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안에 서라

어릴 때는 위인전을 많이 읽었습니다. 인류 역사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위인전을 읽으면서 그분들처럼 값진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누군가에게 본보기가 되는 삶을 사는 것이 쉽지 않음을 점점 느낍니다. 우리 인생이 그리 단순하지 않고, 처음과 끝을 변함없이 살기도 힘들고, 무엇보다 남들에게 본(本)이 된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서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고, 세상을 맑고 신선하게 유지하는 소금이 되길 부탁하셨습니다(마5:13-15). 또한 우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까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5:16). 구약의 이스라엘 역시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 선택하신 것을 보면(사42:6),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것은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본보기가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구원과 신앙에 만족하지 말고 세상 속에서 예수님의 향기를 드러내고 우리를 보고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메신저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이며 목적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점점 개인주의화 됩니다. 남들의 간섭을 싫어하고 자기 혼자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싶어 합니다. 함께 어울려 사는 공동체라는 말 자체에 부담을 느낍니다. 그러면서도 막상 혼자 있을 때는 한없이 외롭습니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이것저것, 여기저기를 배회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 예수님을 믿는 것이 가장 고상한 일이고 기쁨이라는 사실을 우리의 삶과 신앙의 확신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빌3:17) 로 자신 있게 말합니다. 바울의 자신감이 존경스럽기도 하고, 그 정도의 신앙이 부럽습니다. 1장에서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빌립보 교회를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바울이 이번에는 눈물을 흘리면서 교회가 시험을 받고, 교회 안에서 예수님의 원수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고 안타까워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장사꾼들의 소굴로 변한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시던 예수님이 생각나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와 성도들이 주님 안에서 굳게 서기를 원했습니다. 세상 흐름에 휩싸이지 않고, 교회를 흔드는 무리에게 현혹되지 않고 하늘나라 시민권을 가진 성도로 손색없이 살아가길 원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 마지막에 빌립보 교회를 향해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이라고 고백합니다. 이처럼 바울은 교회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우리 안에 바울의 고백이 있고, 교회 안에서 서로에게는 물론 세상에서도 본보기가 되는 공동체로 자라 가기 원합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