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나의 방패

좋은 아침입니다.

어떤 일을 빼놓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갑자기 LA를 다녀오게 되어서

목회서신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ㅠㅠ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군가 자신을 방어해 주고

막아주었으면 할 때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께서 방패막이가 되어 주셨습니다.

어느 정도 컸을 때는 친구끼리 서로를 방어해 주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덧 사십 대 후반이 되다 보니

제 자신이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나이가 들면서 자신을 보호해 줄 분들은 점점 사라지고,

보호해 주어야 할 대상들은 점점 늘어갑니다.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이것이 인생이겠지요?

하지만 염려하지 마십시오.

시편 7 10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보호자가 되신다고 깨우쳐줍니다.: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My shield is God Most High

Who saves the upright in heart.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견디는 것이 능력입니다.

경솔하게 앞으로 나가는 것 보다

현재의 자리를 잘 지키는 것도 지혜입니다.

높고 높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방패가 되십니다.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십니다.

하나님의 방패 속에 들어가는 비결은

정직한 삶입니다. 투명한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자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오늘 하루도 모든 서머나 식구들의 방패가 되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샬롬

하목사

(2009년 2월 26일 이-메이 목회서신)

온전한 믿음

지난주까지 수요예배에서는 신약 속에 나타난 아브라함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작년 연말까지 연속으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대해서 설교했고 새해 들어서 신약 속에 나타난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살펴 본 것입니다. 구약만 생각하면 아브라함은 영락없는 유대인의 조상입니다. 신약에서 비로소 아브라함을 믿음으로 의롭게 된 인물로 재해석하면서 아브라함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조상이 되고 우리들 역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갈라디아서 3장 6-7절에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라고 분명히 가르쳐줍니다. 아브라함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계획 속에 등장한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를 통해서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은 지금 우리 안에서 성취되고 있습니다.

또한 야고보서 2장에서는 아브라함이 단순히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할례를 행하고, 하나뿐인 아들이삭을 바친 신앙의 행위를 통해서 그의 믿음이 온전케 되었다고 가르쳐줍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그 믿음에 걸맞은 행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야말로 신행(信行)이 일치했던 인물이었고 결국 하나님의 벗(God’s friend)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수요예배에서 말씀드렸듯이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후에 지나치게 믿음이 강조되었습니다. 물론 로마서의 말씀대로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율법의 행위나 각자의 행동으로 구원에 이를 수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믿음”속에 행함이 포함되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점에서 믿는다고 하면서 신앙과 삶 속에 믿음의 행위가 없는 것은 야고보의 말대로 죽은 믿음입니다. 믿음 뒤에는 반드시 신앙의 행위가 뒤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과 행위를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지난 한 주간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기사가 모든 신문의 헤드라인으로 장식했습니다. 종교와 신분, 당파와 성별을 떠나서 40만에 이르는 추모객은 물론 국내외의 모든 국민들이 그 분의 소천을 추모했습니다. 그것은 그 분께서 신앙과 삶을 통해서 성직자의 본을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요즘 개신교가 사람들의 입방아에 자주 오릅니다. 이기적이고 배타적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런 세간의 비판에 일일이 변명하기보다 삶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세상에 보일 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확고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선한행실로 신앙과 삶 속에 선명히 드러나야 합니다. 그것이 온전한 믿음임 꼭 기억합시다. -河-

여호와 닛시

좋은 아침입니다.

미국에 불경기의 먹구름이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실업률이 치솟는 것을 보면서

직장에 다니시는 서머나 식구들과 자녀들을 위해서 저절로 기도하게 됩니다.

지난 번 설교에서 말씀 드렸듯이

경제가 안 좋을 때는 잘 견디는 것도 세상을 사는 지혜입니다.

또한 이럴 때 일수록 불평보다 감사의 말을 주고 받는 것이

서로에게 힘이 됩니다.

이번 주 뉴스위크에는 흥미로운 기사들이 몇 가지 실렸습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사회주의자들이 되고 있다(We are all socialists now)”

약간의 파격적인 커버스토리와 붉은 손과 푸른 손이 서로 악수하는 삽화가

표지를 장식했습니다. 한참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몇 장을 넘기니 요즘 신학교에 입학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미국의 신학교들이 전반적으로 10% 정도의 입학신청서가 늘었답니다.

불경기 때나 세상이 뒤숭숭할 때 일어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랍니다.

한계를 느꼈을 때 절대자를 찾는 것은 인간의 회귀본능 같습니다.

그렇다고 신학교 졸업생들이 모두 목회를 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예일대학 신학대학원을 예로 들면서

절반 정도가 목회를 하고,

나머지 절반은 자선단체나 비영리단체 등에서 일을 하면서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인생을 설계한다는 색다른 조사결과도 보도했습니다.

어려울 때, 한번쯤 멈춰 서서

자신이 걸어 온 인생길을 돌아보고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새롭게 다잡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신학교 기사에서 한 장을 더 넘기니

이번에는 이야기하기(story-telling)”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요즘처럼 어려울 때

예전에 할머니나 부모님들로부터 들었던 얘기를 기억해 보자는 것입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지금의 어려움을 우리 부모님 세대들도 모두 겪으셨습니다.

아니 더 심한 전쟁과 환난도 이겨내셨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들께서 들려주시던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힘을 얻고,

우리들 역시 현재의 어려움을 잘 극복해서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용기를 주는 이야기를 남겨 주어야겠습니다.

요즘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어렵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멈춰 있으면 그것은 말 그대로 패배입니다.

차분하게 어려움에 대처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서로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 주면서 격려해야 합니다.

어제 아침에 묵상했던 이사야서 62 10절이

불경기를 사는 우리들에게 실제적인 교훈을 줍니다.

성문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Pass through, pass through the gates!

백성의 길을 예비하라             Prepare the way of the people.

대로를 수축하고 수축하라       Build up, build up the highway!

돌을 제하라                           Remove the stones.

만민을 위하여 기를 들라        Raise the banner for the nations.

힘들수록 멀리보고 넓게 생각하고

신 하나님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오늘 하루

여호와 닛시,

하나님의 깃발을 높이 들고

주어진 인생길을 힘차게 걸어갑시다.

샬롬

하목사 올림

균형잡힌 신앙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아침에

새벽기도회에서 이사야서 58장을 묵상했습니다.

이사야서 58장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이 무엇인지 가르쳐줍니다.

금식이라고 제한했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 신앙, 삶으로 넓혀서 생각해도 괜찮습니다.

우리들은 대개 자신의 기도제목이나 문제해결을 위해서 금식합니다.

때로는 자신의 신앙을 위해서 금식합니다.

이처럼 금식은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이사야서58장에서는

금식의 지경을 이웃사랑으로 넓혀 놓습니다.

6-7절 말씀을 함께 묵상하고 싶습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꺽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금식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과 지경을 꽤 넓게 펼쳐놓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은 이웃사랑의 실천이 꼭 수반되어야 합니다.

실제로 제가 어렸을 때 다녔던 교회에서는

어르신들께서 금식을 하고 성미를 교회에 헌물하셨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와 당시 감리교인들은 일주일에 한번씩 금식했는데

금식해서 절약된 식량으로 가난한 이웃을 섬겼습니다.

요즘은 금식이나 우리들의 신앙이

많이 개인주의화, 이기주의화 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 아침에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 보고

하나님과의 튼튼한 관계와 더불어

이웃과의 관계도 아름답게 세워나가는

균형잡인 신앙을 갖기로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때 임하는 은혜가 이사야서 58 8 절 이하에 나옵니다.

그 중에 11절 말씀을 갖고 여러분들을 축복하고 싶습니다.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아멘

하목사 올림

첫사랑 회복

좋은 아침입니다.

어느덧 새해의 첫 달도 이틀 남았습니다.
앞으로 이렇게 열 한번을 보내면
2009년도 우리 곁을 떠나겠지요.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기 보다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어떻게 보낼 지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꼭 붙잡고 있어야 할 것은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우리들은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께로 나아갑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묵상하면
모든 사람을 마음에 품을 수 있습니다.

우리들 마음 속에, 가정 속에, 교회 안에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우뚝 서 있다면
그곳은 의와 희락과 화평의 하나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오늘 새벽기도회에서 이사야서 53장을 묵상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그 모진 고난, 멸시, 질고를 당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눈 앞에 그려보았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53:5)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
감사합니다라는 고백 외에 다른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면서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첫사랑을 회복해 보십시오.

샬롬

목사 올림

샬롬

*2009년 1월 22일에 보낸 이-메일 목회서신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거의 한달 만에 이메일 서신을 보냅니다.
정말 바쁘게 보낸 한 달이었습니다.
솔직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조금 쉬고 싶을 만큼 몸과 마음이 바빴습니다.

곁에서 보기에도 안쓰러우셨는지
서머나 식구들 가운데 몇 분이 그냥 쉬라고 하실 정도였습니다.
교회 예배처소는 찾아 놓고 쉬어야겠지요.
또 큰 누님을 뵈러 잠시라도 한국을 다녀와야겠습니다.

그런데 요즘 저는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꼭 맞는 말씀을 순간순간 주시기 때문입니다.
힘들 때는 용기를,
염려할 때는 소망을,
무엇보다 하나님과 저만이 교통하는 은혜의 말씀을 주셔서
그 말씀을 먹고 살아갑니다.

오늘 새벽예배에서 말씀을 보는 방법을 아주 간단히 말씀드렸습니다.
큐티시간이나 성경 읽으실 때
다음의 세 가지를 염두에 두시면 은혜가 더욱 넘칠 것입니다.

첫째, 오늘 말씀 속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모습, 성품, 은혜
둘째,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우쳐주시는 나의 잘못, 회개할 것들
셋째, 오늘 말씀 속에서 내가 지켜야 할 명령들

참 올해 초에 받으신 하나님 말씀을 기억하시지요?
그 말씀을 꼭 붙잡고 한 해를 사시고
매일같이 큐티하는 것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축복합니다.

샬롬

하목사 올림

단숨의 기도

좋은 아침입니다.

한 해가 이렇게 저물어 갑니다.
제가 오늘 신문 칼럼에도 썼듯이
우리에게는 언제나 아쉬움과 조금 심한 경우 후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 감사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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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포스터라는 분은 그의 책 기도(Prayer)”에서
단숨의 기도라는 기도의 방법을 소개합니다.

단숨의 기도는
아주 짧고 한 숨에 드릴 수 있는 기도입니다.
단숨에 말할 수 있는 짧고 간단한 간구의 기도
바로 단숨의 기도입니다.

하루 동안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일이 일어납니다.
그때마다 아주 짧은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를 도와 주옵소서.
하나님, 제게 힘을 주옵소서.
하나님, 이 어려움에서 건져주옵소서.
하나님, 제게 온순함을 가르쳐주옵소서.
하나님, 우리 아이들에게 지혜를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 사업장을 지켜주옵소서.
하나님, 제가 주의 일꾼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는 얼마든지 단숨의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 기도에 우리의 힘과 마음을 쏟아 부으면
비록 짧은 기도지만
초점 없이 드리는 긴 기도보다 능력이 있습니다.

데오폐인이라는 수도사는 단숨의 기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머리 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모기들처럼 계속해서 다툴 때,
이 싸움을 없애려면 마음을 단 한 가지 생각에만 고정시켜야 한다.
이 일을 돕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은 짧은 기도이다.
그 기도는 마음을 단순하게 그리고 집중하게 한다. (170)

하나님 앞에
단숨의 기도를 드리면서
한 해를 정리하고
새 해를 준비하시는 서머나 식구들 되시길 바랍니다.

샬롬

하목사
(2008. 12.18일 이-메일 서신)

감찰하시는 하나님

좋은 아침입니다.

요즘은 교회의 예배처소를 찾는 것이
최고의 기도제목이자 관심사입니다.
church search team에서 부지런히 찾고 계시고
온 성도님들께서 함께 기도하시니
가장 적합한 예배처소가 찾아질 줄 믿습니다.

지난 화요일 새벽기도회에서는
이사야서 18장을 함께 묵상했습니다.
구스 즉 이디오피아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었습니다.
18 4절에는 하나님께서
구스의 모든 일을 감찰하고 계시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감찰하다는 표현을 붙잡고 묵상했습니다.

구스를 감찰하신 하나님의 눈길은 심판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 밑에 있는 구스의 죄까지 감찰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눈길을 피할 수 없었지요.

한 해를 마감하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감찰하시는 하나님께 숨길 것이 없습니다.
생각나는 죄와 부끄러운 일들을 낱낱히 회개하고 새해를 맞읍시다.

감찰하시는 하나님!
은혜의 말씀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조용히 내려다보시고,
지켜보신다는 뜻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눈길은 우리에게 은혜로 임합니다.
하나님의 눈길은 우리 삶을 환하게 비춥니다.
하나님의 눈길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스폿라이트하시며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눈길이 임하는 곳에 위로가 있고 하늘의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께서 우리 서머나 식구들을
감찰하시고 꿋꿋하게 지켜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내가 새벽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거할찌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139 1, 9-10)

샬롬

하목사

(2008.12.12
메일 서신)

2008년의 마지막 달을 맞으며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네 번째 맞는 연말입니다. 동부와 중서부에 있을 때는 11월만 되면 기온이 내려가고 눈이 오는 것을 보면서 겨울이 찾아왔음을 실감했습니다. 연말연시는 늘 그렇게 겨울의 한 가운데 있었기에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찾아옴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시사철이 비슷한(물론 샌프란시스코의 겨울은 체감온도가 무척 차갑지만) 서부에 와서는 연말이 다가오는 것도 모른 채 새해를 맞곤 합니다. 그러다보니 두루뭉술하게 한 해를 마무리할 때도 있습니다.

올 해도 한 달 남았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다사다난한 2008년이라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교회적으로도 올 한 해를 은혜 가운데 잘 견뎠고 우리 안에 꿈틀거리는 부흥의 기운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 하나님께서 핏값으로 세우신 교회를 책임지심을 체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뿐 아니라 우리들 각자의 삶도 책임져 주십니다. 그러니 모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진실하고 성실하게 주어진 삶을 살면서 한 해를 마무리해야겠습니다.

2008년의 마지막 달인 12월을 맞으면서 여느 해와 똑같이 서머나 식구들께 세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로
, 12월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큐티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왕이면 큐티하면서 느낀 점들을 결단의 기도와 더불어 짧게 기록해 놓으시길 바랍니다. 교회 홈페이지에 각자의 큐티를 올려서 함께 나누어도 좋겠습니다. 특별히 12월 한 달 동안 주보의 “첫 아침을 주님과 함께”의 순서대로 잠언을 하루에 한 장씩 묵상해 가면서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삶의 지혜를 습득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 연초에 약속한 것들을 되새기고 그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선 하나님 앞에서 드린 약속과 서원이 있다면 한 해가 가기 전에 지켜야합니다. 가족을 비롯한 이웃에게 한 약속도 슬며시 넘어가지 말고 성심껏 지켜야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했던 약속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2008년에는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기로 하였는데 그동안 지키지 못했다면 12월 한 달 만이라도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보십시오.

셋째로
, 선한 일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올 해초 설교를 하면서, 평생 동안 하나님과 자기 자신만 아는 선한 일을 한 가지씩 정해서 그것을 실천해 보시기를 부탁드렸습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은 모르고 오로지 하나님과 자신만 알기에 이다음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 앞에 펼쳐 보일 수 있는 은밀한 선행입니다. 아무쪼록 12월 한 달 동안 하나님께만 칭찬받을 수 있는 선한 일을 은밀히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보다 자신이 기쁘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뿌듯하실 겁니다.

서머나 식구들 모두 하나님 앞에서 2008년의 마지막달을 알차게 보내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河-

하나님의 열심

Happy Thanksgiving!

1.
추수감사절 weekend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 목회서신에서 말씀 드렸듯이
적어도 이번 한 주간은
하나님과 이웃들에게 감사의 고백만 하면서 지내자고 했습니다.

감사의 말만 하는 것이 저 역시 쉽지 않더군요.
하지만 감사하려는 마음을 갖게 되고
감사의 자리로 돌아오려고 노력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결심이 중요함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남은 이틀 동안도 더욱 더 감사하면서 삽시다.

2.
다음 주일부터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강절이 시작됩니다.

오늘 아침에 묵상했던 이사야서 9 6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예언이 나왔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 정사를 매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추수감사절이 지나면 이제 곧 성탄절 시즌이 다가옵니다.
올 해는 미국의 경제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더욱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우리 마음 깊이 다가오고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평강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능력이 그립습니다.

3.
이사야 9 7절 후반절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열심(The zeal of the Lord)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을 따라 사는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강인합니다.
행복합니다.
감사할 줄 압니다.

요즘 우리 모든 성도님들께서
릴레이로 금식을 하면서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책상 위에 펼쳐진 금식기도표를 보면서
싸인업하신 성도님들을 위해서 저절로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우리 교회의 모든 기도제목을
가장 선한 것으로 이루어가실 줄 믿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서
편하게 쉬고 있는 이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일하시고
그 열심으로 우리의 모든 인생길을 친히 이루어가심을 믿고 감사합시다.

샬롬

하목사
2008.11.27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