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킴이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수요예배에서는 창세기를 읽고 있는데

어제는 창세기 4장의 가인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생명의 기운을 갖고 태어난 가인(“생명”)이

허무하게도 동생 아벨(“하벨/허무함”)을 죽였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져서 에덴에서 쫓겨났다면 (창 3장)

가인이 아벨을 죽이므로

사람 사이 (특히, 가족)의 관계를 깼고 유리방황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인류가 하나님의 창조 의도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아우를 지켜줘야 할 가인이 동생을 죽이고

동생이 어디에 있느냐는 하나님의 물음에

천연덕스럽게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이브를 쫓아내시며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표(mark)를 주셔서 사람들이 그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자신을 거역한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로마서에서 배우고 있듯이, 이 사랑이 결국 우리에게도 임했지요!

 

가인이 이렇게 동생 아벨을 죽이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동생의 제물은 받으시고

자신의 제물을 받지 않으신 것을 놓고

안색이 변할 정도로 화를 내면서 시작했습니다.

시기와 질투, 하나님을 향한 원망, 자존심, 분노 등등이 작동한 것입니다.

 

가인의 불편한 심기를 아신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셔서

죄가 문지방에 웅크리고 있고 너를 원하고 있으니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4:7)고 부탁하고 경고하셨건만

훗날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가 그랬듯이

가인 역시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들로 나가서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2.

하나님 앞에서 가인이 한 질문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에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래, 너는 아우를 지켜 주어야 했어”라고 대답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키는 자(keeper)”로 사람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에덴을 지키는 자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할 자였습니다.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자고 유혹했을 때 이브를 지켜줘야 했습니다.

형 가인 역시 동생 아벨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런데 허무하게도 동생 아벨의 생명을 빼앗은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은 “지키는 자”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청지기(steward)”라고 부릅니다.

 

매 주일 한마음과 한 목소리로 사도신경을 통해서

우리 각 인생은 물론 세상의 주인이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피조물인 우리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인생을 살고

가족과 공동체는 물론 이웃을 지키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까지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이제 올 한 해도 한 달 남았습니다.

그동안 우리 모두 열심히 살았습니다.

작은 일까지 충성하는 청지기로 열한 달을 살았습니다.

 

이제 남은 한 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들을

의롭고 선하게 관리하는 청지기로 살기 원합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라고 반문하지 말고

아우를 지키는 자로 살기 원합니다.

 

각자의 삶도 아름답게 관리하고

가족과 공동체도 아름답게 세우고

우리가 있는 곳에서 세상까지 지키고 세우는 화평케 하는 자로 살기 원합니다.

 

행여나 지킬 것을 소홀히 했거나

쓸데없는 자존심과 시기와 질투로 죄를 다스리지 못한 채

넘어지고 무너진 영역이 있다면 정신 바짝 차리고 다시 복구하면서

올 한 해 깔끔하게 마무리합시다.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창 4:15)

And the LORD put a mark on Cain, lest any who found him should attack him.(Gen 5:18)

 

하나님 아버지,

서로 지켜주고 세워주는

참빛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 11.29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