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

 

좋은 아침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물고기 뱃속에서 드린 요나의 기도를 함께 나눴습니다.

 

요나는 이스라엘의 적국이자

당시에 제국인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말씀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요나는 자신이 왜 니느웨로 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단단히 화가 난 요나는

하나님의 낯을 피해서 니느웨 반대쪽 다시스로 향합니다.

누가복음의 탕자, 아니 꼭 청개구리 같습니다.

 

배 맨 밑에 내려가서 잠을 청합니다.

바다에 폭풍이 일어도 잠을 자는 것을 보면,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무감각과 무지를 발견합니다.

 

2.

죗값을 물어서 바다에 던져진 요나는

바다 맨 밑까지 떨어집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추락입니다.

 

하나님께서 큰 물고기를 동원해서

요나를 구하십니다. 구사일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바다 한가운데 물고기 뱃속입니다.

불안하고 불완전한 실존입니다.

 

요나는 그 순간 기도했고,

그곳이 하나님 마음속이 되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그리고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해냈습니다.

정말 살아서 돌아온 것입니다.

 

정신이 번쩍 든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예언하라는 하나님 명령에 순종합니다.

 

니느웨에 간 요나는 설렁설렁 하나님의 심판을 전했는데

니느웨 백성들이 귀담아듣고 회개하기 시작합니다.

일반 백성들부터 시작된 회개 운동이 왕에게 확대되고

심지어 하루만 굶어도 큰일 날 가축까지 금식하면서 회개합니다.

 

언제나 회개는 하나님 마음을 움직입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에 내리시려는 심판을 거두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방 국가 니느웨까지 임한 것입니다.

 

이것을 본 요나가 화를 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대로 니느웨를 심판하지 않으시면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억지를 부리면서 하나님께 대항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지 천막을 쳐 놓고 감시합니다.

요나가 하나님 머리 꼭대기에 앉은 느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리저리 요나를 설득하시지만 (요나 4장)

요나의 마지막 반응은 독자인 우리에게 남긴 채

모든 생명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말씀으로 요나서가 끝납니다.

 

3.

요나를 통해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우리도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받은 은혜를 금방 잊어버립니다.

자기 생각에 꽉 들어차서 열린 사고가 불가능합니다.

나만 잘 되어야 합니다.

종종 하나님 머리 위까지 올라갈 정도로 교만합니다.

하나님 속을 엄청 썩입니다.

 

누구를 탓할 것 없이

우리 모두 도긴개긴 현대판 요나들입니다.

그래서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찬양이 그토록 좋은가 봅니다.

 

그런데, 은혜에만 머물면 조금 감상적일 수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위선도 있지만, 은혜에 숨는 위선도 문제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사람으로, 예수님을 닮은 제자로,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기 원합니다.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요나 4:11)

And should not I pity Nineveh, that great city, in which there are more than 120,000 persons

who do not know their right hand from their left, and also much cattle? (Jonah 4:11)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근사한 그리스도인들로 가득 채워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목사 드림

(2017. 5. 24이-메일 목회 서신)

 

기도로 사는 한달

좋은 아침입니다.

 

우리 교회의 사역은

아주 적극적인 편이 아니고

겉으로 보기에도 커다란 변화가 없어 보입니다.

 

그렇게 형식은 반복되지만

“내용”의 변화를 위해서 저 나름 무척 애를 씁니다.

물론, 늘 부족해서 저만 알아차릴 때가 많지요 ㅠㅠ

 

매년 한 달은 기도에 대한 말씀을 전했습니다.

부활절이 지난 4-5월에 전하면서

부활절을 산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성령강림절의 열정과 그 이후의 삶을 기도로 살기 원했습니다.

 

형식과 제목은 <기도>였지만,

기도의 인물을 살피고,

참빛 식구들이 힘드실 때는 “간구와 기도의 능력”을

여유가 있으신 것 같으면 “이웃을 위한 기도”를

물론 기도의 기본(첫 단추)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10여 년을 매년 기도에 대한 말씀을 준비했으니

이제 기도에 대한 주제는 거의 다룬 셈입니다.

그래도 기도는 언제나 필요합니다.

기도야말로 “앎이 아니라 삶”이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한나, 요나, 예레미야, 다윗의 기도를 나눕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진솔하고, 간절히 드리는

내면의 깊은 기도를 본받기 위함입니다.

 

2.

기도를 생각하면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고 응답받는 “간구”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의 지경은 높고, 깊고 넓습니다.

 

무엇보다, 기도를 통해서

그동안 살펴보았던 사도신경의 삼위 하나님을 만납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전능하신 창조주 아버지 하나님,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보혜사 성령 하나님!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도하고

우리의 이름이 아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마무리하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와 능력을 구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삼위 하나님께 드려짐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 예수의 사람,

성령에 사로잡힌 능력의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기 원합니다.

 

기도는

앎에서 삶으로

그리고 자라감(변화)으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3.

기도합시다.

 

꼭 교회에 나오고, 무릎을 꿇고, 형식을 갖추지 않아도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실제로 기도하면서 한 달을 살기 원합니다.

 

간구하는 기도와 응답을 넘어서

우리가 믿는 삼위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중세의 프랑스 수도사 클레르보 버나드의 기도문을 갖고

우리도 오늘 하루 간절히 주님을 갈망합시다.

 

오 생명의 떡이신 주님, 우리가 주님을 맛보며

여전히 주님으로 즐거워하기를 갈망하나이다.

생의 근원이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영혼의 갈증을 채우기 원하나이다.

 

하목사 드림

(2017. 5. 17이-메일 목회 서신)

은밀한 중에 보시는

좋은 아침입니다.

 

요즘 새벽기도회에서는

구약성경에 이어서 마태복음을 읽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산상수훈의 한가운데

마태복음 6장에는 온전한 신앙의 모습과

신앙의 길을 가는 자신의 백성을 책임지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등장합니다.

 

온전한 신앙은

사람에게 보이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은밀함입니다.

 

2.

예수님께서

자랑하기 쉬운 세 가지 신앙 행위를 예로 드셨습니다.

 

구제할 때에

사람들 앞에서 나팔을 불며 자랑하지 말고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에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회당이나 큰 거리로 나가지 말고

골방에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의미없이 이말 저말을 길게 기도함으로

기도를 많이 하는 척할 것도 아니고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을 따라서 기도하면 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이웃을 용서하고 화해할 일이 생각나면

먼저 해결하고 하나님께 나와야 합니다.

 

금식할 때에

일부러 슬픈 기색을 보이면서 자랑하지 말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외모를 단정히 꾸며야 합니다.

 

3.

구제, 기도, 금식을 실천하면서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을 받았다면

그것으로 상을 다 받은 셈입니다.

 

온전한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은밀히 행합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은밀하게 갚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밀월(蜜月, honeymoon)입니다.

 

남에게 자랑하고 싶을 때

하나님만을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서 은밀히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웬만한 신앙 내공이 아니면 지키기 힘듭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에 들어갔을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은밀히 행하고

은밀한 중에 보시고

은밀히 갚아 주시는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하루가 되기 원합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마태 6:1)

“Beware of practicing your righteousness before other people in order to be seen by them,

for then you will have no reward from your Father who is in heaven. (Matthew 6:1)

 

하나님 아버지,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 5. 10이-메일 목회 서신)

보혜사 성령

좋은 아침입니다.

 

지난 3주 동안

보혜사 성령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보혜사

– 곁에서 함께 해 주시고

– 도와주시고

– 안내해 주시는 성령 하나님!

 

우리 안에 계시고

사방에서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는

능력의 성령 하나님!

 

성령 하나님을 믿는 우리 안에

사랑, 희락(기쁨),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친절)

충성, 온유, 절제

성령의 열매가 맺히길 원합니다.

 

거기에

성령의 은사까지 우리 안에 임하면

우리 자신은 물론 교회에도 커다란 덕이 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넘치게 임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2.

성령 하나님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위로”입니다.

 

보혜사라는 말에

곁에서 함께 해 주시고, 기도해 주시는

“위로자(Comforter)”라는 의미가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우리 모두에게 위로가 필요합니다.

위로의 수단과 경로가 다양하지만,

사람이나 세상이 주는 위로는 한계가 있고

만족함 없이 계속 갈증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위로가

참빛 식구들 위에 임하길 기도합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을 만져 주시고

언제나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성령 하나님을 사모하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g00ajpu9sE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며)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편46:1)

God is our refuge and strength,

a very present help in trouble. (Psalms 46:1)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의

진정한 위로자와 피난처가 되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 5. 3이-메일 목회 서신)

기대

좋은 아침입니다.

 

미국에 살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언어 문제입니다.

살면 살수록 영어가 안되고,

그때마다 의기소침해지면서

우리 말에 대한 사랑과 집착이 점점 커집니다.

 

언어, 특히 같은 말을 사용한다는 것은

마음과 생각을 나누고

하나가 되는데 필수적입니다.

 

오늘은

조국 대한민국에서

남과 북의 정상들이 만났습니다.

 

남과 북의 경계선에 마주 선 정상들이

악수를 나누고 대화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여느 나라 정상들이 만나면 언어가 틀리니 중간에 ‘통역’이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남과 북의 정상들은 통역없이 대화를 나눕니다.

자국어로 서로 대화하고 협상하니

답답함이나 중간에 에러가 발생할 확률도 낮겠습니다.

 

“진심(眞心)”만 전제된다면

말 그대로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나누고

놓치기 쉬운 뉘앙스까지 잡아내면서

우리 민족 앞에 큰 선물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정상회담을 지켜보는 우리들 마음은 여전히 조마조마합니다.

과거를 생각하면 또 속지 않을까 염려되고,

앞으로 가야 할 길 역시 험하기에

한반도에 전쟁이 그치고 평화가 임하길 진심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어떻게 첫 술에 배부를 수 있을까요!

같은 말을 쓰는 민족끼리 서로 소통하면서

앞으로 나가면 결국에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겠지요.

 

“one day at a time (하루하루)”이라는 영어표현대로

남과 북이 손을 잡고 평화를 도모하는

오늘 하루를 즐겨도 좋겠습니다.

 

이사야를 통한 주님의 약속이

조국 대한민국에 임하길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이뤄가실 한반도의 역사를 소망 가운데 바라봅니다.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이사야 2:4)

They shall beat their swords into plowshares, and their spears into pruning hooks;

nation shall not lift up sword against nation, neither shall they learn war anymore.(Isa 2:4)

 

하나님 아버지,

우리 조국 대한민국에서

날마다 기쁜 소식이 들려오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4.26이-메일 목회 서신)

                   

기초공사

좋은 아침입니다.

 

샌프란시스코 한복판에
밀레니엄 타워(301 Mission)라는 58층짜리 주거용 빌딩이 있습니다.

높이만 197m (645ft)에 달하는 빌딩입니다.

 

2009년부터 입주가 시작되어서

SF 자이언츠의 야구선수 헌터 펜스와

농구선수 케빈 듀런트가 사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이 높은 빌딩이 내려앉고 있습니다.

2016년에 처음 제기된 문제인데

현재 17인치가 내려앉았고

북서쪽으로 14인치 기울었습니다.

 

유명하신 분들이 사는 곳이기에 난리가 났습니다.

계속 가라앉고 있는 빌딩을 어떻게 보수해야 하고

책임소재와 보상문제를 놓고 여러 건의 소송이 제기된 상태입니다.

 

엊그제 한 가지 보수 방식이 제시되었는데

보수비가 자그마치 2억-4억 달러에 이를 것 같답니다.

타워를 지을 때 들어간 3억 5천만 달러를 웃도는 엄청난 보수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도

그 효과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네요 ㅠㅠ

 

어떤 입주자들은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지을 것을 제안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답니다.

하여튼 지혜를 모으고 정확히 대책을 세워서

그 큰 건물의 안정성이 확보되길 바랍니다.

 

2.

밀레니엄 타워의 보수공사에 관한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기초공사의 중요성을 다시금 실감했습니다.

보수비용이 건축비용을 웃돈다는 기사를 읽으며

저도 모르게 혀를 찼습니다.

 

물론 건설하신 회사에서도 최선을 다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 큰 건물이 17인치나 내려앉았으니

책임을 면하기 힘들 것입니다.

(내려앉은 상태에서도 건물은 안전하다니 기술력이 대단합니다)

지난 사순절부터 주일예배에서

<사도신경>을 차례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신앙의 첫 단추라고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신앙을 높이 쌓아 올리는 기초공사인 셈입니다.

 

신앙도 기초가 부실하면

바람이 불고 홍수가 났을 때 주저앉고 무너질 수 있습니다.

기초공사는 겉모습이 아니라 속에 숨겨진 내공이니

속이 꽉 차 있어야 합니다.

 

사도신경을 함께 공부하면서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리는 참빛 식구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신앙을 갖추고,

그 위에 각자 신앙의 집을 근사하게 세워 가시길 바랍니다.

 

저는 뒤에서 기도하고 힘닿는 대로 돕겠습니다.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마태7:24-25)

Everyone then who hears these words of mine and does them will be like a wise man who built his house on the rock. And the rain fell, and the floods came, and the winds blew and beat on that house, but it did not fall, because it had been founded on the rock.(Matthew 7:24-25)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께

흔들림 없고 내려앉지 않을 신앙과 삶을 허락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4.19이-메일 목회 서신)

크고 은밀한 일

좋은 아침입니다.

 

엊그제 수요예배에서는

예레미야 33장을 읽었습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예레미야서 한가운데 위치한

30-33장은 위로와 회복의 말씀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커다란 위로와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현재 상황을 깜깜한 밤이지만

언젠가는 밝은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이 유명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Call to me and I will answer you,

and will tell you great and hidden things that you have not known.(Jer 33:3)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보이실

크고 은밀한 일을 차근차근 소개합니다:

– 하나님께 버림받고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된 예루살렘을 고치고 새롭게 만드실 것입니다.

– 바벨론 뿐만 아니라 사방에 흩어진 백성들을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하고,

세상 가운데 “기쁜 이름”과 “영광과 찬송”이 될 것입니다.

– 황폐한 예루살렘의 슬픔이 사라지고 기쁨과 즐거움이 찾아올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다윗에게서 한 의로운 가지가 나와서 나라를 통치하게 만들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로서는

믿을 수 없는 말씀입니다. 엄청난 약속입니다.

말 그대로 “크고 은밀한 일(great and hidden things)”이었습니다.

 

2.

대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부탁하시는 것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입니다.

 

부르짖는 것은 당연히 “기도”입니다.

그만큼 기도가 중요하고,

기도는 하나님의 크고 은밀한 일을 경험하는 길(way)입니다.

 

하지만, 부르짖는 것을 단순히 입술의 기도만 생각하지 말고

조금 넓게 생각해도 좋겠습니다.

 

부르짖는 것은

–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 사도신경에서 배웠듯이 “하나님 아버지”께 자녀 된 우리 마음과 처지를 알리는 것입니다.

–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생각과 능력을 구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3.

하나님께서

참빛 식구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고

크고 은밀한 것을 보여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의 한계와 상상을 넘어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힘입는 것입니다.

 

입술의 기도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힘입는

총체적인 부르짖음이 우리 안에 있기를 원합니다.

 

부활절 셋째 주일을 맞습니다.

교회력에 따라 여전히 부활절을 사는 것입니다.

부활의 은혜와 능력을 통한 크고 은밀한 일도 기대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Call to me and I will answer you,

and will tell you great and hidden things that you have not known. (Jer 33:3)

 

하나님 아버지,

전적으로 부르짖는 참빛 식구들께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4.12이-메일 목회 서신)

분을 품지 말고

엊그제 화요일에는

평소에 자주 가는 스타벅스 커피숍

바로 옆 건물에서 총격 사건이 있었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스카벅스 매장인데

옆에 그 유명한 유튜브 본사가 있는 줄 몰랐다가

어제 보도를 보고 알았습니다.

 

총격사건을 벌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성은 이란계 이민자였습니다.

동물 애호가로 활동했고

광고 수입을 위해서 유튜브에 영상을 올렸는데

최근에(?) 유튜브의 규정변경으로 인해서

수입이 줄면서 불만이 커졌던 것 같습니다.

 

그녀가 집을 나간 것을 안 아버지는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습니다.

경찰은 사고 당일 새벽

차 안에서 자고 있던 범인을30마일 떨어진 마운틴 뷰에서 발견했습니다.

20여 분간 대화를 나눴지만

침착하게 경찰 조사에 응했기에 별일 없을 것으로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그날 오후

유튜브 본사에서 총격사건을 벌인 것입니다.

 

2.

이번 총격사건을 일으킨 여성은 자신의 계정에

“실제 세상에서 자유로운 의사 표현은 불가능하다.

[사회] 시스템이 지원해 주지 않는 한 진리를 말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는 글을 남겼답니다.

 

동물 애호가로, 소셜 계정의 광고수입으로

무엇보다 17세에 가족과 함께 미국에 온 이민자 1.5세로,

요즘 같은 시대에 중동계 이민자로 살아가면서

마음속에 세상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차 오른 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태연했지만

마음속에는 화산처럼 끓어오르는 분노가 있었을 것입니다.

인터넷에서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만

그녀와 생각을 나누고 얘기를 들어줄 “실제 사람”도 부족했을 것 같습니다.

 

안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풀어낼 기제가 마땅치 않으니

총을 구입해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했습니다.

 

3.

어찌 이 여성만 그럴까요!

대부분 사람들, 심지어 우리도

마음 한 켠에 분(anger)을 갖고 살아갑니다.

 

창세기의 가인도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 동생을 죽였습니다.

에서도 장자권을 빼앗은 동생 야곱을 죽이고 싶을 만큼 분노했습니다.

잠언에서도 쉽게 분노하는 것은 미련한 일이라고 교훈합니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남자들은 “분노와 다툼없이” 손을 들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속에 있는 분(anger)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자신을 조롱하고 못박은 군병까지 용서하신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이 분노를 다스리는 비결입니다.

 

말씀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살피고,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 함께하심을 경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분노를 일으키고 발전시키는 시스템에서 벗어나길 간절히 바랍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엡4:26-27)

Be angry and do not sin; do not let the sun go down on your anger,

and give no opportunity to the devil. (Ephesians 4:26-27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는 세상과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부활의 주님께서 전하신 “그리스도의 평화”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4.5이-메일 목회 서신)

고난 주간을 보내며

지난 주에 나눈 히브리서 말씀(히2:2-3)대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고난 주간을 보내고 계실 줄 압니다.

 

오늘 목요일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유월절 만찬을 갖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고 잡히신 밤입니다.

 

기독교 전통에서 고난 주간의 목요일을

“Maundy(먼디) Thursday”라고 부르곤 합니다.

 

“Maundy”는 계명(commandment)이라는 뜻의 라틴어

“만다툼(mandatum)”에서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만찬에서 주신 요한복음의 새 계명일 것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A new commandment I give to you, that you love one another:

just as I have loved you, you also are to love one another. (John 13:34)

 

유월절 만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면서

제자들에게 섬김의 삶을 살라고 명령하신 예수님의 말씀도 떠올립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요13:14)

If I then, your Lord and Teacher, have washed your feet,

you also ought to wash one another’s feet. (John 13:14)

 

교회의 전통에서Maundy Thursday에는

예수님 말씀대로

세족식을 하거나 촛불 예배를 드리곤 했습니다.

 

2.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날은

“성금요일 Good Friday”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날인데

“Good”이라고 부르는 것이 약간 어색합니다.

이에 대한 몇 가지 견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Good에 해당하는 영어가 옛날에는 holy와 유사하게 쓰였답니다.

그래서 Good Friday를 우리 말로 옮길 때는

“성 금요일(Holy Friday)”이라고 합니다.

 

Good과 하나님을 뜻하는 God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God’s Friday라는 의미가 들어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Good Friday를 단어 뜻 그대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만 생각하면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 너머에 있는 부활을 알고 있기에

마냥 슬퍼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위한 아니 온 세상을 향한 “선한 사역”입니다.

선으로 악을 몰아낸 최고의 사건입니다.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목숨까지 내어주신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날은 말 그대로 Good Friday입니다.

 

3.

오늘과 내일은

갈보리 십자가로 향하시는

예수님의 발길과 마음을 따라 사시길 권합니다.

 

목요일 저녁의 유월절 만찬, 겟세마네 기도, 잡히심

금요일 제 구시(오후3시)에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여기에 해당하는 복음서 말씀을 읽는 것도 좋겠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

친지들 또는 가족과 함께

성금요일 모임을 갖는 것도 참- 좋습니다.

일상과 삶의 영성을 고난주간에 실천하는 것이지요.

 

2018년 고난주간에

우리 모두에게 임할 예수님의 은혜를 사모하면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고, 또 깊이 생각하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고난 주간을 보내는 참빛 식구들 위에

십자가의 은혜가 깊이/충만히 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3 29이-메일 목회 서신)

하나님의 속마음

좋은 아침입니다

 

수요예배에서는

마가복음을 마치고 다시 예레미야로 돌아와서

후반부를 읽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서는 크게 1-25장과

26-52장으로 나누어 집니다.

 

전반부는 예루살렘을 향한 예레미야의 예언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식이고 문체는 대개 시어체로 쓰였습니다.

후반부는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선지자의 삶을 통해서 전합니다.

예레미야의 모습에서 예수님을 발견할 정도입니다.

예레미야를 “눈물의 선지자”라고 부르는 것을 흠뻑 느낄 수 있습니다.

 

500년 가까이 지속되었던

다윗 왕조가 막을 내리는 순간에

눈물로 예언한 말씀이기에 만만히 읽을 수 없습니다.

매 순간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는 식이어서 마음이 서늘해집니다.

 

2.

그런데 이번 수요일부터 읽기 시작한

예레미야 30-33장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무 조건 없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지은 죄를 용서해 주시고

상한 곳에서 새로운 살이 돋아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약속을 저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등 하나님을 떠난 백성을 향해서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라고

망가진 관계를 다시 회복하십니다.

 

다음 주에 살펴볼 31장에 가면

새로운 언약을 선포하시면서

모세 시대처럼 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에 새겨 주시겠답니다: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렘31:33)

But this is the covenant that I will make with the house of Israel after those days, declares the LORD:

I will put my law within them, and I will write it on their hearts. And I will be their God, and they shall be my people.(Jer 31:33)

 

 

3.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죄의 고발과 심판의 말씀 한 가운데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위로, 용서, 치유와 소망의 말씀이 있는 것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저는 예레미야서의 구조를 보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속마음을 느낍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났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물으셨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속마음은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이스라엘이 자신의 힘으로 돌아올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 직접 나서서 아무 조건 없이

다시금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우리 역시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갑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 아버지의 속마음,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그 큰 사랑이 넘치길 원합니다.

 

그들에게서 감사하는 소리가 나오고 즐거워하는 자들의 소리가 나오리라

내가 그들을 번성하게 하리니 그들의 수가 줄어들지 아니하겠고

내가 그들을 존귀하게 하리니 그들은 비천하여지지 아니하리라 (렘30:19)

Out of them shall come songs of thanksgiving,

and the voices of those who celebrate.

I will multiply them, and they shall not be few;

I will make them honored, and they shall not be small. (Jer 30:19)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은혜로 사는 하루가 되게 하시고

주의 은혜에 감사하는 참빛 식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3 22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