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이 주는 세가지 유익

좋은 아침입니다.

수요예배에서

고린도후서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는

첫 번째 장부터 고난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복음을 전하고 교회가 세우는 것도 어렵지만

당시에 고린도라는 세속도시에서

예수님을 믿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타락한 세상에 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가기 전까지

세상 속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어려움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잔잔한 파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습니다.

아니 파도타기를 하면서 즐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종종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인생의 파도도 있습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앞 길이 깜깜할 수도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에 나오는

환난도 웬만한 쓰나미급이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고난 속에서

세가지 유익이 들어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첫째는, 우리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훗날 똑같이 어려움을 겪는 성도들을 위로하라는

하나님의 뜻이 깃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고후 1:4)

…So that we can comfort those in any trouble with the comfort we ourselves have received from God.

둘째는,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크고 깊은 위로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어려움을 당하면 당할수록

하나님의 위로도 그만큼 넘친다는 바울의 고백이고 가르침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고후 1:5)

For just as the sufferings of Christ flow over into our lives, so also through Christ our comfort overflows.

고난이 주는 마지막 세번째 유익은

우리로 하여금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 앞에 밀려오는 어려움 앞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경험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이것을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기회로 역전시켜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고후 1:9)

Indeed, in our hearts we felt the sentence of death. But this happened that we might not rely on ourselves but on God, who raises the dead.

바울은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은 죽음의 순간에

생명을 주관하시는 부활의 주님을 온전히 의지했습니다.

이쯤 되면

어떤 인생의 쓰나미가 밀려와도

능히 맞닥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힘이 나옵니다.

p.s.

9.11 10주년을 맞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사랑하는 친지들을 잃고 어려운 기간을 견뎠던

많은 분들께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길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우리 앞에

크고 작은 인생의 파도가 밀려 올 것입니다.

어려움을 예수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

능히 이길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9.8 메일 목회서신)

변화

좋은 아침입니다.

1.

예수님을 믿는 것을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데

그 가운데 한 가지가 변화입니다.

신약 성경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육신의 질병이 고침 받고 건강해 지는 변화,

평생 구두쇠로 살았던 삭개오처럼 예수님을 만나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변화

제자들은 세상 직업을 뒤로 하고 예수님을 따라나서는 인생의 변화!

이처럼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어떤 모양이든지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변화는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증표(sign)입니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변화되지 않았다면,

아직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있지 않다고 볼 수 있을 만큼

신앙에서 변화가는 중요합니다.

생각의 변화.

마음과 성품의 변화

삶의 변화,

인생을 내다보는 인생관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전반적으로 변화를 경험해야 합니다.

9월의 첫 번째 날이 지나고

두 번째 날을 맞이합니다.

새달을 맞으면서

이번 한달 동안

예수님을 믿는 우리 각자에게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예수임을 닮은

진정한 그리스도인(Christian)으로

변화되기를 기도합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고후 5:17)

Therefore, if anyone is in Christ, he is a new creation; the old has gone, the new has com!

하나님 아버지

또 한번 새 달을 맞는

참빛 교회 식구들에게

예수님을 닮아가는 변화가

날마다 일어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9.1 메일 목회서신)

땅에 묻고 다시 시작

좋은 아침입니다.

1.

우리의 삶이

어렸을 적 눈덩이 굴리기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처음에는 작게 시작하지만

눈덩이를 굴리다 보면

점점 커집니다.

커져서 좋지만

나중에는 눈덩이에 지저분한 물질들도 붙게 되고

눈덩이를 굴리는 것이 힘에 부칩니다.

그때는 적당한 곳에

눈덩이를 놓고

새로운 눈덩이를 굴리곤 했습니다.

2.

창세기에 보면

야곱이 21년간의 종살이를 마감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말씀이 나옵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형 에서와 극적으로 화해하지만

딸 디나가 낯 모르는 지방에서 산책을 나갔다가

그만 그 땅의 추장 세겜에게 강간을 당합니다.

여동생이 치욕을 당한 것에 분노한 오빠들이

세겜 사람들을 죽인 복수를 보면서

다시 한번 야곱의 얼굴에 깊은 그늘이 드리웁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처음 고향을 떠날 때 하나님을 만났던

벧엘로 돌아가서 예배자의 삶을 살 것을 부탁하십니다.

야곱은 가족들을 모으고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중에 이방 신앙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35:2)

Get rid of the foreign gods you have with you,

And purify yourselves and change your clothes.

하나님 말고

그들이 의지하던 것들을 모두 제거하고,

내적으로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겉모습을 치장하던 옷도 갈아입으라는 부탁입니다.

말 그대로 새로운 출발입니다.

야곱은 가족들이 가져온

이방 신상들과 귀고리등 장식품들을

자식들이 죄를 지은 그곳

세겜 땅에 묻습니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를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 나무 아래 묻고…(35:4)

So they gave Jacob all the foreign gods they had and the rings in their ears, and Jacob buried them under the oak at Shechem.

이제 한결 홀가분해졌습니다.

자신들의 잘못과 과거를 땅에 묻었기 때문입니다.

벧엘로 향하는 야곱 일가의 여정을

우리 하나님께서 지켜주십니다.

그들이 발행하였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 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 35:5)

Then they set out, and the terror of God fell upon the towns all around them so that no one pursued them.

3.

우리들도 종종 자신을 돌아보면서

그 동안 굴려왔던 눈덩이를 내려놓고

새롭게 시작할 필요를 느낍니다.

그 동안 우리의 마음가짐과 삶을 점검하고,

하나님과 관련 없는 것들을

땅에 묻는 결단과 행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면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가는데

거추장스러운 것들이 있다면

그것을 땅에 묻는 시도를 해 봅시다.

그리고 야곱처럼

우리의 인생길을 새롭게 발행(to set out)해 봅시다.

하나님 아버지

옛 것을 땅에 묻고

새로운 길을 발행하는

참빛 교회 식구들의 발걸음을 지키시고

친히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8.25 메일 목회서신)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좋은 아침입니다.

1.

매일 같이 배달되는

한국 신문에 흥미로운 칼럼이 실렸습니다.

서유럽이 급격하게

탈기독교사회(post-Christian society)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지난 번 총격사건이 있었던 노르웨이의 경우

주일에 예배에 참석하는 인구가 3%가 불과하고,

영국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10%의 영국 국민들만이 주일날 교회에 간답니다.

어디에서 인용한 통계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납득이 가는 증거라고 생각됩니다.

2.

이렇게 기독교가 냉대받는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여러 가지 대안들이 있겠지만

저는 오늘 두 가지를 제시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시편 116편에서 설교했듯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느끼는 체험적인 신앙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은 계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확실한 간증이 필요합니다.

찬송가 204장의 고백입니다.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 하리로다.

둘째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닮은 삶으로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말로 하는 전도는 이제 설득력이 없습니다.

대신에 우리들이 예수님의 마음을 갖고

예수님처럼 살아간다면,

사람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매번 강조하는 마태복음 5 16절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웃들의 눈에 띨 만큼

선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조금 손해보고, 자신을 희생하고 양보하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 말을 들을 정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작은 예수로,

생동감 넘치는 살아있는 신앙인으로 살아갈 때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2천년 전 로마 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던 (upside down)

초대교회의 부흥이

우리 시대에도 일어날 것입니다.

저절로 전도의 문이 열리겠지요!!!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 동안

우리 참빛 교회 식구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작은 예수로서

착하고, 기쁨이 넘치고, 행복하게 살아서

저들이 있는 곳이 하늘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8.18 메일 목회서신)

“주께 붙어 있으라”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6월 첫날,

샌프란에 교회건물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우연치 않게(?) 시작된 교회 구입이

엊그제 대출승인이 나면서 마무리되어 갑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참 묘합니다.

두 달여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우리 교회 건물을 달라고 기도하시던

팔순이 넘으신 전도사님과 권사님들께 정말 귀한 선물입니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흐뭇합니다.

현재는

우리 교회로서 조금 버거운

대출금 상환이지만

거기까지도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그냥 감사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교회!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겸손하게 하나님을 따라가면 될 것 같습니다.

그 동안 기도해 주신

참빛 교회 식구들과

목요서신을 함께 나누는 동역자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2.

지난 주일 설교는

새로운 연속 설교의 첫 번째로

사도행전에 나오는 안디옥 교회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인종, 지위, 출신을 초월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아름다운 교회,

말씀과 기도에 힘쓰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쫓았던 교회,

구제와 선교에 힘썼던 교회!

우리 참빛 교회도 안디옥 교회를 본받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지난 설교 가운데

예루살렘에서 파견된 바나바가

안디옥 교인들에게 했던 권면을 기억하시는지요?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11:23)

Remain faithful to the Lord with steadfast purpose.

주께 붙어 있는 믿음은 언제나 중요합니다.

이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을 떠나지 않고

주님을 꼭 붙잡고 사는 신앙입니다.

아이가 엄마 품에 붙어 있듯이

우리들도 하나님 품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꼭 안아주십니다.

또한 주께 붙어 있는 것에 대한

헬라어 본문의 뜻은 영어 번역에 더 가깝습니다.

프로스메노라는 헬라어의 의미는

거하다(stay with), 머물다(remain), 지속적으로 믿음생활을 하다(continue in faith)

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 붙어 있는 것은

매사에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주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때가 가장 평화롭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을 쉽게 공급받습니다.

하나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주님께 꼭 붙어서 생활하시길 바랍니다.

주님 안에 거하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멋지게 살아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 안에 거하며

주님께 붙어 있는

참빛 교회 식구들을 꼭 안아주시고

하늘의 힘을 공급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8.11 메일 목회서신)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좋은 아침입니다.

1.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을 보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아침에는 만나로

저녁에는 메추라기를 보내셔서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규칙이 있었습니다.

안식일을 제외한 6일 동안은

1일분의 만나와 메추라기만을 가져가야 합니다.

욕심껏 더 거두면

그 다음날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서

먹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16:20).

대신에 안식일 날은 일하지 않았기에

이틀 분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만나와 메추라기는

말 그대로 일용할 양식(daily bread)”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적어도

두 가지 하나님의 뜻이 숨겨져 있었을 것입니다.

첫째로,

욕심은 금물이라는 것입니다.

욕심껏 더 거두었지만 결국 썩고 말았습니다.

둘째는

자신의 백성을 먹이시는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하루 하루 사는 것이지요.

다음 날 만나와 메추라기가 내리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굶어 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광야 40년 동안 어김없이

아침 저녁으로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책임져 주심을

매일 매일 체험한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에도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가 나옵니다.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구할 수 있습니다.

꼭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때로 우리의 기도 (특히, 간구-petition)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으로 드려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뿐만 아니라

내일과 모레 그리고 평생 동안

먹거리를 확보해 놓으려는 욕심일 수도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벗어나는 기도입니다.

저는 지난 번 설교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마다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하나님 제 욕심이었군요

아직 하나님의 때가 아니군요

그러면서

제 기도생활과 신앙을 점검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Give us today our daily bread”)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신 하나님께서

매일같이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꼭 붙잡고

오늘 하루를 살아갑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

아버지께서 공급해 주시는

하늘 만나와 메추라기에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8.4 메일 목회서신)

걸어가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어떤 분이 자신의 블로그에 걷기 운동의 효과를

34가지로 정리해 놓았습니다.

그 중에 몇 가지만 소개합니다.

“면역 기능이 좋아진다. 좋은 콜레스테롤이 증가하고 나쁜 콜레스테롤이 감소한다. 비만이 개선된다. 각 장기의 혈액순환이 좋아진다. 자신감이 생긴다.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 단기 기억력이 향상된다.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다. 무기력해지지 않는다.

미국의 맑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힘차게 한 보 한 보 내딛는 걷기 운동이야말로

돈 한푼 들지 않는 보약인 셈입니다.

저도 일주일에

3번 이상 매번 3마일 정도를 걸으려고 노력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아내와 서로 채근하면서 걷기를 실천하려 애를 씁니다.

운동을 하면 확실히 심신이 활기차짐을 느낍니다.

우리 모두 걸읍시다.

걷기운동의 효과를 누려봅시다.

2.

구약성경에서 걷다는 동사는 할라크입니다.

이 말은 구약성경에 무척 많이 나옵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신앙의 길을 가는 것을

모두 할라크라는 동사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것도

할라크라는 동사를 사용합니다.

인생길을 걸어갈 때도

할라크라는 동사를 사용합니다.

지난 주일 설교에서 함께 나눈

시편 116 9절 말씀

내가 생존세계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

(I will walk before the Lord in the land of the living)

시편기자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여호와 앞에서 걷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3.

우리들은 오늘 하루도 걸어야 합니다.

운동 삼아 걸어야 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우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걷는 길에

하나님께서 동행하심을 믿고

팔을 앞뒤로 흔들면서

보폭을 넓게 하고 힘차게 걸어봅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

참빛 교회 식구들의 발걸음에

하늘의 힘을 더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7.28 메일 목회서신)

공동체

좋은 아침입니다.


1.

세상에는

아름다운 말이 꽤 많이 있지요.


그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할 좋은 말이 바로
더불어또는 함께일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것을 두고

우리의 옛 자아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는다고 했습니다( 2:5-6).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렇게 함께의 은혜를 체험한 우리들 역시

예수님 안에서 한 형제 자매된 지체들과

더불어/함께 거해야 합니다.

2.

어제 수요예배에서는 고린도전서 12장을 배웠습니다.

바울은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설명한 후에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에 비유합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은 어떤 은사를 가졌든지

어떤 지위를 갖고 있든지

모두 그리스도의 몸(body)을 이루는 지체들 (parts)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몸의 모든 지체가 다 필요하듯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이루는 각각의 성도들이

다 필요하고 제 몫(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자주 쓰는 말로 하면

한 식구” “하나님 나라의 한 가족입니다.

공동체를 이루는 우리들은

서로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말 그대로 동고동락(同苦同樂)해야 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공동체의 모습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고전 12:26-27)

손가락에 티눈만 생겨도

온 몸이 아픕니다.

그 티눈이 없어지면 얼마나 개운한지 모릅니다.

한 몸을 이루는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3.

우리 참빛 교회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기 원합니다.

아픈 지체들, 고난 가운데 있는 지체들과 함께 아파해야 하고,

어려움의 짐을 서로 나눠져야 합니다.

많은 말이 필요 없습니다.

함께 한다는 표시로

그저 손을 꼭 잡아주고,

뒤에서 간절히 기도해 주면 됩니다.

또한

좋은 일이 생긴 식구들이 있으면

그들과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아무리 같은 교회 식구라도

남들이 자신보다 잘되면 시샘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아니라

사단이 주는 유혹일 것입니다.

또 우리 본성이 그렇게 생겨 먹었습니다.

교회 식구들의 좋은 일에

진심으로 기뻐하고

진심으로 축하해 주기 원합니다.

함께의 은혜를 서로 나누는 것이지요.

지금 이 순간

어려움을 겪는 이웃들이 생각나거든

그들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그들의 심정으로 간절히 기도함으로 오늘 말씀을 실천해 봅시다.

하나님 아버지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참빛 교회 식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7.21 메일 목회서신)

신앙의 숙련

좋은 아침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코스타에 갔었기에

목요서신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대신에 일주일 동안

젊은이들과 더불어 아주 좋은 시간을 갖고 왔습니다.

1.

오늘 신문에

오바마 대통령이

아프간에 참전했던 페트리(32) 상사에게

명예훈장을 수여하는 사진과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작전을 하다가

다리에 총상을 입었습니다.

그때

탈레반이 던진 수류탄이 동료 병사들

옆에 떨어졌습니다.

페트리 상사는 자신의 부상은 아랑곳하지 않고

수류탄을 집어서 멀리 던지려다가

그만 수류탄이 그의 손에 터지면서

손에도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기사와 더불어 실린 사진에 보면

오바마 대통령과 악수하는 페트리 상사의 손은

인조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당시에는 훈련에 따라 거의 본능적으로 움직였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페트리 상사는

수류탄이 동료 병사들 옆에 떨어지자

그 동안 훈련한 대로

어쩌면 반사적으로 집어 던지려 했다는 것입니다.

훈련한 것이 몸에 베어 있었다는 뜻이겠지요.

2.

매사에 훈련이 중요합니다.

반복해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지루해 보이고

당장에는 별로 유익이 될 것 같지 않지만

어려운 일이 갑자기 닥치거나

매우 중요한 순간에 그 위력이 나타납니다.

신앙도 예외가 아닙니다.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 와서 예배하는 것만으로는

신앙의 훈련이 되기 어렵습니다.

남은 6일 동안 세상 속에서

끊임없이 신앙을 훈련해야 합니다.

성경말씀 전체는

하늘 나라 백성들인 그리스도인들이

열심히 연습하고 따라 살아야 할 훈련 교재입니다.

그 가운데 특별히 훈련해야 할

세가지 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유명한 말씀이지요 (데살로니가전서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 세가지 명령을 평소에

열심히 훈련해서 Master(숙달)해 놓는다면

우리들 인생 길에 위기가 닥치거나

중요한 결정의 순간을 맞았을 때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행동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참빛 교회 식구들이

각자의 삶 속에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훈련을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7.14 메일 목회서신)

어린 왕자

좋은 아침입니다.

1.

책꽂이에서

<어린 왕자>라는 책이 눈에 들어와서

단숨에 읽었습니다.

작은 문고판인데

1982 6 7일 구내서점에서

샀다고 메모를 해 놓았네요.

먼지 알러지가 있는 저는

읽는 내내 몸이 근질근질했지만

옛날 생각을 하면서 읽어 내려갔습니다.

줄을 쳐 놓은 것을 보면서

청년시절 제 생각 속으로 들어갈 수 있어서 좋았고

이제 50을 바라보면서

새롭게 줄을 쳐야 할 구절들도 있었습니다.

2.

어린 왕자는

어른들을 위한 소설로 유명합니다.

주인공인 ” (저자인 생떽쥐뻬리의 가상인물)

어릴 적 화가가 되려는 꿈을 접고

비행기 조종사가 되어서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합니다.

그때 아주 작은 별에서 온 어린 왕자를 만납니다.

어린 왕자는 지구에 오기까지

여섯 개의 작은 별들을 지나왔습니다.

모두 한 사람씩 살고 있는 작은 별들이었습니다.

소설 속에서 어린 왕자가 지나온 여섯 개의 별은

위선과 쾌락과 물질 등에 사로잡혀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하는 어른들의 세계를 상징합니다.

어린 왕자는 일곱 번째로 지구에 도착해서

여우를 만납니다.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길들임이 무엇인지 가르쳐줍니다.

길들이고 길들여지는 것은

누군가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랍니다.

세상에 수 많은 같은 것들이 있지만

서로 길들여지고 관계를 맺게 되면

서로에게 아주 특별한 하나로 다가온답니다.

여우는 작별인사를 하는 어린 왕자에게

매우 중요한 것을 가르쳐줍니다.

잘 가라. 내 비밀을 일러 줄게. 아주 간단한 거야.

잘 보려면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3.

어린 왕자를 읽으면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삽니다.

그 가운데 그리스도인들도 꽤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과 관계를 맺으십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들이 하나님께 길들여져야 함을

어린 왕자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어디 하나님과의 관계만 그렇겠습니까?

부부관계나 이웃과의 관계나

서로에게 길들여져야 합니다.

그때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특별한 너와 나의 관계가 이뤄지고

거기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길들여지는 것은

서로 서로 마음을 주고 받는 것입니다.

자신을 주장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 순수한 믿음으로

길들여지길 간절히 원합니다.

하나님과

그 어떤 것도 끊을 수 없는 친밀하고 특별한 관계로 길들여질 때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로마서 8:38-39)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길들여지게 하시고

그 어떤 세력도 끊을 수 없는

주님의 사랑을 항상 느끼며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6.30 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