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팀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며칠은 너무 더웠습니다.

샌프란과 베이 지역은 초가을에 찾아오는

인디언 썸머를 제외하고는 그리 덥지 않습니다.

우리 몸이 선선한 날씨에 적응되다 보니

이상 기온이 닥치면 힘도 쭉 빠지고 금세 지칩니다.

 

연로하신 권사님들과 아이들을 염려했는데

오늘부터 정상 기온을 되찾는 다니 안심이 됩니다.

 

이렇게 찌는 더위에도

청소년 축구 대표팀의 결승 진출 소식에

마음이 시원해졌습니다.

 

한국 축구팀이 세계 대회에서

결승에 오른 것이 역사상 최초랍니다.

 

2002년 서울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4강에 올랐지만,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1983년 청소년 축구팀 역시 4강에 진출한 것이 최고의 성적이었는데

이번에 드디어 결승에 올라서 우승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2.

한국 청소년팀을 지휘하는 정정용 감독은

유명한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20대 후반에 부상을 입어서 일찍이 선수 생활을 포기하고

지도자의 길을 걸은 분입니다.

 

지난 10년여

한국의 유소년 대표팀을 맡아서 지도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선수들이 “선생님”이라고 부른다는 기사를 읽고

이분의 성품을 알 수 있었습니다.

 

경기하는 동안에도 적절히 전술을 바꾸고,

모든 선수를 골고루 기용해서 기회를 주고

선수를 믿고 경기에 임하는 모습이 존경스러웠습니다.

 

무엇보다 원팀(one team)을 강조하는데,

선수들이 똘똘 뭉쳐서 감독의 표현 그대로

“꾸역꾸역” 결승까지 올라왔습니다.

 

3.

“하나 됨”은

요한복음 17장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에도 등장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이듯이

세상에 남아서 사도의 직분을 감당할

제자들이 하나가 되길 기도하셨습니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가 되고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가 되었을 때

예상하지 않았던 힘도 생기고

한국 청소년 축구팀처럼 큰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우리 참빛 식구들도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닮는데 하나가 되기 원합니다.

온전하고 멋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로

한마음으로 결심하고 그 길을 걷기 원합니다.

 

원팀이 된

한국 축구팀의 우승도 기대해 봅니다.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요17:23)

I in them and you in me, that they may become perfectly one,

so that the world may know that you sent me and loved them even as you loved me.(John 17:23)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께서 삶의 현장과 교회를 통해서

하나됨의 위력과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6. 13 이-메일 목회 서신)

여호와 하나님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에는 아침마다

예레미야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다윗 왕조가 막을 내리고

예루살렘 성전까지 무너지는 순간에

하나님 말씀을 온몸과 삶으로 외쳤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말씀이 쉽지 않습니다.

북이스라엘이 이미 앗시리아에 멸망했고

이제 남은 남유다마저 바벨론에 무너지는

안타깝고 절망적인 시대에 기록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면서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동원해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셨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다면,

일찍이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은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2.

이스라엘이 범한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섬긴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긴 우상은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 단정짓습니다.

 

나무 기둥으로 신들의 모습을 새기곤 했는데

그것은 산에서 벤 나무이고 기술공이 도구를 사용해서 만든 것입니다.

금과 은으로 장식한 우상들도 있었는데 그것 역시 대장장이들이 만든 것이니

우상을 섬기지도 말고 행여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깨우칩니다(렘10:3-5).

 

반면에, 하나님은 참(진리)되고 살아계신 분입니다.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아오길 기다리시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바벨론을 동원하실 정도로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3.

어쩌면 우리는 신을 잊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성경에서 알려주는

기독교의 하나님을 외면하고 심지어 부정합니다.

과학이 발달하고 모든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길 바라는 시대여서

보이지 않고 실체가 아닌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으니 믿지 않겠답니다.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가 우상을 두고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 했듯이

기독교의 하나님도 고대 이스라엘과 초대교회를 거치면서

사람들이 만든 것이라고 봅니다.

 

종교심이 많은 사람이 만들어낸 허구라는 것입니다.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을 쓴 도킨스나 프로이드같은 분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4.

세상에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우리가 믿는 하나님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피조물의 관점에서 증명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입니다.

 

하나님을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 단정할 것도 아닙니다.

기독교가 조작되었다면, 지난 2천년을 견디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신앙(하나님)에 실체가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힘들고, 합리적 추론이 쉽지 않아도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를 믿는 우리입니다.

모든 것을 뛰어넘는 신앙의 신비를 믿습니다.

 

또한, 우리는 지난 한 달 동안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기도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고 만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신앙의 세가지 영역(몸,가슴,손발) 가운데 하나인

가슴으로 하나님을 체험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을 아주 깊이 만나기 원합니다.

우리도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을 찬양하기 원합니다.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렘10:10)

The Lord is the true God; He is the living God and the everlasting King (Jer 10:10)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께 진실한 신앙을 주옵소서.

참빛 식구들께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6. 6 이-메일 목회 서신)

레아의 하나님

좋은 아침입니다.

 

1.

어제 수요예배에서는

창세기 29장을 공부했습니다.

 

형 에서를 피해서 하란의 삼촌 집에 도착한 야곱은

삼촌 라반의 큰딸 레아, 작은딸 라헬을 아내로 맞습니다.

14년을 일해준 대가였습니다.

 

야곱은 원래 라헬을 사랑했지만

라반이 야곱을 속이고 큰딸 레아를 먼저 야곱에게 주면서

두 명의 아내를 갖게 된 것입니다.

 

레아는 야곱이 원했던 아내가 아니지요.

야곱은 라헬만 사랑했고 레아를 무시했습니다.

 

레아는 아버지의 주선으로 야곱과 결혼했지만

남편 야곱의 사랑과 관심 밖에 있습니다.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요!

 

그때, 하나님께서는 레아를 주목하시고

그가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데 여섯을 낳게 하십니다.

다윗과 예수님의 조상 유다,

거룩한 성직을 감당했던 레위도 레아의 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레아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2.

창세기 29장 마지막에

레아가 낳은 네 명의 아들을 소개하면서

레아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보여줍니다.

 

첫째 아들 이름이 “르우벤 (보라 아들이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괴로움(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을 아셨으니

이제 남편이 자신을 사랑할 것이랍니다.

 

둘째의 이름이 “시므온(들으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사랑받지 못함을 들으셨다고 고백합니다.

셋째는 “레위(연합)”인데

아들을 셋이나 낳았으니 드디어 남편이 자신과 합칠 것이랍니다.

그래도 야곱은 매정하게 레아를 외면한 것 같습니다.

 

넷째 “유다(찬송함)”를 낳고는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35절)며

남편이 아니라 하나님께 마음을 돌립니다.

 

레아의 마음과 그의 외로움이 아들의 이름 속에 고스란히 들어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아들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을까요?

 

3.

하나님께서는

외롭고, 무엇보다 남편의 사랑에서 소외된 레아를

기억하셨고,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레아 역시 처음에는 남편의 사랑을 그리워하지만

유다를 낳으면서 남편의 사랑을 넘어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네 아들의 이름을 지어가면서

자신은 물론 하나님과 씨름했고

결국에는 남편의 사랑보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수준에 오른 것입니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가 <돌보는 교회>입니다.

연초에 표어에 대한 말씀을 나누면서

주일날 교회에 오면 외로워 보이거나 돌봄이 필요한 성도님들을 위해서

뒷전에서 기도하자고 제안했습니다.

 

6월 새달을 맞으면서 교회 표어도 되새기고

무엇보다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고 돌보기 원합니다.

그것이 레아를 돌보신 하나님 마음이겠지요.

 

때로는 우리 자신이 레아와 같은 심정일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를 돌보시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기 원합니다.

 

레아를 챙기시고 돌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창 29:35)

This time I will praise the Lord (Gen 29:35)

 

레아를 돌보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는 세상과 주변에

돌봄이 필요한 분들과 꼭– 함께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5. 30 이-메일 목회 서신)

갚아줌

좋은 아침입니다.

 

1.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두침침한 것만은 아닙니다.

 

밝은 면보다 어두운 곳이 먼저 눈에 띄고

감사할 것보다 불평할 것이 먼저 생각나고

믿음으로 살기보다 염려와 근심이 앞서기 때문에

세상이 어두워 보일 뿐입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빛이 되어서 세상을 밝히고

소금이 되어서 세상을 맑게 만드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이번주에도

흐뭇한 소식이 있었습니다.

 

남부 조지아 주에 있는

모어 하우스 칼리지 졸업식에서

졸업식 축사를 하던 로버트 스미스라는 기업가가

400명에 달하는 졸업생들의 학자금 빚을 모두 갚아주겠다(wipe-out)고 약속한 것입니다.

 

4천만 달러 정도가 필요한데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사회에 지은 빚을

갚는 심정으로 기꺼이 기부하겠답니다.

 

150년 역사를 가진 모어 하우스 칼리지는

아프리칸 아메리칸 중에서도 남자만 다니는 명문 대학입니다.

지미 카터, 오바마 전 대통령도 이곳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오프라 윈프리가 거액의 장학금을 기부한 곳입니다.

 

어제 한국일보에는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습니다.

발레호에 사는 모어 하우스 한 졸업생이 갖고 있던

16만불의 빚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기사였습니다.

그는 홀가분하게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고 기뻐했습니다.

 

모든 빚은 우리를 옥죕니다

삶을 힘겹게 만들고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그 빚을 누군가 대신 갚아준다는 것은

말 그대로 “복음(기쁜 소식)”임에 틀림없습니다.

 

2.

성경에서 “구속(redemption)”이라는 말도

누군가 대신 빚을 갚아준다는 뜻입니다.

 

구약성경 룻기에서

나오미와 룻이 지은 빚을

보아스가 대신 갚아주고 룻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구약의 율법에서도

어떤 사람이 빚을 져서 행여나 노예로 팔려 가거나

삶의 터전을 잃을 것 같으면

여유가 있는 가까운 친척이 그의 빚을 대신 갚아줄 것을 추천합니다.

 

구속의 절정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빚을 대신 갚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기셨으니

그 구속의 은혜는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3.

엊그제 빚을 갚아주겠다고 약속한 기업가는

은혜를 입은 학생들도

나중에 같은 일(pay it forward)을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엄청난 빚을 갚아 주셨으니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요?

눈에 보이지 않고 실제로 계산이 되지 않는다고

받은 은혜를 너무 무시하고 사는 것은 아닌지요?

 

예수님의 은혜를 깊이 생각하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됨으로 그 은혜를 갚고

어려운 이웃들, 복음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은혜를 전하기 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3:24)

and are justified by his grace as a gift, through the redemption that is in Christ Jesus(Rom 3:24)

 

하나님 아버지,

우리 주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를

깊이 깊이 되새기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5. 23 이-메일 목회 서신)

터진 웅덩이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에는

산을 옮기는 기도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믿음과 기도로 산을 옮길 수 있다면 최고입니다.

한 번으로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산을 옮기는 사람 (mountain-mover)이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산을 옮기는 기도가 쉽지 않습니다.

가끔 있을 수 있지만, 매번 기도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도 아니어서

때로는 신앙생활이 힘겹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을 믿기보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기도 제목에 연연하기 때문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살 수 있고

하박국 선지자처럼 기뻐하면서

주님이 우리의 힘이라고 고백할 것입니다 (하박국 3:18-19).

 

단숨에 여기까지 이를 수 없습니다.

실천하고 의도적으로 훈련하고

그 과정에서 실패와 시행착오도 겪으면서

참 신앙의 여정에 들어서고 그 길을 걷는 것이지요.

 

2.

요즘 아침마다

예레미야서 말씀을 함께 나눕니다.

 

엊그제 나눈 말씀 가운데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두 가지 죄로 요약했습니다.

 

첫째는, 생수의 근원(샘)인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믿는 것에 생명이 있는데, 다른 신들과 가치관을 쫓아갔습니다.

생명이 아닌 것, 진리가 아닌 것을 추구했습니다.

 

둘째는, 물을 가두지 못하는 밑이 터진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우물을 파는 것은

일종의 스타트 업을 세우는 일과 같고 노동력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스스로 우물을 파서 물을 얻었습니다.

횡재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노력한 대가를 얻은 것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밑이 빠진 웅덩이였습니다.

물이 모이지 않고 모두 빠져나갑니다. 헛수고한 것입니다.

 

3.

저희 집에 화장실 하나가 고장 났습니다.

고무마개가 헐거워져서 물이 계속 세니

주인이 물을 많이 쓴다고 야단을 칩니다.

졸졸 새는 물인데도 막아 놓지 않으니 물값이 제법 나간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아예 사용하지 않고 있다가

이번에 큰마음을 먹고 고치기로 했습니다.

워낙 오래된 모델이니

Lowe’s에 가서 모든 종류의 마개를 사서 시험해 보았습니다.

다행히 한 개가 정확히 맞아서 성공적으로 고쳤습니다.

얼마나 개운한지요!

 

산을 옮기는 기도와 믿음을 배웠지만

우리 삶 한편에 졸졸 새버리는 틈새는 없는지요?

행여나 열심히 노력했는데 물을 간직하지 못하는 우물은 아닐지요?

 

생수의 근원,

우리를 살리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 삶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산을 옮기는 참빛 식구들이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렘 2:13)

for my people have committed two evils:

they have forsaken me, the fountain of living waters, and hewed out cisterns for themselves,

broken cisterns that can hold no water.(Jer 2:13)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이 주님 안에서

열매 맺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5. 16이-메일 목회 서신)

간절함

좋은 아침입니다.

 

1.

5월 한 달 동안은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각자의 자리에서 실제로 기도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얼마나 기도하십니까”

– 지난 설교에서 드렸던 질문입니다.

 

얼마나 기도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 시간을 떠올린다고 했습니다.

기도가 부족하다는 것도

(하나님 편에서가 아닌  자기 생각에)

충분한 시간을 기도하지 않았다는 반성일 수 있습니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했을 때는

길게 오랫동안 기도하는 것을 가리키곤 합니다.

 

물론 기도를 오래 하고

많은 시간을 기도에 할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기도의 능력을 체험했을 때 긴 시간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기도하지 않고

기도에 시간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조심하고 삼갈 일입니다.

 

2.

그런데

기도 시간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우리 자신의 “간절함”입니다.

 

힘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우리의 모든 에너지를 기도에 쏟아 붓는 간절함입니다.

 

간절함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을 때 생깁니다.

기도의 능력을 확신할 때 생깁니다.

물론 다급한 일이 닥치면 저절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

천사가 내려와서 예수님의 기도를 도왔습니다.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어서 땅에 떨어졌습니다.

 

우리가 간절히 기도함으로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경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겟세마네가 올리브 기름틀이라고 했는데,

우리 자신의 간절함으로 기도를 정성껏 틀어내서

하나님께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간절하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기 원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오랫동안 기도하면 금상첨화입니다.

하지만 바쁜 일상을 사는 우리에게 쉽지 않습니다.

 

한 마디라도

간절함과 진실함으로 기도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시 42:1)

As a deer pants for flowing streams, so pants my soul for you, O God.(Ps 42:1)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의 기도에 간절함을 더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5. 9이-메일 목회 서신)

그대로 되리라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부활절에는 스리랑카에서 테러가 있었습니다.

불교 인구가 80%에 가까운 나라지만

기독교, 이슬람, 힌두교가 나머지를 차지하면서 종교 간의 갈등이 내재해 있었는데

이슬람 극렬분자들의 소행으로 연쇄 테러가 일어났습니다.

 

세상을 밝히고 선하게 만들어야 할 종교가

어둡고 비극적인 일을 야기하는 아이러니 앞에서

큰 돌을 달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지난 토요일에는 샌디에이고 유대인 회당에

백인 청년이 총격을 가했습니다.

LA에서는 군대를 제대한 한 청년이 계획한 테러를 사전에 막는 일도 있었습니다.

어제는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캠퍼스에서 총기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세상이 뒤숭숭합니다.

우리는 물론 자녀들이 사는 세상에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하기에

세상의 평화를 위한 기도가 저절로 나옵니다.

 

2.

그동안 주일예배에서는

성경의 식물들에 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결코 주인공이 되기 힘든 배경화면이지만

평생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식물의 영성이 깊이 다가왔습니다.

 

5월에는

매년 그랬듯이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게 됩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과 같아서

기독교인들에게 꼭 필요한 신앙 훈련이고 은혜의 수단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드리는 골방 기도,

함께 모여서 드리는 공동체 기도,

조용하게 드리는 기도,

함께 드리는 뜨거운 기도,

하나님께 소원을 아뢰는 간청.

이웃을 위한 기도까지 기도의 지경은 무척 넓습니다.

 

5월에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면서

각자의 기도 생활을 점검하고 실제로 기도하기 원합니다.

 

속회를 비롯한 소그룹에서 기도 제목을 나누고

교회 안에 기도 모임들이

이곳저곳에서 생기면 목사로서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3.

우리 교회에 기도의 불길이 살아나길 기대하면서

2019년 기도에 대한 말씀을 준비합니다.

 

기도에 대한 깨달음,

기도해야 숨을 쉴 수 있고 살수 있다는 결심,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경험,

기도하는 사람을 막을 것이 없다는 간증,

거기에 교회적으로 기도에 대한 불꽃이 타오른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물론 우리 교회의 특징이 있으니 억지로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기도에 게으르거나 쉬면 안 됩니다.

기도를 멀리해서도 안 됩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숨을 쉬지 않으면 살 수 없듯이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은 물론 인생도 힘을 잃을 것입니다.

 

새달을 맞이했습니다.

온 세상이 푸르게 변하는 5월에

우리 기도가 짙어지고 풍성해지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11:24)

Therefore I tell you, whatever you ask in prayer, believe that you have received it,

and it will be yours.(Mark 11;24)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참빛 식구들의 기도를 도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5.2이-메일 목회 서신)

 

 

샬롬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에는 스리랑카에서 들려온

테러 소식으로 안타까운 부활절을 보냈습니다.

불교 인구가 70%에 가까운 나라지만

힌두교, 이슬람, 기독교가 나머지를 차지하면서 종교 갈등이 심했는데

엊그제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에 의해서 연쇄 테러가 일어났습니다.

 

일반인이 투숙했던 호텔은 물론

부활절 예배를 드리던 교회까지 테러를 자행하고

수백명이 목숨을 잃는 것을 보면서

저절로 주님의 위로와 평화를 구하는 기도가 나왔습니다.

 

국지적으로 일어나는 무차별 테러가

전쟁보다 무섭게 세상을 위협할 것이라는

예측이 맞는 것 같아서 더욱더 안타깝습니다.

 

세상을 밝히고 선하게 만들어야 할 종교들이

어둡고 비극적인 일을 야기하는 아이러니 앞에서

큰 돌을 매달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온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2.

우리는 지난주에 부활절을 보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만나실 때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문안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한 이사야 선지자도

예수님을 “평강의 왕”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천사들이

양을 지키던 목자들에게 나타나서

“높은 곳에서는 영광, 땅에서는 평화”라고 노래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떠난다고 말씀하시니

제자들이 염려하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때도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평강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평강을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누리는

최고의 특권 역시 흔들림 없는 평안입니다.

 

3.

주일예배에서는 찬양 전에

언제나 “샬롬”으로 인사합니다.

히브리어 샬롬은 육신, 마음, 신앙,

세상의 평화를 기원하는 매우 훌륭한 인사법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화해)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샬롬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건강하고 온전한 몸과 마음을 유지합니다.

우리 안에 임하는 샬롬입니다.

우리의 일에도 주님의 평안이 임합니다.

인생 속에 임하는 샬롬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화평케 하는 자(peace maker)로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세상 속에서 화평케 하는 자로 사는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르십니다.

우리로 인해서 세상과 이웃 속에 임하는 샬롬입니다.

 

부활절 이후의 참빛 식구들의 삶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임하길,

우리가 사는 세상에 주님의 평화가 임하길 바랍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14:27)

Peace I leave with you; my peace I give to you.

Not as the world gives do I give to you.

Let not your hearts be troubled, neither let them be afraid. (John 14:27)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는 세상에, 우리 마음에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평안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4. 25이-메일 목회 서신)

노트르담의 66분

1.

지난 월요일 아침에 눈을 뜨자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속보가 뜨기 시작했습니다.

작년에 우리 지역에서 산불이 나서 수많은 피해를 냈고

얼마 전에는 한국도 산불이 났었기에 관심을 갖고 뉴스를 검색했습니다.

 

무엇보다 노트르담 성당은 850년이나 된 건물로

일 년에 천삼백만명이 찾는 인류의 유산이기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종탑은 무너져 내렸지만,

성당에 있는 두 개의 탑은 물론 기본 구조물은 보존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화요일 AP통신에서는

화재가 발생하고 처음 66분 동안 긴박했던 상황을 보도했습니다.

 

6:20PM, 화재 경보가 처음 울릴 당시에

성당 안에는 사제들과 미사를 드리는 신도들, 관광객 등 수백명이 있었습니다.

갑작스러운 화재 경보에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뒤쪽 문을 통해서 불과 몇 분 만에 모두 빠져나와서

불길이 종탑으로 번지는 등 화재가 본격화될 때 성당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6:43PM, 대피는 했지만 두 번째 화재경보가 울리면서 화재를 실감했고

소방관들이 성당에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맞은편 청사에서 근무하던 파리 시장도 현장으로 달려왔습니다.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충격에 울음을 터뜨리고,

어떤 이들은 침착하게 성가를 부르면서 화재가 진압되길 기도했습니다.

 

소방관들은 성당에 있던 귀중한 유물들을 챙겨 나왔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쓰셨다고 알려진 “가신 면류관”입니다.

금 가지로 장식한 것을 보면 후대에 예수님께서 쓰신 면류관을 본떠서 만들었을 텐데

주후 6세기 이전부터 전해오는 성당에서 가장 값진 유물입니다.

소방관들이 목숨을 걸고 인간 띠를 만들어서 구했답니다.

루이 9세가 입었다는 왕복과 성당에 있던 예술품들도 챙겼습니다.

 

사람들은 물론 유물과 예술품까지 안전하게 대피하고 나니

종탑과 지붕이 무너져 내렸답니다.

7:49PM, 그때까지 걸린 시간이 66분이었습니다. 골든 타임을 제대로 확보한 것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그렇듯이 소방관들의 목숨 건 구조활동이 빛을 발했습니다.

 

2.

고난 주간 첫날에 들려온 화재 소식이어서 더욱더 안타까웠습니다.

고난 주간 내내 미사가 계획되었을 것이고

부활절 예배를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을 텐데 그만 화재가 났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가능한 한 빨리 복구가 이뤄지고

어려울수록 더욱 은혜롭고 특별한 부활절을 맞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고난주간 한가운데 있습니다.

내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성금요일입니다.

 

부활절을 준비하면서 우리가 과연 무엇으로 사는지 생각하기 원합니다.

 

800년 동안 한자리를 지켰고, 2차 대전도 견뎌낸 성당의 종탑과 지붕이

한 시간 남짓 만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들이 그렇게 쉽게 무너져 내리는 것들은 아닌지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 우리가 추구할 것은 무엇인지요?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목숨 걸고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는 고난주간이길 바랍니다.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음성을 듣느니라 (요한 18:37)

For this purpose I was born and for this purpose I have come into the world—

to bear witness to the truth. Everyone who is of the truth listens to my voice.(John 18:37)

 

하나님 아버지,

고난 주간을 맞아서

행여나 무너진 삶의 영역이 있다면 회복하게 하시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예수님을 꼭 붙들고 부활절을 맞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4. 18이-메일 목회 서신)

 

 

블랙홀

좋은 아침입니다.

 

1.

어제 아침,

블랙홀 사진이 최초로 공개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가운데는 검은색이었습니다.

정확한 원은 아니지만, 빛으로 둘러 쌓여 있고

밑에는 빛 광선 두 개가 호수처럼 위치했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보았던 블랙홀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시간까지 빨아들여서 블랙홀과 우주를 여행하고 온 우주인들이 지구에 돌아왔을 때

지구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모두 할머니가 된 장면도 떠올랐습니다.

 

말로만 듣던 블랙홀을 실제로 보게 된 것입니다.

저처럼 과학에 문외한인 사람도 마음이 설레었는데

과학자들은 얼마나 감동적이었을까요!

 

2.

기사를 보면서 그저 신기했습니다.

지구만한 망원경을 조합해서 관측했다는 사실,

망원경의 성능이 달 표면에 놓인 오렌지를 자세히 관찰할 정도라는 것,

블랙홀이 지구로부터 55억 광년 떨어져 있다는 것 등등

저에게는 영원처럼 느껴질 만큼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기사를 검색하면서

엉뚱해 보일 수 있지만 몇 가지 “개인적인” 생각이 스쳤습니다.

 

1) 실제 블랙홀 사진이 그동안 영화나 가상(시뮬레이션)으로 보았던 것보다

선명하지 않았고 솔직히 약간 시시해 보였습니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가짜는 화려하게 꾸미지만,

진품은 시시해 보여도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상상이 실제보다 더 멋있고 화려할 때도 있습니다.

현실을 살다 보면 시시할 수 있는데, 거기서 의미를 찾는 것이 일상의 신앙입니다.

 

2) 블랙홀 망원경 이름이 블랙홀의 경계선을 뜻하는 <사건 지평/Event Horizon>이었는데

망원경 프로젝트를 지휘했던 과학자가 다음과 같이 말했답니다:

“우리는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보았습니다.

We have seen what we thought was unseeable.”

 

제가 목사여서 그런지

히브리서 11장 1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Now faith is the assurance of things hoped for, the conviction of things not seen.(Heb 11:1)

 

블랙홀이 신비에 그칠 줄 알았는데 이번에 사진으로  확인했듯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들,

우리가 바라는 것들이 실상이 되고 증거가 되는 날이 올 것도 믿습니다.

블랙홀 사진에 비할 데 없는 신비, 경탄, 경외, 그리고 찬양의 순간이 우리 앞에 있음을 믿습니다.

 

3) 무엇보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고백합니다.

블랙홀도 만드시고 운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니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지혜가 얼마나 높고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하심이 얼마나 넓고 영원한 지 다시금 깨닫습니다.

인터스텔라 영화에서 5차원을 언급하는 대목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하나님의 영원하심은 그 모든 것을 포함하고도 남겠지요.

 

3.

사순절 마지막 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다음 주는 고난주간이고 곧 부활절을 맞습니다.

 

부활의 신비를 우리 눈으로 보고 경험할 때가 올 것입니다.

기대를 갖고 부활절을 맞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귀하게 간직하기 원합니다.

 

현대 과학에 비하면 너무 순수해 보이지만

당시로써는 최고의 과학적 지식을 동원해서

창조주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고백했던 시편 기자가 생각납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시편 8:3-4)

When I look at your heavens, the work of your fingers, the moon and the stars, which you have set in place,

what is man that you are mindful of him, and the son of man that you care for him? (Psalms 8:3-4)

 

하나님 아버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외합니다.

그 하나님께서 이 시간 우리와 함께하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4. 11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