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 설교에서 시편 23편을 설명하면서
양의 시력이 -10에 가까워서 1미터(3ft) 정도 앞만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지진으로 재난 가운데 있는 터키(튀르키예)에서
목자들이 한눈을 판 사이에 양 한 마리가 절벽으로 뛰어내리자
500여마리의 양들이 따라서 절벽으로 뛰어내렸다는 예전 외신 보도도 생각났습니다.

 

앞에 가는 양들의 궁둥이만 보고 가니
앞에 낭떠러지가 있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양들을 진심으로 위하는 목자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양뿐만 아니라
우리도 한 치 앞을 알지 못합니다.
과학 문명이 발달해서 많은 것을 예측할 수 있다지만,
예측불허의 일들이 자주 일어납니다.

 

그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앞서가시는 하나님,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신앙의 길을 갑니다.
믿음이 주는 유익이고 힘입니다.

 

물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실재를 믿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요,
믿음은 우리 속에서 생기는 ‘느낌’일 뿐이라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나님의 실재와 믿음을 인정하지 않는 분들께
만족할 만한 답을 드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실재를 증명해 내는 통로가 되길 바랄 뿐이지요.

 

하나님을 눈으로 본 사람이 없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그것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는
사도 요한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요일 4:12)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예수님 말씀도 기억합니다(마5:16).

 

그러니
우리가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하나님을 세상에 드러내는 통로입니다.

 

2.
“어떻게 살 것인가?”
– 우리 모두의 고민입니다.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적용하고 실천하는 것도 우리 몫이니
더욱 고민이 깊어집니다.

 

억지로 할 것이 아닙니다.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질 것도 아닙니다.
자칫 신앙이 천로역정의 크리스천이 지고 가던 어깨 위의 짐이 되거나
겉으로만 빛과 소금인 척하는 위선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계속 생각하고
예수님의 흔적이 우리 안에서 드러나길 기도하고 노력할 뿐입니다.

 

3.
예수님은 자기를 비워서 종의 형체(몸)를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비우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필요 없는 것, 예수님을 따라 사는데
거추장스러운 것을 비우고 덜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운 곳을 예수님 마음으로 채워가는 것입니다.

 

내가 변하고 자라가는 존재(being)의 채움이 꼭 필요합니다.
“예수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순간순간 많이 생각하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질문을 매사에 던져야겠습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길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세상에 펼쳐 보이기 원합니다.

 

오늘도 예수님을 따라가는 참빛 식구들의 발걸음을 응원합니다.ㅇ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요일 4:12)

 

하나님,
우리 생각과 몸짓 어느 한 곳에라도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3. 2. 9 이-메일 목회 서신)

그라운드호그 데이

좋은 아침입니다.

 

1.
2월 2일 오늘은
그라운드호그 데이(ground hog day)입니다.
우리식 입춘(立春, 올해는 2월 4일)에 해당합니다.

 

그라운드호그는 다람쥣과에 속하는 설치류입니다.
봄이 되면 겨울잠에서 깨어나 땅 위로 올라오는데
그날이 바로 2월 2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라운드호그이 땅 위로 올라왔을 때,
날이 맑아서 그림자가 생기면 다시 굴속으로 들어가서 겨울잠을 청한답니다.
그러면 6주 후에 봄이 찾아온다고 믿었습니다.
날이 흐려서 그림자가 생기지 않으면 곧바로 봄이 찾아왔다고 선언했습니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을 갖고 입춘, 봄이 찾아왔음을 가늠하는
독일과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의 전통을 따른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펜실베이니아에 이주한 네덜란드계 이민자들이 1800년 후반부터 지키기 시작해서
수만 명이 이름도 신기한 펜실베니아 작은 도시 펑수토니(Punxsutawney)에 모여서
봄 축제를 즐깁니다.

 

동물이 겨울잠에서 깨는 행동을 통해서
봄이 오는 것을 가늠하니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오길 기다리는 마음이 깃들어 있습니다.

 

2.
그라운드호그 데이라는 영화도 있습니다.
1993년에 개봉되어서 백만 이상의 관객을 모았습니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주인공이
펜실베니아 펑수토니에서 열리는
그라운호그 데이를 취재하러 가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됩니다.

 

이직을 고려할 정도로 방송국 일에 싫증을 느낀 주인공이
여성 기자와 함께 억지로 취재를 나갔는데
매일 같이 2월 2일이 반복되는 시간 속(time loop)에 갇힙니다.

 

무슨 일을 해도 아침에 눈을 뜨면
2월 2일 그라운도호그 데이입니다.

 

처음에는 반복되는 일상에 싫증도 나고 짜증이 났지만
사랑하는 여성의 조언대로
반복되는 하루를 피아노를 배우고, 예술작품을 만들어서 자선행사에 참가하고
무슨 일이 생길지 모두 알고 있으니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줍니다.

 

지루한 일상을 특별한 날로 만드는 발상의 전환이었습니다.
결국 사랑까지 성공해서 아침을 맞았는데
드디어 2월 3일이 됩니다.

 

반복되는 일상을
어떻게 특별한 순간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지
알려주는 영화입니다.

 

3.
유독 베이지역에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지난 며칠은 기온이 많이 내려가서 꽤 추웠습니다.
그래도 봄은 찾아올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전쟁, 사건, 사고로 혼란스럽습니다.
물가도 오르고 여기저기서 해고 소식도 들리니
우리 마음도 세상도 아직 겨울입니다.

 

하지만, 그라운호그가 땅을 뚫고 지상으로 나오듯이
봄은 찾아올 것입니다.

 

무엇보다 반복되는 일상, 지루한 일상을
영화 속 주인공처럼 특별한 순간,
사랑을 주고 베푸는 시간으로 채워가는
감사하고 기쁜 하루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시편 3:5)

 

하나님,
새 달에도 하루하루가
삶의 기쁨과 경이로 가득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3. 2.2 이-메일 목회 서신)

언제까지

1.
저는 15년째
“좋은 아침입니다”로 시작하는 목요 서신을
참빛 식구들께 보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몇 번은
일부러 “좋은 아침입니다”는 인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어지럽고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을 때입니다.

 

엊그제처럼 총기사고가 났을 때이지요.
어쩌면 목요 서신에서 가장 많이 다룬 주제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미국 땅에서 총기사고가 사라지길,
아니 적어도 통제될 수 있기를 함께 기도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설날 전날인 지난 토요일
남가주에 위치한 몬테레이 파크에서
70대 남성에 의해서 11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장소를 옮겨서 또다시 총격을 시도했지만,
한 청년의 용맹스러운 저지로 많은 생명을 구했습니다.

 

처음 총격을 가한 곳이 댄스 연습실이었는데
범인이 자주 다녔던 곳이라는 보도에 더욱 놀랐습니다.

 

지난 월요일에는
우리 동네에서 아주 가깝고 우리도 종종 방문하는
해프문 베이(Half Moon Bay) 농장에서 총기사고가 발생해서
7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60대 후반의 범인도 농장 두 군데를 옮겨 다니면서
범행을 했으니 몬테레이 총기사고와 흡사한 면이 있습니다.
농장에서 일하던 분들이 희생당했습니다.

 

이번 총기 사건을 아시안의 이슈로 축소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핑계이고 미국의 문제입니다.
새해 25일동안, 무려 40명이 대량살상 총기사고로 목숨을 잃었거든요.

 

같은 사고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두고 만 보고 있어야하는지요.

 

2.
지난 1월 10일 일리노이 주지사는
21세 이하의 주민은 총기를 소유할 수 없고
살상용 무기와 대용량 탄창(10발 이상)의 판매를 금지하는 법에 서명했습니다.

 

작년 7월 4일 독립기념일에 발생한
시카고 하이랜드파크 총기사고 (7명이 목숨을 잃고 46명이 부상을 입음) 이후에
일리노이 주의회와 주지사가 추진한 총기 규제법입니다.

 

그런데 발효되자마자 어떤 사람들(나쁜 사람들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이
개인의 총기 소유를 보장하는 미국 수정헌법 2조를 위반했다는 소송을 제기했고
1월 20일에 법 집행을 일단 중지하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습니다.
어렵게 발효된 총기 규제법이 10일 만에 저지를 당한 셈입니다.
이것이 미국의 실상입니다. 안타깝습니다. 화가 납니다.

 

솔직히
우리 같은 범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우익단체들의 로비가 워낙 강해서
총기 규제를 위한 법안이 상정되는 것도 쉽지 않으니
투표로 저지할 능력도 없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도움과 긍휼만 구합니다.
주님, 언제까지입니까?
이 땅을 고쳐 주시고, 악한 사람들을 벌해 주십시오.

 

희생자들의 가족과 친지들께
주님의 위로가 임하길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시편 90:13)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3. 1. 26 이-메일 목회 서신)

율법과 복음

좋은 아침입니다.

 

1.
주일예배에서는
존 번연의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가난한 대장장이집 아들로 태어난 존 번연은
예수님을 믿고 침례교 목사가 되면서
영국 국교회의 핍박을 받고 두 번이나 12년 가까이 감옥살이했습니다.

 

천로역정은 존 번연이
감옥에서 쓴 우의소설(Allegorical novel)입니다.

 

알레고리라는 표현대로
천로역정의 등장인물과 장소는 각각의 뜻이 있습니다.
“크리스천”이라는 주인공 이름 자체가
그가 걷는 순례길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길임을 암시합니다.

 

앞으로 두 달여
우리 모두 가야 할 신앙의 순례길을
천로역정의 주인공 크리스천과 함께 걷기 원합니다.

 

2.
지난주에 살펴본
천로역정 속 해석자(interpreter)의 집에는
먼지가 가득 쌓인 넓은 객실이 있었습니다.
한 번도 청소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한 하인이 빗자루로 방을 쓸기 시작합니다.
쌓여 있던 먼지가 모두 날려서 방이 뿌옇게 변했습니다.
먼지가 이렇게 많았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다른 하인이 와서 물을 뿌립니다.
먼지가 잦아들고
그다음에는 깨끗하게 객실을 청소할 수 있었습니다.

 

해석자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이 객실은 복음의 달콤한 은혜로 성화된 일이 한 번도 없는 인간의 마음입니다.
먼지는 인간의 원죄를 의미하며 또 모든 인간을 이렇게 만드는 내면의 부패를 의미합니다.
처음 이 방을 쓸기 시작한 사람은 율법(Law)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물을 뿌려 준 사람은 복음(Gospel)입니다.”

 

3.
사도 바울의 가르침대로
율법은 우리에게 죄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그 실체를 보고 깨닫게 합니다.

 

먼지가 바닥에 쌓여 있을 때는 무심코 넘겼지만,
빗자루로 쓸기 시작하니
집안을 가득 채운 먼지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삶을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존재로 변화시키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천로역정에서 주인공 크리스천이 어깨에 지고 있는 짐도
행위와 공적으로 의롭게 되고 싶어하는 율법의 짐이었습니다.
그것을 십자가 앞에서 내려놓습니다.
율법을 넘어서 복음 속으로 들어갑니다.
얼마나 기쁘고 개운해하든지요!

 

4.
천로역정의 주인공 크리스천은
해석자의 설명을 통해서
율법과 복음의 차이를 명확히 배웠습니다.

 

신앙의 길을 가면서
우리가 믿는 것, 행하는 것, 또한 추구하는 것에 대해서
분명히 이해하고 정리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크리스천이 십자가 앞에서 무거운 짐을 벗듯이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하고 그 힘으로 세상을 사는 데까지 나가야 합니다.

 

올 한 해 우리 신앙에 가닥이 잡히고
실제로 복음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2)

 

하나님,
주님의 은혜 속에 깊이 잠기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3. 1.19 이-메일 목회 서신)

내가 가는 길

좋은 아침입니다.

 

1.
<푯대를 향하여>라는 올 해 표어와 관련해서
새해에 우리가 함께 생각하는 화두가 있다면 “길”입니다.

 

지난주부터 시작된 <천로역정>에 관한
연속설교 제목도 “순례자의 길”로 잡았으니
누구나 걷고 있는 인생길, 신앙의 길이 우리 모두의 관심입니다.

 

윤동주 시인은 <새로운 길>이라는 시에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가는 길을 두고 새로운 길이라고 했습니다.
민들레 피고 까치가 나는 일상의 길을
언제나 새로운 길이라고 불렀습니다.

 

일상의 그리스도인(Everyday Christian)을 강조하는
우리 교회에 딱 맞는 노래요 깨우침입니다.

 

2023년을 열흘 남짓 살았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350여일
아침이 되고 저녁을 맞는 일상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민들레 피고 까치가 나는 매일 걷는 길입니다.

 

그 길을 새로운 길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몫이겠습니다.
매일 걷는 지루한 길이 아니라
다시 못 올 오늘 하루만의 길,
말 그대로 새로운 길로 단장하고 그 길을 걷기 원합니다.

 

2.
운동 경기에서
감독이나 코치는 선수들에게
그동안 훈련한 대로 “우리 식의 경기”를 할 것을 요청합니다.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지
자기 팀 나름의 페이스를 잃지 말고
자기들 경기를 하라는 것입니다.

 

상대의 전략에 말려들어서 쩔쩔매면
경기 결과는 물론 후유증이 크지만,
자기 방식대로 경기하면
승패에 상관없이 선수들은 물론 관중들도 흡족하기 마련입니다.

 

3.
우리가 걷은 인생길,
신앙의 순례길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이리저리 흔들리고
이말저말 듣다가 자기 주관을 상실하고
좌우상하로 요동치는 삶을 살아서는
우리가 가는 길이 새로운 길이 되기 어렵습니다.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코람 데오> 하나님 앞에서 푯대를 정하고
흔들림 없이 주어진 ‘나의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결국 내가 책임지고 내가 살아야 할 “나의 길”이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은 물론,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부르심을 따라서 자기 길을 걸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고 하셨고,
사도 바울은 선한 싸움을 다 싸웠다고 선언했습니다.

 

2023년,
아무도 걷지 않은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남 눈치 보지 말고, 시기하고 질투할 것도 없이
하나님 안에서 우리 각자의 길을 열심히 걸어갑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곁에서 동행하실 것입니다.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욥23:12)

 

하나님,
올 한해 참빛 식구들이 가는 길을
지키시고 인도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3. 1.12 이-메일 목회 서신)

푯대를 향하여

좋은 아침입니다.

 

1.
2023년 계묘년(癸卯年)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토끼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사뿐사뿐 뛰면서
올 한 해를 살면 좋겠습니다.

 

올해는 불황이 찾아온다는 예고가 많습니다.
팬데믹 동안에 너무 많은 돈을 풀어서
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습니다.
다시 돈을 거둬들이니 불황이 찾아올 수 밖에요.

 

그 과정에서
힘없고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의 고생이 크고
격차는 더 벌어질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우리가 사는 베이지역도 뒤숭숭하고
웬만한 사건과 사고에 경찰이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세상이 된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세상은 점점 양극화됩니다.
둘로 갈라져서 자기 편이 옳다고
내로남불의 논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갈등과 분열은 물론
배제와 혐오가 버젓이 행하여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평화의 동산으로 만드시고
그렇게 되길 바라시건만
세상은 점점 하나님의 의도와 멀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2.
올해 우리 교회 표어는 <푯대를 향하여>입니다.
지난 주일에 함께 공부한 빌립보서 3장 14절에서 왔습니다.

 

여기서 푯대는 목표(target) 목적(goal)
바라보는 곳 또는 가야 할 곳을 뜻합니다.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목표가 없으면 망망대해와 같은 인생 속에서
표류할 가능성이 큽니다.

 

바른 목표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목표가 틀리면 노력한 것이 헛것이 되거나
잘못된 결과를 얻을 것입니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말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3.
그리스도인의 변치 않는 명확하고 확실한 푯대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을 따라 살기에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고 부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부르심의 상을 푯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하늘의 부르심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중간에 멈추거나 다 이루었다고 만족할 수 없습니다.
해마다/날마다 이전 것을 잊어버리고
우리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쫓아 살아야 합니다.

 

부르심은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이며
여러 개의 부르심이 동시에 작동할 수도 있고
심지어 한 번뿐인 부르심도 있다고 주일에 말씀드렸습니다.

 

어쩌면 하루하루가
하나님의 선물이자 부르심입니다.
그러니 매일같이 푯대를 향해서 나가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올 한 해, 예수님 바라보면서
그리고 각자 삶의 현장에서 힘차게 부르심을 좇아 삽시다.

 

거친 세상을 살아갈 때
생명과 길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3:14)

 

하나님,
푯대를 향해서 나가는 참빛 식구들로 인해서
어두운 세상이 밝아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3. 1. 5이-메일 목회 서신)

아침마다 새로우니 2

좋은 아침입니다.

 

1.
올해 첫 번째 목요서신 마지막 부분입니다:

 

“새롭게 2022년을 맞았습니다.
올해도 우리에게 어떤 일이 펼쳐질지
두려움과 기대가 섞여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기에
힘차게 그리고 담대하게 한 해를 시작합니다.

 

올해 주제 말씀처럼
아침마다 새롭게 찾아오실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매일같이 성실하심을 보여주실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간다면,
2022년 한 해는 카이로스, 창조적인 순간들로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2.
달력에 따라 흐는 시간인 크로노스와
창조적인 순간들로 채워지는 카이로스를 구분했습니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면서,
우리 안에서 일어난 카이로스의 순간을 되새겨 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손길과 은혜를 경험한
에피파니(epiphany)가 있었다면 말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얼굴 빛이 우리에게 비추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잠깐 비추는 주님 은혜의 빛으로 살아갑니다.
한 순간의 은혜로 평생을 살기도 한답니다.

 

가족, 친지들, 교회 식구들과 함께 했던
일상의 시간과 추억도 소중한 카이로스 사건들입니다.
귀한 것, 진실한 것은 작은 일상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것을 포착해서 마음에 간직하는 것이
카이로스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커가는 아이들의 현재 모습을
사진 찍듯이 마음에 간직하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도 중요한 카이로스 시간들입니다.
아이들이 훌쩍 커서 부모의 품을 떠날 날이 금방 닥치거든요.

 

세상 속에서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빛으로 소금으로 반사하면서 살았던 것도
카이로스 순간입니다.
생명의 복음을 드러내고, 받은 사랑과 은혜를 나누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특권이고 의무랍니다.

 

이 밖에도 올 한해
우리 각자가 경험했던 카이로스의 순간은 다양했을 것입니다.
그 순간들을 마음에 간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필요하면 주님의 위로와 치유의 손길도 구합니다.

 

3.
우리는 이렇게 2022년을 떠나 보냅니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작별인데
아쉬움은 남지만 행복하고 감사한 작별이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아침마다 새롭게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인생의 순간순간 함께 하시고 손잡아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주의 은혜가 큽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요1:16)
For from his fullness we have all received, grace upon grace.(John 1:16)

 

하나님,
2022년 한 해도
함께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12. 22 이-메일 목회 서신)

기본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
프랑스와 아르헨티나의 결승전을 끝으로
카타르 월드컵이 막을 내렸습니다.
축구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월드컵 이후에 약간의 금단현상이 있으시겠습니다.

 

우리나라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가 인터뷰한 영상이
유튜브에 있어서 챙겨보았습니다.

 

축구선수였던 손 선수의 부친은
아들에게 공을 다루는 기본기를 강조했답니다.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기본기였음을 깨닫고
아들에게는 공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기본 기술 습득에 온 정성을 기울인 것입니다.

 

덕분에 손흥민 선수는 양발을 모두 잘 사용하고
공을 다루는 드리블 실력이 남다른 것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손 선수뿐 아니라, 세계적인 선수들을 보면
좀처럼 공을 뺏기지 않고 간수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메시 선수 같은 경우 공을 몸에 매달아 놓은 것처럼
공과 선수가 한 몸이 되어서 운동장을 누빕니다.

 

공을 다루는 기본기술과 더불어 꼭 필요한 것이
스피드라는 생각도 듭니다.
빠른 공격수들이 공을 치고 나가면 수비수가 쩔쩔맵니다.

 

기본기와 스피드, 거기에 골 결정력까지 갖추면
최고의 선수가 될 경쟁력을 확보한 셈입니다.

 

2.
어디 축구선수만 그럴까요?

 

신앙에도 기본기가 꼭 필요합니다.
신앙의 기본기는 말씀과 기도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하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삶에 적용하는 기본기는 필수입니다.
간청하고 요구하는 기도를 떠나서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기도 시간을 확보한 그리스도인들은
시냇가의 나무처럼 늘 푸른 신앙을 자랑합니다.

 

신앙에서 스피드는 무엇일까요?
말씀과 기도를 훈련하는 과정입니다.
규칙적으로 말씀을 읽고 기도해서 그것이 몸에 베었습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느끼면서 쾌속 행진하는 신앙입니다.

 

거기에 사랑의 실천이 동반된다면
그리스도인으로 신앙의 골 결정력을 갖춘 셈입니다.

 

이 정도 그리스도인이 되면 거칠 것이 없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고 싶습니다:
말씀과 기도의 기본기,
그것을 훈련하는 스피드,
말씀과 기도가 사랑으로 열매를 맺고 있는지.

 

신앙의 경주에서
경쟁우위에 서기 원합니다.
어떤 시험이나 악한 세력의 유혹이 닥쳐도
크고 작은 어려움이 밀려와도
꿋꿋하게 밀고 나가는 신앙의 저력을 갖춥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엡6:13)

 

하나님,
꼭 필요한 일에 집중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12. 22 이-메일 목회 서신)

살작 옆으로 비켜서서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아침에는
구약성경 전도서를 읽고 있습니다.

 

연말을 맞아서 전도서를 읽는 것은
커다란 유익입니다.
전도서는 인생의 기준점을 맨 마지막에 갖다 놓고
앞으로 펼쳐질 인생을 조망하기 때문입니다.
신기하고 색다른 접근입니다.

 

전도서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입니다.

 

여기서 “헛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벨>은
물 한 방울 똑 떨어지는 모습,
한숨(one breath), 바람결
+/-도 아닌 zero(0)
거기서 거기 등등으로 풀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인생 자체에 또는 세상살이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도서의 관점으로 인생이나 세상을 보면,
자칫 비관주의에 빠지거나 의욕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돈을 버는 것도 출세해도 소용없고
심지어 지식과 지혜를 쌓아도 소용없다는 식이니 말입니다.
무엇보다 요즘 세상에 적합하지 않은 가르침처럼 들립니다.

 

2.
이처럼 구약 성경의 전도서는
정통(일반적인 신앙)에서 살짝 옆으로 비켜 서 있습니다.

 

바로 앞에 있는 잠언만 해도
열심히 일하면 대가가 있으니
개미처럼 열심히 일할 것을 촉구합니다.
물질을 가지고 친구를 사귀라는 말도 있습니다.
신앙 안에서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하고
가능한 최고의 삶을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라는 교훈입니다.

 

그런데 전도서로 넘어오면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니 얼떨떨합니다.
이번에 전도서 묵상을 처음 하시는 분들은
전도서 말씀이 의아하고 적응이 안 될 수 있습니다.
그 정도로 전도서는 색다른 말씀입니다.

 

3
2022년 한 해를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정신없이 살았습니다.
때로는 세상 것, 헛된 것에 집착했습니다.

 

세상에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지향하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을 결코 탓할 수 없습니다.

 

대신, 연말을 맞았으니
가까운 출구(exit)를 이용해서
잠시라도 곁길로 내려가는 보는 것입니다.
한 해 동안 몰고 온 인생의 자동차를 세우고
지난 한 해를 돌아보는 것이지요.

 

꼭 필요한 것들, 의미 있고 중요한 순간들을 꼽아보고
그 안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해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 모두에게
잠깐이라도 꼭 필요한 시간이고, 반드시 해야 할 작업입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전도 12:13)

 

하나님,
꼭 필요한 일에 집중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12. 15 이-메일 목회 서신)

격차(gap)

좋은 아침입니다.

 

1.
모래바람이 이는 중동의 카타르에서는
2022년 월드컵이 한창입니다.

 

우리나라가 16강 전에서 세계 최강 브라질에 무릎을 꿇었지만,
12년 만에 16강에 진출하는 훌륭한 성과를 냈습니다.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뛰는 선수들의 모습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우리나라와 브라질 간의 16강전을 앞두고
두 팀 선수들 간의 연봉을 비교한 언론 보도가 눈에 띄었습니다.
브라질 선수단 전체의 연봉 합계는 한국 원화로 환산해서
자그마치 1조 5600억원(약 $130억 불)이랍니다.
우리나라 선수단의 연봉은 절반을 차지하는 손흥민 선수의 연봉을 합쳐도
2천260억원(약 1억 9천 불)입니다. 브라질 연봉 합계의 7분의 1입니다.

 

깜짝 놀랄 일은 브라질에서 활동하는 축구선수들 가운데
80%가 브라질 최저 임금(연봉 약 2,500불)에도 미치지 못한답니다.
돈벌이가 잘되는 세계적인 클럽에 속한 선수들이지만,
자국에서 여전히 열심히 선수로 활약하는 일반 선수들보다
그들의 소득격차만큼 축구 실력에 차이가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축구는 물론
유명 운동선수(유명인)들의 연봉이 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2.
베이지역에 살다 보면
연봉이 매우 높으신 분들을 만납니다.
초봉부터 여섯 자리 연봉을 받는 테크 회사도 있다니
예전에는 상상도 못 할 일입니다.

 

그런데, 회사 전체 인건비를 독식하다시피 하는 사람들은
회사의 대표(CEO)들입니다.

 

미국의 상장기업(S&P 500) CEO들의 평균 연봉은
2021년 현재 1천8백만 불이 넘습니다.
그런 CEO들이 경영하는 회사 종업원들의
중간 소득은 5만6천 불입니다.
CEO와 종업원의 봉급 격차가 자그마치 324배입니다.

 

1970년에는 CEO와 종업원의 임금 격차가 24배였습니다.
2000년대의 닷컴 버블을 지나면서 격차가 300배 이상으로 벌어졌고
2009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격차가 줄더니
흥미롭게도 팬데믹을 지나면서 다시 300배 이상으로 늘어났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극소수의 사람들이
천문학적인 수입을 올리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3.
세상은 1980년대 신자유주의가 도입된 이후에
빈부격차가 점점 심화되고 있습니다.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는데 그것을 고칠 생각이 없습니다.
아니 이미 고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히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었습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성경은 격차를 배격하고 공정한 분배를 지지합니다.
성경은 약자의 편에, 가난한 자의 편에 서라고 촉구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정의는 공정과 공평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성경과 거꾸로 브레이크 없이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들 역시 자기도 모르게 세상에 끌려갑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월드컵 열기는 뜨겁지만,
점점 격차가 커지는 세상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연말입니다.
답을 찾기 힘드니, 시편 기자처럼 탄식하며 “주님”을 부를 뿐입니다.
“주님, 어찌해야 할까요!”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시편 41편 1절)

 

하나님,
참빛 식구들이 중심을 잃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12.8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