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물고기 뱃속에서 드린 요나의 기도를 함께 나눴습니다.
요나는 이스라엘의 적국이자
당시에 제국인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말씀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요나는 자신이 왜 니느웨로 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단단히 화가 난 요나는
하나님의 낯을 피해서 니느웨 반대쪽 다시스로 향합니다.
누가복음의 탕자, 아니 꼭 청개구리 같습니다.
배 맨 밑에 내려가서 잠을 청합니다.
바다에 폭풍이 일어도 잠을 자는 것을 보면,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무감각과 무지를 발견합니다.
2.
죗값을 물어서 바다에 던져진 요나는
바다 맨 밑까지 떨어집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추락입니다.
하나님께서 큰 물고기를 동원해서
요나를 구하십니다. 구사일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바다 한가운데 물고기 뱃속입니다.
불안하고 불완전한 실존입니다.
요나는 그 순간 기도했고,
그곳이 하나님 마음속이 되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그리고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해냈습니다.
정말 살아서 돌아온 것입니다.
정신이 번쩍 든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예언하라는 하나님 명령에 순종합니다.
니느웨에 간 요나는 설렁설렁 하나님의 심판을 전했는데
니느웨 백성들이 귀담아듣고 회개하기 시작합니다.
일반 백성들부터 시작된 회개 운동이 왕에게 확대되고
심지어 하루만 굶어도 큰일 날 가축까지 금식하면서 회개합니다.
언제나 회개는 하나님 마음을 움직입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에 내리시려는 심판을 거두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방 국가 니느웨까지 임한 것입니다.
이것을 본 요나가 화를 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대로 니느웨를 심판하지 않으시면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억지를 부리면서 하나님께 대항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지 천막을 쳐 놓고 감시합니다.
요나가 하나님 머리 꼭대기에 앉은 느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리저리 요나를 설득하시지만 (요나 4장)
요나의 마지막 반응은 독자인 우리에게 남긴 채
모든 생명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말씀으로 요나서가 끝납니다.
3.
요나를 통해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우리도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받은 은혜를 금방 잊어버립니다.
자기 생각에 꽉 들어차서 열린 사고가 불가능합니다.
나만 잘 되어야 합니다.
종종 하나님 머리 위까지 올라갈 정도로 교만합니다.
하나님 속을 엄청 썩입니다.
누구를 탓할 것 없이
우리 모두 도긴개긴 현대판 요나들입니다.
그래서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찬양이 그토록 좋은가 봅니다.
그런데, 은혜에만 머물면 조금 감상적일 수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위선도 있지만, 은혜에 숨는 위선도 문제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사람으로, 예수님을 닮은 제자로,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기 원합니다.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요나 4:11)
And should not I pity Nineveh, that great city, in which there are more than 120,000 persons
who do not know their right hand from their left, and also much cattle? (Jonah 4:11)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근사한 그리스도인들로 가득 채워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목사 드림
(2017. 5. 24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