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카토아 화산처럼

좋은 아침입니다.

1.

저는 인터넷 초기 화면으로

msn.com을 사용합니다.

그곳에 가면 여러 가지 정보들이 한꺼번에 나오는데

오랫동안 사용했던 터라 쉽게 찾아 볼 수 있고

이-메일 계정에 들어가면 my msn이라는 곳이 있어서

제가 필요한 정보를 편집할 수도 있습니다.

요즘에는 더 좋은 초기 화면이 있을지 모르지만

저는 한 가지를 정하면 그냥 그대로 밀고 나가는 성향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유행에 덜 민감해서인지 msn을 10여 년 이상 애용하고 있습니다.

오늘 msn 홈페이지 한 모퉁이에

인도네시아의 크라카토아 화산이 폭발하는 동영상이 떠있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화산활동을 하는 곳으로

섬 전체가 화산입니다.

화산이 폭발해서 터져 나오는 모습이

동영상에 있었습니다.

마치 원자폭탄이 터지는 듯한 개스와 연기와 빨간 불꽃!

땅 밑에 그런 엄청난 화력이 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도 화산의 분출을 막기 힘들어 보였습니다.

자연의 움직임 앞에서

우리들 인간은 무척 초라해집니다.

동시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모습과 능력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갖게 됩니다.

2.

크라카토아 화산이 터지는 동영상을 보면서

두 가지가 생각났습니다.

첫째는,

우리의 신앙이 저렇게 폭발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소망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내주하십니다.

성령의 능력은 화산의 폭발력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할 것입니다.

그 능력이 우리들 말과 행동 그리고 삶 전체에

폭발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니 화산이 저절로 폭발하듯이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신다면

그 능력이 저절로 밖으로 분출될 것입니다.

성령에 사로잡힌 삶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을 품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 이웃을 향한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장착해 주신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 안에서

하나님을 향해서, 세상을 향해서

화산이 폭발하듯이 분출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세상이 변할 것 같습니다.

온 세상이 사랑으로 가득 찰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다이내믹한 성령의 능력과

세상을 뜨겁게 달구는 사랑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로 세상에서 활동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크라카토아 화산을 보면서

우리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난번 설교에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가

“자신을 통제하고 자신이 변화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들 자신을 돌아보면, 그리고 깊이 그 내면을 살펴보면

만감이 교차합니다.

괜찮은 모습과 마음씀씀이도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도 있습니다.

반면에 드러내기 힘든 추한 모습도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습니다.

새해를 맞으면서

염려와 근심도 마음 속에서 자꾸만 생깁니다.

답답합니다.

어디론가 가고 싶습니다.

불안합니다.

때로는 화산처럼 폭발할 것 같습니다.

그때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나와서

마음을 모두 토해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감싸주시고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마음 속에 들어있는 만가지 모습을 하나님께 모두 토해내고

하나님께서 쓰시는 온유하고 정결한 마음으로

새롭게 새해를 맞아야겠습니다.

시편기자의 말씀이 마음에 다가옵니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시편 62:8)

3.

하나님,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을 의지합니다.

화산처럼 힘차게 분출되는 신앙을 갖게 하옵소서.

한 해가 가기 전에

우리 안에 쌓이고 쌓인 것들을

하나님 앞에 토해내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09.12.10일 이-메일 목회서신)

12월을 맞으며

좋은 아침입니다.

1.

어느덧 2009년의 마지막 달을 맞았습니다.

달력에 마지막 한 장이 남은 것을 보면서

왠지 마음이 싸- 했습니다.

어느 때부터인지 몰라도

달력의 맨 마지막 장을 남겨놓고 있으면

여러 가지 상념에 젖습니다.

한번

지난 열한 달의 삶을 커다란 테이블 위에

쭉 늘어놓았다고 가정해 보았습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해 보니

지난 한 해 동안의 삶이

마치 벼룩시장 테이블 위에 놓여진

오래된 제품들처럼 산뜻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거추장스러운 것들,

너무 오래된 것들,

고장 났다가 간신히 고쳐진 것들,

벼룩시장에서 싼값에 사가지만 결국에는 다시 버릴 물건들,

그래도 왠지 정감이 가는 오랜 친구와 같은 삶의 순간들과 추억들!

이처럼 한 해를 돌아보니

삶의 구비구비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구원하심이 임했음에

감사의 고백이 절로 나왔습니다.

2.

12월은 한 해 동안의 삶을

가지런히(decently)

정리하고 정돈하는 시간입니다.

버릴 것은 버려야 합니다.

부끄러운 것들은 불로 태워 없애야 합니다.

깨끗이 손질할 것들은 말끔히 고쳐야 합니다.

귀한 것들은 곱게 싸서 보관해야 합니다.

엉클어진 것들은 가지런히 정돈해 놓고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때 꼭 보관해 놓을 것이 있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행복했던 순간들입니다.

한없이 기뻤던 순간들입니다.

어거스틴은 그의 저서 고백록에서

참 행복과 참기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참다운 행복이란

당신[하나님] 안에서, 당신을 향하여, 그리고 당신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옵니다.

참 행복이란 이것뿐 그 외에는 없습니다. 혹시 다른 종류의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른 종류의 기쁨을 추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다운 기쁨은 아닙니다.

올 한 해 동안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 때문에

누렸던 참 행복과 참 기쁨을

열심히 기억해 내고 찾아내셔서

마음 한 켠에 가지런히 보관해 놓으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

올 해의 마지막 달을 지내면서

서머나 식구들의 마음이

하나님 안에서 누린 참 행복과 참 기쁨의 순간들로

가득 채워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09년 12월 3일 이-메일 목회서신)

Happy Thanksgiving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은 추수감사절이었습니다.

저 역시 지난 주 설교를 묵상하면서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훈련하면서 보냈습니다.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꾸만 저의 마음을 하나님께 갖고 가서

하나님께 맡길 때

저절로 감사가 나왔습니다.

오늘은

미국 교회에서 주최한

홈리스 만찬에 다녀왔습니다.

여선교회 회장님 가족,

이은자 권사님 내외분, 동한씨

그리고 김덕례 권사님까지…

우리 교회 식구들도 오셔서

우리에게 지정된 테이블에 앉으신 홈리스를 섬겼습니다.

매주 수요일 홈리스를 돕다 보니

이들과의 만남이 어색하지 않습니다.

눈에 익고 저를 좋아하는(?) 반가운 분들도 만납니다.

추수감사절의 정신을 조금이나마 실천할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2.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외적인 조건이 조금 나아졌거나

더 많은 것을 갖게 되었다고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내면 깊은 곳에서 샘처럼 솟아나는 감사입니다.

오스 기니라고 하는 분이

“인생(Long Journey Home)”이라는 책에서

그리스도인의 감사를 잘 표현해 놓았습니다.

당신은 특별한 존재로 인한 감사를 느껴 본 적이 있는가?

모래 속에서 발가락을 움직일 때,

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 소리를 들을 때,

장미 위의 이슬 방울을 바라볼 때,

살아 있다는 것의 경이로움을 느껴 본적이 있는가?

자연의 어떤 부분도 스스로 창조하거나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는가?

당신과 나, 그리고 온 우주를 포함한 이 모든 것들은

존재하기 위해 다른 누군가의 은혜를 입고 있다.

만물이 이토록 기대어 있는 그 분은 과연 어떤 분일까?

그 분은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시지요!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고 하나님께로 전해집니다.

세상의 감사와는 차원이 다르기에

우리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

우리 안에 하나님으로 인한

깊고 오묘한 감사가 매일 같이 샘솟게 하옵소서.

감사를 통해서

세상의 명예와 염려 그리고 불안을 떨쳐 버리게 하옵소서.

아무리 가늘더라도

감사의 끈이 쉬임없이 이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09.11.26. 이-메일 목회서신)

불청객이 찾아오면…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2년여 어려움을 겪으면서

제 마음에 한 가지 증세(?)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어느 순간 마음이 가라앉는 것입니다.

그때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지요?

저만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거칠고 험한 세상을 힘겹게 사는 우리 모두에게

때때로 조금씩 나타나는 징후들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속에도

어두움의 그림자가 다가옵니다.

삶의 무게가 우리를 짓누르고

이런 저런 일들로 힘겨울 때

종종 찾아오는 불청객입니다.

2.

불연 듯 때로는 슬며시

마음 속에 불청객이 찾아오면

아내와 함께 동네 뒷산을 걷습니다.

요즘은 왕복 5마일을 걸을 때도 있습니다.

자꾸 걸으니 조금씩 더 멀리 걷게 되는군요.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을 바라보면서

심호흡을 합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만물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느낍니다.

어떤 때는

그 즉시 책상에 앉아서 하나님 말씀을 펼칩니다.

한 가지 책을 정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습니다.

줄을 치면서…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서…

말씀 속에 깃든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면서…

위로와 격려의 말씀에 힘을 얻습니다.

오늘 저녁에도

베드로전서를 읽었습니다.

5장 밖에 되지 않아서 쉽게

그렇지만 구절 구절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면서

읽고 묵상했습니다.

베드로전후서는 힘들 때 자주 읽는 말씀입니다.

역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 안에서 안식해야 하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 안에서 살길을 찾아야 함을 다시금 느낍니다.

3.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사도 베드로는

큰 괴로움을 주고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불시험(painful trial)을 당해도 놀라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도리어 즐거워하고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벧전 4:13-14)

즐거워하고 기뻐할 이유는

말도 할 수 없는 시련과 환난이 닥쳐도

영광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리어 예수님으로 인해서 욕을 받는 것이 복된 일입니다.

이처럼 신앙은 역설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말씀이 마음 한 가운데 능력으로 임했을 때

깨닫게 되는 신비입니다.

지난 주에도 소개했던 데이빗 제레마이어 목사님의 책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이 세상은 쾌락을 전면에 내세우고, 고통은 뒤에 숨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때로 고통이 전면에 드러나지만,

그 배후에는 항상 기쁨이 있다.

4.

하나님,

신앙의 여정을 걷는

서머나 식구들의 삶이 때로는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그 배후에 있는 기쁨을 찾고 누리게 하옵소서.

고난 가운데도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는

신앙의 신비, 능력, 역설을 몸으로 체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09.11.19. 이-메일 목회서신)

굿 모닝 2

좋은 아침입니다.

2주전 이-메일 목회서신을 통해서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시기를 부탁 드렸습니다.

저도 눈을 뜨자 마자

침대에서 곧바로 “하나님 아버지”를 부릅니다.

우리처럼 의지도 약하고, 힘도 없는 범인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아니 우리 자신을 알면 알수록

아침만이 아니라 하루 종일 순간순간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면서 살 수 밖에 없음을 실감합니다.

데이빗 제레마이어라는 목사님께서 쓰신

“생명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Signs of Life)”이라는 책에서

아침에 드리는 기도에 대한 내용이 있기에 함께 나눕니다.

매일 아침 그분에 대한 헌신을 재다짐하고, 그날 하루 당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인도해 주시기를 간구하라.

대영제국 군목을 지낸 테일러 스미스 주교(Bishop Taylor Smith, 1860-1937)는 이런 글을 남겼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나는 즉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신속하게 옷을 입고, 세수와 면도를 한 뒤 머리를 빗는다. 그 다음에는 정신을 차리고 정식으로 제복을 갖춰 입은 다음, 조용히 서재로 간다. 거기서, 전능하신 하나님과 나의 왕 그리스도, 내 주권자 되신 분의 충성스런 종으로 겸손히 그 앞에 서서, 그날 하루를 주님을 위한 섬김을 다짐한다.”

그 다음에는 유쾌한 태도로 하루를 시작하라. 우리 얼굴에는 그리스도의 믿음이 드러나야 한다. 베드로전서 3장 15절의 권고를 잊지 마라: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다시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 삶에서 빛을 발하는 희망과 기쁨을 볼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가장 효과적으로 증거할 수 있다.

오늘 하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유쾌한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오늘 하루

삶의 처소에서 만나는 이웃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시는 작은 예수의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능력을

삶 한 가운데서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힘내십시오.

하목사 올림

(2009.11.12. 이-메일 목회서신)

이루시는 하나님

좋은 아침입니다.

지난 주에 부탁 드렸듯이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하나님 아버지”를 찾으셨는지요?

로마서 10:12절의 말씀대로

매사에 주님을 부를 때 풍성한 은혜가 임할 줄 믿습니다.: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제가 지난 3개월 동안 코스타에서 만났던 형제 자매들과

온라인으로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이번 주가 마지막인데, 마지막 성경본문이 살전 5;23-24절입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모든 삶이 거룩해 지기를 원하십니다.

성화의 길입니다.

동시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거룩함을 이루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결심하고

그 삶을 위해서 안간힘을 쓸 때

하나님께서 우리 손을 잡고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힘겹고 거친 인생길이 펼쳐질 때 마다

빌립보서 1장 6절을 묵상하면서 힘을 얻습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아멘

오늘도 각자의 삶의 처소에서

열심히 살아가실 서머나 식구들을 눈 앞에 그려봅니다.

그리고 “파이팅!”을 외쳐드립니다.

여러분 모두로부터

“하나님께서 이루셨습니다.”라는 간증과

“하나님께서 이루실 줄 믿습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이

끊이지 않기를 기도하겠습니다.

하목사 올림

(2009년 11월 5일 이-메일 목회서신)

굿 모닝!!!

좋은 아침입니다.

Good Morning!

우리가 자주 쓰는 아침인사입니다.

그런데 정말 “Good morning이십니까?’라고

누군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으면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일 것 같습니다.

그때 Good morning앞에 예수님 때문에라는 말을 붙히면

금방 대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때문에 좋은 아침입니다!

벌써 2년이 지났나요?

제가 한참 동안 서머나 식구들께 부탁 드린 것이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십시오.

그때는 많은 분들이 그대로 실천하셨습니다.

지금은 많이 잊어버리셨지요?

혹시 잊어버리셨다면

내일 아침부터 눈을 뜨자 마자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고 하루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시편 65 8절에 보면

주께서 아침 되는 것과 저녁 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시며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이것보다 더 큰 복이 있을까요?

아침은 새날의 시작입니다. 시작이 즐거워야 합니다.

저녁은 하루의 마침입니다. 마무리도 즐거워야 합니다.

즐거움의 이유와 원천은

세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 하나님께로부터 오는/하나님께서 주시는 즐거움입니다.

여기서 즐거워하게 하신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에는

즐거워 소리치다” “즐거워 찬양하다라는

적극적이고 청각적인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10월의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두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는 워낙 날씨가 좋지만

주초에 씨애틀에 가보니 가을 기운이 역력했고

낙엽도 지고 비도 부슬부슬 내렸습니다.

이처럼 가을이 외로운 계절이라고 하지만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항상 기뻐합니다.

주께서 아침이 되는 것과 저녁이 되는 것을 즐겁게 하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우리 서머나 식구들,

각지에서 이메일을 받는 모든 주의 백성들,

주님으로 인해서 아침을 맞고 저녁이 되는 것이

한없이 즐겁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09 10 29일 이메일 목회서신)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굿 모닝!!!

1.

어느덧 10월 한 달도 저물어갑니다.

지난 주 설교시간에 말씀 드렸듯이

저는 일주일을 3일로 사는 것 같습니다.

주일에 설교하고,

수요일에 성경공부하고,

토요일에 주일을 준비하면서

나머지 월 화 목 금은 어디로 가 있는지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갑니다.

어디 저만 그럴까요?

서머나 식구들 가운데는

일주일을 하루로 사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아니 시작만 하면

한 달도 금방 가지 않던가요?

이렇게 빨리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삶을 경영(business)하는 것이 아니라

바쁘다 바빠를 외치면서 허둥지둥 분주하게(busyness)살아갑니다.

2.

갈라디아서 5 6절 마지막에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faith working through love)”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을 곱씹으면서 묵상해 봅니다.

몇 번을 입술로 중얼거려봅니다.

눈을 감고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마음 속에 이 말씀을 담습니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삶 속에 갖고 있으면 삶이 부요 해지고

자신감도 넘칠 것 같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게 승화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굳건한 믿음은

삶의 능력을 더해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붙잡고 살아가실

서머나 식구들을 눈 앞에 그리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오늘 하루 동안

서머나 식구들의 마음 속에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세요.

서머나 식구들의 삶 속에

당신의 사랑을 가득 부어주세요.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바쁜 일상 속에서

순간순간 당신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도와주세요.

당신의 사랑을 흠뻑 받고

참된 믿음이 높이높이 자라가게 도와주세요.

그 믿음으로 오늘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게 도와주세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서머나 모든 성도들과 교회 위에

구체적으로 임하기를 소원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참된 믿음이듯이

사랑으로 드리는 기도 역시 그 힘이 무척 강하답니다.

지금 바로

여러분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

아니 왠지 기도해 주고 싶은 이웃들

(설령 그들이 썩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사랑으로 기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샬롬,

하목사 올림

(2009. 10.22 메일 목회서신입니다)

풍선소년해프닝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10 15) 오후

콜로라도주에서 일대 소동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집 뒤뜰에 커다란 풍선기구를 만들어놓았답니다.

그런데 바람이 불면서 이 풍선이 날아갔습니다.

집 주인은 풍선아래 있는 상자 속에

자기 아들이 타고 있다고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수천 피트 상공을 날아가는 풍선은 TV에 중계방송이 되었습니다.

덴버 국제공항도 풍선이 지나가는 동안 활주로를 폐쇄했고

인근 공군기지에서 블랙호크 헬기까지 동원되어서

풍선 속의 아이를 구하려는 작전이 펼쳐졌습니다.

풍선은 공중에서 곡예비행을 하면서

50마일을 날아서 결국 지상에 내려앉았습니다.

구조대가 서둘러 풍선에서 바람을 빼고

소년을 찾았지만 소년은 없었습니다.

중간에 풍선에서 무슨 기구가 떨어졌다는 목격자들의 진술로

잠시 이 소년은 추락사한 것으로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몇 시간 후,

여섯 살 박이 소년은 자기 집 거라지 다락방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답니다.

소년의 형이 동생이 풍선 기구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바람에 기구가 날아갔습니다.

아버지는 날아가는 기구에 자기 아들이 있다고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 소년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고함을 친 것이 무서워서

다락방에 숨었고 그곳에서 낮잠을 자면서 편안이 있었습니다.

자신을 찾는 소리를 들었지만

무서워서 다락방에 계속 숨어 있었다고 했습니다.

TV인터뷰에서 아버지는

자신이 고함친 것을 아들에게 사과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풍선에 있지 않고 집안에 숨어 있었던 것

그리고 발견된 것만도 기뻐하는 듯 했습니다.

숨었다가 발견된 소년은 생글생글 웃으면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 사건과 관련된 뉴스를 다시 보면서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CNN 래리 킹 쇼에도 나왔네요)

여러 사람들이 동원되었습니다. 공항도 일시 문을 닫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마음을 졸였습니다.

블랙호크 헬기가 3시간 상공에 떠 있었는데

그 비용만도 $13,800.-에 달한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큰소리를 치면서 야단한 것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동생이 풍선 안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는 형의 말로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풍선에 있다고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여섯 살 먹은 소년은 자신을 찾는 것을 알고도 다락방에 숨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욱하는 감정표출,

형의 섣부른 추측,

당사자 소년의 숨음(hiding) 이 가져온

웃어넘기기에는 왠지 뒷맛이 개운치 않은 해프닝입니다.

(혹시 꾸며낸 일이 아닌지 경찰수사도 고려한다는 보도도 있네요)

2.

과도한 감정표출은 주위사람들을 위축시키고 겁먹게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온유함(gentleness)을 강조합니다.

섣부른 추측은 사실을 왜곡시킵니다.

일의 전말을 신중하게 살펴보고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숨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창세기에서 아담과 이브도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의 낯을 피해서 숨었습니다.

숨는 것은 떳떳하지 못한 행동입니다.

정직하지 못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정도가 다를 뿐 이런 일들은 우리들 주변에서도 종종 발생합니다.

가정에서 또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심하게 표출할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 마음에 상처를 받습니다.

섣부르게 판단하고 추측해서

작은 일을 크게 만드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

정직하지 못한 것은

이유를 불문하고 옳지 못한 행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정직과 투명함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 ( 7:29)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케 하시도다. (26:7)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어떤 말을 하거나 행동하기 전에 잠시 멈춰서 한번 더 생각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투명한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첩경을 평탄케 해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목사 올림

(2009 10 15일 이메일 목회서신)

체험적인 신앙

좋은 아침입니다.

1.

수요일 성경공부 시간에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의 일생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다음 주에는 요한 웨슬리가 남겨준 신앙의 교훈들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웨슬리의 신앙여정을 설명하면서

그가 두 번에 걸쳐서 회심을 경험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웨슬리는 그의 나이 21세였던

1725년에 토마스 아 켐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비롯한 경건서적을 읽고

개인의 영성을 돌아본 후에 하나님을 위해서 살겠다고 결심합니다.

나는 즉각 내 삶 전체를 곧 모든 사유와 말과 행실을 하나님께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중간은 없다는 것, 삶의 모든 부분이(약간만이 아니라) 하나님께 제물이 되든가 그렇지 않으면 자기 자신에게 곧 사실상 악마에게 제물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철저하게 확신하였다.” -John Wesley, Works.Vol VIII.-

그 이후에 웨슬리는 영국 국교회의 정식 목사가 되었고

미국 조지아에 3년 동안 선교를 위해서 왔었지만

그의 마음 속에 뭔가 채워지지 않는 영적 갈증이 있었고

마음에 확신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다가 1738 5 24일 저녁에

올더스게이트라는 거리의 한 작은 집회에 우연히 참석했다가

이상하게도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합니다.

저녁에 나는 별로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올더스게이트 거리에 있는 한 집회에 참석하였는데 거기에서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고 있었다. 8 45분경에 그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시는 일을 설명하고 있을 때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는 내가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있다고 느꼈으며 구원을 위해, 다만 그리스도만 믿고 있음과 주께서 내 죄를 아니 내 죄까지도 다 거두어 가시고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건져주셨음을 믿는 확신을 얻었다.”

–John Wesley, Journals 1738.5.24-

웨슬리는 이렇게 마음이 뜨거워지는 체험을 한 이후에

내적 평안과 확신을 갖게 되었고

더욱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웨슬리의 두 번에 걸친 회심을 두고

배리 태브러햄이라는 분은

첫 번째 회심을 종교적 회심, 두 번째 회심을 영적 회심

첫 번째 믿음을 종의 믿음, 두 번째 믿음을 아들의 믿음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제가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첫 번째가 지적인 회심이었다면

두 번째는 온 존재와 삶이 변화되는 실존적 회심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2.

신앙에서 체험이 꽤 중요합니다.

체험적인 신앙은 확신으로 이어지고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립니다.

물론 지나치게 체험을 강조하고 추구하면

신앙이 주관적이 되거나 신비주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웨슬리는 체험 이성을 같이 강조했습니다.

머리로만 믿고 체험이 부족한 신앙은

쉽게 흔들리고, 회의와 불안이 반복해서 찾아옵니다.

헨리 블랙커비라는 분이 쓴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Experiencing God)”이라는 성경공부 교재가 있습니다.

내용도 좋지만

책의 제목이 참 마음에 듭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여러분들은 신앙의 여정 가운데

하나님을 체험한 간증이 있으십니까?

아니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과 동행하시면서

그분의 손길을 체험하십니까?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어지럽고 복잡한 세상입니다.

하루 하루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의 크고 작은 손길과 간섭하심을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때로는 솜털처럼 부드러운 손길로 우리를 감싸주시고

때로는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시고

우리가 너무 힘들어할 때는 우리를 등에 업고 가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이토록 좋으신 하나님을 꼭 붙잡고

남은 일주일도

감사와 기쁨 가운데 사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파이팅!

하목사 올림

(2009.10.8일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