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국민학교 출신입니다. 1996년 3월부터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뀌었습니다. 국민학교는 ‘천황의 국민’이라는 뜻의 일제 잔재여서 바로잡았답니다. 제가 국민학교를 다녔지만, 이왕이면 초등학교로 정정해서 부르겠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부모님께서는 우등상보다 더 중요한 것이 개근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등상이야 공부 조금 잘하면 탈 수 있지만, 개근상은 건강과 성실함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초등학교 6년 동안 개근상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일 년에 3-4일은 감기와 편도선염 등으로 학교를 빠졌습니다. 5학년 때는 수학여행후에 류마티즘성 관절염이 찾아와서 반년 가까이 아예 학교를 쉬었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 내내 개근상 근처에도 못 갔습니다. 대신 중학교와 고등학교 6년은 개근했습니다. 부모님께서 특별히 신경을 써 주셨고 저도 커가면서 몸이 건강해진 덕분입니다. 사실 사고뭉치들 빼고 중고등학교는 대개 개근합니다. 코흘리개 꼬마가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입학해서 초등학교 6년을 내리 개근하는 것이 훨씬 대단하지요!
우리 교회에는 팔순이 넘었거나 가까우신 권사님들이 꽤 계십니다. 연세가 드시면서 몸이 예전 같지 않으신데, 주일마다 꼬박꼬박 개근하십니다. 출타하시거나 특별한 일이 있으면 미리 알려주십니다. 교회 일에 관여하거나 나서지 않으시고 뒤에서 젊은이들을 응원하실 뿐입니다. 새로 오시는 분들이 보면, 언제나 같은 자리를 지키시는 조용한 권사님들이십니다. 그렇게 수십 년 동안 주일예배에 개근하신 권사님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이왕 시작했으니 한 가지만 더 교회를 자랑하겠습니다. 8월이 되면 광복절 기념 북가주 배구 대회가 산호세에서 열립니다. 우리 교회는 전교인 야외 예배와 겹친 작년을 빼고 3년 연속 참가했습니다. 서너 번 주일 오후에 모여서 연습을 했는데, 젊은 집사님들의 열의가 대단했고 우승은 못 해도 부끄럽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대회에 참가해보니 모든 팀이 관록도 있고 우리보다 훨씬 잘했습니다. 한 세트만 이기고 네 경기를 전패하고 왔습니다. 그래도 여선 교회가 준비한 근사한 점심을 먹고 교회 피크닉처럼 즐겼습니다.
이듬해 참가한 대회에서도 같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실력이 조금 늘어서 비등한 경기를 조금 더 했을 뿐입니다. 웬만한 교회는 두 번 참가해서 한 경기도 이기지 못하면 포기한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 젊은 집사님들은 올해 세 번째 다시 도전했습니다. 교회 근처 배구장에 가서 그곳을 찾는 고등학생들과 함께 대여섯 주간 연습했습니다. 물론 선수로 참가하겠다는 분들도 바쁘다 보니 참석률이 들쑥날쑥했습니다. 오죽했으면 경기를 치르면서 손발이 맞아간다고 했을까요! 비교적 열심히 준비했건만, 올해 역시 한 경기도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듀스까지 가면서 우열을 가리기 힘든 경기가 조금 있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마음껏 대회를 즐겼습니다. 여선교회가 준비한 메밀국수와 김밥을 먹는 것만도 행복했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내년에도 참가할 것 같습니다. 키가 큰 청년들도 교회에 많아져서 평소에 조금만 연습하면 한두 경기는 승리할 것 같지만, 승패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렇게 젊은 집사님들이 배구 대회에 참가하는 것이 자랑스럽고 대견합니다. 승리보다 꾸준히 참가하는 개근이 중요함을 몸소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이래 개근상에 목말라하는 저에게 커다란 위로요 도전입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두 번 열심히 잘해서 상을 타는 것보다 개근하듯이 꾸준히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더 귀합니다. 변덕스러운 신앙, 대회 우승처럼 큰 것만 추구하는 신앙, 남에게 보이고 인정받으려고 과시하는 신앙이 아니라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도록 작은 일에 충성하는 신앙이 최고입니다. 올해도 이제 넉 달 남았습니다. 때로는 하루하루 사는 것이 기적일 만큼 주어진 삶이 무겁습니다.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손에 든 열매가 초라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제 남은 한 해,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개근상을 향해서 열심히 달려갑시다.(2019년 8월 22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