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이 되는 말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은 한국 시간으로

10월 9일 한글날입니다.
세종대왕께서 모든 백성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한글을 창제하신 지 569주년이 되었습니다.
<훈민정음(訓民正音)>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입니다.
우리 말 한글은

말도 예쁘고, 소리를 내는 입모양도 좋고

자음과 모음으로 거의 모든 소리를 표시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세종대왕께서는

일반 백성들에게 글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한글 창제를 포기하지 않으셨다고 전해 집니다.
요즘은

한글이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한 쪽에서는 한글이 망가지고 있다고 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한글이 확대발전하고 있다고 하는 논쟁도 있는데

이왕이면 아름다운 한글을 잘 보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글,

“으뜸가는 글” “하나 밖에 없는 글”이라는 뜻 그대로 말입니다.
2.

요즘 수요예배에서 배우는

잠언에서는 유독 입술의 말에 대한 교훈이 많이 나옵니다.
글 뿐만 아니라

입술로 하는 말도 그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겠지요.
어제는

잠언에 자주 나오는 세 가지 표현들인

“마음” “말” “길”을 자동차 운전에 비유해서 설명해 보았습니다.
마음이 엔진이고

길이 자동차가 달려야 할 도로이자 목적지라면

말은 운전대와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무리 엔진이 고급이고

가야할 목적지가 분명하고 길이 평평해도

똑바로 운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야고보서에서 혀를 배의 키에 비유했는데

우리들 입술의 말이 바로 자동차의 운전대와 비슷하기에

말에 대해서 그토록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3.

잠언 15장 4절에서

온순한 혀는 생명나무라고 했습니다.

(a gentle tongue is a tree of life).
여기서 “온순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의미 속에는

“치유하다”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말 속에 치유기능이 있다는 것은

그 동안 많이 경험했습니다.
누군가 해 주는 말 한 마디에 위로받고

힘을 얻습니다.

스스로에게 하는 말 속에서도 왠지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러고보니 온순한 혀는 잠언 말씀 그대로

생명나무임에 틀림없습니다.
잠언 15장 22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도 있습니다.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To make an apt answer is a joy to a man,

and a word in season, how good it is!
때에 맞는 말은

경우에 맞게, 적절하게 하는 지혜로운 말입니다.
어디 말만 그렇겠습니까?

한글날인데 우리가 일상 생활 속에서

쓰는 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예의바르고 격에 맞는

글을 쓰고

말을 하는

빛의 자녀가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가 쓰는 입술의 말이

우리들 자신은 물론 이웃을 살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0.8 이-메일 목회서신)

정직

좋은 아침입니다.

1.

기업가 정신 가운데 하나가

정직입니다.

성공적인 기업이라고 해도

정직하지 않은 경제행위를 통해서 이익을 내고

더 나아가 소비자를 속이는 행위를 했다면

사회적인 지탄을 받고,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요즘 독일의 자동차 회사 폭스 바겐이

배기가스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

엔진에 고성능 소프트 웨어를 설치해 놓은 것이 탄로가 났습니다.

미국의 높은 환경기준을 맞추기 위해서

디젤 엔진에 몰래 소프트 웨어를 설치해서

슬쩍 검사를 통과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단지 법을 속인 것이 아니라

전세계의 소비자들을 속였습니다.

천문학적인 리콜비용과 보상액이 예상되는데

사회적 책임을 가진 기업으로 당연히 지불해야 할 대가입니다.

2.

요즘 수요예배에서 읽고 있는

구약성경의 잠언에서는

‘정직’을 무척 강조합니다.

공평한 추, 공의, 바른 판단

– 정직과 관련된 말씀이 여러 번 등장합니다.

정직은 솔직함입니다.

잘못한 것을 속이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아니 잘못한 것을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정직입니다.

이번 폭스 바겐의 경우

처음에는 사장이 나서서 발 뼘을 하다가 일이 더 커졌습니다.

검사하는 기준은 물론 소비자까지 속였으니

정직하지 않은 것입니다.

잠언에서는 속임수를 두고 “패역(거짓사/사기)”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정직은

겉과 속이 같은 것입니다.

겉은 번드르하지만

속이 문제라면 그것은 정직한 것이 아닙니다.

속과 겉은 물론

처음과 끝이 같은 것이 정직입니다.

정직은 끝까지 옳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정직은

하나님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 나가는 것입니다.

힘들면 힘든대로 벌거벗은 몸으로

감사하면 감사한 대로 은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정직입니다.

잠언에서 정직에 대한 말씀을 몇 구절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정직한 사람은 성실하게 살아, 바른길로 가지만, 사기꾼은 속임수를 쓰다가 제 꾀에 빠져 멸망한다.(잠11:3)

정직한 사람이 축복하면 마을이 흥하고, 악한 사람이 입을 열면 마을이 망한다. (잠11:11)

어리석은 사람은 속죄제사를 우습게 여기지만, 정직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총을 누린다.(잠14:9)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잠23:16)

왕이 가난한 사람을 정직하게 재판하면, 그의 왕위는 길이길이 견고할 것이다.(잠29:14)

3.

10월의 첫째 날입니다.

이제 올해도 세달 남았네요.

여러 가지 해야 할 일도 많이 있고

마음가짐도 가다듬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정직”을 우리 마음에 새겨서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고,

사람들의 신용까지 얻는 한 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직한 신앙은 맑고, 홀가분하고, 깊이가 있습니다.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잠15:8)

The sacrifice of the wicked is an abomination to the LORD, but the prayer of the upright is acceptable to him. (Pro 15:8 ESV)

하나님 아버지,

정직함이 우리들 마음과 행동

그리고 삶 전체에 깊이 뿌리 내리게 하옵소서.

정직한 자의 기도를 기뻐 받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0.1 이-메일 목회서신)

빛의 자녀들

좋은 아침입니다.

1.

제 전화에 교회 전화를 연결해 놓아서

교회로 오는 스팸이 모두 제게 걸려옵니다.

웬만해서는 낯선 전화를 받지 않고

광고 전화의 경우 곧바로 블록을 시켜 놓습니다.

오늘 오후에도 전화가 걸려왔는데

발신지가 Des Moines, IW입니다.

(일단 영어로 쓴 것을 양해주세요)

이곳은 아이오와주의 수도입니다.

작년 아이오와 집회에 갔을 때

내렸던 공항이기도 한데

발음이 매우 어려운 도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비행기를 타서 조종사의 방송을 듣기까지

당연히 “데스 모이네스”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방송에서 나오는 도착지 정보가 영- 생소한 것입니다.

“데(‘더’가까움) 모-인”

나중에 알고 보니

프랑스 사람들이 세운 도시입니다.

그래서 프랑스 지명이 생겼는데

“수도승들(the monks)”라는 뜻입니다.

프랑스어를 알면 몰라도

Des Moines를

“데 모인”으로 읽기는 쉽지 않습니다.

2.

미국에 살다 보면 영어가 큰 골치거리입니다.

살면 살수록 영어가 안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저도 10년 한인 목회하면서

영어를 쓸 기회가 없으니

영어가 눈에 띄게 퇴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괜찮습니다.

발음이 좋지 않아도

웬만큼 의사소통할 수 있으면 되고

모국어가 아니니 어려운 발음이나 표현이 나오면

그때그때 배워나가면 됩니다.

창피를 당할 때도 종종 있지만

현장을 떠나면서 “씨-익” 웃고 넘어가는 담대함도 필요합니다.

다음번에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잘 메모해 두면 더 좋고요.

뜬금없는 얘기 같지만

실제로 영어를 못해도

우리는 여전히 빛의 자녀들입니다.

우리의 발음 여부에 상관없이

주님께서 우리를 비춰주십니다

(Christ will shine on you).

정말 중요한 것은

빛의 자녀로서

“선하게, 의롭게, 진실되게” 사는 것입니다.

빛의 열매를 맺는 것이지요.

행여나 오늘 지내면서

영어로 인해서

꼭 영어가 아니어도 이런저런 일들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받으셨다면 툭툭 털고 일어나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비추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이미 빛의 자녀이십니다.

우리가 진짜로 부담을 느껴야 할 것은

빛의 자녀로 빛의 열매를 맺는 일입니다.

그것도 주님께서 우리를 비춰주시니

거뜬히 행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엡5:8-9)

Now you are light in the Lord. Walk as children of light;

for the fruit of light is found in all that is good and right and true.(Eph 5:8-9)

하나님 아버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우리의 삶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빛의 자녀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9.24 이-메일 목회서신)

배려

좋은 아침입니다.

1.

저는 운동경기를 좋아합니다.

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직접 제가 할 수 있는 운동은 줄어갑니다.

(이번 주일에 우리 교회와 스탠포드 연구원들팀과

축구경기가 있는데 잠깐이라도 뛸 수 있을 것 같아 가슴이 설레입니다)

요즘도 짬짬히 운동경기를 시청합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선수들에게 관심을 갖게됩니다.

특히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는 야구선수들,

예전에 박찬호, 김병현

요즘은 류현진, 추신수, 강정호등이 엔돌핀을 돌게 하는 한국선수들입니다.

올 해는 피츠버그 강정호선수의 경기를 하이라이트로 챙겨보곤 합니다.

저는 이 선수가 한국에서 얼마나 잘했는지 모르는데

피츠버그 팀에 와서 정말 열심히 운동을 해서 신인상 후보까지 거론될 정도입니다.

미국에 진출한 첫 해에 강정호 선수가 운동하는 것을 보면서

미국에 처음 와서 적응하던 생각도 나고

언어나 습관이 다른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던 경험도 떠오르면서

응원을 넘어서 감정이입까지 되곤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강선수가 무릎을 크게 다쳤습니다.

곧바로 수술을 했고 앞으로 6-8개월의 회복기간이 필요하답니다.

경기 중에 상대방 선수가

심한 태클을 하면서 무릎을 쳤고

그라운드에서 한참동안 일어나지 못하더니

시즌을 접는 큰 부상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승부를 건 운동경기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지만

그래도 상대방을 배려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동업자 정신이라고 하지요.

2.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운동경기 만큼이나 거칠기 이를 데 없습니다.

때로는 인정사정을 보지 않는 심한 경쟁에 휩쌓이기도 합니다.

승자만이 살아남고 대우받는 사회풍토는 점점 더 경쟁을 부추깁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다보면

채이고, 속고, 손해보고

때로는 몸과 마음이 심하게 다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라면

신사적으로 살아야겠지요.

남을 배려하고, 규칙을 지키고

손해를 보더라도

더불어 함께 사는 상생(相生)을 꿈꿔야 할 겁니다.

지난 주일에 배웠듯이

선한 일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상처받고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푸념이 나오고 털썩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일어나야지요.

멈추지 말고 경기장에 들어가야지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선한 일을 하라고 세상에 보내셨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한 주간

이웃을 배려하면서 신사적으로 삽시다.

힘들고 지칠 때는

쿰(히브리어, arise)하고 일어나서

주님 주신 길을 걸어갑시다.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참빛 식구들을 위해서 새벽마다 기도합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For we are his workmanship, created in Christ Jesus for good works,

which God prepared beforehand, that we should walk in them. (Eph 2:10)

하나님 아버지,

세상 속에서 선한 일을 하면서

주님의 길을 걷는 참빛 식구들에게 힘을 주시고

언제나 함께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9.17 이-메일 목회서신)

뿌리깊은 나무

좋은 아침입니다.

1.

캘리포니아에 가뭄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올겨울에 엘니뇨 현상으로 비가 많이 올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이제 건기의 막바지에 다다르니

온 세상이 황금빛으로 변했습니다.

교회 앞 작은 화단에도

권사님께서 유도화 묘목을 열개 남짓 심으셨는데

한 개만 남고 여름 내내 모두 말라서 죽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물을 주건만 태부족입니다.

아침마다 꽃들과 나무들이

물을 달라고 고개를 쑥- 내밀고 있는 듯해서 미안하지만

얼른 우기가 돌아오길 바랄 뿐입니다.

2.

거의 반년 가까이 비가 오지 않는 것이

우리 지역의 특성인데

가만히 지켜보니

예쁜 꽃나무들이 가뭄에 가장 약합니다.

잡초들은 꿋꿋하게 견뎌냅니다.

예상외로 가뭄을 잘 견디는 것들은

길가의 큰 나무들입니다.

집채만 한 나무들이

파란 잎사귀를 그대로 간직한 채 위용을 자랑합니다.

높이 솟은 종려나무들도

꼭대기까지 어떻게 수분을 공급하는 지

기운은 없어 보여도 여름 내내 잘 견디고 있습니다.

아마도

뿌리를 깊이 내려서

땅 속 물기운을 빨아들이고 있는 듯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커다란 덩치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겠지요.

3.

가뭄을 견뎌내는 큰 나무들을 보면서

우리의 신앙과 삶을 생각했습니다.

에베소서 3장에서 배웠던

바울의 기도도 생각났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엡3:17)

so that Christ may dwell in your hearts through faith—that you, being rooted and grounded in love (Eph 3:17)

뿌리를 깊이 내린 나무들이 꿋꿋하게 가뭄을 견디듯이

뿌리를 깊이 내린 신앙과 삶은 어떤 어려움도 잘 견뎌낼 것입니다.

특히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뿌리를 깊이 내리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랑이라면

모든 것을 덮을 수 있고, 견딜 수 있고,

예수님과 더불어 독수리처럼 날아오를 수 있습니다.

사랑과 더불어

진리에 뿌리를 내리고 터를 굳게 잡는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밤하늘의 북극성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우리가 믿는 예수님과 그 말씀이 진리입니다.

9월과 더불어 가을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랑과 진리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남은 한 해를 은혜로 마무리하기 원합니다.

터를 넓게 그리고 깊이 잡고

견고하게 뿌리를 내리는 신앙과 삶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요한2서 1장 3절)

Grace, mercy, and peace will be with us, from God the Father and from Jesus Christ the Father’s Son, in truth and love. (2John 1:3)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의 신앙과 삶이

넓게 터를 잡고 깊이 뿌리를 내려서

예수님을 닮기까지 높이 자라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9.3 이-메일 목회서신)

무더위와 게으름

좋은 아침입니다.

1.

이번 주는 꽤 덥습니다.

샌프란도 90도를 넘어서고

제가 사는 지역이나 내륙은 세자리 숫자를 찍었습니다.

대개 9월에 인디안 썸머가 오곤 하는데

올해는 더위가 일찍 찾아 왔습니다.

이 더위가 비를 몰고 와서

가뭄이 해갈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2.

저는 날씨가 더운데다

최근에 찾아 온 어지러움증을 다스리느라

쉬었더니 무척 게을러졌습니다.

달리 치료책이 없으니

쉬면서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하고

가능한 외부활동을 자제했습니다.

어느 한 곳에 집중하면 어지러움증이 다시 찾아와서

일상적인 예배준비를 하는 것 외에 휴식을 취했습니다.

덕분에 이제 많이 나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찾아온 더위와

쉬면서 은근히 습관이 된 게으름이 겹쳐서

삶의 리듬이 깨졌습니다.

그러니

금방 몸과 마음이 둔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이러면 안되는데 말입니다.

얼른 툭툭 털고 일어서야겠습니다.

3.

청년들이

미로슬라브 볼프가 쓴

<광장에 선 기독교>를 읽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기독교가 힘을 쓰지 못하고

신뢰를 잃어버린 시대에

기독교 신앙의 바른 모습을 제시해 주는 매우 좋은 책입니다.

책 첫 머리에

기독교 신앙을

“예언적인 신앙”과 “신비적 신앙”으로 나눠서 설명합니다.

신비적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반면에 예언적 신앙은 세상에 참여하려는

이웃사랑을 강조하는 신앙입니다.

볼프 교수는 현재 기독교에

두 가지 신앙이 모두 고장이 났다고 진단하면서

기독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 가운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제대로/균형있게 실천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더위를 먹고 쩔쩔매고 있는 기독교 아니 교회가

다시 새롭게 되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힘차게 일어나길 기대하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이 아닌우리들 각자가

그리고 우리 교회가

앞장서서 실천해야 할 사항들입니다.

3.

이제 저도 어지러움증을 잘 조절하면서

다시 일어서야겠습니다.

아무리 무더워도

하나님 사랑 속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신비로운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이웃들에게 크고 작은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맛나는 세상을 꿈꿔야겠습니다.

우리 참빛 교회와

모든 성도님들과 함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요한 7:37-38)

If anyone thirsts, let him come to me and drink. Whoever believes in me, as the Scripture has said,

Out of his heart will flow rivers of living water.”(John 7:37)


하나님 아버지,

아무리 세상이 가물고 무더위가 찾아와도

우리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9.10 이-메일 목회서신)

갱신(Renewal)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세상을 살다보면

어떤 계약이나 약속을

갱신(renewal)해야 합니다.

그동안 해 왔던 것을

같은 조건으로

또는 조건을 변경해서 다시 계약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새벽기도회에서

구약 요시야 왕에 대한 말씀을 읽었습니다.

요시야는 여덟살에 왕이 되어서 31년 간 다스리다가

이집트와의 전쟁에서 전사했습니다.

요시야는 다윗 이후로

하나님 앞에서 가장 선하고

무엇보다 종교개혁을 단행한 멋진 임금이었습니다.

열왕기하 23장에서는

요시야가 모든 백성들을 모아놓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갱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전을 고치다가 발견한 언약의 책(신명기 말씀으로 알려짐)에 있는 대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결단이었습니다.

그리고나서

이스라엘에 만연해 있던 우상들과, 산당을 부수고 (실천적 회개)

사사기 이후 700여년 동안 잊고 살았던

유월절을 지킬 것을 선포했습니다 (예배의 회복).

2.

우리들 삶에도

갱신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적어도

6일을 일하고 하루를 쉬면서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삶으로 나가길 원하십니다.

6년을 일하면

7년 째는 사람은 물론 토지까지 쉼을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50년 째는 희년을 선포해서

모든 것을 새로 돌려 놓고(reset)

다시 시작하라고 명령하셨는데

기득권을 지키려는 권력자들과

욕심쟁이 인간들이 희년을 지킨 적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많이 어그러지고

다시 회복할 기회를 자꾸 놓치고 있습니다.

3.

매 주일 교회에 와서 예배하면서

요시야 왕처럼

실천적 회개와 예배의 회복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주일을 계기로 갱신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침 마다

하나님 앞에서 갱신(renewal)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요한 웨슬리는

“하나님, 오늘도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매일 아침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면서 새 날을 맞는 것입니다.

요시야가 700년 동안 제대로 지키지 않던 절기를 지켰듯이

우리들에게도 오래동안 지키지 않고 묻어 놓았던

각자의 결심, 신앙과 삶의 숙제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지키기로 결심하고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세상 속에서

근사하고 멋진 참빛 식구들 되시길

뒤에서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왕이 단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께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따르기로 하니라

(열왕기하 23:3)

And the king stood by the pillar and made a covenant before the Lord, to walk after the Lord and to keep his commandments and his testimonies and his statutes with all his heart and all his soul, to perform the words of this covenant that were written in this book. And all the people joined in the covenant. (2King 23:3)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이 날마다

하나님 안에서 갱신(renewal)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8.20 이-메일 목회서신)

하나님 언제까지 입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1.
우리들 인생길이 늘 좋을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가 걷는 길이
언제나 장미빛 융단이 깔린 탄탄대로일 수 없습니다.
신앙의 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향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 왜 저입니까?(why me?)
하나님, 언제까지 입니까? (how long?)
하나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What can I do?)

구약성경의 시편은
개인과 민족의 어려움,
하나님에 대한 일종의 실망감을
탄식이라는 문학 유형으로 기록했습니다.

여호와여 언제까지니이까 스스로 영원히 숨기시리이까
주의 노가 언제까지 불붙듯 하시겠나이까? (시편 89:46)
How long, O LORD? Will You hide Yourself forever? Will Your wrath burn like fire? (Ps 89:46)

2.
하나님 앞에서
풀리지 않는 의문이 생기거나,
하나님께서 숨어계시는 듯
유난히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실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필립 얀시는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Disappointment with God)>라는 책에서
구약 성경의 욥기를 갖고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 알려줍니다.

책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제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계시는 분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들 생각에 일이 잘못되는 것 같아도
영원하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끝까지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붙들고 있는 합리주의와 이해력을 뛰어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그 순간에도 현재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소처럼 묵묵히 자신의 인생 밭을 기경하는 것입니다.

얀시는 이것을 ‘충성’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내가 충성이라고 부르는 깊은 차원의 믿음은 모순과 갈등의 시간에 꽃 피운다. 마치 돌 사이에 피는 풀 한 포기처럼 말이다. 인간은 불투명하면서 자란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인간에게 해답이 아니라 문제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261)

셋째는, 좋으신 하나님 즉 하나님의 선하심을 끝까지 의지해야 합니다.

“이 역사가 모두 끝날 때까지 우리는 어떻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믿음은 미래에 이루어질 사실을 미리 믿는 일을 의미한다”(253)

하나님이 섭섭하게 느껴질 때도
좋으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우리의 감각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습니다.

탄식할 수 있습니다.

뒤로 숨기고 안그런척 하는 것보다 도리어 솔직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좋으신 하나님을 떠올리고
그 분을 응시합니다.
한참 동안 말입니다.
마음에 평안이 임할 때까지…

3.
신앙이나 인생이 매일반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참빛 식구들만은
아주 아주 특별하게 대우해 주시길 바라지만,
그것 역시 저의 욕심인 것을 금세 발견합니다.

우리들도
겪을 것을 다 겪고 넘어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허허벌판 한 가운데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그때 임하는 감사와 기쁨,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평안이 바로 예수 믿는 행복입니다.

필립 얀시가
다음과 같이 그의 책을 마무리하듯이 말입니다.

“거기에 누군가 계시다는 사실을 난 깨달았다. 누군가 이 세상에서 펼쳐지고 있는 내 인생을 모두 보고 계셨다. 또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 바로 거기에 살아 계셨다. 그것은 소망을 갖게 하는 놀라운 감정이었기 때문에 내 인생을 거기에 걸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323-24)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사43:1)
Do not fear, for I have redeemed you; I have called you by name; you are Mine! (Isa 43:1)

하나님
행여나 우리 안에 하나님을 향해서 섭섭한 마음이 들때도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시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받아주실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어진 인생길을 꿋꿋하게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8.13 이-메일 목회서신)

부르심의 소망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은 여성 성경 공부 마지막 시간에
소명(부르심,calling)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소명은 삶의 근거이자 목적입니다.

바울도 에베소 교회가
“부르심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도로, 주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셨을 때는 부르심에 목적이 있고
그것을 깨닫기 위해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고, 마음을 밝혀 주시길 기도한 것입니다.

2.
오스 기니는 소명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습니다.

“소명이란,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 결정적으로 부르셨기에, 그분의 소환과 은혜에 응답하여 우리의 모든 존재, 우리의 모든 행위, 우리의 모든 소유가 헌신적으로 역동적으로 그분을 섬기는데 투자된다는 진리이다” (오스 기니 <소명>, 21)

또한 일차적 소명과 이차적 소명을 구분하면서
일차적 소명은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신 소명이고
이차적 소명은 각자의 직업, 가정 등 세상 속으로 부르신 소명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소명을 따라 산 사람들은
불꽃같은 열정을 갖고 산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소명은 삶에서 가장 깊은 성장과 최고의 영웅적 자질을 향한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비결이다”(소명, 137)

파스칼이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
그 기쁨을 양피지에 적어서 가슴 속에 간직했던 일화를 소개하면서
소명을 따라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2.
“소명” “부르심의 목적”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 벅차 오르는 일입니다.

현재 우리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일 속에 있듯이
그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내일 있을 청년부 금요모임에서
특강을 부탁해서
오늘 공부했던 <소명>에 대해서 한번 더 나누기로 했습니다.

현재에 머물지 않고
장차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시고
어떻게 부르심의 삶을 살지 꿈을 꾸고 서로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누구든지 오셔도 됩니다.^^

3.
어느 덧 7월도 지나고
8월을 맞습니다.

매번 맞이하는 날(day)이고
달(month)이어서
매일, 매달, 매년이라는 말을 씁니다.

부르심의 목적을 발견하고
소명을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일 매일의 삶이 사건이고, 은혜이고,
주님의 일에 동참하는 능력입니다.

오늘 하루도
각자의 자리에서 부르심을 쫓아 사시길 바랍니다.
그 속에서 주님의 손길과 인도하심을 확신하고
흔들리지 않는 소망으로 이어지기 원합니다.

내가 발걸음을 당당하게 내딛도록 주께서 힘을 주시고, 발을 잘못 디디는 일이 없게 하셨습니다 (시18:36, 새번역).
You gave a wide place for my steps under me, and my feet did not slip (Psalms 18:36)

하나님 아버지,
참빛교회 식구들 모두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부르심을 따라 살게 하시고
그 속에서 기븜과 소망을 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7.30 이-메일 목회서신)

무엇을 어떻게 왜

좋은 아침입니다.

1.
저는 오늘부터 내일까지
빌 하이벨스 목사님이 주관하시는
리더쉽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아는 자매가 예약을 해 주어서
참 오랜만에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정보를 얻고, 느끼고,
또 우리 교회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 지 생각중입니다.

원래 세미나는 시카고 윌로우 클릭 교회에서 진행하고
북미와 캐나다 800(?)여 곳에서 영상으로 강연을 듣는 식인데
샌프란에만 200여명 이상 모인 것 같습니다.

프로그램과 초청연사들이 수준급이지만
교회가 주관하는 프로그램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한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뜁니다.
희망이 생깁니다.

2.
첫번째 강의는
빌 하이벨스 목사님이 시작하셨습니다.

리더쉽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세가지 의문사들(what, how, why)을 커다란 세 개의 원으로 설명하시고
한 가운데 “why(왜)”를 두셨습니다.

우리는 무엇을(what) 할까,
어떻게(how) 할까에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하고
무슨 결과가 나왔는가에 따라서 성공과 실패를 가늠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 또는 어떻게 하느냐보다
“왜”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왜(hot why)”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할 때 올바른 리더쉽이 발휘될 수 있답니다.

“왜”는
에베소서 바울의 기도에 있었듯이
“부르심의 목적”과 관련이 깊은
가장 우선적인 질문임에 틀림없습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저 자신에게 “왜”라는 질문을 하면서
목회의 부르심을 점검해 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왜 지금 이 자리에 계시고
왜 이 일을 하시고
왜 어떤 일을 하려고 준비하고 계획하시는지요?

3.
하이벨스 목사님은 리더가 저지르기 쉬운 실수를
“블라인드 스팟(blind spot)”으로 설명하셨습니다.

남들은 모두 아는데
자기만 모르는 영역,
자기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놓치기 쉽지만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순간들입니다.

저는 스윗 스팟(sweet spot)이라는 용어를 종종 쓰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과 타이밍을 강조했는데
블라인드 스팟의 중요성을 새로 배웠습니다.

무심코 넘어가지만
실수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세심하게 관찰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블라인드 스팟을 감지해 내는 세심함이 필요하군요.

여러분 삶의 블라인드 스팟은 어디인지요?

왜 라는 질문은
우리들을 핵심가치 속으로 인도합니다.
블라인드 스팟을 잡으면서
삶 속의 위험을 배제할 수 있습니다.

4.
미국에서 세미나나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재정이 꽤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책이나 만남
또는 경험을 통해서 스스로 배우는 편인데
오랜만에 세미나에 참석해서 많이 배워갑니다.
(저 혼자여서 외롭고, 영어로 진행되는 강연을 놓치는 경우도 있지만)

“배우고 자라가는 교회”라는
작년 우리 교회 표어도 생각나는군요.
우리 모두 배우면서 자라갑시다.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께 이를 때 까지!!!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엡 4:15)
Speaking the truth in love, we are to zgrow up in every way into him who is athe head, into Christ,(Eph 4:15)

하나님 아버지,
하루 하루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왜 이곳으로 우리를 부르셨는지
“hot why”를 찾고
날마다 부르심을 쫓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8.6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