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4)

지난 수요일부터 사순절(Lent)이 시작되었습니다. 앞으로 부활절까지 계속될 사순절 기간 동안 참빛 식구들의 신앙이 주님께 더욱 가까이 가고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며,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기간이 되길 바랍니다. 매년 맞는 사순절이지만 하나님께서 올해 부어주실 은혜를 간절히 사모합시다.

사순절 동안 우리들의 마음가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각자의 삶을 단정히 하고 날마다 진정한 회개의 자리로 나갑니다. 2) 말씀을 읽고 묵상함으로 자신의 신앙과 삶을 돌아봅니다. 3) 금식과 기도를 통해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함은 물론 구제와 선행을 실천합니다. 4)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 안에 가지처럼 붙어있어서 열매 맺는 삶을 삽니다. 5) 특별히 올해 사순절에는 모든 교회가 하루에 세 가지씩 감사의 제목을 노트에 기록하면서 보내기로 했습니다. 크고 작은 감사의 제목을 날마다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참빛교회 식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집트 바로왕의 경호 대장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온 요셉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니 그가 하는 일들이 형통했습니다. 주인 보디발은 요셉에게 집안의 모든 사무를 맡겼고, 요셉으로 인해서 보디발의 집이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요셉이 이방 땅에서 복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요셉은 외모가 빼어났고 아름다웠습니다. 노예 중에서 가장 뛰어난 외모를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그의 행동이 눈에 띠었고 매력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합니다. 주인집 마님의 유혹이니 뿌리치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냉정하게 거절합니다. 주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큰 죄가 된다고 담대히 밝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붙잡고 유혹하는 보디발의 아내의 손길을 뿌리치기 위해서 겉옷을 두고 도망칩니다. 요셉의 행동에 화가 난 보디발의 아내가 자기 남편에게 요셉이 자기를 희롱하면서 동침하자고 했다는 누명을 씌어서 고소합니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서 요셉은 정치범들을 가두는 감옥에 갇힙니다.

형들에 의해서 마른 구덩이에 던져졌던 요셉이 이제는 주인에 의해서 감옥에 던져지는 최악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요셉의 인생은 이렇게 자꾸만 밑으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감옥에 갇힐 때도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고 그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요셉 역시 감옥에서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감옥을 책임지는 간수가 요셉에게 모든 사무를 맡겼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도 가정의 모든 사무를 도맡아했는데, 감옥에서도 매한가지였습니다.

이처럼 요셉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고 그에게 은혜를 베푸심으로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견딜힘을 주셨습니다. 요셉 역시 감옥에 갇히는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고, 감옥에서도 형통함을 누렸습니다.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간 요셉은 그의 인생이 감옥까지 떨어졌지만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받았습니다. -河-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3)

수요일부터 2015년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수요일은 사순절을 앞두고 몸과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정돈하고, 우리의 본질이 흙에서 온 먼지와 같은 존재들임을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는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입니다. 올해 사순절에 모든 성도님들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앞으로 부활절까지 하루에 3가지씩 감사의 제목을 떠올리시면서 기도하시고 별도로 노트를 준비하셔서 매일의 감사제목을 기록해 가시는 겁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위해서 고난 받으시고 급기야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의 은혜를 깊이 묵상하시고 그 은혜를 여러 각도에서 감사하는 기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속회나 가정에서 감사의 제목을 서로 나누면 은혜가 갑절이 될 것 같습니다. 온 교회가 <감사일지>를 꼭 쓰시길 부탁드립니다.

요셉에 대한 말씀이 계속됩니다. 형들에 의해서 이집트로 팔려간 요셉은 그곳에서 바로왕의 경호대장인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다시 팔려갑니다. 요셉이 이집트 고위관리의 집에 가정 일을 돕는 노예로 팔린 것입니다. 어찌 보면 불행 중 다행입니다. 고대시대에 노예는 주인의 소유물입니다. 노예에게 결정권이나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권리가 전혀 없습니다. 철저하게 주인에게 예속된 존재입니다. 만약에 이스라엘에서 온 요셉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면 이집트에서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의 처지는 채색 옷을 입고 있던 야곱의 아들 요셉이 아니라 팔려온 노예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형으로부터 은 20에 요셉을 산 이스마엘 상인들이 그를 이집트의 고위관리인 보디발에게 넘겼다면 요셉의 몸값이 꽤 나갔을 것입니다. 아니 노예를 사러 시장에 나왔던 보디발에게 요셉이 눈에 띠었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생기발랄한 소년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아서 해맑은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먼 거리를 오느라 지쳤고, 자신의 앞길을 알지 못하니 절망했겠지만 여전히 다른 노예들과 달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보디발이 선뜻 그를 사갑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음을 강조합니다. 비록 노예로 살았지만 하나님께서 요셉의 삶을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형통하게 하였다는 말씀은 요셉의 삶에 하나님의 손길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열심히 살았을 것입니다. 비록 낯선 땅에 팔려온 노예였지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했을 것입니다. 요셉으로 인해서 그의 주인 보디발의 집이 복을 받습니다. 이를 통해서 이집트의 고위관리 보디발이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을 봅니다: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았더라”(3절).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간 요셉의 상황은 절망적입니다. 그의 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래도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간직했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요셉의 진가를 확인한 보디발이 그의 집의 모든 사무를 요셉에게 맡길 정도입니다. 요셉의 진실성과 성실함 그리고 남다른 정직함의 열매였습니다. 당시의 제국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온 요셉은 이렇게 삶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그 힘으로 노예의 삶을 견뎌냈습니다. -河-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2)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으며 지내던 요셉에게 인생 최대의 위기가 닥칩니다. 하루는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들에서 양을 치는 형들에게 보냅니다. 요셉은 선뜻 형들을 찾아 나섭니다. 형들이 도단이라는 곳에서 양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 고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멀리서 걸어오는 요셉을 알아본 형들은 요셉을 죽일 생각을 합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말씀에서 야곱은 요셉을 특별히 사랑했지만, 형들은 동생 요셉을 미워했다고 했습니다. 요셉을 향한 형들의 미움은 시기와 질투로 발전했습니다. 요셉 혼자 채색 옷을 입고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질투가 생겼습니다. 자신들은 들에서 양을 치느라 고생을 하는데 요셉은 아버지 곁에서 편하게 지내는 것도 못마땅했습니다. 게다가 자신들이 요셉에게 절할 날이 올 것이라는 꿈 이야기를 듣고는 시기심이 불일 듯 일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자신들만 있는 들판에 요셉이 나타났으니 그를 죽일 생각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형들은 요셉을 보고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라고 비아냥거립니다. 요셉을 잡아서 구덩이에 던져서 죽이려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웁니다. 시기와 질투 의 끝이 참으로 무섭습니다. 그래도 맏이 르우벤과 유다의 중재로 요셉을 죽이지는 않고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당시 노예 한명 값인 은 이십을 받고 팔아버립니다. 이렇게 해서 요셉은 이집트로 팔려갑니다. 형들은 요셉의 옷에 짐승의 피를 묻혀서 그가 짐승에 물려서 죽은 것처럼 아버지 야곱을 속입니다. 그동안 속고 속이는 인생을 살았던 야곱이 급기야 아들들에게 속임을 당하는 안타까운 일이 생겼습니다.

요셉을 죽일 생각을 하고 결국 먼 나라 이집트에 노예로 팔아버리는 형들을 보면서 시기와 질투가 얼마나 무서운지 배웁니다. 아마 형 혼자서는 그런 못된 짓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열 명의 형들이 의기투합하니 동생을 죽일 생각까지 합니다. 이처럼 죄는 작은 것에서 시작해서 큰 것으로 발전합니다. 혼자 하면 죄책감을 느끼지만 함께 하면 도리어 죄를 즐기게 됩니다. 사악하다는 말이 맞습니다. 그런 점에서 죄를 짓게 하는 것은 악한 영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죄에 민감해야 합니다. 죄를 자각하면 곧바로 회개해야 합니다.

형들이 요셉을 사랑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요셉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꿈얘기를 하면서 자랑할 때도 친엄마 없이 자란 그를 이해해주고 도리어 격려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밀려오는 것은 야곱의 형제들에게 사랑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준다고 했는데 말입니다.

지난주에 속회가 새로 발표되었습니다. 온 교회가 서로 사랑해야 하지만, 올 한해 속회를 통해서 주님의 사랑을 나누기 원합니다. 시기하고 질투하거나 허물을 들추어내기보다 서로 품어주면서 사랑으로 행하는 속회가 되기 원합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시기와 질투 그리고 경쟁이 판치는 세상 속에서 사랑으로 행하시는 참빛
식구들 되시기 바랍니다.-河-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1)

오늘은 새로 세워진 임원들을 임명하고 축하하는 날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핏값을 주고 사신 교회를 섬기는 것은 매우 감격스런 일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임원을 세우는데 까다로운 기준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직분이 어떤 지위가 아니라 섬김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정해진 기준을 충족하고 자원하는 마음이 있을 때 교회의 임원으로 세웁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작년부터는 젊은 집사님들께서 주일예배 기도를 인도하십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는 사명을 갖고 있는데, 젊은 집사님들을 교회의 일꾼으로 준비시켜드리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권사님들께서 배려해 주시고, 은퇴하신 권사님들께서 식사기도로 섬겨주시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젊은 집사님들에게 기도의 기회를 주신 권사님들과 기도로 섬겨주시는 집사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랫동안 교회를 섬겨주신 원로집사님을 명예 권사님으로 모시고, 여섯 분의 젊은 집사님을 세웁니다. 직분을 받으신다고 갑자기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교회 사역이 늘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대신에 몇 가지 부탁을 드립니다. 명예 권사님께서는 직분 그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고, 교회의 어른으로 본을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주는 명예직이기에 더욱 뜻 깊은 직분입니다. 집사님들은 성심껏 교회를 섬겨주시기 바랍니다. 궂은일을 먼저 하시고, 교회를 위해서 기여할 수 있는 사역을 찾아서 자원하시면 됩니다. 저희 교회는 일에 사람을 맞추지 않고, 일하실 일꾼이 있으면 그 사역을 시작합니다. 여러분이 하고 싶으신 사역을 마음껏 하시기 바랍니다. 힘닿는 대로 지원하겠습니다.

사역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새로 임명된 임원들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의 모든 임원들께 드리는 부탁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경건의 시간을 규칙적으로 가지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사도가 부탁했듯이 교회를 섬길 때는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힘으로 하면 금방 지치고 불평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교회와 성도님들을 섬기시고, 주님의 은혜와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오늘부터 창세기 요셉에 대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지난 한달 동안 하나님께서 쓰시는 교회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에 대한 말씀을 나누려는 것입니다. 요셉에 대한 말씀을 통해서 오늘 세워주신 임원들은 물론 참빛 교회 모든 성도님들께서 하나님께 쓰임 받으시길 기대합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신앙과 성품을 갖추시길 바랍니다.

요셉에 대한 말씀은 그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꾸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지만 요셉이 너무 일찍 발설하는 바람에 형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요셉과 그의 아버지 야곱은 하나님의 꿈을 마음속에 간직했습니다. 요셉이 이집트에 팔려가고 어려운 일들을 연거푸 겪었지만 하나님의 꿈을 마음에 품었기에 힘든 과정을 이겨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마음에 품고 있으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河-

하나님이 쓰시는 교회 (4)

올 해 우리 교회 표어대로 <하나님이 쓰시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이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교회도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또한 성령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거하시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의 전이라고 말하고 있으니(고전3:16) 우리들이 쓰임 받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서 쓰시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신다는 것을 생각하면 두 가지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제일 먼저 하나님께서 쓰심으로 일어나는 외적인 변화 또는 열매들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쓰셨다는 것이 겉으로 드러나니 당사자는 물론 주변 사람들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이것이 요한 계시록의 일곱 교회들에 있었던 “행위”일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내적인 성품의 변화입니다. 두아디라 교회에 있었던 사랑, 믿음, 섬김과 인내의 네 가지 덕목이 성품 속에 배어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행위와 성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쓰시는 것이 드러나 보일 때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아보게 되고 그들도 하나님께로 올 것입니다.

저는 위의 두 가지 표시들 가운데 특별히 성품의 변화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행위는 좋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어서 하나님께서 쓰심을 한결같이 드러내 보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반면에 우리의 성품은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명합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들을 보고‘예수 믿는 사람답다’라고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신다는 증거가 됩니다. 신앙과 삶의 통합이 이루어진 행위도 중요하지만, 예수님을 닮은 성품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쓰임받기 원합니다.

오늘 살펴볼 서머나 교회는 빌라델비아 교회와 마찬가지로 책망 없이 칭찬만 받았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고난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이 겪고 있는“환난과 궁핍”을 알고 계셨습니다. 여기서 환난이라고 하면 밖에서 오는 핍박을 가리킬 것입니다. 궁핍은 물질적인 빈곤입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라오디게아 교회와 반대로 서머나 교회는 가난했습니다. 자랑할 것이 없는 초라한 교회였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의 실상이 제각각인데 그 가운데 서머나 교회의 상황이 가장 열악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서머나 교회를 두고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고 칭찬하십니다. 라오디게아의 책망과 정반대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믿음이 부요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목숨 걸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앞으로도 고난이 계속 닥칠 것이라니 이들의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시는 당부의 말씀이 “죽도록 충성하라”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믿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환난의 기간이 열흘로 정해져 있음을 알려 주십니다. 이들 앞에 생명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신앙생활이 늘 좋을 수 없습니다. 환난과 핍박이 수시로 밀려옵니다. 그때도 죽도록 충성하면서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고난의 끝에 생명의 면류관이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河-

하나님이 쓰시는 교회 (3)

이스라엘에 가면 사해 바다가 있답니다. 사해는 말 그대로 죽은 바다(dead sea)입니다. 사해 바다가 죽은 것은 물을 받아들이기만 하고 내보내지 않아서 죽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사해 바다도 순환이 되지 않으니 그만 죽은 바다로 변한 것입니다. 올 한해 우리 교회 표어가 <하나님이 쓰시는 교회>인데 우리가 받은 것을 이웃에게 나눠주고 세상에 흘려보냄으로 살아있는 신앙을 갖기 원합니다. 무엇이든지 나만 갖고 있으면 하나뿐이지만 그것을 누군가와 나눌 때 둘이 되고 셋이 되는 증폭의 역사가 일어남도 기억합시다.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가운데 칭찬 없이 책망만 받은 교회가 있는데 바로 사데교회와 라오디게아교회입니다. 사데교회는“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3:1)라는 책망을 받습니다. 교회가 존재했고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예수님 보시기에 죽은 교회였습니다. 사데 교회 안에서 하나님 앞에 합당한 행위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지만 정작 교회의 주인 되신 예수님께서 거하실 곳이 없었습니다. 신앙을 모두 잃어버렸고 이름만 교회라고 불렸습니다.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다시 시작하면 회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 보시기에 죽은 교회였지만 그 안에 옷을 더럽히지 않은 성도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힘든 가운데도 교회를 가슴에 품고 끝까지 신앙을 지킨 거룩한 성도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라오디게아 교회는 일곱 교회 가운데 가장 부유했습니다.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세상적으로 성공한 교인들이 모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신앙에 대한 열정이 사라졌습니다. 세상일에 관심을 가지면 자연스레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줄어듭니다. 두 가지가 함께 가는 것이 무척 어렵습니다. 신앙이 미지근해진 것입니다. 무엇보다 라오디게아는 물사정이 좋지 않아서 인근 온천에서 물을 배달해서 먹었는데 수도관을 통해서 도시에 도착할 즈음이 되면 물이 미지근해지곤 했습니다. 또한 골로새에서 찬물도 배달했는데 목적지에 도착하면 미지근해졌습니다. 오늘 본문의 미지근한 신앙이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는 말씀을 두고 해석이 분분합니다. 뜨거운 신앙과 찬 신앙이 무엇인지 제 각각으로 설명합니다. 하지만 본문의 초점은 미지근한 신앙을 책망하려는 것입니다.

생활이 편해지고 세상에서 가진 것이 많아지면 신앙이 미지근해집니다. 미지근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대충 믿고, 형식적으로 교회 생활을 합니다. 이러한 라오디게아 교회를 두고 가련하고 벌거벗은 것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 성공했지만 신앙적으로는 낙제점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향한 열정입니다.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세상 것들 보다 가장 위에 두는 것입니다. 받은바 은혜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쓰시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河-

하나님이 쓰시는 교회 (2)

올 해 우리 교회 표어는“하나님이 쓰시는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교회가 되고 성도들이 되기 위해서 어떤 믿음과 성품을 갖고 있어야 할지를 요한 계시록에 있는 일곱 교회를 통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책망 없이 칭찬만 들었던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화산과 지진이 자주 일어났던 빌라델비아 교회는 “직은 능력”이라고 표현되었듯이 큰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주어진 여건과 능력 안에서 하나님 말씀을 실천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겼습니다. 무엇보다“인내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어떤 환난이 닥쳐도 끝까지 견뎠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 앞에 열린 문을 놓아주셨습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하셨습니다. 새로운 이름을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빌라델비아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들이 그들 앞에 나와서 무릎 꿇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심을 원수들 앞에서 보여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렇게 빌라델비아 교회는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늘은 에베소 교회와 두아디라 교회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서신의 에베소서로 유명합니다. 바울이 2년여 머물면서 세운 소아시아의 대표적인 교회입니다. 명성에 걸맞게 신앙생활에 열심이었습니다. 사랑을 실천하고 힘든 일이 닥쳐와도 인내하면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단들이 교회에 침투해 왔지만 그들을 들이지 않고 잘 처단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이름을 걸고 부지런히 주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결정적인 잘못이 있었습니다. 처음 사랑을 버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신앙생활은 습관적이었을 것입니다. 열심을 냈지만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기보다 자신들의 이름을 높이거나 교회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열심을 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이 아니라 형식적인 열심입니다. 예수님께서 첫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시겠다고 경고하십니다. 촛대를 옮기시면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대신에 예수님의 말씀대로 첫 사랑을 회복하면 에베소 교회가 쌓아온 신앙의 공적과 함께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 두아디라 교회는 에베소 교회와 반대입니다. 이들은 처음보다 나중이 좋았습니다. 두아디라는 염색 산업으로 유명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 역시 사업을 많이 했고, 에베소 교회처럼 참고 인내하면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믿음과 섬김과 인내가 처음보다 나중이 좋았으니 칭찬받을 만 합니다. 그런데 두아디라 교회는 이세벨이라고 하는 음란한 선지자를 교회에 들이면서 도덕적으로 문란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큰 환난을 닥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얼른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갖고 있는 나중 신앙을 궂게 잡아야 합니다. 그러면 두아디라 교회 역시 새벽별처럼 빛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에베소 교회와 두아디라 교회를 통해서 처음과 끝이 똑같이 신실할 때 하나님께서 쓰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인내는 필수입니다. 잘못된 것은 얼른 고치고, 잘하고 있던 신앙을 굳게 잡을 때 하나님께서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시고, 새벽별처럼 빛나게 하십니다. 우리의 신앙도 주님 앞에서 처음과 끝이 일정하길 원합니다. 새해의 결심이 작심삼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이어지고 그 안에서 주님의 은혜를 누리기 원합니다. -河-

하나님이 쓰시는 교회

올 해도 어김없이 새해를 맞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365일이라는 귀한 자산을 인생통장에 넣어주신 것입니다. 이 귀한 자산을 관리하는 것은 하나님의 청지기인 저희들의 몫입니다. 물론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우리와 같은 심정으로 하나님께 친히 기도해 주시고,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2015년 우리 교회 표어는 <하나님이 쓰시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물론 성도님들 각자도 하나님께서 쓰시길 기대하면서 정한 표어입니다. 늘 그렇지만 우리 교회도 2015년이 꽤 중요합니다. 그동안 여기까지 잘 걸어왔습니다. 이제는 말 그대로 하나님께 쓰임 받고 하나님의 일에 동참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고 여겨집니다. 새해를 맞는 여러분들의 삶도 똑같이 중요한 단계에 진입해 있을 것입니다. 사업, 직장, 학업과 연구 그리고 개인의 모든 삶의 지경에서 중요한 한 해를 맞는 분들이 계십니다.“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성도님들을 써 주옵소서”라는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매 순간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쁠 때는 찬송하고, 힘들 때는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나침반 삼아서 한해를 살아갑시다.

올 해부터 몇 가지 변화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선 주일예배에서는 성경본문을 앞에 띠우지 않습니다. 꼭 성경책을 갖고 오셔야 하고, 예배 전에 성경본문을 미리 찾아 놓으시길 부탁드립니다. 사도신경을 새로 개편된 것으로 앞에 띠우고 온 교회가 함께 고백합니다. 습관적으로 외우는 사도신경이 아니라, 또박또박 함께 고백하면서 매 주일 우리의 신앙을 확인하기 원합니다. 예배실 뒤에 헌금함을 설치할 예정입니다. 예배 전후에 자유롭게 헌금하시면 됩니다. 헌금하실 때 기도제목을 적어주시면 제가 여러분들의 기도제목을 갖고 소통하고, 또한 새벽마다 기도하면서 목회할 수 있습니다.

1월 중에 속회를 개편할 예정입니다. 작년에 속회모임이 생각만큼 활성화되지 않았습니다. 올해는 속회를 작은 가정단위로 묶어서 개편할 계획입니다. 모임 횟수나 장소, 속회 헌금 여부도 속회 안에서 자유롭게 결정하시면 됩니다. 대신에 약속한 시간에 함께 모여서 하나님을 말씀을 공부하고, 서로의 기도제목을 나누고, 성도의 교제를 함으로 속회는 물론 우리 교회가 더욱더 친밀하게 하나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 교회의 자원이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닙니다. 생업으로 바쁘시고, 아이들을 돌봐야 하고, 또 멀리서 오십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안팎에서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셔서 여기까지 왔지만 재정적으로도 안정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올 해는 이웃을 섬기려고 합니다. 노숙자를 돕는 것, 작은 교회들을 지원하고, 수년 동안 해왔던 고국의 어린아이들을 돕는 일등 힘닿는 대로 구제와 선교를 실천하려고 합니다.

이 모든 교회의 사역에 꼭 필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주중에는 어려워도 토요일 새벽기도회에 많이 참석하시면 고맙겠습니다. 밤 10시에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전통도 꼭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한 마음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쓰시는 교회를 세워갑시다. 올 한 해 동안 여러분의 가정과 생업에 주님의 은혜와 신령한 하늘의 복이 넘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河-

로마서 8장 : 끊을 수 없는 사랑

로마서 8장은 구절구절 주옥같은 말씀으로 이뤄져있습니다. 12월 한 달을 로마서 8장과 함께 지내시길 부탁드렸습니다. 주일에 말씀을 듣고 주중에는 개별적으로 말씀을 묵상해 오셨다면 하나님 말씀의 깊은 맛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혹시 바쁘고 여러 가지 이유로 말씀 묵상에 참여하지 못하셨다면 남은 삼일 동안 로마서 8장을 읽으시고 곱씹으시면서 말씀의 은혜를 흠뻑 체험하시길 부탁드립니다.

로마서 8장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라는 힘찬 선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을 법을 이겼다는 확신에 찬 고백이었습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와 영을 따르는 자를 비교하면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자유케 된 그리스도인들은 생명과 평안으로 인도하는 성령을 쫓아 살아야 함을 깨우쳐주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향해서”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는 말씀도 나눴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이 쉽지 않습니다. 여전히 육신의 생각을 쫓을 때가 많이 있고, 어그러진 세상에 살다보면 죄악된 세상과 똑같이 신음하고 탄식합니다. 그때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탄식하면서 우리를 위해서 친히 간구해 주신다는 말씀 앞에 큰 힘을 얻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낍니다. 그런데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님 뜻대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니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룰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28절)는 말씀이야 말로 그리스도인의 확신이요, 능력이요, 자신감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로마서 8장의 피날레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것과 그 결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만도 감지덕지 감사할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끊을 수 없는 사랑이 소개됩니다. 네 가지 질문으로 시작되는 각 단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넉넉히 이기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아들까지 아끼지 않고 우리를 위해서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주실 것입니다.

본문이 쓰일 당시에는 예수님을 믿는 다는 이유로 고발당하고 목숨을 잃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환난과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고난이나 가난, 위험이나 심지어 죽음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그리고 바울이 고백하는 믿음이 우리에게도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대로 전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고 죄에서 자유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사랑해 주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싸워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와 유혹, 그리고 세상의 그 어떤 세력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은혜입니다. 할렐루야! -河-

로마서 8장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우리는 이제 로마서 8장의 한 가운데 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지만 여전히 고난이 닥칩니다. 삶 속에서 겪는 신음이 있습니다. 세상을 둘러보아도 탄식이 나옵니다. 그때 성령 하나님께서도 우리와 함께 탄식하면서 우리를 위해서 친히 간구해 주신다는 말씀을 지난 시간에 나눴습니다.

힘겨운 세상 속에서 어떻게 기도해야할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당황스러운 순간입니다. 때로는 어떤 것이 올바른 것이고 하나님의 뜻에 합한 것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에게는 알지 못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에 맞게 기도해주신다는 말씀이 은혜로웠습니다.

그러면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신 결과가 무엇일까요? 그것이 28절입니다:“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은혜입니다. 여기서 모든 것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들 삶의 모든 것들과 신앙생활의 모든 것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합력해서 선을 이룹니다. 삶에 고난이 찾아오고, 신음과 탄식의 순간들이 닥치지만 결국에는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고백은 매우 강력한 말씀입니다. 28절 말씀을 믿는다면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하나씩 대응해 나갈 수 있습니다. 결국에는 합력해서 선을 이룰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providence)라고 합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섭리(뜻 또는 계획)가 들어있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선으로 끝난다는 믿음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이러한 축복이 임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임하는 복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려는 육신의 생각과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합니다. 생명의 성령의 능력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한 설명이 다음 구절에 자세히 나옵니다. 29-30절의 다섯 가지 중요한 표현들입니다:“미리 아신 자들” “미리 정하셨으니” “또한 부르시고” “또한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부르시기로 정하신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부르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의롭게 하시고 결국 영화롭게 하십니다. 자세히 읽어보면 예수님을 믿는 우리 모두를 가리킵니다. 결국 우리들은 하나님의 뜻대로(계획하심대로) 부르심을 받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으니 우리는 그 은혜가 감사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때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축복이 임합니다. 할렐루야!-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