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새벽기도회에서는
마가복음 후반부를 읽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예루살렘에서의 일주일 사역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예언대로
누구도 탄 적이 없는 나귀 새끼를 타고
왕과 메시아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사람들도 종려나무를 흔들며 “호산나(이제 구원하소서)”를 외쳤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을 내려다보면서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실 만큼
예수님의 마음은 편치 않으셨습니다.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고, 제자들에게 마지막에 될 일을 알려주시고
자신을 죽이려는 예루살렘 지도자들을 지혜롭게 대처하시고,
마지막 유월절 만찬에서 성만찬을 제정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게 될 것과
베드로가 그 밤에 세 번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것도 일러주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하면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밤에 잡히셔서 다음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2.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숨가쁜 일주일을 보내시면서
자신의 3년 공생애를 마무리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매우 차분하셨습니다.
특히 오늘 읽은 마가복음 12장 속의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이 삼일 앞둔 분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평소와 같은 일상을 살고 계심을 발견합니다.
그러니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코앞에 닥쳤는데
차분하게 자신의 십자가 길을 준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저는 예수님의 부르심(소명, Calling)에서 찾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사셨습니다.
자신의 처지가 어떠하든지 그 길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면
차분하게 그 길을 가셨습니다.
물론 겟세마네 기도처럼 십자가 죽음 앞에서 고뇌하셨지만,
결국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복종하셨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3.
우리의 삶이 때로는
폭풍 한가운데 떠 있는 조각배처럼 요동칩니다.
어려움이 닥치거나, 자신에게 손해되는 상황이 펼쳐지면
속이 부글부글 끓고 평정심을 잃곤 합니다.
요즘 살펴보는 빌립보서 말씀대로 하면 여전히 “나 중심”이라는 표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셨습니다.
가정으로, 삶의 현장으로,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입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일상을 살아가길 원합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오늘 하루도 흔들리지 않는 확신,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평안을 누리기 원합니다.
매일의 일상이 하나님의 부르심임을 믿고
그 길을 걷기 원합니다.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2:13)
for it is God who works in you, both to will and to work for his good pleasure. (Phil 2:13)
하나님 아버지,
우리 삶의 환경이 어떠하든지
흔들리지 않는 일상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목사 드림
(2017. 7. 19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