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깨어있네”

좋은 아침입니다.

1.

예년 같으면

정말 날씨가 좋다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파란 하늘에 맑은 날씨가 계속되어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지역 날씨가

비가 내리고

아침 저녁에는 지나치게 서늘합니다.

하긴 보스턴에 토네이도가 왔다네요.

토네이도는 중서부에서 발생하고

동부에서는 여름에 허리케인이 와도

토네이도는 거의 오지 않는데 말입니다.

요즘은 이래 저래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여기저기서 생기는 듯 합니다.

주일날까지 비가 내린다는 예보입니다.

여름철(?) 감기도 유행이랍니다.

건강 조심하셔야겠습니다.

2.

몇 년째 암투병을 하고 계시는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

<희망은 깨어있네>를 읽었습니다.

육신의 아픔 가운데

쓰신 시()들이어서인지

한 절 한 절이

마음 깊이 다가옵니다.

우리 모두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몸과 마음에 아픔을 갖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조용히 무릎 꿇고

십자가의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면

그 아픔이 우리 안에서 기쁨으로 변하는 것을

종종 체험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힘이겠지요.

그래서 우리들은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3.

이해인 시인의

<희망은 깨어있네>라는 시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면서

우리 안에 있는 아픔과 연약함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기 원합니다.

나는 늘 작아서 힘이 없는데

믿음이 부족해서 두려운데

그래도 괜찮다고 당신은 내게 말하는군요.

살아있는 것 자체가 희망이고

옆에 있는 사람들이 다 희망이라고

내게 다시 말해주는 나의 작은 희망인 당신

고맙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숨을 쉽니다.

힘든 일이 있어도

노래를 부릅니다.

자면서도 깨어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6월의 첫 번째 주일을 맞는

서머나 식구들께

희망의 빛을 비춰주시고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잠잠히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6.2 메일 목회서신)

온전함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제가

개인적으로 그리고 목회적으로

고민하는 주제가 있습니다.

온전함입니다.

온전한교회, “온전한성도,

온전한신앙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지냅니다.

우리는 자칫 온전함이라는 말을

우리 자신의 외적인 신앙행위나

다른 사람들이 평가하는 (칭찬하는) 모습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온전함

학교에서 받는 A학점처럼

겉으로 들어나는 업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A학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과 행동으로 그들을 평가하고 판단하게 됩니다.

온전함이라는 말을 두고

우리들끼리 키재기를 하고

서로 상대적으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온전함이 이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엄격히 말하면

그것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2.

온전하다는 말은

사람의 평가기준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겸손을 뜻할 것입니다.

복음성가의 가사 그대로

나의 작음을 알고 그분의 크심을 아는 것

곧 온전함일 것입니다.

일종의 역설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온전함이나

겉으로 들어나는 것과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온전함은

어제 배운 고린도전서 말씀대로

우리 안에 있는 묵은 누룩을 없애고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옷 입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전5:8)

묵은 누룩으로 더러워진 우리의 마음까지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겨 주시고

한없이 사랑해 주시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온전한 신앙일 것입니다.

3.

그러고 보니

온전함은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부족함을 발견해가는 과정입니다.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하나님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이 필요함을

절감하고 인정하는 것이

곧 온전한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부족을 채우는 것이

온전함의 길임을 깨닫습니다.

거기서 그리스도인의 겸손이 나오고

섬김이 나오고

진실된(거짓 없는) 기도가 나오게 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4;13)

오늘 하루

저와 서머나 식구들 모두

하나님 안에서 온전한 신앙의 길로 나가기 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분의 발걸음을 따라서 걷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온전한 신앙을 추구하게 하옵소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 위해서

우리의 부족함을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채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5.26 메일 목회서신)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우리 동네에 이상한 말을 퍼뜨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연세가 89세가 되었으니

노망이라고 할 수도 있고

그의 이름이 캠핑이니 약간 정신 줄이 나간 것 같기도 하지만

지역 한인 신문에까지 전면광고가 나올 정도이고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세상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사람입니다.

바로 내일 모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늘로 들려 올라가는

휴거(rapture)가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하는

해롤드 캠핑이라는 분입니다.

이분은 오클랜드에 있는

패밀리 라디오 설립자인데

노아의 홍수로부터 날짜를 인위적으로 계산해서

5 21일 휴거가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사실 예전에도 휴거를 주장했었는데

자신의 주장이 빗나가자

이번에 다시 개정판을 내놓은 셈입니다.

휴거는 하나님의 구원계획 속에 있기에

그 날을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캠핑과 같은 종말론자들의 주장에 맞춰서

예수님께서 오실 것 같지 않기에

저는 지금 열심히

주일 설교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2.

휴거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는

데살로니가전서 4:16-17절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을 좇아 강림 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여기에 요한계시록 20장에 나오는

천년왕국과 예수님의 재림이 결합해서

복잡한 이론들이 발전되었습니다.

이번에 오클랜드에서 시작된

해롤드 캠핑의 휴거는 예수님의 재림 전에

그리스도인들이 휴거하고, 앞으로 5달 동안 환난이 온 후에

10 21일에 예수님이 다시 오심과 동시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캠핑의 주장은

하나님의 계획을 자기 마음대로 추측하고 판단하는

교만이고 월권입니다.

물론

성경은 앞으로 될 일에 대해서

아주 세세하게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캠핑과 같은 사람들은 물론

여러 가지 이론들이 제시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할

분명한 성경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러면 지금처럼 죄악된 세상이 사라지고

의와 희락과 화평의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날의 징조에 대해서

마가복음 13장과 마태복음 24장에서 말씀하셨기에

그것을 기준으로 마지막 때를 가늠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날을

그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3.

요즘 세상의 모습으로 보아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멀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캠핑과 같은 시한부 종말론자들처럼

그 날에 연연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 처녀의 비유와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서( 25) 부탁하셨듯이

언제든지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우리의 죄를 회개하는 정결한 마음,

그 동안 나누지 못한 사랑을 마음껏 나누고 용서하는 마음,

아침안개처럼 없어질 세상 것에 미련을 두었다면, 이제 영원한 것을 쫓는 마음을 갖고,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듣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을 종말론적인 삶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인생에/세상에 종말이 있다고 생각하고

주어진 삶을 맞이하고, 준비하고, 정돈하는 것이지요!

우리들이 캠핑과 같은 종말론자가 되어서는 안되지만

누구에게나 종말론적인 삶을 살아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오신다면

우리들은 요한계시록 마지막 말씀처럼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흔쾌히 기쁨으로 맞을 수 있을런지요?

오늘 하루

우리 각자의 신앙과 삶이

과연 예수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돌아보면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모으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기에 손색이 없는

우리의 신앙과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5.19 메일 목회서신)

“시작하신 이”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에는

졸업식을 위해서 인디애나에 다녀오느라

목요서신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번만큼 발걸음이 가벼웠던 여행도 없었습니다.

미국에 공부하러 온 지 13년 만에

그리고 인디애나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한지 11년 만에 졸업을 했으니

제가 얼마나 홀가분할지는 상상이 되시지요?

주일날 여선교회 회장님께서

풍선 13개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언젠가 스쳐 지나가듯이 했던 말을 기억하시고

준비해 주신 것을 보고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해 주신

서머나 식구들께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2.

시작이 반이라는 우리 속담이 있습니다.

시작하기가 어렵지 일단 시작만 하면

일을 끝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제 경우

시작 보다 끝이 더 어려웠습니다.

이토록 학업이 늦어지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습니다.

교회가 힘들 때는 거의 포기했었습니다.

아니 제 공부를 챙길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하나님께서는 제 인생 속에

학업의 줄도 꼭 붙잡고 계셨습니다.

작년에 우리 교회 역사이래

아주 평온한 시간을 맞았고

논문을 지도하시는 교수님들께서 기대이상으로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저 역시 나이에 걸맞지 않게(?) 일주일에 나흘은

하루에 10시간 이상 논문과 씨름할 수 있었습니다.

돌아보니 제가 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셨음을

개인적으로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3.

인디애나를 다녀오면서

제가 틈틈이 묵상하며 붙잡고 있는

빌립보서 1 6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Being confidence of this, that he who began a good work in you will carry it on to completion until the day of Christ Jesus.

물론 이 말씀은 빌립보 교회에 심겨진 복음과

빌립보 교인들의 신앙을

예수님께서 끝까지 지키시고 이루실 것이라는 사도 바울의 확신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시작하신 이

이루시는 이가 모두 예수님이십니다.

어디 구원뿐이겠습니까?

우리의 신앙과 삶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고 산다면

예수님께서 친히 시작하시고 이루실 것 입니다.

서머나 식구들의 인생길에

서머나 식구들의 삶 속에

예수님께서 선한 일을 시작하시고

또한 이루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하루

서머나 식구들께서 하시는 일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간섭하셔서

시작하게 하시고, 이루어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새 날이 밝았습니다.

아버지를 부르면서 하루를 시작하신

서머나 식구들의 삶을 지켜주시고

저희 속에 시작하신 선한 일을 분명히 이루어주옵소서.

지금은 눈물로 씨를 뿌리지만

결국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하옵소서.

힘을 주시옵서!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5.12 메일 목회서신)

부활절 그 이후

좋은 아침입니다.

1.

이제 4월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캘린더를 갖고

우리의 인생을 셈하고

하루, 한달, 그리고 한 해를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인들이

곁에 두고 따라 살아야 할 캘린더가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력입니다.

오래 전부터

교회가 지켜왔던 캘린더이지요.

교회력은

예수님의 탄생인 성탄절을 기다리는

대림절로 시작됩니다.

성탄절을 맞은 후에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3년간의 공생애 (public life)를 묵상하는

주현절이 두 달 이상 계속됩니다.

주현절이 끝나면

우리가 방금 지냈던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사순절은 십자가의 고난을 넘어서

부활의 아침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주현절과 사순절 기간 동안에는

복음서를 읽으면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하신 사역과

예수님의 마음을 묵상합니다.

부활절을 축제로 지낸 교회는

오순절 성령강림을 기대하면서

7주간을 보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까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임재를 기도 가운데

아주 아주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오순절이 지난 다음에는

11월의 대림절을 맞을 때까지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의 삶을 살아 갑니다.

오순절 이후의 기간이 긴 것은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성령님의 임재와 역사 가운데 사는 것임을 깨우쳐 주기 위함일 것입니다.

부활절 이후에는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을 읽으면서

우리의 신앙은 물론

교회, 즉 신앙 공동체가 어떻게 세워져야 할 지를

묵상하면서 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2.

이제 우리는

부활절을 지내고

오순절 성령 강림을 향해서 나가고 있습니다.

부활절은

사망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 왔고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졌음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오순절은

구원을 얻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의 인도하심과 충만함이 꼭 필요함을 깨우쳐 줍니다.

성령은 보혜사(保惠師, the counselor)가 되십니다. ( 15;26)

우리를 도와주시고,

신앙과 인생 여저의 상담자가 되어 주십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 16:13)

진리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시고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해 주십니다.

성령은 능력이십니다. (1:8)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하고 그것을 체험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의 능력을 힘입게 됩니다.

부활절을 지내고

새로운 생명의 은혜를 체험하신

서머나 식구들 모두

이제부터 오순절 성령강림을 향해서 나가시길 부탁 드립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예수님의 삶과 사역

그리고 교회에 임하신 성령의 역사를

묵상하면서 한 해 한 해를 살아갑니다.

이것이 행복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제부터 앞으로 50여일 동안

서머나 식구들이 삶 속에서

그리고 우리 교회가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체험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4.28 메일 목회서신)

성 금요일에…

1.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날,

성금요일입니다.

교회의 전통에 따라

서머나 식구들께도 금식하시면서

성금요일을 경건하게 보내실 것을

부탁드렸습니다.

매년 맞는 사순절, 고난주간

성금요일과 부활절이기에

무덤덤하게 형식적으로 보내기 쉽습니다.

하지만

2011년 성금요일은 우리들 개인의 인생은 물론

인류 역사에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들은 매년 맞는

교회력의 절기들을 소홀히 보낼 수 없습니다.

때마다 예비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들 각자를 향하신 초청이 있기 때문입니다.

2.

저는 성금요일에

이사야 53편을 묵상합니다.

그가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께서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졌으나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

(이사야 53:4-6, 표준새번역)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는 예수님,

수치요 저주의 십자가에 맨 몸으로 달리신 예수님,

그리고 급기야 죽음에 이르신 예수님을

마음 속에 그리면서

이사야 말씀을 한 구절 한 구절

천천히 읽으면서 묵상하는 것이지요.

무한 감사가 넘칩니다.

눈에 눈물도 흐릅니다.

예수님의 음성이 찬송가 가사와 함께

마음 속에 메아리처럼 퍼져옵니다.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 길을 주었다.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느냐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느냐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면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우리는 예수님께 드린 것이 없습니다.

도리어 자꾸만 더 달라고만 졸라댑니다.

그 귀한 생명의 은혜를 받았건만

아침안개처럼 없어질 이 세상 것에 연연하지 않습니까?

우리를 위해서 몸 버려 피 흘리신

예수님의 은혜를 깊이 묵상하고,,

그 은혜에 보답하기로 결심하시는

2011년 성금요일이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보내주시고,

우리들 대신 십자가에 달력 죽게 하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서머나 식구들 위에

십자가의 은혜가 잔잔히 임하게 하옵시고

그 은혜를 따라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4.20 메일 목회서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좋은 아침입니다.

1.

사순절 막바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매년 맞는 사순절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늘 새롭게 다가오십니다.

올해는 특별히

일본에 밀어닥친 쓰나미와

계속되는 원전의 방사능 유출을 보면서

인간이 쌓아놓은 문명과 우리의 생명이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실감하면서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염려와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삶을 점검하고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을

하나님께 두기로 결심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어야 함도 기억합니다.

2.

지난 주 설교 제목 그대로

사순절은

십자가의 은혜를 묵상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는

무한한 은혜의 자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사라졌고,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졌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는

승리의 자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과 죄의 세력을 모두 이기시고

다 이루었다라고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십자가를 앞에 놓고 묵상할 때

십자가의 세로목(I)을 따라서 하나님께

제 마음을 올려 드립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가로목 (-)을 따라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맨 나중에는

십자가의 세로목과 가로목이 만나는 한 가운데

제 마음을 고정시키고

나를 위해서, 우리 모두를 위해서

온 세상을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을 묵상합니다.

3.

십자가는 능력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A. W. Tozer The Radical Cross라는 책에서

십자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류에게 나타난 일들 가운데 가장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 때, 예수님은 분명히 살아 계셨습니다. 하지만 6시간 후,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렸을 때는 완전히 숨을 거두신 후였습니다. 십자가가 기독교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음에서 살아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에 대한 복음을 전했을 때, 그들이 전한 것은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제자들은 세상 어디를 가든지 십자가를 갖고 갔고, (십자가의) 획기적인 능력이 똑같이 그들과 함께 했습니다. 십자가의 놀라운 복음은 그리스도를 핍박하던 다소 사람 사울을 멋진 그리스도인으로, 복음의 사도로 변화시켰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악한 사람을 선한 사람으로 변화시키기도 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을 모르던 세상을 뒤흔들었고, 사람들의 생각은 물론 양심과 삶을 완벽하게 바꾸어놓았습니다.

사순절 막바지를 지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이

우리 모두에게

그대로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합시다.

십자가 앞에 우리 자신을 내어놓고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들 머리부터 발끝까지 관통하고

충만케 임하기를 기도합시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온 세상에 임하게 하옵소서.

십자가 든든히 붙잡고 세상에서 살아가는

서머나 식구들께 능력으로 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4.13메일 목회서신)

주의 말씀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여섯 번에

걸쳐서 수요예배에서는

<성경 바르게 읽기>라는 주제를 갖고 공부했습니다.

수요예배에 오시는

성도님들의 연령대가 높아서

조금 염려도 했지만,

기대한 것보다 더 훌륭하게

즐겁게 말씀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구약 성경가운데

시편 119편은

매우 특이한 구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다 ( 119:105)

Your word is a lamp to my feet

and a light for my path.

우선,

176절로 이루어진 시편 119편은

8절씩 22개의 연()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22개는 히브리어 알파벳 숫자와 같습니다.

또한 각 연의 8절은

같은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시작됩니다.

예를 들면

첫 번째 연인1-8절은

히브리어 알파벳 첫 글자인 알렙으로 시작되는데

첫 연을 이루는 8절은

모두 알렙으로 시작합니다.

그 뒤를 이어서

21개의 연이 같은 구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마 성경이 쓰여지던 고대 이스라엘에서

성경에서 가장 긴 장(chapter)

시편 119편을 암송하기 위한 장치였을 것입니다.

또한 성경에는

우리 식으로 하면

A 부터 Z까지 모두 들어 있음을

상징적으로 가르쳐주는 듯합니다.

2.

늘 강조하듯이

하나님 말씀에는 하나님의 영감

즉 하나님의 숨결이 깃들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이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그 안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들은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그 안에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20:31)

말 그대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생명 책입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앞에 인용한 시편 119 105절 말씀처럼

성경은 우리의 발에 등이 되고

우리 길을 멀리 비춰주는 빛이 됩니다.

신앙은 물론 인생 여정의

지침서요 나침반이 바로 성경인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듣고, 읽고, 공부하며,

암송 하고, 묵상 하시는

서머나 식구들 되시길 부탁 드립니다.

아침마다 큐티하면서 말씀을 곱씹으시고

시간되는 대로 틈틈이 말씀을 읽으시고

첨부한 지난 주일 설교를 들으신다면

말씀에 뿌리를 내린 심지가 견고한 그리스도인으로

굳게 서실 줄 믿습니다.

서머나 식구들 모두

시편 기자처럼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시편 119:103)

는 고백이 마음 깊은 곳에 임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119:165)

Great peace have they who love your law;

And nothing can make them stumble.

하나님,

오늘 아침에도

서머나 식구들께서

주의 말씀을 대할 때에

눈을 열어 주의 법에 기이한 것들(wonderful things in your law)을 보게 하시고

그것으로 하루 종일 기뻐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4.7메일 목회서신)

우물파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주일예배에서는

창세기 26장을 연속해서 설교하고 있습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들 야곱 사이에 낀 세대로

창세기에 등장합니다.

이삭에 대한 말씀은 아브라함과

야곱에 대한 말씀에서 겹쳐서 나오는데

창세기 26장만은

이삭에게 거의 모든 장()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6장에서

특별하게 눈에 띠는 말은
우물입니다.

흉년을 피해서

블레셋 땅 그랄에 머문 이삭은

가는 곳 마다 우물을 팝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파 놓았던 우물을

다시 팝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쫓아다니면서

이삭이 파놓은 우물을 자기들 것이라고

우겨댑니다.

이삭은 그때마다 양보했습니다.

그리고 옮겨 다니면서 우물파기를 계속합니다.

이렇게 이삭은

다툼과 대적함이 있던 에섹과 싯나를 지나서

넓은 곳 르호봇에 이르기까지

우물을 파고 또 팝니다.

2.

흉년이 지나서 고향 땅으로 돌아온

이삭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26:24)

(Do not be afraid, for I am with you;

I will bless you and will increase your descendents)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을 향한

약속을 다시금 확인한 이삭은

그 곳에 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하나님을 예배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삭은

종들을 시켜서

또 다시 우물을 팝니다.

이처럼 창세기 26장은

이삭을 우물 파는 사람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우물을 팠습니다.

물을 얻어야

자신은 물론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겠지요.

우리들도 삶의 현장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우물을

끊임없이 파야 함을 배웁니다.

3.

이삭이 팠던 우물은

말 그대로 생명수 (living water)였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다보면

이삭이 얻은 생명수는 단지 물(water)이 아님을 느낍니다.

그는

흉년으로 대표되는

죽음의 세상에서

생명(살길)을 찾아낸 것입니다.

요한복음 7 38절의 예수님 말씀이 연상됩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 7:38)

이삭은 땅 속에서

생수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들 안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은혜가

깊고 귀함을 다시금 느낍니다.

오늘 하루 서머나 식구들의

마음 속에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생수의 강이 흘러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우물을

꾸준하게, 끝까지

파고 또 파실

여러분 모두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파이팅!!!

하나님,

서머나 식구들

마음 속에

삶 속에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3.31메일 목회서신)

“깨어 있으라”

좋은 아침입니다.

1.

이번 주 Newsweek의 헤드라인은

지금이 종말 (Apocalypse Now)”이었습니다.

일본을 비롯한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지진과 쓰나미,

방사능 누출,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혁명들,

거기에 계속되는 불확실한 경제위기 등이

사람들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나 봅니다.

뉴스위크에서는

이상한 기호 넷이 들어간

다음과 같은 소제목을 붙였습니다.:

What the #@%! Is Next?

다음에 일어날 것은

아무도 모르고

행여나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암시 같습니다.

2.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재해 앞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삶을 돌아봐야 합니다.

지나친 종말론은 금물이지만

그래도 우리의 삶을

종말이라는 잣대에 올려 놓고

다시 한번 점검해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지나치게 세상을 추구하면서

지나갈 것들에 목숨을 걸고 에너지를 사용했다면

이 참에 과감히 정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셨을 때

내어 보일 수 있는 삶의 모습과 내용으로

모두를 전환하는 것이지요.

아마 많은 것을

버리고, 포기하고,

정돈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러한 신앙의 모습을

신약의 묵시록이라고 부르는

마가복음 13장에서는

주의하고 깨어있는 삶이라고 부릅니다.

주의하라 깨어있으라

그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하느니라 ( 13:33)

Be on guard! Be alert!

You do not know when the time will come.

주의하고 깨어있는 삶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종말을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삶을 미리 포기하면서

목을 쭉빼고

다시 오실 예수님만 기다리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주의하고 깨어있는 삶은

지금 이 순간

예수님께서 오신다면

무엇을 보여드릴 지

매일같이 준비하고 예비하는 삶입니다.

신앙 안에서

깨어서 기도하고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쭉정이 인생이 아니라

깨알처럼 가득 찬

알곡 같은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대하면서

하루 하루 천국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지요.

이것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

하나님,

우리가 더욱 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기로

매일같이 점검하고 결단하게 하옵소서.

서머나 식구들께

담대한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3.24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