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사람 가꾸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어느덧 미국에 온지 열두 해가 다가옵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커네티컷의 한 형제께서

이민목회를 하실 생각은 없느냐고 조심스레 물어보셨습니다.

그때 저는 단호하게 공부 끝내고 한국에 갈 것이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람이 한 치 앞길을 알 수 없듯이

그때부터 1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갔고

저는 지금 이민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오십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제는 좋아하던 실내축구도 내려놓고

젊었다고 생각하면서 지고 다니던 가방도 내려놓을 때가 되는가 봅니다.

앞 일을 두고

자기 마음대로 말하는 것이 얼마나 교만한 것인지

제 스스로의 인생을 통해서 배웁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동안(童顔)이라는 얘기를 줄곧 들었습니다.

그때마다 한편으로는 좋고,

또 한 편으로는 제 나이가 있는데 은근히 무시당하는 것 같아

섭섭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제 나이를 그대로 알아봅니다.

머리에 염색을 하지 않는다면 도리어 10년을 위로 볼 것 같습니다.

거울 앞에 서서 제 모습을 보아도

올해 들어서 바짝- 얼굴이 망가진(?) 듯 합니다.

탄력을 잃었습니다.

머리 숫자도 줄어들고 이마가 반들반들 해지면서 넓어집니다.

이것이 인생임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그래도 우리 권사님들은 제가 젊어서 좋답니다.

저에게 청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청춘예찬(靑春禮讚)을 외치면서 살 생각입니다.

2.

사도 베드로는 아내들에게 주는 교훈을 하면서

우리의 외모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벧전 3:3-4)

베드로서가 쓰여질 초대교회 당시에도

외모를 꾸미는 일들이 꽤 많았나 봅니다.

이에 대해서 베드로 사도는
“숨은 사람(the hidden person)”을 꾸미라고 가르쳐줍니다.

외모를 꾸미는 것은 겉 사람을 장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겉 사람은 급격하게 아름다움을 잃어갑니다.

반면에 숨은 사람을 꾸미는 것은

겉 사람과 상관없이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값진 것(precious in sight of God)”입니다.

숨은 사람을 꾸미는 비결도 가르쳐줍니다.

첫째로, “온유함”입니다.

온유함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라우스”는

“넉넉함” “부드러움”과 더불어 “겸손함”이라는 뜻도 갖고 있습니다.

둘째로, “안정된 심령(quiet spirit)”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이

매우 평온하고 안정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온유함이나 평온함 모두

삶의 깊이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을 모신 그리스도인들의 온전한 모습입니다.

온유하고 평온한 마음을 갖고 사는 것이

영원히 변치 않는 아름다움(imperishable beauty)이랍니다.

내적인 아름다움이기에

얼핏 봐서 드러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귀면 사귈수록

그윽한 인간미와 신앙의 향기가 드러나는 아름다움입니다.

3.

사실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서

얼마든지 겉모습을 바꿀 수 있습니다.

10년 젊어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고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들의 “숨은 사람”입니다.

동시에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점점 아름다워지는 것이 있습니다.

“온유함”과 “평온함”으로 가꾸어지는 “숨은 사람”입니다.

사순절의 막바지를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 무엇보다 예수님의 고난과 희생을 묵상하면서

우리의 내면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남은 사순절 기간 동안

“숨은 사람”을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가꾸기 원합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 서머나 식구들은

겉모습도 아름다우십니다.

젊은 청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연세 드신 성도님들도 모두 10년은 젊어 보이십니다.

그런데 오늘아침 저는

서머나 성도님들을 위해서 이렇게 기도하렵니다.:

“하나님,

우리 서머나 성도님들은

내면이 아름다우신 그리스도인들이 되게 하옵소서”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값진 것임을 말씀을 통해서 다시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샬롬

하목사 올림

(2010년 3월 18일 이-메일 목회서신)

나를 들으시는 하나님

좋은 아침입니다.

1.

미국 경제가 좋아지는 것 같은데

우리들의 삶은 여전히 고달프고 힘이 듭니다.

한간에서는 더블딥(다시 한번 경제위기가 찾아 올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예측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예측은 아주 크게 빗나갈수록 박수칠 일입니다.

경제가 얼른 회복되어서

서머나 식구들의 살림살이는 물론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필 날이

하루속히 찾아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제가 직장생활을 할 때

한국에 막- 노래방이 생겼습니다.

그때 저의 18번은 해바라기의 “사랑으로”였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그러나 솔잎 하나 떨어지면 눈물 따라 흐르고
우리 타는 가슴 가슴마다 햇살은 다시 떠오르네

요즘도

마음이 답답할 때는 바닷가에 차를 세우고

태평양을 바라보면서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라고 노래를 부릅니다.

비록 찬송가나 복음성가가 아니어도 마음이 찡–해 집니다.

힘이 들거나 반대로 생활이 안이해 질 때

즐겨 읽는 시(詩)도 있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봄길’이라는 시랍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다시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시인의 생각과 상관없이

독자의 입장에서 시를 읽어 내려가면

마지막 연에 이르러서

우리의 길 되신 사랑의 예수님이 마음 속에 그려지기도 합니다.

봄 길을 걷는 인생!

길이 끝난 곳에 길이 되고

사랑이 끝난 곳에 사랑으로 남아있는 인생!

한번뿐인 인생길을 가면서

우리들 마음 속에 그려볼 만한 인생 아닐까요?

신앙과 목회의 여정을 가면서

“봄 길”을 걸어가고 싶은 소망을 마음에 늘 품어봅니다.

2.

어제는 수요예배에서

“미가서” 공부를 모두 마쳤습니다.

1장부터 7장까지 함께 통독하는 시간도 가졌지요.

미가서 7장은

하나님의 구원메시지입니다.

백성들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 그리고 찬양으로 미가서가 끝이 납니다.

그 가운데 미가서 7장 7절은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는 듯할 때,

“강물이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이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길도 끝난 것처럼 생각될 때,

아니 어려움 없이 인생이 잘 펼쳐질 때도,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면 언제나 마음에 품고 그대로 고백해야 할 말씀입니다.: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But as for me, I will look to the Lord)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 I will wait for the God of my salvation)

나의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 (My God will hear me)

요즘 출판된 개역개정이나 표준새번역은

마지막 구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도다”(개역개정)

“내 하나님께서 내 간구를 들으신다” (표준새번역)

그런데 히브리어 본문은

개역성경의 번역이나 영어번역과 똑같습니다.

나의 하나님께서 나를 들으시리로다!!!

(My God will hear me)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는 물론이고

우리의 몸짓, 신음, 감사, 찬양, 마음 등등 우리의 삶 전체/존재 전체를

통째로 들어주신다는 말씀으로 들려옵니다. 할렐루야!

봄이 찾아 왔습니다.

우리 모두 미가 선지자의 고백을 우리의 고백으로 삼고

하나님께서 주신 인생길을 힘차게

그리고 정정당당하게 걸어갑시다.

하나님,

우리 서머나 식구들의 기도와

그 삶과 모든 것을 주께서 들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0년 3월 11일 이-메일 목회서신)

사순절을 지내면서…

좋은 아침입니다.

1.

사순절(lent)이 시작되고

보름이 지났습니다.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로 시작된 사순절은

여섯 번의 주일을 제외한

부활절이 오기 전 40일 동안의 기간을 가리킵니다.

사순절은 아주 일찍부터 초대교회에서 지켜졌습니다.

초대 교회의 사순절은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으려는 성도들이

부활절 아침에 받게 될 세례 예식을 준비하는 기간이었습니다.

그때는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기 위해서

지금보다 훨씬 엄격한 절차를 밟아야 했습니다.

신앙을 갖는 것은 그 동안의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new life)으로 들어가는 미래를 향한 힘찬 발걸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는 것은 생명의 위협도 불사해야 하는

비장한 결단이었기에 40일 동안 기도하면서 준비했습니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은 태어나면서 영아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기에

사순절 동안이 세례 교육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사순절은 기존의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신앙과 삶을 다시금 새롭게 하는(renewal) 절기로 바뀌게 됩니다.

2.

사순절 기간 동안에는

“기도” “금식” “선행”을 실천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해당됩니다.

40일은 1년 365일의 10분의 1이 조금 넘는 기간입니다.

사순절을 경건하게 지내는 것은

한 해의 삶 가운데 십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삶의 십일조”이기도 합니다.

초대교회의 사순절 신앙을 본받아서

예수님을 처음 믿던 때를 기억하고

첫사랑의 설렘과 뜨거움 속으로 들어가기 원합니다.

또한 사순절을 보내면서

서머나 식구들 각자

하나님 앞에서 경건의 훈련 덕목을 정하고

그것을 그대로 실천하면서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가시고

신앙이 새롭게 되는 경험을 하시길 바랍니다.

사순절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신앙 훈련의 기회요

예수님의 삶을 묵상하면서

그 은혜 속으로 깊이 잠기는 시간임을 꼭 기억합시다.

하나님,

2010년의 사순절을 보내면서

우리 교회와 서머나 식구들의 삶이 정결케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뜨겁게 체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0.3.4 이-메일 목회서신)

챔피언의 눈물

좋은 아침입니다.

1.

이번 주 내내 감기로 고생입니다.

이번 감기는

콧물, 아주 심한 두통, 근육통 등을 동반한 것 같습니다.

수요일부터 감기의 최저점이 지나고

지금은 남겨진 감기를 앓고 있는 중입니다.

감사하지요!

감기와 같은 질병은 물론 모든 일에

“조금이라도 나아지다” “회복되다” “개선되다”라는

사인이 있다면 그것은 감사할 일입니다.

속도와 시간의 차이는 있어도

결국 건강을 되찾고

인생길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개선되는 조짐이 없이 자꾸만 아래로 가라앉는 것이 큰 일입니다.

건강의 문제라면 얼른 의사를 찾아야 합니다.

인생의 문제라면 얼른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방향전환을 해야 합니다.

2.

어젯밤에 우리 가족은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장면을

인터넷으로 지켜보았습니다.

김선수가 경기하는 4분이 왜 그렇게 길게 느껴지는지요?

동작 하나 하나를 할 때마다 가슴을 졸였습니다.

한국의 해설자는 “가슴이 터질 것 같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미국TV 해설자도

경기 도중에 말을 잇지 못하다가

자기가 본 최고의 연기였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한 동작도 실수 하지 않고

무결점으로 연기를 끝낸 김연아선수!

그녀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는 듯 했습니다.

경기 결과가 발표되기 전인데도

김선수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동안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연습을 했는지

이제 갓 스무 살인 그녀가 느낀 부담감이 얼마나 컸는지를 가늠케 해주는

결과와 상관없는 눈물이었습니다.

금메달이 확정된 것도 아니고

점수가 얼마나 나올지도 모르는 순간에

김연아 선수와 온 국민은 함께 운 것입니다.

그녀의 울음은 최선을 다한 사람이

결과에 상관없이 흘리는

감격과 감사와 회한의 눈물임에 틀림없었습니다.

김선수는 상상할 수 없는 점수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시상대에서 다시 한번 눈물을 흘렸지요.

3.

우리 같은 촌부들은

챔피언의 눈물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들의 인생이 사람들의 이목을 받을 만큼

그렇게 근사하지도, 화려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김연아 선수가 연기를 모두 끝내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면서

우리들의 삶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들도 하루 삶을 끝내고

아니면 주어진 학업이나 과업을 끝내고

“눈물을 흘릴 만큼”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김연아 선수의 눈물의 의미를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있는지…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관객도 없는 인생을 살고 있지만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감사와 감격과 회한의 눈물을 흘린 적이 있는지…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 김연아 선수의 눈물을 통해서

우리 앞에 펼쳐진 인생의 경주를 어떻게 해 나가야 할 지

그 마지막에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할 지를 배울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편 126:5-6)

하나님

오늘 하루도 눈물로, 울면서

인생길을 시작하는 서머나 식구들이 있다면

그들의 눈물이

결국에는 “기쁨의 눈물”로 변화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0.2.26일 이-메일 목회서신)

리콜하는 인생

좋은 아침입니다.

1.

미국에 살면서 요즘처럼

“리콜(recall)”이라는

말을 많이 들은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도요타 자동차가 대규모로 리콜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거의 전 차종이 리콜을 당한 것 같습니다.

엊그제는 혼다도 리콜을 한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가속페달에서 발견된 작은 결함이지만

그것이 커다란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에

도요타는 물론 온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도요타 자동차를 타시는 한 권사님께서 저에게 물어보십니다.

“목사님, 그럼 새 차로 바꿔주는 거야!”

사실 권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제품들은

결함이 있거나 소비자가 만족하지 않으면

새로운 것으로 바꿔줍니다.

미국은 “리턴(return)”제도가 매우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자동차는 새 차로 바꿔주지 않습니다.

이번 경우가 아니라도

새 차를 사서 곧바로 고장이 나더라도

자동차는 새차로 바꿔주지 않고 무상으로 수리해 줍니다.

덩치가 커서 그런 것 같습니다.

2.

새로운 자동차로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

결함이 있는 자동차를 불러들여서 고쳐주는

리콜이라는 제도를 보면서,

우리들 인생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실 우리들은 결함 덩어리입니다.

때로는 아주 위험스러운 행동도 천연덕스럽게 합니다.

우리들은 원래부터 고장이 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완벽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분수를 모르고 교만해져서

그만 치명적인 고장을 일으켰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다시금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거듭 태어난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잘못된 행동을 반복적으로 행합니다.

교만해서 그렇고, 죄를 즐겨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네 인생도

새것으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인생에서

“리턴”은 없고, 단지 “리콜”만 있을 뿐입니다.

새해를 맞아서

두 달도 채 살지 않았는데

우리네 인생길 여기저기서 벌써 고장이 감지됩니다.

뭔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잘못된 것들을 얼른 하나님께 가져가서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고침을 받는 것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래야 남은 한 해를,

아니 남은 인생을 힘차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의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고쳐주시고 다시 세워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날이 오면

내가 무너진 다윗의 초막을 일으키고

그 터진 울타리를 고치면서

그 허물어진 것들을 일으켜 세워서

그 집을 옛날과 같이 다시 지어 놓겠다. (호 9:11)

이처럼 우리 하나님은 보수하시는 분입니다.

고쳐주시고 치료하시고 회복해 주시는 분입니다.

일으켜 세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 인생을 하나님 앞으로 자진리콜해서

점검 받고, 고침 받기 원합니다.

하나님,

우리의 인생길은 결함투성이입니다.

매일같이 순간마다

우리의 삶을 주님께 가져가서 고침 받게 하옵소서.

고쳐주시고, 일으켜주시고, 다시 세워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서머나 식구들과 교회 위에 임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파이팅…

하목사 올림

(2010년 2월 11일 이-메일 목회서신)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도 이-메일 서신을 보내지 못했는데

이번 주도 어제 저녁에 너무 피곤하여 잠자리에 들었다가

아침에 일찍 깨워 주셔서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감사-

엊그제 출애굽기 14장을 묵상했습니다.

모세가 홍해를 건너는 장면입니다.

뒤에서는 이집트 군사가 쫓아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군사들이 아니라

모세의 말을 듣고 얼떨결에 이집트를 일반 백성들입니다.

그 숫자가 무려 장정만 60만입니다.

훗날 광야 40년을 지내면서

시도 때도 없이

모세와 하나님께 불평하던 사람들이지요.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뒤에는 이집트의 정예부대가 말을 타고 쫓아옵니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향해서

“잘 살고 있던 우리를 왜 데리고 나와서 죽이려 하느냐?”

– 이구동성으로 야단법석을 떱니다.

모세는 백성들 앞에 나가서 말합니다.:

“두려워 마십시오.

당신들은 가만히 서서

주님께서 오늘 당신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지켜 보기만 하십시오”(출 14:13)

모세라고 두렵지 않았을까요?

그도 두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 모세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여라

너는 지팡이를 들고 바다 위로 너의 팔을 내밀어

바다가 갈라지게 하여라.

그러면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한 가운데로

마른 땅을 밟으며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출 14:16)

모세는 하나님 말씀대로 지팡이가 든 팔을

홍해를 향하여 쭉- 내밀었습니다.

그때 홍해가 갈라지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전하게 홍해를 건넜습니다.

이집트 병사들이 홍해를 건널 때는

다시 홍해가 닫혀서

물에 빠져 죽는 일이 생겼습니다.

2.

새해 심방을 하고

월초에 비즈니스 심방을 하면서

불경기가 계속됨을 실감합니다.

아침에 인터넷 뉴스를 보니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부도가 날 만큼

경제 사정이 어렵답니다.

2년여 계속 우리를 괴롭힌 경제불황이

여전히 뒤에서 우리를 쫓아오는 듯 합니다.

그렇다고

앞에 펼쳐진 2010년도 아주 “맑음”은 아닙니다.

앞에서 넘실대는 홍해만큼이나 우리를 위협합니다.

이때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무엇으로 살아야 할까요?

누구를 의지하면서 살아야 할까요?

어디에서 살길을 찾아야 할까요?

믿음은 불확실을 앞에 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우리의 팔을 쭉- 뻗는 것입니다.

믿음은 아무리 상황이 힘겨워도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나가는 용기입니다.

믿음은 사람들의 말에 휩싸이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불안한 마음을 넘어서

살아계신 하나님께 인생을 맡기는 것입니다.

모세가 홍해를 향하여 지팡이를 쭉- 뻗었듯이

우리들도 2010년 남은 날들을 향해서

손을 쭉- 뻗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앞으로 나가기 원합니다.

하나님

오늘 하루도 우리 서머나 식구들

삶의 현장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을 만날 것입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붙잡고

팔을 쭉- 뻗고

인생의 홍해 길을 마른 땅같이 건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0년 2월 4일 이-메일 목회서신)

새해 새 마음 (5) : 감사와 기쁨

새해를 맞아서 각 가정마다 심방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가정을 자주 방문할 수는 없습니다. 늘 바쁜 일로 쫓기는 이민생활가운데 목사를 가정으로 초대해서 예배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목사가 적어도 새해에는 교우들의 가정을 방문해서 예배하고 축복해야 한다고 믿기에 매년 새해심방을 하고 있습니다.

서머나 식구들은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목사가 심방 오는 것을 반기십니다. 아니 더 자주 오기를 기대하시는 분들도 꽤 많이 계시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스럽기도 합니다. 이처럼 목사를 편하게 여기시고 찾아가는 것을 언제든지 환영해주시니 그것 또한 저의 감사제목입니다.

올해는 새해 심방을 하면서 송구영신 예배 때 주신 말씀을 본문으로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예전에는 꼭 암송해야 할 말씀이나 시편 말씀 가운데서 제가 준비했었는데, 올해 새해 말씀 카드는 한국에 주문을 했고 미리 간추릴 시간이 없어서 은근히 어떤 말씀이 있을지 염려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정마다 주신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느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가정과 개인에게 잘 맞는 말씀을 주셨는지 저도 우리 성도님들도 함께 무릎을 치면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불경기가 계속되니 아무래도 가정의 경제를 위한 기도가 제일 먼저 나옵니다. 전도사님과 권사님들의 경우 영육간에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70이 넘으신 권사님들은 더욱 건강하셔서 우리 교회가 부흥하고 기도의 제목이 이루어지는 것을 꼭 보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자녀들을 위한 기도도 빠질 수 없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가장 기쁘고 감사할 때가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제가 영력이 특출해서 갑자기 병이 낫고 돈이 잘 벌리고 믿음이 쑥쑥 크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성도님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합니다. 기도 가운데 저와 성도님들은 물론 온 교회가 하나됨을 체험합니다. 함께 눈을 감고 간절히 기도하는 그 순간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그곳이 천국입니다.

가정을 방문하면 주인 몰래 여기저기를 살핍니다. 어떤 변화가 있는지 목사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새로 들여온 가구가 있는지 좋은 옷이 걸려있는지에 눈이 가는 것이 아닙니다. 혹시 제가 기도해 드릴 무엇이 있는지 집안을 살피고, 사진틀을 들여다보고, 무엇보다 성도님의 마음을 살핍니다. 가정마다 새록새록 기도제목이 생겨납니다. 그 제목을 놓고 한 해 동안 기도해 드리는 것이 저의 특권이자 하나님과 교회가 저에게 주신 숙제입니다. 이 모든 일이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그리고 몸이 피곤하고 일이 밀려도 심방을 하고 난 뒤에 임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한 식구요 사랑의 띠로 엮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임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올 한해 하나님께서 서머나 식구들을 눈동자처럼 지켜보시고, 어디에서 무엇을 하던지 주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우리 모두를 안위하시길 기도합니다. -河-

새해 새 마음 (4) : 부지런함

미국을 세운 선조들 가운데 한 명인 벤자민 플랭클린은 그의 자서전에서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벤자민 플랭클린은 하루 시간표를 세워놓고 한 순간도 낭비하지 않고 생활했습니다. 근면과 검소함 그리고 남을 위한 봉사가 플랭클린이 물려준 정신적 유산이기도 합니다. 플랭클린은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이 인생을 구성하는 요소라고 했습니다. 건물을 짓기 위해서 벽돌을 쌓을 때, 중간 중간 벽돌이 없다면 건물이 견고하게 세워지지 못하는 것처럼 시간을 낭비한 인생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고 했습니다. 결국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하나님께서 공평하게 주시는 하루 24시간을 알차게 활용했는지 그렇지 못하고 허송했는지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20-30대 젊은이들에게 하루 24시간은 그의 인생의 주춧돌을 놓는 매우 귀한 순간입니다. 앞으로 많은 시간이 있다고 게으름을 피운다면 게으름이 습관이 되고 그것이 성품에 스며들어서 게으름에 중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40대 이후 중년의 인생을 사는 분들에게 하루 24시간은 미래를 위한 투자입니다.

40대가 되면서 건강을 챙기라는 충고를 많이 들었습니다. 건강을 미리 챙겨놓으면 노년에 그만큼 고생하지 않는다는 조언이었습니다. 벤자민 플랭클린도 건강의 중요성을 두고“건강은 자신에 대한 의무이며 또한 사회에 대한 의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40대 이후 중년의 인생을 살면서 건강과 더불어 꼭 신경 쓰고 붙잡아야 할 덕목이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생활태도입니다. 행여나 일찍이 많은 것을 이루었다면, 교만한 마음이 들어와서 그동안 이룬 것을 낭비하는 습관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생각보다 인생의 결실이 적다면 미리 포기하고 적당히 중년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바로 시작할 때라는 말처럼 중년의 인생은 여전히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음을 기억하고, 지나치게 멀리 바라보기보다 주어진 하루의 삶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 알고 하루 24시간을 잡아야 합니다.

60대 이후의 인생을 사시는 어르신들이 서머나 교회에 많이 계십니다. 예전 같으면 60대는 덤으로 사는 인생이었습니다. 요즘에 60은 청춘이십니다. 70대 이후의 삶도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마음은 물론 몸도 건강하십니다. 게다가 인생을 사시면서 터득하신 지혜와 경륜까지 갖추고 계시기에 60대 이후의 삶은 “늙을 노(老)”자를 쓰는 노년(老年)이 아니라,‘일할 노(勞)“자를 쓰시는 노년(勞年)입니다. 그렇다고 60대 이후에 무리를 하시거나 욕심을 부리시는 것을 금물입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시기보다 하시던 일을 차근차근 정리하시면서 인생의 맛을 음미하실 때입니다.

하지만 60대 이후에 특별히 욕심을 내면서 추구하셔야 할 삶의 영역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동안 바쁜 인생길에 소홀히 했던 신앙에 남은 에너지와 마음을 쏟아 붓는 것입니다. 60대 이후의 신앙의 목표는 내면의 성숙입니다. 세상을 보는 안목과 사람들을 이해하는 마음을 넓고 깊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되 집착이나 상대방에 대한 섭섭함이 아니라, 현재의 모습에 만족하고 감사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과 삶을 닮기 위해서 애쓰시는 것이지요. 예수님을 닮는 노년의 삶은 청춘보다 아름다고 힘찰 것입니다.

2010년의 첫 번째 달이 지나갑니다. 순간순간“아버지 하나님”을 부르시면서 부지런히 삽시다. 부지런함에는 절대로 후회가 틈타지 않습니다.-河-

구원에서 소망까지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은 한국의 장마철을 연상시킬 만큼

폭우에 가까운 비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겨울 가뭄으로

캘리포니아에 물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올 해는 정말 많은 비를 주십니다.

새해 들어서

현장에서 느끼시는 경제가

생각보다 훨씬 안 좋은 것 같다는 서머나 식구들의 염려가

이번 비와 더불어 말끔히 씻겨졌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새해 첫 달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은혜의 단비가 소낙비처럼 내리기를 기도합니다.

2.

시편 62편을 갖고

“새해 새 마음”이라는 주제로 연속해서 설교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시라는 표제어가 붙은 시편 62편은

세상살이에 지치고

사람에게 실망해서

온 마음과 삶이 만신창이가 된 시편기자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잠잠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는 고백과 결단입니다.

지난 설교 시간에도 잠깐 말씀 드렸듯이
(첨부한 설교를 잘 들으시면 중간에 나옵니다)

우리는 시편 62편 속에서 “다윗의 변화”가 감지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봄으로 그의 기도를 시작합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1절)

하나님의 구원을 발견한 다윗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신앙을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2절)

그 순간 다윗을 괴롭히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3-4절)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와 같은 위기의 인생을 살아갈 때

자신을 향하여 박격포를 쏘아대는 사람들!

자신이 높은 위치에 올라갔을 때

거짓말과 저주로 자신을 떨어뜨리려 모함하는 사람들!

하지만 다윗은 다시 한번

영혼으로 (온 존재로) 고요하게 하나님만 바라보기를 스스로에게 촉구합니다.

그때 다윗의 마음에 소망이 찾아옵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 (5절)

1절의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구원은 말 그대로 과거의 청산입니다.

5절에서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소망”을 발견했습니다.

소망은 미래를 향한 출발점입니다.

다윗은

구원에서 소망으로 이어지는

그의 신앙을 다음과 같이 담대하게 고백합니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6절)

2절과 똑 같은 고백이지만

마지막에 “크게”라는 말이 6절에는 빠졌습니다.

2절에서는 흔들리지만 크게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어 표현 그대로 하면 “많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서 소망을 발견한 다윗은

6절에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라고

“크게”라는 말을 빼버린 채 자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이 고백 속에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라는 뉘앙스가 들어 있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발견한 주님의 백성은

세상 풍파에 절대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의 삶이 구원에 뿌리를 내렸고

하늘에서 내린 소망이 그를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을 잠잠히 바라보는 가운데

– 구원에서 소망까지

– 크게 요동치 않음에서 절대로 요동치 않음까지 나아간 다윗은

자신과 백성들을 향해서 다음과 같이 담대히 선포합니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7-8절)

여기까지가 지난 세 주에 걸친 시편 62편 설교의

커다란 흐름이었습니다.

혹시라도 본문의 흐름을 놓치신 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

복습 삼아 다시 설명해 드렸답니다.

이제 다음 두 주간에는

다시 한번 다윗이 경험한 세상의 모습과 (9-10절)

다윗의 마지막 결단과 선포(11-12절)를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3.

우리는 종종 구원의 단계에서 우물쭈물 걸리면서

앞으로 나가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이것만으로도 놀라운 은혜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를

믿음으로 이겨내기 위해서는

구원에서 소망으로 이어지는 확신과 선포가 꼭 필요합니다.

그때 우리들 역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라고 다윗처럼 고백할 수 있습니다.

2010년 새해에 들려오는

재난과 불황의 소식들을 그대로 마음에 품고

하나님만 잠잠히 바라보기 원합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

하나님께 이르는 소망

하나님께 속했다는 확신

하나님만을 의지하겠다는 결심이

소낙비처럼 우리 영혼 속에 시원하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이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을 확실히 의지하고

그 안에서 소망의 빛 줄기를 발견하는 서머나 식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0년 1월 21일 이-메일 목회서신)

새해 새 마음 (3) : 침묵의 시간 갖기

새해 들어서 시편 62편 말씀을 갖고 연속으로 설교하고 있습니다.“다윗의 시”라는 표제어가 붙은 시편 62편을 두고 독일의 신학자 바이저는“친구에게 배신당한 사람의 슬픔”이 담겨져 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부서지고 깨진 관계에 대한 다윗의 고뇌와 하나님을 향한 말없는 외침이 시편62편에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시편 62편 속에는 세상의 모습도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3-4절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로 악하고 못되게 변했는지를 가르쳐줍니다. 현재 다윗의 상황은“넘어지는 담”이요 “흔들리는 울타리”와 같습니다. 가만히 놔두어도 비틀거리다가 그냥 넘어질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 다윗과 친구로 지냈던 사람들이 다윗을 향해서 박격포를 쏘아댑니다. 흔들리는 다윗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속셈입니다. 그러니 다윗의 마음이 얼마나 쓰리고 아팠겠습니까?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소위 세상에서 출세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높은 곳에 올라간 인생을 떨어뜨리려 애를 씁니다. 거짓말과 모함을 일삼습니다. 입에는 축복의 말을 하지만 진작 그 마음속은 시기와 질투 그리고 미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사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이토록 어지럽고, 시끄럽고, 억울한 세상을 사는 다윗은 아주 성숙한 태도로 세상과 맞서 싸웁니다. 그렇지만 다윗의 싸움은 조용한 싸움입니다. 사람들과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씨름입니다. 시편 62편 1-2절은 후렴처럼 두 번씩 반복됩니다(5-6절):“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다윗은 지금 어그러지고 부서진 세상을 뒤로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랍니다. 하나님만을 향한 침묵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2005년 필립 그로닝이라는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위대한 침묵(into great silence)이 한국에서 소리 소문 없이 5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으고 있답니다. 이 영화는 무려 162분 동안 대사가 없는 침묵의 영화입니다. 3시간에 가깝게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침묵으로 기도하고 살아가는 모습, 수도원을 둘러싼 아름다운 알프스 산맥의 경치, 수도사들을 깨우는 종소리 만 들립니다. 해발 1300미터 알프스산맥에 위치한 카르투지오 수도원의 일상을 담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침묵은 매우 아름답고 어떻게 보면 참 화려합니다.

침묵 속에 울려 퍼지는 수도사들의 모습은 시편 62편 속에서 다윗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과 아주 흡사합니다. 새해 첫 설교에서 하루에 2-3분만이라도 침묵의 시간을 가지면서 2010년을 사실 것을 부탁드렸습니다. 우리들은 말을 참 많이 합니다. 우리들의 귓전에 무수한 말들이 들려옵니다. 세상의 시끄러운 소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올 한해 세상의 소리에 귀를 막고 하고 싶은 말을 절제하면서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는 훈련을 하기 원합니다. 그때 미세하게 들려오는 하늘의 음성을 듣고 우리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