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 마음

한번 더
Happy New Year!

1.
2013년 한 해가 훌쩍 지나갔습니다.
목요서신 파일을 열어보니
작년 이 맘 때 보낸 서신 제목이
작년의 사자성어였던 거세개탁(擧世皆濁)이었습니다.

“온 세상이 모두 탁해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바르지 않아
홀로 깨어있기 힘들다.”는 뜻이었지요.

세상이 혼탁하지만
홀로 아니 그리스도인들만이라도 깨어있기를 소망했지만
생각처럼 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바르지 않은 세상에서
바르게 사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작년에 말씀 드린 대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신 예수님을 묵상하고
예수님을 따르기로 단단히 결심하지 않으면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거세개탁”은 올해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2.
올해 교수신문에서 발표한 사자성어 세가지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전미개오(轉迷開悟, 번뇌로 인한 미혹에서 깨어나서 열반을 깨닫는다는 불교용어)
격탁양청(激濁揚淸, 흐린 물을 씻어내고 맑은 물이 흐르게 하다)
여민동락(與民同樂, 지도자가 백성들과 즐거움을 같이 하다)”

학식이 높으신 교수님들이 뽑아서 그런지
여민동락을 뺀 앞의 두 가지는 생소한 말입니다.
(영어가 익숙하신 분들은 오늘 서신이 쉽지 않겠습니다. Sorry!)

저는 위의 세가지 가운데
격탁양청(激濁揚淸, 흐린 물을 씻어내고 맑은 물이 흐르게 하다)이
마음 깊이 다가왔습니다.

흙탕물에는
맑은 물을 아무리 넣어도 뿌옇습니다.
더러운 것들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면 되지만
휘-저으면 다시 흙탕물이 되고 맙니다.

흙탕물을 씻어내고
맑은 물을 새로 채워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생각하면
역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해관계가 얽혀있어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들 각자에게 대입하면
그나마 희망이 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를 말갛게 씻겨줍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정한 영을 창조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개입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있으면  <격탕양청>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3.
시편 51편은
신하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통회자복하며 드린 회개의 기도입니다.

다윗은 다음과 같이 간구합니다.: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 51:9-11)
Hide your face from my sins, and blot out all my iniquities.
Create in me a clean heart, O God, and renew a right spirit within me.
Cast me not away from your presence, and take not your Holy Spirit from me.  (Psa 51:9-11 ESV)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에서 <창조하다>라는 동사에는
창세기 1장 1절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사용한
“바라”라는 히브리어가 쓰였습니다.

큰 죄를 지은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 안에 정한 마음을 새로 창조해 주시길 간구합니다.
말 그대로 흙탕물을 씻어내고
맑은 물로 새로 채우는 <격탕양청>입니다.

4.
올 한해 날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정한 마음을 창조해 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주님께서 창조해 주시는 맑은 마음을 갖고
하나님을 예배하기 원합니다.

혼탁한 세상에 살지만
정한 마음 (Clean heart), 맑은 마음을 갖고 있으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힘들겠지만
세상 속에서도
주님께서 창조하신 정한 마음으로 살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로 인해서 세상이 조금은 맑아질 테니까요!

하나님 아버지
혼탁한 세상이지만
하나님께서 창조해 주시는 정한 마음으로 한 해를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1.2 이-메일 목회서신)

길을 걷다

좋은 아침입니다.

1.
우리는 2013년 인생길을
거의 다 걸어와서
이제 달랑 일주일 남겨놓았습니다.

각자의 삶의 처지가 다양했듯이
한 해를 돌아보는 마음들도
모두 다를 것 같습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에 하나님의 은혜 임해서
하나님께 감사했고,
연초에 계획했던 일들을 많이 이루어서 뿌듯하고,
눈에 띠는 열매는 없어도 최선의 삶을 살았기에 담담히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힘겨운 한 해를 보낸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세상살이가 쉽지 않았습니다.
마음 먹은 대로 인생길이 펼쳐지지 않았고
의외의 장애물을 만나서 고전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 붙잡고
의지적으로 감사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2013년 한 해 동안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길을 걸어왔습니다.

그 길이 어떠했든지
360여 일을 걸어오신 것만도
대단한 일이기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2.
히브리어에서는
율법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걷는다(하랔흐)”라는 동사를 사용해서 표현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단지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걸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삶이니 감사하면서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을 믿으면서
묵묵히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성탄절을 보내면서
영화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를 다시 보았습니다.
영화 속의 주인공은 무작정 달립니다.
악당들이 뒤쫓아와도,
미식축구 선수가 되었어도
심지어 베트남 전쟁에 나가서도 그는 앞으로 달릴 뿐입니다.

“얼간이”이라는 별명 그대로
어눌해 보이지만
앞으로 뛰어가면서
정상인들이 해내지 못하는 일들을 해냅니다.

그는 사람들과 약속을 지켰고,
평생 사랑을 쫓았습니다.
정류장에 앉아서 그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정류장에 앉아서
자신이 걸어온 인생길의 에피소드를
낯선 사람들에게 들려줍니다.

비록 시한부 사랑이지만
사랑의 길을 끝까지 걸어갑니다.

영화 속의 포레스 검프는
얼간이가 아닙니다.

그는 우직하게 걷고 뛰면서
잘난척하며 미적거리는
정상인들을 꾸짖고 있습니다.

3.
영화를 보면서
복잡하고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것이
무모해 보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리스도인들은
걷고 뛰기를 계속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신실함을 믿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애를 씁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신앙의 길을 걷고 또 걷습니다.

얼마나 멋진 모습인지요!

비록 우리들이
포레스트 검프처럼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어도
올 한 해 여기까지 꿋꿋하게 달려왔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신 하나님께서 박수를 보내주실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함께 달려주신 줄 믿습니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최고이십니다.

내년에도 우직하게 달려갑시다!

하나님 아버지
올 한 해 여기까지
꿋꿋이 걸어오신 주님의 백성들을 기쁨으로 맞아주옵소서.
주어진 인생길을 묵묵히 걸어갈 때에
늘 곁에서 동행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12.26 이-메일 목회서신)

근사한 인생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새벽기도회에서는
창세기 가운데 아브라함에 대한 말씀을 읽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창세기 21장에는
세 가지 사건이 나옵니다.

첫째는,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약속의 아들
이삭이 태어나면서 웃음이 가득해 집니다.

둘째는,
웃음도 잠시,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나님의 뜻을 오해한 나머지
자기들 마음대로
하갈이라는 이집트 종에게 낳은 아들 이스마엘과의 갈등입니다.

결국 하갈과 이스마엘은 아브라함 집에서 쫓겨납니다.
하갈이 이스마엘과 더불어 목숨을 끊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하갈에게 임하셔서 구해주시지요.
하나님의 마음이 참으로 깊고 넓음을 느낍니다.

셋째는
아브라함이 블레셋 땅에 가서
그곳의 왕과 군대장관과 평화 협상을 체결하고
그곳 사람들과 함께 거주하는 말씀입니다.

2.
세 가지 사건이 각각 의미가 있지만
마지막 세 번째 말씀이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그 동안 아브라함은 이집트와 그랄이라는 곳에 가서
자기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창 12, 20장).
아내를 배려한 것이 아니라
어여쁜 아내로 인해서 자기 목숨을 잃을까봐
비겁하게 행동한 것입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의 개입으로 위기를 벗어났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21장 속의 아브라함은
세상에서 비굴하게 행동하거나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당당하게 세상의 왕들과 거래하고
협상을 맺으면서 함께 거주합니다.

그런 아브라함을 보고
세상의 왕 아비멜렉과 그의 군대 장관 비골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창21:22)
“God is with you in all that you do. (Gen 21:22 ESV)

하나님의 말씀도, 아브라함 자신의 간증도,
하나님을 믿는 가족들의 칭찬도 아닙니다.
세상의 왕이 아브라함을 보고 한 말입니다.
이 정도면 아브라함의 인생이 멋지고 근사한 것입니다.

이런 평판을 들은 구약의 인물들이 또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요셉입니다.
그는 이집트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란 말을 들었습니다.
매사에 성실했던 그의 생활 영성 덕분입니다.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던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니엘은 기도의 인물이었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를 주셨기에
세상의 지혜를 뛰어넘는 탁월성을 발휘했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과
하나님에 대한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울려서
저런 평판을 얻었습니다.

3.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는 송구영신의 계절에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들을[나를] 보고 뭐라고 말할까요?


세상의 척도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어떠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처한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드러내길 원합니다.

여러분 모두 세상 속에서
“저 분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근사한 인생을 사시길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늘의 지혜로, 기도로, 믿음으로, 성실함으로
세상 속에서 근사한 인생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12.19 이-메일 목회서신)

열린 마음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세대의 키워드는
“소통”입니다.
서로 소통을 할 수 있을 때
관계가 발전하고
갈등도 해소되고
한 마음이 되어서 신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소통의 도구는
역시 언어입니다.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듯이
우리의 언어습관은 무척 중요합니다.

요즘 하루에 한 장씩 읽어가는
잠언에 보면
언어에 대한 교훈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지혜로운 사람,
지혜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입술의 말이 중요함을 강조한 말씀들입니다.

말과 더불어 강조되는 것이
“생각”입니다.
생각에서 말이 나오지요.

오늘 우리가 읽은 잠언 12장 5-6절에도
의인과 악인이 대조를 이루고
그들의 말과 생각이 연이어 나타납니다.

의인의 생각은 정직하여도 악인의 도모는 속임이니라

악인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 하는 것이거니와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하느니라.

The thoughts of the righteous are just; the counsels of the wicked are deceitful.
The words of the wicked lie in wait for blood, but the mouth of the upright delivers them.
(Pro 12:5-6 ESV)

이처럼 마음과 생각
그것이 표현되는 언어를 다스리고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기본임을 배웁니다.

2.
잠언 12장 15-16절도 실제적인 교훈을 줍니다.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The way of a fool is right in his own eyes, but a wise man listens to advice.
 he vexation of a fool is known at once, but the prudent ignores an insult. (Pro 12:15-16 ESV)

미련한 사람은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깁니다.
더 이상 발전하거나 수정할 생각이 없는 단절된 사고입니다.

반면에 지혜로운 사람은
조언을 듣습니다.
자신이 틀릴 수 있고, 더 좋은 길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한 열린 사고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속단한 미련한 사람은
다른 의견이나 일이 벌어지면 즉석에서 화를 냅니다.
생각은 닫아놓고, 입을 활짝 열어서 소리를 지릅니다.

반면에 슬기로운 사람은
난감한 일이 생기면 입을 닫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열고 신중하게 상황을 파악합니다.

잠언이 주는 교훈이 매우 실제적이지요?

3.
매일같이 잠언을 한 장씩 읽어 가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삶 속에 읽은 말씀을 적용하기 원합니다.

무심코 읽으면 지나갈 말씀이지만
곱씹으면서 읽어나가면
성경이 왜 하나님 말씀인지 깨닫게 되고
마음과 삶에 생명의 양식이 됨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느라
마음과 몸이 바쁘지만
하나님 말씀 앞에서 열린 마음을 갖고
우리의 마음, 생각, 삶을
매일같이 (잠깐 동안이라도) 돌아보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말씀 앞에
우리의 마음이 열리게 하옵소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리분별을 해 낼 수 있고
주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는 총명함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12.12 이-메일 목회서신)

복 있는 사람

좋은 아침입니다.

1.
어제 오늘 플로리다에서는
깊은 바다에 살던 40여 마리의 고래 떼가
해변가 얕은 물가로 올라와서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는 구조작업이 벌어졌습니다.

크기가 3-5미터에 이르고
무게만 3톤에 가까운 육중한 고래들이
어떻게 늪지대가 있는 해변가로 올라왔는지 궁금합니다.

밀물 때 올라왔다가 썰물이 되면서
미처 빠져나가지 못했거나,
깊은 바다를 헤엄칠 능력이 소진되면서
육지로 올라와서 집단적으로 생을 마감하는 현상(stranding)등으로 추측할 뿐이랍니다.

이번에 해변가로 올라온 고래는
20-30마리씩 떼를 지어서 움직인답니다.

웬만해서는 무리를 이탈하지 않는 군집성이어서
함께 해변가로 올라온 것 같다는 전문가의 분석입니다.
동지애가 참 강한 동물이네요.

그렇지만
아무리 한 마음으로 움직인다고 해도
자신들의 서식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중요하지
이번 경우처럼 궤도를 이탈해서
엉뚱한 곳으로 떼를 지어 이동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2.
시편 1장에는
의인과 악인이 대조를 이루어 나타납니다.

의인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야하고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는
의인을 두고 시편 1장 1절에서는
복있는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복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 1:2-3)

But his delight is in the law of the LORD, and on his law he meditates day and night.  He is like a tree planted by streams of water that yields its fruit in its season, and its leaf does not wither. In all that he does, he prospers.  (Psa 1:2-3 ESV)

자리를 지키는 것이 꽤 중요합니다.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이지요.
의인의 자리, 하나님 백성의 자리에 거하는 것이
복있는 사람이 해야 할 처신임을 배웁니다.

주님 말씀하시면 멈추고,
주님 말씀하시면 발걸음을 옮기는 것도
하나님 백성이 해야 할 일입니다.

연말을 맞아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해 집니다.
여기저기 몰려 다니기 쉬운 때입니다.

무리를 지어서 다니느라
물이 빠져나가는 줄도 모르고
해변가로 올라온 플로리다의 고래들을 반면교사 삼아서
우리들의 발걸음을 겸손히 돌아보기 원합니다.

3.
여기까지 목요서신을 쓰고 [목요일 오후]
마무리하려는데
남아프리카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95세로 타계했다는 속보가 떴습니다.

27년의 옥살이를 견디고
결국에는 흑백갈등을 용서와 화해로 해결한
우리 시대의 위대한 지도자께서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자유와 평화를 이루려던 그분의 인생이
어둡고 혼란한 세상,
죽음이 닥칠 것도 모른 채 무모하게 달려가는 인생길에
영원한 빛으로 남아 있기를 소원합니다.

4.
12월의 마지막 달입니다.
매일같이 잠언을 한 장씩 읽고 묵상하면서
하늘의 지혜를 구하고
한 마음으로 주님의 길을 걷는 참빛 교회 식구들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오늘도
주님 보내신 곳에서
주님을 예배하며 나가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의인의 길에 서게 하옵소서.
복 있는 사람의 믿음을 갖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12.5 이-메일 목회서신)

변치 않는 복음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 인터넷에서
구글에서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개발 중이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여섯 개의 프로펠러와 바퀴가 달려 있어서
지상으로 다닐 수도 있고
마음만 먹으면 하늘을 날 수도 있는 드림카랍니다.

일본에서 열린 모터쇼에서는
눈으로 인식해서 운전할 수 있는 자동차가
소개되었답니다.

무엇보다
손과 발이 불편하신 분들에게는
기쁜 소식입니다.

자동차뿐만 아니라
인간의 문명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발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장차 어떤 세상이 될 지가
자못 궁금하고
또한 공상영화에 나오는 세상이
실제로 현실화되면
인간이 전능하신 하나님 위치에 올라앉아서
하나님을 떠나게 될까 염려도 됩니다.

2.
그렇지만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사람들의 마음이 변할 뿐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의 문명이 발달해도
죽음(인간의 한계)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누구에게나 정해져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궁극적인
진리에 대한 갈급함을 누구나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 속에 들어있는
진리추구의 본능입니다.

문명이 발달하고
선택의 폭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더욱 더 우왕좌왕할 것입니다.
길 되신 예수님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3.
무엇보다 2천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격세지감입니다.
인류는 지난 2천년 동안
엄청난 변화를 이미 겪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생명되신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속에
생명의 씨앗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복음 자체가 능력을 탑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주일 말씀대로
가난한 마음으로, 낮은 곳에서
겸손과 주님께 돌아오는 회개의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향해서 나가기 원합니다.

그 안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을 누리고
자유케 하는 성령의 능력과
생명의 복음을 누리기 원합니다.

오늘 하루도
변치 않는 복음을 통해서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 마음 속으로 들어가기 원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Jesus said to him,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John 14:6 ESV)

하나님 아버지,
길과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굳게 서 있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11.21 이-메일 목회서신)

만나면 좋은 친구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응답하라 1994>라는 드라마가 인기랍니다.
아내와 함께 꼭 보자고 말은 하건만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습니다.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면 아주 빠져들 것 같습니다.
공감을 많이 할 것 같아요!
다음(Daum)기사에 CG처리된 지하철 역 간판이 나왔는데
제가 매일같이 출퇴근하던 1호선 시청역이
금새 눈 앞에 그려졌습니다.

1994년은 제가 목회를 하기로
결정하고 신학 대학원 준비를 하던 때입니다.

여전히 직장에 다녔고,
우리 아이들은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이지요.
교회에서는 줄곧 중고등부 교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이해하려고
점심시간이면 직장 건물 지하 교보서적에 가서
청소년 관련 책들도 찾아보고,
드라마에 나온다는 서태지며 HOT 음악도 듣곤 했었습니다.

그때 그 시절 친구들이 급- 그리워집니다.

2.
만나면 좋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활기가 생기고, 기분이 좋아지고
몇 시간을 같이 있어도 지루하지 않은 친지들입니다.

아니 그런 친지들을 찾기 보다
우리들 자신이 먼저
상대방이 만나고 싶은 이웃이 되어야겠지요.

누구보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기도제목을 나누고
허물없이 인생과 신앙의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신앙의 동지들이 필요합니다.

초대교회를 세웠던
바울에게도 신앙의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그의 후계자 디모데를 많이 아꼈고
그를 그리워했습니다.

디모데후서 마지막 장에 보면
겨울이 되기 전에 얼른 오라고 부탁합니다.
올 때는 가죽 종이에 쓴 책과
어떤 성도의 집에 맡겨두었던 겉옷을 가져오라고 부탁합니다(딤후 4:3절).
노년의 바울이 아들 같은 제자 디모데를
무척 보고 싶어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훗날 돌아보았을 때 흐뭇하고
평생 동안 함께 걸어갈 신앙의 동지들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만나면 좋은 신앙의 동지들을 많이 허락하셔서
우리 참빛 교회 식구들의 삶이 부요해지길 기도하겠습니다.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료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고후8:23)
As for Titus, he is my partner and fellow worker for your benefit. And as for our brothers, they are messengers of the churches, the glory of Christ. (2Co 8:23 ESV)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우리의 만남을 예비해 주시고
축복해 주옵소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좋은 만남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11.15 이-메일 목회서신)

범사에 감사

좋은 아침입니다.

1.
벌써 11월이 되었습니다.
11월은 감사의 절기입니다.

추수감사절이 있음은 물론
주님 앞에서
한 해를 돌아보면서 차분하게
감사의 제목들을 세어보기에 가장 좋은 달(月)입니다.

“감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토다”입니다.

여기에는 단순한 감사를 넘어서
“감사의 찬송(song of thanksgiving)”
“감사의 고백(confession of thanksgiving)”
“감사의 제사(sacrifice of thanksgiving)”라는 뜻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11월을 감사의 달로 삼겠다는 것은
감사의 찬송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을 향해서 범사에 감사의 고백을 하고
감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삶의 예배를 드리겠다는 결심입니다.

2.
언젠가 설교시간에 말씀 드렸던
18세기 영국의 영적 거장 윌리엄 로우는
범사에 감사하는 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인생의 행복과 만족을 찾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 사람에게 어떤 사건이 일어나든지 그 사건에 대해서 무조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해야 한다고 대답하겠다. 왜냐하면 얼른 보기에는 불행한 재화(災禍)같이 보이는 일이라도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 감사 드리며, 찬양하는 가운데서 그것이 도리어 축복으로 끝맺음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성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기도를 특별히 많이 하는 사람도 아니고, 금식을 자주 하는 사람도 아니고, 구제품을 많이 내어주는 사람도 아니고, 절제를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의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도 아니다. 하나님 앞에 항상 감사할 줄 알고 무엇이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자기도 하려는 사람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지 그 안에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음을 믿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사람이다.”(예화집에서)

물론 기도도 금식도 구제도 모두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감사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입니다.

감사절이 있는 11월 한달 동안
일상의 삶 속에서
범사에 감사하는 훈련을 하기 원합니다.

감사의 찬송과 고백,
감사의 예배가 우리 안에 날마다 있기 원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4:6-7)

Do not be anxious about anything, but in everything by prayer and supplication with thanksgiving let your requests be made known to God.  And the peace of God, which surpasses all understanding, will guard your hearts and your minds in Christ Jesus.  (Phi 4:6-7 ESV)

하나님 아버지,
무슨 일이 닥치든지
우선 감사하게 하옵소서.
감사의 찬양과 고백이 넘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11.7 이-메일 목회서신)

Trick or Treat(?)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은 핼로윈 데이였습니다.
중세시대 교회는
성인들을 많이 세웠습니다.
그리고 일년 365일을 성인들에게 할당했지만
배정을 받지 못하는 성인들이 있어서
11월1일을 “만성절(all saints day)”로 제정해서
모든 성인들을 기념했습니다.

성인들을 기념하는 전통이
켈트족의 이교 문화와 만나면서
혤로윈 데이가 생겼습니다.

죽은 자의 영령을 달래기 위해서
괴상한 행사를 하는 것이지요.

2.
처음 미국에 왔을 때
핼로윈 데이를 앞두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코스튬”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이웃분들께 물어서
아이들의 핼로윈 복장을 사주었습니다.
비교적 점잖은 것으로 입혀서 학교에 보냈었습니다.

우리가 살던 기숙사 건너편이
위험한 지역인데
그곳에 살던 아이들이 길을 건너와서
마구 문을 두드립니다.
우리 네 식구는 깜짝 놀라서
불을 끄고 몇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2.
핼로윈 데이에
아이들은 집집마다 다니면서
“Trick or treat”을 말하면서 사탕을 달라고 합니다.

사탕을 주면 잘 대해주고
그렇지 않으면 장난을 치겠다는 뜻입니다.

“Trick or Treat”
– 물론 장난섞인 말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어울리는 표현은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잘 대접해 주지 않으면
장난을 치고 상대방을 마구 대하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어떻게 대하든지
잘 대접해 주어야 합니다.
Trick은 없애고 treat만 행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7:12)
So whatever you wish that others would do to you, do also to them, (Mat 7:12 ESV)

상대방을 존중하고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the golden rule)입니다.

이제 새달을 맞이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가족과 친지 그리고 이웃들을
너그럽게 사랑으로 대하며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만나는 이웃들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섬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10.31 이-메일 목회서신)

맛 보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에는 새벽기도회와
수요예배에서 요한계시록을 읽고 있습니다.

수요예배는 일주일에 한 장씩
자세히 살펴보게 되고
새벽기도회에서는
하루에 한 장씩 간단히 묵상합니다.

어제 수요예배에서
성경의 큰 줄거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성경 본문의 얼개(구조)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요한계시록이야말로
자세한 것들에 신경을 쓰면
이해하기도 어렵고
천차만별의 해석이 가능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요한 계시록의 큰 축들을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그것을 중심으로 읽어나가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2.
오늘 새벽기도회에서 살펴본
요한 계시록 7장은
4장부터 시작된 말씀의 후반부입니다.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곱 개의 두루마리를 하나님께로부터 건네 받으시고
차례로 두루마리의 인봉(印封,seal)을 떼십니다.

인봉을 떼면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시작됩니다.
가뭄, 전쟁, 박해, 사망의 환난입니다.

여섯 개의 인봉이 모두 떼어지고
한 개만 남아 있는 중간에
하늘 나라의 모습이 한 폭의 영상(snap shot)처럼 등장합니다.

네 천사가 땅의 네 모퉁이를 잡고 있습니다.
택함 받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고
거룩한 성도들이 주님께 나와서 찬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거룩하게 된
흰옷 입은 성도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 보좌 앞에서
밤낮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섬깁니다.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습니다.
그 어떤 것도 이들을 해칠 수 없습니다.
어린양 예수님께서 생명수 샘물로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 씻겨 주십니다.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계7:17).
For the Lamb in the midst of the throne will be their shepherd, and he will guide them to springs of living water, and God will wipe away every tear from their eyes.” (Rev 7:17 ESV)

이 세상의 고통과 죽음이 사라진
기쁨과 평강의 하나님 나라입니다.

3.
이처럼 요한 계시록 7장은
여섯 번째 인봉이 떼어진 후
마지막 일곱 번째 인봉이 떼어지길 기다리는
중간에 위치해 있습니다.

대환난의 한 가운데 위치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맛보기로 알려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타락한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들이기에
염려와 근심,
이해가 되지 않는 고난과 상처를 마주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삶 한 가운데서
하늘나라를 미리 맛보며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생명,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경배
기쁨과 감사의 하나님 나라를
치열한 현실 한 가운데서 틈틈이 맛보며 사는 것입니다.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그리스도인의 멋진 모습입니다.

오늘은
찬송가 438장(통 495장)을 부르면서
있는 곳에서 하늘나라를 경험해 봅시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세상도/ 천국으로 변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그 어디나 하늘나라.

하나님 아버지,
험한 세상을 살아가지만
삶 중간 중간에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10.24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