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루 섬

좋은 아침입니다.

 

1.

셀폰으로 전달되는 뉴스 가운데

호주에서 2천 마일 떨어진 남태평양에 있는

나우루(Nauru)라는 섬에 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나우루는 바티칸시티와 모나코에 이어서

세계에서 세 번째로 작은 독립 국가입니다.

섬의 면적이 20제곱킬로미터(약 8마일)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곳에 12,000명 정도가 살고 있는데 대부분 남태평양 원주민입니다.

인구의 90% 이상이 기독교인이고요.

 

나우루는 3천 년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19세기에는 독일 식민지였고, 2차 대전 때는 일본군이 주둔했습니다.

호주 네덜란드 등의 합병 통치를 받다가1968년에 독립하였습니다.

 

나우루는 한 때 세계에서 아랍 에미리트에 이어서

두 번째로 잘 사는 국가였습니다.

인광석으로 덮인 섬이었기에 자원이 고갈된

1980년대까지 최고의 부를 누린 것입니다.

 

국민들은 게을렀습니다.

90% 이상이 비만이고, 절반 가까이 당뇨병을 앓고 있습니다.

기대수명이 65세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나우루 정부는 여러 가지 대책을 세웠습니다.

페이퍼 컴퍼니를 허용해서 조세 피난처가 되기도 했고

1997년에는 천여 개의 여권을 돈 주고 발급해 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피아들의 자금 세탁 경로가 되고

나우루 여권을 갖고 테러를 일으킨다는 제보도 있어서

그나마도 중단해야 했습니다.

 

2.

CNN보도에 의하면

올해 나우루 정부는 $105,000.-을 내면

나우루 시민권을 발급해 주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세계 89개국을 비자 없이 방문할 수 있는 말 그대로

황금 여권(Golden Passport)입니다.

 

이번에 시민권 장사를 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기후 변화로 인해서 나우루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변에 사는 주민들이 이사를 해야 하는데

개인은 물론 정부에 재정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주민들의 이사비용은 물론,

해수면 상승 등 환경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입니다

 

기사를 읽고

나우루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니 사정이 딱합니다.

수십 년 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에 속했는데

길가에 버려진 고급 승용차들과 녹슨 광산 장비만 뒹굴고 있습니다.

 

부정부패가 심한 관리들이

시민권 장사를 통해서 조달한

자금을 제대로 쓸지도 의문입니다.

테러와 사기 등에 사용될 가능성도 큽니다.

 

3.

나우루에 관한 기사를 보면서

구약성경 전도서가 생각났습니다.

 

모든 것이 헛됩니다.

세우기는 어려워도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취하고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관리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자만에 빠져서 몸집만 불려도 안 되겠습니다.

 

어렵게 쌓아온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소중하게 관리하고 발전시켜야겠습니다.

 

처음과 끝이 똑같은 신앙과 삶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마7:25)

 

 

하나님,

반석 위에 집을 짓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3 13 이-메일 목회 서신)

단짝

좋은 아침입니다.

 

1.

“단짝”

– 꽤 친근한 말입니다.

 

어릴 적에는 거의 항상

단짝 친구를 만들 곤했습니다.

단짝 친구가 있으면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것처럼 행복하고 당당했습니다.

 

십 대 시절에는

단짝 친구(들)와 끝까지 우정을 지키자고

엄숙함에 가까운 약속도 했습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의 삶이 다르게 전개되고

물리적으로 헤어지게 되면서

단짝 친구와의 약속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아담과 이브를 단짝 친구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아담의 갈비뼈에서 이브가 탄생했으니,

옆구리(side)를 맞대고 살아가는 단짝 친구입니다.

성경은 돕는 배필(helper)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이브는

단짝 친구의 우정을 그릇 사용했습니다.

둘이 함께 연대해서 선악과를 따먹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 자리를 감히 엿보았으니

무례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다윗과 요나단도 단짝 친구였습니다.

사울 왕의 아들로서 왕국의 후계자였던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 하자

아버지가 아니라 다윗 편에 섭니다.

피는 진하다는 속담을 삭제해 버린 순간입니다.

 

 

이처럼 요나단은 아버지를 배신하면서까지

단짝 친구 다윗과 함께 옳은 길을 갔습니다.

서로를 향한 사랑(우정)이 지극했습니다.

 

3.

지난 주일 설교에서 나눴던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를 작사 작곡한

대니얼 위틀(Daniel Whittle)과 제임스 맥나라한(James Mcnarahan) 은

1840년생 동갑이었습니다.

 

두 분의 친분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우리 찬송가에 실린 3곡을 작사 작곡한 것을 보면

단짝 친구였을 것 같습니다.

 

위틀은 시(詩)를 쓰고,

맥나라한은 친구가 쓴 시에 곡을 붙였습니다.

자신들의 찬송이 교회에서 불리는 것을 보면서

둘이 있어서 한없이 행복했을 것입니다.

 

홀로서기는 쉽지 않습니다. 외롭습니다.

인생을 함께 걸어갈 단짝 친구가 있다면,

발걸음이 한결 가벼울 것입니다.

행복할 것입니다. 든든할 것입니다.

 

참빛 식구들이

서로에게 단짝 친구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목사로서 갖고 있는 기도 제목이고 바람입니다.

그런 공동체, 장(場)을 만들고 싶답니다. 함께 노력해 봅시다.

 

혹시 안되어도 실망하지는 맙시다.

항상 우리 곁에서 우리 이름을 부르시고,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파라클레토스>,

보혜사 성령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그동안 함께 걸었던

단짝 친구의 이름도 불러보고, 안부도 전해 봅시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잠언 13장 20절)

 

 

하나님,

항상 곁에서 동행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3 6 이-메일 목회 서신)

친밀함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두 달 동안 주일예배에서는

올해 표어인 <기도와 말씀으로>에 맞춰서

말씀과 기도에 관해서 공부했습니다.

 

2월부터 살펴본 기도에 대한 말씀에서는

기도를 ‘하나님과 친밀한 대화’로 정의하고

하나님과 속삭이듯이 얘기하는 기도를 강조했습니다.

 

친밀한 관계가 형성된 이후에 나누는 대화는

과거, 현재와 미래, 단순한 스몰 토크부터 깊은 대화까지

말 그대로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지는 대화입니다.

 

이처럼 대화는 관계를 형성해 주고

친밀함으로 나가게 합니다.

 

기도를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정의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전제조건이 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접속할 수 있는 근거입니다.

 

처음에 한두 번 접속하는 것으로 부족합니다.

정기적으로, 수시로 하나님과 접속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느끼고,

하나님과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형성되었을 때,

하나님과 얘기하듯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3

관계가 깊어졌다는 표시는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먼저 그리고 더 많이 생각한다는 사실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고 친해지면,

기도의 방향이 ‘나’에서 ‘하나님’으로 옮겨갑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자신을 뛰어넘는 기도입니다.

 

관계가 깊어졌다는 또 다른 표시는

혼자 있을 때 상대방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혼자 있을 때, 기도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친밀하다는 표시입니다.

 

하나님과 속삭이고, 마음을 드리고,

필요할 때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 무엇일지 생각합니다.

이쯤 되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 형성된 것입니다.

 

4.

아침에 함께 읽고 묵상하는 요한복음 말씀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로 묘사하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따릅니다.

아버지의 뜻이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까지 하나님께 초대하고

하나님 자녀로 삼으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 아버지’라고 부르시는

장면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셨음을 뜻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친하게 지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깊고 친밀한 기도로 나가기를 원합니다.

 

기도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올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14:21)

 

 

하나님,

깊은 기도 속으로 들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2. 27 이-메일 목회 서신)

울타리 칠하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주 설교에서는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을 소개하였습니다.

 

톰 소여(“톰”)와 허클베리핀(“허크”)이

벌이는 모험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작품입니다.

처음에는 장난삼아서 했던 일들이

나중에는 우정, 친구와 가족을 향한 책임감,

옳고 그름의 선택으로 발전합니다.

 

톰은 자기만 생각하는 장난꾸러기 아이에서

관계를 생각하고 책임감을 느끼는

성숙한 인간으로 자라갑니다.

 

그런 점에서

<톰 소여의 모험>은 성장 소설입니다.

 

2.

소설 속의 유명한 장면은

장난을 치다가 이모에게 들켜서

울타리에 페인트 칠하는 벌을 받는 장면입니다.

 

톰은 혼자서 울타리를 칠하는 것이 지루했습니다.

그것도 벌을 받은 것이기에 짜증이 났습니다.

그때 지나가는 친구를 발견하고는

울타리를 신나게 칠하기 시작합니다.

울타리를 칠하는 것을 매우 재미있는 일로 가장한 것입니다.

 

그것을 본 친구들이 사과 등 선물(뇌물)까지 주면서

울타리를 칠하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결국 톰은 친구들에게 울타리 칠하기를 맡겼습니다.

 

톰 소여가 벌로 울타리를 칠하는 것을

재미있는 놀이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톰 소여의 효과(Tom Sawyer Effect)라는 용어가 생겼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억지로 하면 효능이 떨어지지만,

단순한 일도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재미있게 기분 좋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저는 지난 설교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톰이 친구들에게 울타리를 칠하게 한 것을

좋지 않은 일로 보았습니다.

 

톰의 동기가 옳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기 싫은 일을 친구들에게 시켰습니다.

친구들을 거짓으로 선동했습니다.

울타리를 칠하는 것을 특별한 일로 착각하게 했습니다.

 

톰만 잘못한 것은 아닙니다.

톰에게 속아 넘어간 친구들도 문제입니다.

친구들은 톰에게 선물까지 바치면서

울타리를 칠하는 일에 참여합니다.

분별력을 잃었습니다. 왜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훗날, 톰 소여는 어릴 적 자기가 했던 일을 돌아봅니다.

그렇게 톰은 자기 성찰을 통해서 성장해 갑니다.

 

4.

일을 놀이로 만드는 것은 중요합니다.

예전, 야곱에 대한 설교에서

사랑하는 라헬을 얻기 위해서 외삼촌을 섬긴 것은

사랑에서 우러난 노동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동기를 살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톰 소여의 효과에 앞서서

친구들에게 울타리 칠을 시킨 톰의 동기가

바르지 않았음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사실, 우리도 누군가에게 이용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을 착각하게 만들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 누군가를 이용하는 것은 절대 안 됩니다.

 

사랑으로 행하는, 사랑으로 섬기는

우리의 신앙과 삶이 되길 바랍니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도록

우리 자신을 살피고 바른길을 가기 원합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잠 16:2)

 

 

하나님,

분별력을 갖고 참된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2. 20 이-메일 목회 서신)

엔지니어링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이슈가 되는 파나마 운하의 원리를

유튜브에서 찾아보았습니다.

 

1904년부터 10년 동안의 공사를 거쳐서 완공된 파나마 운하는

수위 조절을 통해서 계단식으로 배를 들어 올리는 방식입니다.

들어 올려진 배가 50마일에 달하는 인공호수를 지나고,

계단식 수문을 통해서 다시 바다로 내려갑니다.

운하 덕분에 일만 이천 마일을 우회하지 않아도 되었다니

시간과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절약하였습니다.

 

프랑스가 실패한 공사를

미국이 완공한 놀라운 업적입니다.

미국 엔지니어링의 승리였습니다.

 

1999년 파나마에 넘여 주었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가 다시 찾아오겠다고 선언한 상태입니다.

 

2.

내친김에 금문교(Golden Gate Bridge)의

건축에 대해서도 검색해 보았습니다.

 

1933년에 시작해서 1937년 5월 27일에 개통했습니다.

개통하는 날에는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리를 걸어서 건넜고

다음날부터 샌프란시스코와 마린 카운티를 연결하는 금문교가 개통되었습니다.

 

항간에는 다리를 건설하면서 중국인 인부들이 많이 죽었다는 소문도 있지만,

공식적으로 열한 명이 목숨을 잃었고,

열아홉 명은 공사 중인 다리 밑에 설치한 안전망 덕분에 목숨을 구했습니다.

훗날 열아홉 명은 “지옥에 반쯤 갔던 사람들의 모임(halfway-to-hell club)”을 만들었답니다.

 

금문교를 최초에 설계한 사람은

조셉 스트라우스(Joseph Strauss)입니다.

조셉 스트라우스는 물살이 센 협곡에 다리를 건설하는데

다리 교량을 최소화하고, 다리 밑으로 배가 통과할 수 있는

현수교가 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교량을 잇는 철근 케이블 27,572개를 공중 와이어 공법으로 하나씩 교량에 연결했습니다.

케이블의 총길이가 지구를 세 바퀴 감을 정도랍니다.

 

다리를 건너다보면 중간에 도로를 가로지르는 철판들이 있는데

다리를 잇는 케이블의 변화로 다리 갑판이 변형되는 것을 막는 완충장치랍니다.

교량의 높이, 간격, 케이블이 갖는 힘, 건축 자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세밀하게 예측하고 공사 현장에 적용했습니다.

 

3천 5백만 불이 들었습니다.

오늘로 환산하면 7억 불 정도 됩니다.

당시는 대공황으로 경제가 좋지 않을 때였는데,

주민들이 납세 채권에 동의해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습니다.

 

금문교의 기술을 모방하고 발전시킨 현수교가 여럿 생겼지만,

처음 건설할 때는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였습니다.

여전히 샌프란시스코의 최고 명물이자 상징임엔 틀림없습니다.

 

저는 엔지니어링 분야에 문외한이어서

금문교 건설에 적용된 설계나 기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완전히 다른 나라 언어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물길이 거세고 안개가 자욱하게 끼는 곳에

현수교를 건설한 엔지니어링에 감탄이 나옵니다.

 

3.

엔지니어링은

철저한 이론, 설계, 시공, 공사를 거쳐서

목적한 것을 만들어 내는 기술입니다.

 

자칫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건설 현장은 물론 훗날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에

기초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 쌓아 올려야 합니다.

오차 없이 설계하고 시행하는 세심한 작업입니다.

 

우리 신앙과 인생도 엔지니어링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눈대중 하듯이 대충 대충은 안 됩니다.

철저하게 살피고 꼼꼼하게 세워야 합니다.

그 모든 여정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가는 길입니다.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신앙과 인생의 집을 지어갑시다.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마7:24-25)

 

 

하나님,

신앙과 인생에 탁월한 엔지니어가 되게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2. 13 이-메일 목회 서신)

입술의 열매

좋은 아침입니다.

 

1.

제 책꽂이에는

<입술의 열매: 약이 되는 말>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두 번째 책은 “독이 되는 말”이었을 텐데 저에게는 없습니다.

약이 되는 말이면 족하다고 생각해서 구입하지 않았습니다.

 

약이 되는 말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 잘못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끝까지 해보겠습니다” “보고 싶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당신과 악수하면 힘이 생깁니다” “이 정도면 넉넉합니다”

“참 아름답지요” “생각 날 거예요” “참 좋은 생각이예요”.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듯이

우리가 무심코 하는 말 한 마디가

누군가에 용기를 주고, 우리 자신에게 유익이 됩니다.

 

독이 되는 말도 몇 가지가 생각납니다:

“할 수 없어” “절대 안 될거야” “귀찮아”

“기도해도 소용없을걸” “그만두자”

“너 때문이야”.

 

말에 힘이 있어서,

말로 자신은 물론 누군가를 살리기도 하지만,

말이 날카로운 칼이 되어서 자신의 영혼을 찌르고

상대방의 마음에 깊이 상처를 남깁니다.

 

2.

그러고보니

하나님께서도 말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기독교는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습니다.

그러니 말씀과 우리 신앙도 밀접합니다.

 

혼란이 사라지고 질서가 잡히는,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찾아오고

절망이 아닌 희망을 노래하고

비난이 아닌 격려를

불평이 아닌 감사와 찬양을,

우리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하는 말이 우리의 존재, 나의 나됨(성품)을

보여주는 통로일 수도 있습니다.

 

3.

요즘 세상의 말이 너무 거칩니다.

제가 최근에 가장 마음에 걸리는 말은

“보복(retaliation)”이라는 단어입니다.

 

국가간에 조금만 손해를 받아도, 공격을 받아도

서로 보복하겠다고 기를 세웁니다.

국가간의 거래에 세금을 책정하는 정책에도

“보복 관세”라는 말을 씁니다.

 

꽤 무서운 말입니다.

예수님은 보복하기 보다 용서하고

서로 회복하고 화해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보복을 원하셨다면,

자신을 십자가에 매단 예루살렘 사람들을 단칼에 물리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보복적 정의(retributive justice)가 아닌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4.

하나님이 곁에 계셔도

부끄럽지 않을 언어를 사용합시다.

독이 되는 말은 줄이고

약이 되는 말을 통해서 세상을 밝혀 봅시다.

 

하나님께서 그러셨듯이

자신은 물론 세상을 살리고,

생명을 갖다주는 말을 사용합시다.

 

감사하고 찬양하면서

세상을 밝히는 입술의 열매가 우리에게 가득하길 바랍니다.

 

온순한 혀는 생명 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잠언 15:4)

 

하나님,

살리는 말, 약이 되는 말로

입술의 열매를 맺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2. 6 이-메일 목회 서신)

입술의 열매

좋은 아침입니다.

 

1.

제 책꽂이에는

<입술의 열매: 약이 되는 말>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약이 되는 말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 잘못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끝까지 해보겠습니다” “보고 싶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당신과 악수하면 힘이 생깁니다” “이 정도면 넉넉합니다”

“참 아름답지요” “생각 날 거예요” “참 좋은 생각이에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듯이

우리가 무심코 하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고, 세상을 밝게 만듭니다.

 

독이 되는 말도 몇 가지 생각납니다:

“할 수 없어” “절대 안 될 거야” “귀찮아”

“기도해도 소용없을걸” “그만두자”  “너 때문이야”.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자신은 물론 누군가를 살리기도 하지만,

날카로운 칼이 되어서 자신의 영혼을 찌르고

상대방의 마음에 깊이 상처를 남깁니다.

 

2.

그러고 보니

하나님께서도 말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기독교는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습니다.

그러니 말씀과 우리 신앙도 밀접합니다.

 

혼란이 사라지고 질서가 잡히는,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찾아오고

절망이 아닌 희망을 노래하고

비난이 아닌 격려를,

불평이 아닌 감사와 찬양을!

 

우리가 하는 말이 우리의 존재, 나의 나됨(성품)을

보여주는 통로일 수 있습니다.

 

3.

요즘 세상의 말이 너무 거칩니다.

제가 최근에 가장 마음에 걸리는 말은

“보복(retaliation)”이라는 단어입니다.

 

국가 간의 거래에 세금을 책정하는 정책에도

“보복 관세”라는 말을 씁니다.

 

보복 – 꽤 무서운 말입니다.

우리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말이지요.

 

예수님은 보복하기보다 용서하고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보복적 정의(retributive justice)가 아닌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의 본이 되셨습니다.

 

4.

하나님이 곁에 계셔도

부끄럽지 않을 언어를 사용합시다.

독이 되는 말은 줄이고

약이 되는 말을 통해서 세상을 밝혀 봅시다.

 

하나님께서 그러셨듯이

세상에 생명을 주는 창의적인 말을 사용합시다.

 

감사하고 찬양하면서

세상을 밝히는 입술의 열매가 우리에게 가득하길 바랍니다.

 

온순한 혀는 생명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잠언 15:4)

 

 

 

하나님,

살리는 말, 약이 되는 말로

입술의 열매를 맺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2. 6 이-메일 목회 서신)

촉매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 설교에서는

주보에 싣고 있는

케빈 캐럴(Kevin Carroll)의 <빨간 고무공의 법칙>을 소개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갖고 놀던

빨간 고무공이 저자의 인생 전체를 촉진하고, 변화시키고

이끄는 촉매(catalyst)가 되었습니다.

 

촉매에 해당하는 영어 <카탈리스트 catalyst>는

그리스어 <카타류인>에서 왔는데, “풀어내다”는 뜻입니다.

 

잔뜩 막혀 있거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에

촉매가 투입되면 열어젖히고 풀어냅니다.

천천히 진행되는 과정에 촉매를 첨가하면 빠르게 활성화됩니다.

 

저자는 무엇을 하든지

어릴 때 갖고 놀던 <빨간 고무공>을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한없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NBA 프로 농구팀의

피지컬 트레이너(physical trainer)를 두루 거친 후에

나이키 창업자에게 발탁되어서 컨설턴트로 일했습니다.

그 모든 인생 여정에서 빨간 고무공이

저자의 인생에 촉매가 되었습니다.

 

어릴 적 부모님이 떠나고

필라델피아 빈민가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자란

작고 왜소하고 내성적인 소년이

갖고 놀던 <빨간 고무공>이 있었습니다.

그 정신과 그때의 행복을

인생 굽이굽이에 적용하고 발전시킨 것입니다.

말 그대로 촉매가 되었습니다.

 

2.

우리에게도

지루한 인생에 활기를 불어넣고,

막힌 인생을 열어주고,

한 단계 두 단계 상승하게 만들어 주는

촉매가 필요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역동성이라는 말이 있듯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깜짝 놀랄 정도로

역동적이어야 합니다.

 

신앙에 정체를 경험하고 있다면,

촉매를 통해서 신앙을 활성화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촉매가 있다면,

당연히 기도일 것입니다. 기도가 우리에게 힘을 줍니다.

하나님 말씀도 촉매가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나침반처럼 살아갈 방향을 예측하고,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배웁니다.

 

예배는 어떨까요?

예배 속에서 삶을 돌아보고 다시 시작할 힘을 얻습니다.

재충전의 시간입니다.

 

성도 간의 교제도 촉매가 될 수 있습니다.

동지를 만나고, 함께 울며 함께 웃으면서

행복한 신앙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 자체가 우리 인생의 촉매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고,

예수님을 닮은 멋진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촉매입니다.

사랑으로 살아갈 힘을 주는 촉매입니다.

 

3.

삶에 초대하는 순간 입가에 미소를 가져다주고

마음에 뿌듯한 감동이 밀려오고

무엇인가 다시 시작할 동기와 힘이 되는 촉매,

빨간 고무공!

 

우리 각자의 빨간 고무공을 촉매 삼고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갑시다.

 

세상 속에서 우리 자신이

촉매가 되어야 함도 잊지 맙시다.

 

내게 이르시기를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후 12:9)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촉매가 되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1. 30 이-메일 목회 서신)

작심삼일

좋은 아침입니다.

 

1.

새해가 시작된 지 어느덧 20일이 넘었습니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을 대입하면

벌써 일곱 번은 새로 결심할 시간입니다.

 

오십이 되기 전까지 새해를 맞으면

하나님 앞에서 하고 싶은 일,

이웃과 관계에서 해야 할 일

저 자신과 관련된 일로 나눠서

새해 계획을 꼼꼼히 세웠습니다.

 

그리고 연말이 되면

새해에 세운 계획을 일일이 점검했습니다.

 

오십이 넘으면서

제가 주도하는 삶을 살기보다

하나님께 맡기고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할 작정으로

따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습니다.

 

대신, 한 해 동안 하고 싶은 일들

몇 가지를 선정해서 그것을 지키려고 하지만,

작심삼일이 될 때가 많습니다.

 

2.

2-3년 전부터 세우는 새해 계획이 있습니다.

책꽂이의 책들 가운데 읽지 않고 꽂아만 놓았던

책을 꺼내서 한 장(chapter)라도 읽어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작심삼일이었습니다.

책 몇 권 꺼내서 읽다가 일 년이 지났습니다.

 

올해도 같은 계획을 세웠습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먼지가 앉을 정도로

케케묵은 책들은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20일이 지났건만,

아직 시작을 못 했습니다.

작심만 하고 20일이 흘렀습니다.

올해는 꼭 실천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제 마음이 개운할 것 같습니다.

 

3.

결심한 것을 지킨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결심한 것,

사람들에게 결심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결심한 것을 모두 지킨다면

보통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도 계획하고 결심한 것을

스스로 만족할 정도만이라도 지키기를 원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사랑(아하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에는

감정적인 의미보다

언약을 지킨다는 ‘의지적인 면’이 더 큽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아브라함과 모세, 다윗과 맺으신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언약을 지킨다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 백성답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늘 작심삼일이었습니다.

 

올 한 해 새해에 계획하고

하나님과 사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약속(언약)한 것을 지키기 원합니다.

무엇보다, 온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하나님 사랑에 ‘의지’가 우선함을 기억합시다.

 

저도 올해 계획한

책 읽기를 절반이라도 꼭 실천하겠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6:5)

 

 

 

하나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는

절대 작심삼일이 없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1. 23 이-메일 목회 서신)

에이카

좋은 아침입니다.

 

1.

작년 봄 안식 기간에

이탈리아 남쪽에 위치한 폼페이에 갔었습니다.

나폴리에서 기차를 타고 40여 분 내려갔는데

유명한 관광 명소답게 세계 각지에 온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폼페이는 “폼페이 최후의 날”이라는 영화로 유명하듯이,

주 후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18시간 만에 모든 도시가 화산재에 뒤덮였습니다.

 

로마보다 먼저 세워진 유력한 도시였습니다.

물고기 모양으로 도시를 계획했고

물고기 눈에 해당하는 원형 경기장은

폼페이 유적지 남쪽에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1592년 운하 작업을 하던 중,

우연히 땅 밑에 숨겨진 도시를 발견해서

폼페이 유적 발굴이 시작되었습니다.

현재도 발굴과 복원 작업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뜨거운 화산재가 밀어닥치면서

화려했던 도시가 순식간에 폐허가 되었습니다.

 

당시 연회장이나 친목의 장소였던 커다란 대중목욕탕도

검투사(그레디에이터) 경기장도

귀족들이 살고 있었다는 대저택들도

뜨거운 화산재에 녹아 내렸습니다.

 

미처 도피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죽은

폼페이 주민들의 모습이 화석처럼 남아 있습니다.

 

폼페이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인간이 쌓아놓은 문명이

자연재해 앞에서 아무 소용이 없음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3.

AI까지 동원해서 재해를 관리하는 요즘에는

웬만한 자연재해는 미리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발생한 LA 산불을 보면서

망연자실(茫然自失)이라는 말이 맞을 정도로

멍하니 TV 화면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화마(火魔)가 훑고 간 도시는

폼페이가 생각날 정도로 폐허가 되었습니다.

 

주민들이 미리 대피할 수 있었기에

인명 피해가 크지 않은 것이 그나마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현재까지 2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한 분 한 분의 생명이 중요하기에

희생자들의 사진이 TV 화면에 뜰 때마다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3.

정확히 2년 전인 2023년 1월 8일

목요 서신의 제목도 오늘과 똑같이 <에이카>였습니다.

 

히브리어 <에이카>는

예루살렘이 바빌론에 함락되고

하나님의 성전까지 무너진 것을 놓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탄식하면서 외친 한 마디였습니다.

 

“어찌하여!” “슬프다” 는 탄식입니다.

 

2년 전에는

예레미야 애가를 아침에 묵상하면서 에이카를 소개했는데,

오늘은 세상에 닥친 재난과 비극, 위기와 혼란 앞에서

실제로 <에이카>를 외칩니다.

 

주님,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가족을 잃고 집을 잃은 분들을 위로해 주옵소서.

살려 주옵소서.

 

에이카!

어찌하오리이까!

 

슬프다[에이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애가 1:1)

How lonely sits the city that was full of people! (Lam 1:1)

 

하나님,

믿음 안에서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는 세상을 기다리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1. 16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