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아포라

좋은 아침입니다.

 

1.

가능하면 쉽게 설교하려고 하는데,

지난 몇 주간 헬라어가 자주 등장하면서

설교가 딱딱해지는 것은 아닌지 조금 걱정됩니다.

 

달리 설명하기가 어려워

고대어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함께 공부하면서 조금 ‘유식해지는’ 면도 있습니다. ㅎㅎ

 

지난주에 소개한 헬라어 <아디아포라(adiaphora)>는

사실 꽤 중요한 용어입니다.

“어느 쪽도 결정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것(things indifferent)”,

즉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고 판단할 수 없는

가치중립적인 것들을 가리킵니다.

 

저는 설교에서

사과와 오렌지를 예로 들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은 사과이지만,

제가 좋아한다고 사과가 최고라고 주장하면 안 됩니다.

세상에는 오렌지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입니다.

 

로마서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런 <아디아포라>의 문제가

교회 안에서 심각한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적인 이유로

시장에서 고기를 사 먹는 것조차 꺼리고 죄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크신 하나님을 믿기에

세상의 거짓 신에 얽매일 필요가 없고,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라면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두 가지 입장을 놓고

어느 한쪽이 무조건 옳고 다른 쪽이 그르다고

판단하지 말라고 지혜롭게 교훈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물론이고

세상의 역사에서도 <아디아포라>의 문제를 가지고

서로 논쟁하고 갈등하고

심지어 싸우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2.

우리 역시 <아디아포라>,

즉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필요가 없는

일상의 자잘한 문제를 두고 의견이 갈립니다.

 

치약을 밑에서부터 짜는 것과

중간에서 짜는 것을 두고 대판 말다툼을 벌였다는

신혼부부의 일화도 생각납니다.

 

돌아보면,

커다란 문제에는 쉽게 동의하면서도

오히려 사소하고 자잘한 것에 의견이 갈렸고,

그것 때문에 관계에 금이 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우리의 속이 그리 넓지 않아서

자잘한 것에 신경이 쓰이고, 그것이 자꾸 눈에 들어오고,

결국 참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디아포라>야말로 우리의 성숙함을 측정하는

아주 실제적인 척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소한 것에 대해서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며 양보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성숙한 인격의 소유자일 것입니다.

 

<아디아포라>가 만들어 놓은 함정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사람에게도 칭찬받는

멋진 하루를 만들어 봅시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편 133:1)

 

하나님,

사소한 것에 얽매이지 않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6. 8. 27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