경 전반에 흐르는 가치들입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해서

구원(생명)의 복음을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삶입니다.

 

둘째, 위에 제시한 성경 전반에 흐르는 가치들을 갖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라보고 세태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어떤 특정 사람(들)이나 그룹에 모든 것을 걸면

함께 넘어지거나 더 크게 실망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이나 생각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나 그룹 자체보다는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사안들(issues)이

위에 제시한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 판단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적으로 따를 분은

예수님뿐입니다.

 

셋째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세상의 가치와 이슈들을 살피고

그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잘못되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의 생각과 입장을 존중하면서 공감대를 찾는 것도 중요합니다.

자신만이 옳다고 고집 부릴 것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 완벽하지 않기에 배우려는 열린 태도가 요청됩니다.

 

화평케 하는 자(peace-maker)라는

그리스도인의 사명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참되고, 선하고, 아름답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엡5:8-9)

Walk as children of light

for the fruit of light is found in all that is good and right and true (Eph 5:8-9)

 

하나님 아버지

세상이 선한 일에 하나가 되게 하시고

참빛 식구들이 빛 가운데 행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10.3 이-메일 목회 서신)

 

 

 

 

 

하루 일곱 번

좋은 아침입니다.

 

1.

매일 아침 카톡으로 보내드리는 말씀에서

성경의 가장 긴 장(chapter)이자 지혜 시편인 시편 119편을 나눴습니다.

 

레위기 읽기 중간에 나눈 시편 말씀이었기에

상대적으로 훨씬 은혜가 넘쳤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송이 꿀보다 달다는 시편 기자의 고백을 실감했습니다.

 

시편 119편을 나누는 마지막 날

저는 물론 우리 모두에게 도전이 되는 말씀을 만났습니다: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시편 119:164)

Seven times a day I praise you for your righteous rules (Ps 119:164)

 

시편 기자가 매일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한다는 고백이 특별했습니다.

그때야말로 먹고 사는 의식주와 안전이 매 순간 위협받는 시절이었기에

하루 일곱 번 찬양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어렵고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하나님 임재를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그의 삶을 통제했습니다.

 

주님의 말씀(규례)을 통해서 하나님을 찬양했으니

그만큼 하나님 말씀을 읽고 되새겼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선한 일을 하고, 그때마다 주를 찬양했을 것입니다.

 

찬양은 감사와 기쁨의 표시이니

하루 일곱 번 찬양하는 그의 삶이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2.

영국 스코틀랜드에 있는 한 교회에서 52년을 목회한

윌리엄 스틸(William Still)이라는 목사님에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

 

바닷가 애버딘 출신입니다.

어릴 적에는 다리를 절고 건강이 약해서

구세군 교회 봉사 프로그램에서 거절당하기도 했는데

2차 세계대전이 한창 일 때 신학과 목회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스틸 목사님의 목회는

말씀과 기도, 예배와 친교, 전도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모임과 교회 조직이 많지 않았습니다.

주중 성경 공부와 토요 기도 모임, 그리고 예배가 다였습니다.

대신 교회가 가족과 같길 원했고

진실한 그리스도인 한 명이 세워지는 것을 보기 원하셨습니다.

그래도 자녀들을 위한 주일학교는 신경을 쓰셨습니다.

 

어쩌면 우리 교회가 지향하는 사역과 비슷해서 반가웠지만,

우리는 아직 많이 부족하고

훨씬 내실을 기해야한다는 도전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기도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지 프로그램이나 의무감에서가 아닌

서로에게 힘이 되는 기도 모임을 하고 싶은데

연세와 거리, 육아, 바쁜 삶 등으로 우리 교회의 기동성이 많이 떨어집니다.

 

현실적으로 함께 모이기 힘들어도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에 몇 번씩 (일곱 번이면 더 좋구요)

주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는 기쁨을 누리면 얼마나 좋을까요!

 

참빛 식구들이 매일 일정하게 하나님을 기억하며

신앙 가운데 살아간다면 그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우리 모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깊어지고

그 속에서 주의 은혜와 사랑을 흠뻑 경험하고

그 힘으로 감사와 기쁨의 찬양이 저절로 흘러나오길 원합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 121:1-2)

I lift up my eyes to the hills.

From where does my help come?

My help comes from the LORD,

who made heaven and earth. (Psalms 121:1-2)

 

하나님 아버지

주님과 긴밀히 동행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9.26 이-메일 목회 서신)

 

 

 

 

 

베리 지토

좋은 아침입니다.

 

1.

우리 동네 야구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짝 수년 마다 세 번 연속 우승했습니다.

2014년 이후로는 우승 소식이 없네요.

 

2010년과 2012년 우승할 때

선수로 뛰었던 베리 지토라는 선수가 최근에

“커브볼(Curveball)”이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지토 선수는 오클랜드 애슬래틱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투수로 활동했고

명예의 전당에 오를 만큼 유명한 선수입니다.

 

지토는 자이언츠가 56년 만에 우승했던 2010년,

플레이오프 명단에 들지 못해서

밖에서 우승하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지토는 그의 책에서

출전선수 명단에 들지 못했을 때

자기 팀인 샌프란시스코를 응원하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고백해서

최근 며칠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2.

지토는 책에서 자신의 개인사도 솔직히 밝혔답니다.

지토의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그의 의붓딸(step daughter)을 성폭행해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지토에게 완벽함은 물론

세상에서의 성공을 강조했습니다.

지토 역시 아버지의 뜻대로 승승장구했습니다.

 

그렇지만 늘 쫓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성공에 연연했고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2010년 우승팀 선수로 뛰지 못한 것을 두고

자기 팀을 응원하지 않은 것이 대표적입니다.

 

지토의 멘토는 오직 한 사람 아버지였고

아버지에게 전수받은 가치관을 절대적으로 따랐습니다.

 

그런 지토가 마음을 돌이키고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 계기는

신실한 신앙을 가진 아내를 만나면서부터 입니다.

 

육신의 아버지가 주입한 세상의 가치관으로

성공 일변도의 길을 걷던 지토에게

하나님 아버지로의 귀환은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행복과 새로운 인생관을 갖게 했습니다.

 

지토는 신앙으로 마음을 다스렸습니다.

신앙이 주는 평안이 그를 사로잡았고

슬럼프를 이기고 다시 야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3.

탕자의 귀환이라는 설교를 나누고 있기에

지토의 인터뷰 기사가 더욱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자기가 출전하지 못한다고

56년만에 결승에 올라간 자기 팀을 응원하지 않았다는

지토의 고백은 솔직하게 들리면서도 충격입니다.

 

지토만 그렇겠습니까? 우리 모두 연약하고 불완전합니다.

우리 마음속의 생각은 어지럽고 밖으로 드러나면 부끄러운 것들도 참 많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기준점이 너무 많아서 매사를 상대적으로 판단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주시는 평안과 힘, 그리고 위로를 구합니다.

하늘 아버지의 말씀을 ‘기준’ 삼아서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 인생길을 걸어가기 원합니다.

 

[탕자가]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눅 15:20)

And he arose and came to his father. (Luke 15:20)

 

하나님 아버지

매일의 삶이

일어나서 주께로 돌아가는 귀환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9.19 이-메일 목회 서신)

다람쥐

좋은 아침입니다.

 

1.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집 근처에서 다람쥐를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아이들과 다람쥐 잡는 내기도 했는데,

날쌘돌이 다람쥐를 잡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가을은 다람쥐에게 가장 바쁜 계절입니다.

겨울 동안 먹을 도토리를 땅속에 숨겨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람쥐는 도토리를 사방에 묻어 놓는데

이듬해 봄까지 다람쥐가 찾아내는 도토리는 25% 미만이랍니다.

나머지는 도둑을 맞거나 어디에 숨겼는지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연구에 의하면 다람쥐는 후각보다 기억력을 사용하는데

워낙 많이 숨기기도 하지만,

건망증으로 숨긴 장소를 까맣게 잊어버린답니다.

 

다람쥐가 찾지 못한 도토리는 싹이 나서

도토리나무로 자란다니

생태계에 도움을 주는 다람쥐 건망증입니다.

 

2.

엊그제 CNN 뉴스에

다람쥐에 관한 흥미로운 기사가 또 하나 떴습니다.

다람쥐는 늘 몸을 쫑긋 세우고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사방의 적을 경계하듯이 나무와 땅을 오갑니다.

 

다람쥐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때가 있는데

스스로 감지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변 새들의 지저귐에 의존한답니다.

 

새들이 자유롭게 지저귀면

매와 같은 약탈자들이 사라지고

평화가 왔음을 감지하는 식입니다.

 

다람쥐처럼 예민한 동물이

스스로 위기를 느끼기보다

새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3.

지난주에 살펴본 탕자의 비유가 생각납니다.

 

아버지 재산을 모두 팔아서

먼 나라에 간 둘째 아들이 완전히 망가졌을 때,

그를 붙잡아 줄 아버지와 가족이 없었고

그에게 경고음을 들려줄 신앙도 없었습니다.

 

돼지 농장에 취업했지만

돼지에게 주는 쥐엄열매 조차 건네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둘째 아들은 속절없이 무너졌습니다.

 

4.

비유 속의 둘째 아들을 보면서

우리를 지켜줄 가족과 친구가 필요함을 다시 느낍니다.

행여나 귀찮거나 부담이 될 수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를 붙잡아 줄 지킴이들입니다.

 

때로는 다람쥐처럼 영적 건망증이 도져서

하나님을 잊고 살 때가 있습니다.

요즘 시대에 신앙 말고도 쫓아갈 것이 많아서

신앙이 시시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우리를 살리고 결국에는 회복시켜 주는 것이 신앙입니다.

 

인생길을 걷다 보면

신앙이 꼭 필요하고

신앙의 힘이 발휘되는 순간을 분명히 만납니다.

 

우리를 지지해 주는 가족과 신앙의 동지들,

우리를 살리는 신앙을 꼭 붙들고

하루하루 살아갑시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편 121편 1절)

I lift up my eyes to the hills. From where does my help come? (Psalms 121:1)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도움이 되시고

이 세상을 회복시키실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9.12 이-메일 목회 서신)

 

 

헤세드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8월 24일

인디애나폴리스 콜츠(Colts) 풋볼팀의 쿼터백 앤드류 럭(Andrew Luck)이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겨우 29세이고

십억불 이상의 수입이 예상된 최고 쿼터백의 은퇴 선언이

지난주 스포츠계에 커다란 이슈였습니다.

 

앤드류 럭은 스탠퍼드를 졸업하고

2012년 1순위로 인디애나 콜츠에 지명되었습니다.

처음 3년 동안 팀을 연거푸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면서

농구의 레브른 제임스에 맞먹는 가능성을 입증했습니다.

 

그런데 그를 가로막은 것은 잦은 부상이었습니다.

공을 패스한 후에 상대편 수비수가 그를 넘어뜨리기 일쑤였고

그 과정에서 어깨는 물론 머리와 온몸에 부상을 입었습니다.

2017년 시즌은 통째로 경기를 뛰지 못했습니다.

 

앤드류 럭은 독서광이었다고 합니다.

올봄에 결혼해서 곧 아기 아빠도 됩니다.

그런데 아주 모진 성격을 갖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부상과 치열한 경기로 그의 몸뿐만 아니라

더 경기를 뛰지 못할 정도로 마음도 피폐해졌습니다.

 

같은 팀 선수들도 그의 고민과 아픔을 알고 있었기에

시즌을 앞두고 은퇴를 선언했을 때, 그를 이해했습니다.

팀에서도 최대한 배려했고,

엊그제 인디애나폴리스 신문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팀은 물론 평생 자신이 사랑하던 풋볼과 아쉬운 작별을 고했습니다.

 

그는 풋볼을 사랑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은퇴를 결심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2.

모든 삶이 쉽지 않습니다.

 

남의 떡이 커 보이듯이 다른 사람들은 쉽게 인생을 사는 것 같지만

속 얘기를 들어보면 힘겹게 인생길을 걸어갑니다.

 

참고 가는 여정인데,

때로는 앤드류 럭처럼 막다른 골목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앤드류 럭이야 충분한 재력이 있어서 사는 데 문제가 없지만

우리는 당장 그만둘 수 없어 참고 또 참습니다.

 

그때마다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전폭적인 사랑,

우리의 전폭적인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은퇴도 아니고 포기나 도피도 아니고

우리를 끔찍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꼭 필요합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지요.

 

누가복음 15장 탕자의 비유에 대한 연속 설교를 시작하면서

최고의 운동선수도 마음과 몸이 지쳐서 은퇴를 선언할 정도로

힘겨운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조건없고 전폭적인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끝까지 믿어주시고, 기대하시며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헤세드>가 그립고

참빛 식구들과 이 사랑을 깊이 느끼고 싶었습니다.

 

막연해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 헤세드는 꽤 실제적입니다.

위로, 치유, 힘과 용기를 줍니다.

 

탕자의 비유를 함께 나누면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 삶이 새롭게 되고

감사와 기쁨으로 주어진 인생길을 걸어갈 힘을 얻기 원합니다.

 

(혹시 지금 삶이 힘겨우시다면

잠시 멈춰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삶을 맡기는 기도를 간절히 드립시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사야 43:1)

“Fear not, for I have redeemed you;

I have called you by name, you are mine. (Isaiah 43:1)

 

하나님 아버지

우리 마음과 삶에 주의 사랑을 넘치게 부어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9.5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