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의 은혜 6

찬양에 대한 연속 설교를 오늘로 마무리합니다. 찬양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커다란 축복이라는 말씀으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왕되신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경배와 찬양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이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길도 기도와 찬송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찬송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고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한껏 누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찬양은 하늘나라에 가서도 계속될 신앙의 훈련입니다.“할렐루야(주님을 찬양하라)”라는 히브리어가 하나님을 믿는 모든 백성들 의 공용어가 된 것과 같습니다.

찬양에 대한 말씀을 전하면서, 성경에 있는 찬양의 인물들을 살펴보았습니다. 홍해가 갈라지면서 구원을 체험한 모세의 찬양, 처녀의 몸으로 예수님을 품게 된 마리아의 순종의 찬양, 빌립보 감옥에서 손을 잡고 기도하며 찬송했던 바울과 실라, 하나님의 법궤가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옷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면서 춤추며 찬양했던 다윗까지 성경의 주요 인물들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들을 통해서 힘을 다해서 찬양해야 하고, 목소리를 높여서 찬양해야 하고, 순종과 겸손으로 찬양해야 함을 배웠습니다. 찬양은 감사와 기쁨의 표현이라는 것도 배웠습니다.

기도가 습관이 되길 바랐듯이, 찬양도 습관이 되길 원합니다. 감사한 일이 있을 때 찬양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때 찬양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삶이 추락할 때도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날아오를 힘을 얻어야 합니다. 마음에 염려와 근심이 밀려올 때도 찬양을 통해서 기쁜 마음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마음속에 또는 삶 속에 밀려오는 두려움을 내쫓는데 찬양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일하면서 찬양하고, 설거지하고 운전하면서 찬양하고, 누워서 찬양하고 일어서서 찬양합니다. 우리가 이처럼 찬양의 삶을 살 때 우리 안에 임한 은혜가 배가되고,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마음껏 사용하실 것입니다.

찬양에 대한 마지막 시간인 오늘 우리는 에베소서 첫 번째 장에 나오는 삼위일체 하나님 찬양을 살펴봅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낼 편지를 쓰면서 “찬송하리로다”로 시작되는 말씀으로 성삼위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성부 하나님은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세상이 생기기 전부터 우리를 선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자녀삼아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선물로 주셨으니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자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겨 줍니다. 하늘에 속한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귀한 뜻을 알게 하십니다. 장차 하늘과 땅을 하나로 세우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와 함께 사실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보증인이 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이라고 인을 치면서 확증해 주십니다. 우리들 안에서 구원을 이뤄 가십니다.

우리들은 자칫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것에만 감사하고, 그것만 갖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좋은 일이 생길 때만 찬양하고 상황이 힘들어지면 찬양이 그칠 수 있습니다. 찬양은 삼위일체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어떠하든지 언제나 거기 계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성삼위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찬양 가운데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하나님 백성으로 사시길 바랍니다.-河-

찬양의 은혜 5

구약성경 창세기에 의하면 가인의 후손 가운데 유발이라는 사람이 수금과 퉁소를 발명했습니다(창4:21). 유발은 성경에서 말하는 첫 번째 음악가인 셈입니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악기들은 놀이나 가무에서 흥을 돋우는 역할은 물론 신전의 제사와 공동예식에 사용되었습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할 때 목소리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악기를 사용하기를 장려합니다. 실제로 성경에서는 하프와 같은 현악기, 나팔과 같은 관악기, 소고와 같은 타악기를 모두 동원해서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특히 다윗은 말 그대로 찬양의 사람이었습니다. 목동이었던 다윗은 하프를 타면서 양들을 관리하였던 것 같습니다. 다윗의 수금타는 솜씨는 세상에 널리 알려질 정도로 특출했습니다. 사울왕이 악령에 들어서 번뇌하고 고통스러워할 때 다윗이 왕궁에 들어와서 수금을 타면 사울왕의 정신이 온전해 지곤 했습니다(삼상 16장).

골리앗을 물리치면서 다윗의 인기가 사울보다 훨씬 높아졌습니다. 그러자 사울왕은 다윗을 몹시 시기했습니다. 시기와 질투하는 사울왕에게 악령까지 들어가면 다윗을 죽이려는 충동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왕궁에서 생활하던 다윗은 언제나 수금을 타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것을 본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창을 던졌지만 다윗이 두 번 모두 피합니다.“다윗이 평일과 같이 수금”(삼상 18:10)을 타고 있을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다윗은 목숨이 위태로운 현실 속에서도 수금을 타면서 하나님을 찬양했고 평정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평일에도 늘 찬양했습니다.

찬양의 사람 다윗의 진면목은 법궤가 예루살렘에 들어올 때 가장 잘 드러납니다. 다윗은 사울에 이어서 왕이 된 후에 다윗성이라고 불리는 예루살렘을 건축하고 그곳을 수도로 삼았습니다. 왕위가 견고해 질 무렵, 블레셋에 빼앗겼던 여호와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첫 번째 계획은 법궤를 손으로 만졌던 웃사라는 사람이 죽는 사고를 겪으면서 실패로 돌아갑니다. 그 후에 다윗은 요즘 식으로 찬양대를 앞세우고, 제사를 드리면서 조심조심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옵니다. 당시에 하나님의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상징이었습니다.

법궤가 예루살렘에 들어오자 다윗은 감사와 기쁨으로 춤을 춥니다. 옷이 다 흘러내렸는데 그것도 모르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시는 것이 한없이 기뻤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옷이 벗겨지면서 춤을 추는 것을 본 그의 부인 미갈이 다윗에게 핀잔을 줍니다. 그때 다윗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삼하6:21).

온 몸으로 하나님을 찬양했던 다윗의 마음이 구약의 시편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32편은 법궤가 예루살렘에 들어올 때 불렀던 다윗의 찬양입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예루살렘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없었다는 다윗의 고백, 하나님의 법궤 앞에서 그와 후손들이 예배할 것을 결단하는 모습,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실 축복을 소망하는 다윗의 마음이 잘 드러난 찬양시입니다. 다윗과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우리들도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기도 뿐만 아니라 찬양이 습관이 될 때 험한 세상 속에서도 평안과 힘을 누릴 수 있습니다.-河-

찬양의 은혜 4

성경에는 찬양에 대한 표현이 여럿 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이 중요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함을 배웁니다. 그 가운데 찬양에 대한 히브리어 네 가지가 눈에 띱니다. 첫째는“테힐라”라는 명사입니다. 하나님을 아주 큰 소리로 찬양하는 것입니다. 보통 찬양집회라고 할 때 테힐라가 어울릴 것 같습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 모여서 하나님을 <테힐라>했습니다. 둘째는 “할랄”이라는 동사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생각하고 눈으로 보면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 “할렐루야”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셋째는“야다”라는 동사입니다. 야다는 찬양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체적으로 경험하고 드리는 찬양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토다”라는 명사인데,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찬양입니다.

찬양에 대한 말씀을 연속해서 나누면서 참빛 교회 성도님들은 물론 교회 전체에 찬양이 넘치길 간절히 바랍니다. 찬양이 있는 곳에 기쁨이 있고, 감사가 넘칩니다. 찬양이 있는 곳에 두려움이 사라지고 하늘의 평안이 임합니다. 우리가 찬양할 때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몸소 체험하게 됩니다.

바울과 실라가 두 번째 전도여행을 할 때였습니다. 원래는 오늘날 터키에 해당하는 소아시에서만 복음을 전할 계획이었는데 성령의 지시로 마케도니아로 건너갔습니다. 그곳에서 첫 번째로 방문한 도시가 빌립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빌립보에 왔지만 복음의 문이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안식일에 유대인들의 기도처가 있는 강가에 가서 옷감장사였던 루디아를 만나면서 빌립보에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합니다.

신나게 복음을 전하던 바울과 실라는 귀신들려서 점을 치던 한 소녀를 만납니다. 이 소녀는 점을 쳐서 번 돈을 주인에게 모두 바쳤습니다. 귀신은 물론 주인에게까지 이용당한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소녀에게서 귀신을 쫓아냅니다. 수입원이 없어지자 주인이 바울과 실라를 모함합니다. 바울과 실라는 결국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옷이 벗겨지고 채찍에 맞았습니다. 발에는 쇠사슬이 채였습니다. 도망 나올 수 없는 깊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게다가 간수까지 붙여서 그들을 감시하게 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한 밤중이 되었을 때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기도를 했을 겁니다. 자신들이 전도한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비록 감옥에 갇혔지만 그 속에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감사와 기쁨의 찬송을 불렀을 것입니다. 이들의 기도와 찬송 소리가 적막한 감옥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때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감옥이 흔들리고 문이 열립니다. 놀라운 일이 생긴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를 지키고 있던 간수가 두려워서 벌벌 떨고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간수를 안심시킵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서 간수와 그의 가족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이 모든 일들이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혔던 절망적인 순간에 기도하고 찬양하면서 생겼습니다. 찬송은 하나님만을 의지하겠다는 고백입니다. 찬송은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는 선포입니다. 찬송은 어둠을 밝히는 빛입니다. 기도와 마찬가지로 찬송도 하늘보좌를 움직입니다. 다음 한 주간 삶 속에서 찬양의 능력과 은혜를 마음껏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河-

찬양의 은혜 3

우리들이 하나님과 소통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크고 높으신 하나님께서는 다양하게 우리와 연락을 시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도구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우리 측에서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기도와 찬양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 우리의 소원을 솔직하게 간구할 수 있습니다. 찬양도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수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찬양받기에 합당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찬양을 기다리십니다. 개인의 찬양은 물론 주님의 백성들이 함께 드리는 성도들의 찬양도 주님께 큰 영광이 됩니다. 지난 번 기도에 대한 말씀에 이은 찬양에 대한 연속설교를 통해서 하나님께 찬양을 통해서 영광 돌리고 무엇보다 찬양하는 습관이 생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주의 모세에 이어서 오늘 우리가 살펴볼 찬양의 인물은 신약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한 사이였습니다. 당시에 정혼은 오늘날 약혼관계보다 더 강력해서 이미 결혼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마리아의 약혼자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세상에서도 좋은 평판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요셉의 직업은 목수였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았지만 한 가정을 책임질 만 했습니다. 갈릴리 나사렛 동네의 선남선녀였던 마리아와 요셉은 결혼을 준비하면서 둘 만의 사랑을 키워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마리아는 평범한 여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말하기를 은혜를 입은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리아와 함께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어리둥절했던 마리아는 어찌된 일인지 속으로만 생각할 뿐 두려움 가운데 멈춰 있었습니다. 그때 천사가 엄청난 예언을 합니다.:”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 1:31). 마리아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남자를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사내아이를 잉태할 것이라고 천사가 말을 하니 큰 일 났습니다. 천사는 더욱 이해하기 힘든 말을 합니다.:“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 1:35).

마리아는 보통 일이 아님을 직감했습니다. 그 일이 자신에게 임했다는 사실은 두려운 것입니다. 하늘의 계시를 받고 특별한 일에 쓰임받기 보다 요셉과 결혼해서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천사의 말에 다음과 같이 순종합니다:“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 마리아의 고백이 참 아름답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의 찬양입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 자신에게 닥쳤지만 마음과 영으로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였다는 사실에 기뻐합니다. 힘이 없고 비천한 자신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 것을 보면서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메시야는 기존의 질서를 폐하고 새로운 세상을 펼쳐 보이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품은 마리아의 찬양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고 상식적으로 이해가지 않는 일 앞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답게 하나님께서 그리시는 세상을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河

찬양의 은혜 2

찬양에 대한 말씀을 나누는 두 번째 시간입니다. 찬양 속에는 말씀과 기도가 모두 들어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갖고 찬양을 드립니다. 찬양을 통해서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무엇보다 찬양은 감사와 기쁨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들어가면 저절로 찬양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체험해도 감사의 찬양을 드립니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 상황에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 인물들이 많이 나옵니다. 오늘은 그 가운데 대표적인 모세의 찬양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모세의 인생은 말 그대로 파란만장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죽을 운명이었지만 어머니의 지혜로 목숨을 부지합니다. 강물에 떠내려가다가 바로의 공주에게 구출된 모세는 이집트 왕궁에서 청년시절을 보냅니다.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산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혈기왕성한 성품을 관리하지 못해서 결국 살인죄를 범하고 나이 40에 광야로 도주합니다.

모세에게 있어서 광야 40년은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삶을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훈련 기간이었습니다. 모세는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을 만큼 낮아졌습니다. 하나님께서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사이에서 부르셨을 때 모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항복선언을 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킵니다. 바로왕 앞에서 행한 열 가지 기적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하심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집트의 장자들이 모두 죽는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을 끝으로 바로왕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로 떠날 수 있도록 허락합니다. 그때 모세의 나이 80세였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향해서 출발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떠나서 얼마 가지 않았을 때 홍해가 그들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모세를 떠나보낸 바로왕은 분에 차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했습니다. 뒤에서는 이집트 군대가 쫓아오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진퇴양난입니다. 백성들은 모세를 향해서 원망을 퍼붓습니다. 그때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홍해를 향해서 손을 앞으로 쭉 뻗습니다. 그때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물이 양 옆으로 벽을 이루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른 땅을 건너는 것처럼 홍해를 건넜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건넜을 때 이집트 군사들이 홍해에 들어왔지만 물이 다시 합쳐지면서 이집트 군사들은 전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물과 이집트 군사들로부터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홍해를 건넌 후 모세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여호와는 나의 힘이시오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출15:2).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가 갈라지는 구원을 체험했습니다. 그들의 목전에서 이집트 군사들이 물에 빠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자신들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그때 모세는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찬양은 내가 또는 공동체가 경험한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인생길을 가면서 하나님의 크고 작은 도움을 받습니다. 그때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을 향해서 모세처럼 찬양하는 일임을 꼭 기억합시다.-河-

찬양의 은혜 1

지난 상반기동안 올해 표어인 예배에 대한 말씀을 시작으로 소경 바디메오가 예수님을 만난 사건, 사순절 기간에는 복음의 능력과 성령의 임재와 역사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고, 기도에 대한 말씀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주제들을 연속해서 살펴본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듯이(롬10:17),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이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합니다. 가능하면 주일 설교를 녹음으로 반복해서 들으시고, 바쁘신 분들은 침대머리에 주보를 모아놓고“생명샘”에 요약된 말씀을 꼭 읽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기억력은 오래가지 못해서 반복하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립니다. 그러면 신앙이 뒷걸음질 치거나 제자리걸음을 하기 쉽습니다. 신앙은 꽃나무와 같아서 뿌리가 튼튼하게 내리고 줄기가 나와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도록 가꿔야합니다. 자신의 신앙을 꽃나무처럼 가꿔가는 것도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임을 기억합시다.

오늘부터 한 달 동안 찬양에 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찬양 속에는 기도와 말씀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고, 찬양으로 주신 말씀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예배할 때 꼭 필요한 것이 찬양입니다. 하나님은 찬양받기에 합당하시고 우리의 찬양을 기다리십니다. 스바냐 3장 17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 가운데 임재하셔서 춤을 추시듯이 기뻐하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십자가 죽음을 앞두신 예수님께서도 제자들과 함께 찬양하시며 겟세마네 동산에 가셨습니다(마26:30). 이처럼 우리는 찬양 가운데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십자가에 세로목과 가로목이 있듯이 찬양도 하나님께 드리는 수직적 찬양과 성도들 간에 함께 즐거이 부르는 수평적 찬양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구약성경 시편은 기도문임과 동시에 찬양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95편이 대표적입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나가서 즐거이 외치며 노래하길 청원합니다. 호흡이 있는 자들을 모두 찬양의 자리로 초대합니다. 실제로 하나님을 경험한 성경의 인물들은 기쁨과 감사로 그 은혜와 능력을 찬양했습니다. 이처럼 찬양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감사와 기쁨의 노래입니다.

동시에 찬양은 성도들 간에 구원의 은혜와 기쁨을 나누는 수단입니다. 사도바울은 우리의 마음을 주께 노래할 뿐만 아니라 성도들끼리“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기를 부탁합니다(엡5:19). 초대교회이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함께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했고, 서로를 향해서 찬송으로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힘을 얻었습니다. 자신들의 신앙을 찬송으로 고백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주님의 교회는 찬양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찬양에 대한 말씀을 나누면서, 참빛 교회 식구들의 마음에 기쁨과 감사가 넘치길 원합니다. 기도와 마찬가지로 찬송도 습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찬송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고 찬송의 은혜와 능력을 힘입는 귀한 시간이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할렐루야!-河-

겟세마네 기도 3

십자가의 길을 가기 전, 예수님께서 드리신 기도는 우리의 심금을 울릴 만큼 솔직하면서 또한 온전한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습관대로 감람산에 오르셨습니다. 피곤에 지친 제자들은 예수님의 속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잠을 잤지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앞에 놓으시고 하나님 앞에서 고뇌와 확신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습관대로 감람산에 가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들도 기도의 자리로 나가는 것이 습관이 되길 원했습니다.“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는 예수님의 기도처럼 우리들도 솔직하게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길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십자가의 길을 기꺼이 가시겠다는 순종이자 결단의 기도였습니다.

2013년 기도에 대한 말씀을 마무리하는 오늘은 예수님의 기도하시는 모습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습관을 좇아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돌을 던질 정도의 거리에 가셔서 따로 기도하십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단둘이 만나는 시간입니다.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대화하듯이 기도할 수 있지만, 때때로 하나님과 단둘이 교제하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단독으로 설 때 우리는 솔직해 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물론 세상일에서 조금 떨어져서 기도할 때 임하는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단둘이 만나서 교제하고 간절히 기도할 수 있는 자신만의 기도처를 갖는 것도 신앙생활에 커다란 도움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할 때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예수님의 기도를 도왔다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천사의 수종을 받으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힘을 도왔다는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어느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힘을 모두 소진하시면서 기도하셨기에 천사가 내려와서 예수님께 힘을 더해 준 것입니다. 기도에는 간절함이 서려있어야 합니다. 대충하는 기도 또는 입술의 기도만으로 부족합니다. 천사가 내려와서 도울 정도의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께서 어찌 응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다는 헬라어 표현은 고뇌와 진실함이 섞인 기도를 가리킵니다. 힘써서 기도하심은 십자가를 앞둔 예수님의 고뇌(agony)를 잘 표현합니다. 온 인류의 죄를 한 몸에 지시고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많이 힘드셨을 것입니다. 애써서 기도하심은 간절히 그리고 진실 되게 기도하시는 모습입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기도하셨고 간절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셨을 것입니다. 땀방울이 핏방울이 될 정도의 기도라는 말씀이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가장 잘 표현해 줍니다.

우리의 기도생활을 돌아봅니다. 우리는 지난 한달 동안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살펴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고 결심했습니다. 진정한 기도가 무엇인지 즉 기도의 정수를 배웠습니다. 하나님과 깊은 사귐, 솔직한 기도, 하지만 마지막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가 힘이 있음을 배웠습니다. 기도의 방법과 내용이 중요하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서 기도의 자세도 중요함을 배웁니다. 땀방울이 핏방울이 될 정도로 간절한 기도야말로 금향로에 드려지는 성도의 기도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들도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님처럼 기도하길 원합니다.-河-

겟세마네 기도 2

감람원이라고 불리는 겟세마네에서 드린 예수님의 기도 속에는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의 인간적 고뇌가 잘 나타납니다. 죽음 앞에서 두렵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홀로 가야합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셨을 것입니다. 게다가 모든 인류의 죄짐을 지고 가는 십자가의 길이었으니 마음이 얼마나 무거우셨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거기에 멈추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실 때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실 메시야라고 하신 말씀을 이루셔야 합니다. 살아계실 때 자신이 십자가에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지고 가셔야 할 사명입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십니다.:“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은 기도의 서두에서 잔을 치워주시길 간구하셨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기도를 마무리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겠다는 결단의 기도를 드리십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기꺼이 십자가를 지시겠다는 결심입니다.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드리신 기도입니다. 요한일서 5장 14절에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드리는 기도가 응답된다고 했습니다.:“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이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드리는 기도는 강력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대로 드리는 기도가 무엇일까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무엇보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는 것입니다(딤전2:4). 우리들도 자신만의 욕심으로 드리는 기도를 넘어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나오길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뜻은 자신의 백성이 항상 감사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살전 5:16-18). 그동안 말씀드린 대로 기도는 삶의 연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이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기도하길 원하십니다. 셋째로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주님의 백성들이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살전4:3). 하나님은 거룩한 성도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가장 잘 나타난 곳은 성경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근거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대로 기도하기 위해서 성경을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다가 마음 깊이 다가오는 말씀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지적하는 말씀이 될 수 있고, 약속의 말씀일 수도 있고, 결심과 행동을 촉구하는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 깊이 다가오면 그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가르쳐주는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품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솔직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모든 것을 토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드릴 때 비로소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우리의 원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길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때 기도의 응답을 넘어서 참 좋으신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河-

겟세마네 기도 1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에 오르셨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실제로 기도의 사람(man of prayer)이셨습니다.

특히 누가복음은 중요한 순간마다 기도의 자리에 나가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전해줍니다.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후에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3장).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 음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열두 명의 제자를 모두 부르시기 전날 밤에도 새벽까지 기도하셨습니다. 앞으로 예수님을 대신해서 복음을 전할 인물들이었기에 날이 새도록 기도하신 것입니다(6장). 그렇게 하셨는데도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한 것을 보면 영적인 싸움이 얼마나 치열한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루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즉 제자 삼인방을 데리고 산에 오르셔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때 엘리야와 모세가 예수님 옆에서고 예수님의 얼굴과 옷에서 빛과 광채가 나면서 하나님의 모습으로 변화되셨습니다(9장). 기도하실 때 신비한 하늘의 능력이 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기 직전에 제자들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예수님의 기도를 천사까지 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기도의 힘으로 십자가의 고난을 너끈히 이기셨을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도 마지막은 십자가 위에서 드린 기도입니다. 자신을 모욕하고 못을 박고 십자가에 매다는 로마 군병을 위해서 기도하십니다.:“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마지막 운명하실 때도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큰 소리로 드리셨습니다.:“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께 맡기나이다”(눅 23:46).

이처럼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을 기도하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3년의 사역을 시작하실 때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세우는 중요한 순간에 철야로 기도하셨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실 때도 기도하셨고, 잡히시기 전에는 물론 십자가위에서도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하시는 것이 습관이 되실 정도입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기도하셨으니 우리들도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예수님뿐 아니라 성경에는 기도의 인물들이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은 거의 다 기도의 자리로 나왔습니다. 그 가운데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다니엘이 대표적입니다. 다니엘은 서슬 퍼런 바벨론 왕궁에서 살았습니다. 그의 세친구 외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거의 없던 곳입니다. 그때도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바벨론 왕이 아닌 다른 신들에게 예배하면 사자 굴에 넣을 것이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 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단6:10). 하나님의 백성은 기도로 살아가고,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지혜와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인생의 고비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다니엘처럼 습관을 좇아서 기도의 자리로 나가야 합니다. 기도하는 주님의 백성은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꿋꿋하게 견딥니다. 그 신앙과 삶이 하나님께 닿아있기 때문입니다. -河-

성도의 기도

세상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말씀과 기도입니다. 말씀은 생명의 양식이니 매일같이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새벽예배와 수요예배에서 성경을 차례로 읽어나갑니다. 말씀과 함께 꼭 있어야 할 것이 기도입니다. 말씀이 생명의 양식이라면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하나님과 깊이 사귀는 은혜의 시간이 바로 기도입니다.

이처럼 말씀과 기도가 신앙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덕목이기에 올해도 어김없이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눕니다. 앞으로 한 달여 예수님께서 드리신 겟세마네의 기도를 살펴보겠습니다. 각자의 기도생활을 돌아보고 온전하고 간절한 기도의 자리로 나가기로 결단하는 귀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마지막 때에 세상에 임할 일곱 가지 재앙 가운데 마지막 재앙의 서두입니다.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곱 개의 인을 차례로 떼십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 인을 떼었을 때는 앞의 여섯 가지 재앙과 달리 반시간 정도 침묵이 흘렀습니다(계8:1). 요한 계시록의 특징상 침묵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뒤에 나오는 말씀을 통해서 보면, 1절의 침묵은 마지막 때에 고난과 핍박 가운데 있던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리던 기도의 시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침묵이 끝난 다음에 일곱 천사가 일곱 개의 나팔을 받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천사가 제단 곁으로 금향로를 들고 나옵니다. 향로에는 다름 아닌 성도들의 기도가 들어 있습니다. 금향로에서 나온 향들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께로 올라갑니다. 매우 엄숙한 순간입니다. 이처럼 본문에서는 성도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지는 향(香)으로 눈에 보이듯이 묘사합니다.

핍박 가운데 있던 성도들은 하나님의 구원이 속히 임할 것을 기도했을 것입니다. 악한 영이 지배하는 세상이 얼른 지나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되신 새 나라가 임하길 간구했을 것입니다. 천사가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세상에 쏟으니 천둥과 번개와 지진이 일어납니다. 세상에는 심판이 임하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영원한 구원이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이처럼 성도의 기도는 금향로에 담겨서 하나님께 올라갑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향처럼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성도의 기도가 얼마나 귀한 지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드려질 정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금향로에 담긴 성도의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기도를 너무 쉽게 드렸습니다. 기도를 소홀히 여겼습니다.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향으로 드려지는 성도의 기도가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알고 있었다면, 우리의 기도생활은 물론 기도의 내용도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앞으로 4주 동안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리신 예수님의 기도를 살펴보면서, 온전하고 아름다운 기도에 대해서 배우기 원합니다.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면서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드려지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정결해지기 원합니다. 금향로에 담길 정도로 가치 있는 귀한 기도가 되기 원합니다. 무엇보다 감사와 기쁨으로 하나님 마음에 합한 기도를 드리기 원합니다. 금향로에 담겨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아름답고 귀한 성도의 기도가 참빛교회 식구들의 입술과 마음에서 울려 퍼지길 소망합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