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철

좋은 아침입니다.

 

1.

집주인이 집에서 세차를 못 하게 하니

돈을 내고 세차를 해야 합니다.

아무래도 뜸하게 세차를 하게 됩니다.

 

올해는 두 달 전쯤 한번 세차를 한 것 같습니다.

물론 실내는 자주 청소한답니다.

 

게다가

세차만 하면 다음 날 비가 오는 징크스가 있어서

좀처럼 세차를 즐기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세차를 하지 않으면

앞유리는 괜찮아도

백미러나 옆과 뒤 유리창에 먼지가 낍니다.

 

안경에 먼지가 가득 찬 것과 비슷해지니

운전할 때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오늘은 마음을 먹고

자동차 유리창을 물걸레로 청소했습니다.

아주 말끔하게 닦지 않았는데도

백미러로 보는 세상이 맑고 뚜렷합니다.

 

얼마나 시원하고 또 안전하던지요!

 

2.

오늘 새벽에는

잠언 5장 말씀을 나눴는데

처음 두 구절에 잠언의 핵심단어들이 거의 모두 등장했습니다.

 

내 아들아 내 지혜에 주의하며 내 명철에 네 귀를 기울여서

근신을 지키며 네 입술지식을 지키도록 하라. (잠언 5:1-2)

My son, be attentive to my wisdom; incline your ear to my understanding,

that you may keep discretion, and your lips may guard knowledge. (Proverbs 5:1-2)

 

여기서 눈에 띄는 단어가 “명철”입니다.

명철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총명하고 사리에 밝다”는 의미입니다.

 

영어 성경은 “이해력”을 뜻하는

understanding으로 번역했습니다.

히브리어로 “테부나”라고 쓰는데

분별력 또는 이해력을 뜻합니다.

 

이처럼 명철 또는 총명은

눈이 밝아지고 귀가 밝아져

세상 이치를 올바르게 파악하는 능력입니다.

 

3.

청소하기 전의 제 자동차 백미러처럼

세상을 보는 눈이 뿌옇다면

세상의 이치를 분별하기 힘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명철을 갖고 산다면

세상을 훨씬 바르게 이해하고

가야 할 길을 쉽게 찾아갈 수 있겠지요.

 

잠언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명철을 구합니다.

 

참빛 식구들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명철로

세상을 옳게 파악하고, 분별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인생길을 걸어 가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이

주님께서 주시는 명철로 세상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10.6 이-메일 목회 서신)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 – 시편 120편

구약 성경 시편 120편부터 134편까지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표제어가 붙어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개인은 물론 가족 단위로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광 (히브리어 “카보드”)으로 임재하신 성전에 직접 가서 제물을 바치고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의 의무이자 특권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가는 순례길은 벅차 오르는 감동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양을 잡아서 속제물로 드리고 죄사함의 은혜를 구하기 원했습니다. 양에게 자신의 죄를 전가하는 제사를 드리고 나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갈등이나 다툼으로 인해서 가족이나 이웃과의 관계가 깨진 경우에도, 성전에 가서 화목 제물을 드리고 그 제물을 함께 나누면서 관계를 회복했습니다.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면 제사장들이 이들을 맞아 주었습니다. 성전에서 일하던 레위인들의 인도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했습니다. 성전에 올라온 모든 사람이 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과 소리는 아름답고 웅장했을 것입니다. 개인 또는 가족 단위로 성전에 올라가지만, 성전에 들어오면 모든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가 되었을 것입니다. 성전에 올라와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 누리는 특별한 은혜가 있었을 것입니다.

 

앞으로 열다섯 편으로 구성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를 매 주일마다 한 장씩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랫동안 예배에 오다 보면 습관적으로 교회에 올 때도 많이 있고 아주 가끔은 “왜 예배에 가지?”라는 회의가 들 수도 있습니다. 바쁜 세상에 살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예배에 오는 동기를 상실한 경우입니다. 그때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제목의 시편이 우리의 신앙과 생각을 새롭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주일 아침, 함께 나눈 말씀을 묵상하면서 온 가족이 예배의 자리에 나오는 것입니다. 온 성도님들이 하나가 되어서 주님을 예배합니다. 개신교 예배에서는 설교를 강조하지만,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송영부터 마지막 축도까지 예배의 모든 순서가 중요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각각의 순서에 참여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것이 참된 예배자의 자세입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를 읽어가면서, 우리 교회 예배와 찬송이 더욱 풍성해 졌으면 좋겠습니다. 찬양대는 물론 모든 성도님들이 화음을 맞춰서 아름다운 하모니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악기로 주님을 찬양할 날도 기대하겠습니다. 주일예배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 자체가 예배입니다. 삶 속에서 찬양이 끊이지않고, 주일에 함께 나눈 말씀을 묵상하면서 삶 속에서 하나님을 예배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노래가 되고, 함께 모이는 공동체 예배에서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원합니다. -河-

마가복음 16장 – 부활 하시다

지난 2년 동안 우리 교회는 마가복음을 공부했습니다. 청년부에서 먼저 공부했고, 이어서 속회에서도 마가복음을 공부했습니다.“공부”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한 것은 우리가 성경을 공부할 때, 말씀이 더욱 선명하게 우리 안에 아로새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공부해도 시간이 지나면 자세한 내용을 잊어버립니다. 반복 학습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성경은 평생을 읽고 듣고 공부하고 외우고 묵상할 하나님 말씀이지만, 배울 때 집중해서 살펴보면 학습효과가 좋을 것 같아서 두 차례에 걸쳐서 마가복음을 주일에 설교했습니다. 작년 말에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을, 이번 여름에는 예루살렘 사역을 나눠서 살펴보았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정보를 얻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정보라도 파편처럼 널려 있으면 신앙이 허술하게 형성됩니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듯이, 신앙의 정보들을 잘 꿰어서 나름대로 작품을 만들어 놓으면 보기도 좋고, 신앙을 삶 속에 올바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작은 것에 연연하기보다 큰 그림을 그려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나무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 앞서서 숲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을 듬성듬성 한 장씩 살펴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참빛 식구들의 신앙이 바르게 조직되고, 하나님 앞에서 각자 신앙의 집을 근사하게 지어 가시길 바랍니다. 이런저런 말이나 이벤트, 프로그램에 휩싸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휘둘리거나 심하게 의존하지 않고 줏대 있는 신앙을 만들어 가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배운 내용은 잊어버려도 그것들이 참빛 식구들의 신앙과 삶에 베어 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가복음은 신약성경의 사복음서 중에서 분량이 가장 짧고, 진행되는 속도도 빨랐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이나 광야 시험 없이 곧바로 갈릴리 사역을 소개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반면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참뜻을 밝히 알지 못하고 늘 동상이몽입니다. 결국 한 명의 제자가 예수님을 팔았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으며, 예수님은 홀로 십자가를 지고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부활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완전히 죽으셨다가 살아나셨음을 로마 군병의 확인과 아리마대 요셉의 장례를 통해서 알려줍니다. 우리가 모여서 예배하는 주일인, 안식 후 첫날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먼저 목격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던 여인들이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부활 소식을 들은 베드로가 제일 먼저 달려갔다고 했지만, 마가복음에서는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과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을 먼저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음식을 먹고 있던 열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믿음이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은 것을 꾸짖으십니다. 그리고 온 천하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길 부탁하셨습니다.

 

이렇게 기독교는 예수님의 부활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바울의 고백대로 부활이 없으면 믿음도 헛되고 기독교 자체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 신앙도 부활에 근거합니다. 부활로 죽음의 세력이 물러가고 새로운 생명과 세계가 임했듯이, 부활을 믿는 우리에게도 생명이 임했기에 날마다 생명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河-

구약성경 룻기

올가을에는 청년들과 구약성경 룻기를 읽기로 했습니다. 룻기는 네 장밖에 되지 않는 짧은 말씀이지만, 책의 제목이 룻기라는 것부터 예사롭지 않습니다. 룻은 이스라엘과 껄끄러운 관계였던 이방 민족 모압 출신입니다. 남편을 잃고 시어머니를 따라서 베들레헴에 온 외국인 여성입니다. 룻의 출신과 신분을 고려하면 39권 구약성경의 제목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룻은 자신의 이름을 성경에 올렸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족보에도 룻이 등장합니다.

 

룻기의 배경은 이집트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광야생활을 마감하고 약속의 땅에 정착한 사사 시대입니다. 꿈에 그리던 약속의 땅에 들어왔건만, 이스라엘은 광야 시절보다 더 심하게 타락합니다. 룻기 바로 앞에 위치한 구약 성경 사사기의 마지막 다섯 장은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이 펼치는 막장 드라마입니다. 오늘날 성직자에 해당하는 레위인들이 이스라엘의 타락에 관여했다는 것 자체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전이 일어나서 한 지파의 남자가 모두 살해되는 비극까지 초래합니다. 우상숭배와 타락, 폭력과 살인, 거기에 극도의 개인주의가 판을 치던 사사 시대가 요즘 세대와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처럼 룻기는 악하고 험한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룻기는 가뭄을 피해서 모압 땅으로 이주한 베들레헴 출신의 한 가족에게 밀어닥친 비극으로 시작합니다. 병약한 두 아들을 데리고 살기 위해서 피난을 갔는데 가장이 죽습니다. 홀로 남은 아내 나오미가 두 아들을 모압 여인과 결혼시켜서 10년을 잘 지냈는데 그만 두 아들마저 죽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와 모압 출신 두 며느리, 즉 남편을 잃은 세 여인만 남았습니다.

 

결국, 시어머니 나오미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두 며느리 가운데 룻만이 시어머니를 따라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옵니다. 나오미가 돌아온다는 소식에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금의환향은 커녕 남편과 두 아들을 모두 잃고, 며느리 룻과 단둘이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왔으니 인생무상입니다. 이름 뜻 그대로 쾌활한 여인이었을 나오미는 자신을 “마라” 즉 쓰디쓴 인생의 여인으로 불러달라고 부탁합니다. 이렇게 룻기의 1막은 비극으로 끝이 납니다.

 

그 다음부터는 분위기가 완전히 바뀝니다. 며느리 룻이 시어머니를 모시기 위해서 생활 전선에 뛰어듭니다. 보리를 수확하던 때였기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남겨놓은 보리 이삭을 주우러 나간 것입니다. 그때 룻이 우연히 간 곳이 베들레헴의 유력자 보아스의 밭입니다. 보아스는 매우 선한 인물입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따뜻한 마음씨를 갖고 있습니다. 보아스는 자신의 밭에서 모압 여인 룻이 보리 이삭을 마음껏 줍도록 배려합니다.

 

양식을 충분히 마련해서 돌아온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자초지종을 말합니다. 나오미는 모압 며느리 룻을 베들레헴의 유력자 보아스에게 시집 보낼 생각을 합니다. 보아스가 추수를 끝내고 타작 마당에서 자고 있을 때, 그에게 슬쩍 들어가서 프러포즈를 하라는 것입니다. 룻은 시어머니의 말에 그대로 순종합니다. 룻기의 여인들이 꽤 적극적입니다. 보아스 역시 룻을 흔쾌히 받아줍니다. 보아스보다 룻을 책임질 가까운 친척이 있었는데 그 사람의 의견을 먼저 묻고 룻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그리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가 오벳, 즉 다윗의 할아버지입니다. 이처럼 룻기의 후반부는 타작 마당에서 펼쳐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입니다.

 

룻기 속에는 주인공들에게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하나님께 나가서 기도하거나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대목이 없습니다. 하나님도 이들에게 나타나셔서 직접 말씀하시지 않고 보이지 않는 손길로 뒷전에서 일하십니다. 모든 이들이 제 뜻대로 행하는 악하고 혼란스러운 시대에, 룻기의 주인공들은 하나님의 사랑 “헤세드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키는 히브리어)”를 생활 속에서 실천할 뿐입니다. 힘없고 가난한 이방 여인 룻을 책임지고 구해주는 보아스를 통해서 우리를 죽음에서 구하시고 책임져 주신 예수님의 모습도 발견합니다. 그런 점에서 룻기의 신앙은 철저히 “생활 영성”입니다. 신앙이 삶 속에 녹아있고, 삶이 곧 신앙입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요청되는 신앙의 모습을 룻기를 통해서 배웁니다. (2016년 9월 22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할렐루야 시편

좋은 아침입니다.

 

1.

이번 주면

새벽기도회에서

지난 5월부터 읽어온 시편을 마칩니다.

 

시편은

구약 성경의 <성문서(The Writings)>에 속해 있습니다.

다섯 권으로 구성된 성문서는 각기 특징이 있습니다.

 

욥기는

의인에게 임하는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규칙대로 진행되기보다

얼기설기 얽혀 있음을 보여줍니다.

 

시편은

하나님 백성의 예배입니다.

시편에는 찬양과 기도

그리고 지혜와 말씀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잠언은

하나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매우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알려줍니다.

 

전도서는

우리 인생의 좌표를 미리 끝에다 갖다 놓고

무엇이 중요한지 알려줍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지금 이 순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을 누리는 것이 행복이랍니다.

 

아가서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을 통해서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연인처럼 친밀하고 달콤해야 함을 깨우쳐줍니다.

 

2.

시편은 모세 오경을 본떠서

다섯 권의 커다란 묶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의 마지막 다섯 장은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나는 “할렐루야 시편”들입니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찬양하라!

Praise the Lord!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익힐 수 있는

하늘나라 언어가 있다면

뭐니뭐니해도 “할렐루야”일 것입니다.

 

다섯 묶음으로 된 시편,

마지막 다섯 장의 앞뒤에서

할렐루야를 외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매일 매일 우리의 삶이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마무리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참빛식구들의 신앙과 삶에

주님을 찬양하는 기쁨, 은혜, 능력

간증과 고백이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시편 147:1)

Praise the Lord!

For it is good to sing praises to our God;

for it is pleasant, and a song of praise is fitting. (Psalms 147:1)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의  삶이

찬양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9.22 이-메일 목회 서신)

마가복음 15장: 십자가에 죽으시다

세상이 뒤숭숭합니다. 지진과는 상관없어 보이던 한국에 진도 6에 육박하는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2년 전 나파 밸리에서 일어났던 지진과 맞먹습니다. 당시에 우리도 흔들림을 느꼈고, 나파의 건물은 물론 와이너리가 커다란 피해를 당했습니다. 그 정도로 큰 규모의 지진이 한국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큰 피해가 없었다니 감사한데, 여전히 고층 아파트와 원자력 발전소가 염려됩니다.

 

지난번 마가복음 13장을 공부하면서 마지막 때가 되면 지진을 비롯한 자연 재해가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물론 지진은 구약시대부터 꾸준히 있었던 자연 재해지만 한국에도 지진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게다가 한국에서 격월로 보내주시는 선교 편지에 의하면, 전 세계 미전도 종족이 급격히 줄어서 2020년쯤 되면 모든 종족이 복음을 소개받고 자기 말로 성경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해지면 예수님께서 오실 것이라고 했기에 선교지에서 온 소식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온 세상과 아담과 이브, 그리고 그들이 살게 될 낙원 을 창조하셨습니다. 특별히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시고 세상을 다스리며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길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으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망가지고 결국 낙원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이브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면서 망가진 관계를 반드시 회복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아브라함과 그들의 가족,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관계회복을 도모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하나님의 기대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팔고, 베드로가 세 번씩 예수님을 부인한 것과 비슷한 현상입니다.

 

인간을 통해서 구원 계획을 생각하셨던 하나님께서 급기야 하나뿐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자신이 유월절 어린양이 되셔서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구속입니다. 여기서 구속이라고 하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막혔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화목하게 하시고, 세상에 있는 죄와 악한 세력을 무너뜨린 승리의 선포를 가리킵니다. 이것이 십자가에 깃든 은혜이고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이 우리에게 여전히 효력을 끼칩니다. 세상 국가에서 어떤 법을 제정해서 그것을 선포하면 그 순간부터 법의 효력이 생기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그를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이라는 법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독생자의 죽음으로 선포하셨으니 살아있는 법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 법의 효력에 참여했고 생명을 얻었습니다. 뒤숭숭한 세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 든든히 붙잡고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