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성경의 복음서에는 기사와 이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곱 가지 표적을 축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특별히 표적(sign)이라고 부르는 것은 기적 자체보다도 그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표적 이후에 그에 대한 설명이 등장합니다. 처음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마태, 마가,누가 세 복음서를 공관복음서라고 합니다. 비슷한 관점에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공관복음서에도 초자연적인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자주 소개합니다. 요한복음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지만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사건들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나오는 기적을 똑같이 행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려는 것은 예수님의 위치에 올라가려는 것이기에 조심해야 합니다. 복음서의 기적을 읽으면서 예수님께서 자연을 다스리시고, 병도 고치시고, 귀신들을 쫓아내실 수 있는 분임을 깨닫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한복음의 표적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의 의미를 파악하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믿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 복음서에서 발견되는 기적을 우리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경우 신앙생활을 하면서 병 고침을 받거나 귀신이 쫓겨나는 기사와 이적을 경험하곤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그리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은혜이자 놀라운 체험입니다.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경험하면 아무래도 신앙에 확신이 생기고 역동적인 신앙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기사와 이적에 매달리는 신앙은 건전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22절에서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보다 십자가를 자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부탁합니다. 표적만을 구하고 집착하면 신앙이 왜곡됩니다. 게다가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활동하시던 2천 년 전과 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당시는 의술도 발달하지 않았고, 병에 걸리면 죄를 지은 결과라고 믿던 시대였습니다. 글을 읽거나 쓸 수 있는 인구가 매우 적어서 서기관들이 성경을 풀어주고 대신 글을 기록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시대였기에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 되심을 세상에 드러내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요즘 시대는 꼭 기적이 아니어도 하나님 말씀을 읽고, 깊이 묵상하고 삶에 적용하면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현대의 의술을 통해서 병을 고치면서도 그 과정에서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중요한 것은 기사와 이적을 통해서 또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자신이 온전해 지고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가 살아납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임을 알려주는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달리다굼(소녀야, 일어나라)” 명령하시니 죽음에서 일어났습니다.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죽음의 세력이 침투해 있다면 달리다굼하고 일어나면서 기적을 체험하기 원합니다. -河-
Category: 생명샘
마가복음 3 : 감사하는 마음
어느덧 11월도 일주일이 훌쩍 지났습니다. 일 년 중에 11월은 어찌 보면 꽤 어중간해 보입니다. 10월이 지나고 11월에 접어들면 자신도 모르게 한 해가 다 갔다는 생각이 들고, 연말을 맞을 준비를 하게 됩니다. 추수감사절만 지나면 크리스마스 세일 광고들이 우체통을 가득 채우고 캐럴이 흘러나오면서 한 해가 지나갔음을 알립니다. 그러다 보니 11월은 빠르게 때로는 없는 것처럼 훌쩍 지나갑니다.
저는 11월을 맞을 때마다, “감사”를 떠올립니다. 물론 우리 삶에 늘 감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솔직히 감사보다 불평, 염려, 두려움이 더 많습니다. 믿음으로 부정적인 마음들을 없애려고 노력하고, 그런 마음마저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려 하지만 생각처럼 조절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찬송가 가사 그대로 받은 복을 세어 보면서 11월을 보내려고 애를 씁니다
올해 우리 교회를 돌아보니, 감사할 제목들이 떠오릅니다. 어르신들께서 건강하게 교회를 지켜 주셨습니다. 젊은이들도 힘껏 교회를 섬겨 줍니다. 물심양면으로 은밀하게 교회를 섬기는 손길들이 있습니다. 새로운 생명도 태중에 생겼고 또 엊그제는 이재웅/조선미 가족에 승호가 태어났습니다. 여전히 빈자리가 있고 떠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하나님께서 채워가십니다. 찬양대와 찬양팀의 섬김, 여선교회와 남선교회의 꾸준한 섬김, 주일학교와 중고등부 선생님들의 은밀한 섬김, 권사님들과 임원들의 기도와 섬김 등 감사할 뿐입니다.
남선교회 기도회, 참빛 보이스, 부부 세미나, 네팔 선교 음악회, 강찬 전도사 초청 등 올해는 나름대로 의미있는 행사들도 꾸준히 진행해 왔습니다. 부족하고 아쉬운 것을 생각하면 한이 없습니다. 반면에 감사한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한 해를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이 나옵니다. 이제 추수감사절과 성탄절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찬양대와 남성 중창단, 주일학교가 정성껏 추수감사 주일과 성탄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선교회에서도 예년과 같이 추수감사절 만찬을 준비하시겠지요. 이렇게 한 해가 지나갑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성도님들 각자의 삶도 한 해의 끝을 향해서 달려갑니다. 늘 만족스러울 수 없습니다. 어르신들께서는 몸이 예전만 못하십니다. 몸이 약해지시니 마음도 때로는 신앙도 내려앉습니다. 일어나셔야 합니다. 믿음으로 연약해지신 몸과 마음을 붙드시고 하늘의 평화를 깊이 누리셔야 합니다. 젊은이들의 삶도 만만치 않습니다. 경쟁이 치열하고, 미국 땅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힘겹습니다. 이기고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어려움을 훌쩍 뛰어넘어야 합니다. 주님의 백성으로 힘차게 그리고 꿋꿋하게 부르심의 목적을 쫓아가야 합니다. 이 모든 여정의 한가운데 감사가 임할 때 멋지고 근사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씨 뿌리는 비유 속에 나오는 네 가지 마음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길가, 돌밭, 가시덤불, 좋은 밭의 네 가지는 우리의 마음을 표시합니다. 우리 안에 네 가지 마음이 공존합니다. 그중에 좋은 밭의 비중이 커져서 열매맺는 신앙과 삶이 되길 원합니다. -河-
마가복음 2 : 중풍병자를 고치신 예수님
지난 주일 설교에서 매우 빠른 진행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소개하는 것이 마가복음의 특징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가버나움에서 바쁜 하루를 보내신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을 두루 다시면서 복음을 전하시고 다시 가버나움에 돌아오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은 갈릴리 지역은 물론 갈릴리 호숫가 건너편과 두로와 시돈과 같은 이방 지역까지 포함한 순회사역이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갈릴리에 퍼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왔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중풍 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서 데려왔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아서 예수님 앞까지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이들은 고정관념을 깨는 창의적인 방법을 통해서 중풍 병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갑니다. 지붕을 뚫고 구멍을 내서 중풍 병자가 누운 상을 예수님 앞으로 내리는 방식입니다.
지붕을 뚫고 병자를 내릴 생각을 한 것도 파격이고, 지붕이 뚫어지는 동안 소음과 먼지를 참으신 예수님도 보통이 아니십니다. 그런데 더 파격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데리고 와서 지붕에서 내려보낸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5절). 병을 고치시기에 앞서, 죄를 사해주신다고 말씀하신 것이 파격입니다.
이 장면을 목격한 서기관들이 하나님도 아닌 나사렛 목수의 아들이 어떻게 죄를 사할 수 있느냐고 신성모독 죄를 지었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서기관들의 속마음을 알아채십니다. 그리고 죄 사함을 얻으라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는 말 가운데 어느 것이 쉬운지 물으십니다. 두 가지 모두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는 죄를 사하는 것이나, 일어나서 누웠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말씀도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막1:1). 곧이어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향해서 일어나 걸어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중풍병자가 일어나서 자리를 가지고 모든 사람 앞을 지나갑니다. 이것을 본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중풍 병자를 일으키신 행동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모든 사람이 알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특이한 점은 예수님의 사역에 반대하고 시기하는 서기관(당시의 엘리트이며 성경학자)들과 같은 적대세력이 처음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나사렛 목수의 아들로 보았고, 자신들의 지식과 신앙 전통에 매여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고정관념을 깨고 지붕을 뚫어서 중풍 병자를 내려보낸 친구들의 믿음과 대조적입니다.
믿음은 예수님 앞에 자신을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지붕을 뚫는 용기와 파격입니다.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일으키실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중풍병자를 고쳐주셨고 죄 사함까지 받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을 주관하신 예수님을 우리도 믿고 있습니다. 다음 한 주간 죄를 사하는 권세와 중풍 병자를 일으키신 능력의 주님을 의지하고 일어나서 힘차게 걸어갑시다. -河-
마가복음 1 : 예수님의 하루
올해 속회공과는 마가복음입니다. 속회를 한 달에 한 번 모이다 보니 성경공부가 이어지기 힘들고, 앞에서 배운 내용을 기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올해의 남은 주일에 속회에서 공부했던 마가복음 본문을 갖고 설교하려고 합니다. 속회에 참석하셨던 분들에게는 복습과 심화학습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속회에 참석하지 못했던 성도님들은 뒤늦게나마 속회공부를 하실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마가복음을 마태와 누가복음과 함께 공관복음(共觀福音,Synoptic Gospels)이라고 부릅니다. 비슷한 내용과 관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요한복음을 제4복음서라고 부르는데 공관복음과 달리 예수님을 로고스(말씀)로 설명하는 등 내용과 구조에 차이가 있습니다.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사역을 갈릴리에서의 순환사역과 예루살렘에서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크게 구분합니다. 갈릴리 사역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직진사역도 물론 포함합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사역을 간략하고 빠른 속도로 전합니다. 마태나 누가복음과 달리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기록을 생략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막1:1)는 선포와 함께 복음서가 시작됩니다.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 가서 시험받으신 사건도 짤막하게 알려줍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을 다니시면서 전하신 복음의 핵심은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구약에서 예언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때가 되면 메시아가 오시고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이심을 세상에 알리시면서 갈릴리 사역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특별히 마가복음 1장에는 예수님의 일과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꽉 찬 일정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사와 이적을 본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기에 휩쓸리지 않으시고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시는 데만 주력하셨습니다. 갈릴리 호수 해변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 세베대의 아들인 요한과 야고보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귀신들도 굴복하는 “권위 있는 새 교훈” (막1:27) 이었습니다. 회당에서 나온 예수님께서 시몬의 장모는 물론 소문을 듣고 찾아온 병자들을 밤늦도록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 밝기도 전에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로 세상에 오셨지만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을 입으셨기에 세상에 계시는 동안 하나님과 깊은 교제가 필요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바쁜 일정을 하나님의 뜻대로 소화하신 비결이자 힘이었습니다.
올해도 두 달 남았습니다. 분주한 연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쁠수록 예수님을 본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조용한 시간을 갖고 거기서 힘과 지혜를 얻기 원합니다.-河-
에베소서 (17) : 하나님의 전신갑주
에베소서를 갖고 지난 4개월 이상 연속해서 설교했습니다. 이번에는 차례대로 살펴보지 않고 몇 개의 주제로 나눠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처음 두 달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에베소서의 처음 여섯 구절을 설교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성도,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신실한 자들”이라는 말씀이 가장 마음에 남습니다.
그다음에는 에베소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를 통해서 성도의 신앙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부르심의 소망과 기업의 풍성함을 발견하고, 지극히 큰 능력 가운데 살기를 소원한 바울의 기도였습니다. 무엇보다 속사람이 강건해 지고 모든 성도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기를 재차 기도했습니다.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기도와 우리들의 기도 사이에 간격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없어질 것들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영원히 계속될 진리를 구하는 기도가 되길 원했습니다.
세 번째 큰 주제는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 자체가 기적이요 선물입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믿은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선택해 주셨다는 말씀 앞에 저절로 감사가 나왔습니다. 선한 일을 위해서 지음 받았고, 그 선한 일은 하나님을 위한 예배로부터 세상 속에서 행하는 모든 일이라고 배웠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 앞에서 선한 일들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작은 일부터 하나님 앞에서 행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마지막 주제는 “빛의 자녀들”이었습니다. 빛의 자녀들의 표시인 “착함, 의로움, 진실함”은 이제 쉽게 기억하실 겁니다. 빛의 자녀들이 모인 교회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서로 결합하고 연결되어서 모두 함께 예수님을 충분히 닮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빛의 자녀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셨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일상 속으로 파송하시고 그곳에서 빛으로 살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았습니다.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에베소서 마지막 시간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두 가지 영적인 세력의 충돌을 소개합니다. 빛과 어둠입니다. 빛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생명입니다. 어둠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욕심에 갇혀서 죽음으로 치닫는 세상입니다. 어둠을 다스리는 세력을 공중 권세 잡은 자(엡2:2)라고 불렀습니다. 에베소서 마지막 장에서는 어둠의 통치자들을 마귀라고 부르면서 이들과 대항하기 위해서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부탁합니다. 세상에서 펼쳐지는 일들 같지만, 신앙의 눈으로 보면 영적인 싸움입니다. 영적 전투라고 불러도 좋겠습니다. 그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당시 로마 군인들이 완전무장을 했듯이 그리스도인들도 영적으로 무장하라는 권면입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평안의 복음으로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부탁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바울 자신을 위해서까지 기도하라는 것을 보면 기도의 중요성은 물론 영적 전투의 심각함을 발견합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군사로 잘 준비해서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기 원합니다 -河-
에베소서 (16) : 빛의 자녀들 4
“빛의 자녀들”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에베소서에서는 우리가 전에는 어둠이었는데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참빛되신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심으로 빛이 된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빛의 자녀라고 부르면서 빛의 열매를 맺으라고 부탁합니다. 이처럼 에베소서 5:8-9절에서는 어둠에서 빛으로, 빛의 자녀에서 빛의 열매로 유사한 단어들이 반복해서 등장하면서 우리가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졌으며, 빛에 걸맞은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빛의 열매를 뜻하는 세 가지 덕목들인 <착함> <의로움> <진실함>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 가지 덕목들은 하나님의 속성이자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성품들입니다. 빛의 자녀들이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함은 물론, 세상을 향해서 하나님의 빛을 비추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향해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도 의미심장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빛으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끼리 즐기라고 빛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우리들 각자를 빛으로 세상에 파송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빛을 등경아래 숨겨놓으면 안 됩니다. 등경 위에 올려놓고 세상을 밝혀야 합니다.
성경에서 세상을 어둠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영역입니다. 아니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어둠입니다. 우리는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보냄을 받았습니다. 성경대로 하면 예수님께서 빛을 비춰주셔서 우리가 주님 안에서 빛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는 곳은 어둠이 물러가고 밝은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그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들 신앙은 교회가 아니라 세상에서 판가름이 납니다. 교회 안에서는 부족해도 상관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 빛을 비추려고 경쟁할 이유도 없습니다. 교회에서는 세상 속에서 빛이 되기 위해서 준비할 뿐입니다. 세상 속에서 빛으로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빛이기 때문이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에베소서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3장은 어떻게 빛의 자녀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후반부인 4-6장은 빛의 자녀들의 삶에 대한 말씀입니다. 전반부가 이론이라면 후반부는 적용인 셈입니다. 빛의 자녀들은 교회 안에서 신앙의 동료들 간에 거짓없이 진실되게 지내야 합니다. 주님의 공동체인 교회를 한마음으로 세워가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빛으로 살아야 합니다. 가정에서 부모와 자식들, 부부간에 빛의 자녀답게 서로 사랑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가정은 배운 것을 실천하는 최고의 장(場)입니다. 부부간에 사랑으로 대하고, 부모와 자식 간에도 존경과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일터에서도 빛의 자녀들의 삶이 드러나야 합니다. 직장 속에서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주님께 하듯이 동료들을 대하고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시간을 아끼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기회를 잘 사용해야 합니다. 그 비결이 성령 충만인데, 그때 빛의 자녀로서 최고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河-
에베소서 (15) : 빛의 자녀들 3
“빛의 자녀들”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빛과 어둠을 비교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졌다고 알려줍니다. 어둠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고집과 욕심대로 행하던 상태입니다. 어둠 속에 그리스도께서 거하실 수 없습니다. 반면에 빛은 예수님을 마음에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속에 들어온 상태입니다. 빛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비추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빛이 되었습니다.
빛의 열매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입니다. 착함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착하다면 사람들 앞에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속에서 착하다는 평판을 듣는 사람들입니다.
의로움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바른 상태입니다. 죄로 인해서 우리의 의로움은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 안에 깊이 자리잡고 있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고, 그 은혜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죄의 구름이 걷히고 하나님과 소통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상태가 의로움입니다. 진실함은 거짓이 없는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참된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 역시 진리의 영입니다. 이처럼 삼위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하나가 참됨(진리)입니다. 따라서 빛의 자녀들인 그리스도인들 역시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튼튼하고 세상 속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를 맺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이 세 가지를 그리스도인의 표지(마크)라고 말합니다.
빛의 자녀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물론 완벽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빛의 자녀가 되었지 행동이나 업적으로 빛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빛의 자녀답게 행하려고 노력합니다. 빛의 열매를 맺으려는 마음과 의지가 강력합니다. 교회로 모인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입니다.
빛의 자녀들은 교회에 모여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봉사의 일을 하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준비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 믿은 것에 하나가 되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길 소망합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어린아이의 신앙을 벗고 그리스도를 충분히 닮은 빛의 자녀들이 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사랑 안에서 모든 참된 것을 행하는 멋진 그리스도인들로 세워줍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훈련소와 같고,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와 같습니다.
빛의 자녀들인 성도들은 교회의 예배와 배움에 기쁨으로 참여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들이 서로 연결되고 결합되어서 그리스도를 배우고. 그리스도에게 이르도록 자라갑니다. 그래서 교회를 공동체라고 부릅니다. 더불어 살아가고 함께 주님을 찬양하는 빛의 자녀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세상 속에서 빛으로 살려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곳입니다.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 끊임없이 배우고 자라가는 모임입니다. 그 안에서 주님의 임재와 도우심을 경험합니다. 할렐루야.-河-
에베소서 (14) : 빛의 자녀들 2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시리라(Christ will shine upon you)”-에베소서 5장 14절 말씀이 지난 주일 내내 생각났습니다. 우리 지역에 비가 오지 않아서 걱정이지만, 대신에 한 낮에 밖에 나가면 따가운 태양 빛이 온몸을 내리 쮭니다. 눈이 부실 정도로 강렬한 캘리포니아의 햇볕입니다. 그때마다 우리 주님께서 비추신다는 지난 주일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비추시니 어둠이 빛이 되었습니다. 이제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 지난 시간에 배운 빛의 열매들입니다. 세 가지 열매가 우리 신앙과 삶에 있다면 우리로 인해서 어두운 세상이 밝아질 것입니다. 빛의 열매를 맺으면서 빛의 자녀로 사는 것은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삶이면서 세상을 밝히는 일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빛을 비춰주시기에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가 어둠에 있을 때 참빛되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심으로 빛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외인(outsider)이 아니고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엡2:19). 하나님 나라 공동체에 자동으로 편입된 것입니다. 빛은 혼자 있을 때보다 모여 있을 때 더 큰 위력을 발휘합니다. 빛의 자녀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라고 하나님께서 세상에 세워 놓으신 하나님 나라 공동체입니다. 빛의 자녀들의 모임이기에 교회에 힘이 있습니다.
공동체 속한 빛의 자녀들은 몇 가지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첫째는 배우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1-12절에서 교회에 여러 가지 직분을 두신 목적은 성도를 온전케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신앙을 배우고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이처럼 교회(敎會)는 말 그대로 가르치고 배우는 모임 즉 학습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봉사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와 세상 속에서 배운 대로 행하는 것이 봉사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 각자에게 적합한 은사를 주셨습니다. 받은 은사대로 교회를 세우는 것이 빛의 자녀들이 마땅히 해야 할 사명입니다.
이렇게 배우고 봉사하고 교회를 세우면서 온전한 신앙을 가질 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랄 수 있습니다. 장성한 신앙입니다. 반대로 어린아이의 신앙에 머물러 있으면 봉사의 일을 하기 힘들고 쉽게 지칩니다. 어린아이 신앙을 갖고 있으면 사람의 속임수나 간사한 유혹에 빠지기 쉽고, 세상 풍조에 밀려서 신앙과 삶이 요동칩니다 (14절). 장성한 신앙은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행합니다(15절). 참된 것만 행한다면 옳고 그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인색한 신앙이 되기 쉽고 자칫 남을 판단하다가 자신은 물론 공동체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참과 거짓은 분별해야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을 사랑으로 감싸야 합니다. 이렇게 진실함과 사랑을 겸비할 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서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각 마디가 도움을 주고받을 정도의 친밀함이 있어야 합니다. 함께 자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빛의 자녀들이 모인 교회의 참된 모습입니다. -河-
에베소서 (13) : 빛의 자녀들 1
지난주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걸작품으로 지으셨고, 우리가 행하고 걸어가야 할 선한 일들을 예비해 놓으셨다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그런데 종종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예비해 놓으셨다는 말씀에 발이 묶여서 미리 예정해 놓으신 특정한 선한 일을 찾는데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선한 일을 특정 직업 또는 어떤 일에 한정해 놓아서 범하는 실수입니다. 선한 일은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고 사람들과 세상에 유익을 끼치는 일입니다. 일을 하는 당사자에게 기쁨과 감사가 있다면 금상첨화입니다. 선한 일을 찾기 보다 우리가 하는 일을 선한 일로 바꾸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라는 말씀도 나눴습니다. 참빛 식구들께서 하시는 일들이 무엇이든지 하나님 앞에서 선한 일들로 승화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시고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기쁨이 되길 원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현재 추진하고 있는 고국의 소년 소녀 가장 초청 프로그램은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무명으로 헌금해 주신 성도님들의 선한 마음에서 시작된 일입니다. 원래는 우리가 매월 돕는 초록우산을 통해서 초청하려고 했지만 행정적인 이유가 생겨서 서로 양해하고 다른 채널로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과정을 지혜롭게 중재해 주시고 소통해 주신 담당 권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초청팀과 기획 위원들이 논의 한 결과 한국의 교회들을 통해서 신청서를 받고 우리가 직접 프로그램에 적합한 청년들을 선발해서 초청하기로 했습니다. 우리 교회 초청팀에서 신청서도 준비하고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의 글도 준비해서 서울에 있는 한 교회에 신청서를 보냈습니다. 어떤 청년들이 초청에 응할지 기대가 되고 저절로 기도가 나옵니다. 모든 성도님들의 마음도 같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함께 기도하면서 선발 과정을 지켜보고 청년들을 맞을 준비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환경 가운데 학업을 하면서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청년들을 우리 교회가 잘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희가 계획 중인 초청 일자는 2016년 1월 마지막 주입니다. 우리 교회가 추진하는 소년소녀 초청 프로그램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고국의 어려운 젊은이들을 섬기는 선한 일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앞으로 3주 동안은 <빛의 자녀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게 됩니다. 에베소서에서 알려주는 빛의 자녀들의 성품과 삶에 대해서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첫 번째 시간으로 우리들 각자가 어떻게 빛의 자녀로 살아야 할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5장 8절에서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고 선포합니다. 빛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상태,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은혜로 구원받음으로 빛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특별히 세 가지 빛의 열매를 소개합니다. ”모든 착함, 의로움, 진실함”입니다. 빛의 자녀는 선한 마음을 갖고 선하게 삽니다. 하나님과 의로운 관계를 유지하며 바른길을 걸어갑니다. 무엇보다 진실해야 합니다. 참빛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 빛을 비춰 주십니다. 주님의 빛을 세상에 그대로 비추시는 참빛 식구들 되시길 바랍니다. -河-
에베소서 (12) : 최고의 선물 3
“은혜로 삽니다” –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말은 언제나 맞는 것 같습니다. 혼자서 무슨 일을 해 볼 수 있을지 싶으면 어디서 인지 불청객이 들이닥쳐서 애써 쌓아놓은 공든 탑을 무너뜨립니다. 그때는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찾습니다.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생각만 하고 있을 뿐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입니다. 자기 힘으로 움직일 수 없는 아주 커다란 바위가 앞 길을 가로막을 수도 있습니다. 돌아가자니 해가 이미 저물고 바위를 지나쳐 가야 하는데 역부족입니다.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은혜로 삽니다.은혜가 우리에게 임한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아닙니다. 수요예배에서 함께 읽고 있는 잠언에서는 부지런함과 성실에 대해서 끊임없이 교훈합니다. 하나님 백성이라면 부지런히 그리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은혜가 힘을 발합니다. 그러고 보니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지만 은혜라는 하나님의 선물 꾸러미를 가슴에 품고 삽니다. 은혜는 우리에게 생명줄과 같습니다. 은혜로 호흡하고, 은혜로 걷고 달려갑니다. 은혜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행복합니다. 평안합니다. 감사와 기쁨으로 생동감 넘치는 인생길을 걸어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선한 일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도“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의 일을 예비하고 그 일을 하도록 인도하신다고 알려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선한 일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선한 일입니다. 히브리어에서 예배와 일을 같은 단어(“아보다”)로 표현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배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선한 일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도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삶을 통한 예배입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기도할때 지혜와 계시의 영이 임해서 마음의 눈이 밝아지고 부르심의 목적을 발견하기를 기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삶 한가운데서 부르십니다. 직장은 물론, 가족과 이웃과의 관계, 취미와 여가생활까지 우리가 하는 모든 활동이 하나님의 부르심이고 선한 일들입니다. 때로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이 선해 보이지 않아서 속이 상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우리를 죄로부터 부르셔서 의인으로 삼으셨습니다. 대단한 변화인데 그것을 구속(redemption)이라고 합니다. 우리도 세상 일들을 선한 일로 구속(redemption)시킬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우리들이 세상 속에서 선하고 아름답고 참된 창조 사역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이 선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우리 안에 이미 은혜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하도록 우리를 걸작품으로 지으셨고 우리의 일을 예비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힘차게 주님의 일을 행할 뿐입니다.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은혜 가운데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