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룟 유다

교회의 젊은 기혼 그룹과 성경공부를 하면서 다루고 싶은 주제를 신청받았더니 가룟 유다가 나왔습니다. 사실 가룟 유다에 관해서 성경공부를 하는 것은 흔치 않기에 내심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가룟 유다에 관한 공부를 함께 해보니 생각할 것도 많고 예상치 않은 은혜도 함께 나눌 수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우리 모두 알다시피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명으로 예수님을 팔아버린 배신의 아이콘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갈릴리 출신이었는데 가룟 유다는 그의 이름대로 구약시대 (남)유다의 수도였던 예루살렘 출신입니다. “가룟(Iscariot)”이라는 명칭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도 엇갈립니다. 당시에 “시카리”라고 불리던 로마 요원 암살 단체의 일원일 가능성부터 그의 출신지를 가리키는 지명이라는 의견, 히브리어 어원으로 유추하면 “사기꾼”이라는 별칭이 후대에 붙여졌을 가능성까지 다양합니다.

 

가룟 유다는 신약성경 복음서에 모두 등장하고,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에서도 그의 죽음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복음서마다 가룟 유다를 다루는 관점에 차이가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예루살렘 지도자들에게 넘겨주고 배신하는 과정은 물론 그의 최후까지 기록했습니다. 복음서에서 유다가 스스로 목을 매서 죽었다는 기록은 마태복음이 유일합니다.

 

마가복음은 가룟 유다보다 사랑하는 제자에게 마저 버림받고 외롭게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께 초점을 맞춥니다. 누가복음은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한 것은 그에게 사단이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알려줍니다. 마태복음이 가룟 유다의 마지막 죽음(배신의 결과)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누가복음은 배신의 원인을 강조한 것입니다.

 

가룟 유다에 대한 기록으로 가장 관심을 끄는 성경은 요한복음입니다. 요한복음의 기록은 복잡미묘합니다. 처음부터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 먹을 인물로 규정하기 때문에 자칫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기로 예정된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돈궤를 맡고 있었고, 종종 돈을 훔쳐 간 것을 놓고 그를 도둑이라고 부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유월절 만찬에서도 가룟 유다가 세 번 등장하는데 가장 관심을 끄는 구절은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떡을 주셨고 “떡 조각을 받은 후에 사단이 그에게 들어갔다”(요13:27)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을 대충 읽으면 예수님께서 떡을 주셨기에 가룟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간 것으로 들립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지요.

 

저는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떡 한 조각을 건네주신 것과 사단이 들어갔다는 말씀 사이에 간격을 두고 읽을 것을 권합니다. 유다가 자신을 팔 것을 미리 알고 계셨던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떡 한 조각을 건네 주신 것은 그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끝까지 자기 사람을 챙기고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애절한 마음을 발견합니다.

 

떡 한 조각과 함께 공은 유다에게 넘어갔습니다. 예수님의 떡을 받아먹으면서 예수님을 팔기로 계획한 것을 회개하면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날려버립니다. 그 순간, 사단이 그에게 들어간 것입니다. 한 주석가는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도 예수님의 최후통첩이 들어있다고 보았습니다. 네가 할 일은 회개이니 얼른 회개하라는 예수님의 마지막 촉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조금도 망설임없이 그 자리를 뛰쳐나갔습니다. 그때는 아주 깜깜한 밤이었습니다. 빛 되신 예수님을 뒤로하고 칠흑 같은 죽음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노예 한 명 가격에 불과한 은 삼십에 3년간 스승으로 모시던 예수님을 팔아버린 가룟 유다를 보면서 그의 마음을 움직인 사단의 위력을 실감합니다. 돈을 관리하던 그에게 사단은 돈으로 찾아가서 그를 무너뜨렸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판 것을 뒤늦게나마 뉘우쳤으니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찾아가서 그 품에 안겨 한없이 울고 회개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룟 유다를 통해서 실감나게 배웁니다. 마지막이 아름다워야 복된 인생입니다.(2018년 3월 26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