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에서는 (4)

지난 8개월 동안 수요예배에서는 신앙의 기초를 튼튼히 닦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새해와 더불어 시작된 “복음이란 무엇인가?”에 이어서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차례로 살펴봄으로 우리의 신앙이 복음에 대한 확실한 고백과 올바른 기도위에 세워져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우리 교회의 수요예배는 또 하나의 성경공부입니다. 그래서 제가 올해 들어서는 교재를 준비해서 나눠드리고 그 교재를 갖고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마 수요예배만 모두 참석하셔도 신앙과 성경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실 겁니다.

이번 주부터 수요예배에서는 구약성경에 있는 12권의 소예언서를 차례로 한 주에 한 장씩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미 살펴본 요나서 같은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소선지서는 우리들에게 매우 생소합니다. 주일설교에서 다루기에는 그 내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렇기에 자칫하면 평생 예수님을 믿었어도 호세아에서 말라기에 이르는 소선지서의 말씀을 거의 접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구약 성경의 소예언서는 400여년에 걸쳐서 12명의 선지자들이 기록한 말씀입니다. 각 예언서의 분량이 10장 내외여서 이름 앞에 소(小)자가 붙었습니다. 소예언서를 기록한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세우신 인물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궁극적으로 사랑의 하나님, 용서의 하나님, 끝까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소개하고 전했습니다.

또한 이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를 하나님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세상을 원하시는 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갖고 담대히 전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소예언서를 읽고 공부하면서 교회는 물론 세상 속에 세워나갈 하나님 나라의 모습도 배울 수 있습니다.

쉽게 배우기 어려운 소예언서 강해에 여러분 모두를 초대합니다. 이번 강해를 통해서 우리의 신앙이 말씀으로 맑게 정화되고, 예언자들을 통해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의 메시지를 듣게 될 것입니다. 바빠서 참석하지 못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녹음을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여튼 우리 서머나 교회가 말씀 위에 바로 서고, 모든 성도님들께서 송이꿀보다 달고, 상한 골수를 쪼개는 말씀을 몸소 체험하시길 늘 소원합니다. -河-

성경파노라마

지난주부터 성경공부가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서머나 교회에 온 이후에 지난번의 기초성경공부와 큐티학교에 이어서 세 번째로 인도하는 성경공부입니다. 이번 성경공부는 지난 두 번의 공부와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공부라기보다 성경 자체에 대한 공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고 예수님을 믿었어도 성경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성경이 어떻게 기록되었고 어떻게 우리 손에 들려지게 되었는지 등등 성경 개관에 대한 지식이 부족합니다. 또한 성경 66권 전체의 주제나 각 권의 내용과 주제에 대해서도 대충 넘어갈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들의 신앙이 말씀에 굳게 선 성숙한 신앙이라기보다, 내 마음대로 믿고 그저 복을 받으려는 개인주의 신앙에 머무르곤 합니다.

제가 늘 강조하듯이 말씀위에 세워진 신앙이 견고합니다. 성경은 모든 신앙과 교회생활의 잣대(정경,ruler)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하심으로 기록되었기에 말씀 속에 하나님의 숨결과 뜻이 깃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으로 우리들 안에서 살아서 역사하십니다. 따라서 말씀의 능력을 올바로 체험하고 삶 속에 적용하기위해서 성경 전반에 대한 공부가 꼭 필요합니다.

첫 번째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이번 성경공부가 어쩌면 조금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깨닫고 적용하는 시간이기보다, 성경 자체에 대한 공부를 하기 때문입니다. 학창시절로 돌아갔다는 심정으로 공부에 임하실 것을 부탁드렸고 참석하신 모든 분들이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저는 이번 성경공부에 임하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대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서머나식구들께서 말씀을 보고 이해할 수 있는 하늘의 지혜를 터득하시도록 돕고 싶습니다.

이번에 참여하지 못하시는 서머나식구들께서는 다음 기회에 참여하시면 됩니다.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도 다음 기회에는 꼭 등록하시기 바랍니다. 매사가 그렇듯이 성경공부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성경공부에서는 앞으로 13주 동안 신약성경을 통독하기로 했습니다. 성경공부에 참여하지 않으셔도 신약통독을 시작해 보십시오. 하루에 3장씩만 읽으면 앞으로 두 달 안으로 신약을 끝까지 읽으실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말씀 위에 굳게 서는 든든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河-

수요예배에서는 (3)

그동안 수요예배에서는 거의 4개월에 걸쳐서 사도신경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들이 주일예배에서 한 목소리로 암송하는 사도신경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가장 잘 요약해 놓은 신앙고백문입니다. 사도신경은 초대교회에서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는 그리스도인들을 교육할 때 사용되었다고 했습니다.

전능하시고 온 세상을 창조하신 성부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고백,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고백, 권능과 인도자로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진리의 영, 성령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 확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와 성도들 각자의 영생에 대한 고백으로 구성된 사도신경을 공부하면서 우리들의 신앙을 점검하고 기초를 튼튼히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약 8주에 걸쳐서 주기도문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게 됩니다. 사도신경이 초대교회로부터 내려오는 가장 정선된 신앙고백문이라면, 주기도문은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신 가장 완벽한 기도문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주일예배에서 주기도문을 갖고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또한 수요예배는 물론 대부분의 예배와 모임에서 주기도문을 함께 외움으로 모임을 마칩니다.

이렇게 주기도문이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 보니, 어떤 때는 마치 “기도”는 빠지고 “주문”만 남아서 상투적으로 주기도문을 암송할 때가 많습니다. 앞으로 수요예배에서 주기도문을 한 구절 한 구절 강해식으로 공부하고 살펴봄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올바른 기도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배우고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렇게 올 해 상반기의 수요예배를 신앙의 기초를 다지는 시간으로 삼고 싶었습니다. 참석하시는 분들께 매주 교재를 만들어서 드린 것은 말씀을 전함과 동시에 성경공부도 병행하고자 하는 제 바람이었습니다.

생업이 바쁘시고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서 많은 분들이 수요예배에 참석하지 못하십니다. 혹시 교재나 녹음CD를 원하시면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주기도문 강해를 통해서 우리 교회와 각 성도님들 위에 참된 기도의 영이 임하고, 말씀위에 굳게 선 신앙으로 무장하시길 바라면서 수요예배를 준비하겠습니다. -河-

들꽃 처럼

지난 주간에는 오랜 간만에 새벽예배를 마치고 금문공원에 갔었습니다. 아침 이슬을 머금고 더욱 푸르러진 나무들이 두 팔을 활짝 벌려반갑게 인사하는 듯 했습니다. 봄철이 되니 공원 여기저기에 봄꽃이 예쁘게 피었습니다. 산책로 길목마다 군데군데 피어있는 이름 모를 들꽃들의 색깔이 형형색색 아름답습니다. 사람들이 만든 물감으로 칠한다면 그토록 예쁜 색깔이 나오지 못하겠지요. 가까이 다가가서 꽃잎을 조심스레 만져보고, 코를 가까이해보니 향기가 전해집니다.

말없이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아름다운 자태와 은은한 향을 내는 들꽃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꽃들을 왜 여기에 피게 했을까? 꽃도 예쁘고 향기도 그윽한 데 왜 한 자리만 지키고 있을까? 여기저기 다니면서 자신의 자태를 뽐내면서 살아도 좋을 텐데…….말도 하지 못하고 손짓도 하지 못하니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으면 자신의 모습과 향기를 자랑할 수 없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 들에 서 있는 식물들을 보면서 은혜를 받습니다. 식물들은 꽃씨가 떨어진 곳에 뿌리를 내리고 일평생 그 자리에서만 삽니다. 누군가 옮겨주지 않으면 자기 힘으로 한 뼘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렇게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평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식물들이야 말로 창조주 되신 하나님의 명령에 100% 순종하는 피조물입니다.

반면에 우리 사람들은 참 변덕스럽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만끽한다고 제 마음대로 움직이고, 자리를 이동합니다. 그리고 창조주를 향해서 불평합니다. 왜 자신을 이토록 초라하게 만들어놓았냐고, 자신이 움직일 때 왜 제지하지 않으셨냐고…….피조물 가운데 특별히 인간들에게 시간과 공간을 통제할 자유를 주셨는데, 우리 인간들은 그 자유를 이처럼 남용하고 있습니다.

공원을 거닐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하나님, 들꽃처럼 살게 해 주세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도 자신의 자리를 굳게 지키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과 세상을 향해서 향기를 내뿜게 해주세요. 자신의 자리에서 예쁜 꽃을 활짝 펴서 하나님께만 칭찬받는 들꽃과 같은 인생을 살게 해 주세요.”

봄의 한 가운데 와 있습니다. 오늘은 예배 후에 공원에 가셔서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과 자연을 깊이 느껴보십시오. 하나님의 창조섭리가 깃든 자연과 더불어 심호흡을 해 보십시오. 새 힘이 생길 것입니다. -河-

성만찬에 대하여

개신교가 지키는 성례전은“세례”와“성만찬”입니다. 성만찬은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유월절 만찬에 근거합니다. 마태복음 26:26-28에서,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이것이 내 몸이니라하시고,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이를 두고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 23절 – 25절에서,“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 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하셨으니”라고 성만찬을 강조합니다.

성만찬은 위의 성경말씀 대로, 포도주와 떡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기념하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성령 안에서 성도 간에 하나 됨을 확인하는 예식입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성만찬 포도주와 떡 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적으로 임재한다고 믿었습니다. 감리교회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는 성만찬을 은혜 받는 길 가운데 하나로서 특별히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2천년 기독교회사에 성만찬을 통해서 많은 기적과 은혜의 체험이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이처럼 성만찬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확인합니다. 포도주를 마시면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고, 떡을 먹으며 우리를 위하여 아끼지 않고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생각합니다.

바울의 말씀 속에“기념하라”는 말은 단순한 기념이 아니라 “어떤 사건에 참여함으로 기념하라”는 뜻입니다. 즉, 우리는 포도주와 떡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신비를 경험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몸과 피를 함께 나누는 성만찬에 임할 때에, 우리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신앙의 결단을 새롭게 하려는 마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만큼 신성하고 귀한 예식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만찬에 참여하신 서마나 식구들의 마음과 삶 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크고 귀한 은혜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河

삼일절에…

지난주에 한국일보와 함께 배달된 뉴욕타임즈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습니다. 미국인들의 지식수준이 형편없다는 기사였습니다. 일례로 TV퀴즈쇼에서 부다페스트가 수도인 나라를 묻는 질문에 출연자는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헝가리”라는 답이 주어졌지만 출연자는 의아해했습니다. 도리어“헝가리(hungary)”를“헝그리(hungry)”로 잘못 이해하는 실수도 범했습니다.

요즘세대는 돈을 많이 벌어서 자기만 즐겁게 살면 될 뿐, 문학작품을 읽거나,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고민하거나, 자신의 뿌리를 찾는데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깊은 샘처럼 사려 깊은 이웃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쁜 이민생활, 유학생활에 쫓겨서 정말 중요한 것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특히 조국이나 겨레를 생각하는 것은 왠지 어색합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조상들이 갖고 있던 기상과 예의범절, 역사의식을 잊고 삽니다.

어제가 3.1절이었습니다. 3.1절은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독립운동입니다. 8.15해방이 열강들에 의해서 주어졌다면, 비록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3.1운동은 우리 민족 스스로 일제에 맞서서 독립을 도모했던 몸부림이었습니다.

전남 통영에서는 기생들이 반지를 팔아서 독립운동에 나섰다는 새로운 역사자료가 공개되었습니다. 그들을 따라서 3천명의 군중들이 만세운동을 했다니, 당시 우리 민족의 독립에 대한 염원을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독립선언서를 제창한 33인 가운데 기독교인이 15명, 그 가운데 감리교인이 7명이었습니다. 그때는 그만큼 기독교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3.1절이 되면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서 “기미년 3월1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3.1절 노래를 불렀습니다. 교장선생님의 선창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세 번씩 외쳤습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살만하다고 머리와 가슴에 품어야 할 역사를 잊어버리지는 않았는지…재물을 쫓느라 마음과 생각을 풍요롭게 하는 덕목들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이민생활이지만 3.1절을 보내면서 두고 온 조국을 위해서 기도하고, 우리들의 뿌리를 뒤새겨 봄으로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河-

사순절을 맞는 마음

올해도 어김없이 사순절을 맞습니다. 지난 수요일이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이었고 그 이후로 주일을 뺀 40일의 기간을 사순절이라고 부릅니다. 사순절은 부활절을 앞두고 기독교에서 2000년 가까이 지켜온 절기입니다. 사순절을 맞는 서머나 식구들께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첫째로, 사순절 기간 동안에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을 살펴보면, 예수님은 그에게 오는 모든 사람을 용납하셨고 사랑하셨습니다. 어렵고 힘겹게 사는 서민들의 마음을 공감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맡겨진 사명에 충실하셨습니다. 자신의 명예나 업적을 내세우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조차 숨기실 때가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복음서를 차근차근 읽어보십시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마음과 삶을 살펴보시고 그 속에서 예수님의 은혜를 깊이 느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사순절 기간 동안에 기도에 힘쓰시길 바랍니다. 사순절의 전통은 금식기도입니다. 금식은 우리의 식욕을 억제하면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세상 것을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겠다고 결심하는 표시입니다. 생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금식을 정하시고 기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셋째로, 사순절 기간 동안 남모를 선행을 실천해 보십시오. 교회의 전통에서 사순절 금식은 곧 선행으로 이어졌습니다. 금식해서 절약한 물질로 남을 도왔는데,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을 희생하면서 남을 돕는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아무도 모르게 가족들에게, 주위의 이웃들에게, 남모르는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어보십시오. 그만큼 세상이 밝아질 것입니다.

사순절을 뜻 깊게 보낸다면 1년 중 적어도 10분의 1(시간의 십일조)을 하나님께 구별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고 삶에 실천함으로 예수님을 쏙- 닮은 서머나 식구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河-

수요예배에서는 (2)

지난 한 달 동안 수요예배에서는“복음”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가장 쉬워 보이지만 막상 설명하려면 힘든 것이 복음입니다. 하도 들어서 익숙하지만 실제로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면서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난 4주에 걸쳐서 복음에 대해서 정리했고, 복음의 능력을 힘입어서 2008년을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앞으로 올 해 상반기에는 주일예배 시간에 함께 고백하는 “사도신경”과 함께 찬양으로 드리는 “주기도문”에 대해서 강해할 계획입니다. 사도신경이 성경에 없기 때문에 경하게 여기는 교파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신경만큼 기독교의 신앙을 잘 정리한 고백문도 없습니다. 게다가 사도신경은 초대교회에 그 뿌리를 두고 있고, 오늘날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한 마음으로 고백할 때 사도신경을 능가할 어떤 고백문도 없습니다. 따라서 사도신경의 유래와 내용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주기도문은 말 그대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기도의 형식과 내용을 모두 포함한 완벽한 기도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주기도문을 가운데“기도”는 빼고 “주..문” 외우듯이 빠르게 암송합니다. 또한 교회에서 어떤 모임을 마무리할 때 쓰는 폐회문구가 되어 버렸습니다. 사도신경 강해에 이어서 주기도문을 함께 살펴봄으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기도하는 서머나 성도님들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수요예배가 매우 중요합니다. 40분 정도의 성경공부 시간입니다. 하지만 주일예배나 새벽예배에서 다루지 못하는 내용을 심도 있게 다루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생업에 바쁘시고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서 참석하지 못하시는 분들이 많으신 것이 못내 아쉽고 죄송스럽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올 해 상반기 수요예배에 참석하시길 권합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을 정리하는 유익하고 은혜로운 시간이 될 것입니다.

목사로서 소원이 있다면, 하나님 말씀을 올바로 가르칠 수 있고 기독교 신앙의 진수를 쉽고 명료하게 전달할 수 있는 시간을 자주 갖는 것입니다. 올 상반기 수요예배를 통해서 우리들의 신앙이 정돈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부요한 서머나 식구들 되시길 바랍니다.-河-

새로운 시작 (New Start)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하나님의 공평하심은 대표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 경우에 나타납니다. 첫째는 적신으로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똑같이 맨 몸입니다. 둘째는 이 세상을 하직할 때 빈손으로 간다는 사실입니다. 태어날 때 미리 많은 것을 갖고 태어나지 않듯이, 죽을 때도 모든 것을 놓고 빈손으로 떠나 갑니다.

세 번째는 살아있는 동안 매 해마다 365일을 부여받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새해가 되면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365일을 허락해 주십니다. 누구도 더 많은 날짜를 갖지 못하고 동시에 더 적은 날로 한 해를 시작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제각각입니다. 빈손으로 와서 커다란 업적을 이루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똑같이 1년 365일을 살지만 삶의 모습과 결과는 천양지차입니다. 이 세상을 하직할 때도 영생을 소유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늘나라에서의 새로운 삶을 기대하면서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시작은 같지만 과정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삶의 열매가 다른 것입니다.

이제 우리 앞에 2008년 365일이 놓여있습니다. 2008년은 미리 가본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전인미답(全人未踏)의 길입니다. 망설일 수도 없습니다. 뒤로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시작(new start)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3장 13-14절에서 자신이 영적 순례길을 걷고 있음을 담대히 밝힙니다. 그는“도상(道上)의 존재(存在)”였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인생길을 걸어가는 순례자였습니다.

본문 그대로 표현하면, 빌립보서의 바울은 푯대를 향해서 영적 달음박질을 하는 달리기 선수였습니다. 육상 경주에 나선 사람은 뒤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뒤를 돌아보는 순간 추월당하기 때문이고 집중력이 분산되기 때문입니다. 경주를 하는 사람은 푯대, 즉 결승점을 향해서 질주합니다. 그의 눈은 시종일관 푯대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주어질 상을 기대하면서 매 순간 있는 힘을 다해서 달릴 뿐입니다.

우리 모두 2008년 첫 달을 살고 있습니다. 새로운 경주를 시작한 것입니다. 뒤를 돌아보지 말고 푯대 되신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달려갑시다. 하나님께서 공평하게 나눠주신 365일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갑시다. 올 한 해 하나님의 은혜가 서머나 식구들 위에 임하기를 다시 한 번 축원합니다.-河-

성탄의 종소리

“탄일종이 땡땡땡 은은하게 울린다./저 깊고 깊은 산 속 오막살이에도 탄일종이 땡땡땡.”

성탄절이 되면 어린아이들이 즐겨 부르는 성탄찬송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도 같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사실 그때는“탄일종”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선생님들이 가르쳐주시는 대로 율동에 맞춰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두 손을 어깨 위로 올려서 종을 치는 흉내를 내던 율동이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올 해도 성탄절을 맞아서 성탄의 종소리가 온 세상에 울려 퍼졌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을 축하하는 종소리입니다. 죄에 억눌려 살던 우리들에게 성령의 생명의 법을 선포하려고 오신 아기 예수님을 향한 감사의 종소리입니다.

왕들이 사는 궁전에서 태어나셨다면 그토록 감격스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기 예수님은 베들레헴 마구간에 태어나셨습니다. 모든 사람을 구하려고 낮고 천한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성탄의 종소리는 우리들의 마음 속 깊이 울려 퍼집니다.

여느 해와 달리 각별하게 교회를 가슴에 품고 달려오신 서머나 성도님들의 마음속에 성탄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길 기도합니다. 그동안 우리들 마음속에 숨겨있던 인생의 시름과 염려 그리고 두려움들이 성탄의 종소리에 실려서 멀리멀리 떠나가기를 기도합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의 따뜻한 마음이 성탄의 종소리에 실려서 깊고 깊은 산속 오막살이까지 전해지기를 기도합니다.

성탄의 아침 – 기쁨의 외침인 노엘로 주님을 찬양합시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