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벳멜렉

구약성경 예레미야서는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멸망하는 과정을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애타게 부르짖었지만, 이스라엘은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예고하신 심판이 임했습니다.

 

어느 민족이나 국가든지 멸망의 순간이 닥치면, 무능한 왕이 들어서고 그를 보좌해야 할 관리들은 파당을 짓고 권력 다툼을 하게 마련입니다. 예레미야 시대의 이스라엘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우유부단했습니다. 신하들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체포해서 데려왔을 때, 자기 생각을 말하지도 못한 채 예레미야를 신하들에게 내주고 말았습니다. 신하들은 예레미야를 진흙 웅덩이에 던졌습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웅덩이였습니다.

 

그때 왕궁에 에벳멜렉이라는 에티오피아 출신 내시가 있었습니다. 에벳멜렉은 “왕의 신하”라는 뜻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이주해서 왕을 섬기는 신하가 된 것 같습니다. 신하들 간에 암투가 심하니 시드기야 왕이 외국인을 고용해서 이름을 바꿔주고 시중들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에티오피아 출신입니다. 게다가 환관인 내시였습니다. 사람은 물론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두 가지 커다란 결격 사유를 갖고 있는 인물입니다.

 

왕궁에 있던 에벳멜렉은 예레미야가 웅덩이에 갇혀서 곧 죽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습니다. 왕까지 쥐고 흔드는 신하들이 꾸민 일입니다. 에벳멜렉이 용기를 내서 시드기야 왕 앞에 나갑니다. 신하들이 예레미야에게 악한 일을 한 것이고, 성안에 먹을 것이 없으니 웅덩이에 갇힌 예레미야는 곧 죽게 될 것이라고 알립니다. 보통 용기가 아닙니다. 가만히 왕의 시중만 들면 되는데, 자기와 상관도 없는 예레미야를 살리기 위해서 소위 총대를 멘 것입니다. 예레미야를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에벳멜렉을 예비해 놓으신 듯합니다.

 

에벳멜렉이 왕이 보낸 군사 삼십 명을 데리고 가서 웅덩이에 갇힌 예레미야를 구해냈습니다. 예레미야가 완전히 석방되지 못한 채 왕이 관할하는 감옥으로 이송되었지만, 그곳은 비교적 안전했습니다. 에티오피아 출신 내시 에벳멜렉의 도움이 없었으면 예레미야 선지자는 신하들이 파놓은 웅덩이에서 생을 마감했을 것입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인물인 에벳멜렉이 나선 것이 놀랍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실 때, 구레네 출신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것도 생각납니다. 예수님의 비유 속에서, 강도 만난 사람을 구해 준 사람은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경멸하던 사마리아 사람인 것도 떠오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는 의외의 인물을 통해서 일하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에벳멜렉의 구원을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해도 에벳멜렉은 하나님께서 보호하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예레미야에게 행한 의로운 행동만이 그를 살린 것은 아닙니다. 에벳멜렉이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에 그를 살려 주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에티오피아 출신 내시 에벳멜렉은 예루살렘에서 몇 안 되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대부분 사람이 예레미야를 거짓 예언자라고 조롱할 때, 예레미야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언자임을 확신하였기에 위험을 무릎 쓰고 예레미야를 웅덩이에서 구해 주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신과 성분 등 차별없이 자신을 의지하는 사람을 쓰시고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심을 봅니다.

 

우리 역시 시시때때로 돕는 손길이 필요합니다. 믿을만한 지인이 나서서 도와주길 은근히 기대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인물이 나타나서 도움을 주곤 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면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사람입니다. 인생길을 걸어가면서 꼭 필요한 순간에 에벳멜렉과 같은 은인을 만나길 기대합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에벳멜렉이 되는 것입니다. 용기를 내서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일에 참여합니다. 예레미야를 구출한 에벳멜렉처럼 우리 역시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은인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의 에벳멜렉들이 사방에서 일어나길 기대하시고 전심으로 자기를 향하는 자들에게 능력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2017년 7월 27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