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7장 (3): 골리앗 앞에서 – 주춤거림
Author: 참빛
골리앗 앞에서: 주춤거림
예레미야서 절반을 남겨둔 채, 지난 수요일부터 마가복음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마가복음은 복음서 가운데 가장 짧고, 내용이 빠르게 전개되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예수님을 깊이 느낄 수 있는 말씀입니다. 앞으로 16주 동안 계속될 마가복음 읽기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수요 예배에 오시지 못해도 목요서신과 안내석의 성경공부 핸드 아웃을 통해서 함께 마가복음을 읽으시길 부탁드립니다.
지난 주에는 우리 앞을 가로막는 두려움이라는 골리앗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안팎에 크고 작은 두려움이 매순간 밀려오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 폭풍 속에서도 예수님께 시선을 떼지않는 믿음을 갖고 골리앗과 같은 두려움을 넘어뜨릴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오늘 살펴볼 골리앗은 “주춤거림”입니다. 블레셋 장수 골리앗이 엘라 골짜기에 등장했을 때, 사울 왕을 비롯한 이스라엘 군대들은 자기 자리에 앉아서 수군거리고, 절망하고, 할 수 없다는 비관론에 사로잡혔습니다.
골리앗이 워낙 크고 강했으니 처음에 그를 보고 두려워한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골리앗이 40일 동안 아침과 저녁으로 나와서 이스라엘을 모욕하고 겁을 주었을 뿐, 실제로 이스라엘을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말로만 으름장을 놓은 것입니다. 그러는 중에 이스라엘 진영에도 은근히 안심하는 분위기가 생겼을 것입니다. 분명 골리앗이라는 엄청난 장수가 존재하고 블레셋에 지면 나라의 운명이 위험 한데도, 블레셋의 공격이 지연되면서 현실에 안주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렇게 40일이 지나면서. 아침과 저녁에 들리는 골리앗의 선전포고에 익숙해 졌습니다. 별일 없을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이 들고 병사들의 사기도 떨어졌습니다.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마음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주춤거림이 있습니다. 내일로 미루고, 해결하지 않은 채 지내는 주춤거림입니다. 당장 어려움이 닥치지 않으니 앞으로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편안한 현실에 안주하는 모습일 수 있습니다. 주춤거리지 말고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주춤거림도 반드시 무너뜨려야 할 골리앗임에 틀림없습니다. -河-
일각천금(一刻千金)
고사성어 일각천금(一刻千金)은 중국 송나라의 시인 소동파의 “춘야(春夜,봄밤)”라는 시에 등장합니다. 겨우내 꽁꽁 얼어붙었던 날씨가 풀리더니 온 세상에 꽃들이 만발했습니다. 사람들은 여유로운 봄날에 함께 모여서 거문고를 타며 한판 흥겨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밤이 되자 모두 집으로 돌아간 정자에 시인은 홀로 남아서 여유롭고 한가로운 봄밤의 정취를 노래합니다. 잠깐 지나가는 봄입니다. 봄꽃도 금방 지고, 정자에 모여서 함께 놀던 친구들도 시간이 지나면 떠날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귀한 봄날입니다. 이처럼 소동파의 시 춘야는 낮의 흥겨움과 봄밤의 고요함을 비교하면서 잠깐 지나가는 봄날을 추억하고 있습니다.
일각은 15분 정도의 짧은 시간입니다. “일각천금”은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천금과 같다는 뜻입니다. “시간은 금”이라는 서양 속담과 맥을 같이 합니다. 스쳐 지나가듯이 지나갈 한 해의 봄을 마음껏 즐기자는 권면입니다. 단 15분이라도 허비하지 말고 천금처럼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라는 교훈입니다.
아내와 함께 동네를 산책하다 보니, 아기 손 같은 새잎이 가지마다 돋아나던 봄철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낙엽이 길가에 뒹굴고 있습니다. 아직은 여전히 젊지만, 50대 중반이 되니 시간이 제법 빠르게 지나갑니다. 제 마음은 여전히 춘삼월 봄철에 있는데 벌써 9월이 다 지나고 올해도 석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습니다. 주일을 맞고 중간에 수요 예배를 마치면 한 주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그렇게 한 주 한 주 살다 보면 한 달이 금세 지나가서 달력을 또 한 장 넘깁니다. 앞으로 남은 석 달도 순식간에 지날 것 같습니다. 소동파의 “일각천금”이 생각납니다. 15분밖에 되지 않는 시간도 천금과 같으니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을 알차게 사용해야 합니다. 아니 15분의 시간을 천금의 가치로 만들어야 합니다.
신약성경에서는 두 가지 헬라어를 통해서 시간을 설명합니다. 우선, 흘러가는 시간인 크로노스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크로노스의 시간을 삽니다.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시간입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살아가는 시간입니다. 반면에 사건 중심의 시간으로 카이로스가 있습니다. 크로노스가 아침을 맞고 저녁이 되면서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과 한 달 그리고 한 해가 지나가는 식이라면, 카이로스는 각자가 의미 있게 꾸며가는 시간입니다. 단지 주어진 시간이 아닙니다.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사건들로 가득 채워진 창조적 현재입니다. 시간을 부여하신 창조주 하나님과 동행하는 은혜의 시간입니다.
아무리 무병장수를 해도 삶 속에 카이로스적인 사건이 부족하다면, 구약성경 전도서 기자가 한탄하듯이 헛되고 헛된 인생입니다. 비록 짧은 인생을 살아도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세상 속에서 의미 있는 사건이 넘쳐난다면, 카이로스의 시간대를 살아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크로노스의 흘러감이 아니라 카이로스의 의미 있는 추억과 사건들로 채워지길 원합니다.
신약성경의 시간대가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로 나누어 진다면,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때”가 중요합니다. “그 날” “주의 날” 등으로 불리는 하나님의 때는 구원과 심판이 갈리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 거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룬 주의 백성들에게는 은혜의 때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주와 함께 걷는 길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걸으면서 깨알같은 간증과 고백들이 넘쳐나는 시간입니다.
반면에, 구약의 예언자들이 경고하듯이 주님의 길에서 벗어나서 우상을 섬기고, 거짓되고 자기 잇속만 챙기며,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무시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때는 심판입니다. 그 날이 되면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임하고 하나님의 때가 재앙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갑니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을 돌이킬 수도 없습니다. 소동파의 말대로 15분이 천금과 같습니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의미로 가득 찬 카이로스와 하나님의 때를 살면서 주의 은혜와 구원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일각(一刻)에 비하면 앞으로 남은 석 달은 꽤 많은 시간입니다. 하루하루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사건들로 이어지며,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후회없이 이웃을 사랑하는 넉넉함을 소유하기 원합니다. (2017년 9월 28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용기 2
좋은 아침입니다
엊그제
자신의 이름을 딴 청소기(Dyson)로 유명한
영국의 발명가이자 사업가인 James Dyson은
2020년까지 전기차를 세상에 내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미 2015년부터 400여 명의 직원들과
배터리로 작동하는 전기차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며
앞으로 2조 달러 이상을 투자해서
깜짝 놀랄만한 전기 자동차를 발명하겠답니다.
그는 엔지니어이자 사업가에 앞서서 발명가였습니다.
쓰레기 백(bag)을 사용하는 진공청소기가 쉽게 막히고 고장 나는 것에 불편을 느끼던 중
제재소를 방문해서 나무에서 나오는 톱밥을 깨끗하게 빨아들이는
원심력 흡입기를 보고는 그 기술을 소형 청소기에 도입했습니다.
또한, 그는 디젤엔진에서 나오는 찌꺼기들을 완전 연소시키는 기술에 관심을 보였고
그것을 통해서 대기 오염을 막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가
특별한 배터리를 사용하는 전기차 시장에 뛰어든 것입니다.
혹자는 그의 진공청소기 기술이
기껏해야 헤어드라이어 정도로 확장되었는데
전기 자동차를 발명한다는 것에 회의적입니다.
하지만, 이미 앞서서 성공한 테슬라도 있고
다이슨이 갖고 있는 기술과 잠재력을 볼 때
그가 내놓을 혁신적인 전기 자동차를 내심 기대하는 분위기입니다.
우리나라 현대를 비롯한 자동차의 거장들이
너도나도 전기 자동차에 뛰어들고 있는 가운데
2020년대는 자동차 산업의 혁명이 이뤄질 것 같습니다.
2.
세상은 용기 있는 사람들로 인해서 발전해 왔습니다.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아이디어 하나 갖고 시작하는 사람들,
앞에 있는 골리앗을 향해서 질주하는 사람들,
자기 혼자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고
인류의 문제를 풀어보려는 사람들.
그런데 이들의 용기는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
올해 70세인 Dyson만 해도
1970년부터 원심력을 사용한 공기 흡입기를 연구했습니다.
한때는 미술 선생님이었던 아내가 가계를 책임졌고
그의 발명품을 받아주는 회사가 없어서 여기저기 구걸을 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길에 대한 확신과 신념을 갖고
발명가, 사업가의 길을 걸어서 청소기 업체의 거장이 되더니
전기 자동차 산업에 뛰어든 것입니다.
앞으로 Dyson의 용기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지켜보는 것만도 흥미진진합니다.
3.
골리앗을 무너뜨린 다윗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모두 골리앗을 두려워하고 있을 때,
다윗은 담대하게 골리앗을 마주했습니다.
그의 입에서만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나왔습니다.
전쟁에 나간 이스라엘 군대 가운데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고백입니다.
발상의 전환입니다. 골리앗을 대면하는 용기입니다.
다윗의 용기도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양들을 공격하는 야생동물로부터
양을 보호하던 경험에서 우러나온 용기였습니다.
다윗은 일찍이 삶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지럽습니다.
개인의 삶도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믿음에서 우러나온 용기를 갖고 세상을 살기 원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걸어온 삶과
지금 현재 갖고 있는 자산들이
앞길을 열어가는 데 꼭 사용되고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시편31:24)
Be strong, and let your heart take courage,
all you who wait for the LORD! (Psalms 31:24)
하나님 아버지,
주님 주시는 용기로 세상을 살아가고
세상을 이끄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9.28이-메일 목회 서신)
2017년 9월 4주 말씀과 찬양
사무엘상 17 (2): 골리앗 앞에서 – 두려움
골라앗 앞에서 : 두려움
다윗과 골리앗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이긴 사건입니다. 본문을 자세히 읽다 보면, 다윗의 승리 외에도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는 주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울왕은 물론 다윗의 형제들과 이스라엘 군인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배웁니다.
사무엘상 17장은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본문이지만, 본문의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다윗이 백성들로부터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받게 된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초심을 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교만하게 행동하는 사울을 버리시고, 사무엘 선지자를 시켜서 베들레헴의 목동 다윗을 왕으로 기름 부으셨습니다. 다윗이 왕이 된 것은 사무엘 선지자와 다윗의 가족만 알고 있을 뿐 사울이나 백성들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에게 이스라엘 왕은 다윗이었기에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이처럼 다윗과 골리앗에 대한 말씀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블레셋 장수 골리앗 앞에서 사울과 이스라엘의 모든 군대는 몹시 놀랐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골리앗에 맞서서 싸울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골리앗은 키가 3미터에 가깝고, 그가 입고 있는 갑옷의 무게가 57킬로그램(126파운드)입니다. 7 킬로그램(15파운드)에 이르는 칼을 손에 들고 있으니 그를 보고 겁먹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처럼 골리앗은 이스라엘의 안전과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두려움을 느낍니다.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두려움은 염려와 근심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것들을 통제하거나 해결할 수 없을 때 두려움으로 발전합니다. 그래도 마음 속에서 생기는 두려움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면서 다스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맞닥뜨린 골리앗 처럼 외부에서 밀려오는 두려움입니다. 안전을 위협하는 두려움입니다. 자신이 상대하기에 힘겨워 보입니다. 골리앗처럼 크고, 완전 무장한 채로 다가와서 위협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물리칠 수 없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나타나서 모욕하는 말을 쏟아내니 자존심이 상하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없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마주친 골리앗을 우리도 갖고 있습니다.
골리앗이 무너져야 하듯이 안팎에서 생기는 두려움도 무너져야 합니다. 우리 앞에 선 골리앗을 보고 떨며 두려워한다면 하나님을 떠난 사울 왕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움을 몰아내고 담대하길 원하십니다. 다윗처럼 골리앗과 마주하고, 그를 향해 달려나가서 무너뜨리길 원하십니다. 우리의 힘으로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두려움을 이기는 것입니다. -河-
용기
좋은 아침입니다
미국 군대에서 가장 힘들다는 해병대 보병학교에서
최초로 여성 장교가 졸업하게 되었다는 보도를 접했습니다.
2012년, 여성 장교에게 보병학교 입학을 허용한 이래
35명의 여성이 도전했지만 13주 훈련을 통과하지 못했고
이름을 밝히지 않으려는 이번 여성 장교만이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가장 힘든 장교 훈련이랍니다.
훈련소에 입소한 첫날 10%가 포기하고,
전체의 25%가 중도 탈락하는데,
여성 최초로 훈련을 마치고 일선에서 군대를 지휘하게 된다니.
이 분의 용기가 대단합니다.
세상은 물론
우리 자신이 처한 곳에서
아니 각 개인의 삶에서 어떤 일을 최초로 해내는 것은 박수받아 마땅합니다.
앞선 사람들이 실패했던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모두 힘겨워하는 일을 끝까지 참고 성취하는 것은
그 일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대단한 업적입니다.
2.
지난주부터
사무엘상 17장에 있는
<다윗과 골리앗>에 대한 말씀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블레셋 장수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 앞에 섰을 때,
그 누구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난공불락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때 아버지 심부름을 온 베들레헴 목동 다윗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모욕하는 골리앗 앞에 섭니다.
그러고 보면
다윗 역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홀로 나선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해낼 수 없음을 알면서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해서 용기를 냈습니다.
그리고 골리앗을 무너뜨렸습니다.
3.
살다 보면, 어떤 일을 위해서
용기가 필요한 때가 의외로 많습니다.
혼자서 가는 길입니다.
아무도 성공하지 않은 길일 수 있습니다.
끝까지 갈 확률이 높지 않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 길을 시작하는 믿음과 용기입니다.
그 힘들다는 해병대 보병 학교에 지원했던
36명의 여성이 그 길을 갔습니다.
그중에 최초로 졸업을 앞둔 여성이 있기에
앞으로 더 많은 여성 장교들이 희망을 품고 도전할 것입니다.
우리 앞에 크고 작은 일들이 닥칩니다.
지금 하는 일이 힘들어도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해내기 원합니다.
아무도 가 보지 않은 길이어도 “선구자” “개척자”라는 소명을 갖고 걷기 원합니다.
각자의 인생길이 힘겨워도
용기를 갖고, 주님과 더불어 끝까지 걸어가기 원합니다.
골리앗을 무너뜨린 다윗처럼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걷는 믿음의 길입니다
오늘 우리가 걷는 인생길은
누가 대신 살아줄 수 없고 앞에서 미리 가본 사람도 없이
날마다 새롭게 써나가는 개척자의 길입니다.
그 길에서 하나님의 도움과 인도하심을 경험하고,
마지막까지 걸어가는 사람에게 임하는 감사와 기쁨을 누리가 원합니다.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무엘상 17:37)
And David said, “The LORD who delivered me from the paw of the lion and from the paw of the bear will deliver me from the hand of this Philistine.” (1Samuel 17:37)
하나님 아버지,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는 참빛 식구들께
지혜와 힘과 용기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9.21이-메일 목회 서신)
2017년 9월 3주 말씀과 찬양
사무엘상 17 (1): 엘라 골짜기의 골리앗
엘라 골짜기의 골리앗
지난 넉 달 동안 소아시아에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보낸 베드로의 첫 번째 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이후에 이들의 삶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습니다. 고난도 찾아왔습니다. 그렇지만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님을 끝까지 믿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았습니다. 베드로는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더욱 바른 신앙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앞으로 두 달 정도 구약성경의 다윗과 골리앗에 대한 말씀을 나눌 예정입니다. 사무엘상 17장에 기록된 다윗과 골리앗에 대한 말씀은 매우 유명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블레셋 장수 골리앗의 이름을 알 정도입니다. 또한 베드로전서의 흩어진 나그네들이 그랬듯이 우리도 살아가면서 골리앗과 같은 커다란 장애물을 만납니다. 그런 점에서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는 곧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엘라 골짜기를 가운데 두고 당시의 강대국 블레셋과 역시 출중한 지도자 사울 왕이 이끄는 이스라엘이 진을 쳤습니다. 엘라 골짜기는 테레빈이라고 불리는 큰 나무들이 서식하는 곳이었습니다. 55피트(16 미터)까지 자라는 큰 나무들이 골짜기에 서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나무처럼 큰 블레셋 장수 골리앗이 맞은편에 진을 치고 아침마다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했습니다.
전쟁에 나가기만 하면 승승장구하던 사울 왕도 골리앗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왕이 용기를 내지 못하니 함께 온 군사들도 저절로 겁을 먹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속수무책입니다. 감히 골리앗을 대항해서 싸울 군인들이 없었습니다. 사울은 손을 놓고 40일을 아침마다 골리앗의 모욕적인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때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을 만나러 온 베들레헴 목동 다윗이 물 맷돌 다섯 개로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넘어뜨립니다.
하지만 다윗이 골리앗과 맞서 싸우기 까기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형들은 물론 사울까지 나서서 말렸지만,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골리앗을 무너뜨리고 나라를 구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는 말씀을 차근차근 살펴보면서, 우리 안에 임하는 골리앗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것을 넘어뜨리는 비결을 찾게 될 것입니다. 골리앗은 무너져야 합니다. 골리앗을 보고 겁에 질려서 꼼짝하지 못하고 있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이기에 그를 물리치는 것은 영적인 승리입니다. 그런데 골리앗은 강력합니다. 보고 있어도 겁을 먹게 될 정도입니다. 골리앗은 같은 시간에 나타나서 괴롭힐 정도로 집요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그의 도전이기에 분명히 넘어뜨려야 합니다. 골리앗이 넘어지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골리앗을 무너뜨리기 원합니다. -河-
질투의 우상
좋은 아침입니다
요즘은 성경 통독과 새벽기도회에서
에스겔서를 읽고 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선지자 에스겔이
하나님의 영에 이끌려 예루살렘을 오가면서
하나님을 떠난 예루살렘의 가증스러움을 고발하고,
하나님께서 바벨론 포로들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쓰실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오늘 새벽에 읽은 에스겔서 8장에는
“질투의 우상 (the ido/imagel of Jealousy)”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루살렘 북쪽 문에 세워진
가나안이나 이방 신들의 형상으로 추측합니다.
그것을 두고 “질투의 우상/형상”이라고 부른 것은
그 우상이 하나님의 질투를 유발했기 때문입니다.
2.
17세기 영국의 사상가 베이컨은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네 가지 우상을 제시했습니다: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
종족의 우상은 인간이나 특정 집단의 입장에서 주관적으로 사물을 판단하는 것,
동굴의 우상은 동굴 속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빛으로 나와서 갖게 되는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은 편견,
시장의 우상은 시장에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용어에 의존해서 세상을 판단하고 거래하는 편견,
극장의 우상은 소신없이 극장의 배우처럼 행동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자신만이 갖고 있는 편견이나,
처한 환경에 갇혀서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을 우상이라고 본 것입니다.
자신은 옳다고 믿고 따르지만 결국 우상에 갇힌 셈입니다.
3.
에스겔서 8장에 보면
하나님을 만난 백성들이 이방 신을 섬기고,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섬깁니다.
예루살렘 성벽에 각종 곤충과 짐승의 그림을 붙여놓고 그곳에 절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생명과 진리의 길인데
하나님을 무시하고, 다른 신을 따라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떠나서
다른 신과 자신들의 생각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우상에 갇힌 것입니다.
우리도 때로는 편견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자신만이 최고라고 생각하거나
자신의 입장이 진리라고 믿고 있지만
동굴 속의 사고일 수 있습니다.
자신만이 옳다는 종족의 우상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들은 것을 그대로 믿고,
때로는 자신을 숨긴 채
극장의 배우처럼 행동할 수도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 우리의 생각을 정립하기 원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 서는 것입니다.
편견을 버리고, 치장한 옷을 벗고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서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상들을 섬김으로
하나님의 질투를 유발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해서 등을 돌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안에 우상들을 몰아내고
진실하신 하나님 앞에 순전한 마음으로 서기 원합니다.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시고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시117:2)
For great is his steadfast love toward us,
and the faithfulness of the LORD endures forever.
Praise the LORD! (Psalms 117:2)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눈길 가는 곳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발길 가는 곳을 찾아가고
하나님의 마음을 닮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9.14이-메일 목회 서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