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킴이

좋은 아침입니다.

 

1.
제가 샌프란에 온 지 16년이 지났습니다.
16년이면 짧은 기간이 아닌데,
샌프란은 도심의 높은 빌딩 외에 변한 것이 거의 없습니다.

 

예를 들면, 도심에서 바닷가를 연결하는
Geary Blvd를 운전하다 보면16년전과 같습니다.
저보다 훨씬 오래 사신 권사님들도 옛날 그대로라고 하실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샌프란은 100여 년이 공존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싹- 갈아엎고 현대식으로 다시 짓는 것보다
과거와 현재, 첨단 건축과 기술이 공존하는 방식이 마음에 듭니다.

 

2.
지난주일 예배를 마치고 교인들을 배웅하고 있는데
60대 정도로 보이는 미국 아주머니가 교회 계단으로 올라오셨습니다.
종종 예배를 위해서 오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예배가 끝났다고 친절히 말씀드렸더니 들어가도 되냐고 물으십니다.

 

갑자기 밖에 계신 남편을 부릅니다.
설레발을 치신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매우 감격해 하시면서
“40년 전에 저희가 이 교회에서 결혼식을 했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교인이 깜짝 놀랐습니다.

 

아주 활발하신 아주머니셨습니다.
교회 안으로 들어와서 그대로 인 것을 보시고
약간 흥분한 듯 환호성을 치셨습니다.

 

강단 앞에서 사진을 찍어 드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가겠냐고 물었더니
결혼식 후에 축하연을 지하에서 했답니다.

 

3.
우리 교회는 1972년 그리스 사도교회(Greek Apostolic Church)
(그리스 정교회가 주류이고 사도교회는 소수 개신교회)
목사님과 교인들이 교회 부지를 구입해서 건축했습니다.

 

건축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목사님이 하나님께 가시고
교세도 축소되어서 여러 교회가 렌트를 얻어 사용했습니다.

 

주일에 오셨던 분에 의하면 1980년대 초반,
성령 충만한 은사 중심의 교회가 우리 건물을 사용한 것 같습니다.
130여 명이 임시 의자를 갖고 앉을 정도였고
교회에 들어오면 예배실은 물론 아래 친교실까지 성령의 임재가 충만했답니다.
엄청난 능력의 교회였다고 자랑하셨습니다.
저도 처음 듣는 우리 교회 건물에 깃든 역사였습니다.

 

4.
교회 건축 후 50여 년 동안
우리 교회 모습은 거의 변한 것이 없습니다.

 

강단은 우리가 설치한 커다란 TV 두 개 외에는
스테인리스 아름다운 십자가와 하얀 벽면까지 그대로입니다.
오죽하면, 엊그제 오신 부부께서 “그대로야, 그대로야”를 외치셨을까요!

 

그렇게 우리 교회 건물은 지난 50여 년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교회와 교인들이 렌트를 얻어서 예배했으니
그 모든 다양함을 말없이 품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건물 자체가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는 지킴이였습니다.

 

우리가 처음 건축한 교회에 이어 두 번째 건물주가 되었는데
우리 건물은 우리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요?
아니 우리는 건물에 어떤 추억을 남겨놓아야 할까요?
40년 후에 우리 건물에서 누가 예배하고 있을까요?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교인(하나님께 부름 받은 성도)이라고 늘 말씀드렸는데
엊그제 주일의 만남을 통해서
건물의 귀함과 교회 건물에 깃든 영성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우리 교회 건물이 우리 모두에게 추억이 되고,
우리의 신앙은 물론
교회 건물도 소중하게 간직하는 지킴이가 되기 바랍니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시편63:2)

 

 

 

하나님,

우리 교회의 신앙이

우리 건물 속까지 스며들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8. 12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