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과의 성경공부 모임에서 사랑의 하나님과 공의(심판)의 하나님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어디까지 사랑으로 포용해주고, 어떤 지점에서는 공의의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배제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안에 사랑과 공의라는 속성이 함께 있지만, 하나님의 속마음은 사랑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분명히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이십니다. 증오와 죽음이 판치는 어두운 세상에 하나뿐인 아들을 빛으로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온 세상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확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고 과정입니다.
한 청년은 요즘 세상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과연 역사 속에서 일하고 계시는지 회의가 든다고 했습니다. 선한 사람들이 고난받고, 아무 연고 없이 목숨을 잃고, 악한 사람들이 득세하는 세상을 살면서 자연스레 생긴 신학적 질문입니다. 구약성경에 의로우면서도 고난받은 욥이 있지만, 욥기를 수없이 읽어도 뒤죽박죽 세상의 모습에 대해서 흡족한 답을 얻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선하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고난받는 사람들과 손을 잡고 연대하면서 함께 울 뿐입니다. “언제까지이니까?”라고 그들과 함께 탄식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세상을 이끌어갈 청년들에게는 세상의 그릇된 모습을 바로잡고, 의와 기쁨과 평화의 하나님 나라가 세상에 임하는데 참여하는 믿음과 용기가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지난주에는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미국 역사상 최고로 많은 희생자를 낸 총기 참사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슬람과 관련된 테러인 줄 알았는데, 동성애까지 관련된 증오범죄라는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장소가 동성애자들이 가는 클럽이었기 때문입니다. 정부나 수사당국에서는 사건의 원인과 경위를 철저하게 규명해야 할 것입니다. 하원에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끝에 총기규제에 대한 법안을 만든다니 이번에는 꼭 통과되길 바랍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50명의 희생자가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종교나 인종, 성적 지향을 떠나서 모든 이들이 하나님께 지음 받은 피조물입니다. 그러니 누군가를 미워해서 테러를 저지르고,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동료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범죄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들이 누구이든지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유가족들과 함께 울며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 와중에 화들짝 놀랄 소식이 새크라멘토에 있는 한 미국교회에서 들려왔습니다. 그 교회를 담임하는 젊은 목사가 올랜도 참사를 놓고 슬퍼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설교한 것입니다. 동성애자들이 희생당했으니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것이고, 총기를 휘두른 사람이 하나님의 일에 참여한 것이며,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은 것이 유감이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을 올바로 읽고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는 목사라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막말입니다. 자신의 형상을 따라 모든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지금부터 정확히 1년 전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의 한 교회에서 있었던 총기 참사가 생각납니다. 성경공부를 하던 흑인 교회에 백인 청년이 들어와서 한 시간 동안 함께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목사님들과 성도들이 따뜻하게 환대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성경공부 말미 기도시간에 이 청년은 흑인들 때문에 세상이 망가졌으니 돌아가라고 외치면서 총격을 가해서 아홉 분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희생자 가족들은 총격을 가한 청년을 사랑으로 용서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합니다. 증오와 그에 따른 범죄를 막는 방법이 사랑과 용서 밖에 없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용기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세상은 희생자 가족들이 표한 사랑에 감동받고 그들의 신앙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에 대한 청년의 질문, 세상에서 악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생기는 신앙의 회의, 잊을만하면 일어나는 안타까운 총기 참사를 보면서 이 모든 것을 푸는 열쇠는 찰스턴 교회의 성도들이 몸소 보여준 하나님의 사랑밖에 없음을 깨닫습니다. 사랑이 모든 것을 녹입니다. 용서와 사랑만이 답입니다. 온 세상의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통로가 되길 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긍휼히 여겨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2016년 6월 23일 SF 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