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 람보르기니

좋은 아침입니다.

 

1.

가끔 고속도로를 운전하다 보면

배트맨 영화에 나올 법한 자동차를 만납니다.

그 위용에 “와”하는 탄성이 나옵니다.

아우디를 만드는 폭스바겐 계열사인

이태리제 “람보르기니/Lamborghini”라는 자동차입니다.

 

람보르기니는

또 다른 이태리제 고급 차인 페라리와 쌍벽을 이룹니다.

“무조건 페라리를 이겨라”는 창업자의 구호에 따라

람보르기니가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정말 멋있습니다.

물론 가격도 우리 같은 서민은 언감생심 근처에도 갈 수 없는

최하 20만 불에서 최고 3백만 불에 이릅니다.

 

2.

엊그제 미국 공용방송 NPR에

“폼페이 람보르기니 발견”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폼페이는 주후 79년

나폴리 연안에 있던 베수비오 화산이 갑자기 폭발하면서

2천여 명이 목숨을 잃고, 도시 전체가 화산재에 덮였습니다.

 

16세기부터

폼페이 유적발굴이 시작되었는데

화산재를 맞고 얼음처럼 굳어버린 연인들,

거리의 주민들, 동물들의 형상이 유명합니다.

 

이번에는

폼페이의 람보르기니라고 불릴 정도의

호화스러운 전차 유물이 발견된 것입니다.

 

그동안 발견된 폼페이의 마차들과 차원이 다른 최고급 전차랍니다.

유물을 발견한 사람들이 얼마나 깜짝 놀랐으면

이태리 람보르기니를 생각해 냈을까요!

 

그런데

보도된 사진을 보니2천여 년이 지나면서 녹이 슬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이 아니라면 그 고급스러움을 알아채기 힘들게 변했습니다.

 

3.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최고급 승용차 람보르기니를 보면서

누가 저런 차를 타고 다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2천 년 전,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폼페이를 헤집고 다니던 당시의 최고급 전차를 보면서

그때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2천 년이 지나고 나니,

그때의 위용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3백만 불이 넘는 이태리제 람보르리니도 언젠가는 같은 길을 가겠지요.

 

어제 읽은 마태복음 19장 23절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4.

지금도 고속도로를 누비는 21세기 람보르기니,

화산재로 덮이기 전까지 폼페이를 누렸던

폼페이의 람보르기니를 보면서

우리의 시선과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다시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 생명, 복음, 그리고 사랑과 섬김

– 요즘 세상에서 잊혀 가는 가치들을 다시 붙잡고 싶습니다.

 

내 마음속의 람보르기니를 지우고

시간이 가도 절대 변하지 않는 “영원”을 살고 싶습니다.

 

우리의 삶이 어떠하든지

작은 것까지 소중히 여기고,

그 안에 깃든 창조주 하나님의 손길(섭리)을 발견하기 원합니다.

 

참새 한 마리가 얼마에 팔리는지,

우리 머리카락까지 세고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핵심을 붙잡고 싶습니다.

 

행여나, 세상 풍조에 밀려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고

복음이 주는 지혜와 행복을 꼭 붙드는 사순절이길 바랍니다.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없도다 (잠언 3:15)

She is more precious than jewels, and nothing you desire can compare with her. (Prov 3:15)

 

하나님,

세상 흐름에 휩쓸려가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3. 4 이-메일 목회 서신)

2021 사순절에

좋은 아침입니다.

 

1.

사순절(Lent)을 보내고 있습니다.

 

교회력에서 사순절은

부활절을 기다리는 매우 중요한 절기입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사순절 기간 동안

금식하고, 기도하고 구제하면서

예수님의 3년 공생애부터 십자가 죽으심까지

예수님의 삶을 닮으려 애썼습니다.

 

부활절에 세례를 받기로 예정된 분들은

사순절 동안 세례 교육은 물론

기독교인의 삶을 연습하면서 세례를 기다리고 준비했습니다.

 

2.

사순절을

모든 것을 금지하고 참는

금욕의 시간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수도원이나 세상에서 따로 격리된 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가능할 수 있지만,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지나친 금욕은

자칫 위선적인 모습의 신앙이 될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합니다.

 

사순절의 정신을

“절제 (self-control)” 정도를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지나칠 정도로 세상에 빠져 있었다면

삶의 축을 하나님께로 옮겨 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것에 몰두한 것이 있다면,

탐닉하는 것에서 빠져나와서 신앙과 삶의 균형을 잡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이런 저런 핑계로 무늬만 그리스도인인 경우가 있었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훈련(discipline)”도 사순절에 생각할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길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처럼 지루한 천로역정입니다.

 

훈련하지 않으면

중간에 포기하거나 대충대충 믿기 쉽습니다.

 

기도와 말씀, 사랑의 실천,

배려, 신중함과 지혜로움, 근사함 등등 –

신앙의 덕목을 훈련해서 몸에 익히기 원합니다.

 

3.

사순절은

1년 365일 가운데 십 분의 일에 해당합니다.

 

삶의 십일조를 드린다는 마음으로

2021년 사순절을 맞기 원합니다.

 

팬데믹으로 흩어져서 사순절을 보내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깊은 신앙,

웬만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신앙,

누가 보아도 구별된 성도의 신앙을 훈련하고 장착하는 사순절이기 바랍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 5:16)

In the same way, let your light shine before others, so that they may see your good works

and give glory to your Father who is in heaven. (Mat 5:16)

 

하나님,

사순절을 지나면서

참빛 식구들의 신앙이 깊어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2. 25 이-메일 목회 서신)

성도

좋은 아침입니다.

 

1.

몇 주전,

아침마다 큐티를 전송하시는

어떤 목사님의 유튜브를 보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이다음 하나님께 가시면

자신의 묘소에 “OOO 성도”라는 묘비를

자녀들에게 부탁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聖徒, 거룩한 무리/백성)에 해당하는

영어식 표현은saints입니다.

성자를 The Saint라고 하는데,

우리 일반 그리스도인들도 saints라고 부릅니다.

 

헬라어 <하기오스>역시

거룩하다는 단어에서 파생된 <성도>라는 뜻입니다.

 

2.

교회에서는 “성도”라는 말을

집사나 권사가 아닌 일반 교인을 가리킬 때 사용합니다.

 

성도라는 말을 쓰거나 듣는 것은

초신자 같은 느낌이거나

교회에 오래 다녔지만

직분을 갖지 못한 분을 부를 때입니다.

 

말 그대로 ‘거룩한’표현인 성도가

직분을 가리키는데 쓰이는 것은 유감입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 “성도”로 불리기를

기대하고 소원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다음 하나님께 가면

목사, 장로, 권사, 집사와 같은

이 세상의 직분은 아무 소용이 없고

우리 모두 “성도”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테니까요.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계19:8)

 

 

3.

기독교와 교회가 세상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요즘이기에

“성도”라는 말이 더 깊이 다가옵니다.

 

“성도”의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단지 교회에서 직분이 없는 분을 부르는 호칭이 아니라

“성자”의 반열에 걸맞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도의 본래 모습을 회복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거룩하고 선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마5:16).

 

그 어떤 호칭보다

“성도”라고 불리길 바랍니다.

얼마나 근사하고 고귀한 말인지요!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 모두 거룩한 성도로 하나님 앞에 나가기 원합니다.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계19:8)

 

 

하나님,

주님 백성의 거룩함을 회복하고

성도로 세상과 주님 앞에 서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2. 18 이-메일 목회 서신

싱어게인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번 독서 모임 후기에서

한국의 한 TV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인

<싱 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에 대해서 나눴습니다.

 

그동안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가수로 활동했지만,

빛을 보지 못한 무명 가수들이

이름도 없이 1번 2번 30번 등 번호표를 달고 나와서

심사위원들 앞에서 경연을 펼칩니다.

 

독서 모임에서

<싱 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이 화제가 된 이유는

출연자 중에 유명하신 목사님의 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외모나 성품이 매우 점잖으신 목사님이신데

자세히 보면 목사님을 닮았고

자유분방한 것 같으면서도 질서가 있는 성품에

예사롭지 않았던 무명가수가 목사님 아들이었습니다.

 

저는 이분이 부른 노래만 유튜브로 들었는데

기사를 보니 마지막에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꽤 독창적인 노래를 부른 개성 있는 가수였답니다.

 

자신은 애매한 장르를 노래했고

방에서나 가수로 활동할 정도로 무명이었는데

프로그램을 통해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경연 프로그램이 자신을 세상과 맺어준 소개팅 자리였다고 했습니다.

 

2.

<싱 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 명칭 가운데

“어게인/again”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경연에 출연한 수십 명의 가수들은

자칫 노래를 접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무명 가수로 있다 보면

자신감도 잃고, 노래를 계속할 의미를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다시 노래할 기회가 찾아왔으니 얼마나 설렜을까요!

 

물론, 이번에도 주어진 기회를 잡지 못하고

다시 무명가수로 돌아간 분들도 있을 겁니다.

누구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분들도 “어게인”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다시/again”라는 말은 꽤 매력적입니다.

 

잘못했거나 실수한 것을

다시 만회할 기회가 생긴다면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중요한 일은

다시 반복하면서 완전히 마스터할 수 있습니다.

 

인생길을 걷다 보면,

“다시” 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집니다.

그 기회를 잡는 것이 성경에서 말한 “세월을 아끼는 인생”일 것입니다.

 

2021년도 한 달 이상 지났습니다.

새해 첫날에 결심했던 것이 작심삼일이 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시” 시작해 봅시다.

미국에 처음 올 때 가졌던 마음가짐도 해이해졌을 수 있습니다.

다시 처음 마음, 초심(初心)으로 돌아갑시다.

 

신앙에도 “다시”가 필요합니다.

신앙의 기본을 잊어버리고,

기독교인 답게 살지 않고 세상을 쫓아간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 안에 붙어있지 않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은 순식간에 모래성처럼 허물어집니다.

신앙을 무너뜨리려는 악한 세력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어게인” – 그때마다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부활의 능력,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다시’ 되새기고 ‘다시’ 신앙의 기본을 다지기 원합니다.

 

“다시/ again”라는 말을 마음에 담고

하나님 주신 새날을 시작합시다.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장 23-24)

 

 

하나님,

다시’ 시작하면서

우리의 삶을 정돈하고 온전한 하나님 백성으로 나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2. 11 이-메일 목회 서신)

생쥐와 인간

좋은 아침입니다.

 

1.

우리 교회 독서 모임에서

존 스타인벡의 <생쥐와 인간>을 읽었습니다.

 

<생쥐와 인간>은 살리나스 출신인 존 스타인벡이

1937년에 발표한 중편 소설입니다.

 

<생쥐와 인간>이라는 책 제목은

로버트 번스의 “생쥐에게”라는 시에서 왔습니다:

생쥐와 인간이 아무리 계획을 잘 세워도 일이 제멋대로 어그러져,

고대했던 기쁨은 고사하고 슬픔과 고통만 맛보는 일이 허다 하잖아!

 

스타인벡의 소설은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절이 배경입니다.

 

“조지”와 “레니”라는 목장 노동자 청년이 주인공입니다.

조지는 체격이 작지만 당찬 청년이고

레니는 큰 체격을 갖고 있지만 정신적으로 약간 떨어져서

조지가 보호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 둘은 누가 봐도 단짝입니다.

 

이들이 취직한 목장에는

당시 자본가를 대표하는 목장 주인의 아들이 있습니다.

작은 키를 숨기기 위해서 높은 굽의 구두를 신고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체격이 좋은 사람에게 시비를 걸곤 합니다.

 

조지와 레니를 비롯한 목장의 노동자들은

행여나 해고될까 두려워 주인의 눈치를 봅니다.

 

노동자들이 기거하는 감옥 같은 벙커가 작품의 배경입니다.

그곳에 있는 노동자들은 모두 외롭습니다.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마음을 열지 못한 채

서로를 경계하고 어디나 그렇듯이 크고 작은 갈등이 생깁니다.

 

2.

레니는 부드러운 물체를 보면, 자신도 모르게 꼭 쥐는 습관이 있습니다.

주머니 속의 생쥐와 작은 강아지도 죽인 적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소설 속의 복선이어서

레니가 주인의 아내 머릿결을 만졌다가 목을 조여 죽인

사건이 소설의 절정입니다.

 

소설은 비극으로 끝이 납니다.

주인과 목장 사람들이 레니를 잡아서 복수할 것을 알고 있는

친구 조지가 총으로 레니를 죽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어려우니 친구 간의 우정도 유지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느 노동자들처럼 조지와 레니도

열심히 돈을 모아서 자신들만의 농장을 갖고, 레니가 좋아하는 토끼도 키우고

창세기의 에덴동산과 같은 자신들만의 공간을 꿈꾸지만,

언불생심 거친 세상은 이들의 꿈을 산산조각 냈습니다.

 

3.

위에 소개한 번즈의 시구처럼

아무리 사람이 계획을 세워도 그것이 현실이 되는 것은 꽤 힘듭니다.

 

구조적인 악이 존재하고

개인의 습관, 이기적인 본성, 거기서 파생하는 또 다른 비극까지

소설 속에서 스타인벡이 그리는 세상과 인물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고 우리 자신의 모습입니다.

 

우리 역시 하루하루 거친 현실을 살아갑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운명과 같은 세상을 마주합니다.

우리 안에서도 끊임없이 악한 본성이 살아납니다.

우리 마음이 타락한 세상의 축소판일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4.

그렇다고 우리의 삶이 비극으로 끝날 수는 없습니다.

너무 힘들 때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숨는 것도

그리스도인만이 누리는 은혜요 특권입니다.

 

공동체 가족끼리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서로를 세워주고 함께 걷는 신앙의 동지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가정이 그리고 우리 교회가

조지와 레니가 꿈꾸던 낙원이 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 결코 쉽지 않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과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의 열매를 보기 원합니다.

 

p.s. 행여나, 대공황과 같은 팬데믹 기간에 세상의 악한 구조에 눌려서

죽음으로 내몰리는 힘없는 노동자들이 있는 것은 아닌지요!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시편 23:4)

Even though I walk through the valley of the shadow of death,

I will fear no evil, for you are with me;  (Ps 23:4)

 

하나님,

우리가 서로에게 진정한 친구

신앙의 동지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2. 4 이-메일 목회 서신)

깊은 신앙

 

 

 

 

좋은 아침입니다.

 

1.

신축년(辛丑年) 새해 첫 달이 지나갑니다.

 

소처럼 느릿느릿

그렇지만 해야 할 일을 꼼꼼하게 챙기면서

걷기로 결심했던 새해입니다.

 

여느 해처럼

빠른 속도로 걷기 힘들 것을 우리는 압니다.

조바심을 낸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닙니다.

혼자서만 앞으로 치고 나갈 수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2020년 거의 한 해를

팬데믹으로 살았기에

새해의 삶이 더 이상 새로운 일상(new normal)도 아닙니다.

 

2.

참빛교회 목사로서 갖고 있는 고민은

언제 우리가 다시 모여서 예배할 수 있을까보다

각자의 자리에서 예배하고 흩어져 지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우리의 신앙이 식고 행여나 부서지는 것은 아닐까 입니다.

 

신앙은 혼자 가는 길이 절대로 아닙니다.

공동체로 모여 있을 때 유지되고 깊어지고 넓어집니다.

 

연말에 참빛식구들께 선물한

헨리 나우웬의 책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에 이런 글이 나옵니다.

 

상처를 안고 사는 우리가 서로 마음을 나누려는 소원이 가장 아름답게 표현되는 때는

함께 식사를 할 때가 아니겠는가? 식탁, 음식, 음료, 말, 이야기, 이러한 것들이 서로에게

각자의 삶을 내어 주려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일 뿐 아니라 실제로 그것을 실행하는

가장 친밀한 방법이 아니겠는가? 나는 ‘함께 떡을 뗀다’는 표현을 아주 좋아하네. 그때는

깨어지고 나누어 주는 것이 확실하게 하나가 되기 때문이지. (93쪽)

 

지난 주일 예배 후 <참빛 테이블 토크>에 초대된 권사님께서

주일 예배 후에 함께 떡을 떼며 식사하던 때가 그립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같은 심정입니다.

 

3.

우리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합니다.

 

교회보다도

경제와 학교가 먼저 열려야 합니다.

함께 만나서 예배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지만

안전한 세상이 속히 올 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양보하고 더 길게 기다릴 수 있습니다.

 

대신,

우리가 지속해서 힘써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신앙에 깊이를 더하는 일입니다.

 

신앙을 나무에 비유하면,

팬데믹 동안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리는 것입니다.

 

잎과 줄기도 중요하고, 무엇보다 열매가 꼭 필요하지만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고, 신앙을 표현할 기회가 적은 지금은

깊이 있는 신앙을 훈련하기 딱- 좋은 시간입니다.

 

웬만한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신앙을 갖추기 원합니다.

전도를 비롯한 이웃과의 관계는 제한을 받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더욱더 깊어지기 원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과 단둘이 만나는 “골방 시간”을 꼭 가지시길 부탁드립니다.

 

아이들이 있어서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르셔도

잠자리에 들기 전, 단 몇 분이라도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갖는 것입니다.

 

보슬비에 옷이 젖듯이

하나님과 단둘이 갖는 골방 시간이 깊이 있는 신앙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가 나를 사랑한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이름을 내가 그를 높이리라. (시 91:14)

Because he holds fast to me in love, I will deliver him;

I will protect him, because he knows my name. (Ps 91:14)

 

하나님,

참빛 식구들이 고요한 시간 골방에서

주님을 찾을 때마다, 꼭 만나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1. 28 이-메일 목회 서신)

 

 

인생길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 설교에서

<호모 비아트로 Homo Viator>  라는 말을 소개했습니다.

길을 걷는 존재, 여행자와 같은 인생이라는 뜻입니다.

 

“한 평생”이라는 말은

우리가 걷는 인생길이 ‘한’없이 길다는 의미와

한 번뿐인 인생이라는 뜻이 있을 겁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한평생은

어느 시인의 싯구대로 “소풍”이요

노래 가사 대로 “나그네길”입니다.

 

그 길을 걸으면서

오르막과 내리막과 같은 인생의 굴곡

때로는 험한 길, 때로는 고속도로와 같은 평탄한 인생길을 만납니다.

 

그 길을 가면서

미움, 시기, 질투, 경쟁, 실패

사랑, 화해, 양보, 승리, 기쁨까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합니다.

 

그 길을 함께 걸을 “길동무”가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고, 가장 큰 축복입니다.

 

 

2.

지난 월요일 아침

우리 교회의 최 연장자셨던

낸시 바렛 권사님께서 94세로 하나님께 가셨습니다.

 

낸시 권사님의 한평생도

말 그대로 곡절(曲折)의 삶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가셨건만

남편은 권사님과 갓난아이만 남겨놓고

전쟁터로 나가서 행방불명이 되셨습니다.

 

70년대 한국의 경제개발 시기에

주택을 개조해서 사고파는 사업을 하셔서 나름 성공하셨습니다.

 

재혼을 하셔서 일찍이 미국에 오셨습니다.

아들을 미국에서 공부시키고 싶다는 소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권사님 소원대로 버클리 공대를 졸업한

어느덧 70이 넘으신 아들의 효도를 마지막까지 충분히 받고 하나님께 가셨습니다.

 

권사님 집 뒤뜰은 가파른 절벽입니다.

그곳을 모두 일구셔서 산비탈의 정원을 만드셨고

그곳에 갖가지 꽃들과 채소를 심으셨습니다.

 

한시도 가만히 계시지 않던 부지런한 권사님이십니다.

깔끔하시기가 이를 데 없으셨습니다.

 

지난 5-6년은 거의 노환으로 집에 계셨습니다.

코로나 전에 심방 가면, 교회 걱정을 하시고,

따뜻해지면 교회에 꼭 오고 싶다고 저희 손을 꼭 잡으셨습니다.

노련하게 신앙을 표현하지 못하셔도

끝까지 하나님을 놓지 않으셨던 멋쟁이 권사님이셨습니다.

 

연초에 달력과 교회 선물을 갖고

잠깐 권사님을 뵈러 갔더니

기도하는 중에 그렇게 흐느껴 우셔서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홀연히 하나님께 가셨습니다.

 

평생 편두통으로 타이레놀을 조제해서 드시고

노년에는 허리도 아프셔서 앉아있기 힘드셨는데

이제 고통도 아픔도 없는 하나님 품에서 영원히 안식하실 줄 믿습니다.

 

3.

권사님의 한평생을 회고하면서

우리가 걷는 인생길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끝이 있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 끝은 빈손으로 홀연히 하나님께 가는 길입니다.

 

무엇이 중요하고, 끝까지 남는 것이 무엇일까요?

상투적이지만 다시 스스로 다짐합니다:

“사람들 마음속에 남는 인생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 손을 꼭 붙들고 주어진 인생길을 걷기 원합니다.

우리 곁에 있는 길동무, 신앙의 동지들과 기쁨을 나누며

오늘 하루, 한평생 그 길을 가기 원합니다.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시 91:11)

For he will command his angels concerning you

to guard you in all your ways.(Ps 91:1)

 

 

하나님,

참빛 식구들이 가는 모든 길을

천사를 동원해서 꼭 지켜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1. 21 이-메일 목회 서신)

 

 

날개

좋은 아침입니다.

 

1.

제가 국제선 비행기를 처음 탄 것은

1992년 겨울이었습니다.

다니던 직장에서

본점이 있던 호주로 연수를 가던 길이었습니다.

 

그때는 김포공항발 호주행 비행기가

일주일에 한 번 밖에 없었고

그것도 국적기가 아닌 호주 콴타스 항공이었습니다.

 

밤 비행기를 타고 출국했는데

비행기 창문으로 빛이 따라오면서 깜빡이는 겁니다.

게다가 기체의 움직임도 심해서

불안함에 밤을 꼬박 샜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가 앉은 좌석이 날개 부분이었고

비행기 날개 끝에서 깜빡이는 빛이었습니다.

 

호주 시드니에 도착해서 비행기가 착륙하는데

날개 부분이 덜렁 열리는 것을 보면서

밤새 비상등을 켜더니 무슨 고장이 난 줄 알고

혼자서 마음을 졸였던 우스운 기억이 생각납니다.

 

2.

<Soar, 날아오름> 이라는 책에서

30년 이상을 조종사로 근무했던 저자는

비행기의 안전성에 대해서 조목조목 알려줍니다.

 

비행기 기체의 안전한 설계,

2중 3중의 안전장치,

비행기를 탈 때 가져야 할 마음가짐 등을 설명하면서,

비행기 날개가 비행기의 안전 운항에 필수적임을 알려줍니다.

 

비행기 날개 끝에 살짝 위로 솟아오른 부분은

어릴 적 종이 비행기를 날릴 때 날개 부분을 접어 올리면

곧게 날아가는 원리라고 쉽게 알려주었습니다.

 

악천후나 비상 사태에서도

비행기는 날개와 더불어 평형을 유지하기에

그 무엇보다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3.

지난주일 시편 91편을 나누면서

“날개”라는 표현을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날개 깃으로 자신의 백성을 덮어 주십니다.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깃으로 덮어주는 것,

어머니가 아기를 옷깃으로 덮어주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날개 아래 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날개를 활짝 펴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기에

하나님을 향해서 “나의 피난처”라고 고백했습니다.

 

비행기 날개로 인해서 안전성이 확보되듯이

하나님께서 날개 깃으로 우리를 덮으시니 안전합니다.

불안하고 힘들 때, 하나님 날개 아래로 피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한 걸음 더 나갑니다.

하나님을 바라고 의지하는 자는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는 것처럼 솟아오른다고 했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사40:31)

 

4.

비행기를 안정적으로 운항하게 하는

날개 바로 옆에 앉아 있으면서도

날개 끝의 안전등을 보고 불안해하던 저의 첫 번째 비행기 탑승 경험처럼

행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날개 깃으로 덮고 계시는데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아닌지요?

 

2021년 한 해를 살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피난처 삼고

날아올라야 할 때는 독수가 날개 치며 솟아오르듯이 비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자신감, 용기, 그리고 힘일 것입니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시편 91편 4절)

He will cover you with his pinions,

and under his wings you will find refuge. (Ps91:4).

 

하나님,

힘들게 시작하는 새해지만

참빛 식구들의 신앙과 삶이 날아오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1. 14 이-메일 목회 서신)

 

 

 

들소의 뿔같이

좋은 아침입니다.

 

1.

팬데믹 기간 동안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 마스크입니다.

그 중에서도 N95 마스크가 인기입니다.

 

N95마스크에 사용되는

특수 소재를 발명한 분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대만 출신의 피터 싸이(Peter Tsai)박사입니다.

 

싸이 박사는

재료공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1981년에 캔자스 대학에 유학 왔습니다.

 

박사과정 시절에는

여섯 개의 박사학위를 가질 정도의 500 학점을 이수했답니다.

자신의 전공은 물론 물리학을 비롯한 연관 학문을 공부한 것입니다.

 

학위를 끝내고 텍사스 대학의 교수가 된 싸이 박사는

1990년에 N95 마스크에 사용되는 특수 소재를 발명했습니다.

 

바이러스를 비롯한 미세 먼지를 막아주는 소재로,

처음에는 가정용 공기정화 필터를 생각했지만,

3M과 협업하면서 공사장이나 먼지가 많은 곳에서 일하는 분들,

의료진들을 위한 N95 마스크로 발전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시작되면서 N95 마스크가 각광을 받게 되자

싸이 박사는 수십 년 전 자신의 발명품이 인류를 구하는데 공헌하는 것에

커다란 보람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2018년에 은퇴했는데, 코로나 이후

연구소와 기업들이 그의 자문을 구하는 바람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삶을 살고 있답니다.

 

2.

신축년(辛丑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는 소띠 해입니다.

 

팬데믹으로 집에서 맞이하는 새해여서

여러모로 답답한 것도 사실입니다.

백신이 나왔지만, 여전히 코로나는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소처럼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싸이 박사가  자기 인생을 살다가 N95 특수 소재를 발명했고,

30여 년 후에 그것이 인류의 안전을 위해서 사용되듯이

우리가 걷는 현재의 인생 여정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보람되고 감사할까요!

 

2021년을 그런 마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3.

주일에 살펴보는 시편 91편 다음 장에 보면

“들소의 뿔”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같이 높이셨으며 (시92:10).

 

여기서 “뿔”은 권위의 상징입니다. 근사함입니다.

“들소”는 힘의 상징입니다.

히브리어 본문은 “주께서 들소처럼 내 뿔을 높이셨습니다”입니다.

 

주께서 우리의 뿔을 들소처럼 높이실 것을 기대하면서

올 한 해 어떤 상황에서도 기죽지 않고

소처럼 자신의 길을 걷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 참빛 식구들께

들소의 강인함과 멋짐을 더해 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뿔을 들소의 뿔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을 부으셨나이다 (시편 92:10)

But you have exalted my horn like that of the wild ox;

you have poured over me fresh oil. (Ps92:10).

 

하나님,

힘든 가운데도 열정을 갖고 새해를 시작하는

참빛 식구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1. 7.이-메일 목회 서신)

지금까지 지내온 것

좋은 아침입니다.

 

1.

2020년 마지막 날입니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는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였습니다.

(내년에도 같은 표어로 살기로 했습니다)

 

2020년이라는 새로운 10년(decade)을 시작하면서

참빛 식구들의 신앙과 삶이 한 단계 도약하길 기대했습니다.

 

무엇보다 2010년대는 기독교가 세상에서

힘을 잃고 반대로 지탄의 대상이 되었던 기간이었기에

2020년대에는 우리 자신은 물론 기독교가

다시 일어나서 빛을 발하길 원했습니다.

 

2.

그런데 웬걸,

2월에 한국이 신천지를 중심으로 코로나 홍역을 치르더니

한 달도 못되어서 미국도 코로나 폭풍에 휩싸였습니다.

뉴욕은 의료체계가 무너져서, 우리가 아는 지인들까지 목숨을 잃었습니다.

 

다행히 우리 지역은

일찍 문을 닫았기에 통제가 가능했지만,

3월 중순부터 교회도 문을 닫아야 했고

지난 9개월 이상을 각자의 자리에 흩어져서 예배하고 있습니다.

 

비즈니스 하시는 분들도 사업장 문을 열지 못하고

아이들도 학교에 갈 수 없습니다.

 

팬데믹이

이렇게 길게 이어질 것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3.

물론, 좋은 일도 있었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지냅니다.

온 가족이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간혹, 교회에 오지 않는 가족들도 간접적으로 예배에 참석하십니다.

 

사회활동이 줄어들면서

외로울 때도 있지만

내면을 돌아보면서 홀로서기를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팬데믹 초기에는 자연이 살아났고

거리에 자동차가 줄면서 오염도 줄었습니다.

 

그래도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온 가족이 집에서 지내는 것이나

영상으로 예배하는 것,

무엇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라지길 기다리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4.

그리고 오늘,

2020년의 마지막 날을 맞습니다.

 

찬송가 301장 “지금까지 지내 온 것”이 생각납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지켜 주시고

모든 일을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한이 없는 주의 사랑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여전히 깜깜해도

주의 사랑은 변함이 없음을 믿습니다.

 

그 사랑을 붙들고 새해를 맞습니다.

 

한 해 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들이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하여 말하며

주의 의를 노래하리이다 (시편 145:7)

They shall pour forth the fame of your abundant goodness

and shall sing aloud of your righteousness. (Psalms 145:7)

 

하나님,

올 한해 동안 함께 하시고

여기까지 사랑으로 인도하셔서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12. 31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