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2

좋은 아침입니다.

 

1.

“중국에서 시작된 신종 폐렴 바이러스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그 심각성을 느끼기 어렵지만,

한국은 물론 당사자 중국이나 인접국 일본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태랍니다.”

 

2월 첫 주에 보내드린 목요 서신 서두입니다.

그렇게 지나갈 것 같았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국을 혼란해 빠뜨리고 있습니다.

 

치사율은 낮다고 하지만

그래도 노약자들에게는 치명적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전염되는 경로와 속도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서

순식간에 바이러스 확진자의 숫자가 늘고 있습니다.

미국도 경계를 늦출 수 없습니다.

 

2.

한국에 코로나 바이러스를 전염시킨 주범은

다름 아닌 신천지라는 사이비/이단입니다.

 

신천지의 장막 성전이 1960년대에 시작되었으니

역사도 길고 끈질긴 조직입니다.

현재 신천지는 1984년 교주 이만희가 시작한 장막성전이 모체입니다.

전국을 예수님의 열두 제자 이름을 따서 12구역으로 나눴습니다.

해외까지 수십만의 신도들이 신천지에 빠져 있습니다.

 

교주 이만희에게 재림 예수의 영이 임했다고

그를 신처럼 받드는 사이비 단체입니다.

대부분의 이단이 그렇듯이 요한계시록을 강조하고

소위 성경을 영적(알레고리)으로 해석합니다.

교주 이만희는 1970년 한국을 강타했던 이단

전도관에서 이단의 운영 기법을 배운 것 같습니다.

 

“추수꾼”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기존 교회에 침투해서 아주 신실한 교인 행세를 하고

나중에는 신천지 출신의 목사를 세우는 수법으로 기존 교회를 무너뜨립니다.

신천지 교인인 것을 가족에게도 숨기면서

활동하는 기생충 같은 이단입니다.

 

3.

하필 코로나 바이러스가 비밀 조직인 신천지에 붙어서

한국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오신 분들

서울 대형 교회들 까지

이번 사태는 이상하게 기독교와 연관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신천지의 실체를 명확히 알지 못하니

(이번 보도를 통해서 많이 알게 되었지만)

대략 기독교 또는 교회를 비난합니다.

가뜩이나 실추된 기독교에 대한 신뢰가 더 떨어지게 생겼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선, 사태를 수습해야 하니 한국의 교회들과 교인들이

보건당국의 지시를 잘 따라서 바이러스를 가라앉히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4.

사이비 신천지로 시작되었지만,

교회 또는 기독교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립니다.

믿음만 앞세울 뿐

상식이나 지각이 부족한 사람들이라는 비난도 듣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이런 때일수록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세상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서 할 일은 없을까?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칩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거리에 버려서 밝힐 뿐이라는 예수님 말씀도 생각납니다.

 

급선무는 바이러스를 잡는 일입니다.

행정당국, 누구보다 의료진들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동시에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교회의 자리에서,

기독교인의 자리에서 이번 사태를 돌아보기 원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마태 5:13)

You are the salt of the earth, but if salt has lost its taste, how shall its saltiness be restored?

It is no longer good for anything except to be thrown out and trampled under people’s feet. (Mat 5:13, ESV)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국 대한민국을,

주님의 교회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2.27 이-메일 목회 서신)

균형

좋은 아침입니다.

 

1.

중국에서 시작된 신종 폐렴 바이러스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그 심각성을 느끼기 어렵지만,

한국은 물론 당사자 중국이나 인접국 일본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태랍니다.

 

전염병이 돌면서 균형이 깨지니

경제도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가 많이 쓰는 애플 아이폰의 경우

중국 생산공장의 차질로 공급이 제때 이뤄지지 않고 있답니다.

 

2.

세상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매사에 “균형(balance)”이 중요합니다.

 

일과 쉼의 균형, 직장과 가정의 균형,

육체와 마음, 그리고 영의 균형,

건강을 뜻하는 몸의 균형,

신앙과 생활의 균형,

자녀 교육의 경우 훈육과 격려의 균형 등등.

 

평균대 위에서 연기하는 체조선수들이

균형을 잃으면 삐끗하고 평균대에서 떨어지듯이

우리도 균형을 상실하면 흔들거리거나 무너져 내립니다.

 

또한 지나치게 균형을 강조하다 보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신앙과 생활을 균형을 쫓다가

신앙도 미지근하고, 생활도 엉거주춤한 상태가 되는 경우입니다.

 

3.

어느 순간에는

<선택과 몰입>이 필요합니다.

 

곧 사순절이 다가오는데

신앙을 위해서 시간을 떼어놓고 에너지를 쏟으면서

말씀과 기도에 힘쓰는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우리의 삶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일 외에 주중까지 교회 봉사에 힘쓰다가

삶이 망가지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이렇게 선택과 몰입을 반복하지만

결국에는 균형을 잡아가는 것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4.

우리가 느끼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충만한 은혜를 내려 주시지만

우리는 은혜와 침묵이 번갈아 찾아오는 것처럼 느끼곤 합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의 손길이 눈에 보이듯이 임합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어떤 때는 아무리 간절히 기도해도 하나님의 침묵이 이어집니다.

탄식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것도 길게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평균적으로 임하는 것을 봅니다.

결국에는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실 것을 믿기에

오늘도 차분하게 주의 길을 걷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연결해 주시고

궁극적으로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심을 믿습니다.

그 믿음과 확신을 갖고

우리 앞에 있는 벽과 경계를 넘어서 주님께 나갑니다.

 

삶에 밀려오는 폭풍우를 막아낼 힘과

벽을 뚫고 나갈 용기와

삶의 균형을 이룰 하늘의 지혜를 구합니다.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평균케 하려 함이니  (고후 8:13)

I do not mean that others should be eased and you burdened,

but that as a matter of fairness (2Cor 8:13)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는 세상에 균형을 회복시켜 주소서.

결국에는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고, 균형을 이루실

하나님을 굳게 신뢰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2.20 이-메일 목회 서신)

있는 그대로

그럴수록

예수님을 찾아온 백부장처럼, 시편 기자처럼

우리의 마음과 상황을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 진술할 필요가 있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솔직하게

우리의 상황을 하나님 앞에 진술하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말씀드릴 때 임하는

특별한 은혜가 있습니다.

그 자체로 우리 마음속에 평안, 위로, 소망이 임할 것입니다.

 

우리의 사정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보다 앞서 움직이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여 오직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이르리이다 (시편 88:13)

But I, O LORD, cry to you; in the morning my prayer comes before you (Ps 88:13)

 

하나님 아버지,

이 아침에 드리는 참빛 식구들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2.13 이-메일 목회 서신)

 

바이러스

1.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로 세상이 뒤숭숭합니다.

 

한국 뉴스를 보면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습니다.

한국 친구들이 있는 카톡방에서도

대부분 바이러스 얘기입니다.

동기 모임을 무기한 연기한다는 공지도 뜹니다.

 

한국이 중국과 가까워 왕래가 잦고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함께 지내니

전염될 가능성이 훨씬 커서 그런 것 같습니다.

 

미국은 그에 비하면 아주 한산한 편입니다.

마스크를 쓴 사람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어제 코스코에 갔다가

마스크를 쓴 아시아계 여성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래도 서로 조심하는 것이 역력합니다.

 

지난 월요일 날 우체국에 갔는데 줄이 무척 길었습니다.

몸살 기운이 있어서인지 저도 모르게 기침을 했더니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저를 주시했습니다.

동양 남성이 기침을 했으니까요.

 

2.

조심하는 것이 나쁘지 않습니다.

이참에 외출해서 돌아오면

손을 오랫동안 깨끗이 씻는 것도 습관으로 만들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너무 민감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편에서는 이번에 유행하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그렇게 센 놈이 아니라는 보도도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작년 말과 올해

독감(flu)으로 만 명이 넘는 분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건사고는 또 얼마나 많습니까?

 

차분하게 대처하면 될 것 같습니다.

바이러스에 걸린 분들이 얼른 일어서길 기도하고,

무엇보다 의료진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각국의 보건당국이 현명하게 대처하길 기대합니다.

 

주일설교에서 말씀드렸듯이

이 또한 지나갈 일입니다.

 

3.

그래도 바이러스가 무서운 것은

공기를 통해서 전염되기 때문입니다.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일정 기간 숨어 있다가

때가 되면 활동을 시작합니다.

노약자의 경우 바이러스의 침투가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어디 바이러스만 그럴까요?

우리 안에 슬며시 들어와서 우리를 무력하게 만드는 것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바울이 로마서 7장에 말한 “죄”가 그렇습니다.

욕심, 염려, 불안, 두려움, 우울, 무력감, 절망, 소외, 연약함, 자기 연민 등등

우리를 무너뜨리는 일종의 바이러스들입니다.

 

손을 씻고 마스크를 쓰고

철저하게 위생을 관리하듯이

우리 신앙과 마음에 파고드는 악성 바이러스들도 몰아내야 합니다.

 

지난주부터 시작된

<예수님, 우리 예수님> 연속 설교 본문처럼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고, 치료하시고, 일으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구합니다.

 

차분하게 주어진 일상을 살아갑시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마8:3)

And Jesus stretched out his hand and touched him,

saying, “I will; be clean.” And immediately his leprosy was cleansed.”(Mat 8:3)

 

하나님 아버지,

어지러운 세상에 평안(샬롬)을 주시고

세상을 사는 참빛 식구들과 늘 함께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2.6 이-메일 목회 서신)

 

 

 

 

인생길

1.

새해 벽두부터

중동발 전쟁의 기운,

호주발 산불,

중국발 신종폐렴까지 어두운 소식이 들려옵니다.

 

경자년 새해는 흰쥐띠 해라고

무엇인가 좋은 일이 많이 생기길 기대했건만

세계정세가 아직은 잔뜩 흐림입니다.

 

그러던 와중에

지난 주일에는 NBA농구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가 헬기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는 세 살부터 농구를 시작했고,

여덟 살이 된 1996년에 자신이 좋아하는 LA 레이커스에 입단해서

2016년까지 20년 동안 다섯 번이나 팀의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아버지처럼 농구선수가 되려는

열세 살 딸과 함께 자가용 헬리콥터를 타고 이동하다가

짙은 안개에 시야를 잃으면서 헬기가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막 불혹을 넘긴 41세의 젊은 나이였습니다.

 

갑작스러운 스포츠 스타의 죽음을

많은 사람이 추모하고 있습니다.

마치 미국 전체가 그와 딸의 죽음을 추모하는 듯합니다.

 

2.

새해 첫 달에

올해 우리 교회 표어인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Arise and shine”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올 한해 각자의 자리에서 일어나고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의 빛을 전하기로 다짐했습니다.

유별나고 큰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 하나님의 일이 되길 바랐습니다.

 

깜깜한 세상이지만

하나님과 더불어 꿈을 꾸고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동화 같은 세상을 상상했습니다.

 

그렇지만 현실로 눈을 돌리면

말 그대로 한 치 앞을 알 수 없습니다.

조금만 긴장을 풀면

여지없이 어디선가 크고 작은 폭풍우가 밀어닥칩니다.

 

우리가 걷는 인생길이 쉽지 않은 이유입니다.

 

3.

겸손하기 원합니다.

차분하기 원합니다.

정말 중요하고 궁극적인 일에 집중하기 원합니다.

‘순간의 일’과 ‘영원의 삶’을 구별하기 원합니다.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인지

하나님 앞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고 그 일에 힘을 다하기 원합니다.

지금은 그 끝을 모두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연결해 주실 것을 믿고 말입니다.

 

새해의 첫 달을 마무리하면서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생길을 돌아보고 재조정하고

다시 힘차게 새달을 맞읍시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사 60:1)

Arise, shine, for your light has come,

and the glory of the LORD has risen upon you. (Isa 60:1)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이 살아가는 인생길을

주님께서 동행하시고 인도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1.30 이-메일 목회 서신)

두려워 말라

좋은 아침입니다

 

1.

화요일 아침에 나눈 요한복음 6장 20절에서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It is I; do not be afraid

는 예수님 말씀을 만났습니다.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던 제자들이

갑작스레 불어온 큰바람을 만나서 허둥지둥하고 있을 때,

폭풍속 바다 위를 걸어오시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니 폭풍이 잠잠해졌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갑작스레 제자들에게 폭풍이 몰아쳤듯이

우리 인생길에도 크고 작은 폭풍이 밀려옵니다.

폭풍을 맞닥뜨리지 않는 인생길은 없습니다.

 

그때, 우리에게도

내니 두려워 말라”는 예수님의 음성이 필요합니다.

 

2.

두려워 말라 Do not be afraid

성경에서 자주 만나는 말씀입니다.

 

혹자는 성경에 365번 등장한다고 합니다.

매일 우리에게 두려움이 닥치니

그때마다 “두려워 말라”는 말씀을 붙잡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365번은 누군가 만들어낸 것이고,

(이렇게 신기한 경우는 조심할 필요가 있음)

성경에 두려워 말라는 명령은100-120번 정도 등장합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겁내지 말라”와 같은

유사한 표현이 있어서 정확한 횟수를 세기 힘듭니다.

 

일 년으로 환산하면 매일은 아니어도

3일에 한 번꼴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이 등장하네요.

 

그만큼 우리 안에 그리고 신앙과 인생길에

두려움이 밀려온다는 뜻이고

그때마다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3.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It is I; do not be afraid.

 

현재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

우리 인생길에 마주친 두려움,

예상하기 싫어도 앞으로 닥칠 두려움,

“두려워하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으로 이겨내기 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 41:10)

Fear not, for I am with you;

be not dismayed, for I am your God;

I will strengthen you, I will help you,

I will uphold you with my righteous right hand. (Isa 41:10)

 

하나님 아버지,

다양한 경로에서 순간순간

또는 지속적으로 쫓아오는 두려움을

하나님 말씀으로 다스리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1.23 이-메일 목회 서신)

 

위로부터 오신 이

좋은 아침입니다

 

1.

새해 첫달에 나누는 아침 말씀은

<요한복음>입니다.

 

요한복음은

독수리 복음서라고 불릴 정도로

예수님을 높은 곳에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로 묘사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요1:1) –

요한복음의 첫 구절은 창세기로 소급해 올라가서,

말씀(로고스)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함께 하셨음을 선포합니다.

 

그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는데

어두운 세상은 참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2.

요한복음 3장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바리새인이자 고위관리인

니고데모에 대한 말씀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을 보고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기다리던 메시아일 수 있기에

신분이 노출되지 않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알려주셨습니다.

 

본문에는 니고데모의 반응이 없는데

요한복음 뒤에 가면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서 향품을 갖고 옵니다(요19:39).

 

3.

요한복음 4장은

갈릴리로 내려가시던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라는 동네에서 한 여인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모든 면에서 니고데모와 다릅니다.

 

니고데모가 유대인이었고

여인은 유대인들이 천하게 여기는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니고데모는 높은 위치에 있었고

여인은 남편이 다섯 명도 넘을 정도로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유대인 남성과 사마리아 여인 사이에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간격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물을 좀 달라”(요4:7)고

먼저 여인에게 접근하셨고

결국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복음을 전해 주셨습니다.

니고데모와 달리 사마리아 여인은 즉석에서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알고, 동네로 뛰어가서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위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사마리아 수가성의 여인에게도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4.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사 60:1)

예수님의 빛을 세상에 발하기 원합니다.

니고데모부터 사마리아 여인까지

차별없이 임하는 복음의 빛을 세상에 비추는 것입니다.

 

땅에서 난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위로부터 오신 예수님에게 해답이 있습니다.

이 예수님과 더불어 올 한해 살아갑시다.

 

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32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33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요 3:31-33)

 

하나님 아버지,

위로부터 오신 예수님의 빛을

세상에 비추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1.16 이-메일 목회 서신)

 

 

샬롬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 새해를 맞은 것 같은데

어느새 열흘 가까이 지났습니다.

시간이 무척 빠르게 흘러갑니다.

이런 속도로 2020년도 지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에 밀리지 말고

중간중간 멈춰서 삶을 조절하고

시간을 다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중간중간”

멈춰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시간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기도하는 시간이고,

하나님 앞에서 신앙과 삶을 바로 잡고

다시금 촘촘하게 앞길을 설계하는 시간입니다.

 

2.

연초부터

세계정세가 불안합니다.

 

화약고라고 불리는

중동 지역에 전쟁의 기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엊그제 이란이 미국 공군기지에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우연이겠지만 하필 같은 날

이란의 테헤란 공항을 떠나서 우크라이나로 향하던

170여 명의 승객을 태운 여객기가 이륙직후 추락했습니다.

 

이란은 중동의 미군 기지와 이스라엘은 물론

미국 본토까지 공격하겠답니다.

지난주 미국이 드론을 동원해서

이란 사령관을 암살한 것에 대한 보복입니다.

 

일단 미국이 군사력보다는

경제 보복을 강화하겠다니 한숨 돌렸지만

언제 다시 강대강으로 상황이 바뀔지 알 수 없습니다.

 

3.

이번 경우는 단순한 우려를 넘어서

심각한 사태로 발전할까 모두 염려합니다.

 

지난주 설교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전쟁이 나면 동원된 군인들은 물론

힘없는 아이들과 민간인들이 가장 큰 피해를 봅니다.

 

새해부터 들려온 전쟁의 소문이

하루속히 잦아들길 바랍니다.

가능하면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우리 같은 민초들은 있는 자리에서 기도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지도자들이 세워지길 협조할 뿐입니다.

 

3.

어떤 형태든지 폭력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기쁨과 평화”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그리스도의 평화, <샬롬>이 임하길 기도합시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미가 4:3)

They shall beat their swords into plowshares,

and their spears into pruning hooks;

nation shall not lift up sword against nation,

neither shall they learn war anymore;( Micah 4:3)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는 세상에 평화를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1.9 이-메일 목회 서신)

 

 

새해에

좋은 아침입니다

 

1.

2020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가 되면서 새로운 법이나 규칙들이 시행됩니다.

제가 사는 동네(Millbrae)의 경우 새해부터 공동주택에서 금연입니다.

캘리포니아는 머리치장 등을 두고 직장에서 차별할 수 없습니다.

15년 이전에 지은 공동주택은 연 5%(+소비자 물가지수) 이상 렌트비를 올릴 수 없습니다.

이처럼 1년 단위로 새로운 법이나 규칙이 시행됩니다.

 

우리도

“새해 결심”을 하면서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12월 31일과 1월 1일이 주는 느낌과 의미가 사뭇 다릅니다.

 

사실 같은 날입니다.

그런데 총명한 인류는 달이 지구를 돌고,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을 알아차려서

음력과 양력을 만들었습니다. 수천 년 전의 발명입니다.

그리고 개인의 삶과, 국가와 사회의 운영을 캘린더에 맞췄습니다.

꽤 공정하고 지혜로운 시간 관리 기법입니다.

 

2.

새해를 맞으면서 기대를 갖지만

혹은 부담이 됩니다.

 

의미 없이 한해가 지나는 것 같고,

늘어가는 나이에 대입하면 약간 시무룩해지고,

매번 새해 결심을 하지만, 지키지 못할 것이 뻔해서 자책합니다.

같은 날인데 왜 괜히 달력을 만들어서 스트레스를 주는지 푸념도 나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류가 오랫동안 사용한 시간 단위 앞에 서 있습니다.

현재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도 2020년 365일을 맞았습니다.

세상의 운영체계도 여기에 맞춰 있습니다.

 

그렇다면 2020년 새해를 과감히 마주하고

선하게 사용하는 것이 올바를 것입니다.

 

3.

“세월을 아끼라”(엡 5:16)는 말씀도 생각납니다.

여기에 주어진 기회를 잘 이용하라는 의미가 있다고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기회를 이용하는 주체는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가(내가) 기회를 잘 이용해야 합니다. 적극적인 자세가 요청됩니다.

 

시간의 흐름을 두고,

단순히 흘러가는 <크로노스>와

주어진 시간을 창조적으로 의미 있게 만드는

<카이로스>로 나누는 것도 익숙합니다.

 

주어진 기회를 값지게 사용하기 원합니다.

이왕이면, 주어진 시간을 단순한 크로노스가 아닌

창조적인 “카이로스”로 만들 수 있기 바랍니다.

 

4.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부담감을 떨칠 수 없습니다.

 

이쯤 해서 엊그제 송구영신 예배에서 나눈

데살로니가전서 말씀을 다시 떠올립니다.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서

마지막으로 기도한 후에(살전 5:23) 교회를 축복한 말씀입니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살전 5:24)

He who calls you is faithful;

he will surely do it. (1Thes 5:24).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살전1:9)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일 것입니다.

 

이 말씀이 도피처가 아니라,

우리의 부족, 부담, 한계를 뛰어넘고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한 해의 표어이자 능력이 되길 바랍니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참빛 식구들을 축복합니다.

한 해도 여러분 뒤에서 매일같이 기도하며, 힘닿는 대로 돕겠습니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살전 5:24)

He who calls you is faithful;

he will surely do it. (1Thes 5:24).

 

하나님 아버지,

새해를 시작하는 참빛 식구들을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함께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1.2 이-메일 목회 서신)

감사

좋은 아침입니다.

 

1.

2019년에 보내는 마지막

목요서신입니다.

 

2010년대가 지나고

새로운 10년 2020년을 맞는 감회가 남다릅니다.

 

지난 10년을 돌아봅니다.

교회적으로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한 십년을 은혜로 마무리할 수 있어서 감사할 뿐입니다.

 

겁도 없이 교회 건물을 구입하면서

셋방살이를 면했지만,

은행 빚을 갚을 것이 막연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지난 8년 동안 한 번의 연체없이 모기지를 지불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두 해 정도만 잘 지나면,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럴수록 더욱 겸손하고 긴장해야겠지요.

 

자체 건물이 있으니

교회 사역에 안정이 찾아왔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아무리 뛰어도 눈치 볼 필요가 없습니다.

미국 교회를 빌려 쓸 때는

음식도 마음껏 할 수 없고, 장소 사용도 제한적이었습니다.

 

2.

건물이 교회를 이루는 공간이라면,

더 중요한 것은 교회를 세우는 성도들입니다.

교회를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의 모임”이라고

정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권사님들께서 꿋꿋하게 변함없이 교회를 지켜주셨습니다.

연세가 드시고 연약해지셔서 안타까울 때가 있는데

그래도 주일을 지키시면서 귀감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겸손하고 훌륭한 젊은 성도님들을 뽑아서

우리 교회에 보내주셨습니다.

한 시간 가까이 운전해 오시는 성도님들을 보면서

감사한 마음이 절로 생깁니다.

 

2020년 새해부터는

남선교회는 물론 여선교회도 젊은 집사님들이 인도하시고

교회의 중요한 사안들도 젊은 집사님들께서 함께 하시게 되었습니다.

10년 전 우리 교회 모습과 180도 바뀌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3.

저는

우리 참빛 식구들께서

교회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시길 기도했습니다.

 

개인적인 삶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경험하지만,

교회가 시작되고, 세워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 모든 성도님께서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라고 간증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고백을 하게 만드셨습니다.

 

이제 앞으로 맞는 2020년도 하나님께 맡깁니다.

 

우리 앞에 펼쳐질 하나님의 역사, 믿음의 역사를 보기 원합니다.

 

물론, 교회가 세워지기가 쉽지 않아서

크고 작은 어려움이 찾아 올 수도 있습니다.

그때도 한마음이 되어서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기 원합니다.

 

무엇보다, 앞으로 시작하는 2020년에는

우리 아이들이 많이 클 것입니다.

참빛 자녀들이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자라가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어르신들이 영육간에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교회가 세상을 돌보고 구제하는 일에 더 힘쓰기 원합니다.

 

올 한해는 물론 지난 10년을 지켜주시고 함께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교회를 섬겨주신 모든 참빛 식구들께 감사드립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And I am sure of this, that he who began a good work in you will bring it

to completion at the day of Jesus Christ. (Phil 1:6)

 

하나님 아버지,

감사함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게 하시니 고맙습니다.

함께 교회를 세운 참빛 식구들을 한없이 축복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12.26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