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평

좋은 아침입니다.

 

1.

LA에 있는 한 신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습니다.

내일 마무리하고 저녁에 올라갑니다.

 

무척 더워서 샌프란 생각이 많이 나고

하루 종일 강의하다 보면 조금 지치기도 합니다.

아내가 중간 중간에 카톡으로 교회소식 알려주는 것이 무척 반갑니다.

 

오늘은 저녁에

이곳에 있는 지인들과 <서서평>이라는  한국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서서평은 독일 출생입니다.

미혼모 어머님에게 낳아서

세 살 때 어머니가 서서평을 할머니 댁에 맡겨두고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아홉 살이 되자 할머니마저 돌아가십니다.

서서평은 어머니를 찾아서 주소 하나 들고 대서양을 건넜습니다.

그리고 간호사가 됩니다.

 

태평양 건너 조선이라는 곳에는

나병(한센병,문둥병)환자, 굶주리고 병을 앓는 아이들이 많은데

병원이나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광주에 자리잡은 서서평은

당시 가장 천한 사람들의 친구가 됩니다.

제주도까지 다니면서, 여성 지도자들을 배출합니다.

 

마지막 54세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시신까지 조선사람들을 위해서 기증했습니다.

영화는 그 장면부터 시작되고 마무리됩니다.

 

서서평 선교사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남은 것은 동전 몇 개와

그나마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남은 담요

입고 있던 한복 외에 재산이 하나도 없었답니다.

 

하지만, 서서평 선교사를 통해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해 듣고 삶이 변해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 무척 많이 남아있어서

그녀의 장례식에 수천명이 모였고, 당시 동아일보도 보도할 정도였습니다.

 

또 한 가지,

그녀의 침대 위 벽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남겨 있습니다.

“No Success, But Service (성공이 아니라 섬김)”

 

그렇게 서서평 선교사는

그녀의 한글 이름처럼

“서서히/천천히, 그리고 평안하게” 우리 조선사람들과 더불어

신앙과 인생의 길을 걷고 주님께 갔습니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식이어서 담담하게 만들어졌지만

서서평의 삶을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우리도 오늘 하루

새 날을 시작합니다.

 

무엇을 위해서 살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고

천천히 그리고 평안하게 주어진 인생길을 걷기 원합니다.

 

네가 나를 부르면 내가 너에게 응답하겠고

네가 모르는 크고 놀라운 비밀을 너에게 알려주겠다 (렘 33:3, 새번역)

Call to me and I will answer you,

and will tell you great and hidden things that you have not known. (Jer 33:3))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도

참빛 식구들이 가는 길에 동행해 주셔서

진리와 생명의 길, 섬김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6.22 이-메일 목회 서신)

                   

써브웨이에서

 

20여년 전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우리 가족은 맥도날드에 가서 더블 치즈버거를 즐겨 먹었습니다. 유학생으로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니 더블 치즈버거를 시켜서 여덟 개의 치즈버거를 아이들 중심으로 네 식구가 배불리 나눠 먹었습니다. 지금도 맥도날드를 보면 그때 기억이 되살아나고 가끔 들려서 치즈버거를 시켜 먹곤 합니다.

 

샌프란시스코로 이사 온 후에는 누구나 그렇듯이 인앤아웃 햄버거에 매료되었습니다. 매장이 집 가까이 있어서 여차하면 인앤아웃 치즈버거를 시켜서 집으로 가져옵니다. 아이들에게 배운 대로 토스트와 양파를 추가로 살짝 구워 달라고 자신 있게 주문할 정도입니다.

 

인앤아웃의 반열에 들지 못해도 그 다음으로 자주 찾는 곳은 써브웨이입니다. 써브웨이는 인앤아웃과 달리 긴 샌드위치 하나만 시켜도 아내와 넉넉히 나눠 먹을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샌드위치 안에 들어갈 갖가지 내용물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채소까지 많아서 왠지 건강식처럼 느껴집니다.

 

지난 두 주 동안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에 대해서 설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은 신앙과 생활의 조화입니다. 신앙만 좋다고 거룩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거룩함을 떠올리면 위로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예배나 신앙 행위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성경에서 말하는 거룩은 아래를 향합니다. 야고보서에서 알려주듯이 어려움 가운데 있는 고아와 과부를 돕는 것이 참된 신앙이고 거룩입니다. 교회에서의 예배와 헌신을 통해서 거룩함이 시작된다면, 삶의 현장에서 거룩이 실천되고 완성됩니다. 거룩에 삶이 동반되지 않으면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처럼 위선적인 신앙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얼마 전에 먹었던 써브웨이 샌드위치가 생각났습니다. 샌드위치를 주문하려면 먼저 샌드위치를 감싸줄 빵을 선택해야 합니다. 저는 대개 윗트(wheat) 브레드를 즐겨 먹습니다. 진열대를 쭉 지나가면서 샌드위치 안에 들어갈 내용물을 고릅니다. 미식가가 아니어서 무엇을 선택해도 맛있지만, 채소 위주로 내용물을 채웁니다. 그러면 상냥한 직원이 눈인사를 하고는 밀로 만든 빵에 제가 선택한 내용물을 모두 넣고 돌돌 말아서 건네줍니다.

 

그러고 보니 내용물을 감싸주는 빵이 매우 중요합니다. 빵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재료를 선택했어도 담을 수 없고 모두 흘러내려서 바닥에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빵이 내용물을 꼭 잡아 줍니다. 샌드위치를 감싸는 빵을 신앙으로 본다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신앙은 우리의 삶을 붙잡아 주고 지탱하는 기둥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처음과 끝입니다.

 

빵 안에 들어갈 내용물도 중요합니다. 겉을 감싸는 빵만 있고 내용물이 하나도 없다면 샌드위치로서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행여나 내용물이 부실하다면, 샌드위치를 먹는 내내 아쉬움이 찾아오고 본전 생각이 날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샌드위치 안에 들어가는 내용물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샌드위치를 시킬 때, 각자의 취향에 따라서 내용물을 선택하듯이 삶의 모습 자체가 샌드위치 내용물만큼이나 다채롭고 가지각색입니다. 그것을 선택하고 채우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신앙과 더불어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이 그만큼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처럼 신앙이 세상 속에서 각자의 삶으로 알차게 채워진다면 말 그대로 신앙과 생활의 일치 즉 거룩함의 길을 걷고 있는 셈입니다.

 

또한, 주일마다 교회에 모여서 예배합니다. 공동체 예배는 다 같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각자의 삶을 하나님 말씀으로 재정비하는 시간입니다. 주유소와 같아서 영적인 기름을 가득 채우는 시간입니다. 그러고 나서 세상으로 흩어집니다. 다음 주일에 다시 모일 때까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힘차게 살아갑니다. 주일이 써브웨이 샌드위치를 잡아주는 빵이라면, 6일간의 삶은 그 안에 들어갈 내용물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은 일상 속에서 채워지고 완성됩니다. 말투와 행동이 신사적이어야 합니다. 정직해야 합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매사에 책임감을 갖고 성실하게 임해야 합니다. 우리의 선한 행실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정도가 된다면 최고의 신앙입니다. 거룩함이 신앙과 삶의 통합인 것을 써브웨이 샌드위치를 보면서 다시금 깨닫습니다.(2017년 6월 22일SF한국일보 종교칼럼)

 

 

 

 

썩지 아니할 씨

지난 시간에는 흩어진 나그네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요청되는 세 가지 덕목을 살펴보았습니다. 우선, 구별된 삶을 사는 거룩함입니다.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둘째로 경외입니다.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나그네로 있을 때 두려움으로 살아야 합니다.

 

셋째는 사랑입니다. 무엇보다 나그네로 살면서 꼭 필요한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삶이 쉽지 않습니다.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때때로 외롭습니다.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함께 걷는 신앙의 동지들이 있음은 큰 힘입니다. 세상에 어떤 것도 사랑을 이기지 못합니다.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세상 사람들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거룩함, 경외, 사랑 – 세 가지 덕목을 실천해야 할 당위성과 근거가 어디서 올까요? 첫째는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신다는 말씀이 부담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전서 1장 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헛된 행실을 없애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두 구절을 함께 읽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로부터 선한 행위를 찾으심을 알 수 있습니다. 악하고 헛된 행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주는 혜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흠이 없고 점이 없는 완벽한 은혜이기에 금과 은으로 대신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우리를 살리고 믿음과 소망을 갖게 합니다. 그 은혜로 착하고 충성된 종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와 함께 나그네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힘을 주는 말씀은 “썩지 아니할 씨”입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되지 않았습니다. 씨가 썩었다면 그 안에 생명이 없고 싹을 틔우지 못합니다. 썩지 않은 씨만이 생명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은 바로 썩지 아니할 씨, 하나님 말씀에 근거합니다. 이 말씀이 곧 우리를 살리신 복음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정결하게 되었습니다. 썩지 아니할 하나님 말씀으로 거듭 태어났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생명의 말씀으로 대하고 읽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를 살립니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를 진리로 인도합니다. 말씀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우리 안에 주의 말씀을 간직함으로 썩지 아니하고 살아 있는 주의 생명을 누리고 그 은혜로 살기 원합니다.-河-

사랑과 질서

좋은 아침입니다.

 

1.

나름 노력하지만

저와 참빛 식구들이 깊게 소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숫자가 그리 많지 않은데도 말입니다.

 

예배에 못 오신 분들께

주일 저녁 카톡으로 안부 인사와 설교를 보내드립니다.

 

친절하게 먼저 기도 제목을 나눠주시는 분들도 있고,

잠깐 만나서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표정을 살피면서 기도 제목을 알아채기도 합니다.

목회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그런 능력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헌금 봉투에 기도 제목을 써 주시는 것도

제게는 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

책상에 놓고 한 주간 열심히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기도 제목에서

“사랑과 질서”라는 말을 만났습니다.

참 좋은 표현입니다.

 

사랑에 질서가 없으면

무분별하고 보기에 안좋습니다.

남녀 간의 사랑만이 아니라

가족 그리고 성도 간의 사귐에도 질서가 필요합니다.

 

사랑은

사랑을 주도하는 사람보다

그 사랑을 받는 수혜자에 의해서 결정 나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상대방 처지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는 것이 질서일 것입니다.

 

물론

지나치게 질서만 강조하면 사랑에 힘이 빠집니다.

우리 모두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서로의 이해가 필요하고, 위로와 격려가 필요합니다.

질서를 생각하다가 자칫 사랑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사랑과 질서의 긴장,

사랑과 질서의 조화가 꼭 요청됩니다.

 

우리 참빛 공동체 안에 사랑과 질서가

아름답게 나타나길 기도하겠습니다.

 

2.

시편을 읽으면서 비슷한 말씀을 만났습니다.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추었으며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 (시편 85:10-11)

 

Steadfast love and faithfulness meet;

righteousness and peace kiss each other.

Faithfulness springs up from the ground,

and righteousness looks down from the sky. (Psalms 85:10-11)

 

이보다 멋진 말씀이 어디에 또 있을까요?

 

인애와 진리 – 진실한 사랑,

의와 화평 – 올바른 평화,

땅의 진리와 하늘의 의가 합쳐지는 순간입니다.

하늘과 땅이 의기투합했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고 세상 속에서도

이런 조화와 통합이 일어나길 기대합니다.

 

무엇보다

땅의 진리를 원하시니

오늘 하루도 진실하게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안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과 질서, 인애와 진리, 의와 화평, 그리고 땅의 진실함이

하늘의 의와 만나는 멋진 사건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6.15 이-메일 목회 서신)

나그네로 있을 때에

지난 시간에는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거룩에 대해서 너무 멀리 또는 높이 생각하지 말고 일상 속에서 거룩한 삶을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거룩은 구별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우리 인간과 구별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거룩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 백성으로 구별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거룩한 삶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거듭 태어난 이후에 가능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으로 거룩의 길을 걷습니다. 억지로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거룩함을 이뤄갑니다. 자발적으로 행하는 기쁨의 여정입니다.

 

하나님 백성답게 우리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행함이 거룩하기 원합니다. 우리 교회도 거룩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성도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로 모인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성도 간의 거룩한 교제를 나누며,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세상에 증거하는 증인이 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모든 사역은 이와 같은 교회의 존재 이유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고, 행여나 세상과 구별되지 못한 모습이 교회 안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교회가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하나님 나라 공동체로 자라 가기 원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의 후반부는 흩어진 나그네로 세상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거룩함을 위해서 단단히 준비하고 하나님처럼 거룩하라는 대전제를 삶의 표어로 삼기를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해서 짚고 넘어갑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살리심으로 우리에게 믿음과 소망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우리가 할 일은 피차 뜨겁게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흩어진 나그네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있어야 할 덕목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뜨겁게 사랑할 때, 나그네의 삶에 힘이 생기고 동지의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사랑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으로 나그네 길을 걸어갑니다.

 

그때 꼭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외모가 아니라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는 사실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조심스럽게 만들고, 하나님께 기쁨이 되기로 재차 결심하게 만듭니다. 나그네로 있으면서 두려움으로 지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믿음과 소망 그리고 사랑으로 거룩한 길을 걷기 원합니다. -河-

거룩, 일상의 과업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설교에서는 거룩에 대해서 함께 나눴습니다.

 

거룩 (sanctification, 성화, 구별) –

때로는 막연하고,

자신과 상관없는 매우 신실한 그 누군가의 몫처럼 보이고,

요즘 세상에 적용하기에는 진부한 단어처럼 생각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룩(예배와 삶의 구별)”이야말로

성경에서 알려주는 기독교의 핵심가치입니다.

 

그리스도인 개인은 물론

교회 공동체가 거룩함을 상실한다면,

(예수님 말씀처럼) 맛을 잃고 길가에 버려져서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는 소금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든

그리스도인으로 구별된 거룩함을 지니고 있어야 하고

그것이 삶을 통해서 드러나야 합니다.

 

2.

거룩함을 너무 멀게 생각하지 않고

일상의 삶 속에서 실천하기 원합니다.

 

매일 반복해서 일어나는 때로는 지루한 일상,

매일 만나는 가족과 동료들, 그리고 교회 식구들,

오고 가며 스치는 사람들과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서

거룩을 유지하고, 거룩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생각이 구별되고

행동이 구별되고

우리의 삶 자체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그리스도-인(Christ-ian)>이 되는 것이지요.

 

3

지난 설교 시간에 소개했던

로렌스 형제의 <하나님 인재 연습>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로렌스 형제가 터득한 하나님과 대화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단순히 자신의 평범한 일상사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는 맡겨진 일과를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순종의 마음으로 감당했다.

 

그는 기도 시간을 다른 시간들과

특별히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중대한 과오라고 믿었다.

경건의 시간에 드리는 우리의 기도가 우리를 그분과 연합하게 한다면,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만나는 다른 모든 활동들도 우리를 그분과 하나 되게 할 것이다.

 

그는 기도하지 않을 때도 그와 똑같은 의식 속에 살았다.

늘 하나님 곁에 가까이 머물면서 온 힘을 다하여 그분을 찬양하고 송축했다.

그 덕분에 그의 삶은 언제나 기쁨으로 충만해 있었다. (28쪽)

 

하루하루의 삶이 구별되고,

주님과 동행하고,

흩어진 나그네로 살아가지만

주님의 백성이 누리는 특별한 기쁨으로 충만하기 원합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시편68:19)

Blessed be the Lord, who daily bears us up;

God is our salvation.(Psalms 68:19)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주님 앞에서 거룩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6.8 이-메일 목회 서신)

그리스도인의 거룩

오늘은 다섯 번째 참빛 보이스가 있는 날입니다. 참빛 보이스는 우리 교회 젊은이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가고 격려하고 기도해주면서, 다같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꿋꿋하게 살기로 결단하는 시간입니다.

 

우리도 흩어진 나그네로 살아갑니다. 초대교인들처럼 손해를 보거나 박해를 당하지 않지만, 우리 역시 세상 속에서 신앙을 지키며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가 다양한 모임 속에서 서로의 삶을 나누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로 결심하고 격려하는 공동체가 되기 원합니다.

 

우리 교회는 다양한 세대가 함께 어울려 지냅니다. 어르신들은 젊은 세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주님의 교회에서 일꾼들로 자리 잡기를 격려해 주십니다. 젊은이들은 어르신들을 공경하고 섬기면서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를 세워 갑니다. 오늘 오후에 있는 참빛 보이스에도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베드로전서의 수신자였던 소아시아의 흩어진 나그네들도 세상 속에서 힘겹게 살았습니다. 베드로는 이들에게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 연거푸 자세히 알려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선택받은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았다는 확신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토대입니다.

 

우리 역시 세상에서 흩어진 나그네로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납니다. 세상 유혹도 만만치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어려움이 찾아오니 신앙에 대해서 시험에 들 수 있습니다. 가끔은 하나님께서 테스트하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어려움은 끝까지 견디고, 시험은 통과하고, 유혹은 물리쳐야 합니다. 그때 필요한 것이 검증된 확실한 믿음입니다.

 

오늘부터 살펴볼 베드로전서 첫 번째 장의 후반부는 확실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무엇보다 마음의 허리를 동여야 합니다. 전쟁과 같은 큰일을 앞둔 사람이 만반의 준비를 하는 모습입니다. 절제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날에 베풀어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라봐야 합니다. 이전의 그릇된 생활방식을 정리하고 선택받은 자로 살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이 모든 준비는 하나님 백성답게 거룩하게 살기 위함입니다. 거룩은 세상 속에서 구별된 삶입니다. 세상 것을 추구하면서 욕심을 쫓아 살았다면 이제는 마음과 행실을 돌아보면서 하나님 자녀로 사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많이 소유하고 과시하는 외적인 삶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이 예수님을 닮은 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행위가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을 사는 것이 거룩함입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