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좋은 아침입니다.

 

1.

2주 전 수요 예배를 마치고

권사님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안내 데스크에 서 있으면서

자연스레 거울을 보게 되었습니다.

 

근래에 머리숱이 많이 적어졌습니다.

가운데 머리가 훤합니다.

거울을 보면서

머리를 이리저리 만져보았지만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눈치가 빠르신 한 권사님께서

희소식을 전해 주십니다:

“목사님, 염려하지 마세요.

한국의 부분 가발이 아주 좋으니 그거 사용하시면 돼요.”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아- 부분 가발이 있었구나”

 

이 지점에서 고민이 생겼습니다.

 

아버님을 닮은 것 같으니 머리가 많이 빠질 텐데

그냥 이대로 갈 것인가?

아니면

권사님께서 알려주신 부분 가발을 사용해서

외모를 치장할 것인가?

 

이 모습 그대로 가는 것

즉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원래 제 생각이었는데

“부분 가발”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외모에 변화를 주고 싶은 충동(?)이 생긴 것입니다.

 

아무래도 젊어 보이면,

생동감 있게 미래를 맞이할 것 같았습니다.

 

물론, 아직은 제 머리 상태가 괜찮습니다.^^

거기에 부분 가발이라는 든든함까지 있으니

머리숱이 없어져도 안심이 됩니다.

 

2.

지난주에는 시편 132편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전에 함께 하셨던 은혜 (하나님의 법궤)를 찾아 나서는 것,

과거에 만났던 하나님을 현재에 모심으로 확신과 자신감을 얻는 것

앞길을 인도해 주시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고,

미래로 이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앞을 향하는 소망의 종교입니다.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면서

동시에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합니다.

 

과거와 현재는 물론

우리 앞에 펼쳐질 미래가 중요합니다.

 

미래는

무한한 상상력이 발휘되는 가능성이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소망이며 기대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과거를 다시 발견하고 현재를 살아갑니다.

 

하나님 앞에서 꿈을 꾸시는

참빛 식구들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참빛 식구들 한 분 한 분께

주님의 꿈을 보여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어떤 일이 생겨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든든한 배경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 여정을

끝없이 이어주실 줄 믿습니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시편139편 9-10절)

If I take the wings of the morning and dwell in the uttermost parts of the sea, even there your hand shall lead me, and your right hand shall hold me.(Psalms 139:9-10)

 

하나님 아버지

주님 안에서 꿈을 꾸는 참빛 식구들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3.16 이-메일 목회 서신)

샐러드 보울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세상이 많이 뒤숭숭합니다.

중서부를 비롯한 백인들이 대다수인 지역에서는

“미국을 떠나라(get out of America)”는 구호와 함께

백인우월주의가 예상보다 강하게 퍼지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말에 워싱턴주 씨애틀에서

인도인에게 총격을 가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캔사스에서도, 오하이오에서도

미국을 떠나라는 식의 혐오 범죄가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지난 달에는

LA에서 한국인 할머니 한 분이

백인 여성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2.

이미 40여년 가까이 흘렀지만

학창시절 저를 가르치던 선생님들은

미국을 “멜팅팟(melting pot)”이라고 소개하셨습니다.

 

각국에서 온 이민자들이

“아메리카”라는 그릇에 녹아 들어서

하나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는 이론이었습니다.

 

1900년 초부터 소개된 개념이니

백인 중심의 유럽 이민자들이 대다수였던

이민자의 나라 미국을 가리켰을 것입니다.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이민자들이 늘어나면서

“멜팅팟”보다 “샐러드 보울(salad bowl)”이라는 용어가 등장했습니다.

 

완전히 녹아 내려서 하나가 된 미국이 아니라

샐러드 내용물처럼

각각의 문화, 인종, 관습이 그대로 존재하면서

미국이라는 그릇 속에 어우러진 모습입니다.

 

우리 말 만화경을 뜻하는

영어 표현 kaleidoscope(칼레이도스코프)도 사용되는데

이 단어는 그리스어 “아름답다(beautiful)”에 “모양(form)”을 합친 말입니다.

다른 배경을 가진 각각의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만화경으로 들여다보는 세상과 같다는 것이지요.

 

3.

미국 뿐이 아닙니다.

전 세계가 지구촌으로 어울리려는 노력보다

자기 민족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고 멸시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습니다.

 

“혐오 범죄”라는 말이 회자되는 것 자체가 안타깝습니다.

그냥 미워서,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아서 폭언을 가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심지어 총격을 가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세상은

어린아이가 독사 굴에 손을 넣고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살고, 표범과 염소와 어린 아이가 함께 눕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뜯어 먹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아니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로서 더욱 경계하고, 안타까워할 일입니다.

 

멜팅팟처럼 모두가 하나로 녹아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샐러드 보울처럼 각자 제 맛을 내면서

한 공간에 어울려 사는 것은 가능하겠지요.

 

사람들이 넉넉한 마음으로 서로를 받아주고

각자의 색깔이 모여서 아름다운 모자이크를 만들고

다 함께 어울려 사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길 기도합니다.

 

오늘도 참빛 식구들께서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됨과 조화로움을 이루는

화평케 하는 자(peace-maker)로 사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고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사 11:6-11 중에서)

They shall not hurt or destroy in all my holy mountain;

for the earth shall be full of the knowledge of the Lord as the waters cover the sea.(Isa 11:9)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주님 원하시는 평화의 동산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3.9 이-메일 목회 서신)

네 오른손을 잡고

좋은 아침입니다.

 

1.

저는 종종 성경을

눈에 보이듯이 상상력을 동원해서 읽기를 부탁합니다.

 

요즘처럼

모든 것이 선명하고 움직이는 동작으로 표현되는 시대에

옛것을 고집하면서

멈춰있는 그것도 흑백 영상으로 성경을 대하면

성경 읽기가 점점 지루해집니다.

 

어떤 경우는

성경 자체가 우리에게 시각적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말씀이나 성경 스토리가 눈 앞에 펼쳐지는 경험입니다.

 

골리앗과 싸우러 나가는 다윗의 모습,

예수님께서 소경의 눈을 띄게 하는 사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손과 옆구리의 못자국와 창자국을 보여주시는 장면은

읽기만 해도 우리 역시 현장에 있는 듯합니다.

 

2.

이번 주 새벽기도회에서는

이사야서의 두 번째 부분인

40장 이하를 읽고 있습니다.

 

이사야의 두 번째 부분은

바벨론 포로기에 있거나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제2이사야라고 불리는

40장 이하로 넘어가면

익숙하고 은혜로운 말씀이 펼쳐집니다.

 

나라를 잃고 남의 나라에서 포로로 살고 있습니다.

낙심과 절망, 무력함 속에 살았을 것입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버리고 그 땅의 우상을 섬깁니다.

 

이사야의 두 번째 파트는

포로기에

끝까지 남아서 신앙을 지킨 하나님 백성을 향한 말씀입니다.

 

그중에 엊그제 읽은 이사야 42장 13절이

계속 눈앞에서 펼쳐집니다: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오른손을 붙잡고 말씀하십니다.

뜬금없이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무 영감없이 주시는 말씀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오른손을 꼭 붙들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Fear not, I am the one who helps you.

 

3.

사순절 기간입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서고

동시에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오른손을 붙들고 계심을

삶 속에서 눈에 보이듯이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의 손을 붙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마음 깊은 곳에서 듣는 것입니다.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이사야 41:13)

For I, the Lord your God, hold your right hand; it is I who say to you, “Fear not,

I am the one who helps you.”(Isa 41;13)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참빛 식구들의 손을 잡고

주님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힘을 더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3.2 이-메일 목회 서신)

                   

맞받아침

좋은 아침입니다.

 

1.

한때는

권투가 국민 스포츠일 때가 있었습니다.

타이틀전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전에 오픈 경기들도 꽤 재미있었습니다.

 

챔피언을 꿈꾸는 무명 선수들이 4회전 경기를 하는데

처음부터 난타전을 벌입니다.

성격이 급한 선수들은

무모하게 밀고 들어가다가

카운터 블로라는

맞받아치기 주먹을 맞고 그 자리에 쓰러집니다.

 

맞받아치기의 위력은

앞으로 밀고 오는 상대방의 힘까지 주먹에 실리면서

큰 위력을 발휘합니다.

 

2.

요즘 새벽기도회에서 읽는

이사야서 36-39장은

남유다의 히스기야 왕에 대한 말씀입니다.

 

히스기야는

이스라엘 왕 중에서 다윗과 요시아처럼

하나님을 잘 믿은 왕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을 넘어뜨린 앗시리아의 산헤립 왕이

예루살렘에 쳐들어와서

이스라엘 말을 할 줄 아는 랍사게라는 신하를 시켜서

항복하면 살려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무너뜨리겠다고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히스기야왕과

유다 입장에서는 큰일입니다.

독 안에 든 쥐입니다. 항복해야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앗시리아라는 당시의 제국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그때 히스기야는

회개하는 마음으로 옷을 찢고 베옷을 입고 성전에 올라갑니다.

이사야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앗시리아를 물리쳐 주실 것이니

물러서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국 앗시리아도 하나님 앞에서는 별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어려운 순간에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 말씀을 믿고

앗시리아에게 무릎 꿇지 않고 꿋꿋하게 견뎠습니다.

 

민족의 위기를

믿음과 기도로 맞받아친 것입니다.

 

3.

우리 역시

밀려오는 인생의 파도를 맞받아칠 필요가 있습니다.

 

골리앗과 마주 대하며 싸웠던 다윗처럼

앗시리아의 회유와 위협 앞에서

기도함으로 주님의 도움을 구했던 히스기야 왕처럼

상황을 맞닥뜨리는 믿음과 용기를 장착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멋지고 힘있게 사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가 기억할 것은

그리스도인의 맞받아치는 힘이

기도에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올해는 참빛식구들께서

맞부딪쳐야 할 일들이 여느 때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

 

어르신들의 건강, 젊은이들의 앞길, 어지러운 세상 –

우리에게 닥치는 어려움을 믿음으로 담대히 맞닥뜨리고,

주님 주시는 힘으로 KO승을 거두길 기대합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사

천하만국이 주만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 (이사야 37장 20절)

So now, O Lord our God, save us from his hand,

that all the kingdoms of the earth may know that you alone are the Lord.” (Isaiah 37:20)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이

각자의 인생길을 담대하게 마주치고

이겨낼 힘과 용기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2.23이-메일 목회 서신)

네가 어디를 가든지

좋은 아침입니다.

 

1.

어제부터 수요예배에서는

구약성경 예레미야서 읽기를 시작했습니다.

52장이나 되어서 두 번 또는 세 번에 나눠서 공부할 계획입니다.

 

예레미야는

40년 가까이 예언자로 활동하면서

좌충우돌 당시의 대세를 거스르면서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예레미야 당시 이스라엘은

남쪽의 이집트와 북쪽의 바벨론 사이에 끼어서

갈팡질팡하고 있었습니다.

불확실성이 잔뜩 드리운 시대였습니다.

 

난세에 예언자로 부름받은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 제국을 의지하며,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백성들을 향해서

하루속히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애타게 외쳤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으면

조만간 민족이 멸망하게 될 것을 직감했기에

더욱 안타까웠고 다급했습니다.

 

그렇지만

백성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고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멸망했습니다.

 

2.

요즘 우리에게도 불확실성의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쏟아지는 뉴스를 보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매우 어지러움을 직감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언제나 불확실성을 안고 삽니다.

한 치 앞을 알지 못한 채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길입니다.

 

물론, 우리의 인생길이 불확실하니

더욱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하고

주님을 의지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모든 일이 술술 풀리고

결말을 확실히 알고 있다면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어려울 때처럼 하나님을 찾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불확실함 때문에

이따금 밀려오는 염려와 두려움이 마음속에 있습니다.

 

3.

다음과 같은 가사의 찬양이 생각납니다.

 

“아침 안개 눈앞 가리듯 나의 약한 믿음 의심 쌓일 때

부드럽게 다가온 주의 음성

아무것도 염려하지 마라.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외로움과 방황 속에서 주님 앞에 나아갈 때에

위로하시는 주님 나를 도우사

상한 나의 마음 감싸 주시네”

https://www.youtube.com/watch?v=n1sRT_XNzow

 

오늘은 참빛 식구들과

이 찬양을 함께 부르면서

하루를 맞고 싶습니다.

 

우리 다같이 힘냅시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여호수아 1장 9절)

Be strong and courageous. Do not be frightened, and do not be dismayed,

for the Lord your God is with you wherever you go. (Joshua 1:9)

 

하나님 아버지

불확실한 시대를 믿음으로 살기 원하는

참빛 식구들과 늘 함께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2.16 이-메일 목회 서신)

보배

좋은 아침입니다.

 

1.

성경에 나오는 표현 가운데

마음에 깊이 다가오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보배(treasure)” 입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님과 예수님의 복음을

보배로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7)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로 된 것이니라 (베드로전서1:19)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이신 예수께 나아가 (베드로전서 2:4)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베드로전서 2:6-7)

 

믿음과 하나님의 약속도 보배에 비유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베드로후서 1:1)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베드로후서 1:4)

 

이처럼 성경에서 보배라고 하면,

예수님,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약속을 가리킵니다.

얼마나 보배로우면 이런 표현을 사용했을까요!

 

과연 우리가 믿는 예수님 그리고 믿음을

성경대로 보배롭게 여기는지 돌아봅니다.

 

2.

새벽기도회에서 읽는

이사야서에서도 “보배”라는 표현을 만났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지극히 존귀하시니 그는 높은 곳에 거하심이요 정의와 공의를 시온에 충만하게 하심이라

네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 (이사야33:5-6)

 

이사야서에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우리에게 보배가 된다고 알려줍니다.

 

히브리어의 보배라는 단어 속에는

“보물을 저장한 창고”라는 뜻도 있으니

하나님을 믿는 것이 곧 보배요 보물창고라는 의미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

얼마나 아름답고 은혜가 되는 말씀인지요!

 

3.

그 옛날 많은 사람이 금을 찾아서

캘리포니아로 왔듯이

요즘 사람들도 금과 비견되는 보물을 찾아다닙니다.

물질, 명예, 권력, 인맥, 쾌락, 정보 등등

각자가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사야 말씀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고,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보배라고 깨우쳐줍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보배가 된다는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께 집중하기 원합니다.

 

늘 말씀드리듯이

마음과 생각 그리고 삶이 예수님을 닮고

참빛 식구들에게서 예수님의 모습과 향기가 나기를 기대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

The fear of God, it is his treasure.

 

하나님 아버지

보배로우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보배로운 믿음과 약속 가운데 거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우리의 보배로 삼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2.9 이-메일 목회 서신)

                   

신뢰 2

좋은 아침입니다.

 

1.

작년만 해도 비를 무척 기다렸는데

올해는 유독 비가 많이 내립니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다음 주 목요일까지

일주일 내내 비 소식입니다.

 

날씨가 습하고 쌀쌀하니

독감도 유행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감기로 인해서

예배에 못 오신 권사님들이계셨는데

참빛 식구들 모두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2.

세상이 매우 뒤숭숭합니다.

미국에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매일같이 새로운 일들이 발생하고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다가

세계에서 따돌림은 물론 경제적으로 크게 후퇴할 수 있겠습니다.

 

무엇보다

체류 신분을 놓고,

앞으로 미국 정부가 어떤 조치를 내릴지 모르니

많은 분들이 염려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 뜻인데

자꾸 혼자만 잘살겠다고 고집부리고

차 떼고 포 떼고 독불장군식으로 정치하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우리네 서민들에게 닥칠 것이기에 더욱 안타깝습니다.

 

처음부터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그 파장이 크고

여기저기서 반-트럼프 시위까지 발생하면서

우리가 사는 미국도 꽤 뒤숭숭합니다.

 

이런 시절에

우리는 더욱 정신을 차리고

서로 도울 수 있는 길을 모색하면서

어려운 상황을 견뎌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사는 세상이

결코 유토피아가 아니라

여러 가지 이해관계와 악한 동기들이 만연한

불완전한 세상임을 인정하고 현실을 직시할 필요도 있습니다.

 

3.

요즘 새벽기도회에서

이사야서를 읽고 있습니다.

새벽에 예언서를 읽기가 쉽지 않지만

가능한 한 은혜롭게 읽고 묵상한 것을 나누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24-27장은

요한계시록의 예고편이라고 할 정도로

세상의 악과 선이 명확히 갈리는 “그 날”에 될 일을 알려줍니다.

 

악한 세력들이 무너집니다.

바다의 용들이 패하고

세상의 제국들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끝까지 남아서

주의 뜻을 행한 백성들이

눈물을 씻겨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게 됩니다.

 

어지럽고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에게 힘을 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4.

지난 주일에 함께 나눴듯이

믿음에 뿌리를 내리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서로 사랑하면서 현재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위로하고, 격려하고, 믿어주고 참아주고

서로에게 친절히 행하면서

손에 손을 붙잡고 과도기를 잘 지나가야 합니다.

 

힘들수록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를 향한 믿음이

깊이 뿌리내려야 합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서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이사야 26:3)

You keep him in perfect peace whose mind is stayed on you,

because he trusts in you. (Isaiah 26:3)

 

하나님 아버지

믿음과 소망이 우리 안에 굳건히 자리 잡고

어려울수록 서로 사랑하면서

견디고 능히 이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2.2이-메일 목회 서신)

구약성경 레위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올해는 성경통독반에
열 명이 넘는 분들이 등록해 주셨습니다.

 

성경 통독이 쉽지는 않습니다.
매주 주보에 나가는 일주일 분량을 읽기 위해서
하루에 3장만 읽으면 되지만 이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혼자 성경 통독을 하다 보면 중간에 포기하기 쉽습니다.

 

그래도 팀을 이루어서 함께 읽어나가면
끝까지 완주할 가능성이 훨씬 커집니다.

 

성경통독에서 첫 번째로 만나는 언덕 베기가
바로 구약성경의 레위기입니다.

 

출애굽기 후반부인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십계명을 받고
성막을 짓는 말씀부터 조금씩 지루해다가
레위기에 이르면 절정에 이릅니다.

 

“레위기는 슬쩍 넘어가면 안 될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2.
그렇지만 레위기도 엄연한 하나님 말씀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조금 무심해서 그렇지
레위기에 대해서 조금만 관심을 갖고
차근차근 읽으면 매우 흥미로운 말씀입니다.

 

레위기의 전반부는
희생 제사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복잡한 제사법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게 됩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레위기의 복잡한 제사를 폐하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해 주신
예수님의 은혜가 더욱 깊이 다가옵니다.

 

레위기 후반부는
하나님 백성의 거룩한 삶에 대한 교훈입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레19:2)
You shall be holy, for I the LORD your God am holy.(Lev 19:2)

 

레위기 17-27장을 “성결법전”이라고 부르는데
거룩한 하나님 백성이 지켜야 할 규범들이 자세히 등장합니다.

 

물론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는 조항들도 있지만
대부분 하나님 백성으로 몸과 마음을 거룩하게 유지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공평과 사랑으로 공동체가 세워지는 데 필요한 법규들입니다.

 

그 의미와 원리를 올바로 찾아내면
세상을 향한 하나님 마음에 감동받고
얼마든지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는 말씀들입니다.

 

예전에 준비해 놓았던
<레위기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글을 첨부했는데
관심있으신 분들은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3.
거룩은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구별된 삶입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 백성임을 나타내는 표지(mark)입니다.

 

새해의 첫 달을 마무리하면서
우리의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을 다시 한번 돌아보기 원합니다.

 

하나님 백성으로 구별되고
예수님의 향기가 나고
성령의 인도하심과 능력으로 살고 있는 지 점검하기 원합니다.

 

멋진 주의 백성으로
하나님과 세상으로 나가는 참빛 식구들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를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레위기 20:26)
You shall be holy to me, for I the Lord am holy and have separated you from the peoples, that you should be mine. (Leviticus 20:26)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삶이 하나님 백성으로 구별되고
날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1.26이-메일 목회 서신)

감동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는

오바마 대통령의 고별 연설이 있었습니다.

 

그는 워낙 연설을 잘하는 사람이어서

8년 전 대통령이 될 때부터

준비된 연설이든지, 즉흥 연설이든지

국민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고별 연설에서도

가족을 언급할 때는 눈물을 흘리면서

진정성 있는 연설로 지난 8년을 회고했습니다.

 

처음 대통령이 될 때 그의 캐치프레이즈였던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Yes, we can)” 라는 구호를 외치고

“우리는 해 냈습니다(Yes, we did)”로

고별 연설을 마무리했습니다.

 

 

2.

제가 미국 대통령 연설을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때 성문종합영어에서 만났던

아브라함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문이었습니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자세히 읽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정철이라는 영어교재에서

지미 카터 대통령의 연설을 만났습니다.

남부 사투리가 섞여 있다고 하지만

카터 대통령의 연설을 읽으면서

영어 공부는 물론 미국 정치에 대해서 슬며시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그의 연설을 듣게 될 텐데

막말이 아니라 정선되고 진정성 있는 연설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3.

수요예배에서 살펴보는 사도행전 후반부에

사도 바울의 연설이 다섯 번 나옵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유대 군중들 앞에서 히브리어로,

자신을 심문하는 천부장과 벨릭스와 베스도 총독,

그리고 마지막에 아그립바왕 앞에서 행한 연설입니다.

물론 아테네에서 행한 연설도 꽤 유명합니다.

 

바울은 단순히 연설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특히, 유대 군중 앞에서 연설할 때는

바울 자신이 하나님을 믿기 전의 상태,

하나님을 만나고 믿게 된 과정

그리고 하나님을 믿은 이후 그의 삶과 사명에 대해서

담대하고 분명하게 전했습니다.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바울은

기독교를 핍박하는데 열심이었습니다.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바울을 강권적인 역사로 부르신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바울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뀝니다.

이름도 사울에서 바울로 바뀌었고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소아시아와 유럽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간증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담대하게 선포했습니다.

 

4.

우리도 새해를 살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들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연설할 수도 있고

크고 작은 모임에서, 교회와 가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밝힐 기회가 생길 것입니다.

 

미국의 훌륭한 대통령들처럼

아니 바울처럼 우리의 생각을 분명하게 밝히고

듣는 이들에게 감동을 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까지 증거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주여 입술을 열어 주소서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시편 51:15)

O Lord, open my lips,

and my mouth will declare your praise. (Psalms 51:15)

 

하나님 아버지

우리 삶은 물론 입술로도

주님을 전파하는 한 해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1.12이-메일 목회 서신)

신뢰

좋은 아침입니다.

 

1.

2017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늘 그렇다고 하지만

안팎에 드리운 불확실성을 갖고

새해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참빛 식구들 개인적으로도

어르신들의 건강,

젊은이들의 앞길까지 기도 제목이 참 많습니다.

 

교회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주 한 주 “서로 사랑”으로 지내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행하시는 일을 볼 줄 믿습니다.

 

2.

새해에 선물로 드린

<조지 뮬러처럼>이란 책은

새해를 맞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신앙의 길로 인도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많이 퇴색된 것도 사실입니다.

세상의 풍조와 염려

그리고 세상이 주는 즐거움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보다 앞서 있습니다.

심지어 신앙이 저 멀리 내동댕이쳐 있을 때도 많습니다.

 

한달 동안 조지 뮬러와 함께

순수한 신앙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훈련을 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새벽기도회에서 읽은

이사야서 7장 9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었습니다: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If you are not firm in faith, you will not be firm at all.(Isa 7:9)

 

<조지 뮬러와 함께>에도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역경의 시간에 그분께 의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할 때 역경은 우리로 하여금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게 하는 기회가 됩니다.

음산하고 황폐한 인생의 산에서 축복의 소나기를 맞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도,

축복의 소나기를 맞아도 순전한 마음이 아닌 섞인 마음을 갖고 있다면

다시 과거로 돌아갈 것입니다. 아니, 주를 향한 순전한 마음이 없다면,

역경의 골짜기에서 황폐한 산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28쪽)

 

3

하나님을 굳게 신뢰하고

올 한 해를 굳게 세우기 원합니다.

 

섞인 마음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기 원합니다.

 

하나님뿐만 아니라

우리 공동체 안에도 서로를 향한 신뢰가 깊어지고

우리가 사는 세상도 신뢰를 회복하길 원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시편 28:7)

The Lord is my strength and my shield; in him my heart trusts, and I am helped;

my heart exults, and with my song I give thanks to him.(Psalms 28:7)

 

하나님 아버지

새해 첫 달을 섞인 마음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고 의지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1.5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