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끝까지 이르러

사도행전 1장 8절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는 네 번째 시간입니다. 한 구절을 갖고 한 달여 말씀을 준비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 만큼 중요한 구절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도행전 1장 8절은 사도행전 전체는 물론 그 이후에 펼쳐진 2천년 교회사의 주제절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기도에 힘쓰면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급기야 열흘이 지나고 오순절이 되었을 때 약속하신 성령이 임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이라는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너희가 권능을 받고”라는 말씀도 성취되어서 제자들에게 능력이 임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은 오순절 성령이 임한 후에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과정을 기록한 것입니다. 물론 그 복음은 지금도 계속 전해지고 있으니 사도행전은 28장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과 교회를 통해서 계속되고 쓰이고 있는 셈입니다.

제가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을 갖고 한 달 동안 설교한 두 번째 이유는 중요한 말씀을 차근차근 그리고 깊게 살펴보기 위함입니다. 이쯤 되면 말씀을 외우시게 됩니다. 또한 언제든지 이 구절을 만나시면, 한 달 동안 함께 나누었던 설교말씀이 생각나실 겁니다. 말씀 속에 들어있는 단어나 내용이 깊이 마음에 와 닿으실 것입니다. 무엇보다 말씀을 반복해서 읽고 자세히 살펴봄으로 그 안에서 살아있는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은 크게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1)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2) 너희가 권능을 받고, 3)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4) 내 증인이 되리라. 그동안 세 부분은 살펴보았고 오늘은 증인이 되는 지경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되는 첫 번째 지경은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은 현재 제자들이 있는 곳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는 장소가 바로 예루살렘입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예수님께서 온갖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때 제자들은 예수님을 부인하면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증인의 삶은 바로 거기서 시작됩니다.

둘째로 온 유대는 이스라엘 나라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의 물결은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던 온 유대까지 퍼져나갈 것입니다. 셋째로, 사마리아는 유대 사람들이 아주 싫어하는 지역입니다. 그곳에 예수님은 가셨고 사마리아 여인과도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복음은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장벽을 초월해서 전파됩니다. 복음 속에는 편견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그렇게 복음은 동심원을 그리면서 땅 끝까지 전파될 것입니다. 그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의 증인들인 우리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의 삶의 지경에서 증인의 삶을 살아갑시다. -河-

온전한 믿음

“한 수도가가 기름이 필요해서 올리브 묘목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주여, 이 연약한 뿌리가 자랄 수 있는 비가 필요하니, 단비를 내려 주십시오.’주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단비를 내려 주셨습니다. 수도사가 다시 기도했습니다.‘주여, 나무는 태양이 필요합니다. 해를 주십시오.’ 그러자 먹구름이 사라지고 해가 떴습니다. 수도사는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오 주님! 이 나무를 단단히 하기 위해서는 서리가 필요합니다.’그랬더니 작은 나무에 서리가 앉아 반짝거렸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나무를 보러 나온 수도사는 깜짝 놀랐습니다. 올리브 나무가 완전히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수도사는 동료 수도사를 찾아가 그의 경험을 털어 놓았습니다. 자신이 필요한 것을 일일이 알리고 응답을 받았는데 결과가 좋지 못했다고 의아해했습니다. 한참 듣고 있던 동료 수도사가 말했습니다.‘나 역시 작은 나무 한 그루를 키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잘 자라고 있습니다. 이 나무가 자랄 수 있는 것은 제가 나무를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입니다. 나무를 만드신 하나님께 말이지요. 하나님은 나무에게 필요한 것을 저보다 훨씬 더 잘 알고 계십니다. 나는 나무를 심고 기도할 때 ‘주여! 이 나무에게 필요한 것을 주십시오. 강풍이든, 햇빛이든, 바람이든, 비든, 서리든 주님이 때를 따라 주십시오. 주님이 나무를 만드셨기에 가장 잘 아십니다.’라고 기도했을 뿐입니다.“

짧은 예화지만 우리로 하여금 온전한 믿음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도 복잡해졌습니다. 더불어 우리들은 하나님께 너무 많은 것을 요청합니다. 게다가 구체적으로 기도하라는 말씀을 듣고 난 다음부터 아주 세세한 것을 하나님께 아뢰고 그것이 응답되기를 기다립니다. 물론 우리들은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주객이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구체적으로 기도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우리들의 마음을 빠짐없이 드리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기 위함입니다. 대화가 많은 부부가 친밀하고 서로 의좋게 한 평생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대화가 많다고 남편이나 아내가 상대방에게 매일같이 세세한 것을 요청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아마 질력이 나서 나중에는 관계까지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온전한 믿음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맡기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맡기는 것입니다. 온전한 믿음은 하나님께 많은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채워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온전한 믿음에는‘나 자신’은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감사’가 채우고 있습니다.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면 세상살이에서 낙오할 것만 같습니다. 불안하니까 자꾸만‘주세요! 주세요!”라고 또 다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믿음의 부족입니다.

교회도 믿음이 부족하면 혼란스러워집니다. 반면에 온전한 믿음으로 무장한 교회는 하나님의 뜻이 드러납니다.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찾아 실천하는데 최선을 다합니다. 하나님께서 실제로 교회의 주인이 되십니다. 우리 교회에도 이 믿음이 요청됩니다.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 그리고 교회의 주인으로 삼고 힘차게 앞으로 나갑시다.-河-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교회력으로 부활절을 지내고 오순절 성령강림절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세상에 계셨습니다. 그 기간 동안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서 성경이 자세히 알려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도행전 1장 초반부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행적을 짧게나마 알려줍니다. 3절에 의하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을 실제로 보고 훗날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기간 동안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전파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임하면 (이것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기도 하지요), 어떤 일이 일어날 지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어떤 모습으로 임할지 제자들에게 자세히 가르쳐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갖게 된 제자들은 이 세상의 삶에 연연하지 않고 순교자의 자리에까지 나갈 수 있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로 올라가실 때가 되면서 더 구체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여기서 성령이 임하는 것을 세례로 표현하면서 그동안 행해지던 물세례에 더해서 성령 세례를 언급하셨습니다. 이것이 오순절에 임하는 성령강림이었고, 오순절 사건을 기점으로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온 세상으로 전파되었습니다. 또한 성령을 체험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잡히실 때의 겁쟁이가 아니라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변하게 됩니다. 이 땅에 주님의 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은 사도행전 전체의 주제입니다.:“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처럼 사도행전은 성령이 임하는 것으로 시작되었고 성령을 체험한 사도들에 의해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차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령강림을 기다리며 예루살렘에 모여서 기도하던 제자들처럼 우리 교회는 물론 서머나 식구들 한 분 한 분 위에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기를 기대하면서 사도행전의 전반부 말씀을 연속으로 전할 예정입니다. 이번 연속설교를 준비하면서 몇 가지를 기도제목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는, 온 교회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열정(passion)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새롭게 세워가기 위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과 교회위에 임함으로 생기는 열심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처음 믿거나, 어떤 일을 처음 시작할 때 갖게 되는 첫사랑이기도 합니다.

둘째는,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모습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들은 생명을 내놓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도리어 기쁨으로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한 마음으로 교회를 세웠습니다. 교회를 하나 되게 하시고, 성도들에게 능력을 주시는 성령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서머나 식구들께서 이번 연속설교를 들으시면서 세상 속에서 승리할 수 있는 지혜와 힘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성령강림절을 향해서 가는 이 즈음에, 말씀의 능력이 우리 모두 위에 임하기를 다 함께 기도합시다. -河-

선하심과 인자하심

그동안 여섯 번에 걸쳐서 시편23편을 연속으로 설교했습니다. 새로운 예배처소에 와서 시편23편을 설교하면서 저는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첫째로, 새로운 예배처소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 교회 주일예배가 쉴만한 물가처럼 편안하며 푸른 초장처럼 생명의 양식이 매주일 공급되기를 원했습니다.둘째는, 아무래도 새로운 교회에서 예배하는 것이 어색하고 낯설 수 있습니다. 또한 처음으로 남의 건물을 빌렸기 때문에 자유롭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까지 동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예배처소에도 함께 하실 줄 믿었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우리 교회를 인도하고 보호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심을 성도님들께서 몸소 체험하시기를 소원하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넷째로, 우리 교회와 예배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축제의 장이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하나님께서 상을 베풀어주시는 은혜의 예배가 되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다섯째로,“성령의 임재와 역사가 임하는 교회”라는 표어대로 우리 교회위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기를 사모하며 기도했습니다. 여섯째로, 새로운 예배처소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새롭게 경험하고“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감사의 고백이 있기를 바랐습니다.

이제 오늘 마지막 시간이 되었습니다. 시편 23편은 여호와 하나님을 목자로 삼을 때 부족함이 없다는 고백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4절까지 여호와께서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함께 하시고, 공급해 주시는 목자가 되심을 차근차근 교훈해 주었습니다. 5절은 목자의 비유에서 잔치집의 비유로 바뀌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하늘나라 잔치자리의 VIP로 대우해 주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1-4절의 목자 되신 하나님의 은혜는 매 순간 임하는 현재의 경험입니다. 5절에 나타난 잔치집의 비유는 이미 기름을 부어주시고, 잔이 넘칠 만큼 임했던 하나님 은혜에 대한 감사의 고백입니다.

하지만 다윗의 신앙고백은 과거와 현재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시편23편 6절에서 미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평생 동안 계속될 것임을 믿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맡깁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임하면 아름다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선하다”라는 히브리어 속에 아름답다는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너무 보기 좋다고 스스로 감탄하셨습니다. 똑같은 히브리어가 오늘 본문에 사용되었습니다.

“인자하심”은 지난주일 주보에서 말했던 “헤세드”라는 히브리어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마음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평생 동안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임할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드립니다.:“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다윗에게 임한 시편23편의 은혜가 우리 교회와 모든 성도님들 위에 그대로 임하기를 바랍니다. 평생 동안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맛보며 사시는 서머나 식구들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河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편 23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사랑받고 즐겨 읽히는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시편 23편 속에는 그에 걸맞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나타나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십니다. 목자가 양들을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듯이 우리들을 가장 좋은 곳으로 인도해 주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십니다. 어디를 가든지 함께 하시고 막대기와 지팡이로 안위해주십니다.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명예를 걸고 우리들을 돌보십니다. 시편23편 속에서“자기 이름을 위하여”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잘 나타내주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 즉“헤세드”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헤세드라는 히브리어에는 여러 가지 뜻이 내포되어 있는데,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진실되고 변함없는 사랑이라고 요약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과 역사들도 헤세드라는 한 단어로 모두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요즘 수요예배에서 배웠듯이 요엘서 2장 18절에 표현된 “중심이 뜨거우신 하나님의 사랑”도 바로 헤세드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하나님의 헤세드를 체험할 때입니다. 또한 신앙이 성숙해 진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헤세드를 세상 속에서 실천하는 것을 뜻합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로 하나님의 헤세드를 노래한 다윗은 5-6절에서 주인과 손님의 관계로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1-4절이 푸른 초장에서 뛰어노는 양들의 행복함이라면, 5-6절은 잔칫집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 손님의 감사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잔칫상을 차려 놓으셨습니다. 그것도 원수의 목전에서 잔칫상을 차려놓으셨으니 얼마나 뿌듯하고 한편으로 통쾌하였겠습니까?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높이시는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으로 악을 갚아주시는 짜릿한 순간입니다.

기름을 머리에 부으셨습니다. 성경에서 기름을 붓는 것은 왕이나 제사장을 위임할 때 행했던 특별한 예식이었습니다. 기름 부음을 받는 것은‘구별됨’‘위임을 받음’‘축복’‘함께하심의 표시’등으로 풀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신약으로 오면 기름은 성령임재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잔이 넘치도록 부어주십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에게 특별히 임하는 은혜들입니다. 여기서 하늘나라 잔치의 주인공은 바로 다윗, 그리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주님의 백성이 된 우리들 모두입니다. 할렐루야!

어지럽고 복잡한 세상을 살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헤세드를 매일같이 경험하는 것입니다. 목자 되신 하나님을 따라가고 그 안에서 보호받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들을 축제의 자리로 초대하십니다.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집으로 우리를 초대하셔서 그곳에서 잔칫상을 베풀어 주시고, 머리에 기름을 부어주시고, 잔이 넘치게 축복해 주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들과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오늘 주일예배에 오신 여러분들 모두에게 기름 부으심과 잔이 넘치는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河-

함께 하심

고대 이스라엘에서 우기인 겨울과 봄에는 양들을 집 근처의 목초지에서 목양하였답니다. 그때는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내리는 계절이기에 조금만 나가도 푸른 초장이 있었고 쉴만한 물가가 있어서 목자들은 양들을 그리고 인도했습니다. 하지만 건기가 시작되는 여름과 가을철에는 양들을 이끌고 고산지대를 다녀야 했습니다.

양무리를 이끌고 산악지대를 오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양들에게는 산을 오르는 것보다 내려오면서 골짜기를 지나는 것이 더 힘들고 위험했습니다. 갑자기 돌풍이 불기도 하고, 짐승들도 출몰했습니다. 무엇보다 동작이 둔하고 멀리 보지 못하는 양들이 골짜기를 내려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목자의 인도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길을 가는 양들은 목숨을 잃기 쉬웠습니다. 그래서 목자는 자신의 양을 한 마리 한 마리 세심하게 보호하고 돌봐야했습니다.

원래 목동이었던 다윗은 이러한 상황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시편 23편 4절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인생 가운데서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사울왕에게 쫓겨서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겼습니다. 신하의 아내인 밧세바를 범한 순간도 영적으로 그에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였습니다.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서 밤중에 도주할 때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났습니다. 다윗은 그때마다 자신이 양과 함께 거닐었던 골짜기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양들을 보호해 주었던 것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간구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결국 시편 23편 4절에서“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는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시편 23편 4절 말씀의 다윗처럼 우리들 역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때가 있습니다. 질병으로, 삶의 환난으로, 자신과 씨름을 하면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때에도 곁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또한 죽을 정도로 위태롭고 힘겨운 순간에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경험해야 합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는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는 통로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지만 매일같이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만을 다닐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그곳은 종전에 설교했듯이 우리가 가게 될 천국입니다. 아니면 이 세상에서 잠깐씩 맛보는 세상 속의 천국이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거룩한 쉼의 시간입니다. 교회에 와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과 만나는 큐티시간이 바로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 역시 타락한 세상 속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거닐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때에 다윗처럼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위로하심을 느낄 수 있다면 그곳이 도리어 은혜의 자리로 변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처럼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할렐루야!-河-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맨 처음 행하신 기적이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가나라는 동네의 한 혼인잔치에 참석하셨습니다. 잔치가 한창 진행 중인데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부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명령대로 물을 붓고 그것을 떠서 손님들에게 갖다 주었을 때 놀랍게도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된 기적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준 요한복음에 기록된 일곱 가지 기적가운데 하나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키워드는“변화”입니다.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는 것은 인간의 생각이나 상식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물과 포도주는 성분이 전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를 두고“변화의 종교”라고 합니다.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분쟁이 있는 곳에 화해가, 아픔이 있는 곳에 치유가, 절망이 있는 곳에 소망이 생깁니다. 우리 안에 복음이 들어오면 우리들 역시 변화를 경험합니다. 생각이 변하고, 행동이 변하고, 삶 자체가 변화됩니다. 이것을 사도바울은 로마서 1장 16절에서“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변화를 일어나게 하는 동력입니다.

시편 23편 3절에서“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라는 말씀이 바로 복음 안에서 경험하는 변화를 뜻합니다. 여기서“소생시키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돌아오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가리킵니다. 모든 삶의 스타일을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으로 돌려놓는 것입니다. 여기서 소생케된다는 것을 거듭남으로 이해하면 이것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는 한 순간의 경험입니다.

하지만 소생케되는 것은 매일 매일 우리들 안에서 일어나야 하는 계속적인 과정입니다. 이것은 매일 매일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로 돌려놓는 훈련입니다. 아직 예수님을 마음속에 영접하지 않으셨다면, 사순절을 보내면서 예수님을 여러분 인생의 구주로 맞아들이십시오. 여러분의 영혼과 삶이 소성케 될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셨다면 매일같이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소생케하시도록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어려워도 매일의 삶속에서 소생케하시는 은혜만 체험할 수 있다면 행복하실 겁니다. 자유하실 겁니다. 복음의 능력과 그 안에서 변화를 경험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복음 안에서 소생케된 하나님의 백성에게 임하는 은혜는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거시고 바른 길,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심에 더해서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면 그 삶은 하늘을 향하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바른 삶일 것입니다.-河-

쉴만한 물가

염소는 자기 스스로 독립해서 살아갈 수 있는 반면에 양은 목자가 꼭 필요합니다. 신약성경에 양과 염소의 비유가 나오는데 여기서 염소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기 멋대로 사는 인생을 가리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염소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우리 마음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혼자 힘으로 살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전형적인 염소의 삶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은 이후로 우리의 삶은 도리어 하나님께 예속되었습니다. 우리 중심의 삶에서 하나님께 의존하는 삶으로 바뀐 것입니다. 양이 목자의 인도와 보호를 받아야하듯이 우리들 역시 하나님의 인도하심 없이는 살수 없는 존재로 바뀐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는 시편 23편 1절의 고백은 여호와 하나님을 목자삼고 자신이 그의 양임을 인정한 다윗의 신앙고백입니다. 때로는 염소처럼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어집니다. 그것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서는 자기 자신을 넘을 수가 없습니다. 말 그대로 뛰어봐야 벼룩인 셈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목자삼고 살면 삶의 범위가 하나님의 지경까지 확대됩니다. 거기서“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는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시편 23편의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자족(自足)의 표현이자 가능성의 고백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시편 23:2절에는 여호와를 목자삼고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사는 주님의 백성들이 누리는 은혜가 나옵니다. 첫째로, 먹을 것을 공급해 주시는 은혜입니다. 푸른 초장은 양들에게 필수적인 먹을거리입니다. 둘째로, 쉴만한 물가는 마실 것을 가리킵니다. 양들은 한 번에 많은 물을 마십니다. 선한목자는 양들이 충분히 마실 수 있는 물가를 알고 있고 양들을 그곳으로 인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는 바로 우리가 이다음 가게 될 천국을 가리킵니다. 하나님 나라는 생명수가 넘치는 곳입니다. 푸른 초장처럼 물댄 동산과 같은 곳이 우리가 가서 영원히 살게 될 하나님 나라입니다. 할렐루야!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하나님 나라를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천국의 모델하우스이기 때문이고, 예수님을 믿는 순간 천국 시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와 같은 하늘나라의 삶은 첫째로, 교회 안에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말씀의 꼴을 공급해 주고 예배를 통해서 생명수 샘물가의 편안한 쉼을 허락합니다. 또한 가정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체험해야 합니다. 가정은 우리들에게 필요한 양식을 공급해주는 푸른 초장과 같은 곳입니다. 가정은 천국과 같은 쉼을 공급해 주는 안식처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들 마음이 바로 푸른 초장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속에 생수의 강이 흘러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바로 우리 마음속에 임하기 때문입니다.-河-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지난주에는 신앙의 토대인 믿음, 소망, 사랑에 대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믿음에는 행함과 역사가, 사랑에는 수고가, 소망에는 인내가 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덕목들입니다. 우리교회 안에 그리고 모든 성도님들의 신앙과 삶 속에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가 항상 있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교회에 와서 어떤 말씀을 전해야 할 지 깊이 생각했습니다. 전하고 싶은 말씀이 많이 있었습니다. 아직 제가 젊고 열정이 있어서인지 교회의 부흥을 위한 말씀을 힘차게 전하고 싶었고, 새로운 곳에 왔으니 교회를 확실히 바꿔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서두르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지난 2년 동안 한 순간도 긴장을 놓지 않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여기서 무리하게 앞으로 나가는 것은 사람의 생각이요 욕심이었습니다. 지금은 심호흡을 하면서 잠시 쉬어갈 시간임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차분하게 미래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앞으로 나가길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와 성도님들께 아주 따뜻한 은혜의 말씀을 전하길 원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성도님들의 상한 마음을 말씀으로 어루만져주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때 제일 먼저 떠오른 말씀이 시편23편이었습니다.

시편 23편은 목자 되신 하나님의 세심하신 인도로 시작됩니다. 하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인생의 어려움도 들어있습니다. 사실 우리네 인생은 푸른 초장만 거닐 수 없습니다. 인생의 폭풍은 수시로 몰려옵니다. 때로는 죽음의 순간을 오갈 수도 있습니다. 그때에도 하나님께서 똑같이 인도하시고 함께하심을 다윗은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고백을 하도록 우리를 인도하시고 훈련시키십니다.

실제로 양은 매우 근시안이라고 합니다. 눈 앞 1피트정도밖에 볼 수 없기에 떼를 지어 다닌답니다. 그때 맨 앞에 서서 양들을 인도하는 목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디 양들만 그렇습니까? 우리들 역시 한치 앞을 보지 못하는 양들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우리들도 마음대로 인생길을 갈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다가 엄한 곳에 가서 망가지고 손해를 볼 때도 많습니다. 우리들에게도 인생길을 인도해 줄 선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들의 선한 목자가 되신다고 깨우쳐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의 인생길을 인도해주시니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들 역시 다윗처럼“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는 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河-

믿음, 사랑, 소망

기독교 신앙을 표현하는 말이 꽤 많습니다. 그 가운데 믿음 사랑 소망은 기독교 신앙의 세 기둥이라고 말할 정도로 우리의 신앙을 세워주는 토대입니다. 이를 두고 보른캄이라는 신학자는 “믿음 소망 사랑의 삼주덕(三主德)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진수”라고 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이 있을 때에 비로소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로 이루어진 신앙 공동체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은“믿음의 역사”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것은 믿음에는 행함이 뒤따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입으로만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반쪽믿음입니다. 믿음에 행함이 동반될 때 온전한 믿음이 됩니다. 또한 “믿음의 역사“라는 말 속에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다는 의미도 들어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믿음의 역사를 이루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음으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연결되면 믿음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또한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을 진실로 믿으면 사랑을 나누고 싶어집니다. 받은 사랑이 너무 많아서 그 사랑을 나눠주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랑 역시 수고가 필요합니다. 올바른 사랑은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희생과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수고입니다. 여기서 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는“코포스”입니다. 저는 이 단어를 외울 때 발음을 생각해서 “코피가 날 만큼 열심히 일하는 수고”라고 연상해서 외웠습니다. 한 평생 살면서 코피가 날 만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행복입니다.

믿음과 사랑이 현재 우리들이 가져야할 신앙의 태도라면, 소망은 우리의 신앙을 저 멀리 미래까지 연장시켜줍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소망은 특별히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서를 쓸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기를 고대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지 불과 20여년 후에 기록된 말씀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신앙을 유지하는 것이 힘겨워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기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소망에는 늘 인내가 필요합니다.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 –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 세 가지를 마음에 품고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이것을 두고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칭찬했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가 새로운 처소에서 첫 예배를 드리는 뜻 깊은 날입니다. 우리들은 그동안 온전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힘든 시간을 견뎌냈습니다. 이제 더욱 마음을 합해서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 그리고 소망의 인내가 넘치는 교회를 세워갑시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