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토로 마을

좋은 아침입니다.

 

1.

어제는 우리 민족이 일제 치하에서 해방된 광복절이었습니다.

미국에서 바쁘게 살다 보니 무심코 지나치기 쉽지만

적어도 삼일절이나 광복절은 기억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더욱, 우리 샌프란시스코는

한인 이민은 물론 독립운동과 인연이 깊습니다.

1902년 하와이 사탕수수밭의 노동자로 이민 온 한인들이 본토로 진입하는 관문이었고,

1902년 도산 안창호 선생의 샌프란 유학과 한인회 조직,

1908년 장인환/전명운 열사의 일제 앞잡이 스티븐슨 저격 등

한인 이민사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샌프란 도심(St. Mary Square Park)에

위안부 기념비가 세워지기도 했지요.

기회가 되면, 특히 자녀들과

샌프란 한인들의 발자취를 답사해도 뜻 깊을 것 같습니다.

 

2.

1941년 일본 교토 비행장 공사를 위해서 끌려온

한인들이 모여 살던 <우토로>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해방 70년을 맞은 2015년에

MBC 무한도전팀이 방문해서 감동을 주었던 곳입니다.

 

비행장 공사를 위한 인부 2천 명 가운데

1300명이 조선인이었답니다.

이들은 해방 이후에도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현재까지 한인 촌을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공항을 만들기 위해서 언덕을 깎고 웅덩이를 만든 곳에

집단 주거지를 만들었기에 비가 조금만 와도 침수가 됩니다.

일본 정부가 상/하수도 등 사회 제반 시설을 해 주지 않아서

무척 열악한 환경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닛산 자동차 그룹이 대지를 매입해서

수십년 터전에서 쫓겨나게 되었는데,

2007년 한국의 시민단체와 정부의 지원으로 재건축이 기능해졌답니다.

 

일본 한가운데서 “섬”처럼 살아가면서도

이들의 구호는 “에루화 좋다”입니다.

한국학교를 세워서 우리 말과 문화를 보존하는 등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한국인으로 살아온 대표적인 공동체입니다.

 

*우토로 마을에 대한 영상은 많습니다. 아래는 한인 3세가 안내하는 방송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X2Qezv3ucI

 

3.

샌프란에 처음 정착한 한인들이나

일본 토쿄 우토로 마을의 한인들은

떠나온 조국을 마음에 그리면서 혹독한 세월을 견뎠을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갑니다.

견디는 것이 힘이요 믿음입니다.

살아남고, 우리가 있는 현장이 간증이 되는 것이 축복입니다.

 

오랜만에 초등학교 시절 불렀던

광복절 노래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2절이 참 좋습니다

 

꿈엔들 잊을 건가  지난 일을 잊을 건가

다같이 복을 심어 잘 가꿔 길러 하늘 닿게

세계에 보람될 거룩한 빛 예서 나리니

힘써 힘써 나가세 힘써 힘써 나가세

 

하나님 아버지,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하나가 되고 세계를 비추는 빛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목사 드림

(2017. 8. 16이-메일 목회 서신)

늘 그리운 곳

 

좋은 아침입니다.

 

1.

점심을 먹고 거실 바닥에 누워 있으니

둘째가 “아빠는 바닥이 좋아?”라고 묻습니다.

 

저는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서 셀폰을 확인하거나 책을 볼 때가 많은데

둘째가 보기에 불편하게 보였는지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우라는 것입니다.

 

“응. 사실 아빠는 바닥에 누워서 눈을 감고 있으면

옛날 할머니 집 마루가 생각나거든.

여름이 되면 시골집 마루에 누워서

책도 보고, 생각도 하고, 낮잠도 자고 그랬어.

문을 열어놓으면 바람이 솔솔 불고 너무 시원했지.”

둘째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우리 집 거실에 누워서 눈을 감고 있으면

30-40년 전 시골집 마루에 누운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합니다.

그 옛날 시원한 대청마루를 생각만 해도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2.

지난 주일에는 우리 교회가

샌 부르노 공원으로 야외 예배를 다녀왔습니다.

세 번째 같은 장소로 소풍을 갔는데 갈 때마다 참 좋습니다.

 

한적해서 마음까지 편안해지고

쉼터가 있어서 햇볕도 막을 수 있고

고기를 굽는 그릴도 넓고 커서 일하기 편하고

우리 교회 야외 예배 장소로 안성맞춤입니다.

 

다음 야외 예배 때는 또 어떤 분들이 함께 하실지,

우리 권사님들께서 모두 건강하시고

아이들은 부쩍 크고, 교회도 나름 더 자라 있기를 바라면서

2년 후의 야외 예배를 기약했습니다.

 

그렇게 야외 예배를 마치고

마지막 정리를 위해서 교회에 왔는데

교회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줍니다.

매 주일 오던 참빛 식구들이 교회에 오지 않았으니

우리 교회 “건물”이 섭섭했나 봅니다.

 

다음 주일 교회에서 예배할 것이 기대되었습니다.

예배는 성전에서 드리는 것이 더 은혜로운 법이지요!

 

3.

우리 모두에게는

추억에 잠기게 하고

앞일을 기대하게 하며

언제나 가고 싶고 그리운 “장소”가 있습니다.

 

그곳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곳에 가면 힘을 얻습니다.

그곳에 가면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만납니다.

 

누구에게나 그런 장소가 있게 마련인데

참빛 식구들께 우리 교회가 바로 “그 장소”가 되면 좋겠습니다.

힘든 세상살이의 피난처가 되고

새 힘을 얻는 재충전의 장소가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예배하고

좋은 분들이 함께 하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기로

더불어 결심하고 격려하는 공동체를 세워가기 원합니다.

 

(물론,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은 언제나 sweet home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와 가정이 함께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음 주일은 예쁜 우리 성전에서

다 함께 하나님을 예배합시다.

 

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 (시133:1)

Behold, how good and pleasant it is when brothers dwell in unity! (Ps 133:1)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선하고 아름다운 공동체로 더욱더 자라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목사 드림

(2017. 8. 9이-메일 목회 서신)

마음의 교만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에는

빌립보 교회에 침투해서 교회를 어지럽혔던

유대인 할례주의자들에 대해서 배웠습니다(빌 3:2).

 

바울은 이들을

“개” “행악하는 자들” “몸을 상해하는 자들”이라고 불렀습니다.

 

개라는 비유로 시작해서

그들의 행위가 악함을 알려주었고

마지막으로 그들의 악한 행위가 할례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들은 구약의 율법을 꼭 붙들고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은 것과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았다고 우쭐대던

유대교 배경의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할례와 구약의 율법을 놓지 못하고

그것을 손에 쥐고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들을

“불쌍한 이들” “가난한 사람들(에비오니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기독교 전통에서 사라졌습니다.

 

2.

이 사람들이 할례를 비롯한

구약의 율법을 포기하지 못한 것은

그들 안에 있던 “교만”이었습니다.

 

자신들만이 정통 하나님 백성이라는 교만,

할례를 하지 않은 이방인들을 무시하는 교만,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할례를 포기하지 못한 채 기득권으로 여기던 교만이

이들을 무너뜨렸습니다. 아니 스스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수요예배에서 배우는

예레미야서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던

이방 민족들의 교만도 소개합니다.

 

이집트, 모압, 암몬, 다메섹, 바벨론과 같은

이스라엘을 둘러싼 열강들은

자신들의 국력, 산업, 역사를 믿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민족에게 어려운 일이 닥치면

그것을 고소하게 생각하면서 그 틈을 타서 자신의 영토를 넓혔습니다.

국가 간의 전쟁으로 합리화될 수 있지만

결국 자신의 국력을 앞세운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 열강과 이스라엘을 둘러쌓고 있던

크고 작은 국가들을 차례로 무너뜨리십니다.

재판하듯이 죄목을 하나하나 거론하시면서

결국 “유죄판결”을 내리십니다.

 

3.

하나님 백성들이 교만을 해결하지 못하면

스스로 무너지게 됨을

빌립보 교회를 힘들게 한 개들과 같은 악한 사람들을 통해서 배웁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이방 민족의 교만도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고, 결국 심판하십니다.

 

우리 역시 신앙 가운데 교만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세상일에서도 교만할 수 있고,

마음속의 교만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 겸손하기 원합니다.

함께 하는 이웃들을 배려하기 원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교만은 물론

마음의 교만도 통제하기 원합니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2:12)

As you have always obeyed, work out your own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Phil 2:12)

 

하나님 아버지,

겸손이 우리의 인격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목사 드림

(2017. 8. 2이-메일 목회 서신)

다 잘 될 거예요

좋은 아침입니다.

 

1.

우리가 자주 쓰는 말 가운데

“다 잘 될 거예요”가 있습니다.

 

누군가 어려운 일을 당했거나

삶의 고민이 깊어지고

생각처럼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잘 될 거예요”라는 말을 건넵니다.

 

참 좋은 표현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격려하는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잘 될 거예요”라는 말에 진심(眞心)이 실리지 않으면

이 표현보다 건성인 말이 세상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어려움은 매우 구체적입니다.

삶의 고민은 특별한 문제를 갖고 씨름하고 있을 때입니다.

잘 풀리지 않는 일도 특별한 경우입니다.

“잘 될 거예요”는 이 모든 것을 충분히 이해했을 때 사용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상황을 적당히 듣고

건성으로 “다 잘 될 거예요”라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실제로 모든 일이 잘 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 잘 될 거라니

책임지지 못할 말을 무심코

그리고 인사치레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2.

지난 주일에 살펴본 빌립보서 말씀에서

사도바울은 자신의 동역자 디모데를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빌2:20)

For I have no one like him, who will be genuinely concerned for your welfare.(Phil 2:20)

 

“진실히 (genuinely)”라는 표현에 주목해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라면  빌립보 교회를 위해서 진심으로 염려하고,

그들을 위해서 진심어린 조언과 안내를 해 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디모데 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저는 이런 디모데의 성품을

“공감 능력”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3.

예수님께서도 우리와 똑같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성육신(incarnation)입니다. 우리가 겪는 생사고락을 모두 겪으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우리와 최고로 공감하시고

우리를 충분히 이해하시고 도우실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물론 디모데가

빌립보 교회를 진심으로 생각할 수 있었던 것도

그리스도의 마음과 삶을 따르고 닮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다 잘 될 거예요”라는 말에 진심을 실어야 합니다.

인사치레로 하기에는 너무 엄중한 표현입니다.

 

어떤 때는 “다 잘 될 거예요”라는 말 대신에

손을 꼭 잡아주고,

상대방을 위해서 마음으로 기도해 주는 것이

훨씬 좋은 공감일 수 있습니다.

 

가까운 가족, 교회 식구들, 이웃들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공감하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그가[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있느니라 (2:18)

For because he himself has suffered when tempted,

he is able to help those who are being tempted. (Heb 2:18)

 

하나님 아버지,

이웃을 향한 우리의 마음, 태도, 말과 행동이

예수님을 꼭 닮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목사 드림

(2017. 7. 26이-메일 목회 서신)

예루살렘에서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새벽기도회에서는

마가복음 후반부를 읽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예루살렘에서의 일주일 사역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예언대로

누구도 탄 적이 없는 나귀 새끼를 타고

왕과 메시아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사람들도 종려나무를 흔들며 “호산나(이제 구원하소서)”를 외쳤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을 내려다보면서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실 만큼

예수님의 마음은 편치 않으셨습니다.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고, 제자들에게 마지막에 될 일을 알려주시고

자신을 죽이려는 예루살렘 지도자들을 지혜롭게 대처하시고,

마지막 유월절 만찬에서 성만찬을 제정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게 될 것과

베드로가 그 밤에 세 번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것도 일러주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하면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밤에 잡히셔서 다음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2.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숨가쁜 일주일을 보내시면서

자신의 3년 공생애를 마무리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매우 차분하셨습니다.

특히 오늘 읽은 마가복음 12장 속의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이 삼일 앞둔 분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평소와 같은 일상을 살고 계심을 발견합니다.

그러니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코앞에 닥쳤는데

차분하게 자신의 십자가 길을 준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저는 예수님의 부르심(소명, Calling)에서 찾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사셨습니다.

자신의 처지가 어떠하든지 그 길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면

차분하게 그 길을 가셨습니다.

 

물론 겟세마네 기도처럼 십자가 죽음 앞에서 고뇌하셨지만,

결국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복종하셨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3.

우리의 삶이 때로는

폭풍 한가운데 떠 있는 조각배처럼 요동칩니다.

어려움이 닥치거나, 자신에게 손해되는 상황이 펼쳐지면

속이 부글부글 끓고 평정심을 잃곤 합니다.

요즘 살펴보는 빌립보서 말씀대로 하면 여전히 “나 중심”이라는 표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셨습니다.

가정으로, 삶의 현장으로,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입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일상을 살아가길 원합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오늘 하루도 흔들리지 않는 확신,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평안을 누리기 원합니다.

 

매일의 일상이 하나님의 부르심임을 믿고

그 길을 걷기 원합니다.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2:13)

for it is God who works in you, both to will and to work for his good pleasure. (Phil 2:13)

 

하나님 아버지,

우리 삶의 환경이 어떠하든지

흔들리지 않는 일상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목사 드림

(2017. 7. 19이-메일 목회 서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좋은 아침입니다.

 

1.

염려해주시고 기도해 주신 덕분에

저는 많이 좋아져서 물론 조심하지만

이번 주는 새벽기도회도 잘-하고 있습니다.

역시 새벽에 기도하니 참 좋습니다.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지난 주일에는 빌립보서 1장 27- 2장 11절을 살펴보면서

두 구절만 마음에 새기길 제안했습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1:27)

Only let your manner of life be worthy of the gospel of Christ (Phil 1:27)

 

너희 안에 마음을 품으라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2:5)

Have this mind among yourselves, which is yours in Christ Jesus (Phil 2:5)

 

사실 이 두 구절은 우리 모두의 평생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2.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답게 생활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품격에 맞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살펴본 빌립보서 말씀을 통해서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습니다.

 

바울의 기도 (1:9-11) 속에서

1) 선한 것을 분별하는 사랑이 더욱 충만하고

2) 진실하고 허물없이 의의 열매를 풍성히 맺고

 

바울의 삶을 통해서(1:12-26)

3) 삶의 축과 매사의 기준을 자신에서 그리스도로 옮기고

4) 죽든지 살든지 그 몸(삶)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며

 

빌립보 교회를 향한 권면을 통해서 (1:27-2:4)

5) 한마음과 한 뜻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방해하는 자들과 담대히 맞서고

6) 은혜와 믿음과 함께 고난도 기뻐하며

7) 교회 안에서도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고

8) 다툼이나 허영이 아니라 겸손으로 서로를 높이고

9) 자기일 뿐만 아니라 남의 일까지 돌보는 것입니다.

이상의 권면은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원리들(principles)입니다.

 

이제 우리 각자가 해야 할 일은,

빌립보서를 통해서 배운 원리를

각자의 삶에 적용(application)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똑같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맞는 복음에 합당한 삶을 찾아내고

다양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입니다.

 

같은 말씀을 읽고, 공부하고, 듣지만

그 적용은 우리 각자의 다양한 삶만큼 다채로울 것입니다.

말씀이 각자의 삶 속에서 풍성한 열매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3.

이 모든 것을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여기서 마음은 “태도(attitude)” 그리고  “삶의 모습(Life style)”입니다.

마음가짐, 삶을 대하는 자세/가치관,

그리고 구체적인 삶이 예수님을 닮으라는 권면입니다.

 

복음서를 많이 읽고,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을 깊이 생각하고,

예수님을 우리 삶에 초청하며

우리 삶을 예수님께 대입하면서 예수님을 닮아 가야겠습니다.

 

“예수님”을 마음과 생각, 그리고 삶에 달고 사는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멋진 삶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값지게 만드는 길입니다.

 

참빛 식구들 모두 이 길로 나가시길 기도하며 돕겠습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1:27)

Only let your manner of life be worthy of the gospel of Christ (Phil 1:27)

너희 안에 마음을 품으라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2:5)

Have this mind among yourselves, which is yours in Christ Jesus (Phil 2:5)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이웃과 세상을 대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목사 드림

(2017. 7. 12이-메일 목회 서신)

넓은 기도

좋은 아침입니다.

1.

바울은 빌립보서를 시작하면서

자신이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하는 빌립보 교회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 눈에 떠올려가면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고

바울의 마음에 빌립보 교회가 있으니 저절로 기도가 나왔겠지요.

빌립보 교회 역시 감옥에 있는 바울을 위해서 기도하고

에바브로디도 편에 헌금까지 보내주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고

멋진 그리스도인의 연합인지요!

 

2.

이웃을 위한 기도는 기도의 꽃입니다.

 

나만 위해서 기도한다면

여전히 축이 자기중심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이웃까지 펼쳐지길 원합니다.

내 기도의 응답도 중요하지만

이웃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것이 응답되었을 때 더 기뻐하기 원합니다.

 

종종 말씀드리듯이

기도시간에 아니면 하루 중 생활하면서

생각나고 눈 앞에 떠오르는 이웃을 위해서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성령께서 그 이웃을 위해 기도하라고 알려주시고,

그 이웃이 바로 그 순간 여러분의 기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가족과 친지들, 참빛 식구들

신문이나 뉴스에서 보았던 어떤 사람들이나 상황들,

길을 가면서 지나쳤는데 왠지 마음에 영상으로 남아있는 생면부지의 이웃들,

아무튼 눈에 떠오르는 이웃을 위해서 진실로 기도하는 “묘미”를 느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이웃을 위해서 기도하다 보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저절로 찬송이 나옵니다: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때가 가장 즐겁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기도의 지경이 나에서

하나님과 이웃으로 높아지고 넓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목사 드림

(2017. 7. 5 이-메일 목회 서신)

지극히 선한 것

좋은 아침입니다.

 

1.

어제는 대한민국이 세계 1위 독일을 꺾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거의 모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불가능이 현실이 되는 것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났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2.

주일예배에서는 빌립보서를 차례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까지 빌립보 교회를 향한 바울의 인사말이었습니다.

 

차디찬 감옥에서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할 만큼 특별한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쓰는 바울의 모습이 눈에 그려졌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교제(코이노니아)가

어느 정도로 깊어야 하는지 새삼 느꼈습니다.

 

바울은 처음 인사말 마지막을

빌립보 교회를 위한 기도로 마무리했습니다.

 

바울의 기도 가운데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빌립보 교회가

지혜와 총명을 동원해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길 기도한 것입니다.

 

여기서 “지극히 선한 것”이라고 번역된 헬라어가 특별합니다.

첫 번째 의미는 “끝까지 끌고 가다(to carry through)”입니다.

그 다음에는 “(일상적이지 않은) 다른 것을 생각해 보다” “좋고 나쁜 것을 구별하다”

“최선의 것으로 가다 (to excel)”라는 뜻이 등장합니다.

 

이것을 두고,

우리 성경에서는 “가장 선한 것” “가장 좋은 것”(새번역),

영어 성경에서는 “특출한 것(what is excellent)”

“가장 좋은 것 (what is best)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저는 설교에서

좋은 것(good), 더 좋은 것(better)이 아니라

“가장 좋은 것(best)”을 분별해 내길 바울이 기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빌립보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대

말씀이 보여주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가

꽤 세밀하고 완벽함을 알 수 있습니다.

 

3.

하나님께서는

대충대충 판단하고 적당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선한 것” “가장 좋은 것”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그것을 추구하길 원하십니다.

 

끝까지 끌고 갈 수 있을 (to carry through)

정도로 가치 있는 것을 뽑아내는 것입니다.

 

참빛 식구들께서 생각은 물론 삶을 대하는 자세가

매우 세밀하고, 신중하며,

좋은 것 가운데서도 가장 좋은 것(best)을

분별해낼 수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여기에 필요한 하늘의 지혜와 총명을 주님께 구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 안에서 지극히 선한 것을 추구하기 원합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빌 1:9-10)

And it is my prayer that your love may abound more and more, with knowledge and all discernment,

so that you may approve what is excellent, and so be pure and blameless for the day of Christ (Phil 1:9-10)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이 주님 주시는 지혜와 총명으로

가장 좋은 것을 분별하고, 찾아내고,

사랑으로 그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목사 드림

(2017. 6. 28이-메일 목회 서신)

월드컵 단상

월드컵 단상

시간이 어찌나 빠르게 흐르는지 어느새 4년이 훌쩍 지났고 러시아에서 또다시 월드컵이 열리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9회 연속 본선에 진출한 여섯 번째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미국 팀은 물론 전통적인 강호 이탈리아와 네덜란드도 본선에 나가지 못하고 예선에서 탈락했으니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것만도 대단한 일입니다.

 

제가 중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대한민국 축구팀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것을 꿈처럼 여겼습니다. 열심히 해서 아시아 예선을 통과해도 호주를 비롯한 다른 대륙의 팀들과 최종전을 벌여야 했고 번번이 본선 진출 길이 막혔습니다. 당시에도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한 선수들이 꽤 있었는데 월드컵 본선 진출이 쉽지 않았습니다. 흑백텔레비전 앞에 숨을 죽이고 앉아서 월드컵 예선전을 시청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으로 시작되는 아나운서의 익숙한 멘트도 귓전에 들리는 듯합니다.

 

그런데 2002년에는 월드컵을 주최하는 국가가 되고 아무리 안방에서 열린 대회였어도 히딩크 감독의 지도하에서 4강에 오르는 기적을 일으켰으니 대한민국의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셈입니다. 그런데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 진출한 대한민국 대표팀은 처음부터 최약체로 평가받았습니다. 본선에 진출한 서른 두 개 팀 가운데 맨 밑에서 두세 팀에 들 정도였습니다. 공은 둥글다는 뻔한 표현(cliché)이 현실이 되어야 16강에 올라갈 실력이었으니 다음을 기약하면서 격려할 뿐입니다.

 

월드컵은 선수들에게 꿈의 무대가 되기도 하지만 가슴 아픈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현재 세계에서 축구를 가장 잘한다는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는 아이슬란드와의 예선 첫 경기에서 페널티킥에 실패했습니다. 메시는 페널티킥을 실축한 후에 “매우 고통스럽다. 내가 페널티킥에 성공했다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었다”고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답니다.

 

“축구의 신”이라고 불리는 천하의 메시이지만 페널티킥에 약한 편입니다. 그는 지난 시즌에 여섯 번 페널티킥을 시도해서 절반만 성공했습니다. 그라운드에서 공을 다루고 슛을 성공시키는 실력은 신기(神技)에 가깝지만, 상대편 골키퍼와 마주 대하는 페널티킥에서는 지나치게 긴장하는 것 같습니다. 하긴, 한 선수가 모든 것에 완벽하면 그것도 싱겁습니다. 한 두 가지 부족한 점이 있어야 동정심도 생기고 더 열심히 응원할 것 같습니다.

 

아르헨티나와 무승부를 기록한 아이슬란드도 흥미로운 팀입니다. 북대서양 한 중간에 떠있는 섬나라 아이슬란드는 전체 인구가 34만 명밖에 되지 않은 국가로 역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습니다. 아이슬란드 팀의 감독은 치과의사 출신입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이 어쩌다가 치과의사가 되었고, 우연치 않은 기회에 축구 감독까지 되었습니다. 우리의 인생길이 어떻게 펼쳐질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을 되새겨줍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메시의 페널티킥을 막아낸 아이슬란드의 골키퍼는 영화감독 출신입니다. 이번 월드컵동안 자신의 조국 아이슬란드에서 방영하는 코카콜라 광고를 연출했답니다. 수비수 가운데 한 명은 소금 공장에서 포장하는 일을 하면서 대표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이슬란드는 말 그대로 축구를 즐기는 선수들로 구성된 팀인데 첫 경기에서 강호 아르헨티나와 무승부를 거뒀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듯합니다.

 

이처럼 개인은 물론 국가의 명예를 걸고 한판 대결을 벌이는 월드컵이기에 보는 이의 마음도 승패에 따라 춤을 춥니다. 멋진 승부가 펼쳐지고, 마지막 순간에 골을 넣어서 승패가 뒤바뀌는 것을 보며 짜릿함을 느낍니다. 운동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죽기 살기로 뛰지만, 끝나면 곧바로 악수를 하고 땀 냄새 가득한 유니폼을 교환하는 선수들이 참 멋집니다. 보란 듯이 예상을 뒤엎고 의외의 승리를 거두는 팀들을 보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열심히 하려다 보니 실수도 하고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수 있는데 의기소침하지 말고 더욱더 힘을 내기 바랍니다. 기회는 다시 찾아올 것입니다. 무엇보다 월드컵이 막바지로 달려갈수록 스포츠만이 선사할 수 있는 감동과 미담이 쏟아지길 기대합니다. (2018년 6월 28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헛발질

좋은 아침입니다.

 

러시아에서 월드컵이 한창입니다.

한국팀은 첫 경기에서 그런대로 선전했지만,

16강에 들라는 국민의 성화에 부응하지 못한 채

내일모레 멕시코와의 2차전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한국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32개 팀 가운데

뒤에서 두세 번째 드는 전력이니 16강에 들려면 기적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선수들이 경기 결과를 떠나서

가슴의 태극 마크가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뛰어서

국민들에게 흐뭇함을 선사하면 좋겠습니다.

 

2.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타는

당연히 포르투갈의 호날두와 아르헨티니아의 메시입니다.

 

포르투갈의 호날두는 첫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하고

두 번째 경기에서도 골을 넣어서 득점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자신감이 지나쳐서 교만해 보일 수 있는 그의 눈빛과

두 손을 아래로 펼치는 골 세레모니를 자주 보게 됩니다.

 

반면에, 아르헨티나의 메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첫 경기에서는 페널티 킥을 놓쳤습니다.

메시의 킥을 막은 아이슬란드의 골키퍼가

영화감독 출신이라니 메시의 자존심이 더 상할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에 있었던 경기에서

메시가 속한 아르헨티나는 3대 0으로 패했습니다.

인터넷 기사를 챙겨보니

메시가 상대편 수비에 꽁꽁 묶였답니다.

 

예선 마지막 경기가 남아있지만

4년 전 브라질에서 결승전까지 팀을 이끌었던 메시로서는

어쩌면 평생에 마지막이 될 월드컵에서

실력 발휘를 못해서 무척 아쉽겠습니다.

마지막 경기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3.

저는 메시가 처음 두 경기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아무리 뛰어난 선수도 혼자서는 경기에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팀이 하나 되었을 때, 없던 힘도 생기도 개별 선수의 실력도 발휘됩니다.

 

다른 하나는, 아무리 뛰어난 선수도 완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난주 설교에서 나눴듯이 99%의 노력이 있어도,

1%의 영감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겸손하게 해주고,

더욱더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듭니다.

 

메시를 보니 누구나 헛발질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실수도 하고 불완전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지나치게 완벽해 지려는 집착을 내려놓고

지금 주어진 일을 즐깁시다.

1%의 영감,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면서…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 1:6)

I am sure of this, that he who began a good work in you will bring it

to completion at the day of Jesus Christ.(Phil 1:6)

 

하나님 아버지,

행여나 실수해도

주님을 바라고 의지하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목사 드림

(2017. 6. 21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