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미담 (美談)

브라질에서 열린 2016년 하계 올림픽이 16일간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지난 주일 막을 내렸습니다. 시작하기 전부터 브라질의 불안한 치안과 공중위생, 대통령 탄핵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구설수에 올랐던 올림픽이었는데 큰 사고 없이 막을 내려서 다행입니다.

 

4년 마다 열리는 올림픽은 지구촌의 축제입니다. 각 국가와 언론들이 금,은,동 메달을 집계하고 순위를 발표하지만, 실제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순위를 매기지 않습니다. 지구촌의 평화와 우정을 도모하는 친선 대회인 셈입니다. 물론 오늘날의 올림픽은 눈에 거슬릴 정도로 상업화된 것도 사실입니다.

 

여느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이번 리우 올림픽에서도 마음을 울리는 감동적인 이야기, 미담(美談)이 쏟아졌습니다. 120년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전쟁을 피해서 조국을 떠난 열 명의 선수가 난민팀을 구성해서 참가했습니다. 올림픽의 상징인 오륜기를 가슴에 달고 입장하는 난민팀 선수들에게 전 세계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어떤 선수들은 20대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렸지만, 자신들에게 찾아온 역경을 이기고 올림픽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올림픽에 참가할 경비가 없어서 노상에서 모금하며 간신히 참가했는데 동메달을 목에 거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남한과 북한의 선수가 함께 찍은 사진이SNS를 통해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대한민국의 한 펜싱 선수는 결승전에서 끝까지 투혼을 발휘하며 다 진 경기를 뒤집고 국민들에게 금메달을 선사했습니다. 100여 년 만에 올림픽 종목이 된 골프의 금메달 역시 대한민국이 가져왔습니다. 지난 보름 동안 브라질 리우에서는 이처럼 각본 없는 드라마가 매일같이 펼쳐지면서 전 세계를 올림픽에 빠져들게 했습니다.

 

그 중에 눈에 띄는 선수가 한 명 있었습니다. 여자 마라톤에 참가한 캄보디아 선수입니다. 올해 마흔네 살의 리 나리 선수는 우승을 차지한 케냐 선수보다 1시간 이상 늦은 3시간 20분을 달려서 맨 마지막에 결승점을 통과했습니다. 마흔네 살의 나이로 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했다는 것이 눈에 띄었는데, 이 선수의 인생 여정은 더욱 특별했습니다.

 

나리 선수는 어릴 적 크메르루즈 군에 의해서 수백만이 학살당한 “킬링필드”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고아가 된 어린 소녀는 아홉 살에 국제 적십자사에 의해서 프랑스로 입양되었습니다. 스물여섯에 조국 캄보디아로 돌아온 나리 선수는 에이즈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생물학 박사가 되었습니다. 10년 전 서른네 살의 나이로 에이즈 퇴치를 위한 자선 마라톤에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되어서 불혹도 훨씬 넘은 나이에 국가 대표가 되었고 이번 올림픽에 참가하게 된 것입니다.

 

나리 선수는 157명이 참가한 이번 마라톤에서133등을 했습니다. 중간에 포기한 선수들을 제외하면 맨 마지막으로 결승점을 통과한 것입니다. 텔레비전을 보니 경찰들과 경기 진행 요원들이 나리 선수를 쫓아가면서 도로에 설치해 놓은 보호벽을 철거하고 교통통제를 해제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조국 캄보디아 국기를 들고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결승점을 통과했습니다. 그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관중들은 나리 선수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왠지 우리 식 이름과 비슷해서 더욱 친근해 보이는 마흔네 살의 마라토너 “나리” 선수를 보면서 부모를 잃고 낯선 나라에 입양되어서 성인이 되기까지 그녀가 겪었을 외로움과 살아남은 끈기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나리 선수는 3시간 이상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동안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새기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디뎠을 것입니다. 기록이나 입상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올림픽에서 조국의 이름을 가슴에 달고 뛰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을 것입니다.

 

나리 선수를 통해서 우리가 걷는 인생길도 생각해 봅니다. 나리 선수에게 독특한 과거와 그녀만의 이야기가 있듯이, 우리도 자신만의 사연을 가슴에 품고 주어진 인생길을 걷고 때로는 뜁니다. 속에 담고 있던 이야기들을 되뇌면서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고 또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갑니다. 올림픽 경주가 아니니 우리가 뛰는 모습을 구경하는 관중도 없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기록에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더욱 자유롭습니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주어진 인생길을 끝까지 달려가면 됩니다. 마지막 결승점에서 두 팔 벌려 우리를 맞아 주실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2016년 8월 25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