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기독교 국가라고 말합니다. 작년 갤럽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74%가 자신의 종교를 기독교라고 밝힌 것을 보면 맞는 말입니다. 물론 1970년대의 90% 이상에 비하면 낮은 비율이지만 여전히 다른 종교에 비해서 기독교인이 주류입니다. 미국에서 경계하는 무슬림은 미국 전체 인구의 1%도 안 됩니다. 날씨가 좋고 즐길 것이 많아서 주일이 되면 교회에 가지 않고 이곳 저곳으로 놀러 간다는 캘리포니아도 주일 예배출석률이 30%에 가깝습니다.
물론 세대별로 자세히 조사하면, 청년층의 기독교 인구 비율이나 교회 출석률은 급격히 떨어질 것입니다. 다른 종교의 비율은 여전히 낮아도 종교가 없는 젊은이들이 급격히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미국은 기독교가 주류 종교임이 틀림없습니다. 자신의 종교가 기독교라고 말하고, 기독교 용어를 쓰고, 기독교인으로 행동해도 이상하게 볼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살펴보는 베드로전서의 배경인 소아시아의 기독교인들은 정반대 상황 속에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모인 회당에는 모세 율법을 믿는 유대인들이 주류였습니다. 황제를 숭배하고 신전을 출입하는 다른 종교의 비율이 기독교보다 압도적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기독교인으로 개종하는 것은 그들의 종교는 물론 삶의 터전이 무너질 수 있는 모험이었습니다.
그래도 소아시아의 기독교인들은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을 수 있었지만, 부활의 주님을 믿었기에 순교를 기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베드로의 편지를 읽은 성도들이 이런 신앙에 뿌리를 내렸고, 그들의 후손들이 선조들의 신앙을 그대로 이어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베드로전서에는 “고난”이라는 주제가 겹쳐서 나옵니다. 의를 위하여(예수님을 믿는 신앙 때문에) 고난을 받는 것이 축복이라고 알려줍니다 (3:14).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씀도 배웠습니다(3:17). 이처럼 당시에는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말 그대로 고난의 길에 접어든 것입니다. 그런데도 기독교로 개종하고 신앙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소아시아의 흩어진 나그네들 이야말로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발견하고 그것을 확실히 믿었음이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기독교인이 예수님을 믿기 전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을 버리고 예수님을 닮기 원하십니다. 앞서가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닦아 놓으셨기에 우리도 그 길을 넉넉히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남은 인생길을 걷기 원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