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입니다.
1.
이번 주일부터 함께 나눌
설교 본문은 로마서 3장입니다.
세상 사람들이나, 하나님을 알고 있던 유대인들이나
철학과 도덕을 앞세운 헬라인들도
하나님을 등지고 자기 길을 가는 죄인임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죄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것보다
“하나님을 거역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물론, 하나님을 등지고 자기 마음대로 살다 보면
파생적으로 도덕적인 죄들을 짓게 마련입니다.
로마서는 이렇게 죄(거역)의 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하면서 시작합니다.
2.
죄, 하나님을 거역한 인간의 문제는
수요예배에서 살펴보는 창세기 2-3장 말씀과 긴밀히 연결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를 만드시고
에덴동산을 경작하고 (히브리어 “아바드”가 쓰였고, 경작하다, 일하다, 섬기다 특히 예배하다라는 의미가 있음)
지키며 (“샤마르”라는 히브리어에는 듣다, 지키다, 순종하다는 의미)
각종 생물에 이름을 짓는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과업(그때는 일이 곧 예배)을 맡기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이브가 선과 악을 분별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으면서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예배하지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도,
하나님을 거역하는 데 자유를 사용하면서
세상에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가 들어왔습니다.
죄가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라면
“악”은 조금 더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죄를 야기시킨 창세기의 “뱀(사단)”이 대표적입니다.
이처럼 죄와 악의 문제는
창세기 3장 이후로 시작된 근본적이고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그때부터 일이
예배가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한 노동으로 변질되기도 했습니다.
3.
C.S 루이스는 “고통의 문제(The Problem of Pain)”라는 책에서
악과 인간의 고통을 다루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은 쾌락 속에서 우리에게 속삭이시고, 양심 속에서 말씀하시며
고통 속에서 소리치십니다.
고통을 하나님의 메가폰이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개인적으로 죄를 짓고 고통스러워 하거나
악한 세상이 고통을 안겨줄 때가 있는데,
그 순간에 소리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루이스의 역설입니다.
로마서 3장 말씀을 함께 살펴보면서
우리 자신을 깊이 성찰하고,
악(죄)의 본성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결국에는 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필요한지,
은혜가 임할 때 일이 노동이 아니라 예배가 될 수 있을지
그 가능성과 확실함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롬 3:9)
What then? Are we Jews any better off? No, not at all.
For we have already charged that all, both Jews and Greeks, are under sin (Rom 3:9)
하나님 아버지,
합력해서 선을 이루실 주님을 바라보고
고통 속에서 소리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 11.8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