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대로

올해 기도에 대한 말씀은 <은혜로 사는 한 해>라는 표어에 맞춰서, 주님의 은혜를 힘입고 험한 세상에서 악한 세력과 싸워 이긴 선지자 엘리야에 대한 말씀으로 정했습니다. 엘리야는 주전 9세기경 북쪽 이스라엘에서 활동했습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의 왕이 아합이었는데, 이방 여인 이세벨을 왕비로 맞으면서 우상숭배가 이스라엘 전체로 퍼졌습니다. 아합은 결국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악한 왕에 속하게 됩니다. 그 시절, 엘리야는 이방신을 믿는 바알 선지자들과 그를 죽이려는 이세벨 왕비에게 혼자 대항하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뭄이 닥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엘리야는 아합왕에게 가서 앞으로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없는 극심한 가뭄이 찾아올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당시에 가뭄은 전쟁과 전염병과 함께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가장 큰 징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물이 부족한 이스라엘에서 가뭄은 개인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가 위기에 처하는 재난입니다. 백성들의 지도자인 아합 왕과 이세벨 왕비가 하나님을 떠남으로 무고한 백성들까지 어려움을 겪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길르앗에 있던 엘리야를 찾아오셔서 그릿 시냇가로 몸을 피하라고 알려주십니다. 거기는 시냇물이 남아 있고, 먹을 것은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통해서 공급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까마귀가 음식을 공급해 준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엘리야는 “여호와의 말씀같이” 그대로 행합니다. 그러자 하나님 말씀대로 아침과 저녁으로 까마귀들이 엘리야에게 떡과 고기를 물어다 줍니다.

 

가뭄이 계속되니 엘리야가 있던 시냇가도 말라갑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시돈 땅 사르밧이라는 마을에 가서 머물라고 말씀하십니다. 시돈은 왕비 이세벨의 나라입니다. 엘리야가 대적하고 있는 이세벨 왕비의 고향으로 가서 머물라는 말씀은 까마귀가 음식을 날라다 줄 것이라는 말씀보다 지키기 어렵습니다. 그곳에 가면 한 과부가 있고 하나님께서 그녀를 통해서 엘리야에게 음식을 공급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시돈이라는 지역도 힘겨운 곳이지만, 과부가 엘리야를 돕는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일어나 사르밧으로” 갑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한 것입니다.

 

사르밧에 간 엘리야는 나뭇가지를 줍고 있는 한 과부를 만납니다. 엘리야가 물을 달라고 하면서, 떡 한 조각도 함께 갖다 달라고 부탁합니다. 과부가 자신의 딱한 사정을 이야기합니다. 곡식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남았고, 나뭇가지를 주어서 마지막으로 음식을 만든 후에 아들과 더불어 생을 마무리를 짓겠다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가서 작은 떡 하나를 자신을 위해서 가져오고 그 다음에 과부와 아들을 위해서 떡을 만들라고 말합니다. 엘리야를 위해서 떡을 만들면 양식이 떨어집니다. 과부와 아들이 먹을 것이 없는데 그다음에 그들을 위해서 음식을 만들라는 엘리야의 말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 과부는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행했습니다. 그다음부터 떡그릇과 통에 양식과 기름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기도는 말씀대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말이 아니라 믿음에 입각한 행동입니다. 기도는 삶인 것을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를 통해서 배웁니다.-河-

기도와 간구로

사순절과 부활절을 맞으면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성경에서 알려주는 영적인 렌즈로 신앙과 삶을 들여다본 것입니다. 복잡한 세상을 선과 악으로 단순하게 분리했습니다. 그리고 악을 다스리는 사탄이 우리 마음과 세상 속에서 어떻게 일하는 지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접근에 조심할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무조건 모든 것을 사탄의 역사라고 보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우선, 우리 안에서 벌어지는 염려, 근심, 두려움을 모두 사탄의 역사라고 일괄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염려와 근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때로는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삶의 긴장감을 높이고 앞으로 전진하는 활력이 될 때도 있습니다. 반면에 염려가 두려움과 절망으로 연결되고, 그 과정에서 극심한 우울증을 동반하며, 결국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 각자의 삶이 무너진다면, 그것은 악한 세력의 시험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이겨내야 할 것입니다.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허겁지겁 바쁘게 살고, 개인마다 독특한 기질을 갖고 있기에 서로 부딪치고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일상입니다. 이때도 부서진 관계를 통해서 각자 자신을 돌아보고, 다시 화해하면서 더욱 견고하게 신뢰관계를 쌓아간다면 그것 역시 염려할 것이 못됩니다. 반면에, 사탄의 시험은 갈등을 떠나서 분열과 소외를 일으킵니다. 관계를 놓고 하나님 앞에서 상대방을 비난하고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아담과 이브를 통해서 관계의 단절이 발생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이것이 악한 세력의 계교임을 얼른 알아차리고 각자 또는 함께 하나님께로 나와야 합니다. 사탄은 관계를 파괴합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과의 관계까지 망가뜨립니다.

 

세상의 모습도 무조건 사탄의 역사라고 단정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웃들과 어울려 사는 세상입니다. 이기주의와 욕심이 가득하고 게다가 물질이 판을 치는 세상입니다. 사탄이 주도하는 세상의 모습은 미움, 증오, 갈등, 죽음과 살인 등 누가 봐도 배후에 악한 세력이 있음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선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선교의 장(場)임을 깨닫고 빛과 소금으로 살면 됩니다. 사도바울의 권면대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평안하뇨”라고 인사 하셨듯이 하늘의 평안이 임하길 기도하고 화평케 하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처럼 마음은 물론 관계와 세상속에서 역사하는 사탄의 활동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때 우리는 예수님 말씀대로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야말로 시험에 들지 않고 사탄을 물리치는 능력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1)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사탄이 틈탈 기회를 주지 말고), 2) 감사함으로 (감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역이기에), 3) 모든 일에 (마음과 관계와 세상의 모든 일), 4)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죄와 사망을 이기신 예수님을 통해서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여기까지 나가면 우리 앞에 어떤 일이 닥쳐도 그 속에서 그리스도의 평강을 누리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일체의 비결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河-

부활의 능력

2016년 부활절을 맞았습니다.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기독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기에 기독교가 생명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도 부활로 이어졌기에 의미가 있습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사도 바울이 말했듯이 우리의 믿음도 헛될 것입니다.

 

지난 3주에 걸쳐서 영적인 세계에 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우리가 자연세계에 살고 있지만, 자연세계를 넘어서는 초자연적인 영역이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성경이 그것을 입증하고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도 영적인 세력의 존재와 활동을 인정하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악한 영의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멀게 만드는 악한 세력입니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사탄이라고 말합니다.

 

사탄은 초자연적인 능력을 갖고 있기에 거침없이 이 세상에서 활동합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니 아무 때나 나타나서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고, 어느 곳이나 침투해서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을 흔들고 하나님의 일을 방해합니다. 아담과 이브로 하여금 선악과를 따먹게 한 것도 사탄입니다. 사람들의 흥미를 돋우고,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유혹하고, 필요하면 하나님 말씀까지 살짝 왜곡해서 결국에는 하나님을 멀리하게 하거나 하나님을 대적하게 합니다.

 

사탄이 어떤 곳이나 누구에게나 침투할 수 있기에 사탄의 유혹을 따로 규정하기 어렵습니다. 단지 그 결과를 보아서 하나님을 멀리하게 만들 것이 예상되거나 실제로 하나님을 멀리하게 만든다면 사탄의 유혹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음속의 염려와 근심, 두려움, 그리고 일상의 관계들이 사탄이 노리는 공격 루트입니다. 지난 시간에 배운 가룟 유다를 보면 우리의 관심사나 장점까지 사탄의 표적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사탄의 공격을 분별하는 영적 안목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힘들게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골탕먹이는 분이 아닙니다. 관계 속에서 갈등이나 다툼을 조장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믿음 가운데서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갈등을 일으키거나 두려움을 심어주지 않으십니다. 이 모든 것들은 사탄의 작업입니다. 얼른 분별해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사탄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사탄과 경쟁하거나 타협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우리 힘으로 사탄을 이길 수 없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사탄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탄의 마지막 수단이 죄와 죽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죽으셨습니다.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의 세력 즉 사탄에게 승리하셨습니다. 현재 사탄은 패잔병으로 활동하는 것입니다. 승패는 결정이 났고 마지막 판정만 남겨놓고 있습니다. 부활의 능력을 굳게 믿을 때, 사탄의 유혹과 훼방을 예수 이름으로 대적할 수 있습니다. 부활신앙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부활의 능력으로 모든 유혹과 죄와 사망 권세를 이기기 원합니다. 할렐루야! -河-

돈궤가 화근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약성경의 예언대로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십니다. 이스라엘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이심을 세상에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의 명성을 들은 예루살렘 사람들은 종려나무를 들고 “호산나 (구원하소서)”를 외치면서 예수님을 맞이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로마 정권을 물리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다윗 왕국을 다시 세우실 줄 알았습니다. 영광과 승리의 주님을 기대한 것입니다. 며칠 뒤,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은 예수님께서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게 된 것을 보면서 예수님을 향해서 저주를 퍼붓는 폭도로 변했을 것입니다.

 

종려주일부터 부활주일까지의 기간이 고난주간입니다. 예수님께서 온 인류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고난을 받으시고 급기야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을 묵상하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주간입니다. 그동안 교회는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경건의 훈련에 힘썼습니다. 특별히 기도에 힘쓰면서 사순절을 마무리했습니다. 고난 주간에 맞는 금요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성금요일 (The Good Friday)입니다. 우리 교회는 따로 모이지 않지만, 샌프란시스코 교회 연합회에서 부활절 새벽예배와 함께 성금요일 예배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2016년 사순절이 끝이 납니다. 그리고 부활주일을 맞이합니다.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신 예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고 세상에 “주님께서 살아나셨습니다 (He is risen)”라고 알려주는 예배입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직전에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떡과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그것을 먹을 때마다 자신들을 위해서 몸을 주시고 피를 흘리신 예수님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웃옷을 벗고 대야에 물을 떠 오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면서,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서로 섬기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 자리에는 예수님을 팔은 가룟 유다도 있었습니다. 그는 제자들 가운데 돈궤를 맡았습니다. 불과 며칠 전 마리아가 예수님 발에 향유를 붓자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 낫겠다고 했던 장본인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그가 가난한 사람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향유를 팔아서 돈을 챙길 생각을 했다고 알려줍니다. 심지어 가룟 유다를 도둑이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이렇듯 돈에 밝은 가룟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서 예수님을 팔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만찬 자리에서 제자들 가운데 한 명이 자신을 팔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떡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유다에게 주면서 경고하셨고, 그가 다시 돌아오길 기대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미 사탄에 조종을 받은 가룟 유다는 뜻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사탄의 간교함과 능력이 3년을 섬기던 스승을 팔아먹도록 유다를 유혹한 것입니다. 급기야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면서 포기하십니다. 유다는 예수님으로부터 떡 조각을 받고 뛰쳐나가서 예수님을 팝니다. 사탄에 넘어간 것입니다. 사탄은 가룟 유다가 가장 관심을 갖던 돈을 통해서 들어왔습니다. 강점이 약점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곳에 사탄이 임해서 하나님을 거역하게 합니다. 깨어 있어야겠습니다.-河-

마음 전쟁

작년에는 캘리포니아에 심각한 가뭄이 찾아와서 주지사까지 나서서 물 절약을 권유하고 물을 낭비하면 벌금을 부과하겠다는 법규가 발표되었습니다. 방송에서는 연일 가뭄으로 말라가는 캘리포니아 내륙의 모습을 방영했습니다. 고속도로에는 가뭄이 심각하니 물을 아껴야 한다는 게시판들이 곳곳에 세워졌습니다. 하도 심각하게 염려를 하니 비를 내려달라는 기도가 절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엘니뇨가 찾아온 올겨울에는 비가 많이 내립니다. 지난 십여 일 비바람이 치는 폭우까지 내리고 덕분에 가뭄이 많이 해갈될 것 같습니다. 가뭄이 들 때는 더 이상 비가 오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올겨울에는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인간의 예측이 자연현상을 통제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일이 힘들 때는 다시는 좋은 일이 없을 것 같지만, 잠잠히 기다리면 좋은 날이 온다는 것도 자연을 통해서 배웁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이 말했듯이, 어려움이 찾아오면 신앙 안에서 견디고, 자신을 돌아보면서 소망에 이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도 다시금 되새깁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염려와 근심이 찾아오면 지나치게 극단적인 생각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책임지심을 믿고 꿋꿋하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입니다.

 

사순절 막바지에 마음을 살피는 말씀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신앙과 삶을 바르게 정돈하고 정결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기로 결심하기 원합니다. 우리 마음은 말 그대로 전쟁터입니다. 잔잔한 호수처럼 평화로울 때가 그리 많지 않고 맞바람이 치고 성난 파도가 이는 거친 바다와 같을 때가 많습니다. 애써 평안함을 추구하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합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우리 안에 두 가지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선을 행하기 원하는 마음속에 악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마음으로는 선을 행하기 원하지만 행동은 악으로 치달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속에서 악을 몰아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악을 다른 말로 죄라고 설명합니다. 죄는 사탄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결국 사탄이 우리 안에 죄라는 세력으로 찾아와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생각을 심어주고, 선한 마음과 갈등을 일으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마음이 전쟁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죄는 즉 사탄의 방해는 어느 곳에나 침투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인 사탄이 공중 권세를 잡은 자로 활동하고,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과 계명은 선한 것인데, 여기에도 침투해서 갈등과 혼란을 일으킵니다. 이것은 우리 마음뿐만 아니라 혼란스러운 세상의 모습을 설명하는 성경적 방식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우리 안에서 두 가지 마음이 싸우는 것을 두고 비참하다고 고백합니다. 악한 세력의 활동을 몰아내는 것을 두고 고민합니다. 결국 성령의 능력으로 죄와 죽음의 세력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선포합니다(롬8:1-2). 우리에게도 마음의 전쟁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요청됩니다. 이번 연속설교를 통해서 마음을 다스림은 물론 맑은 영혼으로 부활의 주님을 맞기 원합니다. -河-

유혹 – 무너뜨림

앞으로 한 달 동안은 특별한 말씀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말씀의 커다란 주제는 <마음 전쟁>이라는 찰스 스탠리 목사님의 저서에서 가져왔습니다. 3년 전에 존 스토트 목사님의 <새>라는 책을 갖고 말씀을 나눴던 것과 비슷한 형식입니다. 하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저 자신의 묵상과 우리 교회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설교가 구성될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신앙과 삶을 단지 이 세상에 제한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행하는 세상살이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이지요. 죽음 이후의 세상은 말 그대로 육신의 장막을 벗고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는 전형적인 영적인 상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도 영적인 문제에 직면합니다.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처럼 되고자 한 것도 뱀으로 가장하고 나타난 사단의 유혹에 넘어간 결과입니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은 아담과 이브 이전에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이 정확히 알려주지 않지만 사단의 기원은 타락한 천사 루시퍼에서 시작한다고 전통적으로 믿어 왔습니다. 천사는 하나님을 수종 들던 천상의 존재이니 인간보다 앞서 있는 것은 당연하고,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아담과 이브가 뱀의 꼬임에 넘어갔고, 그 이후로 죄와 죽음이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구약성경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택하셔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펼치시는 말씀이기에 영적인 세력인 사단의 활동이 뜸합니다. 또한 구약성경의 사탄은 신약성경에서 알려주는 사탄에 비해서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의 길로 인도하는 것을 악한 세력의 유혹으로 규정합니다.

 

신약성경의 사탄은 구약성경보다 강력한 힘을 행사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대적하는 영적인 세력을 알고 계셨고 그들을 대적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public life)를 시작하시기 전 40일 동안 광야에 계실 때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여기서 “마귀” “사탄” “악한 영” “공중권세 잡은 자”등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영적인 세력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을 대적하셨습니다. 귀신들린 사람들을 고치시는 등 사탄을 완전히 제압하셨습니다.

 

사도바울과 복음서 이후의 말씀에도 사탄의 활동이 나옵니다. 특히 바울은 마귀를 공중권세 잡은 영적인 세력으로 설명했고 우는 사자처럼 먹잇감을 찾아 헤맨다고 했습니다. 사탄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님 백성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멀게 만들고 결국에는 하나님께 등을 돌려서 다시금 원수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사탄의 종이 되게 하려는 것이지요.

 

스탠리 목사님은 <마음 전쟁>이라는 책에서 사탄의 활동을 우리 실생활과 연결합니다. 사탄이 우리 안에서 어떻게 활동하는지 예를 들어서 알려주십니다. 사탄의 유혹과 활동이 생각보다 구체적으로 우리 삶에 스며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작은 일까지 지나칠 정도로 사탄의 활동과 연결하는 것은 조심할 일이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연속 설교를 통해서 우리의 신앙생활에 영적인 분별력을 갖추고 신실한 주님의 백성으로 무장하길 원합니다. -河-

화평케 하는 자

세상이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우리가 사는 미국은 올해 말 대통령 선거가 있는데 각 당 후보들이 제각기 자신의 주장을 펼치면서 예비선거를 치르고 있습니다. 후보마다 공약이 제각각입니다. 만약에 그들의 약속이 한꺼번에 지켜진다면 미국은 산으로 갈 것 같습니다. 이렇듯 요즘 시대는 올바른 가치 기준 없이 너도나도 옳다고 말하는 상대주의가 대세입니다. 절대적인 진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 구원과 같은 거대담론이라고 불리는 크고 중요한 주제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개인이나 각 단체의 이해관계가 중요할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나와 내 편만이 존재할 뿐 우리라는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정겨운 모습과 민족이나 국가의 대의를 위해서 온 백성이 단합하는 일보다는 갈등과 분열이 앞선 시대가 되었습니다.

 

개인의 삶 속에서도 관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부부관계는 물론이고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도 쉽게 허물어집니다. 희생과 섬김의 동지의식보다 이기주의가 앞서고 강자가 약자를 무시하는 험악한 시대로 변하고 있습니다. 관계의 단절은 세상은 물론 개인의 삶이 메말라갑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서 편안한 삶을 살고 있지만 동시에 마음은 사막처럼 갈라지고 황폐해지니 왠지 모르게 서글퍼질 때도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관계의 단절이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에덴에서 쫓겨난 창세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과의 관계는 물론 아담과 이브, 자연 만물과의 관계가 망가졌습니다. 죄의 결과인 셈입니다. 또한 이브가 사단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따먹었으니 사단의 계략에 넘어간 것입니다. 관계가 단절된 세상은 “탄식(groaning)”뿐입니다. 틈이 점점 벌어집니다. 갈등이 생기고 평화가 깨졌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거역한 죄의 결과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 힘으로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수 없을 만큼 연약했을 때, 하나님을 떠나서 경건하지 못한 상태에 있었을 때, 죄인 되었을 때,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대로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와서 그의 사랑을 힘입고, 자신이 하나님을 거역했던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면 그 사랑 안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속에서 화평케 하는 자(peace maker)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갈등과 혼란에 가슴 아파하면서 그곳에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의 사랑을 세상과 나누는 것입니다. 양보하고, 희생하고, 섬기고 무엇보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작은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는 곳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임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목된 그리스도인의 의무이자 특권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로 사시는 참빛 식구들이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河-

주의 은혜

사순절을 맞아서 로마서5장 전반부(1-11절)를 함께 살펴보고 있습니다. 로마서는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 로마의 교인들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입니다. 로마라는 지역 특성상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기독교로 개종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에게 예수님을 믿는다는 의미가 무엇이고(1-4장), 예수님을 믿었을 때 어떤 은혜가 임하며(5-8장),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12-15장)에 대해서 차근차근 알려줍니다.

 

당시에는 예루살렘에 살던 유대인들이 로마로 이주해서 살기도 했는데, 이들 가운데 예수님을 믿고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와 구약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있었던 유대인들이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에 대해서 여전히 궁금한 것이 많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구약성경과 비교해 가면서 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진리인지 설명합니다.

 

이번에 살펴보는 로마서 5장은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은혜와 특권을 설명하는 본문(5-8장)의 서두입니다. 1절에서 바울은 앞에서 전했던 복음을 요약합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니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는 제안입니다. 2절부터는 믿음으로 은혜에 들어가고 그 안에 서서 주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할 것을 본격적으로 제안합니다. 신앙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은혜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서서 주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은혜 속에 들어갔을 때, 어떤 어려움이 와도 견딥니다. 인내를 통해서 연단을 이룹니다. 하나님 백성으로 성숙하고 멋진 성품과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소망으로 나갑니다. 여기서 소망은 환난을 극복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부터, 하나님 나라를 향한 소망과 죽음 이후의 영원한 삶을 가리키는 포괄적인 표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믿음 가운데 소망으로 나갑니다. 소망이 우리를 살리고, 견디게 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갑니다.

 

믿음과 소망은 사랑을 통해서 우리에게 임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목숨까지 바치신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에게 쏟아 부어졌다고 했습니다. 선별적으로 부어진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그리고 지속해서 부어졌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예수님께서 경건하지 못한 자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연약함은 말 그대로 힘이 없는 상태입니다. 하나님을 찾을 힘이 없으니 경건하지 못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힘이 되셨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해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사랑을 확증해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음 주에는 “우리가 아직 원수 되었을 때”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평케 되었다고 알려줍니다. 연약한 자, 죄인, 원수로 진행되면서 정도가 심해지는데 하나님의 사랑은 똑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신 사랑입니다. 사순절을 보내면서, 주님의 사랑과 은혜 속에 믿음으로 들어가길 원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