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19년 전 인디애나에서 교회를 개척하며 함께 교회를 세웠던 옛 교인들을 만나기 위해 시카고에 다녀왔습니다. 시카고 근교에 정착한 두 분 집사님의 가정이 호스트가 되었고, 시카고, 인디애나, 위스콘신, 오하이오에 정착한 동문들의 가정이 참석했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이번 모임을 주선한 집사님 가정과 우리 부부가 참석했습니다.
지난 목요일, 아내와 저는 설레는 마음으로 시카고로 향했습니다. 가는 길이 쉽지 않았습니다. 공항에 무슨 사고가 있었는지 경찰견이 모든 승객의 짐과 몸을 수색하더니 비행기도 지연되었습니다. 시카고에 도착해서도 아침에 내린 폭우로 비행장이 만원이 되어서 비행기 안에서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어렵게 도착했지만, 고등학교 동창의 라이드를 받아서 모임 장소에 가니 모두 반갑게 맞이합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그때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가장 커다란 차이는 아이들이 훌쩍 큰 것입니다. 주일 학생이던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키가 6피트가 넘는 남자아이가 저를 안아줍니다.
함께 나눌 성경 공부도 준비해 갔는데, 그동안의 근황을 나누고 업데이트하느라 말씀 전할 틈이 없습니다. 말씀도 중요하지만, 서로의 삶을 나누는 것이 더 다급하고 흥미진진했습니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근사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틈을 내서 말씀을 전하지만 자연스레 각자의 삶과 연결되어 또다시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저녁 늦게 모임을 마치고 다음날을 기약했습니다.
시차를 고려해서 느지막하게 두 번째 날을 시작했습니다. 인디애나와 위스콘신에서 두 가정이 새롭게 참가했습니다. 새로운 가정이 올 때마다 모임을 접고 그들의 근황을 듣고 마주 앉아 그동안의 삶을 주고받습니다. 요즘은 카톡과 SNS가 있지만, 얼굴을 맞대고 같은 장소에서 모임을 하는 것에 견줄 수 없습니다. 웃음꽃이 핍니다. 아이들이 크니 모임을 갖기가 한결 편해졌습니다.
대부분의 재상봉(reunion)모임이 그렇듯이 우리들도 그때 그 시절을 회고했습니다. 함께 교회를 세웠던 일들, 만났던 분들, 함께 나눴던 비전과 잊지 못할 사건들을 추억하면서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갔습니다. 인디애나 교회는 유학생들이 주축이었습니다. 대부분 형편이 풍족하지 않고 앞날이 불확실한 채 학업에 전념하던 때였습니다. 어려울 때 만났던 신앙의 동지들이기에 더욱 각별했습니다.
지금은 사는 곳이나 하는 일이 다르지만,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니 다시 한 마음이 됩니다. 물론, 얼굴이나 모습에 조금씩 연륜이 느껴집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연장자인 저의 외모가 가장 변했습니다. 그래도 “목사님과 사모님,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으세요”라고 말해주니 기분이 좋습니다. 40대 초반으로 돌아간 듯했습니다.
마지막 날 밤에는 함께 찬양하고, 말씀을 나누고, 어떻게 참았는지 꼭꼭 싸매어 두었던 신앙과 인생의 질문을 풀어놓습니다. 쉽게 꺼내 놓기 힘든 얘기도 나눕니다. 그래서 옛 친구가 좋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기도 제목을 나누고 그 시절 주일예배 마지막에 불렀던 “사랑해요, 축복해요. 당신의 마음에 우리의 사랑을 드려요”라는 찬양을 손을 잡고 불렀습니다. 모두의 눈가가 촉촉이 젖었습니다.
재상봉 모임의 의미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시간이 아무리 오래 흘렀어도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서 첫사랑을 회복하고 흐트러진 삶을 다시 조율(reset)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과거만 생각하면 안 되기에 그때 배웠던 신앙을 “씨앗” 삼아서 현재와 미래의 삶을 설계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근사하게 살아가길 부탁했습니다.
2박3일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만남의 기쁨을 만끽하고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 시작된 만남이었기에 우리의 재상봉 모임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쳤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소망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만남의 기쁨 역시 하나님의 은혜임을 다시금 실감합니다. 먼 훗날, 현재 제가 섬기는 교회의 교우들과도 재상봉 모임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날을 위해서 더욱더 진실하게 목회해야겠습니다. (2019년 7월 25일 SF 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