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를 살펴보면서, 온전한 신앙은 삶의 축이 자신에서 하나님으로 바뀌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기준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지난주에 바울이 소개한 그의 동역자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가 대표적입니다. 바울의 후계자였던 디모데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돌보느라 예수님의 일을 등한시할 때, 자기 일보다 예수님의 사역에 온전히 헌신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죽을병에 걸렸으면서도 자신보다 교회를 염려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삶의 축이 자신에서 그리스도로 완전히 옮겨졌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두 번에 걸쳐서 살펴볼 사도 바울 역시 예수님을 믿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된 인물입니다.
반면에 여전히 옛날 것을 손에 들고 쩔쩔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빌립보 교회에 들어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시킨 무리들입니다. 이들이 교회를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자신들이 믿는 종교 체계에 구속시키려했습니다.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지만, 할례를 비롯한 유대교 교리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도리어 그것을 빌립보 교회에서 전파했던 유대 계열의 기독교인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믿었어도 육체의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을 자신들보다 열등하게 취급하면서 교회를 힘들게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들을 “조심하라”고 강한 어조로 경고합니다. 심지어 당시 천한 것으로 취급하던 “개”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사도바울이 그릇된 복음을 전하는 무리들에 대해서 감정이 격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행악하는 자들,” 할례를 실행하면서 “몸을 상해하는 자들”이라고 이들의 실체를 알리면서 거칠게 몰아 부칩니다. 옛것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자신들이 갖고 있던 전통에 꽁꽁 묶어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새롭게 변화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으로 봉사합니다. 자기의 욕심에 이끌리지 않고 성령의 가르침과 인도하심을 따라서 봉사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육체를 자랑하지 않고 예수님을 자랑합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나니 자신이 사라지고 예수님이 전면에 섰습니다. 자신을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참 좋아서 반복해서 자랑하고 싶어집니다. 몸의 할례를 강조하는 유대인들과 달리 육체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이제 더이상 육체의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렌즈를 통해서 세상을 보고 자신의 인생길을 걷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기 전에 갖고 있던 것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과거에 집착하면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신앙은 현재 진행형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푯대를 향해서 묵묵히 걸어가는 여정입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