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섦과 익숙함 사이에서

좋은 아침입니다.

 

1.
24년 전 우리 가족이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에 내려서 느꼈던
8월의 미국 공기를 잊을 수 없습니다.
낯설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미국에서의 삶은
낯선 것과의 끊임없는 만남이었습니다.
사람들, 이웃들, 살아가는 삶의 양식,
일을 처리하는 방식, 사회의 관습과 제도, 언어 등등
반세기를 낯선 것들과 씨름하며 살았습니다.

 

물론, 그동안 낯선 것을 넘어서
익숙해진 것들도 많습니다.

 

처음에는 물건을 살 때마다 달러를 원화로 환산했고
일기 예보를 보면서도 화씨를 섭씨로 바꿨고
체중계 올라가서도 파운드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파운드는 물론 화씨가 편하고,
물건값도 달러로만 생각합니다.

 

생활 속의 낯섦은
시간이 흐르면서 익숙함으로 자연스레 변하게 마련입니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네요.

 

2.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낯설 수밖에 없지만,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서로 알아가다 보면
낯섦은 사라지고 친근함의 단계로 접어듭니다.
그때부터는 인간관계가 익숙하고 편해집니다.

 

그런데
낯섦을 극복하기 힘든 인간관계도 있습니다.
경계선 밖에 계시는 분들과의 사귐입니다.

 

레비나스라는 철학자는
우리의 진정한 모습은 타인 속에서 발견된다고 했습니다.
낯선 타인(other)이 우리의 자화상이 되는 셈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정말 위대하십니다.
당시의 보통 사람들이 죄인 취급하고
밖으로 밀어냈던 계층의 사람들과 친구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 주시고
자기 얼굴을 타인의 모습에 각인시키신
진정한 인간미,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3.
성경에 나타난 낯선 사람들
외국 출신 군인들에게 대한 연속 설교를 마쳤지만,
이들의 모습과 삶이 중첩되어 계속 생각납니다.

 

우리 역시 미국 땅에서 낯선 사람들,
나그네로 살아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경의 외국 군인들처럼
낯선 세상에서 멋지게 살아남아야 합니다.

 

낯선 것을 사랑으로 받아주고
낯선 사람들과의 경계를 허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에서 말하고 예수님께서 몸소 실천하신
이웃 사랑이 우리를 통해서 완성되길 소원합니다.

 

오늘도 낯선 세상에서
낯선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시는
참빛 식구들을 응원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2:5)

 

하나님,
오늘 하루 예수님의 마음을 갖고
낯선 자의 이웃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9. 1이-메일 목회 서신)

드러남

좋은 아침입니다.

 

1.
지구 곳곳에서
기상이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8월 초에는 데스 밸리에 홍수가 나서
관광객 천여 명이 발이 묶였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수도권에 내린 폭우로 많은 이재민이 발생했구요.

 

인간이 자초한 재난이라면
온 인류가 지혜를 모으고 힘을 다해서
어떻게든지 바로 잡는 노력을 기울여야겠습니다.

 

유럽에서는 500년 만에 극심한 가뭄이 찾아오면서
강들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답니다.

 

물에 잠겨 있던
2차 대전 때 사용했던 군함이 흉물스러운 몸체를 드러내고
고인돌이나 수억년 전 공룡 발자욱 같은 고대 유적이 나타나기도 하고
그동안 물에 잠겨서 숨겨져 있던 것들이
물이 빠지니 겉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2.
드러나는 것을 성경에서는 두 가지로 말합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계시(revelation)입니다.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알아내는 탐색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만큼 알고 깨닫는 것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을 드러내는 기록된 계시라면,
인간이 되신 예수님은
역사 속에 드러내신 하나님의 확실한 계시입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1:18).

 

다음은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고, 마지막 때가 되면
숨겨진 것 없이 모두 드러날 것입니다.
가뭄으로 강바닥이 마르면서
물 아래 있던 것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 같습니다.

 

고대 유물 같은 값진 것이 드러나듯이
우리가 남몰래 하나님 앞에서 행한 귀한 일들이 드러날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 안에 숨겨져 있던 것이
흉물처럼 드러날 수도 있으니 평소에 조심해야겠습니다.

 

3.
하나님의 드러남, 즉 계시는 영광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영광 가운데 임하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우리의 드러남은
칭찬과 수치가 함께 있을 것입니다.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이 모두 드러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잘못한 것은 겉으로 드러나기 전에 바로잡고,
하나님 앞에서 칭찬받을 것들이
많이 드러나는 감사하고 복된 순간이길 원합니다.

 

사랑하는 종을 고치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았던
이름도 없는 “어떤 백부장”처럼
예수님까지 깜짝 놀라게 할 정도의 놀라운 이야기들이
우리 안에 숨겨져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눅 8:17)

 

하나님,
우리 안에 값지고 선한 것들을
차곡차곡 은밀히 쌓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8. 25이-메일 목회 서신)

절반의 세상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주에는 미국 상원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과시켰고
엊그제 화요일에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함으로 발효가 되었습니다.

 

노인과 저소득층의 의료비 지원과 더불어
2030년까지 탄소가스를 40% 절감하겠다는
에너지 관련 조항이 포함된 법안입니다.

 

미국 정부는 앞으로 관련 분야에
삼천 칠백억($370billion)불에 이르는
엄청난 재원을 투자하게 될 것입니다.
당장, 내년에 전기차를 사는 경우 7,500불을 지원해 준답니다.

 

미국의 상원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의석수가 50대 50입니다.
동점이 나오면 상원 의장인 부통령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합니다.
실제로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도 51:50으로 통과되었습니다.

 

앞으로 이 법안이 올바로 실행되어서
미국의 어려우신 분들의 의료비 지원은 물론
세계에서 에너지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미국이
솔선해서 지구 살리기에 앞장서길 바랍니다.

 

2.
미국 상원만 의석을 반반씩 나눠가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둘로 나뉘어 있습니다.

 

화합보다는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사람들의 생각이 갈라졌습니다.

 

상대편 의견에는 무조건 반대하고
자기편 의견은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찬성하는
갈라치기가 유행입니다.

 

그러다 보니
모두 내 편 챙기기에 혈안이 되었습니다.
상대편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이렇게 절반의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3.
주일에 살펴보는 이방 군인들은
유대인들 입장에서 이방인, 즉 완전 타자입니다.
결코 유대인이 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헷 사람 우리아를 예수님의 족보에 포함했습니다.
아람 사람 나아만도 나병에서 회복되고 하나님을 믿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신약 성경의 로마 백부장 고넬료는
하나님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날 정도였습니다.
결국 베드로를 초대해서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경계를 허물고,
모든 사람을 하나님 자녀 삼는 사역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상대하지 않았던
죄인들, 세리들의 친구가 되셨고 그들과 함께 먹으셨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와서 자기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도
타자 또는 반대편에 있는
절반의 이웃을 품고 사랑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시도는 할 수 있습니다.
절반의 세상을 하나 되게 만드는
화평케 하는 자로 살기 원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하나님,
세상 속에서 화평케 하는 자로 살아가는
참빛 식구들과 함께하시고 인도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8. 16이-메일 목회 서신)

예수님이시라면

좋은 아침입니다.

 

1.
125년 전에 출판되었는데
여전히 기독교 베스트 셀러 상위권에 위치한 책이 있습니다.

 

찰스 셸돈 목사님의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In his steps>입니다.
무려 3천만 부 이상이 팔렸습니다.

 

책의 주인공 맥스웰 목사는
미국 소도시의 대형교회에서 목회하시는 분입니다.

 

인쇄 기계가 발명되면서 해고된
인쇄공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생활이 어려워지고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서
아내도 병으로 잃고 아이는 보육원에 맡긴 채
직장을 구하러 다니다가 거의 노숙자 수준이 되었습니다.
삶에 지치고 몸이 허약해진 젊은이 역시
목사님 곁에서 하늘나라로 갑니다.

 

대형 교회에서 편안하게 목회하던 맥스웰 목사님에게
인쇄공 젊은이의 죽음은 충격이었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믿어야 할지 고심 끝에
뜻을 같이한 50여 명의 성도들과 함께
1년 동안이라도 예수님을 따라 살기로 다짐했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질문을 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운동이었습니다.

 

신문사 사장은
사람들의 인기를 끄는 기사를 접고 건전한 기사만 싣기로 합니다.
오페라 가수로 발탁된 여성도
술집이 있는 곳에서 열리는 전도 집회에 참여합니다.

 

손해를 감수한 결정들인데
1년을 예수님을 따라 살았더니
개인과 교인은 물론 도시 전체가 변했습니다.

 

소문을 들은 시카고와 뉴욕에 있는 교회들도
예수님을 따라 사는 운동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선한 물결의 파장이 넓게 퍼져나간 것입니다.

 

2.
100년도 넘은 옛날에 쓰인 책입니다.
게다가 소설이니 내용도 단순하고 극적입니다.

 

훨씬 복잡한 오늘날 현실과
우리 삶에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이지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는
시대를 초월해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꼭 필요한 질문입니다.

 

지난주 설교에서는 이 질문이
복음을 따라 사는 삶의 시작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중요한 결정 또는 선택의 순간에 예수님을 생각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길인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로 따라 사는 것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손해가 생길 수 있고, 우리의 본성을 거스를 수 있어 불편하고,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우리이기에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설령 가지 못해도,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좌표를 정해 놓는 것입니다.

 

우리도 한번 시도하면 어떨까요?
1년은 길 테니 일주일만이라도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생기는지 각자의 자리에서 지켜보는 것입니다.
함께 나누면 더 좋겠지요.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을 닮으면서
복음으로 살기 원합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 2:21)

 

하나님,
한 가지라도 주님을 닮은 하루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8. 11이-메일 목회 서신)

흔적

좋은 아침입니다.

 

1.
우리 교회는
샌프란에서 비교적 안전하고 한적한 곳에 있는데
팬데믹 전에는 가끔 보았던 노숙자들이
팬데믹을 거치면서 종종 찾아옵니다.

 

우리 동네까지 오는 것을 보면 살기가 어렵고
노숙자의 숫자가 더 많아진 것 같습니다.
(샌프란에는 약 8천명 정도의 노숙자가 지내는 것으로 알려짐)

 

노숙자들이 오면 대개 흔적을 남깁니다.

 

최근에는 정원에 있는 교회 수돗가에서
샴푸나 비누를 사용하니
권사님께서 정성껏 가꾸시는 정원이 망가질까 염려됩니다.

 

이분들이 교회 근처에서 잠을 자고 가면
옷가지며, 음식물 쓰레기 등을 여기저기 남겨 놓고 갑니다.
물론 좋지 않은 냄새가 남겨질 때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노숙자 사역을 하는 단체나 교회들을 자못 존경하게 됩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노숙자들을 돕지는 못해도
교회 앞이나 정원에서 밤을 지내는 것은 막지 않습니다.
수돗물도 정원에 피해만 가지 않으면 사용하게 할 생각입니다.

 

2.
한번은
노숙자 한 분이 와서
교회 옆 정원에 자리를 펴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슬리핑백을 펼치고 수돗가를 오가면서 한참을 준비합니다.
그러더니 슬리핑백에 들어가서 잠을 잡니다.

 

아침에 다시 카메라를 켜니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아직 취침 중이십니다.
10시쯤 일어나서 침구며 옷가지를 모두 정리해서
백팩에 넣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나중에 교회에 가보니
자신이 머물다 간 자리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떠나셨습니다.
이 정도만 정리해주면
얼마든지 장소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
우리도 어느 곳에 머물거나
어떤 일을 하면 흔적을 남깁니다.
인간관계, 길게는 우리 인생길에도 흔적이 남게 마련입니다.

 

좋지 않은 흔적은
깔끔하게 정리하고 지워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기억, 추억, 또는 결실과 같은 좋은 흔적은
아름답게 남겨놓아야 합니다.

 

노숙자들이 남기고 간 흔적을 보면서
잠시 멈춰서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았습니다:
“내가 남기는 흔적은 어떤 것일까?
어수선한 것들을 어떻게 하면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을까?
길이 남을 좋은 흔적은 무엇이 있을까?”

 

오늘 하루,
우리가 걷는 발걸음, 나눈 대화, 마음, 하는 일 등등에서
좋은 흔적, 좋은 기억, 그리스도의 향기가 남겨지길 기대합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향기]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후2:14)
하나님,
우리가 지나간 인생길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남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8. 4이-메일 목회 서신)

한결같이

좋은 아침입니다.

 

1.
미국의 물가 상승이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7월 초에 발표된 물가 상승률이 무려 9.1%였는데
1981년 이래 최고입니다.

 

처음에는 중고 자동차 값이 물가 상승을 주도해서
피부로 느끼지 못했는데, 개스값과 생필품,
외식 값으로 옮겨오면서 물가 상승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흥미로운 기사를 보았습니다.
코스코(Costco)에서 판매하는
핫도그 콤보(hotdog combo)에 대한 기사였습니다.

 

코스트 푸드 코트에서는
핫도그와 음료수 합쳐서 단 1불 50센트입니다.
요즘처럼 물가가 치솟는 시절에 더욱 돋보이는 착한 가격입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코스코 핫도그 콤보가 미국의 물가 상승을 지켜내고 있다는 기사를 쓸 정도입니다.

 

코스코는 1985년에 핫도그 콤보 메뉴를 처음 시판했는데
그로부터 한 번도 판매가를 올리지 않았습니다.

 

코스코 창업자가
핫도그 가격을 올리려는 코스코 사장에게
“만약에 값을 올리면, 당신을 가만 놔두지 않을 거요 I will kill you”라고
호통쳤다는 일화도 유명합니다.

 

얼마 전 코스코 사장은
핫도그 콤보 가격을 올릴 생각이냐는 질문을 받고
망설임 없이 No라고 대답했답니다.

 

1980년대에 엄마 손을 잡고
코스코에 갔던 아이가 마흔이 가까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가격이 똑같습니다.
물론 핫도그와 음료수를 제공하는 메뉴 구성도 같습니다.

 

코스코가 완벽한 기업이 될 수 없어도
핫도그 가격만 놓고 보면,
고객에 대한 회사의 충성도가 매우 큽니다.
40년 동안 값을 올리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2.
우리 주변에는
개인이든지 또는 기업이든지
수십 년 동안 변치 않고 주어진 일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남들의 눈을 의식하고
남들과 경쟁하고 비교했다면
절대로 해낼 수 없는 일인데 묵묵히 그 일을 행하는 경우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어김없이 하루 세끼 밥을 먹습니다.
빨래하고, 학교에 가고 직장에 갑니다.
자녀들을 키우고, 같은 길을 오가고
그리고 주일에 예배에 옵니다.

 

변함없이
부모로, 자녀로, 친지로, 교회 식구로 살아갑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변함없으신
우리 하나님을 닮은 모습입니다.

 

3.
성령의 열매 충성을 생각합니다.

 

충성 또는 성실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처음과 끝이 같은 것입니다.
대충 대충하는 것이 아니라 사소하고 작은 것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일상을 사는 데 꼭 필요한 것이 충성입니다.

 

그런데 그 충성이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에 들어 있습니다.
변함없는 충성, 신실함을 장착하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각자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시는
참빛 식구들을 응원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16:8)

 

하나님,
끝까지 변함없이
주님을 섬기고 믿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7. 28이-메일 목회 서신)

 

일곱 번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 설교의 주인공인 아람 장군 나아만은
엘리사 선지자의 말을 듣고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고 나병에서 깨끗해졌습니다.

 

<깁보르 하일, 용맹스럽고 유능한 사람>로 불렸던
아람 장군 나아만이었습니다.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그의 몸에 있는 나병입니다.
전염될 정도는 아니지만,
나병으로 엉망이 된 자기 몸을 볼 때마다 절망적이었을 것입니다.

 

나아만은
자기 집에 있던 이스라엘 ‘꼬마 여자 종’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로 내려갔고
선지자 엘리사의 말을 듣고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었습니다.

 

그의 말처럼
요단강에 몸을 씻는 것은 일상적인 일입니다.
절대로 특별한 치유법이 아니었습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나아만은 결국 엘리사의 말을 쫓았고
몸이 깨끗해 졌고, 하나님까지 만났습니다.

 

무엇보다 일곱 번을 채웠습니다.

 

2.
지난 금요일에는
생전 처음 자이언츠 구장에 가서 야구 경기를 보았습니다.

 

요즘 자이언츠의 성적이 그리 좋지 못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경기는 예상대로 싱겁게 끝날 듯했습니다.
2점을 먼저 냈지만, 힘없이 한 회에 5점을 내주면서
8회까지 5대2로 지고 있었으니까요.

 

시간이 밤 10시를 훌쩍 넘었기에
함께 간 집사님 아이에게 그냥 가자고 했더니
‘꼬마 아이’가 끝까지 보겠다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졸려서 눈이 반쯤 감긴 것 같았는데 신기했습니다.

 

많은 관중이 이미 경기장을 빠져나간 상태에서 9회말 마지막을 맞았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첫 타자부터 홈런을 터뜨리더니 그다음에도 싱글 홈런이 나옵니다.
상대 팀이 흔들린 틈을 타서 베이스를 모두 채웠고
다음에 나온 타자가 초구를 쳐서 만루 홈런(끝내기 그랜드 슬램).
9회에만 6점을 내서 8:5로 승리했습니다.

 

처음 찾은 자이언츠 구장에서 인생 경기를 관전한 것입니다.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3.
주일 친교 시간에 야구장에 갔던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 집사님이
“목사님 오늘 설교의 일곱 번과 딱 맞는데요”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나아만이 일곱 번을 채우면서 몸이 깨끗해 졌습니다.
중간에 포기했다면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야구장에 수만 명(?)이 왔지만,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사람들만이
9회 말에 대역전하는 드라마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끝을 보는 것이 늘 중요합니다.
그 끝에서 무엇을 이루면 금상첨화입니다.
행여나 극적인 결과를 얻지 못해도,
어떤 일이나 과정을 끝까지 마무리했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큽니다.

 

나아만 장군의 일곱 번도
완전수 7과 더불어 끝까지 엘리사 말을 따랐다는 뜻이 강합니다.

 

오늘 하루,
진행 중인 일이나,
길을 걷고 있는 우리 인생에서 ‘일곱 번’을 꼭 채우기를 원합니다.
특별한 일이 아닌 요단강에서 생긴 일상의 사건이라는 사실도 기억하고 싶습니다.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왕하 5:14)

 
하나님,
매사에 일곱 번을 채울 수 있는
믿음과 끈기를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7. 21이-메일 목회 서신)

일상의 힘

좋은 아침입니다.

 

1.
우리 교회가
지향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일상을 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많은 경우, 신앙(특히 기도 응답)을 생각하면
특별한 기적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많은 기적이 등장하니
그것을 우리도 경험할 수 있다고 믿는 식입니다.

 

맞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살아서 일하심을 믿습니다.
그런데 기적만 바라보는 신앙은 건강하지 않습니다.

 

특별한 것, 기적을 추구하는 것은
쉽게 눈에 띄고 많은 사람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지만,
자칫 한쪽으로 치우친 신앙이 되기 쉽습니다.

 

2.
우리는 일상을 삽니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삶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수행합니다.

 

특별해 보이지 않기에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합니다.
때로는 일상을 사는 것에 지치고 마음이 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우리 삶 대부분이 일상입니다.
특별한 순간은 구름 속에 잠깐 얼굴을 내밀고 세상을 비추는
해님처럼 금세 지나갑니다.

 

3.
일상을 사는 것은
아주 작고 사소해 보이는 일에 충실한 것입니다.

 

지난 주일 설교에서 소개했던
주일마다 저에게 신문을 전해 주시던
뉴욕의 집사님을 다시 생각합니다.

 

집사님은 교회에서 눈에 띄는 직책을 갖고 계시지 않았고
아이들이 어려서 중고등부를 맡았던 저와 겹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 막 도착한 중고등부 전도사에게
매 주일 신문을 모아서 슬쩍 전해 주셨습니다.
그 사실을 아는 교인들도 거의 없으셨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집사님께서 주시는 신문은
읽지 않으신 새 신문 같았습니다.
저에게 전해주기 위해서
조심스레 신문을 펼치고 읽으셨음이 틀림없습니다.
일상을 사시고, 일상에서 사랑을 실천하신 집사님이셨습니다.

 

그 정성과 마음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신문을 전해 주시던 집사님의 모습도 생각납니다.

 

집사님의 작은 사랑, 작은 배려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일상의 배려와 사랑의 힘입니다.

 

사소하고 지나치기 쉬운 것에 성실하고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진짜 특별한 순간입니다.

 

일상의 배려와 사랑이 모여서
우리 인생을 아름답게 수놓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과 인생이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일상을 예술로 만들어 봅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전도서 3:11)

 

하나님,
작은 것에 충실하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7. 14이-메일 목회 서신)

악의 평범성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 설교에서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나오는
“악의 평범함 banality of evil>이라는 용어를 소개했습니다.

 

아이히만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조직적으로 주동한 인물입니다.
체포된 후에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한나 아렌트는 그 과정을 보고서 형식으로 기록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평범한 사람이었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성실한 정부 관리였고, 한 가정의 가장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유대인 학살이라는 엄청난 일을 저지르게 된 것은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환경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유대인 학살을
양심의 가책도 없이 실행했습니다.
죄 속에 들어 있을 때 느끼는 감정이요 행동인데
한나 아렌트는 이것을 <악의 평범함>이라고 불렀습니다.

 

2.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함>이라는 용어는
큰 울림을 주는 무서운 표현입니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도
죄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환경에 있으면
양심의 가책 없이 악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주일 설교에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Amazing grace>찬송가를 지은
존 뉴턴이 살던 영국 사회가 노예무역을
일반적이고 평범한 것으로 여긴 것이
<악의 평범함>의 한 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기독교인들도 노예무역과 노예를 두고 사는 것에
아무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행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지은 존 뉴턴도
노예 무역상의 선장으로 악의 평범함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목사가 되면서
노예무역의 부당함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윌리엄 윌버포스라는 정치인을 발굴하고 격려하면서
영국의 노예무역과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데 크게 공헌했습니다.
악의 평범함에서 벗어났고 악의 고리를 끊어버린 것입니다.

 

3.
존 뉴턴이나 윌버포스 같은 선각자들에 의해서
세상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래도 어디선가, 어떤 영역에서는
보통 사람들이 범하는 죄들이 존재할 것입니다.

 

<악의 평범함>
–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두고두고 곱씹을 용어입니다.

 

우리도 잘못된 일을 무심코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가 관행으로 받아들이는 일이기에
죄책감이나 문제의식 없이 행할 수 있습니다.

 

타인에 대한 편견, 배척,
관행처럼/습관처럼 내려오는 그릇된 일들,
“다른 사람도 하는데 뭐”라고 생각하면서 범하기 쉬운 오류들
– 평범함 속에 도사리고 있는 그릇된 일들을 찾아내고 시정해서
밝고 맑은 세상을 세워 나가기 원합니다.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는 고난 당하는 자를 변호해 주시며
궁핍한 자에게 정의를 베푸시리이다 (시 140:12)

 

하나님,
우리 안에 무심코 행하는 악한 일들이 있으면
깨우쳐 주시고 고칠 용기를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7.7 이-메일 목회 서신)

내려놓기

좋은 아침입니다.

 

1.
2022년 상반기 마지막 날입니다.

 

우리 교회는
팬데믹이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오길 기대하면서
<새롭게 시작합시다>라는 주제로 새해를 맞았습니다.

 

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온전한 세상이 되지 못했고
7불에 육박하는 개스비와 높은 물가 상승,
전쟁과 총기 사고 등으로 세상이 뒤숭숭합니다.

 

그래도 각자의 자리를 지키시고
지난 반년을 꿋꿋하게 살아오신 참빛 식구들을
응원하며 큰 박수를 보냅니다.

 

2.
서양에서는 일찍이 누구나 피하고 조심해야 할
7개 죄악(seven deadly sins)의 목록을 만들었습니다:
교만(pride), 시기(envy), 분노(wrath), 게으름(sloth),
욕심(greed), 식탐(gluttony), 색욕(lust).

 

일곱 가지 모두
성경에서 삼가라고 거듭 강조하는 것들입니다.

 

올해의 반년을 보내고 하반기를 맞으면서,
일곱 가지 죄들 가운데 “욕심”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욕심에서 “욕(慾)”의 한자어는
“하고자 할 욕(欲)”자 아래 마음 심(心)이 합쳐진 글자입니다.
무엇을 얻고자 하고, 하고자 하는 마음이 지나친 것이 욕심입니다.

 

말 그대로 탐욕입니다.
과한 것입니다.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갖고 싶은 마음입니다.
혼자서 독점하려는 마음입니다.

 

욕심에 해당하는 영어 greed 역시
물질이나 소유에 대해서
과할 정도로 갖고 싶은 마음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우리 안에는 더 많이 갖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많이 갖는 것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의 본성을 신앙으로 제어하고,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욕심만 내려놓아도 우리 삶이 한결 가볍고
많은 것에서 자유로울 것입니다.

 

3.
우리 안에 있는 욕심을 제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 과한 것은 없습니다.

로마서에서는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어떤 빚도 지지 말고
사랑할 때 모든 율법을 이룬 것이라고 했습니다 (롬13:8).

 

믿음, 사랑, 소망 세 가지 덕목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입니다(고전13:13)

 

우리 가운데 사랑이 있을 때
욕심이 슬며시 사라집니다.
그런 점에서 욕심의 반대말은 사랑입니다.

 

2022년 한반기를 맞으면서
욕심은 내려놓고 사랑을 장착하고 싶습니다.
하루에 한 가지씩만 작은 사랑을 나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눅12:15)

 

하나님,
우리 안에 욕심이 사랑이 되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6. 30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