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샌프란과 베이 지역의 날씨는

말 그대로 쾌청입니다.

종종 산책을 하다 보면

우리가 사는 지역 날씨를 저절로 예찬하게 됩니다.

 

적당히 덥고, 적당히 선선하고

(물론 교회 근처는 조금 춥지만)

무엇보다 파란 하늘에 맑은 공기를 마시는 것만으로

자연 치유가 되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가 이렇게 편안히 좋은 날씨를 즐기고 있는 동안

미국 동부 해안으로 허리케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플로렌스라는 3등급의 허리케인입니다.

카테고리 3은 2005년 루이지애나와 미시시피를 강타한

태풍 카트리나와 같은 급입니다.

(원래 4등급으로 시작했는데, 현재 2로 강등되었습니다)

 

시속 120km정도의 강풍과 심하면 40인치의 비를 쏟아냅니다.

나사가 찍은 사진에 “태풍의 눈”이 명확히 나타날 정도입니다.

 

이제 곧 미국 동부 해안에 상륙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태풍 영향권으로 예상되는 지역에 사는

백만 명의 주민에게 대피령을 내렸습니다.

 

육지에 상륙함과 동시에 태풍의 위력이

더욱 약해지길 기도합니다.

 

2.

우리가 쾌청한 날씨를 즐기면서 편안하게 지내는 동안

동부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허리케인을 피해서 대피하고

가슴을 졸이고 있습니다.

 

어디 허리케인뿐일까요?

우리가 어울려 살고 있는 지구 어딘가에서는

가난, 재해, 질병, 전쟁 등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빌4:5)는 말씀을 나눴는데

우리의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상관하지 않고

나만 잘살면 되고

우리 지역만 안전하면 된다는 생각은 정말 금물입니다.

 

나만 힘든 것도 아닙니다.

세상에는 우리보다 힘겹게 사는 분들이 무척 많습니다.

그분들을 생각하고 함께 울 수 있는 것이 관용입니다.

 

3.

동부에 상륙한다는 허리케인으로 인해서

인명이나 재산 등 피해가 최소화되길 바랍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을 생각하고,

물론 우리 참빛 식구들 가운데서 홀로 속앓이를 하고 있을 분이 있을까도 헤아려보면서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베푸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빌4:5)

Let your reasonableness be known to everyone. The Lord is at hand. (Phil 4:5)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생각이 넓어지고

많은 것들을 참아내고 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 9. 13이-메일 목회 서신)

                   

 

다름과 틀림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주 설교에 등장한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바울과 함께 빌립보 교회를 세웠던 여성들인데

무슨 연유인지 둘의 관계가 깨져서 교회에 해를 입힐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바울은 한없이 안타까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의 하나 됨이 중요하기에

빌립보에 보내는 공개편지에서 두 사람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면서

“주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두 여성 지도자들에게 신학적인 문제가 있었던 같지는 않습니다.

바울이 지적한 대로 “다툼과 허영(rivalry and conceit)”으로 인해서

주도권 다툼을 했을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자신의 세력과 영역을 넓히려고 시도하다가

두 여성이 부딪쳤을 가능성이 큽니다.

 

교회에서 중요한 위치에 올라갔지만

유오디아와 순두게 모두 성품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성숙한 신앙 인격을 갖추지 못한 채 지도자가 되었음이 틀림없습니다.

 

2.

성숙한 신앙은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별할 줄 압니다.

 

내가 말한 것만 옳고 상대방은 틀리다는 것은

어리숙하고 초보적인 사고요 신앙입니다.

매사를 자기 관점에서 옳고 그름으로 접근하면

당연히 관계는 깨지게 마련입니다.

 

성숙한 신앙은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바울의 권면대로 “주안에서 같은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주일 설교에서 같은 마음은

1) 상대방에 동의하고,

2) 공감대를 갖고

3) 조화와 일체감을 이루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신앙의 컬러와 각자의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서로 존중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요!

 

3.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이슈가

옳고 그름이 아니라 다름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다름의 문제를 놓고

옳고 그름으로 접근하니 관계가 깨집니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경청하며

주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면

다툼과 분열이 아니라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복잡한 것만큼

다름의 문제도 쉽지 않고 까다롭지만

“주 안에서” 라는 말씀을 기억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실 것입니다.

 

4.

실제로

옳고 그른 것을 다루기는 쉽습니다.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름의 문제를 갖고 동의와 조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애씀, 양보, 경청, 희생 그리고 무엇보다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더욱 값진 일입니다.

 

오늘 하루

다양한 삶의 환경,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

평화를 이루고, 조화를 이루는 참빛 식구들 되시길 바랍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빌4:5)

Let your reasonableness be known to everyone. The Lord is at hand. (Phil 4:5)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이 가는 곳에

그리스도의 평화(샬롬)가 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 9.5이-메일 목회 서신)

슬픔의 노래

좋은 아침입니다.

 

1.

수요예배에서

예레미야 애가(Lamentations)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예레미야 애가는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멸망한 후에

폐허가 된 예루살렘과 성전을 보면서 부른 슬픔의 노래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면서 자초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졌고, 바벨론 군대가 성전까지 들어왔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간 사람들은 이국 땅에서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은 고향에서 칠흑 같은 밤을 살고 있습니다.

 

2.

성경에서 예레미야 애가와 비슷한 문학 형식이

시편의 탄식시입니다.

 

어려움이 계속되는데 하나님의 응답이 없을 때,

하나님을 향한 탄식인 “언제까지니까(How long)”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려움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오, 주님”

 

이렇게 하나님을 부른 후에

자신의 사정을 하나님께 낱낱이 고합니다.

마음을 토해내듯이 드리는 기도입니다.

 

세상의 탄식은 더 깊은 수렁으로 몰고 가지만

하나님 앞에서의 탄식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큰 차이입니다.

 

상황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지만

확신을 갖고 나니 하나님을 향해서 감사와 찬양이 나옵니다.

자신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하나님께로 초대합니다.

 

탄식이 변해서 확신이 되고

감사와 찬송, 그리고 전도로 발전하는 것이

시편 탄식시의 특징입니다.

 

이처럼 성경에서의 탄식은

신세 한탄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깨끗이 정화하는

카타르시스의 기능을 갖습니다.

 

탄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손길과 도움을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탄식이 변해서 기쁨이 되고

똑같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을 돕게 됩니다.

 

3.

예레미야 애가는 5장으로 이뤄져 있는데

가운데 3장이 소망의 말씀입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아침마다 새로우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발견하고 고백합니다.

여기에 애가 또는 탄식의 묘미가 있습니다.

 

누구나 탄식없이 인생길을 걸을 수 없습니다.

생사 고락, 희로애락이 겹쳐서 찾아오는 삶 한가운데

“주여”를 저절로 부르게 됩니다.

 

탄식이 기쁨이 되고,

탄식 속에서 경험하는 주의 은혜가 참빛 식구들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시편 13:5)

But I have trusted in your steadfast love;

my heart shall rejoice in your salvation. (Psalms 13:5)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어떤 상황 속에 있든지

결국에는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 8. 30이-메일 목회 서신)

인내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 광고시간에

교회 앞 나무에 열린 미국 배 사진을 소개했습니다.

두 개가 열렸는데 저에게는 꽤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지난 7년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고 배나무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그냥 정원수인 줄 알고, 때가 되면 가지를 쳐주었습니다.

물론 제 안목이 없어서 배나무를 몰라 본 것은 죄송한 일입니다.

 

그래도 어떻게 7년 동안 한 번도 열매를 맺지 않다가

올해 들어서 쌍둥이 열매를 맺었는지요!

 

올가을 우기가 시작되면

더욱 정성껏 가지치기도 해주고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습니다.

 

물론 우리 교회는 햇볕이 잘 들어오지 않아서

사과며 자두가 많이 열리지 않지만,

배나무로 판명이 났으니 더욱 마음을 주겠습니다.

 

2.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열매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알게 된다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열매가 없으면 도대체 무슨 나무인지 알 수 없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잎만 무성했던 무화과 나무를 꾸짖으시던 장면도 생각났습니다.

시장하신 예수님께서 무화과 나무를 찾아 가셨지만, 잎만 무성한 채 열매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저주로 뿌리까지 말라서 죽는데,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를 가리켰습니다.

 

유대교가 겉으로는 번드르르 했지만,

하나님을 믿는 진정한 신앙이 없고, 열매가 없더니

결국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지난 주일 설교 마지막에 소개했던

씨 뿌리는 비유 속의 좋은 밭도 생각났습니다.

 

좋은 밭은 착하고 좋은 마음을 뜻합니다.

말씀을 듣고 끝까지 지키는 힘을 갖고 있어서

결국 인내로 결실하는 마음과 삶입니다.

 

3.

지난 주일 설교였던 푯대를 향하는 신앙 여정은

쉽게 결판나지 않는 장거리 경주입니다.

 

순간순간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소낙비처럼 경험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꽤 지루하고 끈질긴 경주입니다.

그 경주에서 꼭 필요한 것이 “인내”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확신,

마지막 결승점에서 두 손 벌려 우리를 맞으실 예수님,

달리는 동안에 우리에게 힘이 되시고 인도자가 되시는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며 가지만

7년 만에 열매를 맺은 배나무의 내공과 인내가 필수적입니다.

 

신앙은 물론 삶 속에서도

우리의 믿음이 실제가 되고

“믿음으로 사는 것”

“예수님께서 붙들려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간증할 수 있기 원합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눅8:15)

As for that in the good soil, they are those who, hearing the word, hold it fast in an honest and good heart, and bear fruit with patience. (Luke 8:15)

 

하나님 아버지,

인내로 결실하는 참빛 식구들 되게 하시고

주님 붙잡고 푯대를 향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목사 드림

(2017. 8. 23이-메일 목회 서신)

우토로 마을

좋은 아침입니다.

 

1.

어제는 우리 민족이 일제 치하에서 해방된 광복절이었습니다.

미국에서 바쁘게 살다 보니 무심코 지나치기 쉽지만

적어도 삼일절이나 광복절은 기억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더욱, 우리 샌프란시스코는

한인 이민은 물론 독립운동과 인연이 깊습니다.

1902년 하와이 사탕수수밭의 노동자로 이민 온 한인들이 본토로 진입하는 관문이었고,

1902년 도산 안창호 선생의 샌프란 유학과 한인회 조직,

1908년 장인환/전명운 열사의 일제 앞잡이 스티븐슨 저격 등

한인 이민사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샌프란 도심(St. Mary Square Park)에

위안부 기념비가 세워지기도 했지요.

기회가 되면, 특히 자녀들과

샌프란 한인들의 발자취를 답사해도 뜻 깊을 것 같습니다.

 

2.

1941년 일본 교토 비행장 공사를 위해서 끌려온

한인들이 모여 살던 <우토로>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해방 70년을 맞은 2015년에

MBC 무한도전팀이 방문해서 감동을 주었던 곳입니다.

 

비행장 공사를 위한 인부 2천 명 가운데

1300명이 조선인이었답니다.

이들은 해방 이후에도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현재까지 한인 촌을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공항을 만들기 위해서 언덕을 깎고 웅덩이를 만든 곳에

집단 주거지를 만들었기에 비가 조금만 와도 침수가 됩니다.

일본 정부가 상/하수도 등 사회 제반 시설을 해 주지 않아서

무척 열악한 환경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닛산 자동차 그룹이 대지를 매입해서

수십년 터전에서 쫓겨나게 되었는데,

2007년 한국의 시민단체와 정부의 지원으로 재건축이 기능해졌답니다.

 

일본 한가운데서 “섬”처럼 살아가면서도

이들의 구호는 “에루화 좋다”입니다.

한국학교를 세워서 우리 말과 문화를 보존하는 등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한국인으로 살아온 대표적인 공동체입니다.

 

*우토로 마을에 대한 영상은 많습니다. 아래는 한인 3세가 안내하는 방송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X2Qezv3ucI

 

3.

샌프란에 처음 정착한 한인들이나

일본 토쿄 우토로 마을의 한인들은

떠나온 조국을 마음에 그리면서 혹독한 세월을 견뎠을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갑니다.

견디는 것이 힘이요 믿음입니다.

살아남고, 우리가 있는 현장이 간증이 되는 것이 축복입니다.

 

오랜만에 초등학교 시절 불렀던

광복절 노래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2절이 참 좋습니다

 

꿈엔들 잊을 건가  지난 일을 잊을 건가

다같이 복을 심어 잘 가꿔 길러 하늘 닿게

세계에 보람될 거룩한 빛 예서 나리니

힘써 힘써 나가세 힘써 힘써 나가세

 

하나님 아버지,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하나가 되고 세계를 비추는 빛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목사 드림

(2017. 8. 16이-메일 목회 서신)

늘 그리운 곳

 

좋은 아침입니다.

 

1.

점심을 먹고 거실 바닥에 누워 있으니

둘째가 “아빠는 바닥이 좋아?”라고 묻습니다.

 

저는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서 셀폰을 확인하거나 책을 볼 때가 많은데

둘째가 보기에 불편하게 보였는지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우라는 것입니다.

 

“응. 사실 아빠는 바닥에 누워서 눈을 감고 있으면

옛날 할머니 집 마루가 생각나거든.

여름이 되면 시골집 마루에 누워서

책도 보고, 생각도 하고, 낮잠도 자고 그랬어.

문을 열어놓으면 바람이 솔솔 불고 너무 시원했지.”

둘째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우리 집 거실에 누워서 눈을 감고 있으면

30-40년 전 시골집 마루에 누운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합니다.

그 옛날 시원한 대청마루를 생각만 해도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2.

지난 주일에는 우리 교회가

샌 부르노 공원으로 야외 예배를 다녀왔습니다.

세 번째 같은 장소로 소풍을 갔는데 갈 때마다 참 좋습니다.

 

한적해서 마음까지 편안해지고

쉼터가 있어서 햇볕도 막을 수 있고

고기를 굽는 그릴도 넓고 커서 일하기 편하고

우리 교회 야외 예배 장소로 안성맞춤입니다.

 

다음 야외 예배 때는 또 어떤 분들이 함께 하실지,

우리 권사님들께서 모두 건강하시고

아이들은 부쩍 크고, 교회도 나름 더 자라 있기를 바라면서

2년 후의 야외 예배를 기약했습니다.

 

그렇게 야외 예배를 마치고

마지막 정리를 위해서 교회에 왔는데

교회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줍니다.

매 주일 오던 참빛 식구들이 교회에 오지 않았으니

우리 교회 “건물”이 섭섭했나 봅니다.

 

다음 주일 교회에서 예배할 것이 기대되었습니다.

예배는 성전에서 드리는 것이 더 은혜로운 법이지요!

 

3.

우리 모두에게는

추억에 잠기게 하고

앞일을 기대하게 하며

언제나 가고 싶고 그리운 “장소”가 있습니다.

 

그곳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곳에 가면 힘을 얻습니다.

그곳에 가면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만납니다.

 

누구에게나 그런 장소가 있게 마련인데

참빛 식구들께 우리 교회가 바로 “그 장소”가 되면 좋겠습니다.

힘든 세상살이의 피난처가 되고

새 힘을 얻는 재충전의 장소가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예배하고

좋은 분들이 함께 하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기로

더불어 결심하고 격려하는 공동체를 세워가기 원합니다.

 

(물론,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은 언제나 sweet home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와 가정이 함께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음 주일은 예쁜 우리 성전에서

다 함께 하나님을 예배합시다.

 

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 (시133:1)

Behold, how good and pleasant it is when brothers dwell in unity! (Ps 133:1)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선하고 아름다운 공동체로 더욱더 자라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목사 드림

(2017. 8. 9이-메일 목회 서신)

마음의 교만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에는

빌립보 교회에 침투해서 교회를 어지럽혔던

유대인 할례주의자들에 대해서 배웠습니다(빌 3:2).

 

바울은 이들을

“개” “행악하는 자들” “몸을 상해하는 자들”이라고 불렀습니다.

 

개라는 비유로 시작해서

그들의 행위가 악함을 알려주었고

마지막으로 그들의 악한 행위가 할례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들은 구약의 율법을 꼭 붙들고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은 것과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았다고 우쭐대던

유대교 배경의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할례와 구약의 율법을 놓지 못하고

그것을 손에 쥐고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들을

“불쌍한 이들” “가난한 사람들(에비오니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기독교 전통에서 사라졌습니다.

 

2.

이 사람들이 할례를 비롯한

구약의 율법을 포기하지 못한 것은

그들 안에 있던 “교만”이었습니다.

 

자신들만이 정통 하나님 백성이라는 교만,

할례를 하지 않은 이방인들을 무시하는 교만,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할례를 포기하지 못한 채 기득권으로 여기던 교만이

이들을 무너뜨렸습니다. 아니 스스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수요예배에서 배우는

예레미야서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던

이방 민족들의 교만도 소개합니다.

 

이집트, 모압, 암몬, 다메섹, 바벨론과 같은

이스라엘을 둘러싼 열강들은

자신들의 국력, 산업, 역사를 믿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민족에게 어려운 일이 닥치면

그것을 고소하게 생각하면서 그 틈을 타서 자신의 영토를 넓혔습니다.

국가 간의 전쟁으로 합리화될 수 있지만

결국 자신의 국력을 앞세운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 열강과 이스라엘을 둘러쌓고 있던

크고 작은 국가들을 차례로 무너뜨리십니다.

재판하듯이 죄목을 하나하나 거론하시면서

결국 “유죄판결”을 내리십니다.

 

3.

하나님 백성들이 교만을 해결하지 못하면

스스로 무너지게 됨을

빌립보 교회를 힘들게 한 개들과 같은 악한 사람들을 통해서 배웁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이방 민족의 교만도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고, 결국 심판하십니다.

 

우리 역시 신앙 가운데 교만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세상일에서도 교만할 수 있고,

마음속의 교만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 겸손하기 원합니다.

함께 하는 이웃들을 배려하기 원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교만은 물론

마음의 교만도 통제하기 원합니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2:12)

As you have always obeyed, work out your own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Phil 2:12)

 

하나님 아버지,

겸손이 우리의 인격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목사 드림

(2017. 8. 2이-메일 목회 서신)

다 잘 될 거예요

좋은 아침입니다.

 

1.

우리가 자주 쓰는 말 가운데

“다 잘 될 거예요”가 있습니다.

 

누군가 어려운 일을 당했거나

삶의 고민이 깊어지고

생각처럼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잘 될 거예요”라는 말을 건넵니다.

 

참 좋은 표현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격려하는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잘 될 거예요”라는 말에 진심(眞心)이 실리지 않으면

이 표현보다 건성인 말이 세상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어려움은 매우 구체적입니다.

삶의 고민은 특별한 문제를 갖고 씨름하고 있을 때입니다.

잘 풀리지 않는 일도 특별한 경우입니다.

“잘 될 거예요”는 이 모든 것을 충분히 이해했을 때 사용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상황을 적당히 듣고

건성으로 “다 잘 될 거예요”라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실제로 모든 일이 잘 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 잘 될 거라니

책임지지 못할 말을 무심코

그리고 인사치레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2.

지난 주일에 살펴본 빌립보서 말씀에서

사도바울은 자신의 동역자 디모데를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빌2:20)

For I have no one like him, who will be genuinely concerned for your welfare.(Phil 2:20)

 

“진실히 (genuinely)”라는 표현에 주목해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라면  빌립보 교회를 위해서 진심으로 염려하고,

그들을 위해서 진심어린 조언과 안내를 해 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디모데 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저는 이런 디모데의 성품을

“공감 능력”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3.

예수님께서도 우리와 똑같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성육신(incarnation)입니다. 우리가 겪는 생사고락을 모두 겪으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우리와 최고로 공감하시고

우리를 충분히 이해하시고 도우실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물론 디모데가

빌립보 교회를 진심으로 생각할 수 있었던 것도

그리스도의 마음과 삶을 따르고 닮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다 잘 될 거예요”라는 말에 진심을 실어야 합니다.

인사치레로 하기에는 너무 엄중한 표현입니다.

 

어떤 때는 “다 잘 될 거예요”라는 말 대신에

손을 꼭 잡아주고,

상대방을 위해서 마음으로 기도해 주는 것이

훨씬 좋은 공감일 수 있습니다.

 

가까운 가족, 교회 식구들, 이웃들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공감하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그가[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있느니라 (2:18)

For because he himself has suffered when tempted,

he is able to help those who are being tempted. (Heb 2:18)

 

하나님 아버지,

이웃을 향한 우리의 마음, 태도, 말과 행동이

예수님을 꼭 닮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목사 드림

(2017. 7. 26이-메일 목회 서신)

예루살렘에서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새벽기도회에서는

마가복음 후반부를 읽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예루살렘에서의 일주일 사역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예언대로

누구도 탄 적이 없는 나귀 새끼를 타고

왕과 메시아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사람들도 종려나무를 흔들며 “호산나(이제 구원하소서)”를 외쳤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을 내려다보면서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실 만큼

예수님의 마음은 편치 않으셨습니다.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고, 제자들에게 마지막에 될 일을 알려주시고

자신을 죽이려는 예루살렘 지도자들을 지혜롭게 대처하시고,

마지막 유월절 만찬에서 성만찬을 제정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게 될 것과

베드로가 그 밤에 세 번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것도 일러주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하면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밤에 잡히셔서 다음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2.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숨가쁜 일주일을 보내시면서

자신의 3년 공생애를 마무리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매우 차분하셨습니다.

특히 오늘 읽은 마가복음 12장 속의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이 삼일 앞둔 분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평소와 같은 일상을 살고 계심을 발견합니다.

그러니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코앞에 닥쳤는데

차분하게 자신의 십자가 길을 준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저는 예수님의 부르심(소명, Calling)에서 찾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사셨습니다.

자신의 처지가 어떠하든지 그 길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면

차분하게 그 길을 가셨습니다.

 

물론 겟세마네 기도처럼 십자가 죽음 앞에서 고뇌하셨지만,

결국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복종하셨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3.

우리의 삶이 때로는

폭풍 한가운데 떠 있는 조각배처럼 요동칩니다.

어려움이 닥치거나, 자신에게 손해되는 상황이 펼쳐지면

속이 부글부글 끓고 평정심을 잃곤 합니다.

요즘 살펴보는 빌립보서 말씀대로 하면 여전히 “나 중심”이라는 표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셨습니다.

가정으로, 삶의 현장으로,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입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일상을 살아가길 원합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오늘 하루도 흔들리지 않는 확신,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평안을 누리기 원합니다.

 

매일의 일상이 하나님의 부르심임을 믿고

그 길을 걷기 원합니다.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2:13)

for it is God who works in you, both to will and to work for his good pleasure. (Phil 2:13)

 

하나님 아버지,

우리 삶의 환경이 어떠하든지

흔들리지 않는 일상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목사 드림

(2017. 7. 19이-메일 목회 서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좋은 아침입니다.

 

1.

염려해주시고 기도해 주신 덕분에

저는 많이 좋아져서 물론 조심하지만

이번 주는 새벽기도회도 잘-하고 있습니다.

역시 새벽에 기도하니 참 좋습니다.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지난 주일에는 빌립보서 1장 27- 2장 11절을 살펴보면서

두 구절만 마음에 새기길 제안했습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1:27)

Only let your manner of life be worthy of the gospel of Christ (Phil 1:27)

 

너희 안에 마음을 품으라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2:5)

Have this mind among yourselves, which is yours in Christ Jesus (Phil 2:5)

 

사실 이 두 구절은 우리 모두의 평생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2.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답게 생활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품격에 맞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살펴본 빌립보서 말씀을 통해서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습니다.

 

바울의 기도 (1:9-11) 속에서

1) 선한 것을 분별하는 사랑이 더욱 충만하고

2) 진실하고 허물없이 의의 열매를 풍성히 맺고

 

바울의 삶을 통해서(1:12-26)

3) 삶의 축과 매사의 기준을 자신에서 그리스도로 옮기고

4) 죽든지 살든지 그 몸(삶)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며

 

빌립보 교회를 향한 권면을 통해서 (1:27-2:4)

5) 한마음과 한 뜻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방해하는 자들과 담대히 맞서고

6) 은혜와 믿음과 함께 고난도 기뻐하며

7) 교회 안에서도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고

8) 다툼이나 허영이 아니라 겸손으로 서로를 높이고

9) 자기일 뿐만 아니라 남의 일까지 돌보는 것입니다.

이상의 권면은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원리들(principles)입니다.

 

이제 우리 각자가 해야 할 일은,

빌립보서를 통해서 배운 원리를

각자의 삶에 적용(application)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똑같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맞는 복음에 합당한 삶을 찾아내고

다양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입니다.

 

같은 말씀을 읽고, 공부하고, 듣지만

그 적용은 우리 각자의 다양한 삶만큼 다채로울 것입니다.

말씀이 각자의 삶 속에서 풍성한 열매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3.

이 모든 것을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여기서 마음은 “태도(attitude)” 그리고  “삶의 모습(Life style)”입니다.

마음가짐, 삶을 대하는 자세/가치관,

그리고 구체적인 삶이 예수님을 닮으라는 권면입니다.

 

복음서를 많이 읽고,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을 깊이 생각하고,

예수님을 우리 삶에 초청하며

우리 삶을 예수님께 대입하면서 예수님을 닮아 가야겠습니다.

 

“예수님”을 마음과 생각, 그리고 삶에 달고 사는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멋진 삶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값지게 만드는 길입니다.

 

참빛 식구들 모두 이 길로 나가시길 기도하며 돕겠습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1:27)

Only let your manner of life be worthy of the gospel of Christ (Phil 1:27)

너희 안에 마음을 품으라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2:5)

Have this mind among yourselves, which is yours in Christ Jesus (Phil 2:5)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이웃과 세상을 대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목사 드림

(2017. 7. 12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