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한국이 세계 최강 독일을 꺾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물론 한국이 독일을 이기고 16강에 오르길 기원했지만, 실제로 한국이 독일을 꺾을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이 독일을 2:0으로 이겼습니다. 축구팬들로서는 오랜만에 최고의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한국 덕분에 16강에 올라간 멕시코 사람들까지 “꼬레아”를 외치면서 고마워했습니다.
독일전이 열리기 전날까지 여기저기서 국가대표 감독과 선수들을 비난하는 소리가 넘쳤습니다. 자칫 독일전에서 큰 점수차로 지거나 졸전을 벌인다면 축구팀 전체가 죄인 취급을 받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독일전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여론이 급격히 변했습니다. 비난은 사라지고 칭찬 일색입니다. 극과 극을 오가는 국민 여론이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살펴보는 빌립보서에도 성격은 다르지만 유사한 상황이 등장합니다. 바울이 빌립보에 복음을 전하면서, 빌립보 교회가 세워졌으니 빌립보 교회에서 바울은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비록 바울이 빌립보를 방문하지 않았어도 바울의 가르침과 바울이 전하는 소식이 빌립보 교회를 세우는 토대가 되었을 것입니다. 바울의 교훈과 말이 하나님 말씀인 셈입니다.
그런데 에바브로디도가 빌립보 교회의 헌금을 갖고 로마를 방문했고, 바울은 그로부터 빌립보 교회의 상황을 들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교회가 커지면서 바울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바울의 권위는 약해졌고 각자의 신앙전통을 빌립보 교회에 도입하려는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그러자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때부터 바울을 대적하는 사람들은 의기양양하게 교회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빌립보 뿐만 아니라 로마에도 바울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때 사도바울은 “도리어”라는 태도로 대응합니다. 자신이 감옥에 갇히고 빌립보 교회는 물론 여기저기에 바울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생겼지만, 그 일로 인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놓고 바울은 “도리어” 기뻐한 것입니다. 선한 뜻으로 하든지 투기와 분쟁으로 하든지 복음만 전파된다면 기뻐했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예수 그리스도만이 존귀하게 되길 바랐습니다. 바울의 중심에 예수님이 계셨기에 자신을 비난하고 대적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좌우되지 않은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은 찻잔 속 물처럼 요동칩니다. 그러니 세상의 인기와 평판에 얽매이면 한정없이 불안합니다. 예수님께 마음을 두고 예수님으로 중심을 잡고 살기 원합니다. 우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길 구하면서 예수님을 우리 삶의 토대로 삼기 원합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