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신앙

좋은 아침입니다.

 

1.

어제 수요예배에서는 사도행전 2장

오순절 성령 강림에 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임한 오순절 성령강림은

언제 읽어도 신바람 나는 말씀입니다.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온 집에 가득했고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보이고 그것이 각 사람에게 임했습니다.

사도들이 성령의 말하게 하심으로 각기 다른 언어로 말했습니다.

 

바람 소리, 불의 혀와 같은 모습,

오순절을 맞아서 예루살렘에 온 다양한 사람들의 언어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

3천 명을 회개시킨 베드로의 설교,

서로 물건을 통용하고 기도하며 기쁨으로 떡을 떼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초대교회의 모습까지

사도행전 2장은 교회의 시작을 알리는 팡파르입니다.

 

성령이 각 사람에게 임했듯이

사도행전의 역사가 참빛 식구들께 개별적으로 임하고

우리 교회 위에도 그대로 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오순절 성령 강림을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읽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는 모습보다

성령을 받고 변화된 제자들의 모습에 주목해야 합니다.

 

저는 어제 수요예배에서

성령을 가리키는 바람을 통해서 새로운 생명을,

하나님의 임재인 불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각기 다른 언어를 말한 것은 복음이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족속들,

즉 땅끝까지 전해질 것을 보여주신 사건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성령의 체험은

회개를 통과하면서 새로운 사람, 새로운 생명, 새로운 삶으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힘을 줍니다.

 

3.

나사못에 비유해서 설명했습니다.

 

성령을 체험하는 것은

나사못이 나무 판에 깊이 박히는 것과 같습니다.

쉽게 흔들리지도 빠지지도 않습니다.

 

아무리 나사못이라도

드라이버가 아닌 망치로 내리치면

흔들흔들 나무판에 박혀서 다시 빠지곤 합니다.

 

십자형 드라이버를 사용해서

차근차근 못을 박아야 보기도 좋고 견고합니다.

 

신앙이 그렇습니다.

 

성령 체험을

단지 감정적인 경험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사못을 망치로 내려치는 것과 같습니다.

일시적 충격에 못이 박히지만 쉽게 빠져버립니다.

어떤 경우는 나무판이 쪼개지기도 합니다.

거부반응을 일으킨 것입니다.

 

4.

성령 체험은

체계적이고, 꼼꼼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감정이 동반되지만

의지와 때로는 육체까지 주님을 경험합니다.

그 체험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릴 정도로 구체적입니다.

전율이 일기도 합니다.

 

새로운 생명의 세계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임재를 의심 없이 확신하고

세상 속에서 복음의 증인이 되는 사건입니다.

 

깔끔하고 견고하게 자리잡은 나사못처럼

인생의 희로애락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신앙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견고해지기 원합니다.

확신 가운데 거하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기 원합니다.

 

그 힘으로 주어진 삶을

참되고, 아름답고, 선하게 살기 원합니다.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고전 1:8)

Our Lord Jesus Christ who will sustain you to the end,

guiltless in the day of our Lord Jesus Christ. (1Cor 1:8)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믿음이

나사못처럼 우리 안에 견고하게 뿌리내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7.29 이-메일 목회 서신)

걸어가는 신앙

 90년대 후반, 우리 가족이 미국에 왔을 때 아이들 사이에서 “포켓몬”이라는 게임이 한창 유행했습니다. 초등학교 1, 2학년이었던 두 아이는 학교에서 오면 포켓몬 카드를 갖고 놀았습니다. 게임 뿐만 아니라 만화영화는 물론 아이들 옷이나 문방구에 온통 포켓몬 캐릭터들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포켓몬은 닌텐도라는 게임회사에서 만든 애니메이션과 게임 등 다양한 상품을 일컫는 말입니다. 실제로는 “포켓 몬스터”의 약자로 “주머니 속의 괴물”이란 뜻입니다. 게임을 하는 사람이 괴물들을 훈련시키는 트레이너가 되어서 몬스터 볼로 불리는 가상의 상자에 괴물들을 데리고 다닐 수 있고 키울 수도 있습니다. 피카츄라는 십만 볼트의 전기가 흐르는 쥐 형상의 캐릭터가 가장 유명합니다. 캐릭터들이 자라고 진화하면서 아이들의 정신을 쏙- 빼놓는 게임입니다.

최근에 포켓몬 열풍이 우리가 사는 샌프란시스코를 필두로 다시 일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게임과 현실을 혼합시킨 증강현실(AR)에 “포켓몬 고(go)”라는 신종 게임을 장착시켰습니다. 미국에서만 하루 사용자가 3천만 명에 육박하고, 전 세계에 포켓몬고 돌풍이 불고 있습니다. 거리에서도 휴대폰을 보면서 걷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게임에 열중한 나머지 가로수에 부딪히거나 도로로 뛰어들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범죄에 사용된다는 끔찍한 소식도 있습니다.

 

요즘 세대를 따라잡고 싶어서 저도 휴대폰에 포켓몬고 게임을 설치해보았습니다. 설치를 끝내자마자 우리 집 거실 텔레비전 앞에 포켓몬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괴물이라고 부르기에는 매우 귀여운 모습입니다. 우리 집에 포켓몬이 사는 것 같아서 놀랍고 또 신기했습니다. 포켓몬 볼을 던져서 잡으니 또 한 마리가 책꽂이에 나타납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두 마리 모두 잡았더니 2단계로 진입했다는 메시지가 뜹니다. 이번에는 집 밖으로 나가보았습니다. 웬걸 남의 집 안에 포켓몬이 있습니다. 도서관에도 나타나고 이러 저리 동네를 헤매고 다니게 생겼습니다. 저의 포켓몬고 체험은 거기까지 였습니다. 자칫 목사가 게임에 빠져서 예배시간에도 포켓몬이 눈앞에서 왔다갔다 한다면 큰일 날 일입니다. 얼른 게임을 지웠습니다.

 

포켓몬고 게임 뒤에 붙은 “고(go)”를 보면서 “걷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 <할락크>가 생각났습니다. 히브리어 할락크에는 어디론가 길을 떠나는, 어떤 일을 시작하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멈춰 있지 않고 발을 떼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뿐인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모리아 땅으로 길을 떠날 때도 할락크라는 동사가 쓰였습니다. 머뭇거리지 않고 길을 떠난 것입니다.

 

히브리어 할락크에는 길 위를 걷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길 위를 걷는 것은 목적지를 향해서 가는 여정, 즉 여행길입니다. 인생길을 걷는 것도 할락크입니다. 우리 모두 길을 걷는 나그네입니다. 존 번연의 소설 천로역정처럼 하나님 나라를 향해서 걸어가는 순례자들입니다. 그것도 할랄크라는 동사로 표현되는 길입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신앙의 길을 걷고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것도 할락크입니다. 유대교에서는 그들이 지켜야할 율법을 할락크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형을 써서 <할락카>라고 부릅니다. 율법은 발로 걸어가면서 지켜야할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말씀을 지키고, 말씀대로 살고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이 할락크입니다. 그런 점에서 신앙은 멈춰있는 명사나, 화려한 형용사가 아니라 움직이는 동사입니다. 교회에 모이는 것을 넘어서 복음을 들고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그리고 거리로 흩어지는 것이 할락크 즉 걸어가는 신앙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새날을 <할락크> 걸어갑니다. 사람들은 휴대폰을 보고 포켓몬 (주머니 속의 괴물)을 찾아서 걷지만,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보고 진리를 향해서 걷습니다. 생명 길을 걷습니다. 우리가 걷는 길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인생길 고비고비에서 우리와 동행해 주시는 예수님도 만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우리 주 예수님과 함께 걷고 또 걷기 원합니다. (2016년 7월 28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숨은 영웅들 11: 세례요한

이번 연속 설교에서 마지막으로 살펴볼 숨은 영웅은 세례 요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두고 여자가 낳은 사람 가운데 가장 위대한 자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자연산 꿀을 먹으며 광야에서 지냈던 세례 요한을 존경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오심을 미리 알리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그는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사가랴는 제사장이었고 어머니 엘리사벳도 제사장 가문 출신입니다. 세례 요한의 부모님은 의롭고 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나이가 많이 들 때까지 자식이 없었습니다.

 

아버지 사가랴가 성전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서 세례 요한의 탄생을 예고합니다. 특별한 아들입니다. 모태에서부터 성령 충만하고, 구약의 나실인처럼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않고, 엘리야의 능력으로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자입니다. 그만큼 천사가 알려주는 아기, 즉 세례 요한의 탄생은 특별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탄생을 예고한 가브리엘 천사는 나사렛에 살고 있던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예수님의 탄생도 알렸습니다. 백성을 구원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가 마리아를 통해서 태어날 것이라는 놀라운 소식입니다. 마리아와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은 친척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태중에 있던 세례 요한이 복중에서 뛰놀면서 반기는 장면도 성경에 등장합니다.

 

예수님도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면서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최후는 매우 비극적입니다. 세례 요한은 헤롯 왕이 동생의 아내를 왕비로 삼은 것을 질책했는데 이것을 문제 삼은 왕비에 의해서 목이 잘리는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서른 남짓한 나이였을 것입니다. 비록 세례 요한이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메시아를 알리고 그의 길을 예비하는데 충실했습니다. 제사장 가문 출신이었고 따르는 제자들이 많았지만 예수님보다 앞서지 않고 구약성경에서부터 예언한 그의 임무에 충실했습니다. 옳은 말을 하고 바른 길을 가다가 생을 마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모습은 다양합니다. 우리가 어떤 소명으로 살아가든지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아와 왕으로 드러난다면 우리는 세례 요한과 마찬가지로 영웅의 삶을 산 것입니다. 성경 속의 숨은 영웅들 열한 명을 살펴본 연속 설교를 마무리하면서, 이제 우리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열 두 번째 숨은 영웅의 삶을 살기로 결심하기 원합니다. -河-

낯선 시각으로

좋은 아침입니다.

 

1.

수요예배에서

사도행전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일곱 번에 걸쳐서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에 대한 방법을 배운 후에

맞이하는 사도행전이기에

말씀을 대하고 읽는 깊이가 다를 것 같습니다.

그만큼 기대가 큽니다.

 

사실 요즘같이 바쁜 시대에

차분하게 성경을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 새벽기도회를 빠짐없이 나오다가

다른 도시로 이사한 형제가 있었습니다.

미국 교회를 출석하던 형제였는데

떠나기 전 식사하는 자리에서

작은 교회 새벽기도회 자리를 지켜준 것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니에요, 제가 좋았습니다.

새벽마다 성경 한 장씩 읽는데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성경을 읽을 것 같지 않았어요” 라고 답했습니다.

 

맞는 말일 것입니다.

보통 결심이 아니면

평상시에 성경을 가까이하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솔직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2.

시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알파고가 나오고 포켓만 고가 나오는 오늘날

하나님 말씀이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웬만큼 교회에 다닌 분들은

성경의 줄거리를 대강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성경을 대충대충 읽게 됩니다.

 

수요예배에서 사도행전을 시작하고

속회에서는 마가복음을 마치고

청년부에서는 요나서를 읽고

새벽기도회에서는 시편을 읽고 있는데 (휴- 저만 많이 읽는가 봅니다^^)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

“낯선 시각으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낯선 사람을 만나거나

낯선 환경에 들어가면

호기심과 경계심을 갖고 차분하게 대처합니다.

무엇보다 자세히 관찰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처음 읽는 말씀처럼,

낯선 시선으로 읽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것도 발견할 수 있고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에 질문이 생기고

성경이 하나님 말씀으로 새롭게 다가옵니다.

 

3

성경을 자세히 읽다 보면

현재의 가치관이나 문화로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나 이야기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성경과 우리 사이에

시간, 문화, 지리적인 간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성경 자체의 사건이나 이야기를 넘어서

성경 말씀 속에 깃든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습니다.

 

왜 이런 사건, 이야기, 주제가

성경에 쓰였는지,

성경 말씀 속에 담긴 의미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표면적인 글보다

하나님께서 성경 깊이 숨겨놓으신 보물을 찾는 자세로 말입니다.

 

“아- 이런 뜻이구나”라고 생각이 되면

그것을 현재 자신의 상황과 오늘날 우리 세상에 적용하는 것이지요.

 

하나님 말씀인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기 원합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각자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시 119:18)

Open my eyes, that I may behold wondrous things out of your law. (Ps 119:18)

 

하나님 아버지

주의 말씀이 참빛 식구들이 걸어가는 발에 등이되고

가는 길에 빛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7.22 이-메일 목회 서신)

숨은 영웅들 10: 구레네 시몬

오늘 우리가 살펴볼 숨은 영웅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랐던 구레네 사람 시몬입니다. 마가복음 본문에 의하면 그는 구레네 시골 출신입니다.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구경하다가 그만 로마 군인들에게 지목되어서 강제로 십자가를 지게 되었습니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가장 악하고 추한 죄인이 지고 가는 십자가를 지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억지로”라는 말을 강조하면서 당시의 상황과 구레네 시몬의 마음을 전합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졌습니다.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갔지만 그 안에 하나님의 섭리가 임했음에 틀림없습니다. 특별하게 선택받은 인물이었습니다.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지척에서 목격했을 것입니다. 그 이후로 당연히 예수님을 믿었겠지요. 오늘 본문에 알렉산더와 루포라는 두 아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보통 누군가를 소개할 때 앞에 나오는 표현이 그 사람을 알려주는 중요한 표시가 됩니다. 본문을 다음과 같이 풀어 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알렉산더와 루포가 있지요. 그 분들의 아버지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졌습니다.” 마가복음이 쓰일 당시에 구레네 시몬의 아들이 유명한 교회의 지도자가 되어 있었음에 틀림 없습니다.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갔던 아버지 덕분입니다.

 

로마서의 마지막 장에서 사도바울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안부를 전합니다(롬16:13). 구레네 시몬의 이름이 빠진 것을 보니 그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내와 아들 루포가 로마로 가서 교회를 열심히 섬겼던 것 같습니다. 바울이 루포의 어머니가 곧 자신의 어머니라고 말하는 것이 인상깊습니다.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의 지치신 모습을 몸으로 느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고 가신 십자가의 무게를 경험한 사람도 구레네 시몬 뿐입니다. 그가 지고 간 십자가는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대신 지고 가야했습니다. 제자들은 어디로 가고 구레네 시골 출신 시몬이 십자가를 졌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오묘합니다. 그러고 보니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 뿐만 아니라 제자들을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고 간 것입니다. 당시에는 강제로 십자가를 지고 갔지만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것이 얼마나 감격스럽고 감사했을까요!

 

우리도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 지고 주어진 인생길을 걸어가기 원합니다. 억지로 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길이 가장 복된 일임을 구레네 시몬을 통해서 배웠기에 즐겁게 십자가를 지고 길을 걷습니다. 할렐루야! -河-

고우 (Go)

좋은 아침입니다.

 

1.

18년 전 우리 가족은 미국에 왔습니다.

그때 두 아이들이

포켓몬이라는 카드를 갖고 싶어했습니다.

당시에 포켓몬 열풍은 대단해서

저도 피카추라는 캐릭터를 알 정도였습니다.

 

오늘 저녁 아내와 동네를 산책하는데

엄마와 아들, 딸이 맞은 편에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초등학생쯤 되는 아들이 열심히 셀폰을 봅니다.

지나치다가 슬쩍 보니 요즘 가장 대세라는 <포켓몬 고>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엄마가 저를 보고 미소를 짓습니다.

 

어제 폐북에는

영어권 목회를 하시는 젊은 목사님이

포켓몬 고를 교회 사역에 도입할 수 있는 팁(tip)을 영상으로 알려주었습니다.

 

포켓몬이 교회에 자주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교회 wifi를 공유해 주는 센스를 발휘하고

10시 30분쯤 포켓몬이 교회에 나타나게 해서

사람들이 몰려오면 예배로 초대해보라는 팁입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수요 예배에 가는데

젊은 여성 둘이 열심히 셀폰을 보면서

교회 앞을 지나갔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포켓몬이 숨겨져 있나 봅니다.

 

2.

저는 포켓몬 고 게임을 자세히 모릅니다.

그런데 뒤에 붙은 “고(go)”라는 이름이 눈에 띕니다.

 

포켓몬을 찾아서 밖으로 나와야 하고

거리를 걸어야 하기에 “고”라는 말이 붙은 것 같습니다.

 

가로수에 부딪히거나, 도로로 달려들지 않는다면

운동도 되고 괜찮은 게임 같습니다.

젊은 엄마가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도 보기 좋았습니다.

 

“고(go)”즉 가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할락크>입니다.

 

히브리어 할락크에는

어디론가 길을 떠나는,

어떤 일을 시작하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멈춰 있지 않고 발을 떼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또한 길 위를 걷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길 위를 걷는 것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여정, 즉 여행길입니다.

인생길을 걷는 것도 할락크입니다.

 

신앙의 길을 걷고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것도 할락크입니다.

말씀을 따라 걷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신앙은 동사입니다.

신앙에 생활이 필요하고

행동이 동반되어야 진정한 신앙입니다.

 

3.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새날을

<할락크> 걸어갈 것입니다.

 

사람들은 셀폰을 보고 포켓만을 찾아서 걷지만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보고 진리를 향해서 걷습니다.

생명 길을 걷습니다.

 

오늘도 참빛 식구들 모두

주님과 동행하시는 하룻길이 되길 바랍니다.

 

참빛 식구들이 걷는 인생길에

주님께서 손을 잡고 동행해 주실 줄 믿습니다.

 

이번 주일 우리 교회 앞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려는 분들이 많이 모여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포켓만과 비교할 수 없는

길과 진리요 생명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만나기 위해서 말입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사 2:3)

Come, let us go up to the mountain of the Lord, to the house of the God of Jacob,

that he may teach us his way sand that we may walk in his paths. (Is 2:3)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이 주의 길을 걷게 하시고

그 길에 주님께서 손잡고 동행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7.15 이-메일 목회 서신)

숨은 영웅들 9: 라합

지난 7주 동안 수요예배에서는 <성경 바르게 읽기>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고 읽지만, 막상 성경을 마주 대하면 어떻게 읽어야 할지 막막합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어려운 구절도 자주 만납니다. 이번 수요예배에서는 성경 본문을 앞에 놓고 <관찰(눈) 살피기 – 해석(머리) 생각하기 – 적용(몸)따라 살기>이라는 순서로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수요일에 참석하셔서 함께 공부하신 성도님들께서는 배운 것을 꾸준히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성경 읽기는 숙달될 때까지 꾸준히 훈련해야 합니다. 함께하지 못하신 분들도 교회가 성경 읽기 강의를 수시로 준비할 텐데 그때 꼭 참석하셔서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올바로 읽는 방법을 배우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번 수요일부터는 신약성경의 사도행전을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속회에서 마가복음 공부를 마쳤습니다. 사도행전을 통해서 복음서 이후에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을 살펴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약속하셨고, 오순절에 약속대로 성령이 임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이 계기가 되어서 예루살렘에서부터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까지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초기 교회를 이끌었고,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름받아서 소아시아와 유럽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행전은 이 모든 과정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공부를 통해서 초대교회에 역사한 성령의 바람이 우리 개인과 교회에 임하길 기대합니다. 수요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시더라도 안내 데스크에 준비된 교재와 목요 서신을 갖고 각자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살펴볼 숨은 영웅은 구약성경의 라합입니다. 라합은 모압 여인 룻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족속이 아닙니다.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당시에 가장 강한 지역인 여리고를 정복해야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정탐꾼 두 사람을 여리고에 들여보내서 적진을 살폈습니다. 정탐꾼들은 기생 라합의 집에 묵었습니다.

 

여리고 왕은 정탐꾼들이 라합의 집에 있다는 신고를 받고 군사를 보내서 정탐꾼들을 내놓으라고 위협합니다. 그때 라합은 정탐꾼들을 숨겨주고 끈을 매서 도피하도록 돕습니다. 이방 여인이었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을 살려주고,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한 것입니다. 훗날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복했을 때, 라합과 그의 가족을 살려줍니다. 마태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족보에 라합의 이름이 나옵니다. 히브리서와 야고보서에서는 믿음과 행동이 일치한 모범적인 인물로 소개합니다. 이처럼 라합은 기회가 찾아 왔을 때 의로운 일을 행했던 숨은 영웅입니다. -河-