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십자가 (2)

화목하게 된 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 가운데 으뜸을 뽑으라면 하나님과의 화목 또는 화해(reconciliation)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세 가지 경우로 설명합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세 가지 표현이 점점 심각해 지더니 나중에는 “원수”라는 강력한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심각했습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하나 뿐인 아들을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내려 보내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같은 예수님이셨는데 자기를 통째로 비어서 종의 형체, 즉 죄의 종이 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에게 종이 되었고 성경에서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했으니 죽음에 이를 수 밖에 없는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 우리와 똑같은 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지불해야 할 죄의 값을 예수님께서 대신 지불하셨습니다. 그 결과 죄로 인해서 막혀 있던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이것을 “화목” 또는 “화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에 참여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나를) 위해서 죽으셨음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이 객관적인 사건이라면, 믿음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참여하는 주체적인 결단입니다.

 

화목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탈라게>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서 변화를 도모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과의 화목은 우리가 행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행하신 사역입니다. 따라서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십자가는 가로목과 세로목이 만나는 지점을 꼭 붙들어 매거나 그곳에 못을 쳐서 고정시킵니다. 십자가의 한 중심에 하나됨, 화목이 위치한 것입니다. 길이가 길고 땅에 고정시키는 세로목이 하나님과의 관계라면, 길이가 짧고 세로목에 매달려있는 가로목은 이웃과의 관계를 뜻할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위에서 그리고 십자가 한 중심에서 하나님 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화목도 이룰 수 있습니다.

 

요즘처럼 힘들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으로 부숴진 우리 마음도 십자가를 통해서 회복하고 다시금 힘을 얻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외롭고 지루한 시간도 홀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보면서 견딥니다. 우리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힘들기에 모든 사람이 힘을 합쳐서 이 위기를 이길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화목케 하고 결국 생명으로 회복하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믿습니다. 할렐루야!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